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스포츠 구단, 농구팀, KBL, 울산광역시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0- 11:55:14
기아자동차에서 시작해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역사는 한국 농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0년대 농구 대잔치 시절 ‘기아 왕조’를 구축하며 무적의 팀으로 군림했고, 1997년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첫 챔피언에 오르며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울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뒤 유재학 감독 지휘 아래 양동근, 함지훈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 7차례의 플레이오프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습니다. 철저한 시스템 농구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KBL 역대 최다 우승 및 최다 승리 기록을 보유하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86
[기아자동차 농구단 창단]
한국 농구의 전설적인 왕조가 될 기아자동차 농구단이 공식적으로 창단되었습니다.
아마추어 농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기존 실업 농구의 판도를 뒤흔들었습니다.
방열 감독을 중심으로 한국 농구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길 준비를 마쳤습니다.
창단 초기부터 김유택, 한기범 등 장신 센터진을 확보하며 골밑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허재와 강동희가 합류하면서 이른바 '허-동-택' 트리오라는 무적의 조합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아마추어 시절 농구대잔치를 제패하며 수많은 팬들을 농구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1988
[농구대잔치 첫 정상 등극]
실업 농구 최고 권위의 농구대잔치에서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대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농구에서 기아자동차의 시대를 대외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조직적인 수비와 폭발적인 공격력을 바탕으로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기존 강자였던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를 압도하는 경기력으로 농구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기아자동차는 7년 연속 농구대잔치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우승의 주역들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하여 아시아 무대에서도 맹활약했습니다.
1996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전환]
프로농구 출범을 앞두고 부산광역시를 연고로 하여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로 개편되었습니다.
기업형 구단에서 본격적인 프로 스포츠 구단으로 변모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기존의 강력한 전력을 유지한 채 프로 무대에서의 초대 챔피언을 정조준했습니다.
부산 사직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부산 농구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습니다.
허재, 강동희, 김유택 등 주축 선수들이 그대로 프로 무대에 입성하며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구단 명칭인 '엔터프라이즈'는 당시 기아의 고급 승용차 모델명에서 따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1997
[강동희 정규리그 MVP 선정]
구단의 주전 가드 강동희 선수가 KBL 최초의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현란한 드리블과 정교한 패스로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기아 왕조의 야전사령관으로서 팀 우승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평균 두 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상대 팀의 수비를 무력화시키는 마법 같은 패스를 선보였습니다.
허재 선수와 함께 결성한 백코트 진은 상대 팀들에게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습니다.
이 수상은 강동희 선수가 한국 농구 최고의 포인트가드라는 위상을 공고히 한 역사적 순간입니다.
[KBL 초대 챔피언 등극]
프로농구(KBL) 원년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프로농구 사상 첫 왕좌에 올랐습니다.
안양 SBS와 원주 나래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라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전국적인 농구 열풍 속에서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프로 무대에서도 무적임을 입증했습니다.
결승전에서 원주 나래 블루버드를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4승 1패로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 기록은 KBL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영광입니다.
강동희 선수가 초대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포인트가드임을 증명했습니다.
1998
[허재의 고군분투와 준우승]
챔피언 결정전에서 대전 현대와 접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부상 투혼을 발휘한 허재 선수의 활약은 우승팀보다 더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비록 트로피는 놓쳤으나 농구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준 명승부로 기억됩니다.
허재 선수는 손등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붕대를 감고 출전하여 팀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패배한 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챔피언 결정전 MVP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후 허재 선수는 원주 TG로 이적하며 기아와의 길었던 인연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2001
[현대모비스 구단 인수]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기아자동차 농구단을 공식적으로 인수했습니다.
재정적 안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명가 재건을 위한 중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아 왕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모비스만의 색깔을 입히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기존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선수단과 사무국 조직을 모두 승계하여 연계성을 유지했습니다.
구단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모비스 본사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인수는 향후 모비스가 KBL을 지배하는 거대 강팀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울산광역시 연고지 이전]
연고지를 부산에서 울산광역시로 이전하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울산 동천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프로 농구의 즐거움을 전했습니다.
울산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새로운 도전을 선포하며 팀 분위기를 일신했습니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탄생과 함께 지역 밀착 마케팅을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동천체육관은 울산 농구 팬들의 열기로 가득 찼으며, 선수단에게는 최고의 시설을 제공했습니다.
이 연고지 이전은 울산이 한국 농구의 새로운 메카로 거듭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출범]
울산에서의 첫 시즌을 맞아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부품 전문 기업인 모비스의 이미지를 담아 창의적인 구단 명칭을 정했습니다.
팀의 상징 색상을 빨간색으로 정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오토몬스(Automons)는 자동차 부품을 뜻하는 오토모빌과 몬스터의 합성어로 지어졌습니다.
초기 프로필 촬영과 유니폼 디자인 공개는 울산 농구 팬들에게 큰 기대를 심어주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팀은 성적 향상을 위한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2004
[양동근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
한양대학교 출신의 양동근 선수를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했습니다.
구단의 20년을 책임질 위대한 영웅이자 한국 농구의 아이콘이 팀에 합류했습니다.
유재학 감독의 지도 아래 팀의 중추적인 포인트가드로 성장할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양동근 선수는 데뷔 첫해부터 뛰어난 수비력과 돌파력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지명은 KBL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드래프트 결과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양동근은 이후 팀의 주장을 맡아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전설이 됩니다.
[유재학 감독 제10대 사령탑 취임]
명장 유재학 감독이 울산 모비스의 새로운 지휘봉을 잡으며 전설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정교한 전술과 철저한 수비를 강조하는 '시스템 농구'가 팀에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고강도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근성과 전술 이행 능력을 높였습니다.
이후 18년 동안 팀을 이끌며 KBL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부임은 울산 모비스가 단순한 팀을 넘어 하나의 농구 철학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명칭 변경]
팀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구단명을 변경했습니다.
태양의 신인 '피버스(Phoebus)'에서 따와 밝고 열정적인 구단 이미지를 지향했습니다.
연고지 울산 시민들과 더욱 친숙해지기 위한 브랜드 마케팅을 전개했습니다.
피버스는 열정적이고 끊임없이 타오르는 승리욕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새로운 마스코트와 로고를 공개하며 명가 재건을 향한 의지를 다졌습니다.
이후 이 명칭은 울산을 상징하는 스포츠 브랜드로 깊게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2005
[정규리그 1위 달성]
유재학 감독 부임 두 번째 시즌 만에 정규리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리빌딩 중인 팀으로 우승 후보가 아니라는 평가를 뒤엎은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탄탄한 조직력과 끈질긴 수비를 바탕으로 리그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양동근과 김동우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정규리그 제패의 핵심이었습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팀의 밝은 미래를 확인했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만재학'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술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2006
[양동근 정규리그 MVP 수상]
팀의 주축 양동근 선수가 데뷔 2년 만에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리그 최고의 수비수이자 해결사로서 팀을 다시 한번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습니다.
이 수상은 양동근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경기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코트를 휘저으며 공수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포인트가드로서의 조율 능력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3점슛 능력까지 갖춘 육각형 선수가 되었습니다.
양동근의 성장과 함께 모비스의 성적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습니다.
2007
[함지훈 드래프트 지명]
중앙대학교 출신의 함지훈 선수를 신인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지명했습니다.
팀의 포스트를 책임질 영리한 빅맨이자 또 다른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비교적 낮은 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재학 감독의 혜안으로 팀에 합류했습니다.
함지훈은 데뷔 직후 뛰어난 패스 감각과 골밑 기술로 리그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이른바 '함지훈 컨트롤 타워' 전술은 모비스 농구의 핵심 전술이 되었습니다.
양동근과 함지훈은 모비스의 영광을 함께하는 최강의 토종 듀오로 성장했습니다.
[프로 통산 두 번째 챔피언 등극]
창원 LG와 부산 KTF를 차례로 꺾고 플레이오프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0년 만에 되찾은 왕좌였으며 울산 연고지 이전 이후 첫 우승의 쾌거였습니다.
명장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 선수의 '우승 콤비'가 결실을 맺은 해였습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부산 KTF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정상에 섰습니다.
양동근 선수가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하며 팀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이 우승은 훗날 모비스가 리그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2009
[정규리그 통산 세 번째 1위]
양동근 선수의 군 입대 중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함지훈 선수가 팀의 중심이 되어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선수 한 명에 의존하지 않는 모비스만의 시스템 농구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유재학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과 함지훈의 기량 만개가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비록 4강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탈락했으나 팀의 깊이를 증명한 시즌이었습니다.
구단은 이 시기 선수단의 고른 기량 발전을 위해 훈련 강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2010
[플레이오프 세 번째 우승]
전주 KCC를 챔피언 결정전에서 제압하고 구단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함지훈 선수가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MVP를 모두 휩쓰는 대기록을 썼습니다.
양동근의 복귀와 함께 완벽한 전력을 구축하며 리그를 평정했습니다.
함지훈은 정교한 뱅크슛과 어시스트로 KCC의 높은 골밑을 무력화했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부임 후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명장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이 우승으로 울산 시민들은 모비스 농구에 더욱 깊은 애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재학 감독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팀의 사령탑인 유재학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모비스의 수비 전술을 대표팀에 이식하여 국제 무대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감독의 국제적 활약은 구단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모비스의 주축인 양동근 선수도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며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비록 결승에서 중국에 아쉽게 패했으나 한국 농구의 투혼을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감독과 핵심 선수의 부재 중에도 모비스는 리그에서 건실하게 버티며 전력을 유지했습니다.
2012
[현대모비스 농구전용훈련장 개관]
경기도 용인시에 국내 최고 수준의 농구 전용 훈련장인 '모비스 체육관'을 개관했습니다.
과학적인 훈련 시스템과 휴게 시설을 갖추어 선수단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체계적인 선수 육성을 위한 구단의 장기적인 투자 의지가 돋보인 사건입니다.
숙소와 체육관이 일체형으로 구성되어 선수들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재활 치료실과 분석실 등 첨단 장비를 구비하여 전력 향상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서 흘린 땀방울은 훗날 모비스 왕조의 세 차례 연속 우승이라는 결실로 돌아왔습니다.
[리카르도 라틀리프 영입]
훗날 한국인으로 귀화하게 될 전설적인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를 영입했습니다.
골밑에서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성실한 플레이로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양동근-함지훈-라틀리프로 이어지는 최강의 삼각 편대가 완성된 시기입니다.
라틀리프는 데뷔 첫해부터 리그 최고의 리바운더이자 득점원으로 활약했습니다.
유재학 감독의 전술 하에서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빅맨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모비스가 3연패라는 대위업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퍼즐이 되었습니다.
2013
[플레이오프 통산 네 번째 우승]
서울 SK 나이츠를 4승 무패로 완파하고 구단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정규리그 1위였던 상대를 완벽하게 압도하는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양동근 선수가 통산 두 번째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며 전설을 이어갔습니다.
유재학 감독의 현란한 지역 방어 전술이 서울 SK의 공격을 완벽하게 봉쇄했습니다.
선수들 모두가 한 발 더 뛰는 헌신적인 수비를 선보이며 무실점 승리에 가까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 우승은 모비스 왕조가 본격적으로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2014
[플레이오프 2회 연속 우승 달성]
창원 LG를 꺾고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KBL 역대 두 번째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통산 다섯 번째 우승으로 KBL 최다 우승 타이기록을 세우며 명가로서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문태영 선수가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마지막 6차전에서 손에 땀을 쥐는 접전 끝에 우승을 확정 지으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KBL 역사상 최초로 3개 시즌 연속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울산 동천체육관은 우승의 환희로 가득 찼으며 수많은 팬들이 축하 인파로 몰렸습니다.
2015
[KBL 사상 첫 3회 연속 우승(Three-peat)]
원주 동부를 꺾고 KBL 역사상 전무후무한 3회 연속 플레이오프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통산 6회 우승으로 리그 단독 최다 우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신화를 완성했습니다.
양동근 선수가 통산 세 번째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기록은 특정 팀이 리그를 완벽하게 지배했음을 상징하는 위대한 지표입니다.
유재학 감독은 '만재학'을 넘어선 전술의 신으로 칭송받으며 최고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모비스 왕조의 3연패는 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배력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ABA 클럽 챔피언십 우승]
아시아 각국 리그 상위권 팀들이 참가하는 ABA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 무대에서도 현대모비스의 경쟁력이 최고임을 입증했습니다.
국제 무대 우승을 통해 구단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결승전에서 필리핀 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 대회 우승은 모비스의 시스템 농구가 아시아 전역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선수들은 국제 경기 경험을 쌓으며 차기 시즌을 준비하는 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2016
[정규리그 통산 600승 대기록]
KBL 역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통산 600승 고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꾸준한 성적과 철저한 구단 운영이 만들어낸 영광스러운 발자취였습니다.
모든 구단이 목표로 삼는 승리의 이정표를 가장 먼저 통과했습니다.
이 기록은 모비스가 긴 시간 동안 기복 없이 최상위권의 전력을 유지했음을 보여줍니다.
유재학 감독은 팀의 승리 역사를 함께하며 구단과 감독이 하나 된 리더십을 과시했습니다.
팬들은 600승 달성 순간 경기장에서 대규모 축하 세리머니를 함께했습니다.
2017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개칭]
구단 명칭에 모기업의 상위 브랜드인 '현대'를 추가하여 명칭을 확정했습니다.
범현대자동차그룹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구단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새로운 이름과 함께 다시 한번 리그 정상을 탈환하기 위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명칭 변경과 함께 유니폼 디자인과 엠블럼의 일부 디테일을 세련되게 다듬었습니다.
울산 시민들에게는 친숙한 현대 브랜드와 함께 더욱 적극적인 지역 공헌 활동을 약속했습니다.
이 시기 구단은 전력 보강을 위해 자유계약(FA)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2018
[라건아 특별귀환 영입]
한국 농구 사상 최초로 귀화한 라건아 선수를 드래프트를 통해 다시 영입했습니다.
과거 모비스 3연패의 주역이 친정팀으로 돌아오며 왕조 재건의 희망을 키웠습니다.
리그 최고의 빅맨과 다시 손을 잡으며 우승 후보 0순위로 급부상했습니다.
라건아 선수는 복귀 직후 골밑을 평정하며 팀의 연승 행진을 이끌었습니다.
이 영입은 구단의 강력한 전력 보강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라건아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핵심이자 현대모비스의 자부심으로 맹활약했습니다.
2019
[통산 7번째 플레이오프 우승]
인천 전자랜드를 꺾고 구단 통산 일곱 번째 우승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KBL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하며 독보적인 명문 구단임을 증명했습니다.
이대성 선수가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하며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양동근, 함지훈, 라건아 등 노장과 주축 선수들의 신구 조화가 완벽했던 시즌이었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KBL 역사상 최초로 감독 개인 통산 6회 우승이라는 신화를 썼습니다.
울산 시내는 다시 한번 현대모비스의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물결로 가득 찼습니다.
2020
[전설 양동근 선수 공식 은퇴]
현대모비스의 영원한 주장 양동근 선수가 16년간의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통산 6회 우승과 수많은 MVP 기록을 남기고 박수 속에 코트를 떠났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의 은퇴로 농구계 전체가 감동에 젖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정규리그가 조기 종료되면서 은퇴식이 간소하게 열려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는 은퇴사에서 '모비스는 나의 전부였다'는 진심 어린 말을 전해 팬들을 울렸습니다.
이후 양동근 선수는 지도자 연수를 거쳐 팀의 코치로 복귀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동근 등번호 6번 영구 결번]
구단은 양동근 선수의 공로를 기려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현대모비스 역사상 두 번째 영구 결번으로 전설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표했습니다.
동천체육관 천장에 그의 번호가 새겨진 깃발이 영구히 걸리게 되었습니다.
은퇴식 당일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그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는 특별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영구 결번은 그가 코트 위에서 보여준 열정과 투지가 후배들에게 영구히 계승됨을 의미합니다.
이 번호는 현대모비스 농구의 상징이자 울산의 자부심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2022
[유재학 감독 총감독 전환 및 사퇴]
18년간 팀을 이끌어온 유재학 감독이 현장에서 물러나 총감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KBL 최장수 감독이자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전설적인 지도자의 퇴장이었습니다.
구단은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팀의 고문으로서 역할을 맡겼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팀의 미래를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사퇴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모비스는 한국 농구 최고의 왕조를 건설하며 최고의 명예를 누렸습니다.
이후 그는 현대모비스의 농구 철학을 전수하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조동현 제11대 감독 취임]
유재학 감독의 뒤를 이어 조동현 수석코치가 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젊은 리더십과 현대적인 전술을 바탕으로 팀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유재학 총감독의 조언과 함께 팀의 체질 개선과 우승 탈환을 약속했습니다.
조동현 감독은 과거 부산 KT 감독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한 지도력을 보였습니다.
선수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빠르고 역동적인 농구를 팀의 새로운 컬러로 정했습니다.
팬들은 젊은 지도자 아래 새롭게 태어날 현대모비스의 활약을 기대하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2023
[EASL 아시아 챔피언스 진출]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에 진출하며 아시아 최강 클럽들과 실력을 겨뤘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현대모비스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해외 팀들과의 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고 전술의 폭을 넓혔습니다.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챔피언 팀들과 홈 앤드 어웨이 경기를 치렀습니다.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국제 경기에는 수많은 팬들이 운집하여 팀을 응원했습니다.
이 대회 참가는 구단이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선수들의 경험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2024
[정규리그 통산 최다 승리 기록 경신]
KBL 역사상 구단 통산 최다 승리 기록을 꾸준히 경신하며 승리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매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꾸준함으로 타 구단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명문 구단으로서의 자부심을 지켜내며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전진 중입니다.
이 기록은 특정 시즌의 폭발력이 아닌 수십 년간의 안정적인 운영이 낳은 결과입니다.
구단은 지속적인 유망주 발굴과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통해 전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매 승리마다 구단의 역사적인 발걸음을 함께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함지훈 선수 통산 기록 수립]
팀의 리빙 레전드 함지훈 선수가 KBL 통산 어시스트 및 리바운드 부문에서 상위권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양동근 은퇴 이후 팀의 기둥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이끌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자기 관리의 대명사로서 나이를 잊은 듯한 경기력을 과시했습니다.
함지훈은 특유의 영리한 두뇌 플레이로 상대 수비의 허점을 파고드는 절묘한 패스를 보였습니다.
그의 기록은 현대모비스에서만 헌신하며 일궈낸 성과라 구단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집니다.
동료 선수들은 함지훈의 노련함을 배우며 팀의 조직력을 더욱 탄탄히 다졌습니다.
2025
[울산 연고지 밀착 마케팅 강화]
울산광역시와 협력하여 지역 사회 소외 계층을 위한 농구 교실과 기부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연고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구단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농구 경기를 넘어 울산 시민들의 문화 생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홈 경기마다 다양한 지역 축제와 연계한 이벤트를 열어 관중 만족도를 높였습니다.
울산 지역 유망주들을 위한 농구 장학금을 수여하며 지역 스포츠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현대모비스가 울산의 상징적인 프로 구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