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버 피노크

지휘자, 하프시코드 연주자, 음악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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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7- 18: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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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피노크는 현대 고음악 부흥 운동을 이끈 상징적인 인물로, 원전 악기 연주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입니다. 1972년 '잉글리시 콘서트'를 창단하여 고전 음악의 본질적인 생동감을 복원했으며, 하프시코드 연주자로서도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과거의 음악을 단순한 유물이 아닌, 현재에 살아 숨 쉬는 강렬한 서사로 재탄생시킨 위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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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음악적 운명의 시작]

영국 켄터베리에서 구세군 구역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하며 예술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트레버 피노크는 켄터베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케네스 알프레드 피노크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켄터베리에서 구세군 밴드를 운영하며 가족의 음악적 전통을 세웠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환경은 그가 훗날 고음악에 헌신하게 된 중요한 정서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1954

[성가대원의 삶]

켄터베리 대성당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대성당의 장엄한 울림 속에서 클래식 음악의 기초를 체득했습니다.

그는 켄터베리 대성당 합창학교(Choir House)에서 생활하며 성가대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 대성당의 풍부한 음향과 종교 음악에 노출된 경험이 그의 음악적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성가대 활동과 병행하며 킹스 스쿨(The King's School)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1960

[피아노와 오르간 전공]

킹스 스쿨 재학 시절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에 몰두하며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이 시기에 습득한 건반 악기에 대한 이해는 훗날 하프시코드 연주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 내에서 촉망받는 건반 악기 연주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르간을 공부하며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거장들의 작품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관심은 그가 훗날 원전 악기 연주자로 전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3

[왕립 음악원 입학]

런던 왕립 음악원(RCM)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전문적인 음악 교육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복수 전공하며 고음악에 대한 학구적인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는 왕립 음악원에서 오르간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랄프 다운스(Ralph Downes)와 밀리센트 실버(Millicent Silver)에게 사사하며 실력을 연마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치열한 수련 기간은 그가 국제적인 연주자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65

[음악원 최고의 상 수상]

재학 중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하프시코드 부문과 연주자 부문에서 주요 상을 휩쓸었습니다. 이는 그가 당대 최고의 신예 연주자임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하프시코드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연주 실기 능력을 인정받아 전문 연주자에게 수여되는 특별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교수진은 그의 탁월한 해석력과 건반 악기 장악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1966

[트리오 팀의 첫 탄생]

갈리아드 하프시코드 트리오를 창단하며 실내악 연주자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동료 음악가들과 협력하며 앙상블 음악의 묘미를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트리오는 플루트 연주자 스티븐 프레스턴, 첼로 연주자 안토니 플리스와 함께 결성되었습니다.
당시로는 드물게 하프시코드를 중심으로 한 앙상블을 시도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팀 활동을 통해 피노크는 지휘자로서의 리더십과 앙상블 운영 능력을 키웠습니다.

1968

[전설적인 솔로 데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하프시코드 솔로 데뷔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 공연은 그를 영국 음악계의 주목받는 하프시코디스트로 각인시켰습니다.

그는 퍼셀 룸(Purcell Room)에서 첫 솔로 리사이틀을 개최했습니다.
관객과 평단은 그의 명료한 타건과 바로크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독주자로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

[거장과의 만남과 협업]

네빌 마리너가 이끄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에 합류했습니다. 거장들의 지휘 아래 현대 악기 앙상블의 정교함을 경험하며 음악적 시야를 넓혔습니다.

피노크는 하프시코드 연주자로서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협연했습니다.
이 앙상블과의 협업을 통해 그는 오케스트라가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앙상블을 익혔습니다.
동시에 그는 현대 악기가 가진 한계를 절감하고 원전 악기에 대한 갈망을 키워갔습니다.

1972

[잉글리시 콘서트 창단]

시대 악기를 사용하는 전문 연주 단체인 '잉글리시 콘서트'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클래식 음악계에 원전 연주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잉글리시 콘서트는 처음에 소규모 실내악단으로 시작하여 점차 규모를 확장했습니다.
그는 작곡가들이 의도했던 당시의 소리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시대 악기 사용을 고집했습니다.
이 단체는 창단 직후부터 독보적인 실력으로 고음악계의 중심에 섰습니다.

1973

[첫 번째 음반 녹음]

잉글리시 콘서트와 함께 첫 번째 음반을 녹음하며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C.P.E. 바흐의 작품을 담은 이 음반은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신생 레이블이었던 CRD 레이블을 통해 첫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피노크와 잉글리시 콘서트의 연주는 기존의 무거운 연주 관행에서 벗어나 경쾌하고 투명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성공적인 데뷔 음반은 그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975

[페스티벌의 주역]

잉글리시 바흐 페스티벌에서 지휘자이자 연주자로 참여하여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바로크 음악 해석의 정수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는 이 페스티벌에서 잉글리시 콘서트를 이끌고 다양한 바로크 작품을 공연했습니다.
특히 바로크 댄스와 음악을 결합한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여 주목받았습니다.
대중은 그가 제시하는 생동감 넘치는 바로크 음악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1978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계약]

세계 최고의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의 '아르히프' 레이블과 독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피노크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그와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아르히프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그의 음반들은 고음악 음반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 계약은 잉글리시 콘서트가 세계 최고의 원전 악기 오케스트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

[헨델 메시아의 재발견]

헨델의 '메시아'를 원전 악기로 녹음하여 합창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기존의 거대한 편성을 벗어난 투명하고 섬세한 해석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헨델 당시의 악기 구성과 연주 스타일을 철저히 고증하여 녹음했습니다.
이 음반은 웅장함보다는 정교함과 활력을 강조하여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이 녹음은 헨델 메시아 연주의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82

[비발디 사계의 대흥행]

비발디의 '사계'를 녹음하여 고음악 음반 역사상 유례없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음반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피노크의 비발디 사계 녹음은 생동감 넘치는 리듬과 원전 악기 특유의 날카로운 음색이 특징입니다.
이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장이 팔려나가며 클래식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습니다.
그는 이 한 장의 음반으로 고음악을 대중 문화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1983

[프롬스 무대 데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축제인 '더 프롬스' 무대에 처음으로 올랐습니다. 런던 로열 앨버트 홀을 가득 채운 관중들에게 원전 악기의 매력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잉글리시 콘서트를 이끌고 프롬스 무대에서 바흐의 작품들을 연주했습니다.
거대한 홀의 음향을 시대 악기로 채우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어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프롬스의 단골 손님이 되어 고음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1984

[바흐 서거 기념 녹음]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전곡을 녹음하며 바흐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정교하고 우아한 피노크만의 스타일이 바흐의 선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음반은 바흐 서거 234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는 바흐의 춤곡 리듬을 완벽하게 재현하며 학구적이면서도 흥겨운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이 녹음은 당시 고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88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헨델의 '줄리오 체자레'를 지휘하며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이는 그가 콘서트 지휘를 넘어 오페라 지휘자로도 인정받은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시도한 최초의 대규모 바로크 오페라 프로덕션 중 하나였습니다.
피노크는 성악진과 오케스트라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며 극적인 서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그는 세계 주요 오페라 하우스로부터 지휘 요청을 받는 인기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1989

[하이든 질풍노도 프로젝트]

하이든의 소위 '질풍노도' 교향곡들을 녹음하며 초기 고전주의 음악 탐구를 본격화했습니다. 하이든 특유의 파격과 열정을 원전 악기로 생생하게 살려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하이든의 중기 교향곡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대규모 녹음 작업이었습니다.
피노크는 하이든의 음악에 내재된 긴장감과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여 표현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하이든 교향곡 해석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0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녹음]

모차르트의 교향곡 전곡을 시대 악기로 녹음하는 방대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모차르트 음악의 본래 빛깔을 찾아가는 거대한 음악적 여정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잉글리시 콘서트와 아르히프 레이블이 협력한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초기 교향곡부터 후기 걸작까지를 일관된 철학으로 녹음했습니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곡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1991

[캐나다 국립 예술 센터 부임]

캐나다 국립 예술 센터(NAC)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 및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습니다. 현대 악기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그의 음악적 영역을 북미로 확장했습니다.

그는 현대 악기를 사용하는 오케스트라에 시대 악기 연주의 아티큘레이션과 투명함을 이식했습니다.
이 시기 NAC 오케스트라는 그의 지도 아래 사운드의 정교함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그는 캐나다 음악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1992

[대영제국 훈장 수훈]

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CBE)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영국 국가 차원에서 그의 음악적 성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버킹엄 궁전에서 훈장을 수여받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평단은 그가 고음악을 영국 문화의 핵심 자산으로 키워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영국 음악계의 원로이자 리더로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9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참여]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잉글리시 콘서트와 함께 완벽한 앙상블을 뽐냈습니다.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열린 이 축제에서 그의 모차르트 해석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관객들은 그가 보여준 모차르트 음악의 경쾌하고도 깊이 있는 해석에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공연은 그가 유럽 고음악의 정점에 서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1995

[캐나다에서의 오페라 제작]

캐나다 NAC에서 헨델의 오페라 '올란도'를 제작하고 지휘했습니다. 북미 관객들에게 정통 바로크 오페라의 정수를 선보이며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 공연은 혁신적인 연출과 피노크의 섬세한 지휘가 만나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캐나다 오페라 팬들은 그가 보여준 헨델 음악의 드라마틱한 매력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캐나다를 넘어 북미 전역에서 바로크 오페라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96

[NAC 오케스트라 퇴임]

성공적인 5년의 임기를 마치고 캐나다 국립 예술 센터 오케스트라를 떠났습니다. 퇴임 후에도 그는 명예 지휘자로서 이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임기 동안 NAC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퇴임 공연에서 감동적인 연설과 연주로 캐나다 관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 그는 다시 유럽을 중심으로 한 고음악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

[프랑스 문화공로훈장 수훈]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Offic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프랑스 바로크 음악 보급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한 것입니다.

피노크는 라모와 쿠프랭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연주하고 녹음해왔습니다.
프랑스 문화계는 그의 세련된 해석이 프랑스 음악의 가치를 높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훈장은 그가 국가를 초월한 유럽의 음악 거장임을 상징하는 상이었습니다.

2003

[잉글리시 콘서트 리더 교체]

30년 넘게 이끌어온 잉글리시 콘서트의 예술 감독직을 앤드류 맨지에게 넘겼습니다. 이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단체를 떠나 새로운 개인적 도전을 시작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단체의 발전과 세대 교체를 위해 용퇴를 결정했습니다.
퇴임 공연은 그가 창단한 단체와 함께한 수많은 시간을 기리는 감동적인 무대로 꾸며졌습니다.
이후 그는 자유로운 객원 지휘자이자 독주자로서 제2의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2004

[라모 솔로 녹음 발매]

하프시코드 솔로 연주자로 돌아와 장-필립 라모의 건반 작품집을 녹음했습니다. 거장의 원숙미가 느껴지는 이 음반은 그가 여전히 최고의 연주자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의 지휘 경험을 바탕으로 하프시코드 독주곡에 깊은 통찰력을 담았습니다.
라모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선율이 그의 손끝에서 우아하게 재현되었습니다.
이 음반은 하프시코드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필청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6

[유럽 브란덴부르크 앙상블]

바흐 탄생 221주년을 기념하여 '유럽 브란덴부르크 앙상블'을 임시 결성했습니다. 유럽 전역의 뛰어난 연주자들을 모아 바흐 음악의 정수를 다시 한번 탐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젊은 연주자들과 노련한 거장이 만나 폭발적인 에너지를 냈습니다.
이 앙상블의 결성은 고음악계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이벤트였습니다.

2007

[바흐 브란덴부르크 녹음]

새로운 앙상블과 함께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을 다시 녹음했습니다. 과거 자신의 녹음을 뛰어넘는 깊이와 생동감으로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음반은 아비에(Avie)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잉글리시 콘서트 시절의 해석보다 더 자유롭고 즉흥적인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평단은 이 녹음을 두고 '바흐 연주의 살아있는 전설이 쓴 새로운 교과서'라고 평가했습니다.

2008

[그라모폰 어워드 수상]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녹음으로 클래식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그라모폰 어워드' 바로크 기악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음악적 건재함을 전 세계에 알린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라모폰 어워드 심사위원단은 이 음반의 신선함과 완벽한 앙상블에 만장일치로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고음악의 미래를 이끌어갈 후배 연주자들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이 수상으로 그는 다시 한번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 인물로 우뚝 섰습니다.

2011

[라이프치히 바흐 메달 수여]

바흐 음악 해석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 라이프치히 시장으로부터 '바흐 메달'을 수여받았습니다. 바흐의 도시에서 수여하는 이 메달은 바흐 연주자에게 최고의 영예입니다.

시상식은 바흐가 활동했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라이프치히 바흐 아카이브는 피노크의 연주가 바흐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이 메달을 받으며 바흐 음악에 대한 영원한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2013

[왕립 음악원 명예 박사]

자신의 모교인 런던 왕립 음악원(RAM)으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후학 양성과 음악계 발전에 기여한 그의 일생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학위 수여식에서 그는 졸업생들에게 음악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을 강조하는 축사를 전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RAM의 객원 교수로 활동하며 젊은 하프시코디스트들을 직접 지도해왔습니다.
모교에서 받은 이 명예는 그에게 어떤 국제적인 상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2015

[위그모어 홀 상주 예술가]

런던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위그모어 홀의 상주 예술가로 선정되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실내악과 독주를 넘나들며 관객들과 더 가까이 소통했습니다.

상주 기간 동안 그는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특히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과시했습니다.
위그모어 홀의 친밀한 공간에서 펼쳐진 그의 연주는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2016

[70세 생일 기념 공연]

70세 생일을 맞아 전 세계 음악 동료들이 모인 가운데 특별 기념 공연을 가졌습니다. 여전히 정정한 연주력과 열정으로 청중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날 공연에는 그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잉글리시 콘서트'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음악계는 그를 '현대 고음악의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라 칭송하며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이 무대에서 앞으로도 음악을 통한 탐험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19

[새로운 하이든 프로젝트]

하이든의 후기 교향곡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대규모 콘서트 시리즈를 진행했습니다. 노년의 거장이 바라보는 하이든은 더 깊고 유머러스한 매력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하이든이 런던에서 거둔 성공을 재현하기 위해 당시의 연주 관습을 재해석했습니다.
청중들은 피노크의 지휘 아래서 하이든의 음악이 가진 현대적인 활기를 발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가 고전주의 음악 해석에서도 여전히 선구자임을 보여주었습니다.

2020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을 녹음하여 전 세계 음악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하프시코드 연주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 음반은 평단의 만점 행렬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그는 바흐의 내면적인 세계에 깊이 침잠하여 이 음반을 완성했습니다.
모든 곡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담긴 그의 연주는 '영혼을 치유하는 소리'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녹음은 디지털 음원 차트에서도 클래식 부문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021

[왕립 음악원 협업 프로젝트]

왕립 음악원 학생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대규모 바흐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미래의 거장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비법과 철학을 전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학생들과 수개월간 리허설을 진행하며 곡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지도했습니다.
공연 후 학생들은 피노크의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이는 교육적으로도 큰 성과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실황 녹음은 학교 아카이브에 기록되어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2022

[유럽 투어의 재개]

팬데믹 이후 첫 유럽 대규모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파리, 베를린, 빈 등 주요 도시의 관객들을 만나며 무대의 활력을 다시 되찾았습니다.

그는 각 도시의 권위 있는 홀에서 바로크와 고전주의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관객들은 거장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하며 모든 공연장에서 전석 매진으로 화답했습니다.
이 투어를 통해 그는 여전히 전 세계 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음악가임을 증명했습니다.

2023

[음악 인생 60주년]

데뷔 이후 6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의 공로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수많은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그의 헌신에 존경을 표했습니다.

런던의 주요 음악 기관들이 협력하여 그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전시와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그는 포럼에서 '음악은 언제나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었다'는 명언을 남겨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축하 행사는 그가 이룩한 고음악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2024

[최근의 행보와 미래]

여전히 새로운 녹음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현역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적 탐험은 나이를 잊은 채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근 그는 바흐의 평균율 제2권 녹음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또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전 세계 학생들과 소통하며 온라인 마스터클래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트레버 피노크의 이름은 이제 고음악을 넘어 클래식 음악 전체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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