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화이트삭스

야구팀, 프로 스포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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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1- 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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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화이트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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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화이트삭스는 1901년 창단 이래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기록한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이다. '블랙삭스 스캔들'이라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으나, '물방망이의 기적'과 '고 고 삭스' 같은 흥미로운 역사도 지녔다. 2005년 88년 만의 우승으로 '블랙삭스의 저주'를 깨며 다시 한번 야구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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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세인트폴 세인츠의 탄생]

찰스 코미스키가 서부 리그 소속의 구단을 인수하며 팀의 초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훗날 화이트삭스의 전설이 될 인물이 구단의 기틀을 마련한 상징적인 시기입니다. 미네소타 지역을 기반으로 프로 야구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찰스 코미스키는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구단 경영에 뛰어들어 자신의 팀을 조직했습니다. 초기에는 세인트폴을 연고지로 하여 운영되었으며 서부 리그에서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이 시기의 운영 경험은 훗날 아메리칸 리그를 창설하고 대도시로 이전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00

[시카고 이전과 명칭 변경]

구단을 시카고 남부로 옮기고 '화이트 스타킹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 컵스의 전신이 버렸던 이름을 다시 가져오며 지역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대도시 시카고에 새로운 야구 열풍을 불러일으킬 준비를 마쳤습니다.

찰스 코미스키는 리그의 승인을 받아 시카고 남부에 팀을 정착시켰습니다. '화이트 스타킹스'라는 명칭은 과거 시카고 야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전 첫해에 리그 챔피언에 오르며 시카고 팬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1901

[아메리칸 리그 창설 멤버]

아메리칸 리그가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면서 창설 멤버로서 공식적인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리그의 주축 구단으로서 프로 야구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첫 시즌부터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명문의 위상을 세웠습니다.

서부 리그가 아메리칸 리그로 개편되면서 내셔널 리그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클라크 그리피스 감독의 지휘 아래 시즌 83승을 거두며 리그 초대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당시에는 월드 시리즈가 도입되기 전이라 아메리칸 리그 1위가 최고 영예였습니다.

1903

['화이트삭스' 명칭 확정]

신문 머리기사에서 이름을 줄여 쓰기 시작하면서 공식 명칭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팬들과 언론이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정착되며 구단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이 이름은 곧 시카고 남부 야구의 상징이자 고유 명사가 되었습니다.

신문사들이 제목에 '화이트 스타킹스'를 모두 넣기 힘들어 '화이트삭스'로 줄여 부른 것이 유래입니다. 구단은 이 간결하고 강렬한 이름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이때부터 붉은색보다는 흰색 양말과 검은색 로고가 팀의 전통적인 색채로 자리 잡았습니다.

1906

[안타 없는 기적의 첫 우승]

리그에서 가장 낮은 타율을 기록하고도 강력한 수비와 투수력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역 라이벌인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거둔 승리라 시카고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안타 없는 기적(Hitless Wonders)'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시카고 컵스는 역대 최다승인 116승을 거둔 무적의 팀이었으나 화이트삭스가 이를 저지했습니다. 팀 타율은 낮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의 집중력과 끈질긴 승부 근성이 돋보인 시리즈였습니다. 이 우승은 구단 역사상 최초의 월드 시리즈 타이틀로 기록되었습니다.

1910

[코미스키 파크 공식 개장]

당시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야구 경기장을 완공하고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단주의 이름을 딴 이 경기장은 시카고 남부의 랜드마크이자 야구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팬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로 설계되었습니다.

당시 '야구의 궁전'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건축미와 관람 환경을 자랑했습니다. 녹색 벽돌과 철골 구조로 지어져 내구성이 뛰어났으며 이후 80년 동안 구단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개장 경기에서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에 패했지만 경기장 자체는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1912

[조 잭슨의 영입과 활약]

'신발 없는 조(Shoeless Joe)'라 불리는 천재 타자 조 잭슨이 합류하며 공격진이 강화되었습니다. 그의 자연스러운 스윙은 리그 모든 투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곧 팀의 중심 타자이자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성장했습니다.

조 잭슨은 베이브 루스조차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을 만큼 완벽한 타격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그의 합류로 화이트삭스는 투수력 중심의 팀에서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커리어는 훗날 발생한 스캔들로 인해 비극적으로 마무리되게 됩니다.

1917

[통산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제패]

뉴욕 자이언츠를 꺾고 다시 한번 메이저 리그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에디 시콧과 레드 파버라는 전설적인 투수들의 활약이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전력이 강했던 시기로 평가받는 영광의 순간입니다.

정규 시즌 100승을 달성하며 압도적인 실력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6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시리즈 스코어 4승 2패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 이후 화이트삭스는 무려 88년이라는 기나긴 무관의 터널에 진입하게 됩니다.

1919

[블랙삭스 스캔들의 발발]

월드 시리즈에서 일부 선수들이 도박사와 결탁하여 고의로 경기에 져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야구의 정직성을 훼손한 이 사건으로 인해 구단과 리그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흰 양말이 검게 물들었다는 의미에서 '블랙삭스 스캔들'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구단주 코미스키의 짠물 경영에 불만을 품은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시리즈는 신시내티 레즈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 선수들의 비정상적인 플레이가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은 야구 역사상 가장 어둡고 비극적인 스캔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21

[8명의 선수 영구 제명]

스캔들에 가담한 조 잭슨을 포함한 핵심 선수 8명이 야구계에서 영원히 추방되었습니다. 새로 취임한 커미셔너 랜디스 판사의 단호한 결단으로 구단의 전력은 사실상 붕괴되었습니다. 이 결정은 화이트삭스가 암흑기로 접어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법정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리그 차원에서의 징계는 가차 없이 집행되었습니다. 팀의 주축이었던 선수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화이트삭스는 하위권을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 잭슨의 제명은 팬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논쟁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1931

[창립자 찰스 코미스키 서거]

구단을 창단하고 30년 넘게 이끌어온 찰스 코미스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구단주로서의 공과 실이 뚜렷했던 그의 시대가 저물고 가족 경영 체제로 넘어갔습니다. 시카고 야구의 거인이 사라진 후 구단은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리그 창설과 야구 대중화에 큰 공을 세웠으나 블랙삭스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그의 아들 루이스 코미스키가 구단 운영권을 승계하며 가족 중심의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장례식에는 수많은 야구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그의 야구 인생을 기렸습니다.

1948

[넬리 폭스의 입단]

팀의 새로운 중심이 될 명격수 넬리 폭스가 합류하며 리빌딩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는 끈질긴 타격과 완벽한 수비로 시카고 팬들의 새로운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암흑기를 견디던 화이트삭스에 다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넬리 폭스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고의 2루수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훗날 루이스 아파리시오와 함께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고의 키스톤 콤비를 형성했습니다. 그의 성실한 플레이는 1950년대 '고고 삭스' 전성기를 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51

[루이스 아파리시오의 데뷔]

베네수엘라 출신의 유격수 루이스 아파리시오가 등장하여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그는 빠른 발을 이용한 도루와 광범위한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팀의 기동력을 극대화했습니다. 현대적인 유격수 수비의 기준을 정립한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아파리시오는 9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하며 베네수엘라 야구 영웅으로 등극했습니다. 넬리 폭스와의 수비 호흡은 타 팀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무력화시켰습니다. 그의 활약 덕분에 화이트삭스는 수비와 기동력을 중시하는 '고고 삭스'라는 팀 컬러를 확립했습니다.

1959

[40년 만의 아메리칸 리그 우승]

알 로페즈 감독의 지휘 아래 기나긴 부진을 털고 마침내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빠른 야구와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양키스의 독주를 저지한 역사적인 시즌이었습니다. 시카고 전역은 다시 한번 월드 시리즈 진출의 기쁨으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넬리 폭스는 이 시즌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에서 LA 다저스에 패했지만 팀의 부활을 알린 중요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우승 확정 후 시카고 시내에는 공습경보가 울려 퍼졌는데 이는 우승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60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 도입]

빌 비크 구단주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선수들의 이름을 유니폼 뒷면에 최초로 새겨 넣었습니다. 관중들이 선수를 더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배려한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이는 현대 야구 유니폼 디자인의 표준을 바꾼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당시 보수적인 야구계에서는 반대가 심했으나 팬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빌 비크는 이외에도 폭발하는 전광판 등 다양한 쇼 요소를 도입하여 관객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이 시도는 스포츠 마케팅의 선구적인 사례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1979

[디스코 데몰리션 나이트 사건]

경기 도중 디스코 음반을 폭파하는 이벤트를 열었다가 관중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대중문화의 갈등이 야구장에서 폭발한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경기가 중단되고 몰수패를 당하는 등 구단 역사상 가장 소란스러운 밤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유명 라디오 DJ 스티브 달의 주도로 디스코 음악에 반대하는 팬들이 대거 집결했습니다. 폭발 후 수천 명의 관중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시설을 파괴하고 난동을 피웠습니다. 이 사건은 대중문화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다뤄지며 야구장 보안 강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1

[제리 라인스도르프의 구단 인수]

제리 라인스도르프와 에디 아인혼이 이끄는 투자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며 현대적인 경영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공격적인 투자와 체계적인 시스템 도입으로 다시 한번 우승을 향한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불스와 화이트삭스가 시카고를 지배하는 스포츠 제국의 시작이었습니다.

라인스도르프는 재정적 안정을 바탕으로 우수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훗날 시카고 불스도 인수하여 시카고 스포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경영진은 낡은 코미스키 파크를 대체할 신축 구장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

[지구 우승과 '위닝 어글리']

토니 라 루사 감독의 지휘 아래 24년 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복귀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끈질기게 승리를 챙기는 플레이로 '위닝 어글리(Winning Ugly)'라는 유행어를 낳았습니다. 시카고 남부 사람들의 끈질긴 기질을 야구로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라마 호이트는 이 해 사이영상을 수상하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상대 팀 감독의 조롱 섞인 비판을 오히려 팀의 정체성으로 승화시킨 명승부들이 이어졌습니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볼티모어에 패했지만 팀의 경쟁력을 확인한 소중한 성과였습니다.

1990

[프랭크 토머스의 화려한 데뷔]

팀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성장하게 될 '빅 허트(The Big Hurt)' 프랭크 토머스가 경기에 나섰습니다.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와 정교한 선구안은 리그 전체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곧 화이트삭스의 얼굴이자 메이저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자리 잡았습니다.

토머스는 데뷔 후 수년간 리그에서 가장 두려운 타자로 군림했습니다. 그는 2년 연속 리그 MVP를 차지하며 구단의 모든 타격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그의 존재는 화이트삭스가 90년대 중반 강팀으로 군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91

[뉴 코미스키 파크 개장]

80년간의 역사를 뒤로하고 옛 구장 바로 옆에 건설된 신축 경기장에서 첫 홈 경기를 치렀습니다. 현대적인 편의시설과 쾌적한 관람 환경을 갖춘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시카고 남부의 야구 전통을 이어가는 새로운 지식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관중석 위치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개보수를 거쳤습니다. 이 경기장은 훗날 'U.S. 셀룰러 필드'를 거쳐 현재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로 불리고 있습니다. 개장 초기에는 프랭크 토머스 신드롬과 맞물려 매 경기 엄청난 관중 동원력을 보였습니다.

2000

[지구 우승과 제리 마누엘 감독]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정규 시즌 95승을 거두며 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프랭크 토머스와 매글리오 오도네즈가 이끄는 공격진은 리그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우승 기회에 시카고 팬들은 뜨겁게 응원했습니다.

제리 마누엘 감독은 이 해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 완패하며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비록 포스트시즌 성적은 아쉬웠지만 2000년대 중반 전성기를 위한 팀의 기초를 확인했습니다.

2004

[아지 기옌 감독의 부임]

과거 팀의 유격수였던 아지 기옌이 사령탑을 맡으며 구단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직설적인 화법과 열정적인 리더십으로 선수단의 결속력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는 우승을 위해 필요한 독창적인 전술과 강한 규율을 팀에 도입했습니다.

기옌은 팀의 기동력과 세밀한 야구를 강조하며 '스몰 볼'의 가치를 재정립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선수들은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부임은 1년 뒤 벌어질 기적 같은 월드 시리즈 우승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2005

[88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4연승으로 완파하고 마침내 블랙삭스의 저주를 끊어냈습니다. 정규 시즌 첫날부터 끝까지 1위를 지킨 끝에 거둔 완벽한 우승이었습니다. 시카고 남부 전역은 88년 동안 쌓인 한을 풀며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폴 코너코의 만루 홈런과 스콧 포드세드닉의 끝내기 홈런 등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챔피언십 시리즈부터 이어진 투수진의 4경기 연속 완투승은 야구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입니다. 이 우승으로 화이트삭스는 더 이상 과거의 비극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한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2007

[짐 토미의 500홈런 달성]

리그 최고의 거포 짐 토미가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고 통산 500번째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끝내기 홈런으로 대기록을 장식하며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습니다. 성실하고 매너 좋은 스타의 기록 달성에 시카고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짐 토미는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팀의 중심 타자로서 훌륭한 품격과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500호 홈런구는 현재 야구 명예의 전당에 기증되어 역사로 남았습니다. 이 사건은 우승 이후 세대교체 중이던 팀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2009

[마크 벌리의 퍼펙트 게임]

에이스 마크 벌리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메이저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정교한 투구로 시카고 남부의 자부심을 드높였습니다. 드웨인 와이즈의 환상적인 홈런 도둑 수비가 이 기록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벌리는 이 퍼펙트 게임을 포함해 팀 역사상 가장 꾸준한 좌완 투수로 기억됩니다. 경기는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만에 끝났으며 이는 벌리 특유의 빠른 경기 운영 덕분이었습니다. 구단은 이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기장에 기념 동판을 설치했습니다.

2014

[폴 코너코의 은퇴와 헌사]

2005년 우승의 주역이자 영원한 캡틴 폴 코너코가 홈 팬들의 기립박수 속에 은퇴했습니다. 16년 동안 화이트삭스 한 팀에서만 헌신하며 리더의 표본을 보여준 선수의 작별이었습니다. 그의 등 번호 14번은 구단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며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코너코는 조용한 리더십으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수많은 결정적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그의 은퇴식에는 옛 동료들이 대거 참석하여 그의 훌륭한 인품과 성취를 기렸습니다. 이후 구단은 그의 활약을 기념하는 동상을 외야 산책로에 세웠습니다.

2021

[13년 만의 중부 지구 우승]

전설적인 토니 라 루사 감독이 복귀하여 팀을 다시 한번 지구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젊은 유망주들의 성장과 베테랑의 조화로 시카고 남부에 다시 한번 우승의 희망이 피어올랐습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이어진 긴 정체기를 끝내는 의미 있는 성과였습니다.

루카스 지올리토, 팀 앤더슨, 호세 아브레유 등 젊은 스타들이 팀을 이끌었습니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 휴스턴에 패했지만 팀의 밝은 미래를 확인한 시즌이었습니다. 라 루사 감독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팀을 지휘했습니다.

2024

[대대적 리빌딩과 새로운 도전]

구단은 최근 성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번 대규모 선수단 개편에 착수했습니다.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며 미래의 우승 권력을 재편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 있습니다. 시카고 남부의 팬들은 다시 한번 황금기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며 유망주들을 대거 수집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프런트 오피스에도 변화를 주어 데이터 중심의 야구로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리빌딩 과정이지만 화이트삭스는 언제나 그랬듯 시카고 남부의 자존심을 걸고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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