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호랭이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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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1- 18: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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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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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겸 프로듀서 신사동호랭이는 K-POP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며 가요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2005년 데뷔 후 EXID의 '위아래', 티아라 '롤리폴리' 등 수많은 곡을 탄생시키며 독특한 댄스 멜로디와 리듬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2024년 안타깝게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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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이호양의 탄생]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본명 이호양으로 태어났습니다. 훗날 대한민국 가요계를 뒤흔들 천재 작곡가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소리에 민감하고 음악적 흥미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에서 태어났으나 실제 성장은 전라남도 광양시에서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춤과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지역 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가족들의 전언에 따르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한 번 듣고 따라 할 정도로 감각이 좋았습니다.

1996

[광양 중앙초 졸업]

전라남도 광양시에 위치한 광양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에 노출되며 창작의 꿈을 키웠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무대 위에서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장기자랑 무대에 빠지지 않고 오르며 끼를 발산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댄스 음악들을 섭렵하며 리듬감을 익혔던 시기입니다. 주변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소년이었으며 음악적 호기심이 매우 왕성했습니다.

1999

[광양 중동중 졸업]

광양중동중학교를 졸업하며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댄스 동아리 활동을 통해 퍼포먼스와 음악의 조화를 직접 체험하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댄스곡 중심의 히트 메이커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보다 음악과 춤에 더 몰두하며 자신만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직접 안무를 구상하고 음악을 편집하는 등 프로듀싱의 기초적인 형태를 실험했습니다. 지역 청소년 축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탁월한 춤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002

[광양백운고 졸업]

광양백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음악 세계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습니다. 학업을 마무리하고 가수의 꿈을 품은 채 서울로 상경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을 믿고 과감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학교 축제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연예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독학으로 작곡 기초를 공부하며 자신만의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여러 기획사의 문을 두드리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2004

[험난한 오디션 생활]

가수가 되기 위해 수많은 기획사 오디션에 도전했으나 연이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외모보다는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로 작곡과 편곡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대 위의 주인공보다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대형 기획사 오디션에서 수십 번 낙방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오디션 실패 후 신사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음악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이때의 절실함이 훗날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 강력한 멜로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05

[작곡가 공식 데뷔]

더 자두의 '남과 여'를 편곡하며 프로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신사동호랭이라는 예명으로 세상에 자신의 음악을 처음 알린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독특한 예명과 세련된 감각으로 업계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신사동에 작업실이 있었고 이름인 호양과 호랑이가 비슷해 '신사동호랭이'라는 예명을 지었습니다. 편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리며 힙합과 댄스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초기 작업물부터 대중적인 코드와 중독성을 갖추어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2006

[장우혁 솔로곡 참여]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장우혁의 솔로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며 입지를 다졌습니다. 강력한 퍼포먼스에 최적화된 비트를 만들어내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대형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듀싱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H.O.T. 출신 장우혁의 음악적 변신을 돕는 트랙들을 제공하며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현대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가요에 접목하는 선구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이 작업을 계기로 여러 아이돌 기획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08

[마이티 마우스 에너지]

마이티 마우스의 '에너지'를 작곡하여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신사동호랭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곡의 대성공으로 그는 '히트곡 제조기'라는 타이틀을 본격적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선예의 보컬과 곡의 분위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장기간 점령했습니다.

2009

[포미닛 핫 이슈 탄생]

신인 그룹 포미닛의 데뷔곡 'Hot Issue'를 프로듀싱하여 가요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강렬한 비트와 중독성 있는 후크로 걸그룹 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그는 아이돌 전문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포미닛의 '캔디 펑크' 컨셉을 가장 잘 표현한 곡으로 평가받습니다.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이 아닌 세련된 편곡으로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만족시켰습니다. 이후 포미닛은 이 곡을 발판 삼아 최정상급 걸그룹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티아라 보핍보핍 열풍]

티아라의 'Bo Peep Bo Peep'을 작곡하여 전 국민적인 고양이 댄스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귀여운 가사와 멜로디의 완벽한 조화로 티아라를 최고의 인기 그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음악이 가진 대중적인 파괴력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앙증맞은 장갑을 낀 포인트 안무와 곡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첫 1위를 차지하는 등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당시 '후크송'의 정점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습니다.

2010

[현아 Change 작곡]

현아의 첫 솔로곡 'Change'를 작곡하여 그녀의 카리스마를 극대화했습니다. 파워풀한 비트와 세련된 멜로디로 현아를 독보적인 솔로 아티스트로 안착시켰습니다. 트렌디한 사운드 메이킹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한 작품입니다.

현아의 골반춤과 조화를 이루는 강렬한 베이스 라인이 특징인 곡입니다. 솔로 가수로서 현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용준형의 피처링과 어우러져 당시 힙합 댄스 곡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시크릿 Magic 탄생]

시크릿의 'Magic'을 통해 그들을 무명에서 인기 그룹으로 단숨에 끌어올렸습니다. 브라스 사운드가 인상적인 이 곡은 시크릿만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잘 살렸습니다. 아이돌 그룹의 반등을 이끄는 '회생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포인트 안무인 '털기 춤'과 음악이 만나 엄청난 화제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시크릿 멤버들의 보컬적인 장점을 잘 파악하여 배치한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이후 시크릿은 이 곡을 기점으로 연이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포미닛 HUH 프로듀싱]

포미닛의 'HUH'를 통해 더욱 성숙해진 어반 힙합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기존의 발랄함에서 벗어나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 포미닛의 색깔을 강화했습니다. 실험적인 사운드 시도로 호평을 받은 앨범입니다.

도시적인 세련미와 강렬한 비트가 조화를 이룬 수작으로 꼽힙니다. 비스트 멤버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등 소속사 선후배 간의 협업도 돋보였습니다.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포미닛의 전성기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비스트 숨(Soom) 발표]

비스트의 '숨'을 작곡하여 그들의 음악적 역량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비트와 애절한 멜로디가 공존하는 명곡으로 비스트의 팬덤을 확장했습니다. 보이그룹 프로듀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각을 증명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숨 가쁘게 몰아치는 구성이 곡의 제목과 완벽히 부합했습니다. 멤버들의 뛰어난 가창력을 돋보이게 하는 고음역대 배치가 인상적입니다. 이 곡으로 비스트는 명실상부한 최정상급 보이그룹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2011

[비스트 Fiction 작곡]

비스트의 인생곡인 'Fiction'을 탄생시키며 가요계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일렉트로닉 비트의 조화는 대중과 평단을 모두 열광시켰습니다. 이 곡으로 비스트는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가사 전달력과 멜로디의 서사 구조가 매우 탄탄하여 한 편의 이야기 같습니다. '발을 끄는 춤'과 음악이 만나 최고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선사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보이그룹 댄스곡 중 가장 세련된 곡 중 하나로 회자됩니다.

[티아라 롤리폴리 열풍]

복고풍 댄스곡 'Roly-Poly'를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복고 열풍을 주도했습니다. 80년대 디스코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전국을 춤추게 만들었습니다. 그해 음원 차트 연간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층에게는 신선함을 준 영리한 기획이었습니다. 뮤직비디오 역시 한 편의 영화처럼 제작되어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신사동호랭이의 커리어 중 가장 대중적인 파괴력이 컸던 곡으로 꼽힙니다.

[멜론 뮤직 어워드 수상]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송라이터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작곡가임을 공인받았습니다. 그해 발표한 수많은 히트곡의 성과를 인정받은 값진 영예였습니다. 대중음악계에서 그의 영향력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한 해 동안 차트 상위권을 점령한 수많은 곡의 창작자로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동료 아티스트들과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후 매년 주요 시상식의 단골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트러블 메이커 탄생]

현아와 장현승의 유닛 '트러블 메이커'를 프로듀싱하여 가요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중독성 있는 휘파람 소리와 도발적인 퍼포먼스로 혼성 유닛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파격적인 시도로 대중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도입부의 휘파람 멜로디는 전 국민이 따라 할 정도로 강력한 중독성을 가졌습니다. 섹시함과 실력을 동시에 갖춘 유닛의 정체성을 음악으로 완벽히 구현했습니다. 음원 차트 올킬은 물론 각종 방송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습니다.

2012

[티아라 Lovey-Dovey 성공]

셔플 댄스를 전면에 내세운 'Lovey-Dovey'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습니다. 롤리폴리에 이어 다시 한번 댄스 열풍을 주도하며 티아라의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클럽 사운드를 가요에 최적화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경쾌한 비트와 셔플 댄스의 조화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음악 방송에서 수차례 1위를 차지하며 티아라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의 음악이 가진 트렌디함과 대중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례입니다.

[직접 키운 EXID 데뷔]

자신이 직접 제작하고 프로듀싱한 걸그룹 EXID를 가요계에 데뷔시켰습니다. 작곡가를 넘어 제작자로서의 역량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훗날 벌어질 기적 같은 역주행 신화의 서막이었습니다.

데뷔곡 'Whoz That Girl'은 세련된 감각을 보였으나 초기 반응은 미미했습니다. 멤버 선정부터 음악 컨셉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초기 흥행 부진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의 잠재력을 믿고 꾸준히 지원했습니다.

[가온차트 작곡가상 수상]

제1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에서 올해의 작곡가상을 수상했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가장 공정한 지표로 최고의 실력을 입증받은 결과였습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중심에 서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전년도 티아라, 비스트 등과 작업한 곡들의 압도적인 스트리밍 수치가 기반이 되었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상을 기점으로 '신사동호랭이'라는 브랜드는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에이핑크 MY MY 작곡]

에이핑크의 'MY MY'를 작곡하여 그들의 청순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에이핑크가 처음으로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걸그룹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존의 강렬한 사운드와는 또 다른 청량한 팝 댄스 곡을 선보였습니다. 이 곡으로 에이핑크는 차세대 걸그룹 선두주자로 발돋움했습니다. 에이핑크와 신사동호랭이의 성공적인 협업의 시작이 된 중요한 곡입니다.

2013

[에이핑크 NoNoNo 탄생]

에이핑크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NoNoNo'를 프로듀싱하여 정상에 올렸습니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힐링을 주는 가사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이핑크의 확실한 입지를 굳힌 일등 공신이 된 작품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가 핵심이었습니다. 노래방 애창곡 순위 상위권을 장기간 유지하며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곡의 성공으로 에이핑크는 '청순 아이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2014

[EXID 위아래 발표]

EXID의 운명을 바꾼 '위아래'를 발표했으나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중독성 있는 후크와 파격적인 안무가 돋보이는 곡이었으나 초기 활동은 짧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수개월 뒤 기적 같은 역주행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는 곡의 완성도에 자신감이 있었으나 초기 차트 성적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활동 종료 후에도 멤버들을 다독이며 다음을 기약했던 인내의 시기였습니다. 훗날 이 곡은 신사동호랭이의 제작자 인생을 바꾸는 신의 한 수가 됩니다.

[에이핑크 LUV 작곡]

에이핑크의 'LUV'를 통해 성숙해진 감성의 댄스곡을 선보였습니다. 지상파 음악 방송 17관왕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에이핑크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에이핑크와의 완벽한 호흡을 다시 한번 과시한 명곡입니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슬픈 감성을 세련된 비트에 녹여냈습니다. 에이핑크가 청순함을 넘어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도왔습니다. 그해 겨울 대한민국 거리에 가장 많이 울려 퍼진 노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EXID 역주행의 기적]

차트 밖으로 밀려났던 '위아래'가 팬의 직캠을 계기로 다시 진입하며 1위까지 오르는 신화를 썼습니다. 제작자로서 그의 끈기와 믿음이 마침내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사라질 뻔한 그룹을 대한민국 최고의 대세로 만든 기적적인 사건이었습니다.

EXID는 강제 소환되어 다시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진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멤버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이 기쁨을 만끽하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 사건은 가요계에서 '역주행'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2015

[EXID 아예(Ah Yeah) 히트]

역주행 이후 첫 컴백곡 '아예'를 성공시키며 EXID의 인기를 확고히 했습니다. '위아래'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세련미를 선보였습니다. 거품 논란을 잠재우고 실력파 아이돌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재치 있는 가사가 돋보인 수작입니다.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대세 그룹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제작자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다이아(DIA) 데뷔 프로듀싱]

신인 걸그룹 다이아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맡아 다시 한번 제작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왠지'를 통해 발랄하고 상큼한 소녀들의 에너지를 음악에 담았습니다. 다양한 색깔의 걸그룹을 만들어내는 그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이아 멤버들의 풋풋한 매력을 부각할 수 있는 청량한 멜로디를 강조했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화제를 모으며 다이아가 시장에 안착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작곡가로서 여러 기획사의 요청을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6

[달샤벳 너 같은 작곡]

달샤벳의 9번째 미니 앨범 타이틀곡 '너 같은'을 통해 복고풍 레트로 사운드의 진수를 보였습니다. 8090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달샤벳의 매력을 이끌어냈습니다. 대중적인 코드와 세련된 비트의 조화가 돋보였습니다.

세련된 브라스 사운드와 신나는 비트가 조화를 이룬 곡입니다. 달샤벳 멤버들의 보컬적인 장점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그의 음악적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과시했습니다.

2017

[EXID 낮보다는 밤 프로듀싱]

EXID의 음악적 변화를 시도한 '낮보다는 밤'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강렬함에서 벗어나 세련된 업템포 알앤비 장르를 선보이며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아티스트로서 EXID의 성장을 돕는 섬세한 프로듀싱을 보여주었습니다.

솔지의 건강 문제로 인한 부재 속에서도 완벽한 팀워크를 음악으로 구현했습니다.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는 평단과 대중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제작자로서 그룹의 장기적인 방향성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2018

[모모랜드 뿜뿜 대히트]

모모랜드의 '뿜뿜'을 작곡하여 전 국민적인 댄스 열풍을 다시 한번 일으켰습니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흥겨운 비트로 모모랜드를 단숨에 대세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음악이 여전히 시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유튜브 조회수 수억 뷰를 기록하며 글로벌 히트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필리핀, 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K-POP 전도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해 각종 시상식에서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이 호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인 회생 절차 개시]

지인과의 금전 거래 및 보증 문제로 인해 법원에 개인 회생을 신청했습니다.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재정적 시련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채무 변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창작 활동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약 17억 원의 부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성실히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음악 작업을 멈추지 않고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책임감을 보여준 가슴 아픈 연혁의 한 페이지입니다.

2021

[트라이비(TRI.BE) 런칭]

유니버설 뮤직과 합작하여 신인 걸그룹 트라이비를 가요계에 데뷔시켰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야심 찬 프로젝트로 제작자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색깔을 신인 그룹에 입히는 데 집중했습니다.

데뷔곡 '둠둠타'를 통해 강렬하고 독특한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글로벌 프로듀서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열정을 쏟아부은 가장 최근의 제작 프로젝트로 평가받습니다.

2024

[비보와 갑작스러운 별세]

향년 41세의 나이로 자신의 작업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요계의 거대한 별이 지는 순간이었으며 수많은 동료와 팬들이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새로운 음악을 고민하던 천생 작곡가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EXID 멤버들을 비롯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히트곡은 여전히 대중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가요사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발인식 엄수]

서울성모병원에서 가족과 동료들의 애도 속에 발인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소속사는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2024년 2월 25일 오후, 고인의 발인식이 서울성모병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티알엔터테인먼트 측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픔에 빠진 유가족을 위해 억측이나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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