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씨름인)
씨름 선수, 씨름 감독, 스포츠 행정가, 대학 교수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5- 15:23:22
대한민국 씨름의 황금기를 이끈 '3이(李) 시대'의 주역이자, 단아한 기술과 매너로 '모래판의 신사'라 불린 이준희의 삶은 한국 민속 스포츠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1980년대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7회를 달성하며 이만기, 이봉걸과 함께 모래판을 삼분했던 그는, 은퇴 후에도 지도자와 행정가로서 씨름의 명맥을 잇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거구의 상대들을 노련한 수 싸움과 정교한 기술로 제압하던 그의 모습은 씨름이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닌 고도의 심리전임을 증명했습니다. 학자로서의 깊이와 승부사의 열정을 동시에 지닌 그의 연혁은 오늘날 씨름 부활의 든든한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1957
[모래판의 신사 탄생]
경기도 의왕에서 대한민국 씨름사에 한 획을 그을 천재 장사가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골격과 운동 신경을 자랑하며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훗날 모래판을 평정할 그의 전설이 조용히 시작됩니다.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경기도 의왕시 일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체격이 건장하여 동네 씨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운동뿐만 아니라 영특한 두뇌를 지녀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자라날 싹을 보였습니다.
1970
[씨름과의 운명적 만남]
중학교 시절 큰 키와 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샅바를 잡기 시작합니다. 기초 체력을 다지며 씨름의 기본 기술을 하나씩 익혀나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운동선수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기초를 탄탄히 다집니다.
중학교 씨름부에 입단하여 전국 대회를 목표로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당시 씨름계에서 유망주를 발굴하던 지도자들의 눈에 띄어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습득한 기본기는 훗날 그가 기술 씨름의 달인이 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1973
[대구 영신고 진학]
씨름 명문교인 대구 영신고등학교로 진학하여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갑니다.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오로지 씨름에만 매진하는 고교 시절을 보냅니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위한 담금질이 계속됩니다.
당시 영신고는 씨름 영재들을 배출하던 곳으로, 이곳에서 경쟁을 통해 기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선후배들과의 치열한 연습을 통해 실전 감각을 익히고 자신만의 주특기를 개발했습니다.
고교 씨름판에서 이준희라는 이름은 이미 전국구 스타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75
[고교 무대 전관왕 달성]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참가하는 모든 대회를 휩쓸며 무적의 행진을 이어갑니다. 신체적 완성도와 정교한 기술이 어우러져 동급생 중 상대가 없는 수준에 도달합니다. 대학 관계자들이 그의 영입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전국 체전과 각종 연맹전을 포함해 10개가 넘는 우승 트로피를 한 해에 거머쥐었습니다.
이 시기 이미 성인 선수들과 겨루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파워와 정교함을 갖췄습니다.
영신고의 전성기를 이끌며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전설적인 졸업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76
[단국대학교 장학생 입학]
씨름의 명문 단국대학교 체육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며 대학 무대에 섭니다. 성인 무대로 가는 교두보에서 학문적 소양과 실전 무예를 동시에 탐구합니다. 대학 씨름의 지형도를 바꿀 괴물 신인의 등장이었습니다.
단국대학교는 이준희를 필두로 최강의 라인업을 구축하며 대학 씨름을 지배했습니다.
전공 과목을 통해 운동 역학 등 과학적인 씨름 접근법을 접하며 지성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선수촌과 학교를 오가며 국가대표급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밤낮없이 정진했습니다.
1978
[대학부 무패 행진]
대학 재학 내내 전국 대학 장사 씨름 대회에서 무패 기록을 쓰며 최강자로 군림합니다. 특히 백두급에서 거구의 상대들을 가벼운 기술로 넘기는 모습은 관중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미 민속 씨름 출범 전부터 씨름계의 보물로 대우받습니다.
대학 시절 그의 승률은 90%를 상회할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힘이 아닌 균형과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기술은 타 대학 선수들의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실업팀들의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받으며 프로 전향을 준비했습니다.
1980
[단국대학교 학사 졸업]
체육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대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합니다. 운동뿐만 아니라 학업 성적도 우수하여 동료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지적인 씨름꾼으로서의 첫 발판을 완성한 셈입니다.
졸업과 동시에 실업 씨름판에 뛰어들어 성인 무대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졸업은 대학 씨름의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학문적 기초를 닦은 경험은 훗날 그가 박사 학위까지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3
[제1회 천하장사 결승행]
첫 대회부터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진출해 이만기와 세기의 대결을 펼칩니다. 비록 최종 우승은 놓쳤으나 팽팽한 접전을 벌이며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씨름이 단순한 힘자랑이 아닌 예술임을 증명했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역사적인 결승전은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만기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신사적인 매너와 깨끗한 기술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모래판의 신사'라는 별명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속 씨름 공식 데뷔]
역사적인 제1회 천하장사 씨름 대회에 참가하며 프로 씨름 선수로서 공식 데뷔합니다. 화려한 중계와 함께 펼쳐진 모래판 위에서 수려한 외모와 실력으로 단숨에 스타가 됩니다. 대한민국에 씨름 열풍을 일으킨 일등 공신 중 한 명으로 등극합니다.
럭키금성 황소 씨름단(현 LG투자증권) 소속으로 민속 씨름에 참여했습니다.
데뷔 초기부터 이만기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흥행의 중심에 섰습니다.
전 국민이 TV 앞에 모여 씨름을 시청하던 시기, 가장 인기 있는 장사 중 한 명으로 꼽혔습니다.
[첫 백두장사 등극]
제2회 천하장사 대회와 함께 열린 체급별 대회에서 처음으로 백두장사에 오릅니다. 민속 씨름 출범 후 거둔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진가를 입증합니다. 거구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는 기술 씨름의 승리였습니다.
결승에서 강력한 라이벌들을 꺾고 체급 내 최고 권위인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우승 확정 후 겸손한 태도로 동료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수상을 시작으로 통산 7회의 백두장사 기록을 향한 위대한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984
[숙원의 천하장사 등극]
제4회 천하장사 대회에서 마침내 왕좌에 오르며 대한민국 최고의 장사로 공인받습니다. 수많은 고비와 좌절 끝에 거머쥔 타이틀이라 감격의 크기는 남달랐습니다. 온 국민이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모래판의 주인공으로 우뚝 섭니다.
결승전에서 이만기의 독주를 막아서며 기술 씨름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3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새로운 제왕의 탄생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제5대 천하장사 2연패]
전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천하장사 타이틀을 수성하며 연속 우승의 기록을 씁니다. 한 번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압도적인 실력 차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씨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합니다.
연속 우승을 통해 씨름판의 절대 강자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습니다.
노련한 경기 운영과 방어 기술은 타 선수들이 뚫기 어려운 철벽과 같았습니다.
이 시기 그의 대중적 인기는 웬만한 연예인을 능가할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1985
[럭키금성의 전설이 되다]
소속팀 럭키금성 황소 씨름단을 이끌며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전무후무한 활약을 펼칩니다. 팀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소속팀은 그를 앞세워 씨름판의 명문으로 도약합니다.
팀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며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기술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구단 홍보 모델로도 활동하며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가 입은 소속팀의 황소 마크는 씨름 팬들에게 승리의 상징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백두장사 추가 획득]
제7회 천하장사 대회 백두급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커리어에 황소 트로피를 추가합니다. 체급 내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기술적 우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일관된 기량 유지는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강인한 하체와 허리 힘을 이용한 들배지기 기술로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백두급 최강자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며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당대 최고의 실력자임을 매 대회 성적으로 입증해 나갔습니다.
[전국 체전 일반부 우승]
민속 씨름 외에 전국체육대회에도 출전하여 일반부 정상에 오르는 저력을 보입니다. 아마추어와 프로 무대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활약으로 씨름의 대중화에 기여합니다. 국가적인 체육 행사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프로 선수가 전국 체전에서 거둔 성과는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씨름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장사로서의 명예를 다시 한번 드높인 성과입니다.
1986
[이봉걸과의 거인 대결]
205cm의 거구 이봉걸 장사와 맞붙어 신장 차이를 극복하는 명승부를 펼칩니다. '인간 기중기'라 불리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고도의 지능적인 씨름을 선보였습니다. 거인을 무너뜨리는 신사의 모습은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자아냈습니다.
이봉걸의 엄청난 근력을 유연한 움직임으로 흘려보내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체급 차이를 기술로 극복하는 씨름의 묘미를 전 국민에게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이 시기 '3이 시대'의 라이벌전은 씨름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1987
[백두장사 통산 6회]
다시 한번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며 체급별 대회의 전설적인 기록을 써 내려갑니다. 30대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철저한 자기 관리로 체력을 유지하며 후배들을 압도했습니다. 그의 모래판 장악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정교해졌습니다.
풍부한 실전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로 젊은 신예들을 노련하게 제압했습니다.
기술의 완숙미가 최고조에 달하여 후배들의 기술 교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백두장사 최다 우승자 중 한 명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제13대 천하장사 등극]
통산 3번째 천하장사 타이틀을 획득하며 다시 한번 모래판의 최고봉에 오릅니다. 2년 만에 되찾은 왕좌를 통해 자신의 시대가 여전히 건재함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팬들은 '신사의 귀환'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결승전에서 불굴의 투혼을 발휘하며 역전승을 거두는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 우승은 그가 선수 생활 후반기에 거둔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로써 이준희는 씨름 역사상 천하장사를 3회 이상 차지한 몇 안 되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988
[서울 올림픽 기념 대회 참가]
서울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특별 씨름 대회에 참가하여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립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씨름의 박진감과 정교함을 몸소 보여주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올림픽 열기 속에서 한국의 기개를 뽐냈습니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 최고의 장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시연을 펼쳤습니다.
씨름이 올림픽 종목은 아니었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서 주목받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그는 단순한 선수를 넘어 한국 체육의 상징적 인물로 거듭났습니다.
1989
[마지막 백두장사 타이틀]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이 될 7번째 백두장사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둡니다. 노장의 투혼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많은 팬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 기질이 빛난 순간이었습니다.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치밀한 전략과 심리전으로 승리했습니다.
후배 장사들도 대선배의 끈질긴 도전과 성과에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우승을 끝으로 그는 모래판의 주역 자리를 서서히 후배들에게 넘겨줄 준비를 합니다.
1990
[현역 은퇴 공식 발표]
정들었던 모래판을 떠나며 정식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합니다. 화려했던 20여 년의 씨름 인생을 마감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씨름계는 큰 별의 퇴장을 아쉬워하며 대대적인 은퇴식을 마련했습니다.
은퇴식에서 샅바를 내려놓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많은 씨름 팬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대한민국 씨름의 부흥기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와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은퇴 후에도 씨름 발전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남겼습니다.
[LG투자증권 씨름단 코치 부임]
은퇴 직후 친정팀인 LG투자증권 황소 씨름단의 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의 길을 걷습니다. 선수 시절의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며 팀의 전력 강화에 힘씁니다. 명선수 출신 명지도자로서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신사'의 품격을 후배들에게도 교육하며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장사들을 길러냈습니다.
기술적인 지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멘토링까지 병행하여 선수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지도자 데뷔 초기부터 팀을 각종 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1991
[단국대학교 대학원 입학]
지도자 생활 중에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모교 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합니다. 현장의 경험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지적 탐구를 시작합니다. 씨름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려는 선구적인 노력이었습니다.
바쁜 지도자 스케줄 속에서도 야간 수업에 참여하며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운동 생리학과 체육 측정 평가 등을 전공하며 씨름 기술의 효율성을 연구했습니다.
이 시기의 연구 성과는 훗날 그가 쓴 논문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1993
[체육학 석사 학위 취득]
씨름 기술에 대한 연구를 담은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자 가수로 거듭납니다. 단순한 운동인이 아닌 학술적 배경을 갖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씨름계에서 학위 취득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졸업 논문에서 씨름의 기술 구조를 분석하여 체계적인 훈련법을 제시했습니다.
학교로부터 우수 논문상을 받으며 학업적 성취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석사 학위 취득은 그가 훗날 대학교 강단에 서는 데 결정적인 자격이 되었습니다.
1994
[LG 씨름단 감독 승진]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LG투자증권 황소 씨름단의 사령탑인 감독으로 승진합니다. 명문 구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팀의 황금기를 주도하며 수많은 장사들을 배출합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LG 씨름단은 무적의 군단으로 불리게 됩니다.
데이터 기반의 분석과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도를 실시했습니다.
그가 감독을 맡는 동안 팀은 천하장사와 백두장사 타이틀을 연달아 획득했습니다.
씨름 명장의 반열에 오르며 지도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던 시기였습니다.
1995
[전국 장사 대회 우승 감독상]
한 해 동안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감독에게 주어지는 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합니다. 팀의 성적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모범적인 경기 매너를 이끌어낸 점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감독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를 받았습니다.
시상식에서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며 '함께 땀 흘린 결과'라고 겸손하게 소감을 밝혔습니다.
협회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체계적이고 신사적인 팀 운영을 한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수상으로 그는 선수와 감독 모두로서 정점에 오른 씨름인으로 각인되었습니다.
1997
[대한씨름협회 이사 위촉]
현장의 지도자를 넘어 행정가로서 씨름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협회 이사직을 맡습니다. 씨름의 규정 개선과 저변 확대를 위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씨름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중책을 수행합니다.
씨름의 세계화와 현대화를 위한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에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정체된 씨름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기술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는 협회 내 의사결정에 큰 신뢰를 주었습니다.
1998
[박사 과정 도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체육학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씨름의 학문적 깊이를 더합니다. 지도자로서의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연구와 집필을 병행하는 초인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씨름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는 그의 의지는 계속됩니다.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은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씨름의 역동성과 근육 사용의 상관관계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진정한 스포츠 지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었습니다.
2000
[씨름 기술 교본 집필 참여]
협회 차원에서 발간하는 표준 씨름 기술 교본의 집필 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자신이 평생 익힌 기술의 비법을 후대에게 전수하기 위해 정교하게 글과 그림으로 남깁니다. 씨름 기술의 표준화와 교육 체계화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들배지기, 밧다리 등 주요 기술들의 미세한 동작 원리를 과학적으로 해설했습니다.
유소년 선수들이 씨름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이 교본은 현재까지도 씨름 학교와 도장에서 필수적인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001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임용]
고향 대구의 대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겸임교수로 임명되어 강단에 섭니다. 현장의 생생한 지식과 학술적 이론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며 후진 양성에 힘씁니다. 교단에서 제자들과 소통하며 교육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강의는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 덕분에 수강 신청이 몰리는 인기 과목이었습니다.
체육 전공 학생들에게 실기 지도뿐만 아니라 스포츠 윤리와 매너를 강조했습니다.
학문의 현장에서 씨름의 가치를 설파하며 전통 무예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했습니다.
2003
[씨름 중계 해설위원 데뷔]
방송사 씨름 중계의 해설위원을 맡아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안방으로 전달합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걸출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씨름의 재미를 한층 높여주었습니다. 현장의 긴박함을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경기 흐름을 짚어주는 날카로운 분석과 정겨운 사투리가 섞인 해설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라이벌이었던 이만기와의 공동 해설은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해설위원 활동을 통해 씨름이 대중과 더 가까워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5
[팀의 해체와 마지막 인사]
경제 위기와 기업 사정으로 소속팀 LG 씨름단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습니다. 평생을 몸담았던 팀의 마지막을 감독으로서 지키며 선수들의 거취를 위해 끝까지 노력했습니다. 팀은 사라졌으나 그가 남긴 정신은 씨름판에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해체식에서 선수들의 손을 하나하나 맞잡으며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품위를 유지하며 팀의 명예로운 마무리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야인 생활을 하며 씨름계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07
[대한씨름협회 상임이사 활동]
본격적인 씨름 행정가로서 협회의 상임이사직을 수행하며 씨름 부흥을 꾀합니다. 침체된 씨름판을 되살리기 위해 각종 대회를 유치하고 후원사 발굴에 앞장섭니다. 행정의 중심에서 씨름의 명맥을 잇기 위한 고군분투가 계속됩니다.
지방자치단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전국 각지에서 씨름 대회가 열리도록 지원했습니다.
젊은 팬층을 유입시키기 위한 새로운 경기 형식 도입 등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합리적인 행정 처리는 협회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09
[체육학 박사 학위 취득]
마침내 체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박사 장사'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습니다. 씨름인의 자부심을 걸고 거둔 학문적 성취는 체육계 전체의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 진정한 학자로 공인받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학위 수여식에서 환하게 웃으며 가족들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박사 논문은 씨름의 기술적 변천사를 역사적, 과학적으로 분석한 역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성취는 은퇴 후 삶의 방향을 잃은 후배 선수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2011
[씨름 전용 경기장 건립 위원]
전통 씨름 전용 경기장 건립을 위한 자문 위원으로 위촉되어 전문 지식을 나눕니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최적화된 경기 공간을 설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씨름 인프라 확충을 위한 그의 헌신이 빛을 발합니다.
경기장의 모래 질부터 관객석의 배치까지 세심하게 조언하며 씨름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전통 건축 양식과 현대적 시설이 조화를 이루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완공된 여러 씨름장들은 그의 조언이 담긴 명품 경기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3
[대한씨름협회 경기운영위원장]
협회의 경기 운영을 총괄하는 위원장직을 맡아 공정한 판정과 매끄러운 진행을 책임집니다. 비디오 판독 도입과 규칙 정비를 통해 씨름의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행정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시기였습니다.
심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정기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했습니다.
판정 시비가 없는 투명한 모래판을 만들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선수와 감독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2015
[원로 장사들의 회합 주도]
이만기, 이봉걸 등 왕년의 라이벌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씨름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과거의 치열한 승부사에서 이제는 씨름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동료로 변모했습니다. 씨름계 어른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주며 후배들에게 지침을 줍니다.
모임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협회 정책에 제안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씨름 명예의 전당 건립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여론 형성에 힘썼습니다.
그들의 우정 섞인 회합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며 올드 팬들에게 향수를 선사했습니다.
2017
[한남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
한남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본격적으로 대학 교육 현장의 주역으로 활약합니다. 스포츠 지도자론과 실무를 강의하며 후학들에게 지식의 등불을 밝혀줍니다. 박사 장사로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강의는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단순한 기술 전달을 넘어 스포츠 행정과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교내 씨름부의 기술 고문을 맡아 대학 씨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학생들에게 '인성'이 선수 생활의 가장 큰 재산임을 몸소 실천하며 가르쳤습니다.
2018
[씨름 유네스코 등재 지원]
대한민국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합니다. 한국 씨름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민족 무예가 세계적인 자산으로 인정받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국제 학술 대회에 참석하여 씨름의 철학적 배경과 기술적 우수성을 발표했습니다.
홍보 영상 제작에 직접 출연하여 전 세계인들에게 씨름의 매력을 알렸습니다.
등재 확정 후 감격에 젖어 '씨름은 우리 민족의 혼'이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2019
[씨름의 희열 출연]
KBS 씨름 예능 프로그램 '태백에서 금강까지 - 씨름의 희열'에 특별 출연하여 젊은 선수들을 격려합니다. 전설의 장사가 등장하자 현장의 선수들과 관중들은 기립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거장의 아우라를 과시했습니다.
후배 선수들의 기술을 하나하나 분석해주며 따뜻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방송을 통해 젊은 층에게 씨름의 재미를 다시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무게감이 한층 더해졌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2020
[씨름 부활을 위한 멘토 활동]
젊은 씨름 스타들의 멘토로 활동하며 그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법에 대해 조언합니다. 실력뿐만 아니라 스타성을 갖춘 선수들이 씨름의 인기를 견인하도록 돕습니다. 제2의 씨름 부흥기를 만들기 위한 그의 열정은 여전했습니다.
SNS 활용법 등 현대적인 홍보 방식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선수들과 소통했습니다.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장사가 되는 비결을 공유했습니다.
이 시기 씨름은 이준희의 조언 아래 다시 한번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했습니다.
2021
[대한씨름협회 기술위원장]
협회의 기술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기술위원장직을 맡아 씨름의 정통성을 수호합니다. 현대적인 감각과 고전적인 기술의 조화를 꾀하며 경기 규칙을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씨름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최종 결정권자로 활약합니다.
지나치게 체중 위주로 흐르는 씨름판에 경각심을 주고 기술 씨름의 비중을 높였습니다.
각 체급별 기술 통계를 분석하여 훈련 커리큘럼을 과학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씨름 지도자 교육의 질을 높여 전국적으로 우수한 장사들이 배출되도록 도왔습니다.
2022
[데뷔 40주년 기념 회고]
민속 씨름 데뷔 40주년을 맞아 자신의 씨름 인생을 돌아보는 인터뷰와 다큐멘터리에 참여합니다. 40년 전의 설렘과 영광의 순간들을 팬들과 공유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한국 씨름의 살아있는 증인으로서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과거 라이벌들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진솔하게 털어놓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씨름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자신의 삶을 고백하며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팬들은 여전히 정정하고 지적인 그의 모습에 변함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냈습니다.
2023
[지역사회 공헌 및 특강]
지역 사회와 기업체를 대상으로 '장사의 리더십'과 '승부의 철학'을 주제로 한 특강 활동을 펼칩니다. 모래판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사회 각계각층에 전달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씨름을 넘어선 인생의 스승으로서 대우받습니다.
실전에서의 위기 극복 경험을 비즈니스 전략과 연결하여 깊은 통찰력을 제공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페어플레이 정신의 소중함을 역설했습니다.
강연료의 일부를 항상 유소년 씨름 장학 기금으로 기부하며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2024
[현재 진행형인 신사의 길]
현재까지도 대한씨름협회 원로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씨름과 함께하는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가벼운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하며 씨름장의 향기를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 종종 현장을 방문합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대한민국 씨름의 자부심이자 역사입니다.
최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씨름 보급 사업에도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자문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자신의 철학을 매 순간 삶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준희의 연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후배들의 꿈과 팬들의 사랑 속에서 계속 쓰여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