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런 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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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투수, 기업인 + 카테고리

라이언 익스프레스라는 별명의 전설적인 메이저 리그 투수 놀런 라이언은 27년간 활약하며 야구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메이저 리그 통산 최다인 5,714개 탈삼진과 7회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은퇴 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와 CEO를 역임하는 등 야구계에 지속적으로 헌신했습니다. 1999년, 압도적인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3개 구단에서 그의 등번호가 영구 결번 처리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47

[놀런 라이언 탄생]

전설적인 야구 선수 '라이언 익스프레스' 놀런 라이언이 텍사스주 레푸지오에서 태어났습니다.

린 놀런 라이언 주니어는 1947년 1월 31일 텍사스주 레푸지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그가 태어난 지 6주 후 휴스턴 교외의 앨빈으로 이주했습니다.

1965

[뉴욕 메츠에 드래프트]

뛰어난 패스트볼로 뉴욕 메츠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아 메이저 리그 아마추어 드래프트 12라운드에서 지명되었습니다.

앨빈 고등학교 재학 중 그의 빠른 패스트볼은 뉴욕 메츠 스카우트 레드 머프의 주의를 끌었고, 196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아마추어 드래프트 12라운드에서 선택되었습니다.

1966

[메이저 리그 데뷔]

버지니아주 매리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놀런 라이언은 1966년 메이저 리그 팀에서 2경기에 출전하며 데뷔했습니다.

라이언은 애펄레이치언 루키 리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1966년 메이저 리그 팀과 함께 2개의 경기에서 출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첫 출장은 9월 11일이었습니다.

1969

[월드 시리즈 우승 및 '라이언 익스프레스' 별명]

월드 시리즈에서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뉴욕 메츠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는 데 기여했고, 강속구로 '라이언 익스프레스'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1969년 라이언은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화려한 구원 투수 활약으로 메츠가 우승 후보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패스트볼 속력 때문에 뉴욕 대중매체는 그에게 '라이언 익스프레스'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1971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이적]

투구 제구에 어려움을 겪던 놀런 라이언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하여 톰 모건 투수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경력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압도적인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투구들을 지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라이언은 1971년 12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했습니다. 에인절스의 투수 코치 톰 모건의 지도 아래 그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1973

[2회 노히트 노런 및 MLB 최다 탈삼진 기록 경신]

한 시즌 동안 2회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메이저 리그 기록인 383개의 탈삼진을 달성하며 자신의 우상 샌디 쿠팩스의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1973년 놀런 라이언은 2회의 무안타 경기를 펼쳤고, 메이저 리그 기록인 383개의 스트라이크아웃을 기록하며 단 1개의 차이로 그의 우상 샌디 쿠팩스의 이전 기록을 능가했습니다.

1974

[패스트볼 구속 100.9마일 공식 측정]

적외선 레이더 측정 결과, 놀런 라이언의 패스트볼이 한 시간에 100.9마일로 측정되며 그의 압도적인 구속이 공식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1974년 8월, 적외선 레이더는 놀런 라이언의 패스트볼을 두 번이나 시속 100.9마일로 측정했습니다. 이후 측정 방식의 변화와 함께 에인절스는 라이언이 시속 107마일까지 던졌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1979

[MLB 최초 100만 달러 계약]

메이저 리그 최초로 연봉 1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선수로, 고향 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1979년 시즌 이후, 라이언은 메이저 리그 최초로 한 해에 1백만 달러 이상을 버는 선수로 자신의 고향 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1981

[5번째 노히트 노런 달성]

5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샌디 쿠팩스를 다시 한번 능가했고, 파업으로 짧아진 시즌을 1.69의 메이저 리그 최고 평균 자책점으로 마무리했습니다.

1981년 9월, 라이언은 5번째 무안타 기록과 함께 다시 쿠팩스를 능가했고, 파업으로 짧아진 시즌을 메이저 리그 최고의 1.69 평균 자책점으로 끝냈습니다.

1983

[월터 존슨 탈삼진 기록 경신]

3509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며 20세기 초기의 스타 월터 존슨의 총기록을 넘어섰습니다.

1983년 초순, 라이언은 경력의 3509번째 스트라이크아웃을 기록하면서 야구 기록 책에 또 다른 유명한 이름을 전멸시켰고, 20세기 초기의 스타 월터 존슨의 총기록을 그늘지게 했습니다.

1989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 및 6번째 300탈삼진 시즌]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한 후, 6번째로 한 시즌 300개 탈삼진을 기록하며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을 맺은 후, 1989년 시즌에서 6번째로 300개의 스트라이크아웃을 세웠습니다.

1990

[노히트 노런 및 300승 달성]

또 한 번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고, 20번째 투수로 300승 클럽에 가입하며 전설적인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990년, 그는 또 다른 무안타를 던졌고 300개의 경력 우승에 도달하는 데 20번째 투수가 되었습니다.

1991

[7번째이자 마지막 노히트 노런 기록]

자신의 7번째이자 마지막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이 부문 메이저 리그 최다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습니다.

1991년, 놀런 라이언은 자신의 7번째이자 마지막 무안타와 함께 자신의 기록에 추가했습니다.

1993

[현역 은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27년간의 빛나는 경력을 마감하며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1993년 말에 라이언의 팔은 결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가장 이야기적인 경력들 중 하나의 결론을 이루며 현역 은퇴를 공표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9월 22일이었습니다.

1999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의 98.8%라는 높은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놀런 라이언은 투표의 98.8 퍼센트와 함께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으로 헌액되었으며, 당시 전당의 역사상 2번째로 가장 높은 퍼센티지였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사용한 등번호 34번과 30번은 모두 영구 결번 처리되었습니다.

2008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취임]

현역 은퇴 후에도 야구계에 남아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로 취임하며 구단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2008년 2월에 놀런 라이언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로 취임했습니다.

2010

[텍사스 레인저스 CEO 승진]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체제 재편에 따라 구단주에서 CEO로 승진하여 경영 일선에서 활동했습니다.

2010년 8월 텍사스 레인저스가 레이 데이비스와 밥 심슨의 공동 구단주 체제로 재편되자 구단주에서 CEO로 승진했습니다.

2013

[텍사스 레인저스 CEO 은퇴]

텍사스 레인저스 CEO직에서 은퇴하며 야구계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2013년 10월 18일에 텍사스 레인저스 CEO직에서 은퇴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야구계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2014

[휴스턴 애스트로스 특별 보조인 복귀]

야구계를 떠난 지 1년 만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특별 보조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2014년 특별 보조인으로서 애스트로스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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