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공과대학교
공과대학교, 교육기관, 이탈리아 대학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10:14:01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밀라노 공과대학교는 1863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교육기관입니다. 42,000명의 학생을 보유한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공과대학교로, 공학, 건축학,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문입니다.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여러 핵심 분야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며 그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1863
[브레라 아카데미와의 협력]
공학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적 소양을 결합하기 위해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와 협력 관계를 맺습니다. 이를 통해 기술과 미학이 결합된 독특한 교육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합니다.
이 협력은 훗날 학교가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공학도들에게도 예술적 감각을 강조하는 전통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기술의 효율성과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학교의 철학이 형성된 시기입니다.
[팔라초 델 세나토 첫 둥지]
밀라노 시내의 유서 깊은 건물인 팔라초 델 세나토에 첫 캠퍼스를 마련합니다. 과거 헬베틱 대학으로 쓰이던 공간에서 근대 기술 교육의 첫 삽을 뜨게 됩니다.
초기에는 공간이 협소했으나 학문적 열정만큼은 도시 전체에 퍼져 나갔습니다.
유서 깊은 건축물에서의 시작은 학교의 전통과 권위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곳은 현재 이탈리아의 중요한 역사적 기록 보관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프란체스코 브리오스키 취임]
저명한 수학자인 프란체스코 브리오스키가 초대 이사장이자 수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는 학교의 기초를 닦으며 학문적 엄격함과 실용적인 교육관을 조화시키는 데 주력합니다.
브리오스키는 학교의 비전을 제시하고 초기 학제를 설계한 핵심 인물입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학교는 빠른 속도로 안정적인 교육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1897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의 초기 성장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이탈리아 최고의 공대 탄생]
밀라노의 산업과 예술 발전을 목표로 하는 기술 고등 연구소가 공식적으로 설립됩니다. 초기에는 공학 부문의 단일 교육 체제로 시작하여 지역 사회와 상공회의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정식 명칭은 '왕립 기술 고등 연구소(Regio Istituto Tecnico Superiore)'였습니다.
밀라노 시와 지방 정부, 그리고 상공회의소 및 문화 협회들이 설립에 기여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이탈리아에서 전문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 열망의 결실이었습니다.
1865
[건축학 교육의 전격 개시]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가 카밀로 보이토의 제안으로 건축학 과정이 처음으로 신설됩니다. 이는 단순 공대를 넘어 종합적인 설계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됩니다.
카밀로 보이토(Camillo Boito)는 이탈리아 현대 건축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인물입니다.
건축학 신설을 통해 공학적 안정성과 미적 완성도를 모두 가르치는 독보적인 학풍이 확립되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건축 순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화려한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1866
[카보우르 광장으로 본부 이전]
늘어나는 학생 수와 확장되는 교과 과정을 수용하기 위해 팔라초 델라 카노니카로 본부를 옮깁니다. 도심 내의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카보우르 광장에 위치한 이 건물은 학교의 인지도와 접근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더 현대적인 실험실과 강의실을 갖추어 교육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이곳은 밀라노 공대 교육의 상징적인 장소로 기능했습니다.
1897
[주세페 콜롬보 총장 취임]
이탈리아의 위대한 공학자이자 정치가인 주세페 콜롬보가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학교에 실용주의적 혁신을 도입하며 전기 공학 분야의 발전을 주도합니다.
콜롬보는 유럽 최초의 화력 발전소인 산타 라데곤다 발전소를 설계한 인물입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학교는 기업들과의 밀접한 산학 협력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1921년까지 20년 넘게 재임하며 대학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1913
[종합 캠퍼스 조성 협약]
국가와 시,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협력하여 흩어진 교육 시설을 한곳으로 모으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도시 외곽 지역을 새로운 교육 도시로 개발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협약을 통해 오늘날의 '치타 스투디(Città Studi)' 지구가 계획되었습니다.
중앙 집중화된 캠퍼스 환경은 연구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고등 교육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지향하는 국가적 의지가 담긴 협약이었습니다.
1916
[최초의 여성 교수 임용]
비체 네피가 기술 화학 교수로 임용되며 남성 중심이던 학계의 벽을 허뭅니다. 이는 이탈리아 고등 교육계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비체 네피(Bice Neppi)는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의 교육 참여권을 확대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학교는 더 많은 여성 공학자와 건축가를 배출하는 포용적인 학풍을 갖게 되었습니다.
1921
[체사레 살디니 총장 선임]
학교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체사레 살디니가 총장직을 맡게 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전임 총장의 혁신적 정책을 계승하며 안정적인 전환기를 마련합니다.
그는 행정 시스템의 효율화와 연구 역량 강화에 집중했습니다.
대내외적인 변혁의 시기에 학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심축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22년까지 재임하며 다음 총장인 루이지 주니니에게 성공적으로 임무를 전달했습니다.
1922
[루이지 주니니 총장 시대]
루이지 주니니가 새로운 총장으로 취임하여 캠퍼스 이전과 확장 계획을 구체화합니다. 그는 물리적인 인프라 확충이 교육의 질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합니다.
주니니는 신규 캠퍼스 부지 확보와 설계 검토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연구 설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1925년까지 학교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데 헌신했습니다.
1926
[가우덴치오 판톨리 총장 취임]
가우덴치오 판톨리가 총장으로 부임하며 학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건축 프로젝트인 신캠퍼스 이전을 지휘합니다. 그는 기술 혁신을 상징하는 현대적인 공간 창출에 집중합니다.
판톨리는 1940년까지 재임하며 학교의 외형적 성장과 내실을 동시에 다졌습니다.
특히 치타 스투디 지구가 밀라노의 교육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학교는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엘리트 교육 기관이 되었습니다.
1927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장 정초]
치타 스투디 지구의 중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장에 새로운 본부 건물의 머릿돌을 놓습니다. 이는 밀라노 공대가 현대적 대학 캠퍼스로서 완성되는 역사적인 시작점이었습니다.
당시 최신 건축 공법과 예술적 감각이 결합된 대규모 복합 공간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곳은 현재까지도 밀라노 공대의 심장이자 학생들의 학문적 안식처로 불립니다.
광장 주변으로 다양한 연구동들이 유기적으로 배치되는 현대적 캠퍼스 설계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치타 스투디 본부 공식 개교]
신규 캠퍼스가 완공되어 공식적인 교육 활동이 시작됩니다. 당시 이름은 '밀라노 왕립 공학 학교(Regia Scuola di Ingegneria di Milano)'였으며 현대적 공학 교육의 성지로 부상합니다.
넓어진 교사와 최첨단 실험실 덕분에 연구 역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지역 산업계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실질적인 기술 이전이 활발해졌습니다.
밀라노의 도시 경관에도 큰 변화를 준 건축적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1933
[밀라노 공과대학교 명칭 변경]
공학 전문 학교를 넘어선 포괄적 위상을 반영하여 현재의 이름인 '밀라노 공과대학교(Politecnico di Milano)'로 개칭합니다. 법적 지위와 명칭의 변화를 통해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합니다.
기존의 기술 연구소 이미지를 탈피하고 본격적인 대학(Politecnico) 체제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 시기부터 이탈리아 내 최고의 공공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법적 권위를 보장받았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통용되는 현재의 브랜드를 확립한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938
[공학 및 건축 대학의 분리]
학문적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학 조직을 공학대학과 건축대학의 두 개의 독립적인 체제로 개편합니다. 각 분야의 독립적인 교육 과정과 연구 자율성이 보장되기 시작합니다.
전문화된 학문 구조를 통해 연구의 깊이를 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각 학파의 고유한 전통이 존중되면서도 상호 교류를 통한 융합 시너지를 노렸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학교의 강력한 이분법적, 혹은 융합적 조직 구조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1940
[카를로 아지몬티 총장 취임]
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카를로 이스나르도 아지몬티가 총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는 어려운 대외 환경 속에서도 학생들의 교육권 보호와 학교 시설 유지에 최선을 다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학문적 연속성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은 이탈리아 근현대사의 격변기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1943년까지 학교의 수장으로서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1943
[저항 운동과 학생들의 희생]
나치 파시즘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많은 학생과 교수진이 참여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은 학교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깁니다.
카를로 체리니, 마리오 플로레스 등 많은 이들이 전투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훗날 국가로부터 금메달 무공훈장을 받으며 영웅으로 기억되었습니다.
학교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944
[지노 카시니스 총장 시대]
전쟁 후 재건의 임무를 띠고 지노 카시니스가 새로운 총장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파괴된 교육 인프라를 복구하고 학교를 현대적인 첨단 연구 기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카시니스는 1960년까지 재임하며 학교를 다시 유럽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경제 기적의 시기에 필요한 기술적 동력을 학교가 제공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는 행정가이자 학자로서 학교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습니다.
[전몰 학생 명예 학위 수여]
전쟁 중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학생들에게 사후 명예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그들이 미처 마치지 못한 학문에 대한 열정을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예우합니다.
희생된 청년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정의로운 선택을 기리는 의식이었습니다.
카를로 체리니 등 주요 전사자들에게 학위가 전달되었습니다.
이는 학교가 단순한 지식 전달 장소가 아닌 가치와 신념의 공동체임을 선포한 사건이었습니다.
1953
[유럽 최초 전자 계산 센터]
지노 카시니스와 에르콜레 보타니의 주도로 유럽 대륙 최초의 전자 계산 센터를 건립합니다. 이는 이탈리아가 정보통신 기술 시대에 선구적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인 CRC 102A를 도입하여 데이터 처리의 신원을 열었습니다.
당시 전산 자원은 국가적 전략 자산으로 간주될 만큼 그 가치가 컸습니다.
이후 밀라노 공대는 컴퓨터 공학과 인공지능 연구의 메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960
[지노 보차 총장 취임]
과학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지노 보차가 총장으로 취임하여 학문적 지평을 넓힙니다. 그는 특히 화학과 재료 공학 분야의 기초 연구를 장려하여 큰 성과를 거둡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원자력 및 동위원소 연구를 위한 특수 연구소들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기반은 훗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1967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의 연구 수준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게 했습니다.
1963
[줄리오 나타 노벨상 수상]
밀라노 공대의 줄리오 나타 교수가 합성 고분자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합니다. 이는 학교의 연구 역량이 세계 최정상임을 입증한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나타 교수는 폴리프로필렌을 발명하여 현대 화학 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 발견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플라스틱 제품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공학 교육의 자존심을 세운 사건으로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1964
[보나르디 거리 신축 본부]
비아 보나르디에 건축학부를 위한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완공합니다. 이는 기존 본부의 혼잡을 해소하고 건축 교육의 특수성을 살린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설계가 도입된 이 건물은 그 자체로 건축 교육의 교재가 되었습니다.
많은 건축 전공 학생들이 이곳에서 밤을 새우며 자신의 비전을 설계했습니다.
학교의 물리적 확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사례가 되었습니다.
1967
[브루노 핀치 총장 취임]
수학적 엄밀함을 강조하는 브루노 핀치가 새로운 총장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공학의 기초가 되는 이론 과학 교육의 강화를 통해 학생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려 노력합니다.
핀치는 기초 과학과 응용 공학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교육 과정의 내실을 기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의 철학은 학교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를 키우는 데 기여했습니다.
1969
[프란체스코 카라사 총장 취임]
통신 공학의 선구자인 프란체스코 카라사가 총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는 다가올 정보화 시대를 대비하여 우주 통신 및 전자 공학 연구를 대폭 지원합니다.
카라사는 인공위성 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였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학교는 국가적 우주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로 성장했습니다.
1972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의 미래 지향적인 연구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1972
[루이지 다다 총장 시대]
이탈리아 전산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이지 다다가 총장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12년 동안 재임하며 학교를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로 인도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다 총장은 정보 공학 학제 개편과 연구 인프라 디지털화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밀라노 공대는 유럽 내 정보통신 연구의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교육자로서뿐만 아니라 뛰어난 기술 행정가로 평가받았습니다.
1977
[시리오 인공위성 발사 성공]
밀라노 공대가 주도적으로 개발에 참여한 이탈리아 최초의 통신 위성 시리오(Sirio)가 궤도에 진입합니다. 이는 대학이 우주 항공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가졌음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위성 개발 과정에서 얻은 기술은 이탈리아 통신 산업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고도의 정밀 공학과 통신 프로토콜 기술이 집약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대학과 산업계, 국가 연구 기관이 협력한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1979
[MIP 비즈니스 스쿨 설립]
공학 지식과 경영 능력을 결합한 인재 양성을 위해 경영 대학원인 MIP를 설립합니다. 이는 기술 중심 대학이 경영 분야로 외연을 확장한 선도적인 시도였습니다.
기업들의 경영 수요에 부응하는 맞춤형 MBA 과정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POLIMI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로 명칭을 변경하며 글로벌 명성을 얻었습니다.
기술직 종사자들이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 경로가 되었습니다.
1984
[아리고 발라타 총장 취임]
아리고 발라타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학교의 내실 있는 운영을 이어갑니다. 그는 특히 학생들의 복지와 학습 환경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며 대학 공동체의 활성화를 꾀합니다.
그는 대학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내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안정적인 학업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1987년까지 재임하며 다음 도약을 위한 기반을 닦았습니다.
1987
[에밀리오 마사 총장 시대]
에밀리오 마사가 총장으로 취임하여 캠퍼스 네트워크 확장이라는 대담한 전략을 실행합니다. 그는 밀라노를 넘어 롬바르디아주 전역으로 대학의 영향력을 넓히는 데 주력합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다수의 지방 캠퍼스가 계획되고 문을 열었습니다.
지역 경제와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1994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의 지리적 한계를 허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9
[보비사 캠퍼스 그랜드 오픈]
밀라노의 산업 유휴지였던 보비사 지구에 새로운 대형 캠퍼스를 조성하고 운영을 시작합니다. 이는 대학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지역 재생에도 기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가스 탱크와 공장 부지가 있던 곳이 최첨단 연구소와 강의실로 변모했습니다.
현재는 디자인과 항공 우주 공학 등 주요 학문 분야의 중심지로 기능합니다.
치타 스투디와 함께 밀라노 공대의 두 축을 이루는 핵심 거점이 되었습니다.
[코모 및 레코 캠퍼스 개소]
밀라노 인근 도시인 코모와 레코에 멀티 캠퍼스를 열어 지역 밀착형 교육을 강화합니다. 이는 '네트워크화된 공과대학'이라는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 첫 번째 지방 확장입니다.
각 지역의 특화 산업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쾌적한 학습 환경을, 기업에게는 우수한 인력을 제공했습니다.
지방 분권화된 고등 교육 모델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1991
[크레모나 캠퍼스 운영 개시]
음악과 기술의 도시 크레모나에 새로운 교육 시설을 마련합니다. 이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연계된 공학 연구와 교육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크레모나 캠퍼스는 소규모이면서도 내실 있는 교육 과정을 자랑합니다.
특히 농업 기술 및 식품 공학 관련 연구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강력한 지원 속에 독자적인 연구 분야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1993
[디자인 학위 과정의 탄생]
기존 건축학부의 세부 과정으로 존재하던 디자인 교육을 정식 학위 과정으로 독립시킵니다. 이는 이탈리아 디자인 산업의 전문화 요구에 부응하는 학문적 결정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풍부한 디자인 자산을 체계적인 공학 교육과 결합했습니다.
독립된 커리큘럼을 통해 창의성과 기술력을 동시에 갖춘 디자이너를 양성했습니다.
이 결정은 훗날 디자인 전용 학부를 신설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1994
[아드리아노 데 마이오 취임]
시스템 공학 전문가인 아드리아노 데 마이오가 총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는 대학의 국제화와 산학 협력 시스템의 현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대학을 이끕니다.
그는 밀라노 공대의 이름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식되도록 마케팅 전략을 도입했습니다.
유럽 내 유수 대학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2002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관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만토바 캠퍼스 전격 개설]
역사적인 도시 만토바에 건축과 문화 유산 보존에 특화된 캠퍼스를 설립합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만토바의 특성을 살린 실천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합니다.
고대 건축물의 복원과 현대적 활용을 연구하는 최적의 장소로 꼽힙니다.
이곳의 학생들은 실제 역사적 유적지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무를 익힙니다.
문화재 보존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997
[피아첸차 캠퍼스 최종 설립]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피아첸차에 새로운 교육 거점을 확보하며 네트워크 확장을 마무리합니다. 이를 통해 지리적으로 광범위한 고등 교육 공급망을 완성하게 됩니다.
에너지 공학과 기계 공학 분야에서 특히 강점을 보이는 캠퍼스입니다.
지역의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긴밀한 산학 협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드는 국제적인 학습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2000
[디자인 대학 공식 독립]
디자인 분야의 전문성과 성장세를 반영하여 독립된 디자인 단과대학을 공식 출범시킵니다. 이로써 공학, 건축과 함께 대학을 지탱하는 세 번째 핵심 축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최초의 대학 수준 디자인 전문 단과대학입니다.
산업 디자인, 패션 디자인, 시각 디자인 등 세부 전공의 전문성을 높였습니다.
설립과 동시에 전 세계 디자인 교육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부상했습니다.
2002
[밀라노 공대 재단 설립]
대학과 민간 기업, 공공 기관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위해 '밀라노 공과대학교 재단'을 창립합니다. 이를 통해 연구 자금 유치와 기술 상용화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입니다.
기업의 요구를 연구 현장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합니다.
스타트업 육성과 기술 이전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합니다.
대학의 지적 자산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핵심 기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줄리오 발리오 총장 취임]
교량 및 구조 공학의 권위자인 줄리오 발리오가 새로운 총장으로 선출됩니다. 그는 대학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캠퍼스 시설의 현대화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는 2010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학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교수와 학생 간의 활발한 소통을 장려했습니다.
글로벌 랭킹 상승을 위한 전략적인 연구 지원 정책을 펼쳤습니다.
[새로운 브랜드 로고 도입]
대학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로고를 디자인하고 공개합니다. 유서 깊은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결합된 상징물이 탄생했습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중 유클리드 부분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기하학적 질서와 지적 탐구의 정신을 형상화한 디자인입니다.
서체로는 시대를 초월한 세련미를 자랑하는 푸투라(Futura)를 채택했습니다.
2004
[알타 스쿠올라 폴리테크니카]
토리노 공과대학교와 협력하여 최정예 인재를 양성하는 우수 학교(ASP)를 공동 설립합니다. 이탈리아의 두 거물 공대가 힘을 합쳐 미래의 기술 리더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최상위권 학생들을 선발하여 다학제적 융합 교육을 실시합니다.
기업 프로젝트와 연계된 실전적인 교육 과정이 특징입니다.
두 대학의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교육 시너지를 극대화한 모범 사례입니다.
2010
[조반니 아초네 총장 시대]
경영 공학자인 조반니 아초네가 총장으로 임명되어 대학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끕니다. 그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 시스템을 도입하여 대학 행정을 혁신합니다.
온라인 교육 시스템 확충과 국제 연구 협력 강화에 힘썼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학의 글로벌 인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2016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을 성과 중심의 현대적 조직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2013
[석사 전 과정 영어 수업 선언]
국제적 경쟁력을 위해 석사 학위 전 과정을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발표합니다. 비록 이탈리아어 보존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으나 진정한 국제화를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전 세계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글로벌 노동 시장에서 졸업생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탈리아 대학 중 가장 선도적으로 영어 교육 체제를 안착시킨 사례입니다.
2015
[설립 150주년 기념 로고 개편]
개교 150주년을 기념하여 기존 로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통합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오랜 역사의 권위 위에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덧입히는 작업이 수행되었습니다.
시각적 요소들을 간결하게 다듬어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했습니다.
대학의 자부심과 미래 지향적 비전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전 캠퍼스에 걸쳐 통일된 브랜드 정체성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7
[페루초 레스타 총장 취임]
기계 공학 전문가인 페루초 레스타가 총장으로 선출되어 산학 연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합니다. 그는 기업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대학 연구의 실전성을 강화합니다.
2022년까지 재임하며 대학의 물리적 공간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치타 스투디와 보비사 캠퍼스의 대규모 리모델링을 추진했습니다.
이탈리아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겸임하며 국가 교육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모 캠퍼스의 성공적 폐쇄]
운영 효율화와 자원의 집중을 위해 코모 캠퍼스의 교육 활동을 종료하고 주요 과정을 밀라노로 통합합니다. 이는 거점 캠퍼스 중심의 성장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더 나은 연구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학과들을 재배치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었습니다.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부지를 다른 공공 목적으로 전환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2019
[중국 시안 해외 캠퍼스 개소]
중국 시안 교통대학과 협력하여 최초의 해외 공동 교육 기관인 XJTU-POLIMI 조인트 스쿨을 설립합니다. 이는 밀라노 공대의 교육 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으로 수출된 상징적 사건입니다.
아시아 시장으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의미하는 거점이 마련되었습니다.
두 명문 공대의 기술력이 결합된 혁신적인 교육 과정을 운영합니다.
이탈리아 대학 중 해외에 이처럼 큰 규모의 분교 형태를 갖춘 드문 사례입니다.
2022
[최초의 여성 총장 탄생]
도나텔라 슈토 교수가 16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 선출되는 역사를 씁니다. 유리천장을 깨뜨린 그녀의 당선은 전 세계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슈토 교수는 컴퓨터 공학 분야의 권위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대학 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걸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여성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2023
[기계 공학 세계 7위 달성]
QS 세계 대학 평가에서 기계, 항공 우주, 제조 공학 부문 세계 7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위상을 과시합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술력을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수많은 글로벌 기술 기업들과의 공동 연구 성과가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졸업생들의 뛰어난 평판과 연구 논문의 인용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했습니다.
이탈리아 공학 교육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영광스러운 결과입니다.
[디자인 및 예술 부문 8위]
디자인 분야에서도 세계 8위에 오르며 디자인 명문 대학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합니다. 공학과 예술의 완벽한 융합이 가져온 독보적인 교육 성과로 평가됩니다.
창의적인 설계 능력과 실질적인 제작 기술을 동시에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주효했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등 글로벌 행사에서의 활발한 참여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 세계 예비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망하는 교육 기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축학 분야 세계 10위권]
건축학 부문에서 세계 10위를 기록하며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밀라노 공대의 건축 철학을 전 세계에 알립니다. 전통 보존과 미래 도시 설계 사이의 균형을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렌초 피아노, 알도 로시 등 거장들을 배출한 명성이 데이터로 증명되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과 스마트 시티 연구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 건축학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중입니다.
[토목 공학 세계 12위 랭크]
토목 및 구조 공학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차지하며 인프라 설계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합니다. 복잡한 도시 환경에 최적화된 토목 기술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내진 설계와 스마트 인프라 관리 시스템 연구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기관과의 대규모 도시 계획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입니다.
졸업생들은 전 세계 주요 건설 및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도나텔라 슈토 임기 개시]
신임 총장 도나텔라 슈토가 공식 업무를 시작하며 인공지능과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대학의 미래 청사진을 발표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인류 문명의 진보를 강조합니다.
그녀는 연구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가이드라인 확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AI 기술을 전 학문에 통합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실행 중입니다.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탄력적인 대학 조직을 꿈꾸고 있습니다.
2024
[브랜드 아이덴티티 3.0]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 맞춰 대학의 상징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한 브랜드 가이드라인 3.0을 발표합니다. 더 단순하고 강력해진 시각 언어를 통해 대학의 메시지를 전파합니다.
기존 로고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도 세부 획을 최적화하여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Polimi'라는 친숙한 애칭을 활용한 서브 브랜드를 도입하여 대중과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각 전공 분야별 상징 색상을 지정하여 학문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했습니다.
2025
[세계 100대 대학 진입]
QS 세계 대학 종합 순위에서 처음으로 98위를 기록하며 꿈의 'TOP 100'에 진입합니다. 이는 이탈리아 대학 중 유일한 성과이자 기술 중심 대학의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학문적 평판, 졸업생 고용 가능성, 연구 인용도 등 모든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전폭적인 연구 투자와 국제화 전략이 가져온 값진 결실입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최고 수준의 명문 대학임을 전 세계에 공표한 역사적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