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준 (농구 선수)

농구 선수, 모델, 방송인

num_of_likes 45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0- 17:59:2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이승준 (농구 선수)
농구 선수, 모델, 방송인
report
Edit

대한민국 농구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탄력을 자랑했던 이승준은 미국과 한국을 잇는 가교이자 개척자였습니다. 에릭 산드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한국 귀화 농구 선수의 상징이 되기까지, 그는 코트 위에서 압도적인 덩크와 열정으로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5대5 프로 농구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친 뒤에도 3x3 농구의 전도사로 활약하며 멈추지 않는 도전을 이어갔으며, 은퇴 후에도 방송과 코칭을 통해 농구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78

[미국 워싱턴주 탄생]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릭 산드린이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운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습니다. 훗날 한국 농구계의 한 획을 그을 형제의 장남으로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고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지며 자라났습니다.
동생 이동준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며 신체 능력을 길렀습니다.
농구가 생활의 일부였던 환경에서 자라며 타고난 신체 조건과 탄력을 키워나갔습니다.

1996

[시애틀 퍼시픽대 입학]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대학 농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공학을 전공하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성실한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NCAA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닦으며 프로 진출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대학 시절 팀의 핵심 포워드로 활약하며 리바운드와 득점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압도적인 점프력을 바탕으로 대학 리그 내에서 주목받는 유망주였습니다.
농구 외적으로도 학업에 충실하여 지덕체를 겸비한 선수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2000

[대학교 졸업과 프로 준비]

대학교를 졸업하며 정식으로 프로 무대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쌓은 풍부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외 리그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무대를 경험하며 농구 선수로서의 시야를 넓히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졸업 후 미국 마이너 리그와 유럽 리그 등 여러 곳에서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다양한 농구 스타일을 경험하며 본인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리그에서 적응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1

[룩셈부르크 리그 진출]

유럽 룩셈부르크 리그에 진출하며 본격적인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도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주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프로 선수로서의 책임감과 실력을 쌓아가는 소중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팀의 골밑을 책임지며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유럽 특유의 전술적인 농구를 익히며 농구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현지 팬들에게 압도적인 탄력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2002

[독일 리그에서의 활약]

유럽 농구 강국 중 하나인 독일 리그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수준 높은 경쟁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유럽 무대에서의 커리어를 탄탄히 다지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독일 리그의 거친 몸싸움을 견뎌내며 리바운드 능력을 극대화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과 경쟁하며 경기 운영 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이 시기에도 한국 농구 진출에 대한 꿈을 꾸준히 키워나갔습니다.

2003

[노르웨이 리그 진출]

노르웨이 리그로 진출하여 북유럽 농구를 경험하며 커리어를 확장했습니다. 팀의 핵심 전력으로 기용되어 매 경기 두 자릿수 득점과 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며 도전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노르웨이 리그 내 최상위권 빅맨으로 평가받으며 맹활약했습니다.
팀원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리더십으로 팀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다양한 환경에서의 성공적 경험은 그의 멘탈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2004

[미국 ABA 리그 활동]

미국으로 돌아와 독립 리그인 ABA(American Basketball Association)에서 활동했습니다. 미국 내 재능 있는 선수들과 경쟁하며 기량을 점검하고 유지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더 높은 수준의 농구를 추구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시애틀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탄력을 선보였습니다.
화려한 덩크슛으로 리그 내에서 주목받는 하이라이트 제조기로 등극했습니다.
미국 내 농구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

[브라질 리그 진출]

남미의 농구 강국 브라질 리그에 진출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농구를 접했습니다. 남미 특유의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팀의 골밑을 수호했습니다. 세계 각 대륙을 넘나드는 그의 방대한 커리어에 한 페이지를 추가했습니다.

브라질 리그 특유의 빠른 템포와 개인기에 적응하며 다재다능함을 뽐냈습니다.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큰 공을 세우며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리그에서 뛰어난 친화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06

[프랑스 리그 활약]

유럽의 명문 리그인 프랑스 리그로 활동지를 옮겨 수준 높은 경기를 이어갔습니다. 수비 전문성과 공격에서의 높은 효율성을 바탕으로 팀 내 신뢰를 얻었습니다. 유럽 각국의 농구 시스템을 모두 섭렵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프랑스 리그의 정교한 수비 전술 속에서도 득점력을 유지했습니다.
팀의 전술 핵심으로 자리 잡아 중요한 경기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제 한국 무대로의 진출을 위한 준비가 거의 완성된 시기였습니다.

2007

[KBL 모비스 입단 시도]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 무대에 서기 위해 KBL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외국인 선수로 합격했습니다. '에릭 산드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팬들 앞에 처음 서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압도적인 탄력과 덩크슛으로 연습 경기부터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당시 모비스는 유재학 감독의 지휘 아래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연습 경기에서 보여준 림 어택은 당시 국내 농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국적 관련 문제와 복잡한 규정으로 인해 정식 데뷔 전 시련을 겪게 됩니다.

2008

[싱가포르 및 미국 리그 활동]

KBL 진출이 좌절된 후 잠시 싱가포르 리그와 미국 독립 리그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한국행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좌절 속에서도 농구공을 놓지 않는 끈기를 보여준 시기였습니다.

싱가포르 슬링거스 등에서 활약하며 아시아 농구에 대한 이해를 넓혔습니다.
미국 USBL 리그에서도 뛰며 자신의 신체 조건과 기량이 여전히 최상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시기 동생 이동준과 함께 한국 귀화 및 진출을 구체적으로 계획했습니다.

2009

[대한민국 국적 취득]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여 마침내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이승준이라는 한국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한국 농구 발전에 기여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단순한 외국인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코트에 서게 된 것입니다.

특별 귀화 절차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정식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한국 문화를 익히며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국가대표팀 합류라는 목표를 향한 가장 큰 문턱을 넘은 순간이었습니다.

[귀화 선수 드래프트 1순위]

KBL 귀화 혼혈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역대급 재능으로 평가받으며 모든 구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안준호 감독의 선택으로 삼성의 주축 전력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드래프트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으며 삼성의 전력을 급상승시킬 카드로 평가되었습니다.
삼성 썬더스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한국 무대 데뷔를 공식화했습니다.
국내 팬들은 그의 덩크슛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KBL 정식 데뷔전]

2009-2010 시즌 개막과 함께 KBL 코트에 이승준이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데뷔 첫 경기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삼성의 새로운 에이스임을 선포했습니다. 한국 프로 농구에 귀화 혼혈 선수 열풍을 주도했습니다.

화려한 개인기와 탄력을 바탕으로 한국 농구의 스타일을 한 단계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관중을 열광시키는 슬램덩크는 삼성 홈구장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며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2010

[올스타전 슬램덩크 콘테스트 우승]

KBL 올스타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고난도의 기술과 예술적인 탄력으로 농구 팬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했습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덩커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백보드를 맞춘 뒤 덩크를 성공시키는 등 차원이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팬 투표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하며 KBL 최고의 인기 스타 중 한 명으로 등극했습니다.
이후에도 올스타전 단골 손님으로 활약하며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발탁]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에 전격 발탁되었습니다. 귀화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나서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한국의 높이를 보강해 줄 핵심 자원으로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유재학 감독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팀의 주전 포워드로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한국 농구 특유의 조직력에 본인의 개인기를 녹여냈습니다.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을 여러 차례 드러내며 국민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농구 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결승전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한국 농구의 부활을 알리는 데 일조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는 실력을 입증하며 국위선양에 기여했습니다.

대회 기간 내내 리바운드와 수비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습니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귀화 선수로서 메달을 목에 걸며 진정한 한국 대표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1

[삼성 썬더스의 에이스 활약]

삼성 썬더스의 핵심 선수로서 한 시즌 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매 경기 더블-더블급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국내외 선수들을 압도하는 운동 능력으로 리그 정상급 포워드로 군림했습니다.

팬 서비스와 인품 면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매너남'으로 통했습니다.
팀 내 외국인 선수들과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팀 화합에 기여했습니다.
농구 외에도 광고 모델 등으로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2012

[원주 동부 프로미 이적]

FA 자격을 얻어 원주 동부 프로미로 팀을 옮기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김주성 선수와 함께 리그 최강의 '트윈 타워'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우승권 전력을 가진 팀으로 이적하여 정상 등극을 노렸습니다.

강동희 감독 체제에서 높이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원주 팬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팀의 수비 중심 농구에 공격적 재능을 더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 출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에 참가했습니다.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한국의 골밑을 든든하게 지켰습니다. 비록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국제 대회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높이의 열세 속에서도 끈질긴 리바운드 다툼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유럽 및 남미 선수들을 상대로 대등한 신체 능력을 보여주며 활약했습니다.
국가대표로서의 소명을 다하며 팀의 사기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2013

[FIBA 아시아 선수권 동메달]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성적으로 대한민국은 16년 만에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대표팀의 최고참급 선수로서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터진 중거리슛과 덩크로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아시아권 경쟁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골밑 장악력이 뛰어났습니다.
한국 농구가 세계 무대로 복귀하는 역사적인 여정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2014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

경기 도중 불의의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명의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부상이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힘든 재활 치료에 돌입했습니다. 코트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강한 의지로 수술과 회복에 전념했습니다.

한창 활약하던 시기에 찾아온 부상으로 본인과 팀 모두에게 큰 손실이었습니다.
재활 기간 동안 인내하며 신체 밸런스를 되찾기 위해 지독한 훈련을 견뎠습니다.
팬들의 응원 메시지가 재활을 견디는 큰 힘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2015

[서울 SK 나이츠 이적]

재활을 마친 뒤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문경은 감독의 신뢰 속에 베테랑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화려한 스타에서 팀을 보조하는 조력자로 변모한 시기였습니다.

짧은 시간 출전하면서도 효율적인 득점과 수비로 제 몫을 다했습니다.
젊은 선수들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경험을 아낌없이 전수했습니다.
부상 여파가 있었음에도 여전한 탄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2016

[KBL 은퇴 발표]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정들었던 KBL 무대에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7시즌 동안 한국 프로 농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거장의 퇴장이었습니다. 팬들의 아쉬움 속에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은퇴식에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한국 농구에 귀화 선수의 가치를 증명한 선구자로서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은퇴 후에도 농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미스코리아 최지윤과 결혼]

은퇴 후 미스코리아 출신의 최지윤 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오랜 기간 사랑을 키워온 끝에 인생의 동반자를 맞이한 경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많은 농구계 선후배와 연예인들의 축복 속에 행복한 출발을 알렸습니다.

아내의 내조 속에 은퇴 후 삶의 안정을 빠르게 찾았습니다.
결혼 생활을 통해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꿈을 지지하며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7

[3x3 농구 선수 전향]

프로 은퇴 후 잠시 공백기를 가졌으나 3x3 농구라는 새로운 무대에 도전했습니다. 5대5 농구와는 다른 매력에 빠져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묶었습니다. 대한민국 3x3 농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선구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빠른 템포와 격렬한 몸싸움이 특징인 3x3 농구에 최적화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팀 '윌(Will)' 등을 이끌며 국내 대회를 평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를 잊은 열정으로 3x3 농구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2018

[3x3 국가대표 선발]

3x3 농구 무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5대5에 이어 3x3에서도 국가대표로 선발된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국제 대회 경험을 살려 한국 3x3 대표팀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FIBA 3x3 아시아컵 등에서 한국 대표로 활약하며 투혼을 보였습니다.
베테랑으로서 어린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며 팀워크를 다졌습니다.
한국 3x3 농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2019

[3x3 월드컵 참가]

대한민국 3x3 농구 대표팀 소속으로 세계 무대인 월드컵에 출전했습니다. 전 세계 강호들과 맞붙으며 한국 3x3 농구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도전했습니다. 4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세계 무대를 누비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대회에서 강력한 골밑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체력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며 매 경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대회 참가로 인해 한국 3x3 농구의 저변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

[예능 핸섬 타이거즈 출연]

SBS 농구 예능 프로그램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에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연예인 팀원들을 지도하고 함께 경기를 뛰며 농구의 진한 매력을 전파했습니다.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다시 한번 이승준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서장훈 감독을 도와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점프력과 실력으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농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드라마와 감동을 방송을 통해 잘 전달했습니다.

2021

[농구 방송 해설 및 출연]

다양한 스포츠 채널에서 농구 해설자로 나서며 전문가로서의 식견을 뽐냈습니다.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며 외국인 선수들의 인터뷰와 경기 분석을 도왔습니다. 코트 밖에서도 농구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자신의 생생한 경험이 담긴 해설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스포츠인으로서의 전문성과 엔터테이너로서의 매력을 동시에 발산했습니다.

2022

[유소년 농구 지도 및 코칭]

자신의 이름을 건 유소년 농구 캠프를 열어 꿈나무들을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본기의 중요성과 스포츠맨십을 강조하며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한국 농구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가치 있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아이들에게 농구의 재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직접 시범을 보이며 소통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강연과 지도로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적성을 발견하며 제2의 농구 인생을 개척했습니다.

2023

[3x3 팀 플레잉 매니저 활동]

3x3 농구 팀의 플레잉 매니저로 활동하며 팀 운영과 경기 출전을 병행했습니다. 구단의 살림을 책임지는 동시에 코트 위에서는 여전히 위협적인 선수로 남았습니다. 농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현역 선수들과 호흡했습니다.

팀의 스폰서 유치와 홍보 활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면 베테랑의 노련함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해결사가 되었습니다.
3x3 농구 리그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24

[현재의 활동과 미래의 비전]

현재는 방송인, 코치, 그리고 농구 홍보 대사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 국내외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향후 더 체계적인 농구 아카데미 설립을 꿈꾸며 준비 중입니다.
이승준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한국 농구의 열정과 도전을 상징하는 단어로 남아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