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FC
축구 클럽, 라리가, UEFA 유로파리그 최다 우승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6:18:34
1890년 안달루시아의 심장 세비야에서 탄생한 세비야 FC는 스페인 축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구단입니다. 창단 초기 영국 이주민들과 현지인들의 열정으로 시작된 이들은 1946년 유일무이한 라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20세기 중반의 시련을 딛고 21세기 들어 '몬치' 단장의 영입 시스템을 통해 유로파리그의 절대 강자로 거듭났습니다. 전설적인 주장 헤수스 나바스의 헌신과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비극을 승화시킨 투혼은 오늘날까지 세비야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상징하며 유럽 축구계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1890
[세비야 축구 클럽 창단]
영국 출신 이주민들과 세비야 현지인들이 모여 공식적인 축구 클럽을 설립했습니다. 에드워드 파쿠하슨 존스턴이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며 구단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축구만을 목적으로 세워진 가장 오래된 구단으로 기록됩니다.
로버트 번즈가 비서로, 휴 매콜이 주장을 맡아 초기 운영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당시 창단 멤버들은 영국 영사관 근처에서 모여 축구의 보급과 발전을 논의했습니다. 이 날은 스페인 축구사 전체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스페인 최초의 공식 경기]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를 상대로 스페인 역사상 첫 공식 축구 경기를 치렀습니다. 경기 결과는 세비야 FC의 2대 0 승리로 끝났습니다. 타블라다 경마장에서 열린 이 경기는 스페인 축구 전파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영국인 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경기를 펼쳤으며 리드와 애덤스가 각각 득점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스포츠인 축구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양 팀의 대결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전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1905
[클럽의 법적 법인화 완료]
호세 루이스 가예고스 아르노사 회장 주도로 구단을 공식 단체로 등록했습니다. 이를 통해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계층이 즐길 수 있는 열린 클럽을 표방하며 정관을 제정했습니다.
가예고스 회장은 축구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등록 과정에서 확보된 문서들은 현재 구단 박물관의 핵심 사료로 보관 중입니다. 이 시점부터 구단의 회원 모집과 재정 관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08
[초기 홈구장 확보]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 부지를 경기장으로 확보하며 안정적인 훈련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도심지에 위치하여 시민들이 축구 경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단은 이곳에서 지역 내 다른 팀들과의 경쟁을 통해 실력을 쌓았습니다.
초기에는 변변한 스탠드도 없었으나 점차 관중을 위한 목재 시설을 확충했습니다. 세비야 시민들의 주말 나들이 명소로 자리 잡으며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구단의 초창기 승리들은 대부분 이 상징적인 장소에서 기록되었습니다.
1912
[코파 데 세비야 첫 우승]
세비야 시 내의 최강자를 가리는 지역 대회에서 첫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라이벌 팀들을 압도적인 점수 차로 꺾으며 지역 내 우위를 점했습니다. 이는 구단이 차지한 최초의 공식 대회 타이틀로 기록됩니다.
우승 이후 선수들은 세비야 시내에서 대규모 카 퍼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이 대회 우승을 통해 세비야 FC는 안달루시아 전역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승리에 대한 열망과 결속력이 팀 내부에 확고히 자리 잡은 시기였습니다.
1914
[공식 엠블럼과 색상 확정]
현재 사용되는 엠블럼의 모태가 되는 디자인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세비야 시의 수호 성인 세 명을 중앙에 배치하여 연고지와의 밀착성을 강조했습니다. 흰색 바탕에 빨간색 줄무늬가 들어간 구단의 상징색도 이때 정립되었습니다.
디자이너 파블로 라보르데는 우아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엠블럼 하단의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는 구단의 역동적인 공격 축구를 상징합니다. 팬들은 이 상징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다양한 응원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917
[안달루시아 선수권 첫 제패]
안달루시아 지역 리그에서 우승하며 남부 스페인 축구의 맹주로 등극했습니다. 이를 통해 전국 대회인 코파 델 레이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지역 내 경쟁자였던 베티스와의 격차를 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승전에서 보여준 전술적인 완성도는 당시 언론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후 세비야는 1920년대 중반까지 이 대회를 거의 독식하며 전성기를 예고했습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온 선수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1928
[에스타디오 데 네르비온 개장]
구단의 규모 확장에 맞춰 최신 시설을 갖춘 네르비온 경기장을 새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2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건축물로 구단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개장 기념 경기에서 지역 라이벌 베티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건축가 아우렐리오 고메스 밀란이 설계하여 당시 가장 현대적인 경기장으로 꼽혔습니다. 이 경기장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세비야 팬들의 뜨거운 응원 문화가 정착되는 요람이 되었습니다. 네르비온 지구의 랜드마크로서 구단 인지도 상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29
[전국 리그 라리가의 출범]
스페인 전국 프로 축구 리그가 창설되었으며 세비야는 2부 리그에서 시작을 알렸습니다. 창설 멤버로서 리그 시스템에 적응하며 1부 리그 승격을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매 경기 많은 관중이 몰리며 전국구 구단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첫 시즌부터 상위권에 랭크되며 1부 리그 승격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었습니다. 전국 리그 참가는 구단 운영의 프로화와 상업화를 가속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수들은 지역 대회를 넘어 스페인 전역의 강호들과 겨루며 실력을 키웠습니다.
1934
[프리메라리가 역사적 첫 승격]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마침내 꿈에 그리던 스페인 최상위 리그 프리메라리가에 입성했습니다. 안달루시아 팀으로서는 최초로 1부 리그 무대를 밟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는 세비야가 명문 클럽으로 도약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승격 확정 후 세비야 시청 광장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축제를 벌였습니다. 공격적인 전술과 탄탄한 수비 조직력이 승격의 결정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시기 영입된 우수한 인재들은 훗날 우승 전력의 핵심으로 성장했습니다.
1935
[사상 첫 코파 델 레이 우승]
마드리드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사바델을 상대로 3대 0 대승을 거두며 첫 전국 대회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승격 첫 해에 컵 대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스페인 전역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캄파날 1세가 이끄는 공격진의 화력이 절정에 달했던 경기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세비야 FC는 중앙 집중적이었던 스페인 축구의 흐름을 남부로 가져왔습니다. 우승 트로피는 세비야 기차역에서부터 열렬한 환영 속에 클럽 하우스로 이송되었습니다.
1939
[내전 이후 두 번째 컵 대회 우승]
스페인 내전의 상흔을 딛고 재개된 제네랄리시모 컵(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라싱 페롤을 6대 2로 격파했습니다. 전쟁으로 중단되었던 축구 열기를 다시 불지피며 팬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명실상부한 컵 대회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캄파날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대승을 이끌어 경기장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쟁 직후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구단 운영진은 선수단을 빠르게 재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승리는 세비야 시민들에게 구단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1940
[전설적인 '스투카스' 공격진 형성]
로페스, 페피요, 캄파날, 라이문도, 베르소사로 이어지는 공포의 5인 공격진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들은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과시하며 라리가에서 가장 두려운 팀으로 군림하게 했습니다. 매 경기 평균 3골 이상을 기록하는 화끈한 공격 축구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독일 폭격기 '스투카'처럼 상대를 초토화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이들 공격진의 활약 덕분에 세비야는 리그 상위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세비야 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역대 최고의 공격 조합으로 꼽힙니다.
1946
[구단 역사상 유일무이한 리그 우승]
바르셀로나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며 사상 첫 라리가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전통의 강호들을 제치고 스페인 전체의 왕좌를 차지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안달루시아 팀이 라리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축구사에서도 매우 드문 기록입니다.
라몬 엔시나스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과 선수들의 헌신적인 수비가 만든 기적이었습니다. 우승이 확정된 날 밤 세비야 시내 전역에서는 밤샘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구단 박물관 중앙에 가장 영광스럽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1948
[세 번째 코파 델 레이 우승]
셀타 비고를 4대 1로 물리치고 통산 세 번째 컵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1940년대에만 세 번의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며 구단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팀의 노련미와 신예들의 패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대회였습니다.
마리아노가 두 골을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이 되어 팬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세비야는 이 우승을 통해 스페인 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구단 중 하나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우승 메달은 선수들의 가족과 연고지 팬들에게 헌정되었습니다.
1955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회장의 귀환]
구단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이 다시 회장직을 맡으며 제2의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구단의 영구적인 자산이 될 대형 경기장 건설 계획을 구체화했습니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아래 구단은 재정적, 행정적으로 급격히 현대화되었습니다.
그는 사재를 털어 구단의 빚을 탕감하고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는 헌신을 보였습니다. 선수 영입에서도 직접 발로 뛰며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구단 경기장의 이름이 그의 이름인 것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57
[유럽 대항전 역사적 첫 진출]
리그 준우승 자격으로 당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유러피언컵에 처음으로 참가했습니다. 스페인을 넘어 유럽의 명문들과 경쟁하며 구단의 이름을 전 대륙에 알렸습니다. 이는 훗날 세비야가 '유로파의 제왕'으로 성장하는 첫 씨앗이 되었습니다.
벤피카를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두며 유럽 무대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유럽 전역의 팬들은 세비야 특유의 열정적인 축구 스타일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도전은 선수들에게 더 큰 무대에 대한 꿈과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1958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경기장 완공]
구단의 새로운 성지이자 현재의 홈구장인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경기장이 공식 개장했습니다. 공사 기간 중 타계한 피스후안 회장의 꿈을 팬들이 이어받아 마침내 완성했습니다. 개장 경기에서는 레알 하엔을 상대로 축제 분위기 속에 승리했습니다.
경기장 외벽의 거대한 타일 모자이크는 구단의 역사와 상징을 담아 예술성을 더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관람 환경이 뛰어난 경기장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이곳은 이후 상대 팀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열광적인 '지옥의 경기장'으로 불리게 됩니다.
1968
[31년 만의 첫 2부 리그 강등]
지속적인 성적 부진으로 인해 오랜 시간 지켜온 1부 리그 자리를 내주고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명문 구단으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구단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였습니다. 팬들은 실망하면서도 팀을 재건하기 위한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재정적 어려움이 겹치며 강등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경영진은 유소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새로운 인재 발굴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강등되었으나 팬들의 응원은 끊이지 않았고 1년 만에 승격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1982
[스페인 월드컵과 경기장의 국제화]
1982년 월드컵 개최를 위해 홈구장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며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을 갖췄습니다. 프랑스와 서독의 역사적인 준결승전이 이곳에서 개최되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구단은 월드컵 개최를 통해 경기장 운영 노하우와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월드컵을 통해 보강된 조명 시설과 스탠드는 경기장의 가치를 크게 높였습니다. 세비야 시는 이 대회를 계기로 세계적인 축구 도시로서의 명성을 굳건히 했습니다. 팬들은 우리 경기장에서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뛰는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1992
[축구 황제 디에고 마라도나 영입]
전설적인 스타 마라도나가 세비야 유니폼을 입으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비록 한 시즌 동안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구단의 마케팅과 인지도 측면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보였습니다. 마라도나는 경기장에서 여전한 천재성을 과시하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빌라르도 감독의 부름을 받고 온 그는 세비야의 흰색 유니폼을 입고 많은 골을 도왔습니다. 그가 뛴 경기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구단 샵의 매출은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세비야 팬들에게 마라도나가 우리 선수였다는 사실은 영원한 자랑거리입니다.
1995
[강등 위기 극복과 팬들의 투쟁]
행정적 서류 미비로 인해 2부 리그로 강제 강등될 위기에 처했으나 팬들의 거센 항의로 철회되었습니다. 수만 명의 팬들이 세비야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구단을 지키기 위해 결집했습니다. 결국 축구 연맹이 결정을 번복하며 1부 리그 잔류가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구단의 소유주가 팬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팬들의 열정적인 행동은 스페인 축구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후 구단은 행정 시스템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2000
[몬치 단장의 부임과 시스템 혁신]
선수 출신인 몬치가 스포츠 단장으로 부임하며 구단 운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정교한 스카우팅 시스템을 도입하여 저비용 고효율의 선수 영입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부임은 세비야가 유럽의 강자로 부활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선수 분석과 탁월한 협상 능력으로 많은 이적료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다니 알베스, 라키티치 등 이름 없던 유망주들을 발굴해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냈습니다. '세비야 모델'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전 세계 축구 구단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습니다.
2006
[사상 첫 UEFA컵 우승 달성]
에인트호번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미들즈브러를 4대 0으로 완파하고 구단 역사상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수십 년간 기다려온 팬들에게 유럽 챔피언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는 세비야가 유럽 축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루이스 파비아누와 마레스카, 카누테의 연속 골로 상대를 압도적인 전력 차로 눌렀습니다. 우승 후 세비야 시는 흰색과 빨간색 물결로 뒤덮였고 성대한 축제가 이어졌습니다. 이 우승은 훗날 유로파리그 연패라는 전설적인 기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UEFA 슈퍼컵 제패와 바르사 격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바르셀로나를 3대 0으로 꺾고 유럽 최고의 왕좌에 올랐습니다. 당대 최강으로 불리던 바르셀로나를 무력화시키며 세비야의 전력이 세계적 수준임을 입증했습니다. 이 승리로 세비야는 단판 승부의 최강자라는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레나토와 카누테의 활약은 바르셀로나의 스타 군단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럽 전역의 언론들은 세비야의 전술적 완성도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트로피는 구단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단일 경기 승리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2007
[UEFA컵 2연패 위업 달성]
글래스고에서 열린 에스파뇰과의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회 역사상 매우 드문 연속 우승 기록을 세우며 유럽 무대의 절대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골키퍼 팔롭의 눈부신 선방쇼는 우승의 결정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팔롭은 승부차기에서 무려 3번의 선방을 기록하며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전 시즌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유로파 DNA'를 각인시켰습니다. 팬들은 이 우승으로 세비야가 유럽 축구의 새로운 명문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신했습니다.
[59년 만의 코파 델 레이 우승]
헤타페를 상대로 승리하며 반세기 넘게 기다려온 국왕컵 트로피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한 시즌에 유럽 대회와 국내 대회를 동시에 제패하는 '더블'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화려한 성적을 낸 시즌으로 기록됩니다.
카누테의 결승골로 1대 0 승리를 거두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 시기 세비야의 전력은 라리가 내에서도 우승 후보들과 대등하게 맞설 정도였습니다. 트로피 수여식에서 선수들은 팬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비극적 서거]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구단의 미래 안토니오 푸에르타가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세계 축구계는 큰 슬픔에 빠졌고 세비야 구단과 팬들은 영원한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의 등번호 16번은 세비야 정신의 상징이 되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푸에르타는 유스 출신으로 구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최고의 유망주였습니다. 그의 서거 이후 구단은 유소년 선수들의 건강 관리와 의료 시스템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홈구장에서 열리는 모든 경기의 16분에는 그를 기리는 박수가 울려 퍼집니다.
2010
[통산 다섯 번째 코파 델 레이 우승]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2대 0으로 격파하고 다시 한번 국내 무대 정상에 섰습니다. 시련의 시기를 극복하고 거둔 우승이라 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헤수스 나바스의 쐐기골은 우승을 확정 짓는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캄프 누에서 열린 결승전은 세비야 팬들의 압도적인 응원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세비야는 2000년대 들어 스페인에서 가장 성공적인 구단 중 하나임을 입증했습니다. 우승 트로피는 서거한 푸에르타에게 헌정되어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2013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부임]
전술의 귀재 우나이 에메리가 지휘봉을 잡으며 팀의 체질을 다시 한번 개선했습니다. 철저한 상대 분석과 맞춤형 전술로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부임은 세비야가 유럽 대항전에서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에메리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용병술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훈련장에서는 세밀한 전술 지시와 열정적인 지도로 선수들을 독려했습니다. 그의 체제 아래 세비야는 다시 한번 유럽 무대 정상을 향한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2014
[세 번째 유로파리그 우승]
토리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벤피카를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다시 한번 유럽 정상에 올랐습니다. 7년 만에 되찾은 유럽 타이틀에 팬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골키퍼 베투의 결정적인 선방이 우승을 결정지었습니다.
경기 내내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으나 집중력에서 세비야가 한 수 위였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세비야는 유로파리그라는 대회가 자신들에게 특별한 무대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우승 후 귀국한 선수단은 수십만 시민의 환대 속에 우승 퍼레이드를 가졌습니다.
2015
[유로파리그 통산 4회 최다 우승]
드니프로를 3대 2로 꺾고 대회 통산 4회 우승을 차지하며 단독 최다 우승팀이 되었습니다. 공격적인 전술로 역전승을 일궈내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팀 컬러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자동 진출권까지 확보했습니다.
카를로스 바카의 멀티골 활약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열린 결승전은 세비야의 공격 축구가 절정에 달했던 경기였습니다. 구단은 이 우승으로 유럽 내 위상을 확고히 하며 명문 구단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016
[전무후무한 유로파리그 3연패]
리버풀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대회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유럽 대항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압도적인 성취로 축구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후반전에만 세 골을 몰아치는 집중력이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바젤에서 열린 결승전은 세비야의 끈질긴 승부 근성이 빛난 명경기였습니다. 주장 코케의 멀티골은 리버풀의 강력한 압박을 무력화시킨 결정적 장면이었습니다. 유럽 전역은 세비야를 '유로파리그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2020
[여섯 번째 유로파리그 제패]
인터밀란과의 혈투 끝에 승리하며 통산 6회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악조건 속에서도 단결된 힘으로 정상을 지켰습니다. 루크 더 용의 헤더 골들은 세비야가 왜 이 대회의 강자인지 증명했습니다.
독일에서 무관중으로 열린 토너먼트에서 세비야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로페테기 감독은 이 우승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증명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팬들은 비록 경기장에서 함께하지 못했지만 랜선 응원을 통해 기쁨을 나눴습니다.
2023
[기적의 일곱 번째 유로파리그 우승]
로마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통산 7회 우승을 차지하며 유로파리그의 제왕임을 선포했습니다. 시즌 초반 강등권 위기에 몰렸던 최악의 상황을 딛고 거둔 기적 같은 반전이었습니다. 멘딜리바르 감독의 실용적인 축구가 팀을 다시 유럽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결승전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전개로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헤수스 나바스는 주장으로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구단의 영광을 재확인했습니다. 세비야는 다시 한번 '유로파리그 DNA'가 무엇인지 전 세계에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2024
[헤수스 나바스의 종신 계약]
구단 역사상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진 레전드 나바스가 구단과 평생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에도 구단의 홍보 대사나 행정직으로 남아 동행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는 구단과 선수 사이의 깊은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나바스는 세비야 시 출신으로 팀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깊은 선수입니다. 팬들은 그가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나바스의 팀'이라 부르며 찬사를 보냅니다. 그의 헌신적인 태도는 세비야 유소년 선수들에게 가장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