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만
씨름 선수, 격투기 선수, 방송인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1- 16:46:38
218cm의 압도적인 거구로 모래판을 평정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은 한국 씨름의 마지막 황금기를 장식한 천하장사입니다. 그는 민속씨름의 위기 속에서 격투기 무대인 K-1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강자들과 맞서며 온 국민에게 짜릿한 승리와 전율을 안겼습니다.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승부의 세계를 지나, 이제는 방송과 일상을 오가며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삶은 한국 스포츠사의 독보적인 거인의 발자취로 기록됩니다.
1980
[제주의 거인 탄생]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남다른 골격을 가진 아이가 태어납니다. 부모님의 체격은 평범했으나 아이는 유년 시절부터 또래보다 압도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훗날 한국 스포츠계를 뒤흔들 거인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1980년 10월 30일 제주도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장기 내내 급격한 신체 변화를 겪으며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평범한 가정 환경 속에서 독보적인 신체 조건은 운동선수로서의 길을 예견케 했습니다.
1993
[운동선수의 길로]
중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며 신체 조건을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큰 키를 바탕으로 운동부의 주목을 받았으며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집중합니다. 거인으로서의 삶이 운동이라는 목표와 만나게 된 시점입니다.
중학교 재학 당시 이미 성인 남성을 뛰어넘는 체격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교사진과 주변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하며 체계적인 훈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가 씨름이라는 종목에 입문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6
[한림공고 씨름부 입단]
한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모래판 위에 섭니다. 씨름의 기술을 습득하며 제주 지역 씨름계의 유망주로 떠오릅니다. 거구의 몸집을 제어하고 활용하는 기술 연마에 몰두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본격적인 엘리트 체육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당시 제주도 내에서는 이미 적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씨름 명문 대학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지며 중앙 무대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99
[동아대학교 진학]
부산 동아대학교에 입학하며 대학 씨름의 강자로 자리매김합니다. 체계적인 훈련과 경쟁을 통해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나갑니다. 전국 단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민속씨름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찍습니다.
씨름 명문인 동아대학교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경쟁하며 성장했습니다.
대학부 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쓸며 프로 무대 진출이 확실시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큰 키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기술은 기존 씨름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2002
[LG투자증권 입단]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민속씨름단 LG투자증권 황소씨름단에 입단합니다. 대학 무대를 평정하고 드디어 프로 씨름 선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모래판의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화려한 등장이었습니다.
당시 역대 최고 수준의 계약금을 기록하며 프로 무대에 입성했습니다.
LG 황소씨름단의 핵심 전력으로 기대를 모으며 혹독한 프로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데뷔 전부터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습니다.
2003
[첫 백장사 타이틀]
영암장사 씨름대회에서 백장사 자리에 오르며 첫 우승을 차지합니다. 프로 데뷔 후 이른 시간에 정상에 오르며 실력을 입증합니다. 최홍만 전성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대의 강자들을 꺾고 장사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신체적 이점뿐만 아니라 유연한 기술까지 겸비했음을 증명한 대회였습니다.
이 우승을 계기로 민속씨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급부상했습니다.
[제41대 천하장사 등극]
인천 대회에서 드디어 모래판 최고의 영예인 천하장사 자리에 오릅니다. 23세의 젊은 나이로 최강자의 자리를 차지하며 씨름계를 평정합니다. 우승 후 선보인 '테크노 댄스'는 대중적인 열풍을 일으킵니다.
결승전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제압하고 황소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압도적인 신장을 활용한 경기는 상대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승 세리머니로 춤을 추는 파격적인 모습은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탄생시켰습니다.
2004
[함백장사 우승]
함백장사 대회에서 다시 한번 정상을 차지하며 연속된 기세를 이어갑니다. 기술의 정교함이 더해지며 무결점의 선수로 거듭납니다. 민속씨름의 흥행을 홀로 이끄는 독보적인 존재가 됩니다.
천하장사 등극 이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여 얻은 결과였습니다.
경기장에는 그의 테크노 댄스를 보기 위해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씨름의 인기가 하락세였음에도 최홍만의 경기만큼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LG 씨름단 해체]
민속씨름의 위기 속에 소속팀인 LG투자증권 황소씨름단이 전격 해체됩니다. 주력 선수가 갈 곳을 잃으며 씨름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는 그가 다른 무대를 바라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팀의 해체로 인해 씨름 선수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충격을 겪었습니다.
씨름 연맹과의 갈등과 열악해진 환경은 그를 깊은 고뇌에 빠뜨렸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팀 살리기에 나섰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05
[격투기 K-1 진출 선언]
모래판을 떠나 세계적인 격투기 무대인 K-1으로의 진출을 공식 발표합니다. 씨름 선수가 타격 중심의 격투기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혹독한 변신을 시작합니다.
씨름 팬들의 반대와 우려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밀어붙였습니다.
짧은 준비 기간 동안 타격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밤낮없이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격투기 진출은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전향 중 하나로 꼽힙니다.
[K-1 서울 GP 우승]
데뷔전인 K-1 월드 그랑프리 서울 대회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결승에서 카오클라이를 제압하며 격투기 무대 안착에 성공합니다. 한국인 거구의 힘을 세계 무대에 알린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와카쇼요, 아케보노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타격 기술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힘과 맷집으로 상대를 압도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단숨에 K-1의 글로벌 스타로 부상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톰 하워드 격파]
K-1 히로시마 대회에서 톰 하워드를 무릎 치기로 제압하며 첫 KO승을 거둡니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모습을 보이며 격투기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더욱 키웁니다. 무릎 치기 기술은 그의 새로운 필살기로 떠오릅니다.
강력한 니킥 한 방으로 상대를 고꾸라뜨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단순히 밀어붙이는 씨름꾼이 아닌 격투기 선수로서의 감각을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연이은 승리로 그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고 관객들은 열광했습니다.
[아케보노와의 재대결 승리]
하와이 대회에서 일본 스모의 전설 아케보노를 다시 한번 TKO로 제압합니다. 아시아 거구들 간의 자존심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입지를 굳힙니다. 한일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에서 거둔 값진 결과였습니다.
스모 요코즈나 출신을 타격으로 완전히 압도하며 실력 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일본 내에서도 최홍만이라는 이름이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경기 후 특유의 댄스 세리머니로 현지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밥 샙과의 혈투 승리]
당대 최고의 야수 밥 샙을 판정 끝에 꺾으며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권을 획득합니다. 거구들끼리의 충돌로 전 세계 격투기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경기였습니다. 최고의 흥행 카드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강력한 펀치를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밥 샙을 힘으로 이겨낸 몇 안 되는 선수로 기록되며 명성을 높였습니다.
이 승리로 최홍만은 전 세계 헤비급 격투기 시장의 블루칩이 되었습니다.
[레미 본야스키전 패배]
월드 그랑프리 8강전에서 테크니션 레미 본야스키에게 아쉬운 판정패를 당합니다. 데뷔 이후 첫 패배를 기록하며 기술적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세계 정상급 선수와의 대결을 통해 배움의 시간을 가집니다.
본야스키의 날카로운 킥 공격에 고전하며 경기 주도권을 내주었습니다.
패배했으나 세계 최정상급 선수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경기는 그가 기술 보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006
[실베스터 터케이전 승리]
미국 프로레슬러 출신의 실베스터 터케이를 판정으로 제압하며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패배의 아픔을 딛고 다시 승리 가도에 진입합니다. 서구권 선수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초반 압박을 이겨내고 꾸준한 공격으로 점수를 쌓아 승리했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에서 당당히 승리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넓혔습니다.
복귀전 승리로 차기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한번 고조시켰습니다.
[세미 슐트 격파]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211cm의 거구 세미 슐트를 판정으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합니다. 당시 무적이라 불리던 챔피언을 제압하며 세계 격투기계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선수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승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전략적인 압박과 강력한 펀치로 슐트의 공격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이 승리로 최홍만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급 격투기 선수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전 세계 도박사들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로 한동안 격투기계의 최대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케보노 3연승 달성]
삿포로 대회에서 아케보노를 KO로 꺾으며 상대 전적 3승 무패를 기록합니다. 천적 관계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일본 내 최고 인기 악역이자 스타로 자리 잡습니다. 거구 대결의 종지부를 찍는 명쾌한 승부였습니다.
1라운드 만에 강력한 펀치로 상대를 실신시키며 압도적 기량을 뽐냈습니다.
아케보노와의 라이벌 구도를 확실히 마무리하며 더 큰 무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쏟아지는 등 문화적인 스타로 도약했습니다.
[제롬 르 배너전 패배]
K-1 개막전에서 '무관의 제왕' 제롬 르 배너와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배합니다. 결과는 아쉬웠으나 배너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술적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다는 찬사를 받습니다.
베테랑 배너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난타전을 벌여 관객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판정 결과에 대한 논란이 있을 정도로 대등하고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비록 결승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투혼만큼은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습니다.
2007
[개리 굿리지 KO 승]
강력한 펀치력을 소유한 개리 굿리지를 1라운드 KO로 제압하며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펀치와 니킥의 조화로운 공격으로 상대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다시 한번 챔피언을 향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초반부터 거칠게 몰아붙여 베테랑인 굿리지를 당황케 했습니다.
이 승리로 최홍만의 타격 기술이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팬들은 더욱 강력해진 그의 모습에 열광하며 다음 경기를 고대했습니다.
[종합격투기 데뷔]
K-1 다이너마이트 USA 무대에서 브록 레스너와 격돌하며 종합격투기 도전을 시작합니다. 입식 타격에서 벗어나 그라운드 기술이 포함된 무대에 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결과는 패배했으나 그의 도전 정신은 빛났습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브록 레스너를 상대로 초반에는 선전했습니다.
그라운드 상황에서 암바 공격을 허용하며 아쉬운 서브미션 패배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기는 그가 종목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무도인임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마이티 모와의 재대결 승리]
자신에게 KO패를 안겼던 마이티 모를 다시 만나 판정승으로 복수에 성공합니다. 철저한 전략을 통해 상대의 강점을 봉쇄하고 영리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얻은 소중한 승리였습니다.
마이티 모의 강력한 오른손 훅을 피해가며 거리 조절에 성공했습니다.
이 승리로 다시 한번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8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자신을 무너뜨린 상대를 다시 이겨냈다는 점에서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해졌습니다.
[제롬 르 배너와의 재대결]
파이널 8 무대에서 다시 만난 제롬 르 배너에게 판정패하며 우승 문턱에서 멈춥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했으나 정상급 선수의 노련함을 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입식 격투기 선수로서의 마지막 전성기 불꽃을 태웠습니다.
배너의 노련한 아웃복싱 전략에 말려들며 고전 끝에 패배했습니다.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체력적인 부담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패했으나 경기 후 배너와 서로를 격려하며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였습니다.
[효도르와의 '60억 분의 1' 대결]
종합격투기 최강자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역사적인 맞대결을 펼칩니다. 신체적 우위를 활용해 초반 효도르를 위기에 몰아넣는 등 선전했습니다. 아쉬운 암바 패배를 당했으나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효도르를 상대로 상위 포지션을 점유하며 파운딩 공격을 가하는 등 이변을 연출할 뻔했습니다.
순간적인 효도르의 암바 기술에 걸려 패배했으나 거인 최홍만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경기는 지금도 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흥행 이벤트 중 하나로 회자됩니다.
2008
[군 입대와 훈련소 퇴소]
병역 의무를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5일 만에 귀가 조치됩니다. 정밀 검사 결과 뇌하수체 종양이 발견되며 선수 생활의 중대 위기를 맞이합니다. 운동보다 생명이 시급한 절박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시력 저하와 두통 증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군 복무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거인증과 관련된 종양 판정은 대중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 속에 병역 면제 판정을 받고 치료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
생사를 건 종양 제거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신체적 밸런스가 변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건강 회복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선수 복귀를 향한 강한 의지로 고통스러운 재활을 견뎌냅니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종양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수술 이후 급격한 근력 저하와 신체 변화를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많은 팬의 응원 속에 다시 링 위에 서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훈련을 재개했습니다.
[바다 하리전 복귀]
수술 후 기적적으로 링에 복귀하여 신성 바다 하리와 맞붙습니다. 수술 여파로 예전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며 아쉬운 기권패를 당합니다.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음에도 투혼을 발휘한 무대였습니다.
초반 바다 하리를 다운시키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였습니다.
갈비뼈 부상까지 겹치며 결국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패배했으나 수술 후 단기간에 복귀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정신력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레이 세포전 패배]
K-1의 전설 레이 세포와 맞붙었으나 무기력한 경기 끝에 판정패합니다. 신체적 위력이 급감한 모습에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격투기 선수로서의 내리막길이 시작되던 가슴 아픈 시기였습니다.
세포의 노련한 타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수술 전의 폭발적인 힘과 맷집이 사라진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경기를 마치는 책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크로캅전 패배]
최고의 킥커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로 종합격투기 경기를 치릅니다. 크로캅의 강력한 로킥 공격에 다리 부상을 입으며 TKO패를 당합니다. 거물급 선수들과의 연이은 대결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때였습니다.
상대의 로킥을 방어하지 못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가 중단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연달아 대결하는 강행군 속에 부상이 잦아졌습니다.
격투기 무대에서의 입지가 좁아지며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9
[호세 칸세코전 승리]
메이저리그 출신의 호세 칸세코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둡니다. 종합격투기 규칙으로 치러진 경기에서 힘의 차이를 보여주며 승리했습니다. 오랜만의 승리로 자신감을 다소 회복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초반부터 거세게 압박하여 칸세코를 코너로 몰아넣고 파운딩으로 끝냈습니다.
이벤트성 경기였으나 최홍만이라는 흥행 카드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미노와맨전 패배]
자신보다 훨씬 작은 미노와맨에게 하체 관절기 공격을 허용하며 충격적인 패배를 당합니다. 신체적 이점을 살리지 못한 기술적 허점이 노출된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를 끝으로 한동안 격투기 무대를 떠나게 됩니다.
상대의 기습적인 태클과 서브미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팬들의 실망감이 컸던 경기로 선수 생활 지속 여부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은둔과 휴식의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2011
[폭행 혐의와 무혐의 처분]
자신이 운영하던 주점에서 손님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습니다. 연예계 활동과 사업을 병행하던 중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정당방위 및 무혐의를 인정받았으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습니다.
사건 당시의 상황이 와전되어 세간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결백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소명한 끝에 법적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한동안 대중 앞에 나타나기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2013
[일본 예능 및 연기 활동]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합니다. 독보적인 캐릭터로 일본 대중문화계의 감초 역할을 수행합니다. 격투기 선수 대신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 나갑니다.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에 거인 역할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습니다.
일본 예능 특유의 콘셉트와 잘 어우러져 현지 팬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의 활동 비중이 높아지며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2014
[가수 데뷔와 음악 활동]
혼성 그룹의 일원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노래 실력을 뽐냅니다. 신곡을 발표하며 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다각도로 발산하던 시기였습니다.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거구에서 나오는 중저음의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색적인 시도로 화제를 모았으나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열정만큼은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2015
[사기 혐의 논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았다는 사기 혐의로 피소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관련된 소식이 전해지며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으며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며 심적 고통이 극에 달했습니다.
채무 변제를 약속하고 합의에 나서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다시 격투기 링으로 돌아오는 절박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로드 FC를 통한 복귀]
약 6년 만에 국내 단체인 로드 FC 무대를 통해 격투기 선수로 돌아옵니다. 일본 대회에서 카를로스 토요타와 맞붙었으나 충격적인 KO패를 당합니다. 세월의 흐름과 공백기를 실감케 한 아픈 복귀전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직후 펀치를 허용하며 허무하게 패배하여 팬들의 우려를 샀습니다.
실전 감각이 완전히 무너진 듯한 모습에 은퇴 권유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명예 회복을 위해 다시 훈련장으로 향했습니다.
[중국 루오췐차오전 승리]
상하이 대회에서 중국의 루오췐차오를 기권으로 꺾으며 재기 가능성을 보입니다. 상대의 부상으로 얻은 승리였으나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경기였습니다.
초반 압박 도중 상대 선수의 코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되어 승리를 챙겼습니다.
운이 따랐으나 승리의 기분을 다시 느끼며 훈련의 동력을 얻었습니다.
중국 현지 팬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다시금 거인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2016
[아오르꺼러 KO 승리]
중국의 신성 아오르꺼러를 상대로 호쾌한 KO승을 거두며 부활을 알립니다. 도발을 일삼던 상대를 실력으로 잠재우며 국내 팬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습니다.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펀치 연타로 상대를 실신시키며 로드 FC 무대 첫 실력 승리를 따냈습니다.
이 경기 승리로 무제한급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비난하던 여론을 찬사로 바꾸며 다시 한번 중심 스타로 등극했습니다.
[마이티 모와의 결승전]
로드 FC 무제한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숙적 마이티 모에게 KO패합니다. 강력한 펀치에 쓰러지며 챔피언 벨트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나이와 신체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최선을 다해 맞섰으나 전성기의 맷집을 회복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챔피언 문턱에서 멈췄으나 노장의 투혼만큼은 인정받았습니다.
국내 종합격투기 역사에 남을 거구들의 마지막 대결 중 하나였습니다.
2017
[엔젤스파이팅 복귀전 승리]
자선 격투기 대회인 엔젤스파이팅에서 일본의 우치다 노보루에게 판정승합니다. 입식 격투기 규칙으로 오랜만에 치른 경기에서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둡니다. 난치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뜻깊은 무대였습니다.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압도적인 체격으로 경기를 지배했습니다.
승리 후 상금을 기부하며 사회 공헌 활동에도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선수로서의 황혼기를 의미 있는 활동으로 채워 나갔습니다.
2018
[이롱전 충격 패배]
중국의 소림 무술가 출신 이롱과의 이색 대결에서 TKO패를 당합니다. 상대의 뒤차기 공격에 의한 부상으로 경기가 조기에 종료되었습니다. 경기 방식과 결과에 대해 국내외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상대에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에 팬들의 우려가 컸습니다.
부상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경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링에 오르지 않고 개인적인 시간에 집중하게 됩니다.
2019
[미도리카와전 패배]
일본 오카야마 대회에서 치러진 킥복싱 경기에서 판정패를 기록합니다. 성실히 경기에 임했으나 세밀한 타격 기술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격투기 선수로서 사실상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경기를 마쳤습니다.
현저히 떨어진 반응 속도로 인해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정식 시합보다는 방송 출연과 개인 사업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2020
[일본 오사카 생활]
한국에서의 악플과 스트레스를 피해 일본 오사카로 거처를 옮깁니다. 조용한 일상을 보내며 심신의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일본 내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소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은 곳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즐겼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며 내면을 가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1
[유튜브 채널 개설]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일상과 훈련 모습, 그리고 진솔한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신비주의를 벗고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시도였습니다.
자신의 큰 체격 때문에 겪는 일상의 불편함 등을 유쾌하게 풀어내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댓글을 통해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오해를 풀고 진심을 전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방식의 스타 활동을 모색했습니다.
2022
[아이콘택트 가족 화해]
예능 프로그램 '아이콘택트'에 출연하여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거대한 몸집 뒤에 가려졌던 어린 시절의 아픔과 가족의 정을 확인합니다.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기며 인간 최홍만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오랜 서먹함을 풀고 눈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동안의 오해와 서운함을 털어버리고 가족으로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방송 이후 그를 응원하는 긍정적인 여론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2024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출연]
오은영 박사를 만나 그동안 겪어온 대인기피증과 마음의 상처를 고백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5년 동안 은둔 생활을 했던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강한 겉모습과 달리 여린 내면을 가진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습니다.
오은영 박사의 따뜻한 조언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방송을 기점으로 다시금 한국에서의 활동을 조심스럽게 재개할 준비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