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로앨토 연구소
IT 연구소, 기술 혁신, 컴퓨팅, 실리콘밸리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8- 12:14:26
팰로앨토 연구소(PARC)는 현대 디지털 문명의 청사진을 그려낸 전설적인 혁신의 요람입니다. 1970년 제록스의 지원 아래 설립된 이래, 이곳은 레이저 프린팅부터 이더넷, 개인용 컴퓨터의 시초인 알토,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에 이르기까지 전산학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갔습니다. 비록 제록스가 이 위대한 발명들을 즉각적인 상업적 성공으로 완벽히 연결하지는 못했으나, 이곳에서 탄생한 기술들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연구소는 SRI 인터내셔널의 일원이 되어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인공지능 등 다가올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기술 여정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1969
[연구소 설립을 위한 첫 논의]
제록스의 임원인 잭 골드만이 물리학자 조지 페이크를 만나 새로운 연구 센터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복사기 시장을 넘어 미래 정보 기술의 중심지가 될 기관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록스의 수석 과학자였던 잭 골드만은 뉴욕 본사와 떨어진 서부 지역에 혁신적인 연구소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그는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의 조지 페이크 박사에게 센터 운영의 전권을 약속하며 합류를 권유했습니다.
이 논의는 훗날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될 연구소가 탄생하는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70
[CSL 관리자 밥 테일러 합류]
ARPA에서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을 주도했던 밥 테일러가 컴퓨터 과학 연구소의 부소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독특한 연구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밥 테일러는 NASA와 ARPA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천재적인 인재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는 정기적인 세미나와 자유로운 토론을 장려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기술로 구체화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CSL은 이더넷과 GUI 등 세상을 바꿀 주요 기술들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팰로앨토 연구소 공식 개소]
제록스 팰로앨토 연구소가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연구단지 내에서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뉴욕 본사와 3,000마일 떨어진 지리적 이점 덕분에 연구원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혁신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조지 페이크가 초대 연구소장을 맡아 세계적인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보의 건축가들'이라는 슬로건 아래 미래의 사무실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핵심 임무로 삼았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인접한 위치 덕분에 우수한 대학원생들과의 활발한 학술 교류가 가능해졌습니다.
1971
[레이저 프린터의 세계 최초 발명]
연구원 게리 스타크웨더가 기존 복사 기술에 레이저를 결합하여 세계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를 발명했습니다. 이는 인쇄 방식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게리 스타크웨더는 제록스의 로체스터 공장에서 아이디어를 묵살당하자 PARC로 옮겨와 단기간에 시제품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제록스 7000 복사기를 개조하여 컴퓨터 신호를 받아 문자를 인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기술은 제록스에게 수십 년간 수십억 달러의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핵심 캐시카우가 되었습니다.
[네트워크 인쇄 시스템의 시초]
연구소 내부에서 컴퓨터 네트워크와 레이저 프린터를 연결한 최초의 인쇄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안의 여러 사용자가 하나의 프린터를 공유하는 현대적인 오피스 환경이 실현되었습니다.
단순한 기계적 인쇄를 넘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문서를 전송하고 출력하는 과정을 통합했습니다.
이 실험적인 시스템은 향후 분산 컴퓨팅 환경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레이저 프린팅 기술의 초기 안정성을 확보하며 상용화의 기반을 닦은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제록스 6500 컬러 복사기 출시]
연구소의 기술적 지원을 바탕으로 제록스의 첫 번째 상용 컬러 복사기인 6500 모델이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흑백 일색이던 사무 시장에 컬러 문서의 대중화를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이 복사기는 PARC에서 개발된 정밀한 색상 제어 기술과 하드웨어 노하우가 집약된 제품이었습니다.
전문 인쇄소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컬러 복사를 가능하게 하여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록스가 컬러 그래픽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확보하는 데 기여한 중요한 제품이었습니다.
1972
[스몰토크 언어의 탄생]
앨런 케이가 주도하는 연구 그룹이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몰토크(Smalltalk-72)를 개발했습니다. 컴퓨터를 더 직관적이고 다루기 쉬운 도구로 만들기 위한 언어적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스몰토크는 데이터와 동작을 하나의 객체로 묶는 현대적인 소프트웨어 설계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아이들도 쉽게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언어는 훗날 GUI 시스템 구축의 핵심 언어가 되었습니다.
자바(Java)나 C++ 등 현대의 수많은 인기 프로그래밍 언어들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이나북 개념의 정립]
앨런 케이가 휴대 가능한 개인용 컴퓨터의 이상적인 모습인 '다이나북' 컨셉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노트북과 태블릿 컴퓨터의 정확한 청사진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연령의 사용자가 창의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휴대용 장치를 꿈꿨습니다.
이 철학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개인용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정의했습니다.
다이나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곧 알토(Alto) 컴퓨터 개발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버틀러 램슨의 역사적 메모]
버틀러 램슨이 개인용 컴퓨터 제작의 필요성을 역설한 '왜 알토인가?'라는 제목의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이 문서는 연구소 내 인적, 물적 자원을 알토 개발에 집중시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램슨은 대형 컴퓨터를 나누어 쓰는 대신 각자가 독립적인 컴퓨팅 파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비전은 시분할 방식에서 개인화 방식으로 컴퓨터 역사의 중심축을 이동시켰습니다.
이 메모는 현대적인 워크스테이션과 PC 탄생을 알리는 선언문과도 같이 평가받습니다.
[알토용 세로형 모니터 설계]
실제 종이 문서와 동일한 비율로 정보를 보여줄 수 있는 세로형 초고해상도 모니터가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전자적인 방법으로 완벽한 문서를 편집하고 확인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습니다.
당시 가로형 TV 기반 모니터가 주류였던 상황에서 파격적인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606x808 픽셀의 비트맵 디스플레이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정밀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훗날 매킨토시와 윈도우의 데스크탑 화면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1973
[비트블릿 전송 기술의 완성]
그래픽 데이터를 메모리 상에서 빠르게 이동시키는 비트블릿(BitBLT) 명령어가 구현되었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거나 창을 이동시키는 그래픽 효과가 부드럽게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댄 인걸스가 주도하여 개발한 이 기술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배경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그림을 겹쳐 보여주는 등의 복잡한 처리가 가능해졌습니다.
현대 모든 운영체제의 그래픽 엔진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알고리즘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 알토의 첫 등장]
현대적인 개인용 컴퓨터의 시초로 불리는 제록스 알토(Alto)가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마우스와 그래픽 UI, 그리고 네트워크 연결 기능까지 갖춘 시대를 앞서간 발명품이었습니다.
알토는 비트맵 그래픽 시스템을 사용하여 화면 위의 점 하나하나를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책상 밑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제작되어 진정한 의미의 개인 전용 워크스테이션 시대를 열었습니다.
제록스는 이 제품의 시장성을 과소평가하여 일반 대중에게 판매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더넷 기술의 공식 제안]
로버트 멧칼프가 컴퓨터들을 고속으로 연결하는 통신 규약인 이더넷(Ethernet)에 대한 구상을 메모로 정리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전 세계 네트워크와 와이파이 기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멧칼프는 물리적인 전파 매질을 뜻하는 '에테르(Ether)'에서 이름을 따와 네트워크 표준을 제안했습니다.
알토 컴퓨터들 사이에서 데이터를 신속하게 주고받기 위한 해결책으로 처음 고안되었습니다.
단일 케이블에 여러 장치를 연결하는 방식은 비용 효율성과 확장성 면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했습니다.
1974
[WYSIWYG 편집기 '브라보' 개발]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 인쇄되는 문서 편집기인 '브라보'가 찰스 시모니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고도 문서의 형태를 직관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사용자가 화면에서 보는 폰트와 크기가 그대로 종이에 출력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훗날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개발에 참여한 찰스 시모니의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전문가만이 하던 문서 조판 업무를 일반 사무직 직원들이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잘라내기와 붙여넣기의 탄생]
래리 테슬러가 주도한 '집시(Gypsy)' 프로젝트를 통해 잘라내기, 복사하기, 붙여넣기 기능이 처음으로 구현되었습니다. 현대인이 컴퓨터를 사용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핵심 기능이 PARC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마우스를 사용하여 텍스트 블록을 지정하고 이동시키는 사용자 경험을 정립했습니다.
기존의 복잡한 텍스트 수정 명령어를 대체하여 누구나 쉽게 문서를 편집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이후 모든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터넷 프로토콜 PUP의 개발]
다양한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주는 통신 프로토콜인 PUP(PARC Universal Packet)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전 세계 인터넷을 지탱하는 TCP/IP 규약에 지대한 영향을 준 선구적인 기술입니다.
서로 다른 하드웨어 망을 가로질러 데이터를 안전하게 전송하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이더넷의 물리적 연결을 넘어선 논리적인 인터넷 통신 구조를 실험하고 검증했습니다.
오늘날 네트워크 계층 구조의 초기 모델을 제시한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과입니다.
[슈퍼페인트 프로젝트의 에미상 수상]
리처드 쇼프가 개발한 디지털 페인트 시스템 '슈퍼페인트'가 방송 기술에 기여한 공로로 에미상을 받았습니다. 컴퓨터를 활용한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영상 편집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최초의 고해상도 컬러 프레임 버퍼 기술을 적용하여 실시간 영상 합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방송계에서 기상 캐스터의 배경을 합성하는 등 실용적인 영상 효과 제작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훗날 픽사(Pixar) 창립 멤버들이 활동하는 발판이 되었으며 디지털 영상 산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975
[WIMP 인터페이스의 정립]
창, 아이콘, 메뉴, 포인터(WIMP)를 핵심으로 하는 현대적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키보드 타이핑 없이 마우스 클릭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하는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용자가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창이 겹치는 레이아웃을 도입했습니다.
각 기능을 직관적인 그림 아이콘으로 표현하여 기계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습니다.
이 인터페이스는 애플의 리사와 매킨토시를 거쳐 현재 모든 스마트 기기의 표준 인터페이스가 되었습니다.
[비정질 실리콘 응용 연구 시작]
반도체 소재인 비정질 실리콘(a-Si)을 활용한 다양한 응용 기술 연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평판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등의 핵심 기술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유연한 기판 위에 회로를 인쇄하거나 넓은 면적의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을 선구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이 연구는 현재 LCD와 OLED 패널의 구동 소자인 박막 트랜지스터(TFT) 기술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컴퓨터 본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부품 소재 분야에서도 연구소의 영향력을 입증한 사례입니다.
1976
[스몰토크-76 버전의 완성]
기존 스몰토크 언어를 더욱 고도화하여 더 복잡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구현할 수 있는 스몰토크-76 버전을 완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알토 시스템의 실용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클래스 계승(Inheritance)과 같은 현대 객체 지향 언어의 필수 개념들이 이때 정립되었습니다.
운영체제 자체가 이 언어로 작성되어 하드웨어와의 유기적인 통합이 가능해졌습니다.
연구원들은 이 버전을 사용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GUI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계했습니다.
1977
[제록스 9700 레이저 프린터 출시]
연구소의 레이저 프린팅 기술이 집약된 최초의 상용화 제품 제록스 9700이 출시되었습니다. 분당 120매라는 경이로운 속도로 대량 인쇄 시장을 장악하며 제록스의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연구실의 시제품을 뛰어넘어 가혹한 사무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과 성능을 갖췄습니다.
이 제품은 출시 이후 20년 이상 제록스의 가장 강력한 수익 모델 중 하나로 군림했습니다.
전산실에서 대량의 보고서를 출력하는 용도로 전 세계 금융 및 공공기관에 보급되었습니다.
[알토 II 대량 생산 개시]
연구소 내부에서만 쓰이던 알토 컴퓨터의 개량형인 알토 II가 약 2,000대 규모로 생산되었습니다. 비록 시판되지는 않았으나 주요 정부 기관과 대학교에 배치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백악관과 주요 의회 사무실에 배치되어 전자 문서 처리의 효율성을 증명했습니다.
스탠퍼드와 MIT 등 명문 공과대학교에 기증되어 수많은 미래 공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광범위한 배치는 훗날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밥 테일러 소장 부임]
밥 테일러가 컴퓨터 과학 연구소(CSL)의 전담 소장으로 부임하며 연구소의 황금기를 주도했습니다. 인재들 사이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그의 경영 철학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각 분야의 최고 천재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제록스 본사와의 갈등 속에서도 연구원들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보호막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알토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이더넷 표준화가 급물살을 탔습니다.
1978
[웜 프로그램의 세계 최초 개발]
네트워크를 타고 스스로 복제되어 이동하는 '웜(Worm)' 프로그램이 연구소 내부 네트워크에서 처음 실험되었습니다. 이는 분산 컴퓨팅 연구의 일환이었으나 보안 분야에서는 바이러스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유휴 컴퓨터들의 계산 능력을 모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통제 범위를 벗어나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키는 부작용을 통해 보안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이후 네트워크 보안 연구와 안티바이러스 기술 개발의 시발점이 된 중요한 실험이었습니다.
1979
[스티브 잡스의 역사적인 방문]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연구소를 방문하여 알토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 방문은 애플의 리사와 매킨토시 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PC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습니다.
잡스는 제록스 주식을 매각하는 조건으로 연구소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그는 GUI를 보자마자 '제록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위에 앉아있으면서도 가치를 모른다'며 극찬했습니다.
이후 애플은 연구소의 핵심 인력들을 대거 영입하여 GUI의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1980
[이더넷 표준화를 위한 DIX 연맹]
제록스가 디지털 이큅먼트(DEC), 인텔과 협력하여 이더넷 기술을 업계 표준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를 통해 폐쇄적인 기술이 아닌 전 세계 모든 컴퓨터가 소통할 수 있는 개방형 표준이 확립되었습니다.
세 거대 IT 기업의 협력은 이더넷이 경쟁 기술들을 물리치고 표준이 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0Mbps 속도의 데이터 전송 규격을 확립하여 안정적인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오피스와 가정에서 쓰이는 유무선 네트워크 인프라의 직접적인 근간이 되었습니다.
[스몰토크-80의 외부 공개]
연구소의 전유물이었던 스몰토크 언어를 스몰토크-80이라는 이름으로 외부 개발자들에게 정식 공개했습니다.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애플, HP,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 주요 기업들이 이 언어를 도입하여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재사용성과 유지보수 효율성을 극대화한 이 언어의 설계 철학은 업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사용자가 직접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용 소프트웨어 시대가 열렸습니다.
1981
[제록스 스타 시스템 출시]
알토의 상용화 버전인 제록스 스타(Xerox Star 8010) 정보 시스템이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일반 사무용으로 설계된 세계 최초의 GUI 기반 상용 컴퓨터였으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시장에서는 고전했습니다.
아이콘, 데스크탑 메타포, 폴더 구조 등 현대 운영체제의 모든 요소를 완벽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출시가가 대당 수만 달러에 달해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비싼 프리미엄 기기였습니다.
상업적 실패와는 별개로 향후 등장할 모든 개인용 운영체제의 디자인 교과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데스크탑 메타포의 완성]
컴퓨터 화면을 가상의 책상으로 간주하고 문서와 도구를 배치하는 '데스크탑 메타포' 개념이 완성되었습니다. 사용자가 복잡한 시스템 구조를 몰라도 익숙한 사무 도구의 개념으로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일을 폴더에 넣거나 휴지통에 버리는 직관적인 시각 효과를 운영체제 전반에 도입했습니다.
이 개념은 학습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컴퓨터의 대중화에 기여한 최고의 인터페이스 혁신으로 꼽힙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홈 화면 구조 역시 이 메타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1982
[어도비 시스템즈의 창립]
연구원 존 워녹과 찰스 게쉬케가 연구소를 떠나 어도비(Adobe)를 설립했습니다. 연구소에서 개발했던 페이지 기술을 바탕으로 그래픽 및 출판 산업의 거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록스가 자신들의 그래픽 출력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소극적이자 직접 창업에 나선 사례입니다.
그들은 PARC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기술을 개발하여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는 연구소의 핵심 인력이 외부에서 더 큰 혁신을 완성한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됩니다.
[이더넷 기반 복사기 출시]
제록스의 10 시리즈 복사기에 이더넷 인터페이스가 기본 탑재되어 출시되었습니다. 연구소의 네트워크 기술이 제록스의 주력 복사기 제품군에 본격적으로 융합되기 시작했습니다.
복사기가 단순한 독립 장치가 아니라 사무실 네트워크의 한 노드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원격으로 복사기 상태를 모니터링하거나 네트워크 스캔을 하는 등 스마트 오피스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제록스가 복사기 제조사에서 '도큐먼트 컴퍼니'로 거듭나는 기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83
[인터프레스 출력 언어 개발]
장치에 구애받지 않고 고해상도 그래픽을 출력할 수 있는 언어인 인터프레스(Interpress)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훗날 전자 출판과 웹 그래픽 전송의 표준이 된 기술들의 선구적인 모델입니다.
복잡한 수식과 그림을 어떤 프린터에서도 동일한 품질로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탄생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으며 상호 경쟁하며 기술 수준을 높였습니다.
디지털 문서의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소의 집념이 담긴 성과물입니다.
[광학식 마우스 성능 개선]
기계적인 구슬 대신 빛의 반사를 이용해 움직임을 감지하는 광학식 마우스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마우스의 내구성과 정밀도를 높여 실용적인 입력 장치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했습니다.
기존 마우스의 고질적인 문제인 먼지 유입과 오작동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설계였습니다.
연구원들이 사무실에서 더 쾌적하게 알토와 스타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광학식 마우스의 초창기 형태를 정립한 연구입니다.
1984
[애플 매킨토시의 성공적 출시]
연구소의 기술에서 큰 영감을 얻은 애플의 매킨토시가 출시되어 대중적인 GUI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는 PARC의 혁신이 어떻게 경쟁사를 통해 시장에 안착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제록스 스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GUI를 제공하여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매킨토시의 운영체제 디자인은 PARC 연구원들이 설계한 많은 개념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이 사건은 제록스 본사에게 기술 관리와 상용화 타이밍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뼈아픈 교훈이 되었습니다.
1986
[VLSI 설계 자동화 기술 발전]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를 더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자동화 도구와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반도체 설계의 복잡성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더 강력한 프로세서 탄생의 길을 닦았습니다.
린 콘웨이와 카버 미드가 공동 집필한 VLSI 설계 교재는 전 세계 대학의 표준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수작업으로 하던 회로 설계를 소프트웨어로 자동화하여 반도체 생산 속도를 높였습니다.
이 기술은 현대 모든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메모리 칩을 만드는 공정의 기초 원리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 듀얼 빔 레이저 개발]
하나의 광원에서 두 개의 레이저 빔을 동시에 쏘는 듀얼 빔 레이저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인쇄 속도를 두 배로 높이면서도 해상도는 유지하는 고성능 인쇄 시스템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대량 인쇄 장비의 크기를 줄이면서 성능은 극대화하는 혁신적인 광학 설계를 적용했습니다.
이후 출시된 제록스의 고사양 디지털 인쇄기들에 이 기술이 탑재되어 시장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레이저 응용 분야에서 연구소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성과입니다.
1987
[인터리스프 프로그래밍의 인정]
연구소에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리스프 언어인 인터리스프(InterLisp)가 학술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았습니다. 인공지능 연구와 복잡한 시스템 구축에 최적화된 개발 환경을 제시했습니다.
강력한 디버깅 도구와 라이브러리를 갖추어 당시 개발자들에게 꿈의 환경으로 불렸습니다.
ACM 등 주요 컴퓨터 학회로부터 소프트웨어 시스템상을 수상하며 그 우수성을 공인받았습니다.
미래형 소프트웨어 공학의 방법론을 선구적으로 실험하고 성공시킨 사례 중 하나입니다.
1988
[유비쿼터스 컴퓨팅 개념 제창]
마크 와이저가 '사라지는 컴퓨터'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을 제창했습니다. 컴퓨터가 도처에 존재하되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스며드는 미래 사회를 예견했습니다.
모든 사물에 컴퓨팅 능력이 깃들어 인간의 삶을 보조하는 사물인터넷(IoT)의 시초가 된 이론입니다.
와이저 박사는 '21세기를 위한 컴퓨터'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통해 이 비전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개인용 PC 시대를 넘어 포스트 PC 시대의 핵심 철학을 연구소에서 선제적으로 정의한 것입니다.
1990
[전자 칠판 '라이브보드' 개발]
대형 터치스크린과 네트워크 기능을 결합한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인 '라이브보드'를 개발했습니다. 원격 회의와 협업을 위한 미래형 회의실 환경을 실제 하드웨어로 구현해냈습니다.
여러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화면에 글을 쓰고 데이터를 조작하는 혁신적인 협업 툴이었습니다.
전자 칠판 시장의 기술적 표준을 제시하며 다양한 상업용 제품 탄생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공간을 초월한 지식 공유를 실현하려는 연구소의 의지가 담긴 발명품입니다.
1991
[모바일 컴퓨터 '파크탭' 제작]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는 소형 무선 컴퓨팅 기기인 '파크탭(PARCTab)'을 제작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PDA의 초기 프로토타입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적외선 통신을 통해 연구소 내 서버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능을 갖췄습니다.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하여 근처의 기기들과 연동되는 유비쿼터스 환경을 실험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무선 네트워크 환경에서 개인용 단말기의 활용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검증한 중요한 실험이었습니다.
1992
[관점 지향 프로그래밍 창안]
프로그램의 핵심 기능과 공통 관심사를 분리하여 개발하는 관점 지향 프로그래밍(AOP) 방법론을 창안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복잡성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재사용성을 높이는 새로운 도구가 마련되었습니다.
보안, 로깅, 트랜잭션 관리와 같은 반복적인 코드를 핵심 로직과 분리하여 관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방법론은 이후 자바 진영의 'AspectJ' 등으로 발전하여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구축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소의 소프트웨어 공학적 성취입니다.
1994
[원격 프로시저 호출 기술 인정]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른 컴퓨터의 기능을 마치 내 컴퓨터처럼 사용하는 RPC(Remote Procedure Call) 기술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분산 시스템과 클라우드 컴퓨팅의 핵심 통신 기술입니다.
복잡한 네트워크 통신 절차를 추상화하여 개발자들이 손쉽게 서버-클라이언트 앱을 짜게 도왔습니다.
ACM으로부터 소프트웨어 시스템상을 수상하며 기술의 혁신성을 다시 한번 공인받았습니다.
현재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모든 웹 서비스와 모바일 앱 통신의 기반 기술이 이곳에서 성숙했습니다.
1995
[차세대 인터넷 IPv6 연구]
현재 인터넷 주소 체계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차세대 인터넷 규약인 IPv6의 플로우 레이블링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네트워크 장치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선구적 연구였습니다.
데이터의 흐름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거나 품질을 관리하는 기술적 토대를 연구했습니다.
미래 인터넷 인프라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 표준화 과정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단순한 단말 개발을 넘어 인터넷 전체의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데에도 깊이 관여한 사례입니다.
1996
[청자색 레이저 다이오드 연구]
고밀도 데이터 저장을 가능하게 하는 청자색 레이저 다이오드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냈습니다. 이는 훗날 블루레이 디스크와 초고해상도 광학 인쇄 장치의 핵심 부품으로 발전했습니다.
짧은 파장의 레이저를 제어하여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정보를 기록하는 기술을 탐구했습니다.
반도체 레이저 공정 분야에서 연구소가 보유한 원천 기술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이후 차세대 저장 매체와 통신 장비 분야에서 다양한 기술 로열티 수익을 창출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7
[데이터 글리프 기술의 발명]
이미지나 텍스트 속에 보이지 않게 데이터를 숨겨 인쇄하는 '데이터 글리프(Data Glyphs)' 기술을 발명했습니다. 이는 문서의 보안과 디지털 워터마킹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혁신으로 평가받습니다.
미세한 사선 무늬를 조합하여 복사 시에도 데이터가 보존되도록 설계된 고도의 인쇄 기술입니다.
문서의 위변조를 방지하거나 종이 문서에 디지털 링크를 삽입하는 용도로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아날로그 문서와 디지털 정보를 하나로 결합하려는 연구소의 독창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발명입니다.
1999
[전자 종이 제품화를 위한 협력]
글로벌 제조 기업인 3M과 손잡고 연구소가 개발한 전자 종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종이처럼 얇고 유연하면서도 내용을 바꿀 수 있는 디스플레이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연구소는 초기 '자이리콘(Gyricon)'이라는 구슬 기반의 전자 종이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춘 3M과의 협력을 통해 가격 경쟁력과 품질을 확보하려 노력했습니다.
비록 시장 선점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현재 전자책 리더기 시장의 기술적 아이디어를 선구적으로 제시했습니다.
2001
[클린 워터 기술 프로젝트 착수]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연구 분야로 깨끗한 물을 생성하고 정화하는 기술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IT를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환경 및 에너지 기술로 연구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나노 기술과 유체 역학을 결합하여 저에너지 고효율의 정수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훗날 PARC가 클린테크(Cleantech) 분야의 강자로 떠오르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기술을 통해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려는 연구소의 공익적인 연구 철학이 반영된 사례입니다.
2002
[제록스의 독립 자회사로 분사]
제록스 내부의 한 부서였던 연구소가 독립 법인 형태의 자회사로 정식 분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록스뿐만 아니라 외부의 다양한 상업 고객들을 위한 연구 개발 대행이 가능해졌습니다.
독자적인 경영 체제를 갖추고 연구소의 명칭도 'Xerox PARC'에서 'PARC'로 단순화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더 유연한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외부 자본 유치와 기술 라이선싱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산학 위주의 연구에서 소재, 에너지, 바이오 등 다학제적 연구 기관으로 변모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2004
[광통신 스위칭 기술의 혁신]
데이터 센터의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새로운 광 스위칭 소자 기술을 발표했습니다. 폭증하는 인터넷 데이터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물리 계층의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기존의 전기적 스위칭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빛의 경로를 직접 제어하는 소자를 연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 장비의 크기와 발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통신 인프라 기업들과의 활발한 공동 연구를 통해 차세대 인터넷 장비 개발을 선도했습니다.
2005
[클린테크 혁신 프로그램 런칭]
친환경 에너지 및 환경 기술 연구를 전담하는 '클린테크 혁신 프로그램'을 공식 런칭했습니다. 태양광 발전 효율 개선과 스마트 그리드 등 미래 에너지 인프라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박사급 연구원들로 구성된 전담 팀을 꾸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기술적 해법을 모색했습니다.
전문화된 광학 연구 역량을 태양광 집광 기술에 적용하여 에너지 생산 단가를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부 기관 및 에너지 대기업들과의 대규모 협력 과제를 수행하며 연구소의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2007
[태양광 벤처 '솔포커스' 분사]
연구소에서 개발한 고효율 태양광 집광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솔포커스(SolFocus)를 스핀오프시켰습니다. 연구소의 아이디어가 외부 자본을 통해 시장에 안착하는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일반 패널보다 훨씬 좁은 면적에 빛을 모아 전기를 생산하는 독창적인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분사 이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실제 상업용 발전 단지 구축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드웨어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보육 및 사업화 능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한 사례입니다.
2009
[콘텐츠 중심 네트워크 프로젝트]
데이터의 위치가 아닌 콘텐츠 자체를 식별하여 통신하는 CCN(Content-Centric Networking)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재의 IP 기반 인터넷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원대한 실험입니다.
동영상과 같이 대용량 데이터가 주를 이루는 현대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된 설계입니다.
네트워크 곳곳에 데이터 캐시를 두어 전송 효율과 보안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전 세계 연구진들이 참여하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로 발전하여 차세대 네트워크 아키텍처로 주목받았습니다.
2010
[두부 외상 감지 센서 연구]
운동선수나 군인의 헬멧에 부착하여 뇌 충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미세 센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IT 기술을 인체 안전과 의료 분야에 적용한 의미 있는 융합 연구 사례입니다.
충격의 강도와 방향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뇌진탕 위험을 즉각적으로 알리는 시스템입니다.
미 국방부와의 협력을 통해 전투 현장에서의 병사 안전을 확보하는 용도로 우선 검토되었습니다.
센서 네트워크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결합된 고도의 실전형 연구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2013
[파워클라우드 시스템즈 인수]
클라우드 기반 네트워크 관리 기술을 보유한 파워클라우드(PowerCloud)를 인수하여 기술력을 보강했습니다. 연구소가 단순히 기술을 팔기만 하는 곳에서 벗어나 기업을 인수하며 성장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중소기업들을 위한 간편한 무선 네트워크 관리 플랫폼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연구소가 보유한 기본 네트워크 원천 기술을 상용 서비스 수준으로 빠르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분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려는 전략적인 결정이었습니다.
2015
[자기 파괴형 보안 칩 기술 개발]
임무가 끝나거나 분실 시 원격 명령 한 번으로 스스로 산산조각이 나는 보안 칩을 개발했습니다. 물리적인 파괴를 통해 데이터 유출을 원천 봉쇄하는 혁신적인 보안 솔루션입니다.
유리 기판에 열을 가해 순간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독특한 재료 공학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군사 기밀 보호나 국가 안보 분야에서 매우 높은 관심을 받은 기술입니다.
사이버 보안을 넘어 물리적 보안까지 아우르는 연구소의 하이테크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2021
[나레쉬 샹커 CEO 부임]
제록스의 최고 기술 책임자였던 나레쉬 샹커가 연구소의 수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연구소의 원천 기술을 실제 비즈니스 가치로 전환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인공지능, 로보틱스, 3D 프린팅 등 최첨단 분야의 상용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급변하는 산업 지형 속에서 PARC가 지속 가능한 연구 기관으로 남기 위한 구조 개편을 시도했습니다.
글로벌 파트너사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연구소의 자립 기반을 견고히 했습니다.
2023
[SRI와의 통합 프로세스 시작]
SRI 인터내셔널의 일원이 된 연구소가 조직 및 기술 자산 통합을 위한 공식 프로세스에 들어갔습니다. 양 기관의 천재적인 인재들이 모여 차세대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팅 연구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두 거물급 연구소의 결합은 실리콘밸리 기술 혁신의 생태계를 다시 한번 재편하는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방대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통합하여 거대 기업들과의 기술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전설적인 연구소의 이름과 정신은 SRI의 시스템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SRI 인터내셔널로의 기증]
제록스가 연구소 전체를 비영리 연구 기관인 SRI 인터내셔널에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제록스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거대 연구 연합이 탄생했습니다.
제록스는 연구소를 기증하는 대신 SRI로부터 향후 발생하는 기술 수익의 일부를 공유받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인터넷과 마우스를 만든 SRI와 이더넷과 GUI를 만든 PARC가 하나로 뭉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 통합을 통해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독립 연구 기관 중 하나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