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대학교, 교육 기관, 공립 연구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6- 15:51:58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UCR)는 1907년 설립된 시트러스 실험소라는 작은 연구 기지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북미 최고의 연구 중심 대학 연합(AAU)에 이름을 올린 혁신의 상징입니다. 1954년 학부 교육을 개시한 이래, 소규모 정예 교육의 전통과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역량을 조화시켜 왔습니다. 특히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성공적인 중산층으로 진입시키는 '사회적 이동성' 부문에서 미국 내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며 공립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본 연혁은 감귤 연구의 성지에서 시작해 의학, 공학, 인문학을 아우르는 글로벌 지식의 허브로 거듭난 UCR의 120년 서사를 상세히 기록합니다.
1907
[시트러스 실험소 설립]
캘리포니아의 핵심 산업인 감귤류 재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버사이드에 시트러스 실험소가 세워졌습니다. 이 연구소는 남부 캘리포니아 농업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하며 대학 탄생의 첫 번째 씨앗이 되었습니다. 루비두 산 기슭에서 시작된 이 활동은 지역 경제와 학문의 결합을 상징했습니다.
실험소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의 연구 역량을 남부 지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초기 연구진은 감귤류의 병충해 관리와 신품종 개발에 매진하여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이곳에서 축적된 농학적 성과와 데이터는 훗날 대학교가 농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갖게 되는 핵심 자산이 되었습니다.
1913
[허버트 웹어 소장 부임]
식물 유전학의 권위자인 허버트 존 웹어 박사가 실험소의 책임자로 부임하며 조직의 체계를 현대화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실험실을 넘어 교육 기능이 결합된 종합 연구 기관으로의 발전을 구상했습니다. 그의 비전은 실험소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우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웹어 소장은 연구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연방 정부와의 대규모 협력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실험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더 넓고 현대적인 부지가 필요함을 주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했습니다.
이 시기에 확립된 전문적인 행정 체계는 훗날 독립적인 대학 캠퍼스로 승격되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1917
[현재 캠퍼스 부지로 이전]
시트러스 실험소가 현재의 메인 캠퍼스가 위치한 박스 스프링스 산 기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475에이커의 광활한 부지를 확보하면서 대규모 연구 농장과 실험 시설을 새롭게 구축했습니다. 대학교 캠퍼스가 들어설 물리적인 공간 기반이 최종 확정된 사건이었습니다.
새로운 부지는 다양한 작물 실험이 가능하고 확장성이 뛰어나 연구소의 성장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건축가 레스터 히버드가 설계한 스페인 부활 양식의 건물들이 이때 캠퍼스에 처음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보존된 '더 반(The Barn)' 등의 초기 시설들은 이 시기의 개척 정신과 대학의 뿌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1948
[학부 캠퍼스 설립 승인]
UC 리전트 이사회가 리버사이드에 인문 및 과학 대학 설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증하는 교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캘리포니아주의 전략적 결단이었습니다. 이로써 연구소 체제에서 정식 교육 기관으로 변모할 법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인구가 폭증하면서 남부 지역에 새로운 대학 캠퍼스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리버사이드 시민들은 대학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청원 운동을 벌였으며 이는 주 정부의 최종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선 종합적인 인문 교육의 청사진이 이 승인을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51
[고든 왓킨스 초대 학장 임명]
저명한 경제학자인 고든 왓킨스 박사가 캠퍼스의 초대 Provost(학장)로 임명되어 개교 준비를 총괄했습니다. 그는 소규모 정예 교육과 밀착형 지도를 강조하며 리버사이드만의 독특한 학풍을 설계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대학의 초기 교과 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왓킨스 학장은 동부의 명문 사립대들과 경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인문학 교육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학생과 교수가 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공동체적 대학 모델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습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현재까지도 UCR이 연구 실적과 학생 성공을 동시에 추구하는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1952
[초기 강의동 5개동 완공]
대학의 중추가 될 초기 5개 주요 건물들이 완공되어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현대적인 건축 기술과 고전적 미학이 조화된 캠퍼스 디자인이 적용되어 시각적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1954년 개교를 향한 물리적 준비가 정점에 달했습니다.
건축 설계팀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강한 일조량과 기후를 고려하여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을 선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완공된 도서관과 실험동은 현재 '올드 캠퍼스'의 핵심 건축물로 소중히 관리되고 있습니다.
시설의 완비는 우수한 교수진을 전국에서 영입하는 데 있어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했습니다.
1954
[UC 리버사이드 공식 개교]
첫 번째 신입생 127명이 등교하면서 UC 리버사이드의 공식적인 학부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문 및 과학 대학 중심의 소규모 공동체로서 수준 높은 고등 교육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남부 캘리포니아 내륙 지역의 지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날이었습니다.
개교 첫날 총장이 직접 학생들을 맞이하며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출발했습니다.
초기 학생들은 캠퍼스의 모든 인프라를 독점하며 교수들과 가족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이들은 훗날 '개척자 세대'로 불리며 UCR 동문회의 기틀을 닦고 대학의 역사를 쓰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1959
[종합 캠퍼스 지위 승격]
UC 리전트 이사회가 리버사이드를 UC 시스템 내의 독립적인 '종합 캠퍼스'로 공식 승격시켰습니다. 이 결정으로 UCR은 버클리나 UCLA와 대등한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대학원 과정을 운영할 권한을 얻었습니다. 종합 연구 대학교로서의 위상이 확립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승격 이후 전문 대학원 설립 계획이 본격화되면서 캠퍼스 성장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행정적으로도 총장(Chancellor) 체제로 전환되어 독자적인 예산 집행과 운영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학부 교육 기관에서 지식을 직접 생산하는 글로벌 연구 대학으로 변모하는 중대한 분기점이었습니다.
[허먼 스피스 초대 총장 취임]
종합 캠퍼스 승격과 함께 생물학자인 허먼 스피스 박사가 초대 총장으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그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의 체질 개선을 주도하며 대규모 교수 채용과 연구동 건설을 진두지휘했습니다. 대학의 학문적 엄격함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스피스 총장은 연구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여 학내 연구 분위기를 고취시켰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대학원 입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며 연구 대학의 면모를 빠르게 갖추어 나갔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신생 종합 대학으로서 UCR이 가져야 할 학술적 기강과 비전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1
[대학원 분과 공식 창설]
석사와 박사 학위 과정을 전담 관리하는 대학원 분과가 정식으로 설립되어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이는 고도화된 연구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행정적, 학술적 기반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대학의 연구 중심 기조가 제도적으로 안착되었습니다.
초기 박사 과정은 식물 과학과 생물학 등 전통적으로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화학, 물리, 인문학 전 분야로 박사 학위 수여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며 지식의 보고가 되었습니다.
대학원 분과의 탄생으로 전 세계의 유망한 신진 학자들이 리버사이드 캠퍼스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964
[이반 힌더레이커 제2대 총장 취임]
정치학자인 이반 힌더레이커 박사가 신임 총장으로 부임하여 대학의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향후 15년 동안 재임하며 캠퍼스의 물리적 규모와 학생 수를 두 배 이상 성장시키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UCR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확장기를 주도한 리더입니다.
힌더레이커 총장은 지역 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하여 주 정부의 대규모 예산을 확보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그는 소수 민족 및 소외 계층 학생들의 교육 접근성을 높이는 포용적 정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UCR은 캘리포니아 내륙을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6
[카리용 벨 타워 완공]
캠퍼스의 랜드마크인 161피트 높이의 카리용 타워가 완공되어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48개의 정교한 벨로 구성된 이 타워는 대학의 예술적 품격과 전통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캠퍼스 어디서나 보이는 시각적 이정표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타워는 필립 L. 보이드 리전트 부부의 기부로 건설되어 숭고한 자선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낭만과 평온함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타워 주변 광장은 대규모 축제와 졸업식 등 대학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소통의 심장부가 되었습니다.
1968
[교육 대학원 설립]
지역의 교육 질 향상과 전문 교사 양성을 위해 교육 대학원이 독립된 학부로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구체화하고 미래 교육 모델을 연구하는 거점을 마련한 조치였습니다. 다양한 혁신 교육 이론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다문화 교육과 소외 계층을 위한 학습 지원 연구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지역 교육청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학생들에게 풍부한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현재까지도 UCR 교육 대학원은 사회 정의와 평등을 실천하는 교육 리더 배출의 요람으로 인정받습니다.
1970
[경영 대학원(AGSM) 신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할 리더 양성을 목표로 경영 대학원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인문학 중심의 초기 학풍에 실용적인 경영 지식을 더하며 대학의 학문적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혔습니다. 지역 경제 발전의 핵심적인 브레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공공 행정과 비즈니스 경영을 융합한 독창적인 커리큘럼을 선보여 주목받았습니다.
지역 우수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학생들에게 실무 중심의 인턴십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 학부는 훗날 A. 게리 앤더슨 경영 대학원으로 발전하며 세계적인 비즈니스 교육 기관으로 도약했습니다.
1974
[바이오메디컬 과학 프로그램 개시]
UCLA 의과 대학과 연계한 혁신적인 바이오메디컬 의사 양성 프로그램이 캠퍼스에 도입되었습니다. 별도의 의대 없이도 지역 내에서 유능한 의료진을 길러낼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훗날 독립 의과 대학 설립의 결정적인 제도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UCR에서 예과를 마치고 UCLA에서 본과 과정을 이수하는 특화된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내륙 캘리포니아의 의료 소외 지역을 위한 전문 의료 인력 확보에 집중했습니다.
첨단 의학 연구를 위한 실험 시설이 확충되면서 대학의 생명 과학 연구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1979
[토마스 리베라 제3대 총장 취임]
저명한 학자인 토마스 리베라 박사가 UCR의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총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의 사회적 포용성과 학술적 수월성을 결합한 혁신적인 운영 철학을 제시했습니다. UCR이 진정한 다원주의 캠퍼스로 거듭난 시기였습니다.
리베라 총장은 저소득층 학생들의 입학 장벽을 낮추기 위한 파격적인 지원책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인문학과 예술 분야의 연구 성과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중앙 도서관은 대학 발전에 헌신한 그의 학문적 열정을 영원히 기리고 있습니다.
1982
[대기 오염 연구소(SAPRC) 강화]
남부 캘리포니아의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대기 오염 연구소의 설비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 과학자들이 모여 스모그 방지와 대기 질 개선을 위한 정책 대안을 쏟아냈습니다. 환경 연구 분야에서 UCR의 글로벌 리더십이 확립되었습니다.
연구소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정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연방 환경청(EPA)과 공동으로 대기 오염 방지법 수립을 위한 핵심 기초 데이터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리버사이드 캠퍼스가 환경 공학 부문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5
[시어도어 헐라 제4대 총장 취임]
행정 전문가인 시어도어 헐라 박사가 신임 총장으로 부임하여 캠퍼스의 제2의 도약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다가올 21세기를 대비하여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전면 재수정하고 대형 연구동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대학의 물리적 인프라를 현대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헐라 총장은 산학 협력 모델을 강화하여 지역 산업계로부터 막대한 연구 기금을 유치했습니다.
그는 우수한 신진 학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스타 교수 영입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그의 재임 초기부터 UCR은 하이테크 연구 중심 대학으로의 전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1989
[본스 공과대학(Bourns College) 설립]
첨단 산업 기술을 선도할 인재 양성을 위해 본스 공과대학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UCR이 공학 교육의 메카로 도약하며 종합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완성한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역 경제를 기술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엔진 역할을 했습니다.
기부자인 본스 부부의 이름을 딴 이 대학은 실무 중심의 엔지니어링 교육을 지향했습니다.
환경 공학,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설립 직후부터 세계적인 연구 실적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공과 대학의 탄생은 UCR이 명실상부한 북미 최고 수준의 연구 대학으로 안착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91
[자연 및 농업과학 대학(CNAS) 통합]
연구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과학 분야와 전통적인 농업과학 분야를 하나의 거대 단과대학으로 통합했습니다. 기초 과학의 이론과 농학의 실무가 결합된 독보적인 융합 연구 모델이 정착되었습니다. 학문적 장벽을 허무는 혁신적인 조직 개편이었습니다.
통합을 통해 고가의 정밀 분석 장비를 전 학과가 공동 활용하며 연구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생물학, 화학, 지구과학 연구팀이 유전학 연구에 협력하는 등 거대한 시너지를 창출했습니다.
CNAS는 현재까지도 UCR에서 가장 많은 연구비와 특허 실적을 자랑하는 핵심 기관으로 활동 중입니다.
1994
[게리 앤더슨 경영 대학원 명명]
독지가 게리 앤더슨의 막대한 기부를 기려 경영 대학원을 'A. 게리 앤더슨 경영 대학원'으로 공식 명명했습니다. 확보된 재원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석학을 초빙하고 학생 장학금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교육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계기였습니다.
기부금은 MBA 과정의 현대화와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 강화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경영 대학원은 기술 경영 및 기업가 정신 분야에서 미국 내 상위권 순위에 진입했습니다.
전용 빌딩인 앤더슨 홀은 학생들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는 창업 허브가 되었습니다.
1997
[인문·예술·사회과학 대학(CHASS) 개편]
인문학과 예술, 사회과학 분야의 학문적 결속을 위해 CHASS 통합 단과대학 체제를 출범시켰습니다.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는 융합적 교육 환경을 캠퍼스에 정착시켰습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정밀함이 만나는 장이 되었습니다.
개편을 통해 디지털 인문학 및 다문화 사회학 연구에서 미 서부 지역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습니다.
전공 간의 벽을 허무는 유연한 교과 과정이 도입되어 학생들의 폭넓은 사고 확장을 도왔습니다.
CHASS는 캠퍼스 내에서 가장 다양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활기찬 지성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2002
[프랑스 코르도바 제7대 총장 취임]
천체 물리학자이자 대학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장인 프랑스 코르도바 박사가 취임하여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그녀는 '다양성 속의 수월성'을 가치로 내걸고 소외 계층 학생들의 교육 기회 확대에 앞장섰습니다. UCR이 사회적 포용성을 갖춘 명문대로 자리 잡은 시기였습니다.
코르도바 총장은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멘토링과 재정 지원 시스템을 비약적으로 강화했습니다.
그녀의 재임 중 UCR은 전미 다양성 지수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공립 대학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훗날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총재로 임명되어 모교인 UCR의 명예를 드높였습니다.
2005
[동문 리처드 슈록 노벨상 수상]
UCR 졸업생인 리처드 슈록 박사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대학의 학문적 수준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교육적 토대가 세계적인 천재를 길러내기에 충분함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캠퍼스 전체가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역사적 날이었습니다.
슈록 박사는 유기 합성 분야의 혁신적인 촉매 연구로 인류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수상 소식은 재학생들에게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영감과 확신을 주었습니다.
대학은 이를 기점으로 북미 최고 권위의 대학 연합인 AAU 가입을 향한 본격적인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2013
[UCR 의과 대학(SOM) 공식 개교]
수십 년간의 지역 사회 염원이었던 독립적인 의과 대학이 캠퍼스 내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내륙 캘리포니아의 고질적인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역사적인 성취였습니다. 지역 사회의 보건 안보를 책임질 첫 의대생들이 입학했습니다.
의과 대학은 지역 소외 계층을 전문적으로 돌볼 일차 의료진 양성에 특화된 사명을 가졌습니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을 받아 최첨단 의료 교육 인프라와 수술실 시뮬레이터를 갖췄습니다.
이 개교로 UCR은 명실상부한 모든 학문 분야를 완비한 최고 수준의 종합 대학교로 완성되었습니다.
[킴 윌콕스 제9대 총장 취임]
언론학자인 킴 윌콕스 박사가 신임 총장으로 선출되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연구 규모의 확대와 우수 교수진 대거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UCR을 전미 최고의 공립 연구 대학 중 하나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윌콕스 총장은 재임 중 수백 명의 신규 교수를 채용하여 대학의 연구 동력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그는 'Living the Promise' 캠페인을 통해 역대 최대 규모의 대학 발전 기금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실용적 리더십 아래 UCR은 각종 대학 평가 지표에서 가파른 수직 상승세를 기록 중입니다.
2016
[사회적 이동성 전미 1위 선정]
권위 있는 매체 평가에서 UCR이 사회적 이동성 부문 전미 1위 대학으로 공식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교육하여 성공적인 중산층으로 진입시키는 능력이 미국 최고임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대학의 진정한 가치가 평등한 기회 제공에 있음을 보여준 성과였습니다.
UCR만의 독보적인 학생 멘토링 시스템과 밀착형 학사 관리가 이 성과의 핵심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이 소식은 전미 교육계에 큰 충격을 주며 공립 대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사회적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UCR은 단순히 연구만 잘하는 대학이 아닌,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3
[미국 대학교 연합(AAU) 가입]
UC 리버사이드가 미국과 캐나다의 최정상급 연구 중심 대학들의 모임인 AAU의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이는 대학의 연구 실력과 교육 품질이 북미 최고 수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명실상부한 북미 최고 명문 대학의 반열에 당당히 올랐습니다.
AAU 가입은 극도로 까다로운 연구 지표와 학술적 영향력 평가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최고의 영예'입니다.
이 성과를 통해 UCR은 전 세계 우수한 연구진과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강력한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킴 윌콕스 총장은 이를 캠퍼스 전체 구성원이 지난 100년간 쌓아온 헌신의 결실이라고 선포했습니다.
2025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비전 선포]
인공지능 시대를 선도할 창의적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새로운 장기 발전 전략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모든 학문 분야에 데이터 과학과 윤리 교육을 접목하는 과감한 학제 개편을 예고했습니다. 미래 지식 사회의 표준을 만드는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입니다.
비전 선포식에서 대학은 캠퍼스의 디지털 트윈 구축과 하이브리드 학습 모델의 완전 정착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전 세계 자매 결연 대학들과 실시간 공동 연구망을 연결하여 국경 없는 교육 시스템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UC 리버사이드는 설립 당시의 개척 정신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며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