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칼리지 런던
대학교, 연구 기관, 교육 기관, 영국 왕실 헌장 대학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6- 10:05:51
1829년 설립된 킹스 칼리지 런던은 영국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자 런던 대학교 연합의 모태가 된 명문 사학입니다. 국교회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한 이 대학은 창립자 웰링턴 공작의 결투라는 극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나이팅게일의 간호 혁명과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DNA 구조 발견 등 인류사를 바꾼 거대한 성취들을 일궈냈습니다. 오늘날 9개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세계 최고의 의학 및 안보 연구 허브로 자리 잡은 킹스는 런던의 심장부에서 인류의 지적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 총리의 목숨을 건 결투
- 왕실 헌장 수여와 명명
- 스트랜드 캠퍼스의 개교
- 런던 대학교 연합체 결성
- 영국 최초의 공학부 설립
- 킹스 칼리지 병원의 개원
- 나이팅게일 간호학교 개교
- 조셉 리스터의 교수 임용
- 여성학부의 정식 개설
- 교직원 종교 제한의 철폐
- 개교 100주년의 성대한 축제
-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부임
- 운명적인 51번 사진 촬영
- DNA 이중 나선 모델 발표
- 전쟁학부의 공식 설립
- 윌킨스 교수의 노벨상 수상
- 통합 킹스 칼리지의 공식 출범
- GKT 의과대학의 공식 개교
- 모건 도서관의 웅장한 개관
- 독자적인 학위 수여권 행사
- 서머셋 하우스 캠퍼스 확장
- 부시 하우스 대규모 임대 계약
1826
[세속 대학 설립의 반향]
종교적 색채를 배제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이 설립되며 사회적 논란이 일어납니다. 보수적인 국교회 인사들은 이에 대응할 새로운 교육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는 킹스 칼리지 런던 탄생의 결정적인 사상적 배경이 됩니다.
당시 UCL은 '고어 스트리트의 무신론 대학'이라 불리며 비판을 받았습니다.
성공회 지도자들은 신앙과 학문이 조화를 이루는 대안적 교육 기관을 원했습니다.
이 갈등은 훗날 런던 대학교 시스템 내의 건강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1828
[설립을 위한 첫 공청회]
웰링턴 공작과 캔터베리 대주교 등 당대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 대학 설립을 공식화합니다. 국교회 정신을 계승하는 대학 운영 방침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이 회의를 통해 대학 설립을 위한 자금 조달 계획이 구체화됩니다.
프리메이슨 홀에서 열린 이 회의에는 수많은 정계와 종교계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당시 수상이었던 웰링턴 공작은 교육이 도덕적 가치 위에 서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국왕 조지 4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며 설립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1829
[총리의 목숨을 건 결투]
설립자인 웰링턴 공작이 대학 설립에 반대하던 윈칠시 백작과 결투를 벌입니다. 카톨릭 해방령에 대한 이견이 폭발한 이 사건은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을 시험받게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되며 대학 설립 사업은 계속 추진됩니다.
배터시 필즈에서 벌어진 이 결투는 영국 역사상 현직 수상이 연루된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윈칠시 백작은 웰링턴 공작이 대학 설립을 미끼로 종교적 양보를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사건은 오히려 대학 설립에 대한 범국민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왕실 헌장 수여와 명명]
조지 4세 국왕으로부터 왕실 헌장을 수여받아 대학의 공식 지위를 확립합니다. 이를 통해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부여됩니다. 국가가 공인한 교육 기관으로서 런던 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계기가 됩니다.
왕실 헌장은 대학이 독자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됩니다.
학교 문장에 왕실의 상징인 왕관이 포함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로써 킹스 칼리지는 영국 사회의 핵심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831
[의학부의 선구적 설치]
개교와 동시에 체계적인 의학 교육을 위한 의학부를 독자적으로 운영합니다. 해부학 실험실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구 시설을 갖추어 학생들을 지도합니다. 이는 훗날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는 킹스 의대의 초석이 됩니다.
이론 교육에만 치중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실습 위주의 교육을 지향했습니다.
저명한 의학자들을 교수로 임용하여 교육의 질을 대폭 높였습니다.
런던의 다른 의료 기관들과 차별화되는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확립했습니다.
[스트랜드 캠퍼스의 개교]
런던 중심부 스트랜드에 세워진 건물에서 대망의 첫 수업이 시작됩니다. 고전학, 수학, 의학 등 다양한 학부 과정에 첫 신입생들이 입학합니다. 현대적 대학교육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런던 지성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서머셋 하우스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건물은 당시 가장 현대적인 교육 시설이었습니다.
개교 첫해부터 수백 명의 학생이 몰려들어 교육에 대한 열기를 증명했습니다.
교수진은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출신의 저명한 학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1833
[신학부 교육의 전문화]
영국 국교회의 정신을 계승하는 전문 신학 교육 과정이 강화됩니다.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심도 있는 커리큘럼이 도입되어 많은 신학도를 배출합니다. 종교적 가치와 학문적 엄격함이 조화를 이루는 킹스만의 교육 모델을 구축합니다.
교양 교육의 일환으로 제공되던 신학 강의가 전문 학부 과정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졸업생들은 영국 사회 전역으로 진출하여 국교회의 정신을 전파했습니다.
신학부는 오랫동안 학교 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학부 중 하나였습니다.
1834
[킹스 칼리지 스쿨의 설립]
대학 교육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부설 학교인 킹스 칼리지 스쿨이 문을 엽니다. 대학 교수들이 직접 교육 과정 설계에 참여하여 학문적 연계성을 높입니다. 우수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략적 교육 시스템을 마련합니다.
초기에는 대학 건물 내부 공간을 사용하여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런던의 중상류층 자제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가장 선호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발전하며 대학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836
[런던 대학교 연합체 결성]
정부의 중재로 유니버시티 칼리지와 함께 런던 대학교 연합 시스템에 합류합니다. 각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받으면서도 공동의 학위를 수여하는 혁신적인 구조를 채택합니다. 이 거대 교육 연합은 런던을 세계 교육의 중심지로 도약시키는 발판이 됩니다.
경쟁 관계였던 두 대학이 학문적 발전을 위해 전략적인 타협을 이루었습니다.
개별 대학이 아닌 연합 대학교 명의로 학위를 수여하여 공신력을 높였습니다.
이 모델은 이후 전 세계 대학 연합 시스템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1838
[영국 최초의 공학부 설립]
산업 혁명의 물결 속에서 영국 대학 최초로 공학 및 토목 공학 과정을 신설합니다. 실용적인 기술과 과학적 이론을 결합하여 국가 산업 발전에 직접 기여합니다. 기술직을 전문적인 학문 영역으로 격상시킨 선구적인 조치로 평가받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즉각 투입 가능한 전문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수학적 기초 위에 기계와 건축의 원리를 가르치는 현대적 공학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철도와 도로망 확충에 기여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1839
[부속 병원 설립의 결정]
의대생들의 실습과 시민들의 진료를 위해 독자적인 킹스 칼리지 병원을 세우기로 합니다. 교육과 진료를 결합한 현대적인 의료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지역 사회의 보건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최신 의학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결정입니다.
스트랜드 캠퍼스 인근의 부지를 확보하여 건축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환자 곁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로써 킹스 의대는 이론과 실무를 완벽히 겸비한 수련 기관으로 거듭납니다.
1840
[킹스 칼리지 병원의 개원]
포르투갈 스트리트에 위치한 유서 깊은 건물에서 병원이 공식 진료를 시작합니다. 런던의 빈곤한 시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제공하며 의료의 공공성을 실천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현장이 됩니다.
개원 당시 120개의 병상을 갖추어 런던 시민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교수진이 직접 회진하며 학생들을 지도하는 도제식 교육을 전면 도입했습니다.
병원 운영 자금은 대학의 지원과 독지가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습니다.
1841
[의학 연구 협의회 결성]
학생들과 교수진이 중심이 되어 의학 지식을 공유하는 연구 협의회를 조직합니다. 정기적인 논문 발표와 임상 사례 토론을 통해 학문적 교류를 활성화합니다. 이는 킹스 의과대학만의 강력한 결속력과 학구적 열기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학술지 발간을 통해 연구 성과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선후배 간의 지식 전수와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최신 의료 트렌드를 접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1843
[직장인을 위한 야간 강좌]
낮 시간에 일하는 시민들을 위해 영국 대학 최초로 정규 야간 교육 과정을 개설합니다. 배움의 기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대학의 문턱을 낮추는 혁신을 단행합니다.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대학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합니다.
정부 관리나 상업 종사자들이 퇴근 후 대학 수준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주간 수업과 동일한 엄격한 시험 과정을 거쳐 수료증을 부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런던 시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킹스의 명성을 높였습니다.
1845
[법학 교육의 학술화 추진]
실무 중심의 도제 교육에 머물던 법학을 대학 내 학술 분야로 정착시키려 노력합니다. 법의 원리와 역사, 철학을 가르치는 전문 교수직을 강화합니다. 이는 훗날 세계적인 로스쿨로 성장하게 될 법과대학의 사상적 기틀이 됩니다.
단순히 법조문을 암기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집중했습니다.
런던의 사법 기구들과 협력하여 생생한 법률 교육 현장을 제공했습니다.
변호사와 판사를 꿈꾸는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어 법학부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1846
[전문 간호사 양성의 협력]
세인트 존스 하우스 간호단과 협력하여 체계적인 간호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당시 체계적이지 못했던 간호 업무를 전문적인 의료 활동으로 격상시키려 노력합니다. 이는 병원 내 위생 관리와 환자 치료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간호사들에게 기본적인 의학 지식과 환자 응대 기법을 교육했습니다.
종교적 헌신에 머물렀던 간호 활동에 과학적 원리를 도입했습니다.
훗날 나이팅게일이 간호 학교를 세우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되었습니다.
1848
[여성 교육을 위한 교원 파견]
새로 설립된 여성 교육 기관인 퀸스 칼리지에 킹스의 교수진이 강의를 지원합니다.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대학 차원에서 기여합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교육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여성들에게도 대학 수준의 인문학과 과학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킹스의 저명한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강의에 참여하여 교육의 질을 보장했습니다.
이 교류는 훗날 킹스 내에 여성 학부가 정식으로 생기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1853
[학문의 자유와 면직 논란]
진보적인 신학을 주장하던 F.D. 모리스 교수가 교리적 이견으로 인해 교수직에서 면직됩니다. 이 사건은 대학 내에서 종교적 정통성과 학문적 자유가 충돌한 상징적인 사례로 남습니다. 대학 공동체 내에서 지적 자유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모리스 교수는 영원한 벌이라는 전통적 지옥 교리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의 해임 소식에 많은 학생과 동료 교수가 항의하며 학문의 자유를 옹호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킹스는 점차 종교적 제약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지성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1855
[임시 군사 학과의 운용]
국가적 안보 필요성에 부응하여 군사 전략과 학술을 다루는 과정을 일시적으로 개설합니다. 장교와 전략가들에게 필요한 과학적 지식과 전술 이론을 대학 수준에서 제공합니다. 대학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 어떻게 지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크림 전쟁 당시 전문적인 전략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설치되었습니다.
비록 상설 학부는 아니었으나 군사와 학문을 연결한 초기 시도로 기록됩니다.
훗날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는 '전쟁학부'의 역사적 선례가 됩니다.
1860
[나이팅게일 간호학교 개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세인트 토마스 병원에 현대적 간호학교를 설립합니다. 이 기관은 훗날 킹스 칼리지와 통합되어 세계 간호학의 성지가 됩니다. 과학적 데이터와 인술이 결합한 현대 간호학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간호 이론과 실무를 전수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엄격한 교육 방침은 간호사의 사회적 지위를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현재 킹스 칼리지 런던 내 나이팅게일 학부의 모태가 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1861
[병원 시설의 현대화 확충]
환자 수의 급격한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병원 건물을 증축하고 시설을 현대화합니다. 최신 위생 설비와 병동 배치 시스템을 도입하여 치료 환경을 개선합니다. 이는 더 많은 임상 사례를 확보하여 의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환자들의 치유를 돕기 위한 환기와 채광 중심의 건축 설계가 반영되었습니다.
증축된 공간은 의학 연구를 위한 새로운 실험실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런던 시민들에게 더욱 신뢰받는 종합병원으로 위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71
[휘트스톤의 실험 도구 기증]
전기 통신의 선구자인 찰스 휘트스톤 교수가 자신의 평생 연구 자산을 학교에 기증합니다. 수많은 정밀 실험 기구와 도서들이 학교의 과학 연구 인프라를 비약적으로 강화합니다. 이는 후학들이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혁신적인 연구에 매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기증된 기구들은 휘트스톤 박물관의 핵심 컬렉션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물리학과 공학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 자료로 오랫동안 활용되었습니다.
창의적 실험과 발명 정신을 중시하는 킹스의 과학 풍토를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1877
[조셉 리스터의 교수 임용]
현대 수술의 혁명을 이끈 조셉 리스터가 임상 외과 교수로 킹스에 합류합니다. 그는 킹스 칼리지 병원에서 무균 수술 기법을 전파하며 수술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입니다. 전 세계 의료계가 그의 혁신적인 소독법을 배우기 위해 킹스로 눈을 돌립니다.
석탄산을 이용한 소독법을 수술실에 전면 도입하여 감염 사망률을 낮췄습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킹스 의대는 세계 최고의 외과 교육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리스터의 연구는 현대 외과학이 과학적 토대 위에 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882
[대학 운영 자치법 제정]
새로운 킹스 칼리지 런던법이 제정되어 대학의 행정 독립성과 자치권이 강화됩니다. 복잡해진 대학 규모에 맞춰 의사 결정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재편합니다. 이는 급변하는 현대 고등 교육 시장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제도적 정비입니다.
대학 평의회의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여 책임 경영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재정 운용의 투명성을 높이고 외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습니다.
독자적인 명문 사학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85
[여성학부의 정식 개설]
켄징턴에 여성만을 위한 독립 캠퍼스와 학부 건물을 세우고 정규 교육을 시작합니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동일한 수준의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식 창구가 열립니다. 이는 영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적 역량을 인정하고 사회 진출을 돕는 이정표가 됩니다.
초기에는 여성들의 특성에 맞춘 인문학 교육에 집중했으나 점차 전 분야로 확대했습니다.
여성 지식인들을 대거 배출하며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앞장섰습니다.
이후 스트랜드 캠퍼스와 통합되며 남녀공학 대학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되었습니다.
1893
[주간 교사 훈련부 설립]
국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전문적인 교사 양성 과정을 도입합니다. 풍부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교사들을 배출하여 초중등 교육 현장의 혁신을 이끕니다. 대학이 사회 시스템의 근간인 교육의 질을 책임지는 모범적인 사례가 됩니다.
이론 중심의 교육학을 넘어 실무 중심의 교수 기법을 강조했습니다.
배출된 교사들은 영국 전역의 학교로 진출하여 킹스의 교육 정신을 전파했습니다.
교육학 연구가 본격적인 대학 학술 영역으로 자리 잡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1898
[연합 대학 지위의 재정립]
런던 대학교 법에 따라 연합체 내에서의 칼리지 역할이 새롭게 규정됩니다. 더욱 긴밀한 학술적 공조 체제를 구축하면서도 킹스만의 고유한 전통을 보호받습니다. 거대 대학 연합의 일원으로서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행정적 변화를 맞이합니다.
다른 칼리지들과의 교차 수강 및 공동 연구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연합 대학교의 중추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킹스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런던 내 고등 교육 기관들의 자원 공유와 효율적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1900
[재편된 연합 대학의 중심]
현대적인 런던 대학교 연합 시스템의 핵심 멤버로서 공식 활동을 시작합니다. 소속 교수진이 연합 대학교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며 교육 정책 수립을 주도합니다. 이는 킹스 칼리지가 가진 학문적 위상을 대외적으로 명확히 각인시킨 결과입니다.
연합 대학 공동 도서관 및 시설 이용 권한을 전면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우수한 학생들을 공동으로 모집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연구 중심 대학 연합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1902
[여성 학부의 위상 승격]
기존의 여성 전용 교육 과정을 '킹스 칼리지 포 우먼'으로 격상시킵니다. 여학생들을 위한 독자적인 연구 시설과 장학 제도를 대폭 확충합니다. 여성이 학문의 주체로서 온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습니다.
여성 교수들의 임용을 늘려 여학생들에게 강력한 롤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졸업생들이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오직 실력으로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는 문화를 선도했습니다.
1903
[교직원 종교 제한의 철폐]
설립 당시부터 유지되던 교직원 임용 시의 국교회 신앙 고백 의무를 전격 폐지합니다. 특정 종교의 장벽을 허물고 오직 학문적 능력으로만 인재를 뽑는 열린 대학으로 거듭납니다. 진정한 지성적 자유와 다양성이 대학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습니다.
다양한 신념을 가진 전 세계의 석학들이 킹스로 모여드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종교적 편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현대적 연구 중심 대학으로 도약했습니다.
이 결정은 킹스가 글로벌 명문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08
[신학부와 일반학부의 분리]
대학의 일반 전공들은 세속적인 행정 체계로 전환하고 신학부만 독자적인 법적 지위로 남깁니다. 과학 연구와 종교 교육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여 전문성을 높이려 노력합니다. 이는 학문의 객관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행정적 결단이었습니다.
신학부는 국교회의 전통을 보존하며 전문적인 성직자 양성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학부들은 종교적 제약 없이 자유로운 학술 활동과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두 영역 간의 건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전문성을 극대화했습니다.
1913
[병원의 덴마크 힐 이전]
킹스 칼리지 병원이 런던 남부의 덴마크 힐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훨씬 넓은 부지와 최신 시설에서 대규모 의료 복합 단지를 조성합니다. 지역 사회를 넘어 전 세계 환자들이 찾는 첨단 의료 센터로 발돋움합니다.
이전을 통해 대규모 임상 연구 시설과 학생 실습실을 확보했습니다.
런던 남부 지역 보건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의과 대학과 병원 간의 거리가 가까워져 실습의 효율성이 극대화되었습니다.
1914
[제1차 세계 대전의 헌신]
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학생과 교수진이 의료 대원과 참모로 전선에 자원합니다. 대학 캠퍼스는 부상병 치료와 군사 연구를 위한 지원 기지로 활용됩니다. 학문 탐구를 넘어 인류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대학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의대생들은 최전방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며 인술을 실천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전쟁의 비극을 줄이기 위한 방어용 기술 연구에 동참했습니다.
이 시기 보여준 킹스 공동체의 헌신은 학교의 명예로운 역사로 남았습니다.
1915
[사회 및 가정과학 학부 신설]
일상생활과 밀접한 과학 분야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학부를 설립합니다. 영양학, 위생학 등 실무 중심의 과학적 지식을 대학 수준의 학문으로 끌어올립니다. 여성들의 전문적인 사회 진출을 돕는 또 다른 학문적 통로를 개척합니다.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 과학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여성들에게 특화된 고도의 전문직 자격 과정을 운영하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훗날 이 학부는 독립적인 칼리지로 발전하여 킹스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1917
[스페인학 석좌 교수직 개설]
영국 내 스페인어와 문화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 '세르반테스 체어'를 공식 설치합니다. 유럽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역학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인문학 분야에서 글로벌한 안목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중심지가 됩니다.
스페인 정부 및 학계와의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방대한 스페인 고전 자료들을 확보하여 연구자들에게 개방했습니다.
이 과정은 킹스가 외국어 및 비교 문학 연구에서 세계적 우위를 점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920
[동유럽학 연구소의 태동]
복잡한 동유럽 정세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슬라브 및 동유럽학 연구소(SEES)를 설립합니다. 영국 내 지역학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전문 전략가를 양성하는 요람이 됩니다. 국가 외교 전략 수립에 필요한 지적 자산을 대학 차원에서 제공합니다.
해당 지역의 언어, 역사, 정치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독보적인 기관이었습니다.
냉전 시대 이전부터 이미 동유럽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킹스 내에서 성장한 이 연구소는 이후 런던 대학교 내 핵심 연구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21
[전사자 추모 기념비 건립]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희생된 학생과 교직원들의 고귀한 헌신을 기리는 비석을 세웁니다. 캠퍼스 중심에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깁니다. 후배 학생들에게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상징적 장소가 됩니다.
매년 추모 행사를 통해 학교의 일원으로서 자긍심과 공동체 의식을 고취합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부할 것을 다짐하는 장소입니다.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들은 킹스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정신적 지주입니다.
1928
[개교 100주년의 성대한 축제]
설립 한 세기를 기념하여 국왕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웅장한 백주년 행사를 거행합니다. 지난 100년간의 빛나는 업적을 회고하고 새로운 세기를 향한 비전을 선포합니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서 위상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확고히 합니다.
대규모 기금 모금 캠페인을 전개하여 학교 시설 확충과 장학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전 세계 수천 명의 졸업생이 모여 모교의 발전을 축하하는 교류의 장을 가졌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킹스 칼리지 런던은 향후 100년의 도약을 준비하는 동력을 얻었습니다.
1932
[야간 교육의 완전한 통합]
기존에 별개로 운영되던 야간 강좌를 주간 교육 시스템과 완벽하게 통합합니다. 모든 학생이 주야간 구분 없이 최고 수준의 교육 자원과 시설을 이용하게 됩니다. 교육의 기회 균등이라는 대학의 철학을 완성하는 행정적 성과를 이룹니다.
교수진이 주야간 구분 없이 강의를 담당하여 교육의 질적 차이를 완전히 없앴습니다.
야간 과정 학생들에게도 대학 내 모든 학생 자치 활동 참여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이 모델은 직장인 고등 교육의 가장 성공적인 표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39
[공습을 피한 브리스톨 피난]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화 속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 기능을 브리스톨로 일시 이전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강의와 연구를 멈추지 않고 학문의 대를 잇습니다. 전쟁의 위협도 꺾지 못한 킹스의 학구적 열망을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브리스톨 대학교의 배려로 일부 시설을 공유하며 수업을 계속했습니다.
많은 학생이 피난 중에도 국가를 위한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런던 캠퍼스를 비우는 아픔 속에서도 킹스의 정신적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1940
[런던 캠퍼스의 공습 피해]
독일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인해 스트랜드 캠퍼스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는 수난을 겪습니다. 유서 깊은 도서관과 강의실이 불타는 광경을 보며 공동체는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전후에 학교를 더 훌륭하게 재건하려는 결의를 다지게 합니다.
화염 속에서도 직원들은 귀중한 고서와 연구 자료들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습니다.
파손된 건물은 역사의 흔적으로 기록되어 평화의 가치를 증명하는 유산이 되었습니다.
공습 직후에도 복구팀을 꾸려 학교 시설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1945
[평화와 함께 캠퍼스 복귀]
전쟁이 끝나자 피난처를 떠나 다시 런던의 본교로 학생과 교수들이 돌아옵니다. 파괴된 캠퍼스를 빠르게 복구하고 중단되었던 교육 과정들을 즉시 정상화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안고 런던 지성계의 재건을 주도합니다.
전역한 참전 용사들이 복학하여 캠퍼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찼습니다.
전쟁 중에 축적된 과학적 데이터들이 학문적 연구로 승화되었습니다.
국제적인 교류를 다시 시작하며 글로벌 대학으로서의 행보를 재개했습니다.
1946
[의대 운영의 행정적 분리]
의료 교육의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과대학이 독자적인 행정 체계를 구축합니다. 대학 본부와의 긴밀한 협력은 유지하면서도 의학 연구에 특화된 유연한 의사 결정을 내립니다. 이는 의학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구조적 혁신이었습니다.
독자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최신 의료 장비를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임상 교수들의 연구 환경을 개선하여 세계적인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게 했습니다.
연합 런던 대학교 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의과대학으로 위상을 굳혔습니다.
1947
[생물리학 연구 그룹의 결성]
존 랜들 경의 주도로 물리 법칙을 생명 현상에 적용하는 생물리학 그룹이 구성됩니다. 유전 물질인 DNA의 비밀을 풀기 위해 최첨단 장비와 지성을 결집합니다. 이는 20세기 과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를 준비하는 전초 기지가 됩니다.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들이 모인 다학제적 연구팀을 구성했습니다.
X선 회절 기법을 사용하여 미세 분자 구조를 분석하는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킹스 칼리지는 이 연구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과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보장했습니다.
1951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부임]
X선 결정학 분야의 독보적인 권위자인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킹스에 연구원으로 합류합니다. 그녀는 DNA 분자의 선명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정교한 실험 기술을 도입합니다. 그녀의 참여는 생명의 설계도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려는 인류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합니다.
프랭클린은 DNA 섬유의 수분을 조절하여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녀의 실험적 엄격함과 정확성은 연구실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녀가 부임한 후 DNA 구조 분석은 비약적인 속도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1952
[운명적인 51번 사진 촬영]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증명하는 '51번 사진'을 찍는 데 성공합니다. 이 사진은 생명의 비밀을 푸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현대 생물학의 흐름을 영원히 바꿉니다. 킹스 칼리지 연구실에서 인류 역사의 거대한 과학적 도약이 이루어진 순간입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62시간 이상의 노출과 고도의 정밀한 기기 조작이 필요했습니다.
사진 속 'X'자 패턴은 DNA가 나선 구조임을 명확하게 입증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이후 왓슨과 크릭의 이중 나선 모델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53
[DNA 이중 나선 모델 발표]
킹스 칼리지의 연구 데이터가 기반이 된 DNA 이중 나선 모델이 세상에 공개됩니다. 유전학의 혁명이 시작되고 현대 생명공학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킹스는 이 위대한 발견의 산실로서 전 세계 과학계의 중심지로 기록됩니다.
프랭클린과 윌킨스의 데이터는 이 모델의 실험적 신뢰성을 뒷받침했습니다.
이 발견으로 인류는 유전병 치료와 신약 개발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킹스 칼리지는 이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관련 연구 시설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1955
[전쟁학부의 공식 설립]
영국 대학 최초로 전쟁의 역사와 전략을 연구하는 전쟁학부를 정식 설치합니다. 마이클 하워드 경을 중심으로 전쟁을 학술적 탐구의 대상으로 정립합니다. 세계 안보와 평화를 논의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안보 연구 기관으로 도약합니다.
군사 전략뿐만 아니라 철학, 정치, 윤리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커리큘럼을 마련했습니다.
전 세계의 정치 리더와 군 관계자들이 수강하는 권위 있는 학부로 성장했습니다.
현대 국제 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지적 허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62
[윌킨스 교수의 노벨상 수상]
DNA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모리스 윌킨스 교수가 왓슨, 크릭과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습니다. 킹스 칼리지의 학문적 성취가 세계 최고의 권위를 통해 인정받은 쾌거입니다. 학교의 명성은 전 세계에 퍼지고 수많은 우수 인재가 몰려드는 계기가 됩니다.
윌킨스는 킹스에서 수행한 수십 년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킹스가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정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기여도 학교 역사에 영원히 함께 기록되었습니다.
1966
[매캐덤 건물 준공과 개관]
학생들의 자치 활동과 복지를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전용 건물을 완공합니다. 캠퍼스 내에 활기찬 학생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전폭적인 투자가 결실을 봅니다. 학생 중심의 캠퍼스 환경을 구축하는 현대적 대학 운영의 모범이 됩니다.
학생회 사무실과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위한 전용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학생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촉진하여 소속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의 권리와 복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건물입니다.
1970
[도서관 전산화 시스템 도입]
방대한 학술 자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초기 컴퓨터 전산 시스템을 도서관에 도입합니다. 연구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합니다. 정보화 시대에 발맞춘 대학 도서관의 선구적 변신을 꾀합니다.
기존의 수기 카탈로그 방식에서 탈피하여 검색 편의성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도서관 사서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전산 교육을 실시하여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이 조치는 연구자들의 연구 속도를 높이고 학문적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1980
[글로벌 의료 협력체의 모색]
런던 내 다른 주요 병원 및 의과대학들과의 전략적인 통합 논의를 시작합니다. 분절된 연구 자원을 하나로 모아 세계 최대의 의료 클러스터를 구축하려는 원대한 계획입니다. 이는 미래 의료 시장에서 킹스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입니다.
가이 병원, 세인트 토마스 병원 등과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늘렸습니다.
의료 기기 및 신약 개발을 위한 산업계와의 협력 채널을 확장했습니다.
세계적인 의료 석학들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정비했습니다.
1982
[대대적인 대학 통합안 승인]
퀸 엘리자베스 칼리지 및 첼시 칼리지와의 공식 합병안이 이사회에서 통과됩니다. 세 대학의 장점을 합쳐 영국 내 최정상급 종합 대학으로 도약하려는 의지입니다. 이는 대학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식품과학과 생명공학에 강한 퀸 엘리자베스 칼리지와의 시너지를 기대했습니다.
물리학과 약학 분야의 최고 실력을 갖춘 첼시 칼리지의 합류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통합 후 킹스는 학생 수와 연구비 규모에서 영국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1985
[통합 킹스 칼리지의 공식 출범]
합병 절차를 모두 마치고 거대 종합 대학으로서의 킹스 칼리지 런던이 새 출발 합니다. 런던 전역에 걸친 멀티 캠퍼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학문적 외연을 대폭 확장합니다. 영국의 고등 교육 지형을 바꾼 역사적인 통합 사례로 기록됩니다.
통합을 기념하는 대규모 학술 포럼과 문화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서로 다른 대학 문화를 킹스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는 통합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이로써 킹스는 전 학문 분야에서 빈틈없는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되었습니다.
1988
[나이팅게일 학부의 정식 편입]
유서 깊은 나이팅게일 간호 교육 기관이 킹스 칼리지의 일원으로 공식 합류합니다. 전 세계 간호학 교육의 종가로서 독보적인 권위를 확보하게 됩니다. 인술과 과학적 간호를 계승하는 킹스만의 보건 의료 교육 라인업이 완성됩니다.
간호학 연구와 보건학 분야에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유산과 현대의 첨단 의료 기술을 결합한 교육을 제공합니다.
전 세계 보건 기구(WHO) 등과의 협력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3
[현대적 운영을 위한 헌장 개정]
설립 당시의 헌장을 대체하는 새로운 왕실 헌장을 수여받아 행정 구조를 현대화합니다. 대학 경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급변하는 글로벌 교육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합니다. 21세기형 명문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체질 개선을 완수합니다.
이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유연한 교수 채용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이 헌장 개정은 킹스가 세계적인 대학 순위에서 상승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7
[대규모 의료 통합 협정 체결]
가이 및 세인트 토마스 병원 연합 의과대학(UMDS)과 통합하기로 공식 합의합니다. 영국 의료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교육 및 연구 조직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세계 최고의 의사들과 과학자들이 한곳에 모여 인류 건강을 혁신하려는 거대한 도전입니다.
각 병원이 가진 독보적인 임상 데이터들을 하나로 통합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병동 실습 기회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협정은 킹스 의대가 세계 10위권 내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1998
[GKT 의과대학의 공식 개교]
가이, 킹스, 세인트 토마스 병원 의과대학들이 통합되어 GKT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 합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의료 교육 인프라를 보유하게 되며 세계 의료계의 중심지로 부상합니다. 현대 의학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초거대 의학 전당이 완성됩니다.
최첨단 치과 대학과 간호 학부가 포함된 종합 의료 교육 체계를 갖췄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암 환자와 희귀 질환자들이 킹스의 의료 서비스를 찾게 되었습니다.
GKT라는 브랜드는 전 세계 의료계에서 신뢰와 실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9
[스트랜드 캠퍼스 현대화 착수]
학교의 심장부인 스트랜드 캠퍼스에 대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시작합니다. 역사적인 건물들을 보존하면서 내부를 최첨단 스마트 캠퍼스로 탈바꿈시킵니다. 전통의 품격과 미래의 기술이 공존하는 완벽한 연구 환경을 조성합니다.
초고속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강의실을 전면 도입하여 교육의 질을 높였습니다.
학생들의 휴식과 연구를 위한 창의적인 공간들을 대거 확충했습니다.
런던 중심가에서 가장 아름답고 기능적인 캠퍼스로 명성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01
[모건 도서관의 웅장한 개관]
옛 공공기록물 보관소 건물을 개조하여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건 도서관을 엽니다. 수백만 권의 장서와 최첨단 열람 시설을 갖춘 지식의 전당입니다. 킹스의 학문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습니다.
영화 '해리 포터'의 한 장면 같은 고풍스러운 열람실은 학생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희귀 서적과 역사적 사료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연구원들에게 24시간 개방되는 시스템을 갖추어 학업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2002
[프랭클린-윌킨스 건물 명명]
DNA 구조 발견의 영웅인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의 이름을 딴 연구동을 엽니다. 과거의 위대한 유산을 기리며 미래의 과학 혁신을 다짐하는 장소입니다. 기초 과학과 생명 공학 연구의 세계적인 거점으로 활용됩니다.
워털루 캠퍼스 내에 위치한 이 건물은 최첨단 실험실 설비를 갖췄습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선배 과학자들의 열정을 이어받아 실험에 매진합니다.
킹스 칼리지의 과학적 정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2003
[독자적인 학위 수여권 행사]
런던 대학교 연합의 이름이 아닌 '킹스 칼리지 런던' 명의로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합니다. 대학의 학문적 수준과 브랜드 가치가 최고조에 달했음을 입증하는 결과입니다. 졸업생들은 이제 킹스만의 독자적인 영예를 안고 전 세계로 진출합니다.
대학의 교육 품질 관리 능력을 영국 정부로부터 완벽히 승인받은 결과입니다.
글로벌 대학 순위에서 킹스의 이름이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자적인 학위 수여를 통해 우수 학생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2004
[정신의학 연구소의 완전 통합]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정신의학 연구소(IoP)가 킹스 칼리지의 일원으로 흡수됩니다. 뇌 과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연구 라인업을 구축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리더로서 책임감을 가집니다.
신경 과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논문 인용 지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상 심리학 전공의 학생들이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습니다.
치매, 우울증 등 인류를 위협하는 정신 질환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6
[글로벌 보건 이니셔티브 발족]
전 세계 소외된 지역의 보건 의료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국제 협력 기구를 설립합니다. 대학의 의료 역량을 전 지구적 평등 실현에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교육과 나눔을 통해 인류애를 실천하는 대학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줍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 보건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장학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방역 시스템 구축에 조언을 제공합니다.
킹스의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을 함양합니다.
2010
[서머셋 하우스 캠퍼스 확장]
런던의 상징인 서머셋 하우스의 이스트 윙을 대학 캠퍼스로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 역사적인 공간에서 학생들이 학문을 탐구하는 품격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대학의 문화적 위상과 지리적 이점이 극대화되는 역사적인 확장입니다.
건물 리노베이션을 통해 유구한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기능을 넣었습니다.
법과대학이 이곳으로 이전하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스쿨 캠퍼스가 되었습니다.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문화 전시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2012
[여왕의 서머셋 하우스 방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참석하여 서머셋 하우스 이스트 윙의 개관을 축하합니다. 왕실과 대학의 깊은 유대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대학의 성장을 선언합니다. 런던의 심장부에서 킹스 칼리지의 영광스러운 시대가 계속됨을 알립니다.
여왕은 새롭게 복원된 학교 시설을 둘러보며 교수진과 학생들을 격려했습니다.
학교 문장의 상징인 왕실과의 인연을 기리는 특별 행사가 함께 열렸습니다.
이날의 방문은 학교 역사관에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져 후학들에게 전해집니다.
2014
[딕슨 푼 법과대학 명명]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한 딕슨 푼 경의 이름을 따서 법과대학을 새롭게 브랜딩합니다. 글로벌 법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대규모 장학 제도와 연구 기금을 마련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로스쿨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습니다.
기부금은 우수한 석학들을 교수로 영입하는 데 집중적으로 투자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법학도들에게 파격적인 지원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법률 교류를 잇는 학술적 교두보 역할을 수행합니다.
2015
[부시 하우스 대규모 임대 계약]
BBC가 사용하던 유서 깊은 부시 하우스를 캠퍼스로 쓰기 위해 장기 임대 계약을 맺습니다. 스트랜드 일대에 거대한 '킹스 칼리지 타운'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현대적 미디어 시설과 창의적 공간을 갖춘 혁신적인 캠퍼스를 꿈꿉니다.
런던 중심가 한복판에 위치한 이 건물은 대학의 접근성을 최고로 높여주었습니다.
경영학부와 사회과학부 등이 입주하여 활발한 산학 협력을 도모합니다.
학생들에게 런던의 역동성을 피부로 느끼며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2017
[부시 하우스 캠퍼스 전면 가동]
대대적인 이전 작업을 마치고 부시 하우스에서 전 학부의 강의와 연구가 시작됩니다. 최신식 학생 라운지와 멀티미디어 도서관 등이 설치되어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습니다. 킹스 칼리지가 지향하는 스마트 캠퍼스의 미래를 현실로 보여줍니다.
학생들의 창업을 돕는 '이노베이션 허브' 공간이 건물의 중심에 마련되었습니다.
기업 관계자들과의 세미나가 매일 열리는 역동적인 지식 교류의 현장입니다.
스트랜드 캠퍼스의 부족한 공간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 시너지를 극대화했습니다.
2019
[세계 30대 명문 대학 도약]
글로벌 대학 순위에서 꾸준히 상승하여 전 세계 최상위권 명문 대학으로 공인받습니다. 특히 연구 영향력과 졸업생 평판도에서 세계 10위권 이내의 성적을 기록합니다. 지난 200년간의 헌신이 일궈낸 눈부신 학문적 금자탑입니다.
전 세계 우수 대학들과의 공동 학위 프로그램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연구비 수주 규모에서도 영국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0
[코로나19 팬데믹 전방위 대응]
전 세계적인 보건 위기 속에서 킹스의 전문가들이 정부의 방역 정책 수립을 주도합니다. 백신 효능 분석과 정신 건강 지원 앱 개발 등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대학의 지성이 인류의 위기 앞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줍니다.
영국 정부의 과학 자문 그룹(SAGE)에 킹스 교수진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학생들은 온라인 비대면 교육 환경에서도 학업 열의를 잃지 않고 적응했습니다.
지역 사회의 취약 계층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 대학 공동체가 발 벗고 나섰습니다.
2023
[차세대 공학부의 화려한 재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기 위해 AI와 로봇 공학 중심의 새로운 공학부를 재출범합니다. 영국 최초 공학부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가장 현대적이고 융합적인 교육을 시작합니다. 과학, 기술, 인문학이 만나는 미래형 공학 교육의 정수를 선보입니다.
실리콘 밸리 등 글로벌 IT 기업들과 연계한 실무 프로젝트를 강화했습니다.
여성 공학도 비중을 대폭 늘려 다양성이 존중받는 연구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환경 공학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