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로닝언 대학교
대학교, 교육기관, 연구소, 네덜란드, 공립 대학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8- 17:54:00
1614년 '성실과 지혜'를 기치로 설립된 흐로닝언 대학교는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명문 대학이자 북부 네덜란드의 지적 자존심입니다. 초대 총장 우보 에미우스의 리더십 아래 중세 대학의 유산과 근대적 연구 정신을 결합하며 탄탄한 성장을 이어왔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폐쇄 위기와 나치 점령기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학문의 자유를 수호했으며, 특히 네덜란드 최초의 여학생 알레타 야콥스와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인류 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현재는 11개 학부와 전 세계 수만 명의 인재가 모이는 글로벌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지속 가능한 미래와 에너지 혁신을 선도하는 지식의 등불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614
[4개 초기 학부 설치]
설립과 동시에 신학, 법학, 의학, 그리고 철학의 4개 핵심 학부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 종합 대학의 표준적인 학제 구성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철학부는 다른 전문 학부로 진학하기 위한 기초 과정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신학부는 지역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며 초기 대학 재정의 든든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각 학부는 독립적인 교수법과 연구 환경을 갖추고 학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신입생 등록 개시]
대학 설립 직후 네덜란드 북부와 독일 지역에서 온 학생들의 첫 등록이 이루어졌습니다. 신생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관심을 받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학생들은 대부분 흐로닝언 시내의 하숙집에 머물며 고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학생들은 대학교의 보호 아래 독자적인 사법권과 세금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지식인 계층이 대학교로 모여들게 만든 중요한 유인책 중 하나였습니다.
[흐로닝언 대학교 설립]
흐로닝언 지방 의회의 주도로 고등 교육 기관인 흐로닝언 대학교가 공식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북부 네덜란드 지역의 교육적 자립을 위한 역사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 내에서 레이덴 대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대학입니다.
종교 개혁의 영향 아래 개신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학문적 기초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이 설립은 흐로닝언이 지식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초대 총장 우보 에미우스]
저명한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인 우보 에미우스가 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대학교의 교육 체계와 학문적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기틀을 잡기 위해 유럽 전역의 우수한 교수진을 섭외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신생 대학이었던 흐로닝언 대학교가 빠르게 학술적 신뢰를 얻는 데 기여했습니다.
우보 에미우스의 학문적 엄격함은 대학교의 전통적인 학풍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618
[첫 전용 강의동 마련]
기존 건물을 개조하여 대학교의 공식 강의와 행사를 위한 전용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대학의 물리적 인프라가 점차 체계화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교회 소유의 건물을 개축하여 대강당과 도서관 공간을 배치했습니다.
이 공간은 교수들의 열띤 토론과 학생들의 공식적인 학위 수여식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
대학의 중심지가 형성되면서 흐로닝언 시와의 유대 관계도 더욱 깊어졌습니다.
1640
[네덜란드 황금기의 성장]
네덜란드의 경제적 번영과 함께 대학교의 연구 수준과 시설이 대폭 확충되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들이 흐로닝언으로 모여들며 학문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 시기에 대학교 도서관의 장서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연구 환경이 개선되었습니다.
과학적 탐구가 장려되면서 천문학 및 해부학 분야에서 초기적인 성과들이 나타났습니다.
대학교는 흐로닝언 지방 정부로부터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운영을 이어갔습니다.
1672
[흐로닝언 포위전의 위기]
프랑스와 독일 연합군의 흐로닝언 포위 공격으로 인해 대학교의 기능이 잠시 마비되었습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대학교는 지식의 보루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많은 교수진과 학생들이 도시 방어를 위해 직접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대학 건물 일부가 포격으로 손상되었으나 귀중한 장서들은 안전하게 보존되었습니다.
도시가 방어에 성공한 후 대학교는 신속하게 학사 일정을 재개하며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775
[페트루스 캄퍼의 활약]
당대 최고의 해부학자이자 예술가인 페트루스 캄퍼가 대학교의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그의 다학제적 연구는 흐로닝언 대학교의 학문적 지평을 넓혔습니다.
인류학, 생물학, 미술 이론을 넘나드는 그의 강의는 전 유럽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비교 해부학의 기초를 다지며 대학교 의학부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도면과 표본들은 현재까지도 대학교 박물관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1795
[바타비아 공화국 시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네덜란드 체제가 바뀌면서 대학교 운영 방식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중앙 집중적인 교육 행정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지방 자율권이 축소되고 국가 교육부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도 세속적인 근대 교육 체계로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는 대학교가 지방 대학에서 국가 대학으로 변모하는 중요한 과도기였습니다.
1811
[프랑스 제국 직속 대학화]
나폴레옹의 점령 하에 대학교가 프랑스 제국 대학 시스템에 편입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다른 대학들이 폐쇄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아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나폴레옹은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소규모 대학들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흐로닝언 대학교는 지역적 중요성과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존속이 결정되었습니다.
이 시기 프랑스식 행정 구조가 이식되면서 현대적 대학 행정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1815
[국립 대학교 지위 획득]
네덜란드 왕국 수립 이후 대학교는 공식적인 국립 대학교(Rijksuniversiteit)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의 재정적 보장과 학문적 지위를 확고히 한 사건입니다.
네덜란드 3대 국립 대학 중 하나로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학문 연구의 표준화가 진행되었으며 교수진의 지위가 국가 공무원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로써 대학교는 북부 네덜란드를 넘어 국가 전체의 지적 자산으로 발돋움했습니다.
1850
[아카데미 현대화 추진]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인 연구 중심의 대학교로 전환을 시작했습니다. 산업 혁명 시대에 필요한 실용 학문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자연과학 분야의 실험실이 확충되고 실험 중심의 교수법이 도입되었습니다.
사회과학적 사고가 법학과 철학 분야에 스며들며 학문의 융합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흐로닝언 대학교가 근대적 연구 기관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871
[알레타 야콥스 입학]
네덜란드 최초의 여학생인 알레타 야콥스가 의학부 학생으로 공식 등록되었습니다. 보수적인 대학 사회에서 여성 교육의 길을 연 역사적인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수상이던 요한 루돌프 토르베케의 특별 허가를 받아 정식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입학은 성별에 따른 교육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전 세계적인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야콥스는 이후 의사가 되어 여성 인권 신장과 사회 개혁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1876
[고등교육법 제정 및 개편]
새로운 고등교육법 시행에 따라 대학교의 자율성이 확대되고 연구 기능이 강화되었습니다. 학위 수여 체계가 정비되면서 학문적 엄격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연구를 통한 지식 창출이 대학교의 제1 사명으로 명문화되었습니다.
교수진 선발에 있어 연구 실적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법 개정은 네덜란드 대학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결정적인 토대였습니다.
1879
[네덜란드 최초 여성 박사]
알레타 야콥스가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네덜란드 최초의 여성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성공은 여성도 고등 학문을 완수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녀의 졸업은 대중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으며 여성들의 대학교 입학을 가속화했습니다.
야콥스는 졸업 후 암스테르담에서 개업의로 활동하며 산아 제한 등 진보적 의제를 주도했습니다.
대학교는 현재 캠퍼스 내 그녀의 동상을 세워 그 숭고한 도전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1880
[자연과학 부문의 비상]
물리학, 화학 등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최신 장비를 갖춘 실험동이 준공되면서 연구 성과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천문학 분야에서 카프테인 교수의 주도로 은하계 구조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성과는 훗날 20세기 노벨상 수상의 기틀이 되는 중요한 학문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대학교는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제적인 학술 교류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1903
[대학 본부 화재 발생]
유서 깊은 대학교 본관 건물이 원인 모를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대학의 역사를 담은 수많은 서류와 시설이 사라진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대학교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화재 직후 시민들과 동문들이 복구 기금을 모으며 대학교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이 위기는 오히려 대학교가 더 웅장하고 현대적인 본관을 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06
[현 아카데미 건물의 완공]
화재로 소실된 본관을 대신할 새 아카데미 빌딩(Academiegebouw)이 완공되었습니다.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이 건물은 현재까지 대학교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관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대강당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건물은 흐로닝언 시의 건축적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 대학의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현재도 모든 공식 행사와 박사 학위 수여식이 이곳에서 엄숙하게 거행됩니다.
1914
[개교 300주년 기념식]
설립 30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축하 행사와 국제 학술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지난 3세기의 성과를 돌아보고 미래 400년을 향한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대학 총장들이 참석하여 흐로닝언 대학교의 학문적 위상을 축하했습니다.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대학교 역사를 정리한 방대한 사사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에 열린 지식인들의 마지막 평화로운 축제였습니다.
1920
[경제학부 공식 창설]
산업 사회의 복잡한 경제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경제학부가 정식 설립되었습니다. 상업과 산업 현장에 즉시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초기에는 법학부 내의 과정으로 시작했으나 곧 독립된 학문 영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통계학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근대적인 커리큘럼을 선보였습니다.
현재 이 학부는 유럽에서 가장 우수한 경제 연구 기관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1930
[제르니케의 위상차 현미경]
물리학자 프리츠 제르니케가 생체 세포를 염색 없이 관찰할 수 있는 위상차 현미경을 발명했습니다. 이는 의학과 생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 기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투명한 세포를 보기 위해 독성이 강한 염색약을 써야만 했습니다.
제르니케의 발명으로 살아있는 세포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연구는 대학교 물리학부의 독보적인 실험 설계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1940
[나치 독일의 점령]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하면서 대학교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학문의 자유가 억압되고 대학교 운영이 군부의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교수진과 학생들이 강제로 퇴출당하는 아픈 역사를 겪었습니다.
일부 교수들은 나치의 교육 방침에 저항하다 체포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캠퍼스는 군사적 목적으로 징발되기도 했으나 연구원들은 지하에서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1943
[학생들의 충성 맹세 거부]
나치 당국이 모든 학생에게 독일에 대한 충성 맹세를 요구하자 대다수 학생들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 저항으로 인해 대학교는 공식적으로 폐쇄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맹세에 서명하는 대신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레지스탕스 활동에 투신했습니다.
대학교 운영진은 학생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수단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용기 있는 행동은 흐로닝언 대학교의 자부심 어린 역사적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45
[흐로닝언 해방 및 재개교]
연합군에 의해 흐로닝언이 해방되자 대학교는 즉각적인 복구와 재개교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학문의 전당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폐허가 된 캠퍼스를 정비하고 흩어졌던 교수진과 학생들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전쟁 중 희생된 구성원들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본관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재개교 이후 대학교는 평화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교육에 매진했습니다.
1953
[제르니케 노벨 물리학상]
프리츠 제르니케 교수가 위상차 현미경을 발명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대학교 최초의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 학계의 중심에 우뚝 섰습니다.
그의 수상은 네덜란드 기초 과학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증명한 쾌거였습니다.
대학교는 그를 기리기 위해 현대적 과학 캠퍼스 부지를 '제르니케 캠퍼스'로 명명했습니다.
이 성과는 흐로닝언 대학교가 실험 물리학의 메카로 성장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60
[사회과학부 독립 설치]
심리학, 사회학 등을 포함하는 사회과학부가 철학부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출범했습니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강화했습니다.
행동 과학 연구를 위한 대규모 실험 시설이 확충되었습니다.
정부의 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이 학부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 분야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4
[개교 350주년 대제전]
창립 350주년을 맞아 대규모 캠퍼스 확장 계획과 미래 발전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양적 성장과 함께 연구의 질적 도약을 목표로 삼은 해였습니다.
대도시의 좁은 공간을 벗어나 외곽에 대형 과학 연구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과학 축제를 통해 대학교의 연구 성과를 대중과 공유했습니다.
이 시기 흐로닝언 대학교는 네덜란드 북부 경제의 핵심 엔진으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1968
[학생 민주화 운동 발발]
유럽 68혁명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대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참여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권위주의적인 대학 문화를 바꾸기 위한 평화로운 저항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강의실 점거 대신 평의회 구성을 통한 의사결정 참여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대학교 측은 전향적인 자세로 학생 대표의 이사회 참여를 수용했습니다.
이 사건은 흐로닝언 대학교가 가장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운영 체제를 갖추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0
[대학교 거버넌스 개혁]
새로운 대학 행정법에 따라 대학교의 의사결정 구조가 전면적으로 개편되었습니다. 교수, 학생, 교직원이 함께 참여하는 평의회 제도가 정착되었습니다.
단순한 행정 편의를 넘어 학문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다층적인 거버넌스가 구축되었습니다.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 시스템을 강화했습니다.
이 개혁은 대학교가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세계 100대 대학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75
[제르니케 캠퍼스 명명]
시 북부의 대규모 연구 단지를 노벨상 수상자 프리츠 제르니케를 기려 '제르니케 캠퍼스'로 공식 명명했습니다. 첨단 과학과 공학 연구의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자연과학, 공학, 경영학 전공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며 거대 학술 단지를 형성했습니다.
산학 협력을 위한 연구 시설들을 배치하여 기술 상용화를 장려했습니다.
현재 이 캠퍼스는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캠퍼스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80
[컴퓨터 교육 전면 도입]
모든 학문 분야에 컴퓨터를 활용한 연구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정보화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선제적으로 준비한 혁신적인 조치였습니다.
대학 전역에 전산망을 구축하고 학생들을 위한 컴퓨터 실습실을 대거 확충했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인문 사회과학 연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투자는 훗날 대학교가 데이터 과학 분야의 선두 주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8
[대학 병원(UMCG) 통합]
대학교 의학부와 흐로닝언 시립 병원이 통합되어 흐로닝언 대학교 의료센터(UMCG)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교육과 진료, 연구가 하나로 융합된 메머드급 의료 기지가 탄생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료 센터 중 하나로서 혁신적인 치료법 연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노화(Healthy Ageing)'를 핵심 연구 테마로 설정하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환자 중심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여 임상 연구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1994
[대학교 박물관 개관]
대학교의 역사적 유물과 과학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대학의 학문적 가치를 알리는 문화 거점이 마련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현대적 디자인의 건물 내에 수세기에 걸친 학문적 자산을 배치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과학 교육 프로그램과 전문가 초청 강연을 수시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흐로닝언 시내의 중요한 문화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99
[볼로냐 프로세스 참여]
유럽 고등 교육의 표준화 작업인 볼로냐 프로세스에 적극 참여하여 학위 체계를 개편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유럽 대학들과의 학문적 호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학사와 석사 과정을 명확히 분리하고 학점 교환 시스템을 국제 표준에 맞췄습니다.
이후 해외 유학생 유치가 가속화되면서 캠퍼스의 국제화 지수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유럽 내 교육 허브로서 흐로닝언 대학교의 위상을 재확인한 계기였습니다.
2003
[코임브라 그룹 가입]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명문 대학들의 모임인 코임브라 그룹에 정식 가입했습니다. 대학교의 역사성과 학문적 수월성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성과입니다.
옥스퍼드, 하이델베르크 등 유수의 대학들과 긴밀한 연구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유럽 명문 대학들로의 다양한 교환 학생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입을 통해 대학교의 글로벌 인지도가 대폭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2005
[학-석사 학제 전면 개편]
기존의 통합 학위 체계를 폐지하고 글로벌 표준인 학사(3년)와 석사(2년) 체제로 전면 전환했습니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권을 넓히고 학문의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영어 전담 석사 과정을 대거 신설하여 외국인 인재 유입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각 과정마다 엄격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학위의 공신력을 높였습니다.
이 변화 이후 대학교는 매년 수천 명의 국제 학생을 유치하는 글로벌 대학으로 변모했습니다.
2007
[세계 100대 대학 진입]
주요 세계 대학 평가 기관의 순위에서 사상 처음으로 세계 1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학교의 연구 역량과 교육 수준이 세계 정상급임을 공식 인정받은 사건입니다.
특히 연구 인용도와 국제화 지수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정부로부터 특별 연구 기금을 지원받아 최첨단 연구 장비를 추가로 도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흐로닝언 대학교는 매년 안정적으로 상위권 순위를 유지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0
[에너지 아카데미 유럽 설립]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 다학제적 연구 기관인 에너지 아카데미 유럽을 창설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의 기술적 해법을 모색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공학, 사회학, 법학 전문가들이 모여 에너지 전환의 사회적 비용과 기술 혁신을 연구합니다.
지역 기업들과 협력하여 세계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신축 본부를 완공했습니다.
현재 이 아카데미는 유럽 에너지 정책 수립의 핵심적인 자문 기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1
[린네우스보르그 빌딩 준공]
생물학 및 생명공학 연구의 거점이 될 초대형 복합 연구동인 린네우스보르그를 제르니케 캠퍼스에 준공했습니다. 식물 진화에서 분자 생물학까지 아우르는 최신 실험실을 갖췄습니다.
녹색 식물을 상징하는 독특한 건물 디자인으로 친환경 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천 명이 넘는 연구진이 한자리에서 협업할 수 있는 오픈형 연구 공간을 구비했습니다.
이 건물의 준공으로 대학교는 생명과학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2014
[개교 400주년 기념행사]
대학교 설립 400주년을 맞아 성대한 축제와 국제 학술 서밋을 개최했습니다. 4세기의 역사를 기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400년 지식'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펼쳤습니다.
네덜란드 국왕이 직접 참석하여 대학교의 공로를 치하하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거리 퍼레이드와 대규모 과학 체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기념 사업으로 흐로닝언 시내 전역에 대학교의 역사를 알리는 예술 조형물들이 설치되었습니다.
2015
[올해의 네덜란드 대학 선정]
전국 대학 평가인 Keuzegids에서 네덜란드 최고의 종합 대학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학생들의 만족도와 교육의 질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강의실의 학구적 분위기와 체계적인 학생 상담 시스템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학생 복지 면에서도 최고 수준임을 입증한 결과였습니다.
이후 입학 희망자가 폭증하며 대학교는 선발 기준을 강화하는 등 행복한 고민을 겪었습니다.
2016
[데이터 과학 센터 개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연구를 총괄하는 데이터 과학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모든 학문 분야에 데이터 분석 기술을 이식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합니다.
인문학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고문서를 분석하거나 법학자가 판례 데이터를 시각화하도록 돕습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들과 협력하여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이 센터는 대학교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선두 주자로 남게 하는 핵심 엔진입니다.
[벤 페링가 노벨 화학상]
베르나르트 L. 페링가 교수가 '분자 기계' 연구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대학교에서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며 과학 기술의 리더임을 다시 입증했습니다.
그는 인공적으로 빛에 반응하여 회전하는 나노 모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이 연구는 미래의 정밀 의료와 나노 로봇 개발의 원천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페링가 교수는 수상 후에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2017
[캠퍼스 프라이슬란 설립]
레우와르덴 시에 대학교의 첫 공식 분교인 '캠퍼스 프라이슬란'을 설립했습니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다학제적 연구와 글로벌 책임감을 강조하는 캠퍼스입니다.
순환 경제, 지속 가능한 사회 구조 등 미래형 융합 전공들을 대거 개설했습니다.
프라이슬란 지방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며 대학의 지역적 사회 공헌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 분교는 헬싱키 시 외부에서의 대학교 영향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되었습니다.
2018
[페링가 빌딩 착공식]
노벨상 수상자 벤 페링가를 기리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물리·화학 실험 전용 건물인 페링가 빌딩의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미래 과학의 산실이 될 거대 프로젝트입니다.
진동과 온도 변화에 극히 민감한 나노 실험 장비들을 수용하기 위한 특수 공법이 적용되었습니다.
준공 시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연구 건물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흐로닝언 대학교가 향후 50년간 기초 과학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지키는 무기가 될 것입니다.
2019
[지속가능성 로드맵 발표]
2030년까지 대학 운영 전반에서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선포했습니다. 연구와 교육뿐만 아니라 캠퍼스 관리에서도 환경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대학 차량을 전기차로 전면 교체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학생들의 식단에서 육류 비중을 낮추고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학교가 기후 위기 해결에 있어 말보다 행동으로 앞장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2020
[전면 온라인 교육 전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네덜란드 정부의 휴교령이 내려지자 모든 수업을 단 며칠 만에 온라인으로 완벽히 전환했습니다. 디지털 교육 인프라의 위력을 실전에서 증명한 사례입니다.
교수진들에게 긴급 온라인 강의 툴 교육을 실시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노트북을 지원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학업 중단을 막기 위해 24시간 온라인 지원팀을 가동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대학교가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캠퍼스 모델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1
[전략 계획 2021-2026 선포]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대비하여 '사회와 함께하는 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5개년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사회적 포용성을 양대 축으로 설정했습니다.
개인 맞춤형 평생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여 지역 시민들의 재교육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국제 공동 연구 펀드를 대폭 증액하여 전 지구적 난제 해결에 기여할 계획입니다.
이 계획을 통해 대학교는 지식의 상아탑을 넘어 사회 혁신의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선언했습니다.
2022
[다양성 및 포용성 사무소 설립]
모든 구성원이 차별 없이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전문적인 다양성 기구를 설치했습니다. 캠퍼스 내의 평등 문화를 정착시키는 컨트롤 타워입니다.
소수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를 확대하고 성평등 지수를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교직원 임용 시 다양성 평가를 의무화하여 열린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4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흐로닝언 대학교가 끊임없이 스스로 쇄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2023
[AI 및 데이터 사이언스 허브]
인공지능과 데이터 과학 연구를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전 분야에 접목하는 범대학 차원의 연구 허브를 본격 가동했습니다. 디지털 주권 확보를 위한 핵심 인프라입니다.
생성형 AI의 윤리적 활용 가이드라인을 전 세계 대학 중 앞서서 발표했습니다.
지역 산업체와 연계하여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양성하는 공동 학위 과정을 개설했습니다.
흐로닝언 대학교는 이제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지능형 사회를 설계하는 엔진으로 활약 중입니다.
2024
[개교 410주년 비전 발표]
설립 410주년을 맞아 대학교의 다음 반세기를 설계하는 새로운 슬로건과 발전 로드맵을 공개했습니다. '지식으로 세상을 잇는다'는 연결의 철학을 강조했습니다.
전 세계 대학들과의 온라인 무료 강의 공유 시스템인 '그로닝언 오픈 나리지'를 출시했습니다.
기후 변화 대응 연구 예산을 두 배로 증액하여 지구 환경 보존에 기여할 계획입니다.
이 비전 발표는 흐로닝언 대학교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2026
[미래를 향한 쉼 없는 진보]
오늘날 흐로닝언 대학교는 400년의 위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의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인의 신뢰를 받는 학문의 전당으로 우뚝 섰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도 학문적 진실과 자유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혁신과 열정으로 전 세계의 인재들을 불러 모으며 공동 번영을 꿈꾸고 있습니다.
흐로닝언의 심장에서 타오르는 학문의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고 시대를 밝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