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대학, 공립 대학, 연구 중심 대학, 퍼블릭 아이비리그, 스포츠 명문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4- 10:26:05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대표적인 연구 중심 공립 대학으로, 퍼블릭 아이비리그 및 빅 텐 콘퍼런스 소속입니다. 미국 내 학생 수 3위, 강력한 동문 네트워크를 자랑하며, 의대, 경영대, 공대, 약대 등 다수 학과가 북미 최고 수준입니다. "The" 명칭 사용과 함께 주요 스포츠 3종목 전국 챔피언십을 석권한 6개 대학 중 하나로도 유명합니다.
1870
[콜럼버스 부지 선정]
대학교가 들어설 최종 부지로 오하이오주의 중심지인 콜럼버스가 확정되었습니다. 접근성과 주변 농지의 활용 가능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콜럼버스의 북쪽 외곽에 위치한 닐 가문의 농지 일대가 대학교 부지로 선정되었습니다.
도시의 성장 잠재력과 학문 연구에 필요한 충분한 공간 확보를 최우선 순위로 두었습니다.
이 결정은 훗날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가 미국 내 최대 규모의 단일 캠퍼스를 보유하게 되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캐넌 법안 통과]
오하이오 주 의회에서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을 위한 캐넌 법안이 최종 통과되었습니다. 1862년 제정된 모릴 토지 공여법에 따라 오하이오 농공대학의 설립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오하이오주 내에 실용적인 학문을 교육할 수 있는 공립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법적 토대가 구축되었습니다.
농업 및 기계공학 분야의 인재 양성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여 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법안의 통과는 오하이오주 교육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873
[초대 총장 오턴 취임]
지질학자인 에드워드 오턴 1세가 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그는 신생 대학이 명문 교육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헌신적인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오턴 총장은 실용적 교육과 학문적 탁월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현재 캠퍼스의 상징적인 건물인 오턴 홀(Orton Hall)에 새겨져 기려지고 있습니다.
초기 도서관 구축과 학부 체계 정비에 있어 그의 업적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초도 수업 개시]
오하이오 농공대학이 문을 열고 24명의 학생과 함께 역사적인 첫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7명의 교수진이 학문 전반을 담당하며 교육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첫 입학생들은 당시 콜럼버스 외곽의 소박한 환경 속에서 학문 탐구에 전념했습니다.
농업과 기계공학 외에도 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한 폭넓은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드 오턴 1세가 초대 총장으로 선임되어 대학의 초기 운영과 철학을 정립했습니다.
1878
[제1회 졸업식 거행]
오하이오 농공대학의 첫 번째 졸업생 6명을 배출하며 교육의 성과를 입증했습니다. 초기 소규모 정예 교육 체제가 결실을 맺은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졸업생들은 각계각층으로 진출하여 대학의 명성을 높이는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학위 수여식을 통해 대학이 정식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 완벽히 기능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후 매년 졸업생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며 주 전체의 지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교명 공식 변경]
오하이오 농공대학에서 현재의 교명인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학문 영역을 농업 이상으로 넓히려는 주 의회의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었습니다.
주지사의 제안에 따라 대학의 위상을 포괄적인 주립 대학으로 격상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때 이름 앞에 정관사 'The'를 붙여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내는 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교명 변경과 함께 문리대학, 법과대학 등 종합 대학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881
[제2대 총장 스콧 취임]
월터 퀸시 스콧이 제2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짧은 임기였으나 대학의 규율과 행정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스콧 총장은 교수진의 권한을 존중하고 학생들의 학업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의 진취적인 성향은 일부 이사회 멤버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대학 현대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캠퍼스의 초기 건축물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883
[제3대 총장 윌리엄 스콧]
윌리엄 헨리 스콧이 총장직을 맡아 내실 있는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장기간 재임하며 대학의 재정적 안정을 도모하고 교육 과정을 다변화했습니다.
대학의 명칭을 고수하려던 초기 시도에 맞서 주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이끌어냈습니다.
주 의회로부터 대학의 지속적인 보조금을 확보하여 연구 인프라를 확충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여 농업 중심의 대학이 진정한 종합 대학으로 변모하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1885
[공과대학 정식 설립]
기존 기계공학 과정을 확대 개편하여 독립적인 공과대학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전문 엔지니어 양성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습니다.
전기, 기계, 토목 등 세분화된 공학 전공들이 신설되어 교육의 질을 높였습니다.
최신 실험 장비를 도입하여 실전 능력을 겸비한 기술 인력을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가 공학 분야에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출발점입니다.
1891
[모리츠 법과대학 설립]
법학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법과대학이 문을 열고 첫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오하이오주 내에서 법조인을 꿈꾸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초기에는 콜럼버스 시내 법원 건물을 활용해 실무 중심의 법학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캠퍼스 내로 이전하며 체계적인 법률 이론과 사례 연구 과정을 구축했습니다.
현재는 마이클 E. 모리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어 미국 최고의 법대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893
[오턴 홀 도서관 준공]
초대 총장을 기리는 오턴 홀이 완공되어 지질학 박물관과 도서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캠퍼스 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오하이오주의 암석 표본으로 외벽을 장식하여 지질학적 의미를 건축에 투영했습니다.
독특한 종소리로 유명한 시계탑이 설치되어 학생들의 일상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학문적 권위와 역사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 명물로서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1895
[제4대 총장 캔필드 취임]
제임스 헐 캔필드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행정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홍보와 대외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학생 자치 활동을 장려하고 캠퍼스 문화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대학의 성장 속도에 맞춰 행정 조직을 현대적으로 개편하고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는 주 내외에서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1896
[의과대학 병원 설립 기반]
스타링 의과대학 등 외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의학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종합 병원과 연계된 실전 중심의 의료 교육 시스템을 지향했습니다.
당시 흩어져 있던 의학 교육 기관들을 통합하여 대학 산하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전문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하여 오하이오주의 공공 보건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후 의과대학은 벡스너 의료센터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의료 기지가 되었습니다.
1899
[제5대 총장 톰슨 시대 개막]
윌리엄 옥슬리 톰슨이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26년간의 장기 집권과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대학은 현대적인 거대 대학교로 탈바꿈했습니다.
학생 수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으로 급증하는 시기에 캠퍼스 마스터 플랜을 실행했습니다.
학부 교육뿐만 아니라 연구 중심의 대학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캠퍼스 중앙 도서관의 이름이 윌리엄 옥슬리 톰슨 도서관으로 명명되었습니다.
1904
[음악대학 교육 시작]
예술 분야의 확장을 위해 음악 전문 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학생들을 모집했습니다. 중공업과 과학 중심에서 예술적 소양을 갖춘 대학으로 진화했습니다.
초기에는 작은 교실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전용 연주 홀과 연습실을 확충해 나갔습니다.
지역 오케스트라와 연계한 실전 공연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했습니다.
현재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의 음악학부는 미국 최고 수준의 예술 교육을 자랑합니다.
1906
[간호학부 정식 출범]
의료 전문 인력의 체계적인 양성을 위해 간호학부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병원 실습과 이론을 병행하는 현대적인 간호 교육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부족했던 전문 간호 인력을 배출하여 지역 사회 의료 공백 해소에 앞장섰습니다.
전용 실습실과 기숙사를 마련하여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이후 간호대학으로 승격되어 혁신적인 보건 정책 연구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1911
[대학원 공식 조직화]
석·박사 학위 과정을 총괄하는 대학원(Graduate School)을 정식으로 조직했습니다. 단순 교육 기관을 넘어 전문 연구 중심 대학으로 도약하는 계기였습니다.
각 학과별로 산재해 있던 고등 학위 과정을 통합 관리하여 학술적 일관성을 확보했습니다.
연구 장학금 제도와 박사 학위 논문 심사 기준을 엄격히 정비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타 주와 해외의 우수한 연구 인력들이 오하이오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912
[빅 텐 컨퍼런스 가입]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스포츠 팀이 당시 서부 컨퍼런스였던 빅 텐(Big Ten)에 가입했습니다. 대학 스포츠의 명문으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미시간, 위스콘신 등 전통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학생들의 소속감을 고취하고 대학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했습니다.
이 가입은 훗날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가 미국 대학 스포츠의 중심이 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13
[델타 시그마 로 장 신설]
토론과 변론 능력을 중시하는 명예 협회인 델타 시그마 로 지부를 설립했습니다.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표현력을 키우는 학술 문화를 장려했습니다.
매년 학내외 토론 대회를 개최하여 리더십과 지적 능력을 겸비한 학생을 발굴했습니다.
인문 사회과학 분야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학구적인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대학 내 다양한 지성인 모임과 학술 단체로 이어졌습니다.
1914
[의과대학 종합 개편]
기존 의학 관련 학과들을 통합하여 현대적인 의과대학(College of Medicine)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오하이오주 보건 의료의 혁신을 이끄는 기관으로 거듭났습니다.
최신 해부학실과 임상 병동을 확충하여 실질적인 의료 기술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지역 의사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의료 현장의 최신 트렌드를 교육에 반영했습니다.
이후 의과대학은 다수의 노벨상 후보와 의료 기술 특허를 배출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1915
[미국 대학 협회(AAU) 가입]
북미 최고의 연구 중심 대학 연합인 미국 대학 협회(AAU)의 정식 회원교가 되었습니다. 학술적 역량과 연구 성과가 미국 내 최상위권임을 공인받은 것입니다.
선별된 소수의 명문 대학교만이 가입할 수 있는 AAU 회원권은 OSU의 자존심이 되었습니다.
국가 연구 기금 확보와 세계적인 학자 초빙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이 가입을 기점으로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는 글로벌 명문 대학으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16
[경영 및 언론대학 설립]
현대 산업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경영학과 언론학을 통합한 전문 단과대학을 세웠습니다. 비즈니스 리더와 미디어 전문가 양성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회계, 경제, 광고 등 실무적인 과목들을 개설하여 취업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지역 언론사와 연계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학생들의 실무 능력을 키웠습니다.
훗날 피셔 경영대학으로 발전하여 전 세계 경영 교육을 선도하게 됩니다.
1921
[오턴 홀 도서관 확장]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서적과 학술 자료를 수용하기 위해 오턴 홀 도서관을 대대적으로 확장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습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정교한 서고 시스템을 도입하여 도서 검색과 대출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희귀본과 고문서 보관을 위한 특수 서고를 마련하여 학술적 보존 가치를 지켰습니다.
캠퍼스 내에서 지식의 등불 역할을 하며 학생들의 가장 사랑받는 공부 장소가 되었습니다.
1922
[오하이오 스타디움 준공]
일명 '말굽 경기장(The Horseshoe)'으로 불리는 거대 경기장인 오하이오 스타디움이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스포츠 시설로 주목받았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웅장한 경기장은 벅아이스 풋볼의 전설이 시작된 곳입니다.
개장 경기에는 수만 명의 관중이 몰려들어 대학 스포츠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 10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요새가 되었습니다.
1924
[미러 레이크 대대적 정비]
캠퍼스의 낭만과 휴식의 상징인 미러 레이크(Mirror Lake) 구역을 정비하여 공원화했습니다. 학생들의 만남과 휴식을 위한 캠퍼스의 중심 명소가 되었습니다.
수변 공간을 정비하고 산책로를 조성하여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유지했습니다.
다양한 학내 축제와 전통 행사의 무대로 활용되며 학생들의 추억이 쌓여갔습니다.
캠퍼스의 허파 역할을 하며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1926
[제6대 총장 라이트마이어 취임]
조지 라이트마이어가 제6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톰슨 총장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는 대학의 연구 윤리와 학술적 엄밀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교수진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하여 내실 있는 성장을 꾀했습니다.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대학의 핵심 인력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신중한 리더십 덕분에 대학은 외적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내부 안정성을 유지했습니다.
1930
[극지 연구 센터의 기원]
남극과 북극 연구를 전담할 학술 조직의 전신이 설립되어 극한 환경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지구 과학 및 기후 변화 연구의 선도적 역할을 맡았습니다.
항공기를 이용한 극지 탐사 데이터를 수집하여 전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버드 극지 연구 센터(Byrd Polar Research Center)로 발전하여 독보적 위상을 구축했습니다.
해수면 상승과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인류의 지식 창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34
[오하이오 주립 대학 출판부]
학술적 성과를 전파하고 전문 서적을 발간하기 위한 대학교 공식 출판부를 설립했습니다. 대학의 지적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널과 단행본을 지속적으로 발행했습니다.
엄격한 편집과 심사 과정을 통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원고만을 선별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대학 출판부 중 하나로서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1935
[제시 오언스의 역사적 질주]
OSU 소속 육상 선수인 제시 오언스가 빅 텐 경기에서 45분 만에 4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단일 경기 성과 중 하나로 불립니다.
그는 인종 차별의 벽을 뚫고 오직 실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벅아이스의 영웅입니다.
이듬해 베를린 올림픽에서 4관왕에 오르며 나치의 인종 우월주의를 침묵시켰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제시 오언스 기념 경기장은 현재 육상 꿈나무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1940
[제7대 총장 베비스 부임]
하워드 랜디스 베비스가 제7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의 위기 경영을 수행했습니다. 전쟁 지원과 교육 지속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완수했습니다.
군사 훈련 프로그램을 캠퍼스에 도입하여 국가적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참전 후 복귀하는 군인들을 위한 특별 장학 제도와 거주 공간을 선제적으로 마련했습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대학은 전후 학생 수 폭증 시기에도 혼란 없이 운영될 수 있었습니다.
1942
[최초 풋볼 전국 챔피언]
폴 브라운 감독의 지휘 하에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가 사상 첫 풋볼 전국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벅아이스 풋볼 신화가 전국적으로 공인받은 기념비적 해입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오하이오 주민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대학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스포츠 문화를 정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벅아이스는 수많은 메이저 볼 경기와 전국 우승을 거머쥐는 강팀이 되었습니다.
1945
[G.I. 빌 기반 대팽창]
전쟁 영웅들의 복학을 지원하는 G.I. 빌 법안의 영향으로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캠퍼스 전역에 임시 숙소와 강의동이 세워졌습니다.
다양한 실전 경험을 가진 성인 학생들의 유입으로 학풍이 더욱 진취적으로 변했습니다.
주 정부는 급격한 성장에 맞춰 대규모 건축 예산을 긴급 편성하여 대학을 지원했습니다.
이 시기의 성장은 OSU가 오늘날 미국 최대 규모의 대학 중 하나가 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1950
[피셔 경영대학 명명 기반]
경영 교육의 현대화를 위해 대규모 기부와 전문 교수진 초빙을 시작했습니다. 기업 경영의 과학적 접근 방식을 교육 과정에 적극 도입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취업률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전문적인 MBA 과정을 정비하여 미 중서부 지역 비즈니스 교육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맥스 피셔의 기부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단독 단지로 거듭났습니다.
1951
[우디 헤이즈 감독 영입]
전설적인 코치 우디 헤이즈가 벅아이스 풋볼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OSU는 미국 대학 스포츠의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철저한 전략을 바탕으로 수많은 전국 우승과 빅 텐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와의 10년 전쟁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그의 카리스마와 열정은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의 정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54
[우디 헤이즈 첫 전국 우승]
부임 4년 만에 우디 헤이즈 감독이 팀을 전국 챔피언으로 이끌었습니다. 완벽한 시즌을 보내며 벅아이스 왕조의 화려한 서막을 알렸습니다.
강력한 수비와 효율적인 공격 전술로 미국 전역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로즈 볼(Rose Bowl) 승리를 통해 대학 풋볼 최고의 명가로 등극했습니다.
전국적인 스포츠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입학 경쟁률 상승에도 기여했습니다.
1956
[제8대 총장 포셋 취임]
노비스 포셋이 총장으로 취임하여 대대적인 물리적 확장과 학제 개편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지역 캠퍼스 시스템을 구축하여 교육 기회를 주 전역으로 넓혔습니다.
리마, 맨스필드 등지에 거점 캠퍼스를 세워 지역 주민들에게 고등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캠퍼스 내 거대 거주 타워인 모릴 타워와 링컨 타워를 건설하여 학생 수용력을 높였습니다.
그의 임기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가 메가 유니버시티로 진화하는 절정기였습니다.
1957
[맨스필드 캠퍼스 설립]
본교의 교육 자원을 지역으로 분산하기 위해 맨스필드 지역에 캠퍼스를 열었습니다. 지역 사회 밀착형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인근 지역 학생들에게 본교와 동일한 수준의 기초 교육 과정을 제공했습니다.
작은 규모의 학급 운영을 통해 교수와 학생 간의 긴밀한 교류를 가능케 했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우수 인재 배출의 핵심 창구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습니다.
1958
[뉴어크 캠퍼스 개교]
오하이오 중부 지역의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뉴어크 캠퍼스를 설립했습니다. 콜럼버스 본교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멀티 캠퍼스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본교로 전학하려는 학생들을 위한 탄탄한 기초 교육 과정을 운영했습니다.
최신 도서관과 연구 시설을 공유하며 소속감을 높이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지역 산업계와 연계한 전문 학위 과정을 신설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960
[리마 캠퍼스 공식 출범]
오하이오 서부 지역의 지성적 중심지가 될 리마 캠퍼스를 정식 가동했습니다. 주립 대학 시스템의 효율성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농업 및 간호학 전공을 특화하여 지역 맞춤형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지역 캠퍼스만의 유연한 학사 운영을 통해 성인 학습자들의 재교육을 도왔습니다.
본교의 명성과 지역의 요구를 완벽히 결합한 성공적인 확장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1963
[매리언 캠퍼스 설립]
매리언 지역에 다섯 번째 거점 캠퍼스를 세워 주립 대학 네트워크를 완성했습니다. 오하이오주 어디서든 OSU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소규모 정예 교육의 장점을 살려 인문학 교육의 질을 극대화했습니다.
지역 문화 행사와 연계하여 대학이 지역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본교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최신 연구 트렌드를 지역 학생들에게 전파했습니다.
1967
[모릴 타워 완공]
캠퍼스 서쪽에 거대한 주거 타워인 모릴 타워를 준공하여 수천 명의 학생을 수용했습니다. 캠퍼스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혁신적인 건축물이었습니다.
고층 아파트형 기숙사 시스템을 도입하여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했습니다.
올라프 테이(Olav Thorsen)의 설계로 현대적인 조형미와 실용성을 갖추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쾌적한 거주 환경과 아름다운 올렌탄지 강 조망을 선사했습니다.
1968
[아치 그리핀 입학]
전설적인 러닝백 아치 그리핀이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며 새로운 기록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는 대학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영웅이 되었습니다.
입학 초기부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팀의 주력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학업과 인성에서도 동료들의 귀감이 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입학은 벅아이스가 70년대 대학 풋볼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70
[개교 100주년 및 시련]
설립 1세기를 맞이하여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렸으나 동시에 학생들의 격렬한 반전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성장의 기쁨과 시대적 아픔이 교차한 해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로 인해 캠퍼스가 한때 폐쇄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대학의 민주적 운영과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강화되었습니다.
지난 100년의 영광을 되새기며 다음 100년을 향한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2
[제9대 총장 이나슨 취임]
해롤드 이나슨이 총장으로 부임하여 70년대의 사회적 격변기를 조율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연구 윤리와 평화적 소통을 강조하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시위 이후 흐트러진 학내 분위기를 쇄신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사회적 책임감을 갖춘 지성인 육성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대학은 내실을 다지며 연구 중심의 질적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1974
[아치 그리핀 첫 하이즈먼]
아치 그리핀이 대학 풋볼 최고의 영예인 하이즈먼 트로피를 처음으로 수상했습니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스포츠 스타로 우뚝 선 해였습니다.
시즌 내내 경이로운 터치다운과 전진 거리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의 스포츠 명문 이미지를 전국적으로 각인시켰습니다.
그의 겸손한 태도와 투혼은 후배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1975
[유일무이 하이즈먼 2회 수상]
아치 그리핀이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하이즈먼 트로피를 두 번 연속 수상했습니다. 미국 대학 스포츠 역사에 영원히 남을 대기록입니다.
2년 연속 최고 선수의 자리를 지키며 벅아이스의 자존심을 드높였습니다.
이 기록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전설적인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활약 덕분에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는 풋볼 명문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습니다.
1981
[제10대 총장 제닝스 취임]
에드워드 제닝스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연구 역량 강화와 기부금 유치에 혁신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현대적인 대학 경영 모델을 적극 도입했습니다.
대규모 캠퍼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노후화된 시설을 현대화했습니다.
의과대학과 연계한 암 센터 설립 등 고부가가치 연구 분야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효율적인 예산 관리와 적극적인 홍보로 대학의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제임스 암 센터 설립]
전 세계적인 암 연구의 메카가 될 제임스 암 센터(The James)를 설립했습니다. 치료와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혁신적인 의료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아서 G. 제임스 박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최첨단 치료 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로부터 지정받은 최고 수준의 연구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1989
[벡스너 예술 센터 개관]
현대 예술의 혁신적인 실험장이 될 벡스너 예술 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독특한 해체주의 건축 양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지어졌으며 캠퍼스 내 가장 전위적인 공간으로 불립니다.
시각 예술, 공연,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현대 예술을 대중에게 소개했습니다.
대학이 단순한 학업 공간을 넘어 글로벌 문화 예술의 허브임을 증명했습니다.
1990
[고든 기 총장 1차 임기]
고든 기가 제11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열정적인 에너지로 대학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나비넥타이 상징과 함께 소통하는 총장의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주 정부와의 협상력을 발휘하여 역대 최대 규모의 교육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연구원들의 복지와 환경 개선에 힘써 우수 교수진의 외부 유출을 방지했습니다.
그의 1차 임기 동안 OSU는 미국 내 공립 대학 순위에서 상위권으로 뛰어올랐습니다.
1998
[쇼텐스타인 센터 준공]
농구와 아이스하키 팀의 전용 홈 경기장인 쇼텐스타인 센터를 완공했습니다. 대규모 실내 공연과 스포츠 경기를 수용할 수 있는 복합 문화 시설입니다.
전통적인 세인트 존 아레나를 대체하여 최첨단 관람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인 아레나는 벅아이 농구의 뜨거운 열기를 담아내는 거대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국제 이벤트와 공연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제12대 총장 커원 취임]
윌리엄 커원이 총장으로 취임하여 대학의 연구 다양성과 인재 영입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특히 소수계 학생들의 교육 기회 확대에 헌신했습니다.
학내 다양성 위원회를 강화하여 평등하고 포용적인 캠퍼스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정보 통신 기술을 교육 과정에 적극 접목하여 디지털 캠퍼스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의 온화한 리더십 아래 대학 구성원들 간의 화합과 신뢰가 돈독해졌습니다.
2000
[유니버시티 디스트릭트 프로젝트]
대학 주변 상권과 거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대규모 도시 재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와 지역 사회가 공생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캠퍼스 타운을 조성했습니다.
노후된 건물을 철거하고 학생들을 위한 복합 상업 공간인 게이트웨이를 건설했습니다.
보안과 조명 시설을 확충하여 밤낮으로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가 정비 사업의 모범 사례로 꼽히며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2002
[제13대 총장 홀브룩 부임]
캐런 홀브룩이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녀는 학술 연구의 수월성을 목표로 강력한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대규모 연구 기금 확충에 성공했습니다.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다변화하여 학생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습니다.
여성 리더십의 표본으로서 학내 유리천장을 깨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3
[풋볼 전국 우승 탈환]
짐 트레슬 감독의 지휘 하에 34년 만에 풋볼 전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피에스타 볼에서 마이애미 대학을 꺾는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2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승리를 확정 지으며 전국을 벅아이스 열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승 직후 오하이오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대학의 위상이 재평가받았습니다.
짐 트레슬 감독은 특유의 차분한 리더십으로 팀을 단숨에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습니다.
2007
[고든 기 총장 2차 임기 시작]
고든 기가 다시 한번 총장으로 선임되어 대학의 제2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의 재정 건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역대급 규모의 모금 캠페인을 성공시켜 장학금과 연구 지원금을 대폭 늘렸습니다.
캠퍼스 내 학생 편의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생활 만족도를 높였습니다.
그의 활발한 대외 활동 덕분에 OSU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2009
[톰슨 도서관 리노베이션 완료]
캠퍼스의 심장부인 톰슨 도서관이 수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최첨단 디지털 도서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고전적 아름다움과 현대적 편의성이 결합된 건축물입니다.
중앙 통창을 통해 웅장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열람실을 마련했습니다.
방대한 장서를 디지털화하여 학생들의 정보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캠퍼스 중앙 광장(The Oval)과 어우러져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2012
[학기 시스템 대전환]
수십 년간 유지해온 쿼터제를 폐지하고 세메스터(학기제) 시스템으로 전격 전환했습니다. 타 대학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학생들의 학습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수천 개의 커리큘럼을 학기제에 맞춰 재편하는 거대한 학사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방학 기간을 조정하여 학생들의 인턴십과 대외 활동 참여 기회를 넓혔습니다.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밀한 상담 시스템을 운영하여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습니다.
2013
[펠로토니아 기부 기록 경신]
암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한 자전거 라이딩 행사인 펠로토니아(Pelotonia)가 사상 최대 기부금을 모았습니다. 공동체의 힘으로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는 OSU만의 문화입니다.
모금된 금액의 100%를 암 연구에 직접 투입하는 투명한 운영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학생, 교수, 지역 주민이 하나 되어 생명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확보된 기금은 혁신적인 암 치료법 개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2014
[제15대 총장 드레이크 취임]
마이클 드레이크가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공공 가치와 학비 절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합리적인 가격의 명문대' 비전을 제시하며 큰 지지를 얻었습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대폭 확충하고 학비 인상을 억제했습니다.
의학 분야의 탁월한 배경을 바탕으로 벡스너 의료센터의 내실을 다졌습니다.
대학의 사회적 사명을 강조하며 지역 사회와의 협력 프로젝트를 강화했습니다.
2015
[초대 CFP 챔피언 등극]
어번 마이어 감독의 지휘 아래 사상 최초로 도입된 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CFP)에서 우승했습니다. 전국 최강의 지위를 다시 한번 증명한 쾌거였습니다.
쿼터백 부상 등 수많은 악재를 뚫고 오리건 대학을 꺾으며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궜습니다.
우승컵을 들고 캠퍼스로 복귀하는 벅아이스를 환영하기 위해 수만 명이 운집했습니다.
어번 마이어 감독은 이 우승으로 벅아이스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등극했습니다.
2017
[프레임워크 2.0 비전 수립]
캠퍼스의 미래 성장을 위한 장기적인 시설 확장 및 환경 개선 로드맵을 수립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지능형 캠퍼스 구축을 지향했습니다.
강의실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고 산학 협력용 연구 동을 대거 확충했습니다.
친환경 건축 공법을 도입하여 탄소 중립 캠퍼스를 만드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미래 교육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간 혁신안을 포함했습니다.
2020
[설립 150주년 기념]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설립 15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를 기념하고 미래를 선포했습니다. 한 세기 반 동안의 학문적 성취를 집대성한 역사적 해입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여 뜻깊은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지난 150년의 기록을 담은 타임캡슐을 제작하고 미래 세대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이 기념비적 해는 OSU가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제16대 총장 존슨 취임]
크리스티나 존슨이 제16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팬데믹 위기 극복과 혁신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과학과 행정 능력을 겸비한 리더로서 기대를 모았습니다.
캠퍼스 방역과 원격 교육 시스템 구축을 성공적으로 관리하여 교육 공백을 최소화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솔루션 연구를 대학의 핵심 아젠다로 설정했습니다.
인적 자원 투자와 연구비 확보를 통해 대학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2022
[프레임워크 3.0 마스터 플랜]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대비한 캠퍼스 혁신 계획인 프레임워크 3.0을 발표했습니다. 연구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학생들의 복지를 강화하는 공간 재창조를 지향했습니다.
의료 시설 확충과 지역 협력 허브 구축을 최우선 순위로 설정했습니다.
보행자 중심의 캠퍼스 환경을 더욱 확장하여 친환경적 야외 활동 공간을 넓혔습니다.
디지털 혁신과 물리적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스마트 캠퍼스의 완성형을 제시했습니다.
2024
[제17대 총장 카터 취임]
해군 제독 출신의 테드 카터가 제17대 총장으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조직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OSU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취임사에서 학문적 정직성과 학생 복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3대 핵심 가치로 내걸었습니다.
대학 내 소통 문화를 강화하여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높이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변화하는 글로벌 교육 환경에 맞춰 대학의 경쟁력을 최상위권으로 유지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