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 연구소

연구 기관, 생물학 연구소, 의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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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 연구소는 1887년 루이 파스퇴르가 설립한 프랑스의 비영리 생물학 및 의학 연구 기관입니다. 미생물, 감염병, 백신 연구의 선두 주자로서 HIV 바이러스 분리 등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으며,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연구소입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885

[광견병 백신의 기적]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소년 조셉 마이스터에게 실험적인 백신을 투여하여 생명을 구합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며 현대 면역학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연구소 설립을 위한 대중적인 지지와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당시 조셉 마이스터는 14곳이나 물려 사망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으나 파스퇴르의 처방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 성공 사례는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파스퇴르는 '과학의 성자'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셉 마이스터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수위로 일하며 파스퇴르의 곁을 지켰습니다.

1886

[국제적 기부의 물결]

광견병 치료를 위한 상설 기관 설립을 목적으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국제적인 모금 활동을 시작합니다. 전 세계의 왕실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성금을 보내오며 연구소 설립에 동참합니다. 과학 연구를 위한 민간 차원의 거대한 후원 시스템이 작동한 역사적인 사례입니다.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차르, 브라질의 황제 등 해외 귀족과 일반 대중이 참여했습니다.
단기간에 거액의 기부금이 모여 연구소 부지 매입과 건물 신축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과학 연구가 국가 예산을 넘어 인류 공통의 과제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1887

[법적 토대의 마련]

프랑스 정부의 공포를 통해 파스퇴르 연구소의 설립이 공식적으로 승인되고 법적 지위를 획득합니다. 비영리 사립 재단으로서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완성됩니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연구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예고합니다.

대통령령에 의해 공익 재단(Fondation reconnue d'utilité publique)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법적 지위 덕분에 연구소는 세제 혜택과 더불어 자율적인 운영 권한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파스퇴르는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어 연구소의 비전과 초기 체계를 설계했습니다.

1888

[연구소 공식 개소]

파리 뒤토 가문에 위치한 연구소 건물이 완공되어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갑니다. 파스퇴르는 개소식에서 과학의 진보가 인류의 고통을 덜어줄 것임을 선언하며 연구원들을 독려합니다. 미생물학 연구와 백신 제조, 그리고 과학자 양성을 위한 통합 센터로서의 기능을 시작합니다.

개소식에는 사디 카르노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의 주요 정관계 인사가 참석했습니다.
초기 연구소는 광견병 치료실, 연구실, 강의실 등을 갖춘 첨단 시설로 설계되었습니다.
파스퇴르는 이곳에서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과학'이라는 핵심 가치를 정립했습니다.

1889

[미생물학 저널 창간]

연구소는 과학적 성과를 공유하고 학문적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체 학술지를 발간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전 세계 미생물학 연구자들의 소통 창구가 되어 연구 성과의 확산에 기여합니다. 연구소가 교육과 학술 교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학술지 이름은 'Annales de l'Institut Pasteur'로, 미생물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널로 성장했습니다.
초기 연구진인 루, 예르생, 메치니코프 등의 혁신적인 논문들이 이곳을 통해 발표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계승되어 과학 지식의 보급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1890

[독소와 혈청 치료 연구]

에밀 루를 필두로 한 연구진이 디프테리아 독소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한 혈청 치료법 연구에 매진합니다. 세균 자체가 아닌 세균이 뿜어내는 독소가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규명하며 치료의 새 지평을 엽니다. 이는 항독소 치료법의 발전으로 이어져 수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에밀 루와 알렉상드르 예르생은 디프테리아균에서 나오는 액체 성분이 독성을 가짐을 입증했습니다.
이 연구는 이후 독일의 베링과 경쟁하며 면역학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업적이 되었습니다.
혈청 치료법은 당시 치사율이 높았던 전염병 대응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891

[사이공 연구소 설립]

프랑스 외부의 첫 해외 기지로서 베트남 사이공에 파스퇴르 연구소 지부가 설치됩니다. 알렉상드르 예르생이 파견되어 열대 지역의 풍토병 연구와 백신 보급을 위한 거점을 마련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파스퇴르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역사적인 첫걸음이었습니다.

현지 이름은 현재 '호치민 파스퇴르 연구소'로 알려져 있으며, 동남아시아 보건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예르생은 이곳을 기반으로 가축 질병 연구 및 열대 의학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전역으로 연구소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1892

[파스퇴르 70세 탄신]

루이 파스퇴르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소르본 대학에서 대규모 헌정 행사가 열립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그의 공적을 치하하며 연구소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과학 연구의 지속 가능성과 후학 양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화합의 장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리스터 경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참석하여 파스퇴르에게 존경을 표했습니다.
파스퇴르는 이 자리에서 젊은 과학자들에게 '확신을 갖고 일하라'는 유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연구소의 정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1893

[튀니스 연구소 설립]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두 번째 해외 연구소가 문을 열며 지중해 연안 보건망을 구축합니다. 현지의 전염병 상황을 조사하고 맞춤형 방역 대책을 수립하는 연구 활동을 전개합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의학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행에 옮긴 사례입니다.

튀니스 연구소는 특히 발진티푸스 연구와 방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아프리카 대륙으로 파스퇴르의 과학 정신이 본격적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지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공중보건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1894

[알제 연구소 설립]

알제리에 지부를 설립하여 아프리카 북부의 말라리아 및 기타 전염병 연구를 강화합니다. 열대 및 아열대 기후 지역의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네트워크의 확장을 지속합니다. 이는 식민지 지역의 공중보건 향상이라는 인도적 목적을 동시에 수행했습니다.

알제 연구소는 말라리아 매개체 연구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현지 의료진을 교육하고 백신 보급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파스퇴르 네트워크의 아프리카 거점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페스트균의 발견]

알렉상드르 예르생이 홍콩에서 흑사병의 원인균인 페스트균을 최초로 고립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었던 질병의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예방과 치료의 길을 엽니다. 연구소의 위상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쾌거였습니다.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긴 연구 끝에 일본 팀보다 먼저 균을 찾아냈습니다.
이 균의 학명은 그의 이름을 따서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발견은 흑사병 유행을 통제하고 인류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1895

[위대한 거성의 서거]

연구소의 설립자이자 위대한 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가 세상을 떠납니다. 프랑스는 국장으로 그의 마지막 길을 예우하며 그가 남긴 업적을 기립니다. 그의 사후에도 연구소는 '파스퇴르주의자'들에 의해 그의 정신과 연구 철학을 이어가게 됩니다.

파스퇴르의 유해는 본인의 뜻에 따라 연구소 지하 묘역에 안치되었습니다.
그의 서거는 전 세계적인 애도 물결을 일으켰으며, 과학계의 큰 손실로 여겨졌습니다.
에밀 루가 뒤를 이어 소장직을 맡으며 연구소의 제2막이 시작됩니다.

1896

[냐짱 지부 개설]

예르생이 베트남 냐짱에 새로운 연구 거점을 마련하고 농업 및 축산 연구에 집중합니다. 전염병 연구를 넘어 식량 문제와 동물 보건까지 연구 범위를 넓히는 혁신을 시도합니다. 지역 사회의 자립을 돕는 실천적 과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기르고 있던 소들을 이용해 페스트 혈청을 대량 생산했습니다.
또한 고무나무와 키나나무 재배를 장려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습니다.
의학을 넘어 종합적인 생명과학 연구소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1898

[릴 연구소 설립]

프랑스 북부 산업 도시 릴에 알베르 칼메트가 파견되어 새로운 연구소를 세웁니다. 산업 도시 특유의 보건 문제와 결핵 방역에 집중하며 지역 사회 보건 향상에 기여합니다. 이는 파리 본원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거점 중심의 연구 체계를 확립한 사례입니다.

알베르 칼메트는 이곳에서 결핵 백신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지역 공중보건소와 협력하여 위생 교육 및 질병 예방 캠페인을 주도했습니다.
프랑스 국내 네트워크 확장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지부입니다.

1899

[독사 해독 혈청 개발]

알베르 칼메트가 뱀 독에 대한 해독 혈청을 개발하여 치료법을 제시합니다. 미생물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독소 전체에 대한 면역학적 접근을 강화한 결과물입니다. 열대 지역에서 뱀에 물려 목숨을 잃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발명이었습니다.

칼메트는 코브라 독 등을 중화하는 혈청을 만들어 실제 임상에 적용했습니다.
이 연구는 오늘날에도 항독소 혈청 제조 기술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연구 범위가 생물학적 위협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900

[황열병 연구의 진전]

브라질로 파견된 연구진이 황열병의 전파 경로와 병원체 규명을 위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대유행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과학적 조사를 강화합니다. 연구소의 활동 범위가 유럽과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까지 확장되었음을 상징합니다.

황열병 연구는 당시 파나마 운하 건설 등 국제적인 사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기가 매개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방역 대책을 수립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글로벌 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 기관으로서의 책임감을 실천했습니다.

1901

[마다카스카르 지부 설립]

아프리카 동쪽 섬 마다카스카르에 안타나나리보 연구소가 설치됩니다. 고립된 섬 지역의 독특한 풍토병을 연구하고 지역 주민의 보건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연구소 네트워크가 지리적 한계를 넘어 전 지구적인 보건망을 촘촘히 구축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 지부는 특히 페스트와 말라리아 방역에서 지역적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현지 생물 다양성을 활용한 의약품 연구의 기초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네트워크 확장은 곧 인류의 질병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904

[면역학 강의의 체계화]

연구소 내에 면역학 및 미생물학 전문 교육 과정을 강화하여 차세대 과학자 양성에 힘씁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연구원들이 최신 과학 지식을 배우고 공유하는 교육의 장이 열립니다. '파스퇴르 학파'라는 이름 아래 결속된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는 토대가 됩니다.

이 교육 과정을 거친 과학자들이 각국으로 돌아가 파스퇴르 네트워크를 이끌게 됩니다.
이론과 실습이 결합된 체계적인 교육 방식은 현대 이공계 교육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과학 커뮤니티의 리더십을 확보했습니다.

1908

[메치니코프 노벨상 수상]

연구소의 일리야 메치니코프가 백혈구의 식균 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우리 몸이 질병에 맞서 싸우는 면역 시스템의 핵심 원리를 규명한 역사적인 업적입니다. 연구소 소속 과학자가 거둔 첫 번째 노벨상으로 연구소의 권위를 전 세계에 떨쳤습니다.

그는 생체 내 면역 반응의 세포적 기초를 확립한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노화 연구와 유산균의 효능을 연구하여 현대 건강 식품의 기초를 닦기도 했습니다.
그의 수상은 파스퇴르 연구소가 기초 과학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습니다.

1911

[브라자빌 연구소 건립]

콩고 브라자빌에 지부를 세우고 중앙아프리카의 열대성 질병 및 수면병 연구를 본격화합니다.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보건 서비스를 확장하여 가장 소외된 지역의 생명을 구하고자 합니다. 지리적 악조건 속에서도 과학적 탐구와 인류애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수면병은 당시 아프리카 내륙에서 수많은 사망자를 내던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파스퇴르 연구진은 체체파리에 의한 전파 경로를 차단하는 방역법을 보급했습니다.
현지 지부는 지역 사회와 밀착하여 치료와 교육을 동시에 병행했습니다.

1913

[다카르 연구소의 탄생]

세네갈 다카르에 서아프리카 지역의 거점 연구소가 설립되어 활동을 시작합니다. 노란 열병과 콜레라 등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질병에 대응하는 중심지가 됩니다. 대서양 연안의 보건 안전망을 구축하여 국제적인 질병 확산을 방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다카르 연구소는 이후 황열병 백신 생산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파스퇴르 네트워크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현지 정부 및 국제 기구와 협력하여 지역 공중보건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1915

[전시 방역 활동 전개]

제1차 세계대전 중 연구소는 부상병들의 감염 예방과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습니다. 참호전 환경에서 발생하기 쉬운 파상풍 및 괴저 치료를 위한 혈청 대량 생산에 나섭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과학 기술이 어떻게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지 증명합니다.

연구원들은 전선 가까이 파견되어 위생 교육과 응급 방역을 실시했습니다.
대량으로 제조된 혈청은 수많은 병사들의 팔다리를 보존하고 목숨을 구했습니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연구소의 존재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1917

[박테리오파지의 발견]

펠릭스 데렐이 세균을 잡아먹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발견하고 연구를 심화합니다. 항생제 시대 이전에 세균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바이러스학의 발전에 기여하며 질병 치료의 새로운 무기를 확보하는 계기가 됩니다.

데렐은 이 발견을 통해 이질 등의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항생제의 등장으로 주목도가 낮아졌으나, 최근 내성균 문제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1919

[니콜 노벨상 수상]

연구소 소속 샤를 니콜이 발진티푸스가 이를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전쟁과 기근 중에 유행하던 질병의 전파 경로를 차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 업적입니다. 연구소의 연구가 실질적인 인류의 고통 해결과 직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니콜은 튀니스 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이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단순한 위생 관리만으로도 발진티푸스를 예방할 수 있음을 입증하여 전 세계 방역 체계를 바꿨습니다.
해외 지부 연구진의 탁월한 성과가 본원과 더불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1920

[스트라스부르 지부 설립]

프랑스 동부의 주요 도시 스트라스부르에 연구소를 설립하여 국내 보건망을 더욱 강화합니다. 알자스 지역의 의학 발전을 선도하고 독일과의 학술 교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국경 지역의 보건 안전을 확보하고 지역 특화 연구를 수행하는 센터가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로 복귀한 지역에 과학적 기반을 다지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지역 대학과 긴밀히 협력하여 기초 생물학 연구를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국내외를 아우르는 파스퇴르 네트워크의 짜임새를 완성해 나갔습니다.

1921

[결핵 백신 BCG의 탄생]

칼메트와 게랭이 수년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결핵 예방 백신인 BCG를 개발하여 첫 임상 적용을 실시합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무서운 병 중 하나였던 결핵에 맞설 강력한 무기를 인류에게 선사합니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백신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백신 이름인 BCG는 'Bacille de Calmette et Guérin'의 약자입니다.
독성을 약화시킨 소 결핵균을 사용하여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발견은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습니다.

1922

[파스퇴르 탄생 100주년]

설립자 루이 파스퇴르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전 세계 과학계의 축하 속에 거행됩니다. 그가 남긴 유산이 과학과 인류 건강에 미친 영향력을 재확인하고 연구소의 사명을 다집니다. 프랑스 전역과 해외 지부에서 기념 학술 대회와 전시가 연이어 열립니다.

정부는 파스퇴르를 기리는 기념 우표와 주화를 발행하며 예우를 다했습니다.
이 행사는 연구소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외교적 자리가 되었습니다.
파스퇴르의 정신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과학의 근본임을 알리는 계기였습니다.

1923

[아테네 연구소 설립]

그리스 아테네에 지부를 설립하여 발칸 반도 및 지중해 동부의 보건 연구 거점을 확보합니다. 전쟁 후 혼란스러운 지역의 전염병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과학적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연구소 네트워크의 지정학적 확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모습입니다.

아테네 연구소는 특히 뎅기열 연구와 방역에서 현지 정부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유럽 동남부의 위생 환경을 개선하고 질병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파스퇴르 연구소의 국제적 영향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1924

[테헤란 연구소 개소]

이란 테헤란에 중동 지역 최초의 파스퇴르 연구소가 문을 열고 활동을 개시합니다. 중동 특유의 풍토병과 광견병 방역을 위한 거점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생명 보호에 앞장섭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건 가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광견병 백신 공급과 역학 조사를 통해 지역 내 보건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이란 정부와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현대적 의학 연구 기반을 닦았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중동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1925

[하노이 연구소 설립]

베트남 하노이에 추가 지부를 설치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의 보건 연구를 더욱 촘촘하게 구성합니다. 사이공, 냐짱과 함께 베트남 내 3각 연구 체제를 구축하여 체계적인 방역을 실시합니다. 지역 맞춤형 연구와 백신 보급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전략적 행보입니다.

하노이 연구소는 북부 지역의 위생 관리와 감염병 진단에 집중했습니다.
현지 의료 인력을 직접 교육하며 지역 사회의 자생적인 보건 능력을 키웠습니다.
파스퇴르 네트워크의 모범적인 지역 확장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1928

[상하이 연구소 개설]

중국 상하이에 지부를 설치하여 거대한 중국 대륙으로의 연구 네트워크 확장을 도모합니다. 급변하는 아시아의 정세 속에서도 과학을 통한 국제 협력과 인류 보건 향상을 멈추지 않습니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의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합니다.

상하이 연구소는 당시 콜레라와 이질 유행에 대응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국제적인 과학 인재들이 모여드는 플랫폼으로서 상하이의 보건 수준을 높였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전염병 통제를 위한 핵심 기지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1930

[바이러스 연구의 심화]

전자현미경 도입 전임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실험적 접근을 지속합니다. 세균보다 훨씬 작은 병원체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며 바이러스학의 기틀을 닦습니다. 면역학을 넘어 생명과학 전반의 지평을 넓히는 선구적 연구를 이어갑니다.

연구진은 필터를 통과하는 여과성 병원체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 질환의 정체를 추적했습니다.
이는 훗날 황열병, 폴리오 백신 개발의 기초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서 과학적 논리만을 무기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34

[카사블랑카 연구소 설립]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연구소가 세워져 북아프리카 보건 연구의 깊이를 더합니다. 지역의 역학 조사와 백신 제조를 담당하며 주민들의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합니다. 현지의 특성을 반영한 연구 활동을 통해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효용성을 입증합니다.

이곳은 특히 가축 질병 연구를 통해 지역 경제 안정에도 기여했습니다.
모로코 보건 당국과 긴밀한 공조 체계를 갖춘 성공적인 지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보건 전략의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35

[설폰아미드의 발견]

자크 트레푸엘과 그 팀이 항균 작용을 하는 설폰아미드의 치료 효과를 규명합니다. 항생제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이 발견은 세균 감염 치료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화학 요법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독일의 도마크가 발견한 프론토질이 체내에서 분해되어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이후 다양한 파생 약물이 개발되어 폐렴, 수막염 등의 치료에 쓰였습니다.
백신 연구를 넘어 치료제 개발에서도 세계적인 위상을 확인한 사례입니다.

1936

[과들루프 지부 설립]

카리브해의 과들루프에 지부를 설치하여 중남미 도서 지역 보건 연구를 시작합니다. 열대 지역의 풍토병과 해안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들을 파견합니다. 연구소의 발자취가 전 세계 모든 대륙과 주요 도서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과정입니다.

현지의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발생을 억제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프랑스령 지역의 보건 서비스 평준화를 위한 연구소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글로벌 질병 감시 체계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1937

[다니엘 보베의 성과]

다니엘 보베가 항히스타민제 연구에 착수하여 알레르기 질환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엽니다. 신체의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화학 물질 연구를 통해 현대 약리학의 기초를 다집니다. 그의 연구는 훗날 수많은 의약품 개발의 토대가 되는 혁신적인 업적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커라레와 같은 근이완제 연구로도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약리학 분야에서의 이 공로로 그는 이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파스퇴르 연구소가 다방면의 생명과학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938

[군진 의학 협력 강화]

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프랑스 군 의무부와 협력하여 비상 방역 체계를 구축합니다. 대량의 백신과 혈청 비축량을 늘리고 유사시 연구소의 가용 자원을 재편합니다. 국가 안보의 한 축으로서 과학 기술이 가지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발-드-그라스 군 병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전장 질병 예방 대책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 연구소가 수행할 막중한 임무의 사전 준비였습니다.
평시 연구 성과를 전시 역량으로 전환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1939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전쟁이 시작되자 연구소는 다시 한번 전시 체제로 전환하여 필수의약품 생산에 집중합니다. 연구원들의 일부가 징집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소의 기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과학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인내가 시험대에 오르는 시기입니다.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혈청과 백신 생산 공정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점령지 프랑스 내에서도 연구소는 국제적인 중립성과 공익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전시 상황은 연구소에 전례 없는 도전과 인내를 요구했습니다.

1940

[프랑스령 기아나 지부 설립]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에 지부를 설립하여 아마존 유역의 질병 연구를 시작합니다. 험난한 정글 환경 속에서도 보건 조사를 수행하며 열대병 전문가를 양성합니다. 전쟁 중에도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장을 멈추지 않은 연구소의 끈기를 보여줍니다.

기아나 연구소는 아마존 특유의 전염병과 독충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지리적 고립 속에서도 파리 본원과 교류하며 과학적 성과를 축적했습니다.
최전방에서의 보건 수호자로서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갔습니다.

1945

[전쟁의 끝과 재건]

전쟁이 끝나자 연구소는 훼손된 시설을 복구하고 연구 역량을 정상화하는 데 매진합니다. 국제 과학계와의 교류를 재개하며 새로운 시대의 보건 과제들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련을 딛고 일어난 연구소는 더욱 단단해진 조직력으로 미래를 준비합니다.

미국 등 우방국 과학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최신 연구 장비와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전쟁 중단되었던 여러 연구 프로젝트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평화의 시대, 인류 보건 향상을 위한 연구소의 제3의 도약이 시작됩니다.

1947

[야운데 연구소 설립]

카메룬 야운데에 지부를 설립하여 중부 아프리카의 보건 안전망을 더욱 보강합니다. 말라리아, 자는병 등 고질적인 질병 퇴치를 위한 거점으로 활동을 전개합니다. 전후 아프리카 지역의 재건과 발맞추어 공중보건 인프라 구축에 기여합니다.

이곳은 특히 지역 보건 인력 교육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현지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 하에 국가 보건 정책 수립을 지원했습니다.
파스퇴르 네트워크가 아프리카 대륙의 보건 자립을 돕는 핵심축이 되었습니다.

1948

[프놈펜 연구소 개소]

캄보디아 프놈펜에 연구소를 설립하여 동남아시아 보건 연구 체계를 확장합니다. 인접 국가인 베트남, 태국 등과 연계하여 지역적인 감염병 공동 대응을 모색합니다. 지역 사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프놈펜 연구소는 초기 수인성 전염병 방역에서 큰 성과를 보였습니다.
캄보디아 의료진을 파리로 보내 전문 교육을 받게 하는 인적 교류도 활발했습니다.
동남아시아 보건의 중추적인 기지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1950

[분자생물학 시대의 서막]

생명의 신비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려는 새로운 연구 흐름이 연구소 내에서 일어납니다. 유전 정보의 전달과 단백질 합성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첨단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는 미생물학을 넘어 현대 생물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자크 모노, 프랑수아 자코브 등 젊은 천재 과학자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박테리아의 대사 조절 기전을 연구하며 유전학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연구소는 기초 과학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진화했습니다.

1952

[소아마비 연구 강화]

어린이들을 위협하던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위해 집중적인 연구와 백신 개발에 나섭니다. 바이러스 배양 및 약독화 기술을 고도화하여 안전한 예방 접종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전 세계적인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연구소의 기술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국의 소크와 세이빈 백신 개발과 병행하여 독자적인 연구 성과를 냈습니다.
유럽 내 소아마비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지침과 백신 보급을 주도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과학의 헌신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55

[혈액형 및 혈청학 연구]

수혈 의학의 기초가 되는 혈액형 분류와 혈청학적 진단법을 정교화합니다. 안전한 수혈 시스템을 구축하고 면역 관련 질환의 진단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입니다. 연구소의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합니다.

면역 체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연구가 실제 임상으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수혈 부작용을 줄이고 질병 진단을 빠르게 하는 시약들을 개발했습니다.
공중보건의 범위를 치료에서 예방과 진단 시스템 전반으로 넓혔습니다.

1957

[다니엘 보베 노벨상 수상]

연구소에서 활동한 다니엘 보베가 혈관 계통에 작용하는 합성 화합물과 근이완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화학 약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연구소의 위상을 다시 한번 높였습니다. 기초 과학이 어떻게 실제 의약품 개발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의 연구는 수술 시 마취와 알레르기 치료에 혁신적인 도구를 제공했습니다.
이로써 연구소는 3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세계적인 연구 명성을 공고히 했습니다.
전통적인 미생물학을 넘어 약리학에서도 세계 정점에 섰음을 증명했습니다.

1959

[방기 연구소 건립]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방기에 연구소를 세워 내륙 지역의 전염병 감시를 강화합니다. 지역의 보건 위기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연구를 전개합니다. 네트워크의 연결망을 더욱 촘촘히 하여 질병 사각지대를 해소해 나갑니다.

방기 연구소는 특히 바이러스성 출혈열 연구에서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을 위한 예방 접종 사업을 주도하며 공중보건의 첨병 역할을 했습니다.
아프리카 보건 인프라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 완성되었습니다.

1960

[누메아 지부 설립]

남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에 연구소를 설치하여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네트워크를 확장합니다. 섬 지역 특유의 열대성 질병과 해양 생물 관련 의학 연구를 수행합니다. 전 지구를 아우르는 파스퇴르 네트워크의 지리적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곳은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의 보건 협력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뎅기열 등 모기 매개 질병의 섬 내 확산을 차단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파스퇴르의 과학 정신은 주민들의 건강을 지켰습니다.

1962

[유전 부호 해독 기여]

연구소의 분자생물학팀이 유전 정보가 단백질로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합니다. 메신저 RNA의 존재와 기능을 확인하며 현대 생물학의 기초 이론을 정립합니다. 생명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인류의 지적 도전에서 연구소가 중심에 섭니다.

모노와 자코브의 오페론 가설은 유전자 발현 조절의 근본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는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정보 전달의 관점으로 바꾼 혁명적 사건입니다.
연구소는 세계 분자생물학 연구의 메카로 부상했습니다.

1965

[트리플 노벨상 수상]

프랑수아 자코브, 앙드레 르보프, 자크 모노가 유전적 조절 기전 연구로 동시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연구소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 중 하나로, 분자생물학 분야의 압도적인 우위를 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한 기관에서 3명의 수상자가 동시에 나온 것은 극히 드문 쾌거입니다.

이들의 수상은 현대 유전학 및 생명공학 시대가 열렸음을 공식화했습니다.
연구소 내 '유전학적 정보 전달' 연구팀의 노력이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았습니다.
파스퇴르 연구소는 이로써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과학의 전당이 되었습니다.

1966

[연구소 행정 구조 개편]

현대화된 연구 환경에 맞추어 조직의 관리 체계와 연구 부서를 대대적으로 개편합니다. 자크 모노가 소장으로 취임하며 연구소의 재정 자립과 효율적인 운영을 도모합니다. 과학 연구의 수월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혁신을 단행합니다.

기존의 느슨한 조직 체계에서 벗어나 성과 중심의 연구 지원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부금 및 특허 수익 관리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출신 소장의 리더십 하에 연구소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1967

[재정 위기와 국가 지원]

독립적인 운영 중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하자 프랑스 정부로부터 특별 보조금을 지원받으며 위기를 넘깁니다. 연구소의 공익성과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결단이 이루어집니다. 이를 통해 사립 재단의 자율성과 공공의 지원 사이의 균형을 모색합니다.

대중적인 '파스퇴르 구하기' 운동이 일어나며 연구소의 중요성이 재조명되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통해 노후된 장비를 교체하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연구소가 국가적 보물임을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0

[파스퇴르-프로덕션 설립]

백신과 혈청의 상업적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인 파스퇴르-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재정 기반을 강화합니다. 연구 성과를 시장에 효율적으로 공급하고 그 수익을 다시 연구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듭니다. 과학의 산업화와 공익적 가치를 결합한 새로운 모델입니다.

이 회사는 이후 글로벌 백신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수익금은 연구소 본원의 기초 연구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생명공학 산업의 초기 형태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1972

[정관 변경과 현대화]

변화하는 사회적, 과학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연구소의 정관을 전면적으로 수정합니다. 외부 이사 영입을 확대하고 의사 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여 현대적 거버넌스를 구축합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조직적 기반을 확고히 다집니다.

더욱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연구소 운영이 가능해진 변곡점입니다.
국제적인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조항들이 강화되었습니다.
설립 100주년을 향해 가는 연구소의 체질 개선 노력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1975

[하이브리도마 기술 도입]

단일클론항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하이브리도마 기술을 연구에 적극 도입합니다. 특정 질병을 정확히 겨냥해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정밀 의학의 시대를 준비합니다. 면역학 연구의 도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연구의 질을 높입니다.

이 기술은 암 진단 및 치료, 자가면역 질환 연구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연구소 내 항체 연구팀의 역량이 크게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첨단 기술을 발 빠르게 수용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력을 유지했습니다.

1977

[B형 간염 백신 개발]

필리프 티올레가 주도하는 연구진이 유전공학 기법을 이용한 B형 간염 백신 개발에 성공합니다. 간암의 주요 원인인 간염 바이러스를 통제함으로써 인류의 암 예방에 획기적인 기여를 합니다. 생명공학 기술이 실제 보건 현장에 적용된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기존 백신보다 안전하고 대량 생산이 용이한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간염 퇴치 사업의 핵심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연구소의 연구 역량이 분자 수준에서 결실을 맺었음을 보여줍니다.

1980

[에이즈 바이러스의 그림자]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면역 결핍 질환이 보고되자 연구소는 즉시 전담 연구팀을 구성합니다. 미지의 병원체를 찾기 위해 과거 파스퇴르가 했던 것처럼 끈질긴 추적 조사를 시작합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에 맞서 연구소의 역량이 결집됩니다.

프랑스 내 병원들과 협력하여 환자들로부터 샘플을 수집하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훗날 HIV 발견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연구소는 다시 한번 전 세계 보건 위기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1983

[HIV 바이러스 최초 발견]

뤼크 몽타니에와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가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를 세계 최초로 발견합니다. 'LAV'라고 이름 붙여진 이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에이즈 진단과 치료를 위한 길이 열립니다. 연구소의 역사에서 광견병 백신 이후 가장 극적인 과학적 성취로 기록됩니다.

미국 팀과의 발견 선후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파스퇴르 연구소가 최초임이 인정되었습니다.
이 발견은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한 혈액 검사법 개발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현대 의학의 가장 난해한 숙제 중 하나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쾌거입니다.

1985

[광견병 백신 100주년]

조셉 마이스터를 구한 광견병 백신 100주년을 기념하며 백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립니다. 백신 접종이 가져온 인류 문명의 혜택을 되새기며 미래 보건 전략을 논의합니다. 설립자의 위대한 첫걸음이 백 년 후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기념합니다.

기념식에는 전 세계 보건 전문가들이 모여 백신 보급 확대를 다짐했습니다.
연구소는 이를 계기로 저개발 국가 백신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했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미래의 사명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1988

[연구소 설립 100주년]

파스퇴르 연구소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가 축하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지난 세기 동안 거둔 눈부신 성과를 정리하고 다가올 100년의 비전을 선포합니다. 전 세계 파스퇴르 네트워크가 하나로 뭉쳐 인류 보건 수호의 결의를 다지는 축제가 열립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참석하여 연구소의 공적을 국가적으로 치하했습니다.
100년 전 파스퇴르의 꿈이 전 지구적인 현실이 되었음을 축하했습니다.
연구소는 이 시점을 계기로 더욱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연구 기관으로 거듭났습니다.

1991

[에이즈 진단 기술 수출]

에이즈 바이러스 발견을 바탕으로 개발된 정밀 진단 키트를 전 세계에 보급하여 혈액 안전을 확보합니다. 기술 이전을 통해 각국 연구소와 병원의 대응 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상업적 수익을 넘어 공중보건의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주력합니다.

많은 국가에서 파스퇴르 연구소의 기술을 도입하여 수혈 사고를 예방했습니다.
진단 기술의 고도화는 치료제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방역의 축이었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이 가장 필요한 곳에 빠르게 전달되었습니다.

1995

[파스퇴르 서거 100주기]

설립자 루이 파스퇴르 서거 100주기를 맞아 그의 과학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가 열립니다. '관찰하는 마음에는 국경이 없다'는 그의 명언을 실천해 온 지난 세월을 기념합니다. 그의 묘역이 있는 연구소 지하는 전 세계 과학도들의 성지가 되어 추모객이 이어집니다.

유네스코(UNESCO)는 파스퇴르의 해를 지정하여 국제적인 행사를 지원했습니다.
그의 과학적 방법론이 현대 과학 교육에 미친 영향이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연구소는 설립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생명과학의 리더십을 다짐했습니다.

1997

[게놈 연구의 가속화]

다양한 병원균의 전체 유전체 지도를 그리는 게놈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참여합니다. 세균과 바이러스의 설계도를 파악함으로써 더 정밀한 백신과 치료제를 설계할 수 있게 됩니다. 데이터 중심의 현대 생물학 연구 체계로 완전히 전환합니다.

결핵균 등의 게놈 분석을 통해 내성 기전을 밝히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컴퓨터 생물학 부서를 신설하여 방대한 유전 정보 분석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실험실의 관찰에서 데이터의 해석으로 연구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2000

[국제 파스퇴르 네트워크 강화]

전 세계 20여 개국에 흩어진 지부들을 '파스퇴르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합니다. 지식과 인력, 자원의 공유를 극대화하여 글로벌 질병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듭니다. 국경을 초월한 과학 협력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습니다.

네트워크 본부를 강화하여 각 지부 간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했습니다.
지역적 전문성을 존중하면서도 파리 본원과의 유기적 연결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발생하는 사스, 메르스 등 대유행 시기에 이 네트워크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2003

[사스(SARS) 신속 대응]

새로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사스가 유행하자 네트워크 지부들을 동원해 즉각적인 역학 조사와 바이러스 분석에 나섭니다. 빠른 시간 내에 진단법을 개발하여 전 세계 방역 당국에 제공합니다. 신종 전염병에 대한 연구소의 기동력과 전문성을 입증한 사례입니다.

홍콩과 베트남의 파스퇴르 연구소들이 현장에서 직접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규명하고 전파 경로를 차단하는 지침을 수립했습니다.
21세기형 전염병 대유행에 맞서는 연구소의 표준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2004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설립]

대한민국 경기도에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설립하여 아시아의 핵심 연구 거점으로 삼습니다. 한국의 우수한 IT 기술과 연구소의 생명과학 역량을 결합하여 신약 개발의 혁신을 도모합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동북아시아의 과학 강국과 손을 잡은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미지 기반의 스크리닝 기술 등 첨단 연구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지역 내 질병 대응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감염병 연구와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8

[몽타니에·바레시누시 노벨상]

HIV 발견의 주인공들이 마침내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며 그 역사적 공로를 공식 인정받습니다. 연구소는 10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세계 과학계의 중심 기관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합니다. 인류를 고통에서 구한 과학자들의 끈기에 경의를 표하는 순간입니다.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는 연구소 출신 여성 과학자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이 상은 에이즈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연구소 전체의 자부심을 높이고 차세대 연구원들에게 큰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2011

[글로벌 보건 교육의 허브]

전 세계 보건 전문가들을 위한 온-오프라인 교육 플랫폼을 강화하여 지식 공유의 범위를 넓힙니다. 저개발 국가의 과학자들을 초청해 최신 기술을 전수하는 장학 프로그램을 확대합니다. 과학 기술의 격차를 해소하여 전 인류의 보건 상향 평준화를 목표로 합니다.

매년 수백 명의 외국인 연구원들이 파리 본원에서 연수를 받습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파스퇴르의 정신을 실천하는 리더로 성장합니다.
지식 전수는 연구소가 수행하는 가장 강력한 인도적 지원 중 하나입니다.

2014

[에볼라 위기 대응]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다카르 지부 등을 중심으로 긴급 의료지원팀을 파견합니다. 현장에서 신속 진단 키트를 운용하고 환자 격리와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목숨을 건 연구원들의 헌신으로 대규모 확산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기니 등 최전방 현장에 이동식 실험실을 설치하여 대응 속도를 높였습니다.
바이러스의 유전적 변이를 실시간으로 추적하여 국제 기구에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현장 과학의 힘이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인 순간임을 증명했습니다.

2017

[항생제 내성 대책 수립]

인류의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항생제 내성균에 맞서기 위한 범국제적 연구 컨소시엄을 주도합니다. 새로운 기전의 항생제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항생제 사용의 적정 기준을 제시합니다. 포스트 항생제 시대를 대비하는 과학적 대안 마련에 주력합니다.

과거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했듯, 이제는 내성균을 이길 방법을 찾습니다.
네트워크 지부들과 공동으로 지역별 내성 패턴을 분석하는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기초 연구와 공중보건 정책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8

[전략 계획 2019-2023 발표]

다가올 미래의 보건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5개년 전략 계획을 수립하고 공식 발표합니다. 신종 전염병, 뇌 과학, 그리고 환경 변화에 따른 질병 양상 연구를 중점 과제로 선정합니다. 끊임없이 혁신하며 진화하는 연구소의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연구에 접목하는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기로 했습니다.
기후 변화와 보건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다학제적 연구를 강조했습니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연구소의 책임 범위를 지구 환경까지 넓혔습니다.

2020

[코로나19 선제적 분석]

중국에서 시작된 미지의 폐렴 바이러스 게놈 서열을 분석하여 유럽 최초로 전체 서열을 공개합니다. 신속한 진단법을 개발하고 백신 후보 물질 연구에 즉각 착수하여 대유행 대응의 선봉에 섭니다. 전 세계 지부들과 협력하여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합니다.

연구소의 신속한 정보 공유는 초기 진단 키트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백신 개발 연구가 24시간 체제로 가동되었습니다.
130년 전 광견병과 싸웠던 기개로 최첨단 과학이 바이러스와 맞섰습니다.

2021

[변이 바이러스 감시 체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에 대응하여 글로벌 네트워크의 시퀀싱 역량을 결집합니다. 새로운 변이의 전파력과 백신 회피 능력을 신속히 분석하여 각국 정부에 정책 근거를 제공합니다.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효과적인 방역 대책 수립의 중심이 됩니다.

오미크론 등 주요 변이의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 논문을 신속히 발표했습니다.
네트워크 지부들은 자국의 변이 유행 상황을 분석하는 핵심 센터로 활약했습니다.
글로벌 보건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연구소의 가치가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2022

[파스퇴르 탄생 200주년]

루이 파스퇴르 탄생 200주년을 맞아 과학이 인류에게 준 선물들을 축하하고 기념합니다. 설립자의 호기심과 끈기가 오늘날 현대 의학의 모든 기초가 되었음을 전 세계가 기립니다. 미래의 과학 꿈나무들에게 파스퇴르의 열정을 전달하는 교육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프랑스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학술, 문화 행사가 연중 계속되었습니다.
파스퇴르의 연구 일지와 장비들을 디지털화하여 대중에 공개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넘어 미래 200년을 향한 연구소의 사명을 새롭게 다졌습니다.

2023

[원 헬스(One Health) 추진]

사람, 동물, 환경의 건강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 헬스' 관점의 연구를 전격 강화합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인수공통전염병의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생태계 전체의 안녕을 살피는 거시적 보건 기관으로 진화합니다.

환경 생물학자들과 감염병 전문가들의 공동 연구가 대폭 늘어났습니다.
야생 동물 매개 질병의 인간 전파를 사전에 탐지하는 조기 경보 체계를 연구합니다.
인류의 생존이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있음을 과학적으로 실천해 나갑니다.

2024

[디지털 보건 네트워크 완성]

전 세계 파스퇴르 네트워크를 클라우드 기반의 실시간 데이터 공유 시스템으로 연결합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발생하는 질병 정보를 즉각적으로 공유하고 분석할 수 있는 디지털 허브를 완성합니다. 정보 기술을 활용해 질병 대응 속도를 극대화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대유행의 징후를 예측합니다.
현장 연구원들이 모바일 기기로 즉시 데이터를 본원에 전송하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과학 연구의 효율성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2025

[지속 가능한 보건 비전]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국가들의 지부들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기술과 재정 지원을 집중합니다. 백신 제조 기술을 현지에 직접 이전하여 질병에 대한 지역의 대응력을 근본적으로 키웁니다.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과학의 나눔을 실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부의 독자적인 백신 생산 시설 구축을 지원합니다.
현지 과학자들의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한 대규모 교육 펀드를 운영합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보건 혜택을 위해 연구소는 멈추지 않고 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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