한신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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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 야구 12개 구단 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가 깊은 한신 타이거스는 1935년 오사카 타이거스로 창단되어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 구장을 홈으로 사용합니다. 센트럴 리그 소속으로, 단일 리그 시대 4회, 양대 리그 출범 이후 7회 등 총 11번의 리그 우승과 1985년, 2023년 두 차례 일본 시리즈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부터는 연간 300만 명 이상의 관중을 꾸준히 동원하며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위기와 영광의 순간을 겪으며 팬들과 함께 성장해 온 팀입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35

[몬젠 마사토, 오사카 타이거스 첫 선수로 계약]

일본 프로 야구팀 '오사카 타이거스'의 첫 선수 입단 계약. 고시엔을 통해 탄생한 야구 스타들과 다롄 실업 소속 마쓰키 겐지로 등 우수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몬젠 마사토와의 계약이 그 시작이었다. 이는 팀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단계였다.

1935년 10월 22일, 몬젠 마사토와의 입단 계약을 시작으로, 고시엔을 통해 탄생한 여러 야구 스타들과 도시간 대항 야구의 강자였던 다롄 실업 소속이던 마쓰키 겐지로 등을 모으기 시작하며 오사카 타이거스 창단의 기틀을 다졌다.

['오사카 타이거스' 공식 창단]

'주식회사 오사카 야구 클럽'이 발족하고 구단명을 '오사카 타이거스'로 공식 결정하며 창단했다.

1935년 12월 10일, 요미우리 신문이 주도한 직업 야구 리그 결성 구상에 따라 한신 전기 철도가 일본 최대의 야구장인 고시엔 구장을 홈으로 한 구단 설립을 추진하여, '주식회사 오사카 야구 클럽'을 발족하고 '오사카 타이거스'라는 구단명으로 공식 창단했다.

1936

[첫 일본 직업 야구 리그전 3시즌 개시]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의 첫 공식 시즌이 춘계, 하계, 추계의 3시즌으로 나뉘어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서 개최되었다.

1936년, 연맹 결성 이후 첫 해의 공식 경기는 춘계 시즌(제1회 일본 직업 야구 리그전), 하계 시즌(연맹 결성 기념 전일본 야구 선수권 대회), 추계 시즌(제2회 전 일본 야구 선수권)으로 분할되어 진행되었으며, 각 시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승팀을 가렸다. 오사카 타이거스는 이 첫 시즌에 참가하여 리그 우승을 목표로 했다.

[모리 시게오 감독 해임 및 이시모토 슈이치 감독 취임]

구단 최초의 모리 시게오 감독이 해임되고 이시모토 슈이치가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며 팀의 첫 감독 교체가 이루어졌다.

1936년 가을, 모회사 내 경쟁 관계에 있던 한큐군에게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단 최초의 모리 시게오 감독이 해임되었고, 이시모토 슈이치가 후임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이는 팀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지도부 변화였다.

[와카바야시 다다시 선수 영입]

실업팀 가와사키 콜롬비아 소속 와카바야시 다다시 선수를 영입하며 선수단 보강에 나섰다.

1936년 1월 9일, 구단 창단 이후 선수단 강화를 위해 활발하게 선수 영입을 진행하던 중, 실업팀 가와사키 콜롬비아의 와카바야시 다다시를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일본 직업 야구 연맹 결성]

오사카 타이거스 등 7개 구단이 모여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을 결성했으며, 이는 현재 일본 야구 기구의 전신이 되었다.

1936년 2월 5일, 도쿄 자이언츠, 나고야군, 한큐군, 나고야 긴코군 등과 함께 오사카 타이거스를 포함한 7개 구단이 '일본 직업 야구 연맹'을 창설했다. 이 연맹은 일본 프로 야구의 체계를 확립하는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가게우라 마사루 선수 추가 영입]

릿쿄 대학 소속 가게우라 마사루 선수를 추가 영입하여 선수단 구성에 박차를 가했다.

1936년 2월 28일, 와카바야시 다다시 영입에 이어 릿쿄 대학의 스타 선수였던 가게우라 마사루를 영입하는 등 구단 창단 기념 경기 전까지 17명의 선수를 확보하며 팀 구성을 완료했다.

1937

[프로 야구 사상 최초 시즌 2연패 달성 (1937년 추계, 1938년 춘계)]

미소노오 다카오를 필두로 한 투수진과 다나카 요시오로 구성된 타선을 바탕으로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시즌 2연패를 달성했다.

1937년 추계 시즌과 1938년 춘계 시즌에 걸쳐 오사카 타이거스는 미소노오 다카오를 필두로 한 강력한 투수진과 다나카 요시오 등으로 구성된 파괴력 있는 타선을 앞세워 도쿄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연속 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1938

[한국인 투수 박현명 스카우트]

조선을 방문해 친선경기를 치르던 중, 한국인 투수 박현명을 스카우트하여 팀에 영입했다.

1938년, 얇은 선수층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오사카 타이거스는 조선 방문 중 체신국 투수 박현명의 뛰어난 실력을 확인하고 공개 테스트를 통해 그를 영입했다.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에서 한국인 선수를 영입한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이다.

1940

[미와 하치로, 노히트 노런 달성]

미와 하치로 투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940년 8월 3일, 미와 하치로 투수가 다롄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에 1-0 승리를 안기는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구단명 '한신군'으로 변경 (전쟁 시국)]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영어 사용이 금지되면서 구단명을 '오사카 타이거스'에서 '한신군'으로 변경했다.

1940년 9월 25일, 전시 상황으로 일본 야구 연맹이 영어 사용을 금지하는 방침을 내리면서, 오사카 타이거스는 '한신군'으로 구단명을 강제로 개칭해야 했다. 이는 시대적 상황이 프로 야구단 운영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1944

[와카바야시 다다시 활약으로 3번째 리그 우승]

와카바야시 다다시 감독 겸 선수의 맹활약으로 팀은 3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44년, 전시 상황으로 선수들이 징집되어 인원 부족에 시달리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와카바야시 다다시 감독 겸 선수가 3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5경기 중 31경기에 등판하여 팀을 이끌고 3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1945

[구단 활동 일시 중단]

'맹호'라는 이름으로 비공식 대회에 참가한 것을 마지막으로 구단의 활동이 중지되었다.

1945년 1월,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황 악화로 인해 대부분의 프로 야구단들이 활동을 중단했으며, 한신군 또한 비공식 정월 대회에 '맹호'라는 이름의 합동 팀으로 참가한 것을 마지막으로 팀 운영을 일시적으로 멈췄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야구계 복귀]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후 동서 대항전(비공식)을 통해 야구계에 복귀했다.

1945년 11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한신군은 동서 대항전이라는 비공식 대회를 통해 야구 활동을 재개하며 전후 재건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1946

[구단명 '오사카 타이거스'로 환원]

구단명을 '한신군'에서 '오사카 타이거스'로 다시 변경했다.

1946년 3월, 전쟁이 끝난 후, 영어 사용 금지 조치가 해제되면서 구단은 '한신군'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창단 당시의 이름인 '오사카 타이거스'로 다시 돌아왔다.

[고 쇼세이, 노히트 노런 달성]

고 쇼세이 투수가 쓰바사군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946년 6월 16일, 고 쇼세이 투수가 니시노미야에서 열린 쓰바사군과의 경기에서 11-0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947

[전후 첫 리그 우승 및 와카바야시 다다시 MVP]

와카바야시 다다시 감독 겸 투수의 활약에 힘입어 전후 첫이자 팀의 4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1947년, 와카바야시 다다시 감독 겸 투수가 MVP를 차지하는 맹활약과 '미스터 타이거스' 후지무라 후미오를 중심으로 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인기로 오사카 타이거스는 전쟁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팀 통산 4번째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1948

[가지오카 다다요시, 노히트 노런 달성]

가지오카 다다요시 투수가 난카이 호크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948년 8월 24일, 가지오카 다다요시 투수가 진구 구장에서 열린 난카이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3-0 승리를 이끄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949

[센트럴 리그 창설에 참여]

일본 프로 야구 양대 리그 출범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과 함께 '센트럴 리그'를 창설했다.

1949년 오프 시즌, 신구단 가맹 문제로 인해 일본 프로 야구 리그가 양분되면서 오사카 타이거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과 함께 '센트럴 리그'를 창설하는 주축 구단이 되었다. 이로써 현대 일본 프로 야구의 양대 리그 체제가 시작되었다.

1950

[팀 재건을 위한 2군 및 스카우트 제도 도입]

마쓰키 겐지로 감독 체제에서 2군 구성 및 스카우트 제도 도입 등 팀 재건을 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1950년, 센트럴 리그 출범 원년, 마쓰키 겐지로 감독은 마이니치 오리온스로 이탈한 주요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2군을 구성하고 스카우트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등 팀의 장기적인 세대교체와 재건을 위한 중요한 개혁을 추진했다.

1952

[효고현을 공식 연고지로 지정]

일본 프로 야구의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에 따라 효고현을 공식 연고지로 설정했다.

1952년, 일본 프로 야구의 프랜차이즈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되면서 오사카 타이거스는 홈 구장인 고시엔 구장이 위치한 효고현을 구단의 공식적인 연고지로 확정했다.

[사나다 시게오, 노히트 노런 달성]

사나다 시게오 투수가 히로시마 카프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952년 5월 7일, 사나다 시게오 투수가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카프와의 경기에서 12-0으로 팀 승리를 이끄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954

[마쓰키 겐지로 감독 퇴임 및 기시 이치로 감독 파격 기용]

마쓰키 겐지로 감독이 퇴임하고 프로 선수 경력이 없는 기시 이치로를 감독으로 파격 기용했다.

1954년, 팀의 세대교체를 이끌던 마쓰키 겐지로 감독이 퇴임한 후, 구단은 프로 선수 경력이 전혀 없는 기시 이치로를 후임 감독으로 임명하며 팬과 언론에 놀라움을 안겼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과의 대립으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1955

[후지무라 후미오 감독 대행 및 정규 감독 부임]

기시 이치로 감독이 휴양에 들어가고 후지무라 후미오가 감독 대행을 거쳐 정규 감독으로 부임했다.

1955년 5월 중순, 부진을 겪던 기시 이치로 감독의 휴양으로 후지무라 후미오가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시즌 3위로 이끌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정규 감독으로 정식 계약했다.

1956

[후지무라 후미오 감독 항명 사태]

후지무라 후미오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선수단의 항명 사태가 발생하여 2개월간 내홍을 겪었다.

1956년 시즌이 끝난 후, 팀 내부에서 후지무라 후미오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선수들의 항명 사태가 발생하며 구단 측과 심각한 대립을 겪었다. 이 내분은 약 2개월에 걸쳐 겨우 해결되었다.

1957

[선두 경쟁 후 2위, 다나카 요시오 감독 교체]

요미우리와 치열한 선두 경쟁 끝에 2위에 머물렀고, 시즌 종료 후 다나카 요시오가 감독으로 교체되었다.

1957년 시즌, 오사카 타이거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리그 선두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아쉽게 1경기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시즌 종료 후 구단은 다나카 요시오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며 팀에 변화를 꾀했다.

1958

[후지무라 후미오 은퇴 및 등번호 10번 영구 결번 지정]

후지무라 후미오 선수가 은퇴하며 그의 등번호 10번이 구단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미스터 타이거스'로 불리며 팀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후지무라 후미오가 1958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의 공로를 기려 등번호 10번은 한신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며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1961

['한신 타이거스'로 팀명 공식 변경]

회사명과 팀명을 '주식회사 한신 타이거스', '한신 타이거스'로 공식 변경했다.

1961년 4월 1일, 구단은 '주식회사 한신 타이거스'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팀명 또한 현재의 '한신 타이거스'로 공식 변경했다. 이는 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62

[양대 리그제 이후 첫 리그 우승 (팀 통산 5번째)]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 체제에서 '수비의 야구'로 양대 리그제 이후 첫 리그 우승(팀 통산 5번째)을 차지했다.

1962년, 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의 지휘 아래 고아먀, 무라야마 미노루 원투펀치와 요시다 요시오, 미야케 히데시, 가마다 미노루를 필두로 한 '수비의 야구'로 양대 리그 분할 이후 한신 타이거스 최초의 리그 우승이자 팀 통산 5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1964

[전력 보강으로 팀 통산 6번째 리그 우승]

에이스 투수와 4번 타자 트레이드 등 전력 보강을 통해 팀 통산 6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1964년, 한신 타이거스는 에이스 투수 고야마 마사아키와 마이니치의 4번 타자 야마우치 가즈히로를 트레이드하는 과감한 결정과 진 바크 영입 등을 통해 전력을 강화했다. 시즌 막판 9연승의 저력을 발휘하며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하여 팀 통산 6번째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1965

[진 바크, 노히트 노런 달성]

진 바크 투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965년 6월 28일, 진 바크 투수가 고시엔 구장에서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7-0 승리를 이끄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팀에 큰 기여를 했다.

1970

[무라야마 미노루 선수 겸임 감독 취임]

무라야마 미노루 선수가 선수 겸임 감독으로 취임하며 팀의 새로운 리더십을 맡았다.

1970년, 팀의 레전드 투수였던 무라야마 미노루가 선수 겸임 감독이라는 이례적인 형태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에나쓰 유타카와 다부치 고이치 등 황금 배터리를 중심으로 요미우리의 9연속 우승 시대를 견제하며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팀으로 주목받았다.

1972

[무라야마 미노루 은퇴 및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 대행]

무라야마 미노루가 선수 겸임 감독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으며, 가네다 마사야스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1972년, 무라야마 미노루는 감독 직함을 유지하면서 선수로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낸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 해 시즌에는 가네다 마사야스가 감독 대행직을 맡아 팀을 운영했다.

1973

[요미우리와의 우승 쟁탈전에서 아쉬운 준우승]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 체제에서 요미우리와 격렬한 우승 쟁탈전을 펼쳤으나 아쉽게 리그 우승을 놓쳤다.

1973년, 가네다 마사야스가 정식 감독으로 취임한 후, 한신 타이거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리그 9연패를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다. 남은 2경기 중 1승만 거두면 우승을 확정하는 상황까지 갔으나, 주니치와 홈 최종전에서 패하며 결국 요미우리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에나쓰 유타카, 연장 끝내기 홈런 동반 노히트 노런 달성 (세계 유일)]

에나쓰 유타카 투수가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연장 11회말 스스로 끝내기 홈런을 치며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세계 유일의 기록을 세웠다.

1973년 8월 30일, 에나쓰 유타카 투수가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11회말에 스스로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며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는 연장에서의 노히트 노런이자, 투수가 직접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하며 달성한 유일한 기록이다.

1974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 퇴임 및 요시다 요시오 감독 취임]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이 퇴임하고 요시다 요시오가 신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1974년 시즌을 끝으로 가네다 마사야스 감독이 퇴임했고, 구단의 레전드 유격수였던 요시다 요시오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의욕적으로 시즌을 맞이했지만 에이스 에나쓰의 부진 등으로 리그 3위에 그쳤다.

1975

[에이스 에나쓰 유타카 트레이드]

에이스 투수 에나쓰 유타카를 난카이 호크스로 트레이드했다.

1975년, 요시다 요시오 감독 취임 후, 팀은 에이스 투수였던 에나쓰 유타카를 에모토 다케노리, 시마노 이쿠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난카이 호크스로 보내는 큰 변화를 단행했다. 이는 팀 전력 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78

[구단 역사상 첫 리그 최하위 및 고토 쓰구오 감독 사임]

고토 쓰구오 감독 체제에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리그 최하위 성적을 기록했으며, 고토 감독은 사임했다.

1978년 시즌, 고토 쓰구오 감독이 이끄는 한신 타이거스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최하위인 41승 80패를 기록하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에 고토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에가와 사건'으로 고바야시 시게루 영입]

'에가와 사건'으로 불린 복잡한 교섭 끝에 에가와 스구루를 요미우리로 보내고 고바야시 시게루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1978년, 도쿄 6대학 야구 스타 에가와 스구루의 입단 문제를 둘러싸고 요미우리와 대립했던 이른바 '공백의 하루'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야구 기구 커미셔너의 중재로 에가와를 요미우리로 보내는 조건으로 요미우리의 에이스 고바야시 시게루를 영입하는 역사적인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구단 사장 교체 및 핵심 선수 대규모 트레이드]

구단 사장이 교체되고 다부치 고이치 등 핵심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는 대규모 개혁을 단행했다.

1978년 시즌 후 스토브리그에서 구단 사장이 교체되었고, 신임 사장은 팀의 체질 개선을 위해 다부치 고이치와 후루사와 겐지를 세이부 라이온스로 트레이드하고, 다케노우치 마사시 등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추진했다.

1979

[돈 블레이저 감독 취임]

돈 블레이저 감독이 취임하며 팀을 이끌게 되었다.

1979년, 대규모 선수단 개편 이후 돈 블레이저가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며 팀의 재건을 모색했다. 가케후 마사유키의 48홈런과 고바야시 시게루의 22승 활약에도 불구하고 리그 4위에 그쳤다.

1980

[돈 블레이저 감독 사임 및 나카니시 후토시 감독 취임]

신인 선수 기용 문제로 돈 블레이저 감독이 시즌 도중 사임하고 나카니시 후토시가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1980년, 신인 오카다 아키노부의 기용을 둘러싼 갈등으로 돈 블레이저 감독이 시즌 도중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나카니시 후토시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팀은 그 해 리그 5위에 머물렀다.

1982

[안도 모토오 감독 부임과 중위권 성적]

안도 모토오가 감독으로 부임하여 2년 연속 3위, 이후 2년 연속 4위를 기록하며 중위권에 머물렀다.

1982년부터 안도 모토오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이끌었지만, 주니치와 요미우리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며 1982년과 1983년 2년 연속 3위, 그리고 1983년과 1984년에는 2년 연속 4위를 기록하는 등 우승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중위권에 머물렀다.

1985

[요시다 요시오 감독 복귀 및 '제2차 다이너마이트 타선' 구축]

요시다 요시오 감독이 복귀하여 '제2차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축하며 팀의 전력을 크게 강화했다.

1985년, 요시다가 8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하며 1번 마유미, 3번 랜디 바스, 4번 가케후, 5번 오카다를 주축으로 하는 강력한 타선, 일명 '제2차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성했다. 이 타선은 시즌 총 219홈런을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일본항공 추락 사고로 나카노 하지무 구단 사장 사망]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당시 구단 사장이었던 나카노 하지무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85년 8월 12일 발생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당시 한신 타이거스의 구단 사장이었던 나카노 하지무가 급서했다. 이 비극적인 소식에 요시다 감독과 선수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의 영전에 우승을 맹세하며 팀의 결속을 다졌다.

[21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21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1985년 10월 16일, 강력한 타선과 불펜진의 활약으로 선두를 지키던 한신 타이거스는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접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21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구단 창단 이래 첫 일본 시리즈 우승]

일본 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스를 꺾고 구단 창단 이래 최초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85년 11월 2일, 센트럴 리그 우승에 이어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에서 열린 일본 시리즈에서 세이부를 4승 2패로 물리치고 구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한신 타이거스의 숙원이자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해소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1986

[랜디 바스 일본 신기록 맹활약]

랜디 바스가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맹활약했으나 팀은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3위에 그쳤다.

1986년, 랜디 바스는 시즌 타율 3할 8푼 9리, 장타율 7할 7푼 7리, 7경기 연속 홈런, 13경기 연속 타점 등 수많은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가케후와 이케다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이탈로 팀은 결국 리그 3위에 머물렀다.

1987

[구단 역사상 최저 승률 기록 및 요시다 감독 사임]

구단 역사상 최저 승률(.331)을 기록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고, 요시다 감독이 사임했다.

1987년, 팀은 투수진 붕괴와 주축 타자들의 부진이 겹치면서 구단 역사상 최저 승률인 3할 3푼 1리를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에 요시다 요시오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요시다 요시오 은퇴 및 등번호 23번 영구 결번 지정]

요시다 요시오 선수가 은퇴하며 그의 등번호 23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1987년,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 유격수이자 감독으로 활약했던 요시다 요시오가 은퇴했다. 그의 빛나는 업적을 기려 등번호 23번은 구단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팀의 역사와 함께 기억되게 되었다.

1988

[무라야마 미노루 감독 복귀 후 2년 연속 최하위]

무라야마 미노루가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랜디 바스의 귀국과 주축 선수들의 부진으로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1988년, 무라야마 미노루가 다시 감독으로 부임하여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며 세대교체를 시도했으나, 랜디 바스의 귀국, 용병 루퍼트 존스의 부상, 가케후의 은퇴가 겹치며 팀은 2년 연속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부진에 빠졌다.

1989

[무라야마 감독 사임]

용병 세실 필더의 활약으로 최하위는 면했지만, 무라야마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1989년, 세실 필더의 활약으로 3년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는 면했지만, 리그 5위라는 성적에 감독 책임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라야마 미노루 감독은 결국 사임하게 되었다.

1990

[나카무라 가쓰히로 감독 취임 및 최하위 기록]

나카무라 가쓰히로 감독이 취임했으나 투수진 붕괴로 2년 만에 다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1990년, 나카무라 가쓰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하여 래리 패리쉬 등 타선의 활약을 기대했으나, 에이스 투수의 부상 이탈과 전반적인 투수진의 붕괴로 팀은 2년 만에 다시 리그 최하위로 추락했다.

1991

[시즌 초 대규모 연패 및 2년 연속 리그 최하위]

시즌 초반 대규모 연패를 기록하며 극심한 부진을 겪고 2년 연속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1991년 시즌, 한신 타이거스는 개막 5연패, 6월 10연패 등 극심한 부진을 겪으며 전반기에 15승 40패를 기록했다. 신예 투수들의 활약으로 반전을 꾀했지만 전반기의 부진을 만회하지 못하고 2년 연속 리그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1992

['가메신 피버' 돌풍과 극적인 선두 경쟁]

'가메신 피버' 돌풍과 투수진의 활약으로 야쿠르트와 선두 경쟁 끝에 공동 2위를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92년, 가메야마 쓰토무와 신조 쓰요시의 '가메신 피버'와 함께 노다 고지 등을 필두로 한 투수진이 맹활약하며 한신 타이거스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치열한 선두 싸움을 벌였다.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공동 2위를 기록하며 암흑기를 벗어나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유후네 도시로, 노히트 노런 달성]

유후네 도시로 투수가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992년 6월 14일, 유후네 도시로 투수가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6-0 승리를 이끄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팀의 상승세에 기여했다.

1993

[용병 이탈, 투수진 붕괴, FA 이적으로 전력 손실]

용병 짐 파쵸렉의 이탈, 투수진 붕괴로 4위 기록, 마쓰나가 히로미가 FA로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하며 전력 손실이 발생했다.

1993년, 외국 용병 문제를 둘러싸고 타선의 한 축을 맡고 있던 짐 파쵸렉이 팀을 떠나고 지난해 전성기를 찍은 투수진까지 붕괴되며 결국 4위로 마무리 짓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노다 고지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마쓰나가 히로미가 FA를 선언하며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하여 팀의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다.

1995

[구단 창립 60주년, 구단 역사상 최악의 84패 기록]

구단 창립 60주년에 나카무라 감독 사임, 후지타 다이라 감독 대행 체제에서 구단 역사상 최악의 84패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1995년, 구단 창립 60주년을 맞았지만 리그 개막 이후 와다, 이시미네 등 타선의 부진으로 좀처럼 성적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 결국 나카무라 가쓰히로 감독이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임하고 후지타 다이라가 감독 대행을 맡았으나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인 84패를 기록하며 4년 만에 최하위 성적인 6위를 기록했다.

1996

[후지타 다이라 감독 사임, 2년 연속 최하위]

후지타 다이라가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며 결국 사임했다.

1996년, 후지타 다이라가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여 부상으로 이탈한 가메야마를 대신해 히야마 신지로가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5월 기준으로 리그 선두와 15경기차의 성적을 기록하며 페넌트레이스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등 결국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결국 후지타 감독도 팀을 구하지 못한 채 사임을 하게 됐다.

1997

[요시다 요시오 3번째 감독 취임 후 리그 5위]

요시다 요시오가 3번째로 감독에 취임했으나 주력 선수들의 부진으로 리그 5위에 머물렀다.

1997년, 요시다 요시오가 자신의 3번째로 감독에 취임했다. 중반까지 A클래스를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주력으로 기대하고 있던 마이크 그린웰이 돌연 귀국한데다가 신조 쓰요시 등의 주력 선수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결국 리그 5위에 그쳤다.

1998

[가와지리 데쓰로 노히트 노런 달성 및 팀 12연패로 최하위, 요시다 감독 사임]

가와지리 데쓰로 투수가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으나, 팀은 12연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고 요시다 감독이 사임했다.

1998년 5월 26일, 신인 쓰보이 도모치카가 분투하고 가와지리 데쓰로가 포수 야노와의 호흡을 맞춰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등 투수진이 전반적으로 힘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타선이 살아나지 못하면서 8월에 구단으로서는 최악의 기록인 12연패를 기록, 2년 만에 다시 최하위를 기록하며 요시다 감독은 사임했다.

1999

[노무라 가쓰야 감독 취임 후 2년 연속 최하위]

노무라 가쓰야 감독이 취임했으나 2년 연속 12연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1999년, 전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이었던 노무라 가쓰야 감독이 새로 취임함과 동시에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사사키 마코토를 영입하는 등 6월에 잠시 선두 자리에 올라섰으나, 이후 선발 투수진의 부진이 이어지며 서서히 페이스를 잃었고 9월에는 2년 연속으로 12연패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에서의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2000

[선수 보강에도 3년 연속 리그 최하위]

선수진 보강에도 불구하고 선발 투수진의 부진으로 3년 연속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2000년, 야쿠르트로부터 노무라 가쓰노리를 영입하는 등 선수진을 보강하면서 4월에 선두로 올라선데 이어 이후에도 다양한 선수들이 보강되면서 리그 우승을 노렸지만 끝내 선발 투수진이 다시 부진에 빠지며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2001

[구단 최초 4년 연속 최하위 및 노무라 감독 사임]

구단 창설 이래 최초로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고, 노무라 감독은 부진한 성적과 부인의 탈세 혐의로 팀을 떠났다.

2001년, 이가와 게이가 평균자책점 부문 2위를 기록하며 활약하고 하마나카 오사무와 후지모토 아쓰시 등이 대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타자 용병들의 부진과 이가와를 제외한 선발진 또한 부진하면서 구단 창설 이래 처음으로 4년 연속 최하위 성적을 기록했다. 노무라 감독은 팀에 더욱 적극적인 선수 영입을 요청했으나 구단 측이 이를 거부했고, 성적 부진과 함께 부인의 탈세 혐의로 인한 책임을 지고 12월 5일 팀을 떠났다.

2002

[호시노 센이치 감독 취임 및 최하위 기록 탈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취임하여 대규모 선수 영입을 단행했고, 4위로 마감하며 4년 연속 최하위 기록을 끊었다.

2002년, 주니치 감독을 역임했던 호시노 센이치가 한신 감독으로 취임하며 오릭스로부터 조지 아리아스를 영입했고, 히로시마로부터 FA로 가네모토 도모아키, 닛폰햄으로부터 시모야나기 쓰요시 등을 영입하는 등 대규모 선수 영입을 통해 팀을 강화했다. 시즌 초 7연승으로 좋은 출발을 보였고, 비록 요미우리에게 밀렸지만 리그 4위를 기록하며 구단 최초의 4년 연속 최하위 기록을 끊는 데 성공했다.

2003

[2003년 일본 시리즈 준우승]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우승으로 마감했다.

2003년 일본 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는 퍼시픽 리그 우승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다. 양팀의 홈 구장에서만 승리가 나온 이 시리즈는 '안방 호랑이 시리즈'로 불렸으며, 또한 29년 만에 처음으로 TV 도쿄 계열에서 일본 시리즈 중계가 방송되었지만, 아쉽게 3승 4패로 우승에는 실패했다.

[18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 (맹호의 부활)]

호시노 센이치 감독 체제에서 18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맹호의 부활'을 알렸다.

2003년 시즌 개막 이후부터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센트럴 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7월 8일에 우승 매직 넘버를 점등시켰다. 9월 15일, 18년 만에 감격적인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맹호의 부활'을 알렸지만, 일본 시리즈에서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져 아쉽게 준우승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 퇴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나 시니어 디렉터가 되었다.

2003년 일본 시리즈 종료 후, 18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맹호의 부활'을 알렸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감독직에서 퇴임하여 시니어 디렉터가 되었다. 그와 함께 팀을 이끌었던 코칭 스태프 중 일부는 퇴단했다.

2004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취임 및 리그 4위]

오카다 아키노부가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주력 선수들의 부진과 이탈로 리그 4위에 그쳤다.

2004년, 오카다 아키노부가 감독으로 취임하며 팀을 이끌었으나, 주력 선수들의 잇따른 부진과 안도 유야, 제프 윌리엄스의 아테네 올림픽 차출, 용병들의 예상 밖 부진 등으로 전년도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리그 4위에 머물렀다. 시즌 종료 후 야부 게이이치는 메이저 리그로 이적했다.

[이가와 게이, 노히트 노런 달성]

이가와 게이 투수가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2004년 10월 4일, 이가와 게이 투수가 히로시마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이끄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개인적인 위업을 달성했다.

2005

['JFK' 불펜진 활약으로 팀 통산 7번째 리그 우승]

'JFK' 불펜진의 활약으로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며 팀 통산 7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2005년,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규지, 구보타 도모유키로 구성된 'JFK' 불펜진과 앤디 시츠, 가네모토, 이마오카 마코토의 클린업이 안정된 성적을 기록하며 시너지를 냈다.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압도적인 경기로 팀 통산 7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일본 프로 야구 최초 연간 300만 관중 돌파]

연간 관중 수 공식 집계 시작 이후,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연간 300만 명 이상 관중을 동원하는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부터 일본 프로 야구에서 연간 관중 수 공식 집계를 실시하고 있는데, 한신 타이거스는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연간 30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일본 프로 야구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효고현은 물론 인접한 오사카부에서도 오릭스 버펄로스를 훨씬 뛰어넘는 인기를 얻었다.

[2005년 일본 시리즈 준우승]

일본 시리즈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에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5년 센트럴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퍼시픽 리그 우승팀 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4연패를 당하며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무르는 아쉬운 결과를 기록했다.

2006

[구단 최초 2년 연속 80승 달성]

주니치와 치열한 우승 경쟁 끝에 리그 2위를 기록하며 구단 최초로 2년 연속 80승을 달성했다.

2006년 시즌, 주니치 드래건스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며 시즌 중반 9연승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아쉽게 리그 2위로 마쳤다. 하지만 1985년 ~ 1986년 이래 20년 만에 2년 연속 A클래스에 진입했으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80승을 달성하며 강팀의 면모를 유지했다.

2007

[클라이맥스 시리즈 첫 진출 및 1스테이지 패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첫 진출했으나 제1 스테이지에서 주니치에 패배하며 시즌을 마쳤다.

2007년 시즌을 리그 3위로 마친 한신 타이거스는 그 해 새롭게 도입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제1 스테이지에서 리그 2위 주니치 드래건스와 대결하여 2연패를 기록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2008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사임 및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 취임]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13경기차 역전패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마유미 아키노부가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8년, 센트럴 리그 역사상 최악의 13경기차 역전패로 우승 달성에 실패한 후,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1스테이지에서도 2년 연속 패배한 뒤 정식 사임했으며, 마유미 아키노부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이끌게 되었다.

[팀 통산 4500승 달성 (일본 프로 야구 두 번째)]

요미우리전에서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두 번째로 팀 통산 4500승을 달성했다.

2008년 5월 6일, 한신 타이거스는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두 번째로 팀 통산 4500승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구단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정표였다.

[요미우리에 13경기차 선두 달성]

2위 요미우리에게 최대 13경기차를 벌리며 압도적인 선두를 달렸다.

2008년 시즌 초반부터 선두를 질주하던 한신 타이거스는 7월 8일 2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최대 13경기차까지 앞서며 압도적인 리그 선두를 달렸고, 같은 달 22일에는 우승 매직 넘버를 점등시키며 순조로운 시즌을 보내는 듯했다.

[센트럴 리그 역사상 최악의 13경기차 역전 우승 허용]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3경기차를 역전당하며 리그 우승을 놓치는 센트럴 리그 역사상 최악의 역전패 기록을 세웠다.

2008년 10월 8일, 한신 타이거스는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하며 7월 8일 13경기차까지 앞서던 리그 우승을 결국 빼앗겼다. 이는 센트럴 리그 역사상 가장 큰 경기차를 역전당한 최악의 기록으로 남아 팀과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2009

[아카호시 노리히로 은퇴 및 53번 결번 취급]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은퇴하고 그의 등번호 53번이 결번 취급되었으며, 이마오카와 제프 윌리엄스 등 주요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2009년 시즌 후, 팀의 주축 선수였던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은퇴를 선언했으며 그의 등번호 53번은 구단 공로를 인정받아 결번으로 취급되었다. 이외에도 이마오카 마코토, 제프 윌리엄스 등 여러 선수들이 팀을 떠나며 선수단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10

[한 경기 최다 득점 22점 기록]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구단 역사상 한 경기 최다 득점인 22득점을 기록했다.

2010년 8월 2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한신 타이거스는 폭발적인 타선을 앞세워 무려 22득점을 올리며 구단 역사상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리그 2위로 시즌 마감]

매직 넘버가 점등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주니치에게 우승을 내주고 리그 2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0년 시즌, 한신 타이거스는 9월 26일 매직 넘버 8이 점등될 정도로 우승에 근접했으나, 요미우리와 요코하마전에서의 연이은 패배로 자력 우승에 실패했다. 결국 10월 1일 히로시마전 패배로 주니치 드래건스의 리그 우승이 확정되며 아쉽게 리그 2위에 그쳤다.

2011

[마유미 감독 사임 및 와다 유타카 감독 취임]

리그 4위를 기록하며 A클래스 진입에 실패했고, 마유미 감독이 사임했으며 와다 유타카가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1년 시즌, 투수진의 난조와 타선의 부진으로 마유미 감독은 여러 노력을 했으나 결국 리그 4위로 A클래스 진입에 실패했다. 이에 책임을 지고 마유미 감독은 사임했으며, 1군 타격 코치였던 와다 유타카가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 해 시모야나기 쓰요시가 퇴단했다.

[18년 만의 고시엔 개막전 및 40년 만의 고시엔 개막전 승리]

고시엔 구장에서 18년 만의 개막전이자, 40년 만의 고시엔 개막전 승리를 기록했다.

2011년 4월 12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개막일이 변경된 시즌, 한신 타이거스는 고시엔 구장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개막전을 치렀다. 이는 1993년 이후 18년 만에 고시엔에서 열린 개막전이었으며, 팀은 승리하며 1971년 이후 40년 만에 고시엔 개막전 승리를 기록했다.

2012

[리그 5위 기록 및 가네모토 도모아키 은퇴]

심각한 타격 부진과 팀 내 불화로 리그 5위를 기록했고, 가네모토 도모아키 선수가 은퇴했다.

2012년 시즌은 심각한 타격 부진과 팀 내 불화로 얼룩진 한 해였다. 팀 타율, 타점, 득점 모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리그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은퇴를 선언하고 은퇴식을 통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13

[후지나미 신타로, 고졸 신인 46년 만 10승 투수 기록]

후지나미 신타로가 센트럴 리그 역사상 5번째이자 46년 만의 고졸 신인 10승 투수가 되었다.

2013년 8월 31일, 후지나미 신타로가 고시엔 구장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센트럴 리그 역사상 다섯 번째, 1967년 에나쓰 유타카 이후 46년 만에 고졸 신인 투수로서 10승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3년 만의 위닝 시즌 및 리그 2위 확정]

3년 만에 위닝 시즌을 기록하고 리그 2위를 확정 지었다.

2013년 10월 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7-3으로 승리하며 3년 만에 위닝 시즌(승률 5할 이상)을 달성하고 센트럴 리그 2위를 확정 지었다. 하지만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펼쳤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연패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쳐야 했다.

2014

[한국인 마무리 투수 오승환 영입]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2014년, 한신 타이거스는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강력한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영입하여 불펜진을 강화했다. 오승환은 일본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중요한 전력이 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첫 돌파]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를 돌파하며 도입 이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2014년, 한신 타이거스는 리그 2위로 2년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여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1승 1무를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도입 이래 처음으로 이 단계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2014년 일본 시리즈 준우승]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 1승 4패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4년, 9년 만에 진출한 일본 시리즈에서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총 5차례의 접전을 펼쳤으나, 아쉽게 1승 4패로 패배하며 준우승으로 2014년 시즌을 마무리했다.

[요미우리 4연승 스윕, 9년 만에 일본 시리즈 진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4연승을 거두고 9년 만에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2014년,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압도적인 4연승을 기록하며 2005년 리그 우승 이후 9년 만에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 짓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팀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결과였다.

2023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복귀]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다시 팀을 맡아 복귀했다.

2023년, 2008년 이후 팀을 떠났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다시 한신 타이거스의 지휘봉을 잡고 팀의 재도약을 이끌게 되었다.

[2023년 센트럴 리그 우승]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23년,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의 복귀와 함께 한신 타이거스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일본 정상에 올랐다.

2023년, 센트럴 리그 우승에 이어 일본 시리즈에서도 파죽지세의 기세를 이어가며 대망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1985년 이후 38년 만에 달성한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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