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축구 클럽, 리그 1,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프랑스 스포츠 구단

num_of_likes 42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0- 10:36:32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축구 클럽, 리그 1,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프랑스 스포츠 구단
report
Edit

1899년 창단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OM)는 프랑스 축구의 자존심이자 열정의 상징입니다. 프랑스 클럽 최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9차례의 리그 우승과 10차례의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통해 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베르나르 타피 시대의 영광과 시련,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르세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드루아 오 뷔(Straight to the goal)'의 정신을 필드 위에 실현하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892

[스포츠 클럽의 모태]

르네 뒤포르 드 라자르트가 주도하여 마르세유 지역의 스포츠 활동을 위한 초기 조직을 구성했습니다.
당시에는 럭비와 펜싱이 주를 이루었으나 축구 도입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모임은 훗날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축구단으로 성장하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서 스포츠를 통해 청년들의 체력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영국인들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구기 종목이 시도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활동은 단순한 동호회 수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스포츠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899

[공식 구단 창단]

마르세유의 상징적인 스포츠단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가 공식적으로 출범했습니다.
'드루아 오 뷔(Droit au But)'라는 불멸의 모토를 채택하며 공격적인 축구 철학을 선언했습니다.
구단의 색상은 마르세유 시를 상징하는 흰색과 하늘색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창단 초기에는 축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목을 아우르는 종합 스포츠 클럽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구단 명칭은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창단 멤버들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날의 창단은 프랑스 축구 역사에서 가장 열정적인 팬덤이 탄생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1900

[축구부의 본격적인 시작]

클럽 내 축구 부서가 강화되면서 지역 팀들과의 경기를 본격적으로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럭비 부서와 경쟁하며 인지도를 쌓아갔으나 곧 축구가 클럽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마르세유 시민들이 축구라는 스포츠에 매료되기 시작한 역사적인 시기입니다.

당시 마르세유 내에는 여러 경쟁 팀이 있었으나 OM은 조직력과 실력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점차 축구 관전 문화가 확산되면서 구단의 경기마다 많은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구축된 지역 내 라이벌 구조는 구단의 전력 향상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04

[전국 무대 데뷔]

프랑스 전국 대회인 USFSA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지역 강자를 넘어 프랑스 전체에서 주목받는 신흥 명문으로 부상했습니다.
이후 마르세유는 프랑스 남부 축구의 자존심을 지키는 상징적인 구단이 되었습니다.

당시 강호였던 파리 지역 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선수들의 기술적인 수준과 조직력이 타 지역 팀들에 비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대회의 성공은 마르세유 내 축구 열기를 폭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24

[첫 전국 컵 대회 우승]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서 세트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첫 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파리 중심의 축구 지형을 흔들며 지방 구단의 저력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을 계기로 마르세유는 프랑스 축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극했습니다.

결승전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마르세유 시내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당시 핵심 선수였던 에두아르 크뤼와 장 부아이에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이 우승은 OM이 프랑스 컵 대회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되는 서막이었습니다.

1926

[두 번째 컵 우승 달성]

AS 발랑티니를 완파하고 다시 한번 쿠프 드 프랑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단기적인 돌풍이 아닌 지속적인 강팀임을 증명하며 명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팀의 전술적 완성도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결승전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리하며 상대 팀을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이 시기 마르세유의 공격진은 리그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우승 트로피는 마르세유 시민들에게 구단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1927

[컵 대회 2연패 위업]

결승에서 케비이를 꺾고 쿠프 드 프랑스 2연패이자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프랑스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컵 대회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공인받았습니다.
선수들의 풍부한 경험과 승부처에서의 집중력이 빛난 시즌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강팀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결승까지 올라오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시기 OM은 '컵 대회의 전문가'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승 이후 구단은 다음 단계인 리그 우승을 향한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1929

[아마추어 리그 제패]

프랑스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 리그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컵 대회뿐만 아니라 리그 운영 능력에서도 최고임을 입증했습니다.
이 성과는 훗날 프랑스 프로 축구 리그가 탄생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프로 리그가 없었으나 이 대회는 실질적인 전국 최고를 가리는 무대였습니다.
전술적인 유연성과 체력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시즌 내내 선두권을 유지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마르세유는 프랑스 축구의 확실한 맹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32

[프로 축구 시대 개막]

프랑스 프로 리그 출범과 함께 원년 멤버로 참여하여 프로 구단으로 전환했습니다.
선수들에게 정식 급여를 지급하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현대적인 의미의 축구 비즈니스가 마르세유에서 시작된 해입니다.

프로화 전환 과정에서 구단은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국적인 장기 레이스를 견디기 위한 선수층 보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부터 구단은 본격적인 성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1935

[네 번째 컵 우승 탈환]

결승에서 렌을 꺾고 다시 한번 쿠프 드 프랑스 트로피를 마르세유로 가져왔습니다.
프로 리그 출범 이후에도 컵 대회에서의 강점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팀 내 베테랑 선수들의 리더십이 우승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결승전에서의 극적인 승리는 라디오 중계를 통해 마르세유 전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시민들은 항구에 모여 선수들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이 우승은 침체되었던 구단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1937

[사상 첫 리그 우승]

조제프 아이젠호퍼 감독의 지도 아래 구단 역사상 최초의 프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득점 차로 경쟁팀을 따돌리고 프랑스 축구의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마침내 리그와 컵 대회를 모두 정복한 명실상부한 최강팀이 되었습니다.

시즌 내내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팬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핵심 선수들의 고른 활약과 전술적인 짜임새가 우승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첫 우승은 마르세유가 프랑스 축구의 거물로 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스타드 벨로드롬 개장]

마르세유의 성지이자 프랑스 축구의 랜드마크인 스타드 벨로드롬이 문을 열었습니다.
대규모 관중 수용이 가능한 최신식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개장 경기로 이탈리아의 토리노를 초청하여 성대한 개막식을 치렀습니다.

이 경기장은 원래 자전거 경기를 위한 벨로드롬 트랙이 포함된 다목적 시설이었습니다.
개장 초기부터 마르세유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이곳을 가득 메웠습니다.
현재까지도 스타드 벨로드롬은 유럽에서 가장 열정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경기장 중 하나입니다.

1938

[다섯 번째 컵 트로피]

메스와의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쿠프 드 프랑스 5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리그 우승팀의 위엄을 컵 대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선수들의 위닝 멘탈리티가 정점에 달했던 시즌이었습니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일궈낸 우승이라 그 가치가 더욱 컸습니다.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르세유 특유의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OM은 프랑스 내에서 적수가 없는 무적의 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1943

[여섯 번째 컵 우승 기록]

전쟁 중에도 불구하고 컵 대회 결승에 진출하여 보르도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마르세유 시민들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선사한 사건이었습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최강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전쟁의 그늘 속에서도 선수들은 축구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우승은 마르세유가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팀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활약한 선수들은 마르세유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역사에 남았습니다.

1948

[두 번째 리그 챔피언]

전후 재건된 리그에서 11년 만에 두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며 수준 높은 축구를 선보였습니다.
다시 한번 프랑스 축구의 정점에 서며 구단의 명성을 재확인했습니다.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얻어낸 값진 성과였습니다.
공격진의 폭발적인 득점력이 우승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마르세유는 전후 프랑스 축구의 리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52

[강등 위기 극복 서사]

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물며 강등 위기에 처했으나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선수들의 단합과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생존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시련은 구단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이어진 사투 끝에 1부 리그 잔류를 확정 지었습니다.
팬들은 경기장에 난입하여 선수들과 함께 잔류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강해지는 마르세유의 저력이 빛난 해였습니다.

1954

[컵 대회 준우승의 아쉬움]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 다시 진출했으나 니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마르세유가 여전히 컵 대회 강자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팽팽한 접전 끝에 아쉬운 실점으로 경기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으나 팬들은 그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패배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1959

[사상 첫 2부 강등]

성적 부진과 경영 악화가 겹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습니다.
전통의 명가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마르세유 축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기의 시작이었습니다.

핵심 선수들의 이탈과 전술적 혼선이 강등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팬들은 구단의 경영진을 비판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강등 이후 구단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1962

[1부 리그 복귀 성공]

3년 만에 2부 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1부 리그로 복귀했습니다.
유망주들의 활약과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가 만들어낸 결실이었습니다.
다시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한 재건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부 리그 우승은 아니었지만 승격권을 따내며 자존심을 일부 회복했습니다.
복귀 첫 시즌을 준비하며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착수했습니다.
마르세유 시민들은 다시 돌아온 1부 리그 무대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1963

[불안정한 행보와 재강등]

1부 리그 복귀 1년 만에 다시 2부 리그로 추락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팀 내 불화와 전술 부재가 다시 한번 구단을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명가 재건의 길이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 시기였습니다.

성급한 선수 영입과 감독 교체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연이은 강등에 팬들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으나 응원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구단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새로운 리더십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1965

[마르셀 르클레르 시대]

야심 찬 사업가 마르셀 르클레르가 회장으로 취임하며 구단 경영을 장악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마르세유의 황금기를 준비했습니다.
구단의 현대화와 공격적인 마케팅이 시작된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르클레르 회장은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겠다고 공언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그는 구단의 행정 시스템을 프로페셔널하게 개편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등장은 마르세유가 다시 프랑스 축구의 중심으로 복귀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66

[1부 리그 최종 안착]

르클레르 회장의 지원 아래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하여 안정적인 성적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의 강등은 없다는 각오로 팀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본격적인 우승 도전을 위한 전력 구축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선수들과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조화를 이뤘습니다.
승격 이후 첫 시즌부터 중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강팀들을 긴장시켰습니다.
스타드 벨로드롬은 다시 관중들로 가득 차며 옛 영광을 되찾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1968

[조셉 스코블라 영입]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전설적인 공격수 조셉 스코블라를 전격 영입했습니다.
그의 가공할 만한 득점력은 마르세유를 단숨에 리그 우승 후보로 격상시켰습니다.
유럽 전역이 주목하는 대형 스트라이커의 합류로 구단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스코블라는 합류 직후부터 골 폭풍을 몰아치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상대 수비진은 큰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 영입은 마르세유가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69

[일곱 번째 컵 트로피]

보르도를 꺾고 무려 26년 만에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르클레르 회장 부임 이후 첫 번째 메이저 타이틀 획득으로 황금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전통적인 컵 대회 강자로서의 명성을 완벽하게 회복했습니다.

결승전에서의 승리는 마르세유 시 전체를 광란의 축제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선수들은 구단의 재건을 알리는 상징적인 우승컵을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이 우승은 팀에 승리 DNA를 다시 심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1

[세 번째 리그 챔피언]

23년 만에 프랑스 리그 1 정상에 오르며 전국을 제패했습니다.
스코블라와 마그누손이라는 전설적인 듀오의 활약이 정점에 달했던 시즌이었습니다.
프랑스 축구의 패권을 마르세유가 다시 탈환한 역사적인 해입니다.

시즌 내내 압도적인 점유율과 공격 축구로 경쟁자들을 압도했습니다.
스코블라는 이 시즌 44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유러피언 골든슈를 차지했습니다.
마르세유 시민들은 팀의 리그 정복에 무한한 영광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1972

[역사적인 첫 번째 더블]

리그 우승과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동시에 거머쥐며 구단 역사상 첫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프랑스 축구사에서 마르세유의 위대한 통치 시대를 선포한 시즌이었습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리그에서는 압도적인 승점을 기록했고 컵 대회에서도 적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선수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완벽한 한 해였습니다.
이 기록은 마르세유 팬들에게 구단 역사상 가장 찬란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르클레르 회장의 사임]

협회와의 갈등 끝에 황금기를 이끌었던 마르셀 르클레르 회장이 구단을 떠났습니다.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시기에 발생한 리더십의 공백으로 팀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성공과 논란이 공존했던 르클레르 시대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퇴진은 구단 운영에 큰 차질을 빚게 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사라진 팀은 내부적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마르세유는 다시 한번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1976

[여덟 번째 컵 우승 기록]

결승에서 리옹을 꺾고 통산 여덟 번째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회장 사임 이후의 혼란을 딛고 거둔 값진 성과로 구단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컵 대회의 강자라는 전통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렸습니다.

치열한 승부 끝에 경기 막판 터진 골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선수들은 구단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이 우승은 마르세유가 여전히 프랑스 축구의 거물임을 증명하는 지표였습니다.

1980

[심각한 파산 위기 봉착]

방만한 경영과 성적 부진으로 인해 구단이 법정 관리 및 파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부분의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야 했던 구단 역사상 최악의 재정 난국이었습니다.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며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시기였습니다.

구단 운영 자금이 바닥나 유스 선수들(Les Minots)로 팀을 꾸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어린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며 구단의 완전한 몰락을 막아냈습니다.
이 시기는 팬들에게 고통스러웠으나 팀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1

[쿠프 강바르델라 우승]

유스 팀이 프랑스 최고의 청소년 대회인 쿠프 강바르델라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1부 리그 강등과 재정난 속에서 얻어낸 미래의 희망이었습니다.
이때 활약한 어린 선수들은 훗날 구단 재건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우승을 일궈낸 어린 선수들에게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이 우승은 마르세유 유스 시스템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이들을 '미노(Minots)'라고 부르며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냈습니다.

1984

[1부 리그 극적 복귀]

암흑기를 뚫고 마침내 프랑스 최상위 리그인 리그 1으로 다시 승격했습니다.
유스 출신 선수들의 성장과 베테랑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감동적인 결과였습니다.
구단은 이제 다시 프랑스 축구의 정상을 노릴 준비를 마쳤습니다.

2부 리그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경기 경험이 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승격이 확정된 날 스타드 벨로드롬은 눈물과 환호가 섞인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이 복귀는 마르세유가 다시는 무너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1986

[알랭 지레스 영입]

보르도의 전설이자 프랑스 대표팀의 핵심인 알랭 지레스를 전격 영입했습니다.
타피 회장의 첫 번째 거물급 영입으로 마르세유의 야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팀의 중원에 무게감과 창의성을 더해준 역사적인 이적이었습니다.

지레스의 합류로 마르세유의 축구는 더욱 세밀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그의 노련한 경기 운영은 어린 선수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 영입을 필두로 마르세유는 유럽 전역의 스타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베르나르 타피의 인수]

야심만만한 사업가 베르나르 타피가 구단을 인수하며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유럽 정복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내걸고 전례 없는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논란 많은 시대의 서막이었습니다.

타피 회장은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마르세유를 단순히 프랑스 1위가 아닌 유럽 1위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마르세유는 비약적인 전력 향상을 이루게 됩니다.

1987

[장-피에르 파팽의 성장]

새롭게 영입된 장-피에르 파팽이 팀의 핵심 공격수로 거듭나며 득점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놀라운 발리슛 기술과 결정력으로 리그 1을 평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르세유의 영광을 이끌 새로운 전설적인 아이콘의 등장이었습니다.

파팽은 매 경기 환상적인 골을 터뜨리며 팬들에게 '파팽나드(Papinades)'라는 신조어를 남겼습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마르세유는 리그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수년간 마르세유의 득점왕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88

[컵 대회 준우승의 교훈]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 올랐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며 전력을 가다듬었습니다.
우승 문턱에서 멈춘 아쉬움은 선수들에게 더 큰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타피 회장은 부족한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결승전에서의 패배 이후 팀 내부적으로 치열한 분석과 반성이 이어졌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신력과 조직력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패배는 다음 시즌의 압도적인 우승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1989

[다섯 번째 리그 우승]

17년 만에 프랑스 리그 1 정상에 오르며 타피 시대의 첫 번째 결실을 맺었습니다.
시즌 내내 선두권을 유지하며 경쟁자들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제압했습니다.
마르세유가 다시 프랑스 축구의 맹주로 복귀했음을 선포한 해입니다.

파팽을 필두로 한 공격진의 활약은 타 팀 수비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탄탄한 수비 조직력까지 갖추며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우승 확정 날 마르세유 시내는 환호하는 팬들로 인해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더블 위업]

리그 우승에 이어 쿠프 드 프랑스까지 제패하며 통산 두 번째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프랑스 국내 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하며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타피 회장의 대규모 투자가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난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결승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집중력과 투혼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르세유는 이제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정상을 바라보는 강팀으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포지션에 국가대표급 선수가 배치된 마르세유의 전력은 역대 최강급이었습니다.

[크리스 와들 전격 영입]

잉글랜드의 천재적인 윙어 크리스 와들을 당시 최고 수준의 이적료로 영입했습니다.
그의 화려한 드리블과 창의적인 플레이는 마르세유 축구에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실력 있는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마르세유의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와들은 독특한 퍼포먼스와 실력으로 순식간에 마르세유 팬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와 파팽의 호흡은 유럽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 조합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이 영입은 마르세유가 진정으로 유럽 정상급 구단임을 증명하는 행보였습니다.

1990

[리그 2연패 달성]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리그 1 우승을 차지하며 독주 체제를 굳혔습니다.
프랑스 내에서 마르세유의 지배력을 확고히 한 성공적인 시즌이었습니다.
선수들의 위닝 멘탈리티가 팀 전체에 깊게 뿌리내린 결과였습니다.

치열한 순위 다툼 속에서도 위기 때마다 승점을 따내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술적인 유연성을 통해 상대 팀들의 집중 견제를 지혜롭게 뚫어냈습니다.
이 우승으로 마르세유는 유럽 무대에서의 더 큰 도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1991

[리그 3연패 위업]

파격적인 득점 행진을 이어가며 리그 1 3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프랑스 축구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지배력을 과시한 해였습니다.
이제 마르세유의 시선은 오직 유럽 챔피언 자리에만 고정되었습니다.

리그 내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주요 선수들의 기량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 마르세유는 프랑스 축구의 자부심 그 자체로 통했습니다.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올랐습니다.
바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습니다.
아쉽게 패배했으나 마르세유가 유럽 정상에 근접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을 놓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유럽 준우승이라는 위대한 업적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패배는 2년 뒤의 영광을 위한 가장 뼈아픈 교훈이 되었습니다.

[파팽의 발롱도르 수상]

마르세유의 영웅 장-피에르 파팽이 프랑스 리그 소속 선수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개인 영예이자 마르세유 축구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친 사건입니다.
그의 활약은 마르세유가 세계적인 구단으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한 시즌 동안 보여준 그의 폭발적인 득점력과 기여도가 전 세계 기자단으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마르세유 팬들은 자신들의 우상이 세계 최고가 된 것에 열광했습니다.
이 수상은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992

[리그 4연패 기록]

프랑스 리그 1 역사상 전무후무한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독보적 지위를 굳혔습니다.
파팽이 떠난 공백을 팀워크로 메우며 다시 한번 정상에 올랐습니다.
전술적으로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프랑스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매 시즌 반복되는 우승에도 선수들의 동기부여는 전혀 식지 않았습니다.
탄탄한 수비 라인을 바탕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며 안정적인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이 기록은 마르세유가 프랑스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팀 중 하나임을 입증했습니다.

[푸리아니 참사의 비극]

바스티아와의 쿠프 드 프랑스 준결승전 도중 경기장 가설 스탠드가 붕괴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 사건으로 프랑스 축구계는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고로 인해 해당 시즌 컵 대회는 중단되었습니다.

경기를 관람하러 온 수천 명의 팬이 피해를 입은 충격적인 사고였습니다.
마르세유 구단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프랑스 내 경기장 안전 기준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3

[유럽 챔피언 등극]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AC 밀란을 1-0으로 꺾고 프랑스 클럽 최초로 우승했습니다.
바질 볼리의 헤더 결승골은 마르세유와 프랑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타피 회장의 원대한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최강이라 불리던 밀란의 무패 행진을 저지하며 거둔 기적 같은 승리였습니다.
마르세유 전역은 '우리는 챔피언이다'라는 함성과 함께 축제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OM은 프랑스 축구 클럽 중 유일하게 빅 이어를 보유한 구단이 되었습니다.

[승부조작 스캔들 발발]

발랑시엔(VA)과의 리그 경기에서 승부조작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구단의 명예와 업적이 한순간에 부정될 위기에 처한 충격적인 스캔들이었습니다.
프랑스 축구 협회와 사법 기관의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중요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은 타피 회장의 몰락과 구단의 급격한 쇠퇴를 가져온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우승의 환희 속에 찾아온 이 비극적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994

[강제 강등 및 자격 박탈]

승부조작 혐의가 인정되어 1993년 리그 우승 자격을 박탈당하고 2부 리그로 강제 강등되었습니다.
유럽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지 1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진 비극적인 서사입니다.
구단은 극심한 재정난과 인력 유출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타피 회장은 구속되었고 구단의 주요 스타 선수들은 팀을 떠나야 했습니다.
명성 높은 구단이 한순간에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며 사회적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마르세유 팬들은 2부 리그로 내려간 팀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995

[2부 우승과 승격 거절]

2부 리그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재정 문제로 승격이 거부되었습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승리했으나 경기장 밖의 사정이 발목을 잡은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팬들은 절망했으나 선수들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하여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재정적 건전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협회로부터 가혹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 마르세유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과 인내심을 시험받는 시기였습니다.
선수단은 흩어지지 않고 다음 시즌 반드시 승격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1996

[로베르 루이-드레퓌스 인수]

아디다스의 회장이자 억만장자인 로베르 루이-드레퓌스가 구단을 인수했습니다.
새로운 자본의 유입으로 마르세유는 다시 1부 리그로 복귀할 동력을 얻었습니다.
타피 시대의 그림자를 지우고 현대적인 구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드레퓌스 회장은 구단의 빚을 청산하고 안정적인 경영 구조를 확립했습니다.
그의 투자는 마르세유가 다시 프랑스 최상위 무대로 복귀하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팬들은 새로운 구단주의 등장에 열광하며 명가 재건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1부 리그 화려한 귀환]

혹독한 시련을 딛고 마침내 리그 1 무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복귀와 동시에 경쟁력 있는 성적을 내며 명불허전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마르세유라는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승격 이후 첫 시즌부터 상위권 팀들을 위협하는 복병으로 활약했습니다.
새로운 구단주의 지원 아래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대거 영입되었습니다.
스타드 벨로드롬은 다시 1부 리그 경기를 관람하려는 팬들의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1997

[로랑 블랑의 합류]

프랑스 축구의 리더이자 '프레지던트'로 불리는 로랑 블랑을 영입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흔들리던 마르세유의 수비진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정신적 지주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블랑은 수비진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규율과 승부욕을 고취했습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마르세유는 다시 한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는 이후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구단의 명성을 높였습니다.

1998

[스타드 벨로드롬 현대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홈구장을 대대적으로 확장 및 현대화했습니다.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하고 쾌적한 관람 환경을 갖춘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장이 되었습니다.
구단의 수익 증대와 팬 서비스 개선을 위한 중요한 기반 시설 확보였습니다.

새롭게 단장된 경기장은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하며 마르세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월드컵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경기장 운영 능력을 전 세계에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이 경기장은 유럽 대항전 등 큰 경기를 치르는 핵심 무대로 활용되었습니다.

1999

[UEFA컵 결승 진출]

파르마와의 UEFA컵 결승전에 진출하며 다시 한번 유럽 정상을 노렸습니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마르세유가 다시 유럽 무대의 강자로 복귀했음을 증명했습니다.
암흑기 이후 가장 빛나는 유럽 무대 성적이었습니다.

당시 최강 멤버를 자랑하던 파르마를 상대로 분전했으나 실력 차를 실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승 진출 과정에서 보여준 투혼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대회 성과를 바탕으로 마르세유는 다시 유럽 전역의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1

[타피의 일시적 귀환]

성적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영광을 이끌었던 베르나르 타피가 경영진으로 일시 복귀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나 성과 면에서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습니다.
과거의 향수와 현대적 운영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타피의 귀환으로 일시적으로 팀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압도적인 투자는 불가능했기에 한계도 명확했습니다.
결국 그는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한 후 다시 구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04

[디디에 드로그바 신드롬]

새롭게 합류한 디디에 드로그바가 한 시즌 동안 경이로운 활약을 펼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파괴적인 신체 조건과 골 결정력은 마르세유 공격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단 한 시즌 만에 구단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리그뿐만 아니라 유럽 무대에서도 강팀들을 차례로 침몰시키며 결승 진출을 견인했습니다.
드로그바의 유니폼은 마르세유 시내 모든 상점에서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는 이후 첼시로 이적하며 구단에 막대한 이적료 수익을 남겨주었습니다.

[UEFA컵 준우승 기록]

드로그바의 활약에 힘입어 발렌시아와의 UEFA컵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골키퍼의 퇴장이라는 불운 속에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마르세유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럽 무대에서 다시 한번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승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팬이 거리로 나와 선수들을 격려했습니다.
유럽 대항전에서의 성공적인 행보는 구단의 재정적 자립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구축된 전력은 이후 몇 년간 마르세유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2005

[인터토토컵 우승 달성]

UEFA 인터토토컵 결승에서 승리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첫 유럽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비록 규모가 작은 대회였으나 오랜 우승 가뭄을 해소해 준 값진 성과였습니다.
선수들에게 승리의 맛을 다시 일깨워준 상징적인 우승이었습니다.

데포르티보를 상대로 한 홈 경기에서 대승을 거두며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마르세유는 정식 유럽 대항전 본선 진출권을 확보했습니다.
선수들은 다시 한번 유럽 정상을 향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2006

[프랑크 리베리 시대]

프랑스 축구의 새로운 신성 프랑크 리베리가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의 화려한 기술과 빠른 속도는 마르세유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팀의 전술적 중심이 리베리를 중심으로 완벽하게 재편된 시기였습니다.

리베리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났습니다.
마르세유는 그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거대 구단들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이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 기록 중 하나를 남겼습니다.

2007

[컵 대회 준우승의 한]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서 소쇼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우승 문턱에서 다시 한번 멈춰 선 결과에 팬들과 선수들은 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전력이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한 시즌이었습니다.

경기를 주도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아 득점 기회를 여러 번 놓쳤습니다.
승부차기에서의 패배는 선수들에게 큰 심리적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구단은 정신적 강인함을 보강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

[디디에 데샹 감독 부임]

1993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주장이었던 디디에 데샹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구단의 상징적인 인물이 리더로 돌아오자 팬들은 엄청난 환호와 기대를 보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전술적 안목을 갖춘 최적의 적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데샹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팀의 기강을 바로잡고 우승을 향한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승리하는 법을 다시 가르치며 훈련 강도를 높였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마르세유는 18년 만의 리그 우승이라는 대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구단주 드레퓌스 사망]

오랜 기간 구단을 이끌어온 로베르 루이-드레퓌스 구단주가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구단의 재정적 안정을 책임졌던 리더를 잃은 마르세유는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후 그의 아내인 마르가리타 루이-드레퓌스가 구단 운영권을 승계했습니다.

드레퓌스 가문의 헌신은 마르세유가 암흑기를 이겨내는 데 절대적이었습니다.
팬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장에서 대규모 카드 섹션을 진행했습니다.
경영진의 변화 속에서도 구단은 그가 남긴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0

[리그컵 사상 첫 우승]

쿠프 드 라 리그 결승에서 보르도를 꺾고 대회 첫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타피 시대 이후 무려 17년 만에 들어 올린 공식 메이저 트로피였습니다.
오랜 무관의 사슬을 끊어낸 역사적인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우승이 확정되자 마르세유 시내의 분수대마다 팬들이 뛰어들어 축제를 즐겼습니다.
이 우승은 선수들에게 '우리도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데샹 감독의 지도력이 첫 번째 결실을 맺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8년 만의 리그 우승]

리그 1 정상에 오르며 18년 동안 이어져 온 긴 기다림을 끝냈습니다.
데샹 감독 체제에서 리그와 리그컵을 동시에 석권하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마르세유가 프랑스 축구의 진정한 지배자로 복귀했음을 증명했습니다.

니앙, 루초 곤살레스 등 핵심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셨던 한 해였습니다.
스타드 벨로드롬 주변은 우승 축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마르세유는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회복했습니다.

2011

[리그컵 2연패 달성]

쿠프 드 라 리그 결승에서 몽펠리에를 꺾고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단판 승부에 강한 마르세유의 전통을 다시 한번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데샹 감독의 탁월한 토너먼트 운영 능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습니다.

치열한 수비전 끝에 얻어낸 소중한 승리로 구단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연이은 우승으로 구단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상승했습니다.
선수들은 매년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슈퍼컵 극적인 승리]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릴을 상대로 5-4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했습니다.
경기 막판 5분 동안 3골을 몰아치는 믿기 힘든 서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역전극 중 하나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도 끝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은 마르세유의 정신력이 돋보였습니다.
안드레 아유의 해트트릭 활약은 경기의 백미였습니다.
이 우승으로 마르세유는 시즌 시작 전부터 최상의 기세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2012

[리그컵 3연패 기록]

올랭피크 리옹을 물리치고 쿠프 드 라 리그 3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특정 대회에서 독보적인 강세를 보이며 '리그컵의 제왕'임을 입증했습니다.
어려운 리그 상황 속에서도 컵 대회 우승으로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브란다오의 결승골로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 기록은 대회 역사상 최초의 3연패로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기록입니다.
데샹 감독은 이 우승을 마지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팀을 떠나게 됩니다.

2014

[비엘사 광풍의 시작]

'엘 로코(El Loco)'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부임하며 팀에 전술적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극단적인 공격 축구와 강도 높은 압박으로 리그 1 전역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르세유 팬들은 그의 열정적인 지도 방식에 순식간에 매료되었습니다.

훈련장에 보조 지표를 설치하고 드론을 활용하는 등 혁신적인 훈련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시즌 전반기 1위를 차지하며 우승 기대를 높였으나 후반기 체력 저하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의 짧은 재임 기간은 마르세유 축구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6

[프랭크 맥코트의 인수]

미국의 사업가 프랭크 맥코트가 드레퓌스 가문으로부터 구단을 완전히 인수했습니다.
'OM 챔피언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글로벌 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자본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맥코트 구단주는 대대적인 스쿼드 보강과 구단 인프라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마르세유를 다시 유럽의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팬들은 새로운 주인의 등장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며 지켜보았습니다.

2017

[디미트리 파예의 귀환]

웨스트햄에서 활약하던 팀의 옛 스타 디미트리 파예를 역대 최고 이적료로 복귀시켰습니다.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던 선수가 돌아오자 구단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맥코트 구단주의 야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영입이었습니다.

파예는 복귀 이후 팀의 주장을 맡아 경기장 안팎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창의적인 패스와 프리킥 실력은 여전했으며 팀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마르세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정팀 복귀를 위해 연봉 삭감까지 감수했습니다.

2018

[유로파리그 결승 진출]

루디 가르시아 감독 아래 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 오르며 유럽 무대에서 선전했습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했으나 프랑스 축구의 자부심을 세웠습니다.
다시 유럽 대항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음을 입증했습니다.

결승전이 마르세유 근처인 리옹에서 열려 수만 명의 팬이 원정 응원을 떠났습니다.
비록 트로피는 놓쳤으나 결승까지 오는 과정에서 보여준 투지는 대단했습니다.
이 대회 성과로 마르세유는 다시 국제적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2020

[챔피언스리그 복귀 성공]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 체제에서 리그 2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코로나19로 리그가 조기 종료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오랜 공백 끝에 드디어 유럽 최고의 무대로 돌아온 뜻깊은 해였습니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수비 조직력이 성적의 핵심 비결이었습니다.
유럽 무대 복귀로 구단은 막대한 중계권료와 상금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팬들은 다시 울려 퍼질 챔피언스리그 찬가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2021

[호르헤 삼파올리 부임]

열정적인 전술가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이 위기의 팀을 구하기 위해 부임했습니다.
비엘사 스타일의 공격적이고 역동적인 축구를 다시 팀에 이식했습니다.
침체되었던 팀 분위기를 빠르게 반전시키며 팬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는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선수들의 활동량을 늘리고 창의적인 공격 전개를 강조했습니다.
삼파올리 감독 아래 마르세유는 다시 한번 리그 상위권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2022

[리그 2위 달성 및 승격]

치열한 순위 경쟁 끝에 리그 1 2위를 확정하며 다시 챔피언스리그 직행권을 따냈습니다.
강팀들과의 대결에서 연승을 거두며 구단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안정적인 성적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프랑스 2인자 자리를 굳혔습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로 2위를 쟁취했습니다.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팬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축제를 즐겼습니다.
이 성적은 삼파올리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합작품이었습니다.

2023

[오바메양 전격 영입]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을 영입하며 공격진을 강화했습니다.
그의 합류로 마르세유는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확실한 득점원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적 시장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며 구단의 위상을 다시 한번 과시했습니다.

오바메양은 마르세유의 열정적인 팬덤에 매료되어 입단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합류 직후부터 팀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하며 클래스를 증명했습니다.
그의 영입은 마르세유가 여전히 스타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구단임을 보여주었습니다.

2024

[데 제르비 감독 선임]

전술계의 새로운 총아 로베르토 데 제르비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세밀한 빌드업과 혁신적인 전술로 팀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마르세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줄 적임자로 전 세계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데 제르비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자신의 축구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그의 축구는 이미 프리미어리그 등에서 검증되었기에 팬들의 신뢰가 높습니다.
마르세유는 이제 그의 지도 아래 다시 한번 프랑스 정상과 유럽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