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

럭셔리 그룹, 지주 회사, 패션, 화장품, 주류, 유통,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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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는 인류의 욕망과 전통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킨 현대 럭셔리 산업의 결정체입니다. 1987년 샴페인 명가 모엣 헤네시와 가죽 공예의 자부심 루이 비통의 결합으로 탄생한 이 그룹은, 베르나르 아르노라는 전략적인 지도자를 만나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개별 브랜드들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경영 시스템으로 이를 통합해온 LVMH의 서사는, 전통의 미래를 설계해온 끝없는 혁신과 인수합병의 기록입니다.

연관 연혁
주요사건만
최신순

1743

[모엣 앤 샹동 설립]

클로드 모엣이 프랑스 에페르네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샴페인 하우스를 세우며 제국의 뿌리를 내립니다. 이 가문은 세대를 거듭하며 유럽 왕실에 와인을 공급하는 독보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모엣 앤 샹동은 LVMH 주류 부문의 가장 오래된 토대 중 하나입니다.
창립자 클로드 모엣은 샴페인을 귀족적인 사치품으로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1833년 피에르 가브리엘 샹동이 합류하며 현재의 명칭을 확립하게 됩니다.

1765

[헤네시 코냑 탄생]

아일랜드 장교 리처드 헤네시가 프랑스 코냑 지방에 증류소를 설립하며 전설적인 코냑 브랜드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탁월한 블렌딩 기술은 전 세계 주류 시장을 매료시키는 표준이 되었습니다.

헤네시는 코냑 등급의 기준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며 오늘날 세계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훗날 모엣 앤 샹동과 결합하여 그룹의 주축인 모엣 헤네시를 형성하게 됩니다.
[출처: 위키백과](https://fr.wikipedia.org/wiki/Hennessy)

1803

[불리 1803 기원]

장 뱅상 불리가 파리에 화장품 및 향수 전문점을 열고 독창적인 뷰티 철학을 전파합니다. 이 유서 깊은 브랜드는 훗날 LVMH에 인수되며 화려하게 부활하게 됩니다.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는 전통적인 제조법을 계승하는 뷰티 하우스입니다.
창립 당시부터 피부 과학과 향기의 조화를 강조하며 파리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2021년 LVMH에 의해 완전히 인수되며 그룹 내 화장품 부문을 강화했습니다.

1828

[겔랑 향수 역사 시작]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이 파리에 첫 매장을 열고 향수 명가로서의 입지를 다집니다. 그의 조향 기술은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유제니에게 찬사를 받으며 왕실 공급처로 지정되었습니다.

겔랑은 프랑스 향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수백 가지의 향수 레시피를 보유하며 럭셔리 뷰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4년 LVMH 그룹에 합류하며 그룹의 고급 뷰티 사업을 선도하게 되었습니다.

1846

[로에베 가죽 공예 시작]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가죽 장인들이 공방을 설립하고 스페인 왕실의 자부심으로 성장합니다. 정교한 수작업과 최고급 가죽 소재는 유럽 전역에 그 이름을 떨쳤습니다.

로에베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럭셔리 하우스로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습니다.
이후 1996년 LVMH에 인수되면서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의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현재는 가죽 제품뿐만 아니라 기성복 부문에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1854

[루이 비통 공방 설립]

루이 비통이 파리에 여행용 트렁크 전문 매장을 열며 현대 럭셔리의 상징이 될 브랜드를 창조합니다. 적재가 용이한 사각형 트렁크는 여행 문화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루이 비통은 LVMH의 이름 중 'LV'를 담당하는 핵심 브랜드입니다.
창립자 루이 비통은 귀족들의 짐을 싸는 장인으로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구성 강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럭셔리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860

[태그호이어 시계 등장]

에드워드 호이어가 스위스에 시계 공방을 세우고 정밀한 크로노그래프 기술을 발전시킵니다. 스포츠 워치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혁신은 훗날 그룹의 시계 부문에 큰 기여를 합니다.

태그호이어는 정밀 측정 시계 분야에서 수많은 특허를 보유한 스위스 명가입니다.
1999년 LVMH에 인수되며 그룹 내 워치 앤 주얼리 부문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레이싱과 스포츠의 역사를 함께한 브랜드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1884

[불가리 주얼리 탄생]

그리스 출신 소티리오 불가리가 로마에 보석점을 열고 고전과 현대가 조화된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입니다. 화려한 유색 보석과 로마의 유산을 담은 디자인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불가리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하이 주얼리 브랜드입니다.
2011년 LVMH가 가족 대주주로부터 주식을 인수하며 그룹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인수 당시 약 43억 유로의 가치로 평가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1925

[펜디 로마 공방 오픈]

펜디 부부가 로마에 모피와 가죽 제품 매장을 열고 장인 정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독창적인 가공 기술은 펜디를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도약시켰습니다.

펜디는 칼 라거펠트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며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남겼습니다.
2000년 LVMH와 프라다 그룹의 합작 투자로 지분이 인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LVMH가 프라다의 지분을 모두 매입하며 완전한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1945

[세린느 아동화 매장]

세린느 비피아나가 파리에 맞춤형 아동화 매장을 열며 브랜드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이후 여성복으로 영역을 넓히며 세련된 스타일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세린느는 1996년 LVMH 그룹에 인수되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피비 파일로, 에디 슬리먼 등 거물급 디자이너를 거치며 트렌드를 선도해왔습니다.
현재 그룹 내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패션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1947

[크리스찬 디올 향수 설립]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이 자신의 첫 향수인 '미스 디올'을 발표하며 뷰티 사업에 진출합니다. 이는 패션 하우스와 뷰티 부문의 유기적인 결합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퍼퓸 크리스찬 디올은 1987년 LVMH 설립 당시부터 그룹의 핵심 자산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의류 부문과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7년에 이르러 모두 LVMH 아래 통합되었습니다.
프랑스 럭셔리의 정수로 불리며 전 세계 향수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1952

[지방시 하우스 창립]

위베르 드 지방시가 자신의 이름을 건 오트 쿠튀르 하우스를 열고 절제된 우아함을 선보입니다. 오드리 헵번과의 파트너십은 패션계의 전설적인 협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지방시는 1988년 LVMH 그룹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귀족적인 우아함과 현대적인 스트리트 감성을 넘나드는 디자인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룹 내 패션 부문의 포트폴리오를 풍성하게 만드는 핵심 브랜드입니다.

1970

[다카다 겐조 파리 진출]

일본 출신 디자이너 겐조가 파리에 부티크를 열고 동양과 서양의 감성이 융합된 화려한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자유로운 패턴은 프랑스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겐조는 1993년 LVMH에 인수되며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했습니다.
강렬한 타이거 자수와 꽃무늬 등은 브랜드의 상징적인 코드가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창의적인 디렉팅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1971

[모엣 헤네시 합병]

샴페인 기업 모엣 앤 샹동과 코냑 기업 헤네시가 합병하여 거대 주류 기업인 모엣 헤네시를 설립합니다. 이는 주류 산업 내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두 거대 기업의 결합은 훗날 LVMH 탄생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샴페인과 증류주라는 서로 다른 강점을 합쳐 시너지를 극대화했습니다.
현재도 그룹 내에서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는 핵심 사업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1987

[크리스찬 라크루아 런칭]

베르나르 아르노가 자신의 개인 자산으로 패션 하우스 크리스찬 라크루아를 설립합니다. 이는 아르노가 패션 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며 자신의 안목을 시험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화려하고 예술적인 디자인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나 상업적인 성공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룹의 인수 전략과는 달리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했던 아르노의 초기 실험작이었습니다.
결국 2005년에 브랜드를 매각하며 그룹 포트폴리오에서 제외되었습니다.

[LVMH 그룹 공식 출범]

모엣 헤네시와 루이 비통이 손을 잡고 LVMH 그룹을 창설합니다. 두 럭셔리 강자의 만남은 세계 최고의 럭셔리 지주회사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파리 플라자 아테네 호텔에서 두 경영자가 연합을 선언하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영권과 주도권을 둘러싼 두 창립자 간의 갈등은 초기부터 존재했습니다.
이 갈등의 틈을 타고 베르나르 아르노가 등장하며 그룹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블랙 먼데이 주식 매입]

세계 증시가 폭락한 블랙 먼데이의 혼란 속에서 베르나르 아르노가 LVMH 주식을 대량으로 저가 매수합니다. 이는 그룹 지배 구조를 장악하기 위한 아르노의 과감한 승부수였습니다.

아르노는 경영진의 내분을 틈타 시장에 나온 매물을 공격적으로 사들였습니다.
기존 경영진의 지지를 얻어 우호 세력으로 입성하는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르노가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이 됩니다.

1988

[기네스와 전략적 제휴]

아르노가 영국 주류 기업 기네스와 손잡고 LVMH 주식을 공동 관리할 합작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를 통해 아르노는 자신의 자금력을 보완하며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라카미에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이 제휴는 사실상 아르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도구였습니다.
기네스와의 연합을 통해 아르노는 그룹 지분의 40% 이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아르노는 기네스와의 관계를 정리하며 단독 대주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1989

[아르노 대주주 등극]

베르나르 아르노가 크리스찬 디올을 통해 LVMH의 최대 주주가 되며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창립자들과의 법적 공방 끝에 얻어낸 승리였습니다.

지주회사 체제를 활용하여 적은 자본으로 거대 그룹을 지배하는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이때부터 LVMH는 두 가문의 연합체에서 아르노 가문의 제국으로 변모했습니다.
본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확장 경영이 시작된 원년으로 평가받습니다.

1990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취임]

법적 분쟁이 마무리되면서 베르나르 아르노가 공식적으로 LVMH의 회장 겸 CEO로 취임합니다. 그는 브랜드 시너지를 창출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경영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아르노는 취임 직후 비수익 부문을 정리하고 핵심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집중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는 창의성과 효율적 경영이 공존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LVMH는 매년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1993

[겐조 공식 인수]

LVMH가 창립자 다카다 겐조로부터 브랜드를 인수하며 패션 부문을 강화합니다. 일본의 감성과 프랑스의 럭셔리가 결합된 겐조는 그룹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인수 이후 겐조는 글로벌 마케팅망을 활용하여 전 세계적인 라인을 확장했습니다.
창립자의 예술적 유산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그룹이 외부 브랜드를 인수하여 어떻게 성공시키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1994

[겔랑 하우스 인수]

160년 넘게 가족 경영을 유지해온 겔랑 하우스를 LVMH가 인수하며 뷰티 제국을 완성합니다. 역사적인 향수 명가의 합류는 그룹의 품격과 점유율을 동시에 높였습니다.

겔랑 가문은 전통 보존을 조건으로 경영권을 아르노에게 넘겼습니다.
이 인수를 통해 LVMH는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향수 아카이브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겔랑은 그룹의 프리미엄 화장품 부문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96

[세린느 완전 인수]

LVMH가 세린느를 인수하여 가죽 제품 및 여성 패션 라인을 보강합니다. 세린느는 인수 이후 파리지앵의 세련미를 강조하는 전략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했습니다.

아르노는 세린느를 통해 대중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럭셔리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인수 후 마이클 코어스 등 유명 디자이너를 영입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현재는 미니멀리즘과 락 시크를 넘나드는 감성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로에베 지분 확보]

스페인의 자부심인 로에베가 LVMH 그룹의 일원이 되며 유럽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왕실 공급처라는 정통성에 그룹의 자본력이 더해져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로에베는 그룹의 지원 아래 전 세계 주요 거점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정교한 가죽 공예 기술은 유지하되 현대적인 디자인 요소를 적극 도입했습니다.
예술적 후원 활동인 로에베 재단 공예상 등을 통해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고 있습니다.

1997

[마크 제이콥스 영입]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루이 비통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고 그의 개인 브랜드에도 투자합니다. 이는 정체되어 있던 루이 비통에 젊은 에너지를 주입한 사건이었습니다.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 최초의 기성복 라인을 런칭하며 브랜드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루이 비통을 '힙한' 브랜드로 변모시켰습니다.
그의 성공은 럭셔리 하우스가 외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활용하는 방식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세포라 인수 혁명]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를 인수하며 럭셔리 뷰티 제품의 독점적인 유통망을 확보합니다. 자유롭게 제품을 체험하는 새로운 쇼핑 방식은 뷰티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세포라는 제조를 넘어 '유통'까지 지배하려는 아르노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룹 내 브랜드뿐만 아니라 경쟁사 브랜드까지 입점시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수천 개의 매장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뷰티 유통 체인으로 성장했습니다.

1999

[태그호이어 인수]

스위스 시계 명가 태그호이어를 전격 인수하며 워치 앤 주얼리 사업부를 본격적으로 육성합니다. 이는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인수가는 약 7억 3,900만 달러에 달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태그호이어의 합류로 LVMH는 하이엔드 시계 시장에서의 입지를 단숨에 굳혔습니다.
이후 위블로, 제니스 등을 추가 인수하며 시계 제국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구찌 적대적 인수 시도]

LVMH가 경쟁사 구찌 주식 20%를 몰래 매입하며 적대적 인수를 시도합니다. 이는 패션계의 두 거장 아르노와 프랑수아 피노 간의 '럭셔리 전쟁'의 서막이었습니다.

구찌 경영진은 아르노의 지배를 거부하고 피노의 그룹과 손을 잡았습니다.
아르노는 구찌를 완전히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투자 이익을 남겼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LVMH와 케어링 그룹 간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된 계기입니다.

2000

[에밀리오 푸치 인수]

화려한 프린트의 대명사인 이탈리아 브랜드 에밀리오 푸치의 지분을 인수합니다. 독창적인 패턴을 특징으로 하는 이 브랜드는 그룹의 리조트 웨어 라인을 강화했습니다.

푸치 가문의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디렉터를 투입해 브랜드를 쇄신했습니다.
피렌체의 귀족적 감성을 유지하며 고소득층을 타겟으로 한 마케팅을 전개했습니다.
현재까지도 특유의 화려한 프린트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펜디 인수 완료]

최종적으로 펜디를 완전히 지배하며 이탈리아 럭셔리의 상징을 손에 넣습니다. 유럽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하이엔드 가죽 시장에서의 우위를 다진 행보였습니다.

펜디는 인수 이후 백 사업과 모피 부문에서 기록적인 매출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바게트 백'의 유행을 선도하며 밀레니엄 초반 패션 트렌드를 주도했습니다.
전략적인 마케팅 투자를 통해 글로벌 톱 브랜드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2001

[도나 카란 인수]

뉴욕 패션의 자존심 도나 카란과 DKNY 브랜드를 인수하며 미국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죕니다. 미국 스타일을 그룹 포트폴리오에 추가한 행보였습니다.

유럽식 럭셔리와는 다른 미국식 커리어 우먼 룩을 통해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인수가는 약 6억 4,300만 달러로 알려졌으며 초기에는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그룹의 고급화 전략과 배치되면서 2016년에 매각하게 됩니다.

[구찌 지분 매각 합의]

오랜 기간 이어온 구찌 그룹 인수 분쟁을 끝내고 보유 지분을 PPR 그룹에 매각하기로 합의합니다. 아르노는 이 거래를 통해 막대한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지분 매각 대금은 다른 유망 브랜드들을 쇼핑하는 데 귀중한 실탄이 되었습니다.
이후 케어링 그룹은 LVMH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하게 됩니다.
럭셔리 산업의 양강 구도가 이때부터 명확하게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2

[포므리 샴페인 매각]

비핵심 자산 정리 차원에서 포므리 샴페인 브랜드를 브랑켄 모노폴 그룹에 매각합니다. 이는 효율성과 브랜드 등급을 관리하려는 아르노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모엣 앤 샹동, 베브 클리코 등 상위 등급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재무 구조 개선과 신규 브랜드 투자에 사용되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주류 부문의 영업이익률을 극대화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03

[재무적 저점 기록]

경제 불황과 사스 여파로 그룹 순이익이 약 7억 유로라는 저점을 기록합니다. 아르노 회장은 위기 돌파를 위해 대대적인 비용 절감과 마케팅 혁신을 주문했습니다.

이 실적은 훗날 연간 수십조 원의 수익을 올리는 LVMH의 역사에서 가장 낮은 기록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조직의 체질을 개선하고 디지털 전환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룹은 다시 공격적인 성장 궤도로 복귀하며 저력을 증명했습니다.

2004

[글렌모렌지 인수]

스코틀랜드의 프리미엄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글렌모렌지를 공개 매수 방식으로 인수합니다. 이는 위스키 시장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의지였습니다.

인수가는 약 3억 파운드에 달하며 위스키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글렌모렌지의 합류로 모엣 헤네시의 제품군은 더욱 완벽한 구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고급 위스키의 대중화를 이끌며 그룹 주류 부문의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2005

[배당금 증액 결정]

실적 회복에 성공한 LVMH가 주주 배당금을 늘리며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강화합니다. 그룹의 현금 흐름이 안정화되면서 아르노의 리더십은 공고해졌습니다.

지속적인 이익 성장을 바탕으로 주주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럭셔리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시켜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확보된 현금은 다음 세대의 인수합병을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2008

[위블로 시계 인수]

파격적인 소재 결합으로 성장하던 스위스 시계 브랜드 위블로를 인수합니다. 위블로의 철학은 혁신을 강조하는 LVMH의 방향성과 일치했습니다.

위블로의 창업자 장 클로드 비버의 감각과 아르노의 자본이 만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태그호이어와 함께 그룹의 워치 부문을 이끄는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급 시계 시장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며 젊은 부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2010

2010.10.14 2해당 사건의 피인용 횟수를 나타냅니다.

[에르메스 지분 공습]

LVMH가 에르메스 지분 14%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짝 발표하며 시장을 뒤흔듭니다. 파생상품을 이용해 은밀하게 지분을 확보한 방식이었습니다.

에르메스는 이를 '적대적 공격'으로 규정하고 방어용 지주회사를 설립하며 맞섰습니다.
프랑스 금융 당국까지 개입할 정도로 큰 사회적 논란이 되었습니다.
결국 인수는 무산되었지만 럭셔리 제국의 끝없는 탐욕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011

[불가리 공식 인수]

이탈리아 보석 명가 불가리를 인수하며 주얼리 시장 점유율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립니다. 이는 그룹의 워치 앤 주얼리 부문의 결정적인 도약이었습니다.

불가리 인수는 가족 대주주와의 주식 교환을 통해 평화롭고 전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동시에 남성 구두의 정점인 벨루티에 기성복 라인을 도입해 남성 럭셔리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그룹의 포트폴리오가 보석과 남성 패션까지 완벽하게 균형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벨루티 확장 전략]

수제화 브랜드 벨루티를 토털 패션 브랜드로 확장 개편하여 남성 럭셔리 시장을 정조준합니다. 정교한 가죽 가공 기술에 기성복 라인을 더했습니다.

벨루티는 아르노 회장의 아들 앙투안 아르노의 지휘 아래 고급 남성복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베네치아 가죽'의 독특한 질감을 전 제품군으로 확대하여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룹 내 남성 럭셔리 부문의 수익성을 강화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3

[로로피아나 인수 합의]

세계 최고의 캐시미어 제조사인 로로피아나 지분 80%를 전격 인수합니다. 최상급 소재를 독점 확보하여 다른 브랜드와의 격차를 벌리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인수가는 20억 유로에 달하며 고요한 럭셔리(Quiet Luxury)의 정점을 확보했습니다.
로로피아나의 원단 생산 능력은 그룹 내 다른 패션 하우스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진정한 상류층의 옷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2014

[루이 비통 재단 개관]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파리에 개관합니다. 이는 럭셔리 기업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선언적 행보였습니다.

돛단배를 형상화한 독창적인 건축물은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아르노 회장의 개인 소장품과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입니다.
그룹의 이미지 개선과 사회적 책임 실천을 위한 핵심적인 문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IME 교육 기관 설립]

장인 정신 계승을 위해 전문 교육 기관인 IME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 양성을 시작합니다. 전통 기술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가죽 가공, 보석 세공, 판매 등 럭셔리 산업 전반의 기술을 교육합니다.
수료생들은 LVMH 소속 브랜드에서 인턴십과 취업 기회를 얻게 됩니다.
전통과 현대적인 경쟁력을 잇는 인재 육성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에르메스 지분율 도달]

에르메스 지분을 23.2%까지 확보하며 지배력을 행사하려 시도합니다. 에르메스 경영진은 이를 강력하게 비난하며 법적 소송을 이어갔습니다.

프랑스 법원은 LVMH에 시장 교란의 책임을 물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에르메스 가문은 똘똘 뭉쳐 지분을 방어해냈고 LVMH는 결국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럭셔리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인수 전쟁 중 하나가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이었습니다.

[에르메스 분쟁 종결]

LVMH와 에르메스가 오랜 법적 다툼을 끝내고 극적인 합의에 도달합니다. LVMH는 보유한 에르메스 주식을 모두 자사 주주들에게 배분하기로 했습니다.

아르노 회장은 이 거래로 엄청난 시세 차익을 남기며 실리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에르메스는 독립성을 지켜냈고, LVMH 주주들은 귀한 에르메스 주식을 공짜로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명분과 실리를 챙긴 세기의 합의로 기록되었습니다.

2015

[페페 진스 투자]

L 캐피탈 아시아를 통해 데님 브랜드 페페 진스에 투자하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합니다. 대중적인 프리미엄 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M1 패션과 함께 공동 투자를 진행하여 글로벌 패션 시장의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아시아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지원하여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했습니다.
전략적인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해 지주회사 본체와는 별도의 펀드를 활용한 사례입니다.

[모나코 SBM 지분 인수]

모나코 왕실 소유의 카지노 및 호텔 운영 기업 SBM의 지분 5%를 인수합니다. 최상류층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직접 체험하게 하려는 포석이었습니다.

모나코는 럭셔리 소비의 성지이며 SBM은 그 중심에 있는 기업입니다.
럭셔리 브랜드의 고객들이 머무는 공간까지 그룹의 영향력을 뻗치려 한 것입니다.
훗날 벨몬드 인수 등 호텔 사업으로 확장해나가는 전초 기지가 되었습니다.

[르 파리지앵 인수]

약 5,000만 유로를 투자하여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을 인수하고 미디어 부문을 강화합니다. 기존의 레 제코와 함께 여론 관리력을 확보했습니다.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력을 확보하고 그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했습니다.
언론의 독립성 침해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아르노는 미디어 사업의 안정화를 이끌었습니다.
럭셔리 기업이 미디어 권력까지 소유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됩니다.

2016

[도나 카란 브랜드 매각]

수익성이 낮고 그룹 이미지와 맞지 않는 도나 카란을 G-III 어패럴 그룹에 매각합니다. 비수익 부문을 과감히 정리한 아르노의 결정이었습니다.

15년간 보유했으나 당초 기대했던 시너지를 내지 못한 실패한 인수로 평가되었습니다.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보다 하이엔드급인 리모와 등의 인수에 투입되었습니다.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고 자산을 재배치하는 아르노의 냉철한 판단력을 보여줍니다.

[리모와 지분 80% 인수]

독일의 프리미엄 캐리어 브랜드 리모와를 전격 인수하며 여행 럭셔리 부문을 강화합니다. 알렉상드르 아르노가 주도하여 브랜드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알루미늄 캐리어의 정통성에 젊은 감각을 더해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습니다.
슈프림, 오프화이트 등 스트리트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이미지를 쇄신했습니다.
아르노 가문의 후계자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 능력을 증명하기 시작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2017

[프란시스 커정 인수]

고급 니치 향수 브랜드 프란시스 커정을 인수하여 뷰티 부문의 예술적 자산을 추가합니다. 향수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커정은 루이 비통과 디올의 향수 개발에도 참여하며 그룹 내 조향 사령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이엔드 향수 시장의 성장세에 맞춘 탁월한 투자로 평가받습니다.
[출처: 위키백과](https://fr.wikipedia.org/wiki/Maison_Francis_Kurkdjian)

[드비어스 합작법인 매각]

드비어스와의 합작 회사 지분을 매각하며 다이아몬드 소매 전략을 수정합니다. 자사가 보유한 주얼리 브랜드들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드비어스 다이아몬드 주얼러의 32개 매장을 정리하며 자산 유동성을 확보했습니다.
대신 불가리와 티파니(훗날 인수)와 같은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정체성 강화에 매진했습니다.
핵심 경쟁력을 보유한 브랜드에 집중하려는 그룹의 방향성을 보여준 결정입니다.

[크리스찬 디올 통합]

흩어져 있던 크리스찬 디올의 의류 부문을 LVMH로 완전히 통합하여 효율성을 높입니다. 브랜드의 모든 라인이 하나로 합쳐지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아르노 회장은 이 거래를 통해 가문의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통합 이후 디올은 루이 비통에 이은 그룹의 제2의 성장 동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럭셔리 시장에서 디올의 위상이 수직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르메스 잔여 지분 정리]

보유하고 있던 에르메스 지분 8%를 모두 매각하며 에르메스에 대한 공격을 종료합니다. 이로써 오랜 기간 이어진 갈등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매각으로 얻은 자금은 디올 통합 비용을 충당하는 데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에르메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신의 제국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두 그룹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으며 시장은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2018

[벨몬드 그룹 인수 발표]

초호화 호텔 운영사인 벨몬드 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하고 호스피탈리티 진출을 선포합니다. 상품을 넘어 '럭셔리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비전이었습니다.

베니스 심플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 등 독보적인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럭셔리 여행과 숙박 산업에서도 LVMH의 이름은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상품 소비에서 가치 소비로 넘어가는 트렌드를 정확히 뚫어본 행보였습니다.

2019

[벨몬드 인수 완료]

벨몬드 그룹 인수를 법적으로 마무리하며 호텔 사업부를 대폭 강화합니다. 전 세계 주요 관광지에 위치한 호텔들은 그룹 브랜드들의 홍보 무대가 되었습니다.

럭셔리 호텔 체인 '슈발 블랑'과의 시너지를 통해 호스피탈리티 부문의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최상류층 고객들의 일상을 그룹의 브랜드로 가득 채우려는 시도입니다.
호텔 내부 소품부터 와인까지 모두 LVMH 제품으로 구성하는 전략을 전개했습니다.

[리아나와 펜티 설립]

팝스타 리아나와 손잡고 새로운 브랜드 펜티를 런칭하며 디지털과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LVMH가 처음부터 공동 설립한 최초의 브랜드였습니다.

전통적인 럭셔리 방식이 아닌 SNS와 드롭 방식의 판매를 도입했습니다.
다양한 피부톤을 고려한 화장품 라인은 사회적으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패션 부문은 훗날 중단되었으나 뷰티 부문은 여전히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스텔라 맥카트니 파트너십]

지속 가능성에 앞장서는 스텔라 맥카트니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습니다. 이를 통해 그룹의 친환경 및 윤리적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아르노 회장의 지속 가능 경영 고문으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럭셔리의 가능성을 그룹 내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의 호감을 얻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티파니 인수 발표]

미국 최대의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앤 코를 약 162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합니다.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이며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도박이었습니다.

까르띠에를 보유한 리치몬트 그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아르노의 회심의 일격이었습니다.
인수 발표 직후 전 세계 금융 시장은 LVMH의 자금력과 실행력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닥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수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2020

[코로나19 위기 대응]

팬데믹으로 인한 매출 감소가 예상되자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합니다. 아르노 회장은 단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브랜드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룹은 향수 공장을 가동해 손 소독제를 생산하여 의료기관에 기부하는 사회적 공헌을 실천했습니다.
디지털 채널을 강화해 오프라인 매장의 공백을 메우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럭셔리 산업이 겪은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를 정면으로 마주한 시기였습니다.

[배당금 삭감 결정]

유동성 확보와 고통 분담을 위해 주주 배당금을 30% 삭감하기로 결정합니다. 아르노 회장 본인도 일정 기간 급여를 포기하며 책임 경영을 보여주었습니다.

주주들의 반발이 우려되었으나 그룹의 생존과 안정을 위해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삭감된 자금은 고용 유지와 핵심 매장 관리를 위해 투입되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자산의 효율적 배분을 중요시하는 그룹의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티파니 인수 철회 선언]

경제 위기와 정부 요청을 이유로 티파니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하여 소송전에 휘말립니다. 이는 인수가를 조정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되었습니다.

아르노 회장이 인수가를 낮추기 위해 일부러 계약을 파기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양측의 법적 공방은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킬 정도로 격렬하게 이어졌습니다.
결국 인수가 조정을 위한 고도의 협상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티파니 재협상 합의]

당초 계획보다 인수가를 약 4억 달러 낮추는 조건으로 티파니 인수에 최종 합의합니다. 아르노 회장은 위기 속에서도 실리를 챙기며 인수를 완성했습니다.

인수가 낮아진 것은 주주들에게는 이득이었지만 티파니의 자존심에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인수 완료 후 아르노는 자신의 아들 알렉상드르를 투입해 티파니의 전면적인 쇄신에 착수했습니다.
보석 부문에서 세계 1위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직원 인력 구조조정]

코로나 사태 여파로 전 세계 인력의 8%를 감축하며 조직 슬림화를 단행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효율 중심의 조직 개편이었습니다.

비록 인력은 줄었으나 2020년 연말에 47억 유로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이 중 30억 유로를 주주 배당으로 돌려주며 수익성 회복을 선언했습니다.
효율 중심의 경영이 위기에서 그룹을 구했음을 입증했습니다.

2021

[청년 대규모 채용 계획]

30세 이하 청년 2만 5천 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합니다. 이는 조직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공격적인 투자였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고용 정책에 부응하면서도 우수 인재를 선점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디지털 마케팅과 매장 관리 부문에 젊은 인력을 집중 배치했습니다.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신규 세대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입니다.

[불리 1803 공식 인수]

오랜 협력사였던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를 완전히 인수하고 뷰티 아카이브를 강화합니다. 역사적 브랜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했습니다.

불리는 인수 이후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전 세계 매장을 확장했습니다.
워터 베이스 향수 등 독보적인 기술력을 그룹 내 다른 브랜드와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니치 뷰티 시장의 선두 주자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텔리오스 완전 자회사화]

이탈리아 마르콜린과의 합작 회사 텔리오스 지분을 모두 인수하여 독자적인 안경 제조망을 갖춥니다. 이는 아이웨어 부문의 수직 계열화 전략이었습니다.

외부 라이선스 생산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체 생산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루이 비통, 디올 등 핵심 브랜드의 아이웨어를 직접 생산하여 수익성을 높였습니다.
이탈리아 럭셔리 안경 산업의 중심지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2022

[르 파리지앵 추가 증자]

경영난을 겪던 산하 매체 르 파리지앵에 6,500만 유로를 긴급 수혈하여 자본력을 보강합니다. 미디어 파워를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콘텐츠 강화 비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매체의 영향력을 지켜냈습니다.
미디어를 단순한 수익원이 아닌 그룹의 위상 강화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대우했습니다.
아르노 회장의 미디어에 대한 애착과 전략적 가치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2023

[플래티넘 인베스트 인수]

프랑스 보석 제조 기업들을 소유한 플래티넘 인베스트를 인수하여 주얼리 공급망을 장악합니다. 티파니와 불가리의 생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프랑스 보석 장인들의 기술력을 그룹의 지붕 아래 묶어 두었습니다.
하이 주얼리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했습니다.
메이드 인 프랑스(Made in France)의 품격을 제조 단계에서부터 보증하게 되었습니다.

[매출 성장 둔화 발표]

3분기 매출 성장이 1%에 그쳤다고 발표하자 주가가 하루 만에 약 7% 급락합니다. 럭셔리 시장의 호황이 정점에 달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중국 시장의 회복 지연과 고금리 여파가 럭셔리 소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노 회장은 이를 '정상화 과정'이라 설명하며 내실 경영으로의 전환을 시사했습니다.
그룹의 시가총액이 수십조 원 증발하며 무적과 같던 성장세에 의문이 제기된 순간이었습니다.

[바턴 페레이라 인수]

미국의 고급 안경 브랜드 바턴 페레이라 인수를 발표하며 프리미엄 아이웨어 시장을 공략합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어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텔리오스의 생산 능력과 바턴 페레이라의 디자인 역량을 결합했습니다.
럭셔리 아이웨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다졌습니다.

2024

[CFO 후계 구도 확립]

장 자크 기오니의 후임으로 세실 카바니스를 임명하며 차세대 경영 지원팀을 구성합니다. 경영권의 안정적인 승계를 위한 치밀한 준비였습니다.

카바니스는 부CFO로서 일정 기간 인수인계를 거쳐 차기 CFO로 등극할 예정입니다.
그룹의 재무적 건전성과 향후 인수합병 전략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입니다.
성공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한 치밀한 준비 과정 중 하나로 해석됩니다.

2025

[역대급 순이익 달성]

2024년 순이익이 126억 유로를 기록하며 4년 연속 100억 유로를 돌파했다고 발표합니다. 경기 둔화 속에서도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입증했습니다.

루이 비통과 디올의 가격 인상 전략과 효율적인 비용 관리가 주효했습니다.
주당 배당금을 인상하여 주주들의 지지를 다시 한번 끌어냈습니다.
럭셔리 제국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음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모엣 헤네시 대규모 감원]

주류 부문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직원의 13%인 1,2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비수익 부문에 대한 냉정한 효율화 작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샴페인과 코냑 소비가 정체됨에 따라 조직의 효율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감원 소식은 사내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아르노는 경쟁력 확보를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주류 부문의 체질 개선을 위한 강도 높은 혁신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현금 흐름 악화 경고]

공격적인 인수와 가격 인상으로 인해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제국의 확장에 따른 리스크 관리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2019년 10억 유로 이상의 잉여 현금을 보유했던 시절과 대조되는 상황입니다.
무리한 티파니 인수와 대규모 부동산 투자가 재무 부담을 가중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의 확장에 따른 리스크 관리가 그룹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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