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
투자자, 사업가, 재정 분석가, 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1- 16:15:50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설립하여 4,20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월스트리트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그는 단순히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세계 전역을 누비며 현장에서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모험 자본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원자재 시장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아시아의 부상을 확신하며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등, 시대의 흐름을 읽는 독보적인 통찰력으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1942
[짐 로저스의 탄생]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제임스 비랜드 로저스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드는 전설적인 투자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볼티모어에서 태어났으나 앨라배마주 데모폴리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리틀 리그 경기에서 땅콩을 팔며 일찍이 비즈니스 감각을 익혔습니다.
이 소박한 시작은 훗날 로저스 홀딩스와 비랜드 인터레스트의 회장이 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1964
[예일 대학교 졸업]
예일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며 쌓은 인문학적 소양은 훗날 그의 시장 분석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쿰 라우데(Cum Laude)'급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학업적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역사 전공은 그에게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거시적인 흐름을 읽는 안목을 선물했습니다.
대학 시절의 학문적 탐구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 철학적 투자 방식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월스트리트 첫 입문]
도미니크 앤 디커만(Dominick & Dominick)에 입사하며 월스트리트에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주식과 채권의 기초를 배우며 금융 실무를 익혔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금융 시장의 냉혹함과 기회를 동시에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실제 매매 현장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을 배우며 투자자로서의 첫걸음을 뗐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가 퀀텀 펀드를 설립하기 전 거쳐야 했던 소중한 수련 과정이었습니다.
1966
[옥스퍼드 학위 취득]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배일리얼 컬리지에서 두 번째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철학, 정치, 경제학(PPE)을 공부하며 융합적인 지식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영국의 유서 깊은 교육 환경 속에서 경제 이론과 정치학의 상관관계를 탐구했습니다.
PPE 전공은 월스트리트의 다른 투자자들과 차별화되는 그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유럽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미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글로벌한 시각을 갖게 했습니다.
[로이스 비너와 결혼]
첫 번째 아내인 로이스 비너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습니다. 학업과 경력이 시작되던 시기에 맞이한 인생의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졸업과 군 복무가 겹치던 파란만장한 시기에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정과 성격 차이 등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3년 만인 1969년에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하며 이혼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군 복무]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약 2년 동안 군인으로서 복무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1966년부터 1968년까지 군 복무를 수행하며 사회적 책임감을 익혔습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조직 생활과 위기 대응 능력을 배웠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그는 더욱 단단해진 마음가짐으로 금융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1970
[조지 소로스와의 만남]
투자 은행인 안홀드 앤 S. 블라이흐뢰더에 합류하여 조지 소로스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 역사상 가장 강력한 콤비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투자 철학에 공감하며 강력한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로저스는 치밀한 분석을 담당했고 소로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곳에서의 협업은 훗날 퀀텀 펀드라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73
[퀀텀 펀드 공동 설립]
조지 소로스와 함께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전신인 퀀텀 펀드를 창립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삼은 최초의 본격적인 헤지펀드 중 하나였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전 세계 시장의 저평가된 자산을 찾아내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4,200%라는 믿기 힘든 수익률을 기록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같은 기간 S&P 지수가 겨우 47%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성과였습니다.
1974
[두 번째 결혼 생활]
제니퍼 스콜닉과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안정을 찾고자 했습니다. 펀드 운영으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던 중에 이루어진 결합이었습니다.
퀀텀 펀드가 급성장하며 업무량이 폭주하던 시기에 결혼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보다는 업무에 치중했던 그의 삶의 방식은 가정에 갈등을 가져왔습니다.
결국 1977년, 두 사람은 결혼 3년 만에 다시 한번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1980
[전격적인 은퇴 선언]
퀀텀 펀드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후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싶다는 갈망이 그를 자유로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펀드 매니저로서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토바이에 몸을 실어 세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 결정은 단순히 쉬기 위함이 아니라 현장에서 투자의 답을 찾기 위한 모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은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더 역동적인 투자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콜롬비아 경영대학원 교수]
은퇴 이후 콜롬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금융학 객원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현장에서 쌓은 실전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그의 강의는 이론 중심이 아닌 실제 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짚어주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성공한 투자자의 생생한 경험담은 미래의 금융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교단에 서면서도 세계 경제의 변화를 예리하게 관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9
[금융 방송 진행자 활동]
WCBS의 '드레이퍼스 라운드테이블'과 FNN의 '짐 로저스의 이익 동기' 사회를 맡았습니다. 대중에게 경제 정보를 쉽고 예리하게 전달하는 평론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과 통찰력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복잡한 금융 용어를 배제하고 시장의 본질을 꿰뚫는 분석을 내놓아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의 방송 활동은 그를 세계적인 경제 오피니언 리더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0
[두 번째 세계 일주 시작]
오토바이를 타고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6개 대륙을 횡단하는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10만 마일이 넘는 거리를 달리는 무모해 보이지만 원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는 각 나라의 국경을 넘으며 직접 경제 상황을 확인하고 사람들과 소통했습니다.
책상 앞의 통계가 아닌 땅의 기운과 민심을 통해 투자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이 여정은 그에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잠재력을 확신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2
[기네스 세계 기록 등재]
오토바이로 6개 대륙을 횡단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금융 전문가로서 드물게 모험가로서의 기록을 세운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인간 한계에 대한 시험이자 시장 조사의 과정이었습니다.
많은 매체는 '월스트리트의 이단아'가 세운 놀라운 물리적 기록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기록은 훗날 그가 쓴 베스트셀러의 강력한 마케팅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1994
[투자 바이커 출간]
세계 일주를 통해 얻은 통찰을 담은 저서 '투자 바이커: 짐 로저스와 함께하는 세계'를 출간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며 그의 투자 철학을 널리 알렸습니다.
오토바이 여행 중에 만난 각국의 경제 실상과 투자 기회를 흥미롭게 서술했습니다.
여행기와 경제 분석이 결합된 독특한 장르로 독자들에게 큰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전통적인 금융 중심지 외의 지역에 주목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1998
[로저스 상품 지수 설립]
원자재 투자를 위한 '로저스 국제 상품 지수(RICI)'를 창설했습니다. 주식과 채권 위주의 투자 시장에 원자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향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것을 예견하고 누구나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지수를 만들었습니다.
농산물, 금속, 에너지 등 실물 자산의 가치를 지수화하여 투자 수단으로 확립했습니다.
이 지수는 훗날 원자재 슈퍼 사이클과 맞물려 엄청난 성과를 거두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1999
[밀레니엄 세계 일주 시작]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벤츠를 개조한 차량으로 116개국을 도는 세 번째 세계 일주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동반자와 함께하며 더욱 확장된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인류 역사와 경제의 지도를 따라가는 장대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는 전 세계 24만 5천 킬로미터를 달리며 지구촌 구석구석의 변화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기네스북은 다시 한번 그의 경이로운 이동 거리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했습니다.
2000
[페이지 파커와 세 번째 결혼]
여행의 동반자였던 페이지 파커와 결혼하여 인생의 진정한 파트너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세계를 누비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로저스의 모험적인 삶을 이해하고 함께 실천하는 완벽한 동료였습니다.
결혼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는 두 딸이 태어나 그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습니다.
로저스는 가정을 이룬 후 더욱 장기적이고 교육적인 관점에서 투자와 삶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중국 시장 본격 투자 시작]
중국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을 확신하고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서구권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의 미래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직접 중국을 돌아다니며 인프라와 민간의 열기를 확인한 후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투자는 훗날 중국이 세계 경제의 G2로 부상하며 엄청난 결실로 돌아왔습니다.
2001
[인도 시장에 대한 회의론]
인도 경제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으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인도라는 국가의 통합 유지와 관료주의 시스템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그는 인도가 현재의 형태를 30~40년 이상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는 신흥국 시장 전체를 긍정적으로 보던 다른 투자자들과는 상반된 의견이었습니다.
그는 투자의 근거로 '희망'이 아닌 '현실적인 시스템'을 보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2002
[부동산 및 부채 거품 경고]
연준의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과 소비자 부채 거품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의 정책적 실수를 지적하며 다가올 위기를 예고했습니다.
주식 시장의 거품을 끄기 위한 조치가 또 다른 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던 시장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훗날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며 그의 경고는 소름 돋는 선견지명으로 재조명되었습니다.
[폭스 뉴스 고정 패널 합류]
폭스 뉴스의 '카부토 온 비즈니스' 등 금융 TV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적인 경제 평론가로서 영향력을 넓히는 시기였습니다.
특유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조언으로 많은 투자자 팬을 확보했습니다.
시장의 거품을 지적하고 실물 자산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방송 출연을 통해 그는 월스트리트의 주류 시각과는 다른 이단아적인 매력을 뽐냈습니다.
[3년간의 세계 일주 완료]
116개국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을 마치고 뉴욕 자택으로 돌아왔습니다. 전 세계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후 그는 더 날카로운 투자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집인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는 수많은 매체가 모여 그의 귀환을 반겼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세계 경제의 무게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음을 재차 확신했습니다.
귀환 직후 그는 여행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저술 활동에 착수했습니다.
2003
[모험 자본주의자 출간]
세 번째 세계 일주의 기록을 담은 저서 '모험 자본주의자: 궁극의 로드 트립'을 펴냈습니다. 전 세계 116개국의 현장을 발로 뛴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각국의 규제, 화폐 가치, 정치 상황을 투자자의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거시 경제의 흐름을 읽는 교과서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독자들은 그가 개조한 벤츠를 타고 넘었던 국경 너머의 진실에 열광했습니다.
2004
[뜨거운 상품 출간]
원자재 투자의 비법을 담은 저서 '뜨거운 상품: 세계 최고의 시장에서 누구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출간했습니다. 상품 투자의 대중화를 이끈 명저입니다.
그는 설탕, 커피, 옥수수 등 일상적인 상품이 최고의 투자처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원자재 지수(RICI)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투자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이 책은 주식 시장에 지친 투자자들에게 실물 자산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2005
[상품 선물 투자 가치 역설]
학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상품 선물 투자의 정당성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자신의 이론에 신뢰도를 더했습니다.
그는 상품 투자가 단순한 투기가 아닌 포트폴리오의 필수 요소임을 강조했습니다.
실제 수치와 데이터를 통해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금융계에서 원자재 투자를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6
[미국 금융주 공매도 감행]
미국의 금융 기관, 주택 건설업체, 패니매(Fannie Mae)를 상대로 공매도를 실시했습니다. 다가올 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확신한 과감한 베팅이었습니다.
당시 시장은 주택 가격 하락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았으나 로저스는 본질적 위기를 감지했습니다.
그는 부채로 쌓아 올린 미국 경제의 취약성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이 공매도 결정은 2년 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며 그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2007
[중국의 황소 출간]
중국 시장 투자에 대한 종합 지침서인 '중국의 황소: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수익성 있는 투자'를 출간했습니다. 중국의 부상을 정교하게 분석한 역작입니다.
그는 중국의 다양한 산업군 중에서 어떤 곳에 투자 기회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조언했습니다.
중국 경제가 겪을 수 있는 리스크와 함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동시에 짚었습니다.
이 책은 중국 투자를 고민하던 전 세계 자본가들에게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싱가포르 이주 결정]
뉴욕의 저택을 1,600만 달러에 매각하고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믿고 몸소 실행에 옮긴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그는 19세기엔 런던, 20세기엔 뉴욕이 중심이었다면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두 딸에게 중국어를 완벽하게 가르치기 위해 교육 환경이 좋은 싱가포르를 선택했습니다.
이 이주는 서구권 투자자들에게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일깨운 상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2008
[론 폴 대선 후보 지지]
미국 공화당 의원 론 폴을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지하며 정치적 신념을 드러냈습니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자유로운 경제 시스템을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론 폴의 금본위제 옹호와 연방준비제도 개혁안에 깊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미국의 과도한 지출과 부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으로 그를 평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제적 통찰이 정치적 올바름보다 국가의 생존에 우선해야 함을 피력했습니다.
2009
[내 아이들에게 선물 출간]
두 딸을 위해 삶과 투자의 지혜를 정리한 '내 아이들에게 선물: 삶과 투자를 위한 아버지의 교훈'을 출간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따뜻함과 투자자로서의 예리함이 공존하는 책입니다.
돈을 벌기 위한 방법보다 세상을 보는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는 데 집중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용기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책은 자녀 교육과 재테크에 관심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0
[농업과 광업 가치 강조]
옥스퍼드 대학교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월스트리트 대신 농장과 광산으로 가라고 조언했습니다. 금융 자본의 시대가 가고 실물 생산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미래의 부는 금융 센터가 아닌 실제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MBA 학위보다 트랙터 운전법을 배우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파격적인 발언은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2
[포브스지와의 파격 인터뷰]
미래에는 증권 중개인이 택시를 운전하고 농부가 람보르기니를 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미국의 부의 이동에 대한 극적인 비유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농업이 가장 유망한 투자처가 될 것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비즈니스 스쿨이 아닌 농업 학교로 가야 한다는 철학을 고수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노동과 생산의 가치가 회복될 것이라는 그의 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VTB 캐피탈 고문 위촉]
러시아 VTB 캐피탈의 농업 부문 고문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와 주변 지역이 세계 농업의 강대국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러시아의 광활한 토지와 자원이 적절한 자본과 결합할 때의 파급력을 기대했습니다.
그는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농업 프로젝트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조언했습니다.
투자자로서 러시아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직접 개척하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2013
[거리 스마트 출간]
자신의 일생을 아우르는 회고록이자 투자 지침서인 '거리 스마트: 도로 및 시장의 모험'을 출간했습니다.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낸 그의 철학이 응집된 책입니다.
성공한 투자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냉정함과 열정을 자신의 일화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시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법을 강조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오랜 팬들에게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지출 절감 연합 이사 합류]
미국의 과도한 국가 지출을 줄이기 위한 기구인 '지출 절감 연합'의 이사회에 합류했습니다. 재정 건전성 회복이 국가의 생존과 직결됨을 주장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부채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정부의 방만한 운영이 결국 달러의 가치 하락과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15
[인도 시장 전격 철수]
희망만으로는 투자할 수 없다며 인도 시장에 대한 모든 투자를 철회했습니다. 인도의 개혁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고 관료주의가 개선되지 않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는 신흥국 시장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변화가 없으면 자본을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냉철한 자본의 논리를 보여준 사례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의 인도 철수는 국가의 성장 잠재력이 실제 실행력과 결합해야 함을 시사했습니다.
2017
[친중 성향에 대한 비판]
지나치게 친중적인 발언을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일부 언론은 그가 중국의 문제점을 간과하고 낙관론만을 전파한다고 비판했습니다.
Financial Times 등 주요 매체는 그의 시각이 무리하게 치우쳐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로저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데이터와 역사의 흐름이 중국의 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논란은 그의 투자 철학이 서구의 주류 시각과 얼마나 충돌하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2018
[최악의 약세장 예고]
다음에 올 약세장은 우리 생애 최악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부채 수준이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음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거품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위기는 과거의 어떤 경제 위기보다 파괴적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의 비관론적 전망은 시장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금과 은 등 안전 자산 선호도를 높였습니다.
2019
[일본의 미래 저서 출간]
일본 경제의 위기와 미래를 분석한 '일본의 미래'와 '일본에 대한 경고'를 출간했습니다. 인구 감소와 막대한 부채가 일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에게 해외로 나갈 것을 조언하며 일본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냉혹한 진단은 일본 내 베스트셀러가 되며 사회적 토론을 유발했습니다.
그는 일본이 생존하려면 폐쇄적인 시스템을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부산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
한반도 통일의 가치와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공로로 부산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남북 통일이 세계 최대의 투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는 통일된 한반도가 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의 저서가 가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이는 그의 투자 철학이 평화와 공존이라는 인류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