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혜
과학자, 생물학자, 교수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9- 10:18:48
노정혜 박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분자생물학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국가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입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연구 성과와 후학을 양성했으며,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등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하며 그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기초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57
[노정혜 박사 출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과학자이자 교육자인 노정혜 박사가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구열이 높았던 그녀는 대한민국 기초 과학의 미래를 이끌 인재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후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여 미생물학 연구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노정혜 박사는 1957년 3월 1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훗날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이자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가 과학 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유년 시절의 구체적인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학문적 성취를 향한 열정은 이때부터 싹텄습니다.
1975
[경기여고 졸업]
명문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탁월한 학습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이학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진학하며 과학자로서의 꿈을 구체화했습니다.
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기초 학문을 닦으며 장래 과학자로서의 자질을 길렀습니다.
당시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모였던 경기여고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전공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서울대학교 입학]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에 입학하여 학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당시 생명과학 분야의 기초인 미생물학을 전공으로 택하여 깊이 있는 연구 기반을 닦았습니다.
대학 생활 내내 학업에 매진하며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쌓아나갔습니다.
1975년 3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 신입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당시에는 드물었던 여성 과학 지망생으로서 열정적으로 실험과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의 탄탄한 학문적 토대는 훗날 세계적인 분자생물학자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1979
[서울대학교 수석 졸업]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며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탁월한 성취를 통해 모교의 명예를 높였으며, 향후 학문적 행보에 대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수석 졸업의 영예와 함께 더 넓은 학문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해외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1979년 2월 졸업식에서 자연과학대학 전체 수석 졸업생으로서 상을 수여받았습니다.
미생물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부 과정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박사 과정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 과학자로서는 보기 드문 독보적인 학업 성취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위스콘신대학교 진학]
미국의 명문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분자생물학 및 미생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이곳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선진 학문을 습득하며 분자 수준에서의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전문성을 키웠습니다.
1979년 9월 가을 학기에 맞추어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분자생물학 전공을 선택하여 유전학 및 미생물 대사 조절 메커니즘을 심도 있게 탐구했습니다.
이 유학 기간 동안 글로벌 학문 트렌드를 익히고 독립적인 연구자로서의 자질을 완성했습니다.
1984
[박사 학위 취득]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성공적으로 취득했습니다.
석사 학위를 포함하여 단기간에 학위 과정을 마침으로써 탁월한 연구 역량을 증명했습니다.
이로써 전문적인 분자생물학자로서 국제 학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1984년 12월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Ph.D.)를 수여받았습니다.
그녀의 박사 논문은 미생물의 유전적 조절 기전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 결과를 담고 있었습니다.
학위 취득 이후에도 연구의 연속성을 위해 현지에 남아 후속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매카들 연구소 연구원]
박사 학위 취득 직후 위스콘신대학교의 매카들 암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암 연구의 세계적 거점인 이곳에서 최신 분자생물학 기법을 연구에 접목했습니다.
실험실에서의 치열한 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연구 영역을 구축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84년 12월부터 1986년 8월까지 McArdle Laboratory for Cancer Research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습니다.
암 생물학 및 분자 유전학 분야의 고급 기술을 습득하며 연구 역량을 고도화했습니다.
이 시기의 연구 성과들은 훗날 그녀가 모교 교수로 임용되는 데 핵심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6
[서울대 실험분야 첫 여교수]
29세의 나이에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 조교수로 전격 임용되었습니다.
서울대 자연대 역사상 '실험 부문 최초의 여성 교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여성 과학자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고 연구 현장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1986년 9월부로 모교인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조교수로 발령받았습니다.
당시 20대 여성 교수의 실험실 분야 임용은 보수적인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롤모델로서의 역할을 시작하게 됩니다.
[분자미생물학 연구실 개설]
서울대학교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분자미생물학 연구실(Molecular Microbiology Lab)을 열었습니다.
스트렙토미세스 등 방선균을 모델로 한 산화적 스트레스 반응 기전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독자적인 실험 인프라를 구축하며 국내 분자생물학 연구의 질적 향상을 도모했습니다.
임용 직후 실험실을 정비하고 대학원생들을 모집하여 본격적인 연구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미생물이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유전자를 조절하는지를 밝히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연구실은 훗날 수많은 박사와 석사를 배출하며 한국 생명과학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1991
[부교수 승진과 연구 심화]
우수한 연구 성과와 교육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대학교 부교수로 승진하였습니다.
미생물 유전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논문들을 발표하며 학계의 중견 학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험실의 규모를 확장하고 국제 공동 연구를 활발히 추진하며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시그마 인자(Sigma factor)를 통한 유전자 발현 조절 메커니즘 연구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한국의 분자생물학 수준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부교수 재임 기간 동안 활발한 학회 활동을 통해 학문적 네트워크를 강화했습니다.
1996
[정교수 임용 및 학술 리더]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정교수로 발령받아 학문적 정점에 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생물 분자생물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서 후학 양성과 국가 연구 과제를 주도했습니다.
대학 내외의 다양한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며 학문적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임용 10년 만에 정교수가 되어 학과 내 핵심적인 교육 및 연구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산화적 스트레스 감지 단백질인 SigR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성과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대외적인 위원회 활동이 늘어나며 과학 행정가로서의 자질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97
[자연대 부학장 보직 수행]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부학장으로 임명되어 대학 행정 업무에 본격 참여했습니다.
단과대학의 연구 지원 및 행정 시스템 개선을 위해 2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녀가 서울대 전체의 연구 행정을 총괄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7년 8월부터 1999년 8월까지 부학장 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당시 IMF 경제 위기 속에서 연구실 환경을 유지하고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행정 실무를 익히며 조직 운영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된 시기였습니다.
2000
[생명과학부 교수로 소속 변경]
서울대학교 학제 개편에 따라 기존 미생물학과가 통합된 생명과학부 교수가 되었습니다.
학문 간 융합이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 미생물학을 넘어선 광범위한 생명과학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더 큰 단위의 학부 체제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연구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미생물학, 동물학, 식물학 등이 통합된 생명과학부의 일원으로서 시너지를 창출했습니다.
학부 내 분자생물학 전공 분야를 이끌며 다학제적 연구 과제들을 수행했습니다.
2022년 정년 퇴임 시까지 이 소속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명저와 논문을 남겼습니다.
2002
[로레알 여성과학자상 수상]
제1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본상을 수상하며 여성 과학자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여성 과학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그들의 연구 업적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상금과 함께 국내 여성 과학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다시 한번 각인되었습니다.
산화적 스트레스에 대한 미생물의 분자적 반응 기전을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녀는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며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후 로레알-유네스코 홍보대사 격인 활동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도 기여했습니다.
2004
[서울대 첫 여성 연구처장]
서울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연구처장으로 임명되어 대학 본부의 핵심 보직을 맡았습니다.
서울대의 연구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형 국책 연구 사업을 유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학의 연구 행정을 총괄하며 탁월한 행정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간 연구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연구비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연구자 친화적인 행정 서비스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당시 서울대의 연구 역량을 국내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2005
[기초기술연구회 이사 선임]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을 관리하는 기초기술연구회 이사로 선임되어 국가 과학 정책에 참여했습니다.
대학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며 기초 과학 진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국가 R&D 자금의 효율적인 배분과 운영에 대한 자문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이사직을 역임하며 연구 환경 개선을 주도했습니다.
다양한 국책 연구소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미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쌓은 정책적 네트워크는 훗날 그녀가 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6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과학기술부로부터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대한민국 여성 과학자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 중 하나를 달성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연구가 학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미생물 분자 유전학 분야에서의 탁월한 논문 발표와 학술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시상식에는 가족들과 동료들이 참석하여 그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국가에서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을 통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과학자로 공인받았습니다.
2008
[기초연구진흥협의회 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 기초연구진흥협의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기초 과학 육성 로드맵을 수립하고 예산 심의 과정에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연구자 주도의 기초 연구비 확대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위원으로서 국가 기초 과학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대학과 연구소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젊은 연구자 지원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과학 행정의 중심부에서 일하며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2009
[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위촉]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한국과학기술한림원(KAST)의 정회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최고의 과학자들만이 모이는 이 단체에 합류하며 명실상부한 국가 대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정회원으로서 국가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자문과 국제 교류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분자생물학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만장일치로 정회원에 추대되었습니다.
한림원의 다양한 심포지엄과 포럼에 참여하여 최신 과학 트렌드를 공유했습니다.
이후 한림원 내에서도 선도과학자로 선정되는 등 핵심적인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2010
[미국 미생물학술원 종신회원]
미국 American Academy of Microbiology(AAM)의 Fellow(종신회원)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국제적인 명예입니다.
그녀의 연구 역량이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하는 확실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한국인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선정되어 세계적인 미생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종신회원으로서 전 세계 미생물학 발전을 위한 논의와 투표에 참여할 권한을 가졌습니다.
이후 국제 학술회의에서 한국 미생물학계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1
[국과위 민간위원 위촉]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되어 대통령에게 과학 정책을 제언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범부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구성원으로서 국가 R&D 예산 배분 등 굵직한 현안을 다뤘습니다.
과학자의 시각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활동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위원으로서 국가 과학 기술의 미래 지도를 그리는 데 동참했습니다.
당시 신설된 위원회 체제 하에서 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거시적인 과학 행정 능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제13회 한국과학상 수상]
대한민국 과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제13회 한국과학상' 생명과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산화적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미생물의 신호 전달 체계를 규명한 세계적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상을 수여받으며 학문적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2011년 12월 15일 거행된 시상식에서 상금과 함께 대통령 상장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평생 매달려온 '미생물의 환경 적응 기전' 연구가 국가 최고의 학술적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함께 고생한 제자들과 연구원들에게 진심 어린 공을 돌렸습니다.
2012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선정하는 '선도과학자'에 이름을 올리며 전문성을 다시 입증했습니다.
한림원 내에서도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가진 교수들에게 부여되는 특별한 지위입니다.
선도과학자로서 차세대 과학 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멘토링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기존 정회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학문적 성취를 대외적으로 공인받은 것입니다.
그녀의 연구실은 국가적으로 지원받는 핵심 연구 거점으로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 시기에도 그녀는 실험실을 직접 챙기며 현역 연구자로서의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2013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기반분과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국가 과학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며 활약했습니다.
정부 부처 간의 벽을 허물고 융합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제안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과학 기술 경쟁력을 점검했습니다.
특히 기초 과학 분야의 예산 안정성 확보를 위해 강력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녀의 자문은 이후 국가 R&D 사업의 평가지표 개선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2015
[서울대 여교수회 회장 취임]
서울대학교 여교수회 제15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대학 내 성평등 문화 확산에 앞장섰습니다.
여성 교수들의 권익 향상과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대학 내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했습니다.
여교수회 창립 이후 꾸준히 활동해온 그녀는 2015년 회장직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대학 내 성희롱 예방 교육 강화와 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활동은 훗날 서울대 다양성위원회가 창설되는 중요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2016
[다양성위원회 초대위원장]
서울대학교에 신설된 '다양성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성별, 나이, 소속에 상관없이 구성원 모두가 존중받는 대학 문화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다양성 가치가 대학 경쟁력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2년간 위원장을 맡아 위원회의 기틀을 성공적으로 닦았습니다.
서울대학교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하여 대학 내 소수자들의 현실을 수면 위로 올렸습니다.
이 조직은 오늘날 서울대학교가 열린 지성 공동체로 나아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7
[기초연구학회연합 회장]
국내 주요 기초 과학 학회들의 연합체인 기초연구학회연합의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과학계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며 기초 연구비 증액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연구 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받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연구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기초연구비 확대 청원' 운동에 힘을 실었습니다.
정치권과 소통하며 국가 예산 편성 과정에 과학자들의 현실을 반영시키려 애썼습니다.
이 리더십은 그녀가 학계를 대표하는 행정가로 신뢰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8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취임]
대한민국 최대의 연구 지원 기관인 한국연구재단(NRF)의 제6대 이사장으로 전격 취임했습니다.
재단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장으로서 유리천장을 다시 한번 깨뜨린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연구자 중심, 국민 중심의 기초연구 진흥'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2018년 7월 9일 취임식을 갖고 3년간의 임기에 들어갔습니다.
임기 동안 연구자들의 행정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국가 R&D 시스템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인 연구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2019
[SigR 단백질 연구 발표]
국제 저명 학술지인 Molecular Microbiology에 미생물의 항생제 저항 반응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산화환원 반응을 감지하는 SigR 단백질이 어떻게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조절하는지 규명했습니다.
이사장 재직 중에도 학문적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연구 성과를 도출해내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SigR이 미생물의 스트레스 대응에서 '허브' 역할을 수행함을 입증한 중요한 연구였습니다.
실험실의 제자들과 소통하며 완성한 이 논문은 미생물 유전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연구 행정과 순수 학문을 병행하는 그녀의 모습은 학계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제1회 다양성 대화 강연]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기획한 '제1회 다양성 대화' 시리즈의 첫 번째 연사로 무대에 섰습니다.
'비전임 연구자를 위한 연구지원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연구재단 이사장으로서 청년 과학자들과 비전임 연구자들의 처우 개선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열린 강연에는 100명이 넘는 청중이 몰려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외 비전임 연구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했습니다.
단순한 강연을 넘어 연구 생태계의 질적 변화를 위한 정책적 제안을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2020
[Rsv1 유전자 기전 규명]
FEBS Journal에 미생물의 장기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 Rsv1의 조절 메커니즘을 발표했습니다.
당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미생물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협력하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밝혔습니다.
기초 생명과학의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 연구를 통해 학술적 깊이를 다시 증명했습니다.
미생물의 당 대사 조절 시스템이 스트레스 환경에서 어떻게 최적화되는지를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이 연구는 향후 항생제 개발이나 산업 미생물 개량 등에 응용될 수 있는 기초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정년 퇴임을 앞둔 시점에도 최상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2021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퇴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으로서 3년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공식 퇴임하였습니다.
재단 설립 이후 임기 전 중도 하차 없이 3년을 온전히 채운 드문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퇴임하며 연구 다양성 확보와 분야별 지원 체계 확립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습니다.
온라인 기자 간담회를 통해 그간의 성과와 아쉬움을 가감 없이 공유하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재단 예산이 5조 원 대에서 7조 원 대로 크게 늘어나는 양적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이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연구자 본연의 자세로 남은 시간을 보낼 것을 약속했습니다.
2022
[서울대학교 정년 퇴임]
36년간 몸담았던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하며 강단을 떠났습니다.
수석 입학부터 정년 퇴임까지 평생을 서울대와 함께하며 한국 과학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고 학계의 거목으로 남은 그녀의 은퇴에 많은 이들이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녀의 연구실을 거쳐간 박사와 석사들은 현재 국내외 학계와 산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퇴임식에서 그녀는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은퇴는 끝이 아닌 명예교수로서 새로운 학문적 봉사의 시작임을 알렸습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추대]
정년 퇴임 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명예교수로 추대되어 학문적 자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강단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연구실과 대학 사회의 어른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국가 과학 기술 자문 및 후배 교수들에 대한 조언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명예교수로서 대학의 장기적인 발전 계획 수립과 후학 양성에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의 연구 철학은 후배들의 실험실 운영에 여전히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그녀에게 명예교수직은 마땅한 예우이자 새로운 헌신의 자리입니다.
2023
[한겨레 오피니언 칼럼 기고]
한겨레 신문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을 조명하는 전문 칼럼을 기고하여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커털린 커리코 교수의 사례를 통해 기초 과학의 가치와 비전임 연구자 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과학계의 원로로서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복잡한 과학적 원리를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연구비 삭감 등 과학계의 현안을 염두에 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글을 통해 인류의 희망이 기초 연구에서 시작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2026
[기초 과학의 수호자로 활동]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과학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종 정부 위원회 및 학술 단체의 자문 역을 맡아 과학 정책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특히 후배 여성 과학자들의 성장과 권익 보호를 위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명예교수이자 과학 행정 전문가로서 그녀가 남긴 족적은 후대에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 자체가 한국 여성 과학자의 개척사이자 성공적인 정착기로 기억됩니다.
기초 과학을 향한 그녀의 멈추지 않는 열정은 오늘도 한국 과학계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