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카디널스

미국 미식축구팀, 스포츠 구단, 프로 스포츠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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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카디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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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카디널스는 1898년에 창단된 미국 프로 미식축구팀입니다. NFL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팀 중 하나이며, 1925년과 1947년에 두 번의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을 연고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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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모건 애슬레틱 클럽 창단]

시카고 남부에서 크리스 오브라이언이 '모건 애슬레틱 클럽'이라는 이름의 미식축구 팀을 결성했습니다.

이 팀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연속 운영 미식축구 팀으로서의 역사를 시작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아마추어 동네 팀으로 출발했으나, 크리스 오브라이언의 열정적인 운영으로 시카고 지역의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이 조직은 이후 수차례 이름을 바꾸며 현재의 애리조나 카디널스로 발전하게 되는 구단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1899

[러신 노멀스로 명칭 변경]

팀의 명칭을 '러신 노멀스(Racine Normals)'로 변경하였습니다.

홈 경기장이 러신 애비뉴에 위치한 노멀 파크였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명칭을 정했습니다.
당시 시카고 지역 미식축구 리그에서 활동하며 점차 프로 구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노멀스라는 이름은 팀이 초기에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데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했습니다.

1901

[러신 카디널스로 명칭 변경]

팀의 이름을 '러신 카디널스'로 변경하고 팀의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확정했습니다.

창단자 크리스 오브라이언이 시카고 대학교로부터 중고 빨간색 유니폼을 구매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유니폼의 색을 보고 '퇴색된 빨간색'이 아니라 '카디널 레드(Cardinal Red)'라고 칭하며 팀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이때부터 '카디널스'라는 명칭과 상징적인 빨간색은 구단의 변하지 않는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1906

[팀 운영 일시 중단]

시카고 내 다른 팀들과의 경쟁과 운영 자금 부족 등으로 인해 팀 운영이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1906년부터 몇 년간 공식적인 활동을 멈추었으나 구단의 해체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시카고 지역의 불안정한 스포츠 환경 때문에 많은 팀이 사라졌지만, 카디널스는 생존을 모색했습니다.
이후 다시 팀을 재건하여 활동을 재개하는 원동력을 마련하는 휴식기가 되었습니다.

1913

[팀 활동 재개]

크리스 오브라이언이 팀을 다시 조직하여 시카고 지역 리그에 복귀했습니다.

휴지기를 거친 후 더욱 체계적인 선수 구성과 운영 방식을 도입하여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시카고 남부의 미식축구 팬들에게 다시금 카디널스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재건은 향후 NFL 창설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를 닦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1917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운영 중단]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해 팀의 운영이 다시 한번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전쟁에 징집되면서 정상적인 리그 참가가 불가능해졌습니다.
미국 전역의 스포츠 구단들이 겪었던 공통적인 시련이었으나 카디널스는 조직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전쟁 종료 후 신속하게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병행하며 팀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1919

[전쟁 후 팀 재조직]

전쟁이 끝나고 선수들이 복귀함에 따라 팀을 완벽하게 재건하였습니다.

강력한 선수 영입을 통해 전후 시카고 미식축구 무대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성공적인 재건은 팀이 프로 리그 창설의 주역이 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다시 돌아온 빨간색 유니폼의 카디널스에 열광하며 구단의 인기를 회복시켰습니다.

1920

[APFA 창립 멤버 참여]

NFL의 전신인 미국 프로 미식축구 협회(APFA)의 창립 멤버로 공식 참여했습니다.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열린 회의에 크리스 오브라이언이 참석하여 구단의 프로화를 선언했습니다.
이는 카디널스가 현대 NFL의 뿌리이자 창조자 중 하나임을 증명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때부터 팀은 지역 수준을 넘어 전국적인 프로 미식축구 체제 내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1922

[시카고 카디널스로 명칭 변경]

위스콘신주 러신(Racine)에 기반을 둔 팀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시카고 카디널스'로 변경했습니다.

위스콘신 지역의 러신 레기온(Racine Legion)이 리그에 가입하면서 이름 구분이 필요해졌습니다.
연고지인 시카고의 이름을 앞에 붙임으로써 팀의 지역적 자부심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이 명칭은 1959년까지 유지되며 시카고를 대표하는 미식축구 팀으로서의 역사를 대변하게 됩니다.

1925

[첫 번째 NFL 챔피언십 우승]

논란이 있었으나 1925년 NFL 시즌에서 공식적인 챔피언으로 등극했습니다.

포츠빌 마룬스와의 우승 경쟁 끝에 리그 결정에 따라 카디널스가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첫 번째 메이저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당시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입증했습니다.
우승 후 시카고 전역에 카디널스의 위상을 높이며 명문 구단으로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포츠빌 마룬스 경기 결과 논란]

포츠빌 마룬스가 리그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자격이 정지되면서 카디널스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 사건입니다.

이 우승은 현재까지도 NFL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기록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포츠빌 팬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주장하며 수십 년간 항의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NFL 사무국은 공식적으로 1925년 우승 팀을 시카고 카디널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1929

[어니 네버스 한 경기 40점 득점 기록]

풀백 어니 네버스가 시카고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6개의 터치다운과 4개의 추가점을 기록했습니다.

혼자서 40점을 득점한 이 기록은 NFL 역사상 가장 오래된 깨지지 않는 기록 중 하나입니다.
카디널스의 전설적인 스타 어니 네버스의 압도적인 기량을 전 세계에 알린 경기였습니다.
당시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시카고 베어스를 상대로 거둔 승리라 그 의미가 더욱 컸습니다.

1932

[찰스 비드월의 구단 인수]

시카고의 사업가 찰스 비드월이 크리스 오브라이언으로부터 구단을 매입했습니다.

이로써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드월 가문의 구단 경영 시대가 막을 올렸습니다.
비드월은 팀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선수 영입과 구단 인프라 개선에 힘썼습니다.
비드월 가문의 리더십 아래 카디널스는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현대적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941

[지미 콘즐먼 감독 첫 취임]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지미 콘즐먼이 팀의 감독으로 처음 부임하여 팀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략적인 사고와 선수 관리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훗날 1947년 우승을 이끄는 기초 체력을 이 시기에 다져놓았습니다.
카디널스가 암흑기를 벗어나 리그의 강자로 거듭나는 데 중요한 인적 투자가 되었습니다.

1944

[카드-피트(Card-Pitt) 연합팀 운영]

제2차 세계대전 중 선수가 부족해지자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연합팀을 구성하여 활동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리그의 유지를 위해 내려진 고육지책이었습니다.
비록 성적은 0승 10패로 부진했으나, 전쟁 중에도 미식축구의 전통을 이어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시기는 구단 역사상 가장 독특한 운영 형태를 가졌던 시기로 기록됩니다.

1946

[찰리 트리피의 입단]

당대 최고의 신인 선수였던 찰리 트리피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카디널스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다재다능함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러닝, 패싱, 수비를 모두 소화하는 천재였습니다.
그의 영입으로 카디널스는 이듬해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는 결정적인 전력을 확보했습니다.
트리피는 나중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카디널스 역사의 큰 줄기를 장식했습니다.

1947

[구단주 찰스 비드월 사망]

팀의 현대화를 이끌었던 구단주 찰스 비드월이 챔피언십 우승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구단의 기틀을 마련한 그의 죽음은 팀원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의 아내인 바이올렛 비드월이 구단주 자리를 승계하며 NFL 최초의 여성 구단주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선수들은 세상을 떠난 비드월을 위해 우승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NFL 챔피언십 우승]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28-21로 꺾고 두 번째 NFL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지미 콘즐먼 감독과 '밀리언 달러 백필드'라 불리는 강력한 공격진이 이뤄낸 쾌거였습니다.
찰스 비드월이 사망한 해에 거둔 우승이라 구단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이 우승은 현재까지 카디널스가 보유한 마지막 NFL 공식 챔피언십 우승 기록입니다.

1948

[팻 하디 주니어 입단]

강력한 공격수인 팻 하디 주니어가 합류하여 팀의 황금기를 함께했습니다.

전설적인 '밀리언 달러 백필드'의 일원으로서 팀의 득점력을 책임졌습니다.
그의 존재는 상대 팀 수비진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는 치명적인 무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카디널스 공격진은 역대 NFL 팀 중 가장 화려한 진용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챔피언십 결승전 패배 (블리자드 볼)]

엄청난 폭설 속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챔피언십 결승에서 0-7로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기록적인 눈보라 때문에 경기 진행 자체가 힘들었던 전설적인 시합이었습니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렸으나 악천후와 상대의 견고한 수비에 막혀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 경기는 NFL 역사상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열린 결승전 중 하나로 회자됩니다.

1950

[코미스키 파크로 홈구장 이전]

시카고 카디널스는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인 코미스키 파크를 정식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하고 구단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이동이었습니다.
시카고 내에서의 인기를 확보하려 노력했으나 시카고 베어스와의 경쟁이 점차 심화되었습니다.
시설 면에서는 개선되었으나 지역 내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51

[올리 맷슨 드래프트 지명]

육상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올리 맷슨을 팀의 핵심 선수로 지명했습니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리그 최고의 다목적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그의 번호 33번은 팀의 영구 결번이 되었습니다.
카디널스가 시카고에서 보낸 마지막 전성기를 상징하는 위대한 선수입니다.

1954

[전설적인 수비수 나이트 트레인 레인 영입]

NFL 역사상 최고의 코너백 중 한 명인 딕 '나이트 트레인' 레인이 팀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카디널스에서 활동하며 리그를 압도하는 수비력을 선보여 명예의 전당 급 활약을 펼쳤습니다.
상대 공격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의 태클과 인터셉트 능력은 팀 수비의 핵심이었습니다.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동안 그는 수차례 올프로에 선정되며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60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 이전]

시카고 베어스와의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밀린 카디널스는 연고지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옮겼습니다.

NFL 구단주들의 승인을 거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야구 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이름이 같아 종종 '풋볼 카디널스'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연고지의 팬들은 따뜻하게 팀을 맞이했으며, 구단은 재정적 안정과 새로운 관중층을 확보했습니다.

1962

[팀 로고 도입 및 진화]

팀의 상징인 홍방울새(Cardinal)의 머리 모양을 형상화한 로고를 공식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전신 모양이었으나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머리 모양으로 단순화했습니다.
이 로고는 구단의 모든 헬멧과 유니폼에 부착되어 팀의 결속력을 강화했습니다.
이후 2005년에 더 현대적이고 날카로운 디자인으로 한 차례 더 진화하게 됩니다.

1964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초기 성공]

이전 후 몇 년 만에 9승 3패 2무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리그 강팀으로 발돋움했습니다.

당시 윌리 월스 감독의 지도 아래 공수 밸런스를 갖춘 탄탄한 전력을 구축했습니다.
비록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세인트루이스 팬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는 팀이 새로운 연고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간이었습니다.

1966

[부시 스타디움 II 개장]

세인트루이스의 새로운 상징인 부시 스타디움 II가 완공되어 카디널스의 홈구장이 되었습니다.

야구와 미식축구를 병행할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으로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이후 20년 넘게 카디널스의 요새 역할을 하며 수많은 명승부를 제조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중심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았고 구단 매출 향상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1970

[NFL-AFL 통합 및 NFC 동부지구 편입]

NFL과 AFL의 공식 통합에 따라 카디널스는 NFC 동부지구에 소속되게 되었습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 필라델피아 이글스 등 전통의 강호들과 같은 지구에서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통합된 리그 시스템 내에서 구단의 운영 가이드라인이 현대적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한 지구 경쟁 속에서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1972

[빌 비드월 단독 구단주 취임]

형제와의 공동 운영을 끝내고 빌 비드월이 구단의 단독 구단주로서 모든 경영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2019년 사망할 때까지 구단을 가족처럼 아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했습니다.
연고지 이전과 경기장 건설 등 구단의 역사적 결정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카디널스가 안정적인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1973

[돈 코리엘 감독 취임]

혁신적인 공격 전술을 구사하는 돈 코리엘이 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에어 코리엘'이라 불리는 화끈한 패싱 공격 시스템을 도입하여 NFL의 전술 트렌드를 바꿨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카디널스는 하위권을 탈출하여 리그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격력을 가진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코리엘 감독의 영입은 1970년대 중반 카디널스의 황금기를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1974

[NFC 동부지구 우승 (1974)]

10승 4패의 기록으로 세인트루이스 이전 후 처음으로 지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돈 코리엘의 공격 농구가 빛을 발하며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독주를 저지했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패했으나 구단에 새로운 희망을 안겼습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구단 창단 이래 가장 강력한 전력에 환호하며 경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와의 라이벌리 심화]

전국적인 인기 팀이었던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지구 내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당시 댈러스를 꺾는 것은 우승 후보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 관문이었습니다.
돈 코리엘 감독의 전술이 댈러스의 수비를 무력화시키며 팬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줬습니다.
이 승리는 카디널스가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임을 리그에 선포한 경기였습니다.

1975

[NFC 동부지구 2연패 달성]

11승 3패를 기록하며 댈러스를 꺾고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시 카디널스는 리그 최고의 오펜시브 라인과 강력한 쿼터백 짐 하트의 조합으로 무적의 팀이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높은 정규 시즌 승률 중 하나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강팀으로 공인받았습니다.
이 시기는 '빅 레드(Big Red)'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세인트루이스 미식축구 열기의 정점이었습니다.

[역대 최다승 정규 시즌 종료]

11승 3패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1975년 정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당시 14경기 체제였음을 감안할 때 이는 엄청난 승률로 기록됩니다.
팀의 모든 유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세인트루이스 팬들에게 잊지 못할 겨울을 선사했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 승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으나 전력 면에서는 최강이었습니다.

1978

[돈 코리엘 감독 사임]

황금기를 이끌었던 돈 코리엘 감독이 구단주 비드월과의 불화 끝에 팀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임은 팀의 공격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암흑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최고의 감독을 떠나보낸 구단 운영진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카디널스는 수년간 감독 교체가 잦아지며 팀의 일관성을 잃어갔습니다.

1979

[세이프티 래리 윌슨의 영예]

팀의 전설적인 세이프티 래리 윌슨이 은퇴 후 명예의 전당 입성을 앞두고 구단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래리 윌슨은 현역 시절 '블리츠' 전술의 원조 격인 선수로 팀 수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번호 8번은 영구 결번되었으며, 그는 프런트로서도 구단을 지키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카디널스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구단의 전통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82

[파업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선수노조 파업으로 단축된 시즌에서 5승 4패를 기록하며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했습니다.

변칙적인 리그 운영 속에서 집중력을 발휘하여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습니다.
비록 1라운드에서 그린베이 패커스에 패배했으나 오랜 침체를 깬 소중한 성과였습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에게 다시 한번 미식축구의 재미를 선사하며 희망을 주었던 시즌입니다.

1983

[짐 하트의 은퇴]

팀의 역대 최다 패싱 야드 기록을 보유한 쿼터백 짐 하트가 팀을 떠났습니다.

그는 18시즌 동안 카디널스를 지키며 팀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한 산증인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의 은퇴는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의미했습니다.
구단은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그를 카디널스 명예의 고리(Ring of Honor)에 헌액했습니다.

1984

[닐 로맥스 한 시즌 4,614 야드 투구 기록]

쿼터백 닐 로맥스가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시즌 패싱 야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짐 하트의 뒤를 이어 팀의 새로운 공격 사령관으로 완벽히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적인 패싱 게임의 정수를 보여주며 카디널스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의 활약 덕분에 팀은 세인트루이스에서의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울 수 있었습니다.

1987

[세인트루이스에서의 마지막 시즌]

세인트루이스에서의 28년 역사를 뒤로하고 연고지 이전을 준비하며 7승 8패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구단주 빌 비드월은 전용 경기장 건설 요구가 무산되자 피닉스로의 이전을 결단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으나, 팀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로써 풋볼 카디널스의 미주리주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988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연고지 이전]

NFL 구단주 회의 승인을 얻어 연고지를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이전하고 '피닉스 카디널스'로 명명했습니다.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의 선 데빌 스타디움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서부 지역으로의 진출은 NFL 시장 확대 전략의 일환이자 구단의 자립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뜨거운 사막 기후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선수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피닉스 카디널스 첫 경기 개최]

피닉스로 이전한 후 신시내티 벵갈스를 상대로 첫 번째 정규 시즌 경기를 가졌습니다.

새로운 팬들의 기대 속에 경기가 치러졌으나 아쉽게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선 데빌 스타디움의 무더운 날씨는 상대 팀뿐만 아니라 카디널스에게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애리조나 지역에 본격적으로 프로 미식축구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했습니다.

1990

[조 자코부스키 감독 부임]

피닉스 시절 초기, 팀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새로운 감독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성적은 부진했으나 팀의 인프라를 서부 지역에 맞게 재편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구단 경영진과 협력하여 자생력을 키우려 애썼습니다.
이후 강팀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리더십의 일환으로 평가받습니다.

1994

[애리조나 카디널스로 구단명 변경]

도시 이름 대신 주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로 '애리조나 카디널스'로 명칭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피닉스뿐만 아니라 투손 등 애리조나 전 지역의 팬들을 포섭하기 위한 마케팅적 결단이었습니다.
NFL 구단 중 지명 대신 주 이름을 사용하는 몇 안 되는 구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이름 변경은 팀의 정체성을 주 단위로 확장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1997

[제이크 플러머 입단]

애리조나 주립대 출신의 스타 쿼터백 제이크 플러머가 고향 팬들의 환호 속에 입단했습니다.

'더 스네이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탁월한 기동력과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1998년 역사적인 플레이오프 승리를 이끌며 애리조나의 국민 영웅이 되었습니다.
피츠제럴드 이전 카디널스 팬들이 가장 의지했던 리더였습니다.

1998

[51년 만의 플레이오프 승리]

와일드카드 라운드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20-7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1947년 우승 이후 무려 51년 만에 거둔 포스트시즌 승리에 전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제이크 플러머 쿼터백의 활약과 견고한 수비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승리였습니다.
애리조나 이전 후 첫 번째 플레이오프 승리였기에 지역 팬들의 자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2000

[패트 틸먼의 헌신과 활약]

드래프트 하위 순위로 입단한 세이프티 패트 틸먼이 팀의 핵심 수비수로 성장하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는 작은 체구와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고 엄청난 근성과 투지로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2000 시즌에는 155개의 태클을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세이프티로 공인받았습니다.
그의 프로 정신은 이후 카디널스 선수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2

[패트 틸먼의 군 입대 결정]

스타 플레이어 패트 틸먼이 9/11 테러 이후 거액의 연봉 계약을 거절하고 미 육군 레인저에 입대했습니다.

스포츠 스타가 국가를 위해 부와 명예를 버리고 전쟁터로 향한 전무후무한 결단이었습니다.
카디널스 구단과 NFL 전체는 그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며 그를 응원했습니다.
이 사건은 카디널스라는 구단이 단순한 스포츠 팀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

[데니스 그린 감독 선임]

미네소타에서 검증된 명장 데니스 그린을 팀의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알았다(We are who we thought they were)'라는 유명한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래리 피츠제럴드 등 팀의 미래를 결정짓는 우수한 신인들이 대거 영입되었습니다.
카디널스가 체계적인 팀 구성을 갖추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패트 틸먼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

아프가니스탄 작전 중 패트 틸먼이 27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 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카디널스 구단은 즉각 그의 번호 40번을 영구 결번했습니다.
그의 용기와 희생은 카디널스 팀 정신의 정수로 남게 되었으며, 경기장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매년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리며 그는 구단의 영원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래리 피츠제럴드 드래프트 지명]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와이드 리시버 래리 피츠제럴드를 지명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이후 17시즌 동안 카디널스에서만 활약하며 NFL 역대 최고의 리시버 중 한 명으로 성장했습니다.
성실한 태도와 압도적인 실력으로 '애리조나의 얼굴'이자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의 영입은 암흑기에 빠져 있던 카디널스가 다시 강팀으로 재건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2005

[멕시코 시티에서 첫 정규 시즌 해외 경기 개최]

NFL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밖에서 열린 정규 시즌 경기를 산 호세에서 샌프란시스코 49ers와 치렀습니다.

카디널스는 이 경기에서 31-14로 승리하며 역사적인 해외 경기 첫 승리팀이 되었습니다.
10만 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하여 NFL의 글로벌 인기를 실감케 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구단은 이 경기를 통해 히스패닉 팬층을 대거 확보하며 마케팅 지평을 넓혔습니다.

2006

[피닉스 대학교 스타디움 개장]

피닉스 근교 글렌데일에 최첨단 개폐식 지붕과 이동식 잔디를 갖춘 새로운 홈구장을 개장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구단의 숙원 사업이었던 전용 경기장 확보가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스포츠 시설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새 경기장의 탄생은 구단 수익 증대와 우수 선수 영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팀의 전력을 강화했습니다.

2007

[켄 휘즌헌트 감독 부임]

피츠버그의 우승을 도왔던 코디네이터 켄 휘즌헌트를 헤드 코치로 선임했습니다.

그는 팀에 승리하는 문화와 세밀한 경기 운영 방식을 이식했습니다.
부임 2년 만에 팀을 슈퍼볼로 이끄는 마법 같은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카디널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단기 성과를 낸 감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08

[애리조나주 최초의 NFL 챔피언십 경기 주최]

팀의 승률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애리조나주에서 컨퍼런스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피닉스 대학교 스타디움은 붉은 물결로 가득 찼으며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홈구장의 이점을 완벽히 활용하여 필라델피아를 꺾고 승리의 환희를 만끽했습니다.
애리조나주 스포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밤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애리조나 이전 후 첫 지구 우승]

세인트루이스에서 피닉스로 이전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NFC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커트 워너 쿼터백의 부활과 리시버진의 맹활약으로 이뤄낸 압도적인 시즌이었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약체로 평가받던 팀이 지구 우승을 차지하자 피닉스 전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이 우승은 2008 시즌의 기적적인 플레이오프 행진을 가능하게 한 서막이었습니다.

2009

[구단 사상 첫 슈퍼볼 진출 확정]

NFC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32-25로 꺾고 슈퍼볼 XLIII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래리 피츠제럴드가 3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경기장을 지배한 역사적인 밤이었습니다.
창단 111년 만에 처음으로 밟게 된 꿈의 무대 진출 소식에 팬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카디널스는 '언더독의 반란'을 상징하는 팀으로 부상하며 NFL 역사에 기록될 성과를 냈습니다.

[슈퍼볼 XLIII 준우승]

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접전 끝에 경기 종료 직전 터치다운을 허용하며 23-27로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된 슈퍼볼 역사상 손꼽히는 명경기로 남았습니다.
우승은 놓쳤으나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카디널스의 저력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커트 워너와 래리 피츠제럴드는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활약을 펼쳐 찬사를 받았습니다.

2010

[커트 워너의 은퇴]

팀의 슈퍼볼 진출을 이끌었던 위대한 쿼터백 커트 워너가 프로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카디널스에서 보낸 마지막 5년 동안 팀을 하위권에서 슈퍼볼 경쟁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실력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리더로서 동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의 은퇴와 함께 카디널스는 다시 한번 쿼터백 부재로 인한 과도기에 진입하게 됩니다.

2011

[패트릭 피터슨 드래프트 지명]

최강의 코너백 유망주였던 패트릭 피터슨을 영입하여 수비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입단 첫해부터 리턴 터치다운 기록을 세우며 올프로에 선정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팀의 1번 수비수로 활동하며 상대 최고 리시버들을 전담 수비했습니다.
카디널스의 수비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2012

[마이클 비드월 구단주 취임]

빌 비드월의 아들 마이클 비드월이 구단의 실질적인 운영과 경영 전권을 승계받았습니다.

검사 출신인 마이클은 더욱 효율적이고 공격적인 구단 운영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선수 영입 시장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팀의 전력 보강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구단의 상업적 가치와 지역 밀착형 마케팅을 강화하여 애리조나 내 카디널스의 인기를 높였습니다.

2013

[브루스 에리언스 감독 선임]

공격 전술의 대가 브루스 에리언스를 팀의 새로운 헤드 코치로 임명했습니다.

'노 리스크, 노 비스킷(No Risk, No Biscuit)'이라는 철학으로 공격적인 경기를 지향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카디널스는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폭발력을 가진 팀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에리언스는 구단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한 감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카슨 파머 영입]

베테랑 쿼터백 카슨 파머를 영입하여 공격진의 사령관 자리를 맡겼습니다.

파머는 에리언스 감독의 전술을 완벽히 이해하며 팀의 전성기를 다시 열었습니다.
그의 강력한 어깨와 정확한 패스는 래리 피츠제럴드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했습니다.
이 영입은 카디널스가 다시 NFC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부상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2014

[한 시즌 최다 홈 관중 기록]

브루스 에리언스 감독 체제 하에서 팀 성적이 좋아지자 역대급 관중 동원 기록을 세웠습니다.

스테이트 팜 스타디움의 모든 경기가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애리조나 시민들이 카디널스를 진정한 자신의 팀으로 받아들였음을 입증한 수치였습니다.
구단은 이에 화답하듯 화끈한 공격 농구로 보답하며 흥행을 주도했습니다.

2015

[명예의 고리(Ring of Honor) 헌액 사업 강화]

과거 구단을 빛낸 전설들을 기리기 위해 명예의 고리 헌액식을 정례화했습니다.

짐 하트, 래리 윌슨 등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 차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는 팬들에게 구단의 깊은 역사를 교육하고 소속감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는 경기장 내부를 장식하는 가장 품격 있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규 시즌 최다승(13승) 기록 달성]

2015 시즌 동안 13승 3패를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정규 시즌 최다 승리 기록을 세웠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리그 최정상급 지표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NFC 서부지구 우승을 조기에 확정 지으며 플레이오프 1번 시드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 시기의 카디널스는 모든 전문가가 우승 후보로 꼽을 만큼 완벽한 조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16

[NFC 챔피언십 결승전 패배]

캐롤라이나 팬서스와의 NFC 결승에서 15-49로 대패하며 두 번째 슈퍼볼 진출이 무산되었습니다.

정규 시즌의 화려한 모습과 달리 턴오버와 실수들이 겹치며 아쉬운 결과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 시즌의 성공은 카디널스가 꾸준히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브루스 에리언스 감독 체제 하에서 거둔 최고의 성과이자 마지막 불꽃이었습니다.

2017

[래리 피츠제럴드 리시빙 기록 경신]

역대 NFL 리시빙 야드 및 리셉션 순위에서 레전드들을 제치고 상위권에 등극했습니다.

제리 라이스에 이은 역대 2위권 기록을 달성하며 역사적인 인물임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은 모든 스포츠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카디널스 팬들은 그의 기록이 갱신될 때마다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2018

[브루스 에리언스 감독 은퇴]

건강 문제와 세대교체를 이유로 브루스 에리언스 감독이 카디널스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퇴임사에서 '카디널스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었다'며 감동적인 인사를 전했습니다.
감독의 은퇴와 함께 카슨 파머도 은퇴를 선언하며 팀은 대대적인 리빌딩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그의 화끈한 리더십과 붉은 모자는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상징이 되었습니다.

[스테이트 팜 스타디움으로 명칭 변경]

홈구장의 명명권 계약에 따라 이름을 '스테이트 팜 스타디움(State Farm Stadium)'으로 변경했습니다.

새로운 파트너십을 통해 구단의 재정 기반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구장은 이름 변경과 함께 내부 편의 시설을 업그레이드하여 관람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현재까지도 NFL 최고의 열기를 자랑하는 카디널스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2019

[카일러 머레이 전체 1순위 지명]

NFL 드래프트에서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쿼터백 카일러 머레이를 전체 1순위로 지명했습니다.

작은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스피드와 패싱력을 갖춘 새로운 시대의 쿼터백이었습니다.
머레이의 영입은 팀의 미래를 책임질 프랜차이즈 스타를 확보했다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데뷔 시즌에 곧바로 오펜시브 신인왕을 수상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구단주 빌 비드월 사망]

85세의 일기로 구단을 87년간 지켰던 거장 빌 비드월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NFL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구단 운영에 관여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사후 아들 마이클 비드월이 공식적으로 구단주 자리에 오르며 비드월 3대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NFL 전체는 그를 '미식축구의 수호자'라 부르며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2020

[디안드레 홉킨스 전격 영입]

휴스턴 텍산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리그 최고의 리시버 디안드레 홉킨스를 데려왔습니다.

카일러 머레이의 확실한 타겟을 마련하기 위한 마이클 비드월 구단주의 승부수였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NFL 역사상 가장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래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홉킨스는 합류하자마자 팀의 공격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며 큰 공헌을 했습니다.

2021

[JJ 와트 전격 합류]

리그 최고의 수비수였던 JJ 와트가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카디널스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카디널스가 우승을 위해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와트는 팀의 젊은 수비수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리더로서 활약했습니다.
그가 카디널스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보여준 투혼은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개막 후 7연승 행진 기록]

2021 시즌 개막 이후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7연승을 거두며 리그 전체 승률 1위에 올랐습니다.

카일러 머레이와 클리프 킹스베리 감독의 조화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카디널스가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팀으로 평가받으며 다시 한번 슈퍼볼의 희망을 키웠습니다.
비록 시즌 후반 부상 악재로 흔들렸으나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준 기록입니다.

2022

[JJ 와트 은퇴 발표]

미국 스포츠의 아이콘 JJ 와트가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고 현역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카디널스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퇴장하는 모습은 감동적인 명장면이었습니다.
구단은 그를 기리기 위해 특별 영상을 제작하며 예우를 다했습니다.

2023

[조나단 개넌 감독 취임]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수비 코디네이터였던 조나단 개넌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수비 중심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팀을 근본적으로 재건하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머레이의 부상 복귀와 맞물려 새로운 팀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젊고 열정적인 리더십으로 카디널스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024

[마빈 해리슨 주니어 드래프트 지명]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오하이오 주립대의 특급 리시버 마빈 해리슨 주니어를 영입했습니다.

래리 피츠제럴드 이후 팀을 책임질 차세대 핵심 리시버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전설적인 리시버 마빈 해리슨의 아들로 탁월한 유전자와 기술력을 겸비했다는 평입니다.
머레이와의 콤비 플레이를 통해 팀의 공격을 다시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핵심 자산입니다.

2025

[현재 진행형인 카디널스의 연대기]

127년의 역사를 가진 애리조나 카디널스는 여전히 새로운 우승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카일러 머레이와 젊은 선수진을 중심으로 명가 재건을 꿈꾸고 있습니다.
비드월 가문의 안정적인 지원 속에 애리조나의 스포츠 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추입니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이들의 역사는 전 세계 미식축구 팬들에게 계속해서 감동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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