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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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6: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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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1967년 NHL의 대대적인 확장기에 탄생하여 미주리주를 상징하는 강력한 스포츠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창단 직후 3년 연속 스탠리 컵 파이널에 진출하며 돌풍을 일으킨 이들은 브렛 헐, 버니 페데코, 알 매키니스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을 배출하며 북미 하키계의 강자로 군림해 왔습니다. 연고지 이전 위기와 재정적 난관을 극복하며 팬들과 쌓아온 끈끈한 유대는 2019년, 리그 최하위에서 정점까지 올라서는 '글로리아' 신화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기다림 끝에 들어 올린 스탠리 컵은 단순한 우승을 넘어, 포기하지 않는 세인트루이스의 불굴의 정신을 전 세계에 입증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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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NHL 프랜차이즈 승인]

NHL 사무국은 리그 확장 정책의 일환으로 세인트루이스 시에 새로운 프랜차이즈 권한을 공식 승인했습니다. 당시 시카고 블랙호크스 구단주들의 강력한 권유로 볼티모어를 제치고 세인트루이스가 선정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스페인풍의 유서 깊은 건물인 세인트루이스 아레나를 활용하려는 리그의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보험 재벌 시드 살로몬 주니어가 주도한 컨소시엄이 구단 운영권을 획득하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구단주였던 제임스 노리스와 아서 워츠는 자신들이 소유한 낙후된 세인트루이스 아레나를 처분하기 위해 이곳에 팀이 창단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살로몬 가문은 이 결정에 즉각 동의하며 팀의 기초를 닦기 위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초대 단장 및 감독 임명]

린 패트릭이 구단의 초대 단장 겸 감독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인 선수단 구성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신생 팀의 기틀을 잡기 위해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을 모집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인해 곧 전설적인 감독 스코티 보우먼에게 지휘봉을 넘기게 됩니다.

린 패트릭은 창단 준비 기간 동안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팀의 골격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의 아들인 크레이그 패트릭 역시 나중에 NHL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등 하키 명문가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장직을 수행하며 구단의 초기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67

[역사적인 첫 경기]

세인트루이스 블루스가 세인트루이스 아레나에서 미네소타 노스 스타즈를 상대로 첫 공식 경기를 치렀습니다. 경기 결과는 2-2 무승부로 끝났으며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새로운 팀의 등장에 열광했습니다. 이는 세인트루이스가 메이저 하키 시장으로 복귀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래리 키넌이 구단 역사상 첫 골을 기록하며 경기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 경기는 지역 음악인 W.C. 핸디의 곡명에서 따온 '블루스'라는 팀 이름이 대중에게 각인된 날이기도 합니다. 블루스는 신생 팀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노련한 운영을 선보이며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스코티 보우먼 감독 취임]

부진했던 시즌 초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젊고 유능한 스코티 보우먼이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엄격한 훈련과 전술적 혁신을 통해 블루스를 단숨에 우승권 팀으로 변모시켰습니다. 보우먼은 이후 블루스를 3년 연속 파이널로 이끄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보우먼 감독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팀에 강력한 규율을 심었습니다. 그가 이끈 블루스는 확장 디비전 팀들 중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며 하키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 보우먼이 구축한 시스템은 향후 구단이 수십 년간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이 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1968

[첫 스탠리 컵 파이널 진출]

창단 첫해에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를 상대로 스탠리 컵 파이널 무대를 밟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비록 시리즈 전적 0-4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신생 팀으로서 파이널까지 오른 것은 경이로운 성과였습니다. 모든 경기가 1점 차 박빙의 승부로 치러질 만큼 치열한 접전이었습니다.

골텐더 글렌 홀은 비록 팀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 MVP인 콘 스마이스 트로피를 수상했습니다. 당시 블루스는 강력한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식스 팀인 몬트리올을 괴롭혔습니다. 이 패배는 세인트루이스 팬들에게 우승을 향한 갈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9

[2년 연속 파이널 진출]

블루스는 다시 한번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와 파이널에서 격돌하며 창단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했습니다. 결과는 또다시 0-4 패배였으나 서부 디비전의 절대 강자로서 구단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스코티 보우먼 감독의 리더십 아래 팀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글렌 홀과 자크 플랑트라는 두 명의 전설적인 골텐더가 골문을 지키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몬트리올의 압도적인 공격력에 고전했으나 블루스의 투혼은 하키 팬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연속된 파이널 진출은 세인트루이스 시에 아이스하키 붐을 일으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1970

[3년 연속 파이널 진출]

창단 3년 만에 다시 파이널에 오르며 보스턴 브루인스와 역사적인 승부를 펼쳤습니다. 특히 4차전 연장에서 보비 오어에게 허용한 결승골은 하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3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으나 블루스의 초기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보비 오어의 공중 부양 골 장면이 탄생한 이 시리즈에서 블루스는 다시 한번 0-4로 고배를 마셨습니다. 신생 팀으로서 파이널에 단골로 진출한 것은 당시 리그 규정이 확장 팀들에 유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후 블루스는 오랜 기간 파이널 무대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긴 침체기에 빠지게 됩니다.

1971

[알 아버의 선수 은퇴 및 감독 데뷔]

팀의 핵심 수비수이자 주장이었던 알 아버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코칭스태프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이후 스코티 보우먼의 뒤를 이어 감독직을 수행하며 팀의 세대교체를 주도했습니다. 알 아버는 훗날 뉴욕 아일랜더스에서 왕조를 건설하는 명감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버는 선수 시절 보여준 지능적인 플레이와 리더십을 벤치에서도 그대로 발휘했습니다. 그의 감독 데뷔는 블루스가 초기 성공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짧은 재임 기간이었으나 알 아버의 전술적 토대는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4

[사상 첫 플레이오프 탈락]

창단 이후 줄곧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블루스가 1973-74 시즌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첫 번째 암흑기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재정적 불안정이 성적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팬들의 실망감은 컸으나 구단은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리빌딩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 시기 팀 내부적으로는 구단주 가문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며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오프 탈락은 25년 연속 진출이라는 대기록이 시작되기 전의 일시적인 쉼표와 같았습니다.

1976

[에밀 프랜시스 단장 영입]

뉴욕 레인저스의 명장 에밀 프랜시스가 블루스의 단장직을 맡으며 구단 재건에 나섰습니다. 그는 하키 지능이 뛰어난 유망주들을 드래프트하여 팀의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프랜시스의 영입은 블루스가 재정적 위기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프랜시스는 드래프트 시스템을 강화하여 버니 페데코와 브라이언 서터 같은 핵심 자원들을 선발했습니다. 그의 별명인 '더 캣(The Cat)'처럼 영리한 거래와 협상으로 팀 전력을 보강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블루스는 다시 한번 서부의 강자로 부상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버니 페데코 드래프트 지명]

블루스는 197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7순위로 버니 페데코를 지명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를 영입했습니다. 페데코는 탁월한 패스 능력과 시야를 바탕으로 블루스의 공격진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훗날 구단 통산 최다 포인트 기록을 세우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됩니다.

페데코는 데뷔 직후부터 팀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 잡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등번호 24번은 나중에 영구 결번될 정도로 블루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팀의 전성기를 이끈 '매직 맨'으로서 그의 활약은 블루스의 하키 스타일을 정의했습니다.

1977

[롤스턴 퓨리나의 구단 인수]

재정적 위기에 처했던 블루스가 세인트루이스 기반의 사료 대기업인 롤스턴 퓨리나(Ralston Purina)에 매각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구단은 안정적인 자금력을 확보하고 연고지 정착을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홈구장의 명칭도 기업의 상징을 따서 '체커돔(Checkerdome)'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시드 살로몬 가문은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구단 소유권을 넘겨야 했습니다. 롤스턴 퓨리나의 소유 기간 동안 팀은 재정적 안정 속에서 꾸준히 성적을 냈습니다. 이 시기는 블루스가 지역 사회와 밀접하게 소통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밥 개소프 영구 결번]

비극적인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수비수 밥 개소프의 등번호 3번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개소프는 팀의 핵심 수비수이자 리더로서 촉망받던 인재였기에 그의 죽음은 구단 전체에 큰 슬픔을 안겼습니다. 이는 선수에 대한 예우와 구단의 전통을 세우는 상징적인 의식이었습니다.

개소프는 강력한 신체 플레이와 헌신적인 태도로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결번식은 세인트루이스 아레나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되었습니다. 이후 등번호 3번은 블루스 역사에서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81

[바클레이 플레이거 영구 결번]

팀의 창단 멤버이자 오랜 기간 주장을 맡았던 바클레이 플레이거의 등번호 8번이 영구 결번 처리되었습니다. 플레이거는 블루스의 투혼과 끈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선수 은퇴 후에도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하며 팀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결번은 블루스 창단 멤버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플레이거 형제들 중 장남으로서 팀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선수 시절 보여준 거친 몸싸움과 리더십은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결번식 당일 팬들은 '미스터 블루스'라 불린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역대 최다 승점 시즌 기록]

1980-81 시즌 블루스는 45승을 거두며 107승점이라는 당시 구단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버니 페데코와 마이크 리웃 같은 핵심 선수들이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을 지배했습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는 탈락했으나 블루스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해로 남았습니다.

골텐더 마이크 리웃은 리그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되는 레스터 B. 피어슨 상을 수상했습니다. 강력한 공격력과 안정된 골문 수비가 조화를 이루며 리그 전체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이 시즌의 성공은 블루스가 하키계의 주류 구단으로 인정받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3

[새스커툰 연고지 이전 시도]

구단주인 롤스턴 퓨리나가 팀을 캐나다 새스커툰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매각을 시도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NHL 사무국과 다른 구단주들은 소규모 시장으로의 이전을 강력히 반대하며 이를 저지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존폐가 걸린 일촉즉발의 위기였습니다.

롤스턴 퓨리나는 리그의 반대에 부딪히자 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팀을 리그 사무국에 매몰차게 넘겨버렸습니다. NHL은 임시로 구단을 관리하며 세인트루이스에 팀을 잔류시킬 새로운 구단주를 물색했습니다. 팬들은 '블루스를 지키자'는 운동을 벌이며 연고지 사수에 열을 올렸습니다.

[해리 오네스트의 구단 인수]

부동산 사업가 해리 오네스트가 NHL로부터 블루스를 인수하며 연고지 이전 위기를 종결시켰습니다. 그는 구단을 세인트루이스에 잔류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며 내실 있는 경영으로 팀을 안정시켰습니다. 오네스트 체제 아래 블루스는 다시 한번 플레이오프 경쟁력을 회복했습니다.

오네스트는 적은 자본으로 구단을 운영했으나 단장 론 캐론을 영입하는 등 핵심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팀은 실리적인 운영을 통해 재정적 흑자로 전환되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은 팀을 지켜낸 오네스트를 구세주처럼 반겼습니다.

[론 캐론 단장 취임]

몬트리올 캐나디언스 출신의 유능한 행정가 론 캐론이 블루스의 단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선수 평가 능력과 과감한 트레이드로 '트레이딩 론'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캐론 단장은 이후 브렛 헐을 영입하는 등 구단 역사를 바꾼 결정적 거래들을 성사시켰습니다.

캐론은 풍부한 하키 지식을 바탕으로 팀의 고질적인 약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의 공격적인 행보는 정체되어 있던 블루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가 2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6

[먼데이 나이트 미라클]

캘거리 플레임즈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에서 종료 직전까지 열세였던 경기를 뒤집고 승리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2-5로 뒤지던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을 만든 뒤 연장에서 승리하며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갔습니다. 이는 블루스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손꼽히는 사건입니다.

더그 위켄하이저가 연장에서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세인트루이스 아레나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이 경기는 선수들의 불굴의 투지를 상징하는 '블루스 정신'의 정수로 평가받습니다. 비록 7차전에서 패해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팬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1987

[마이클 샤나한의 구단 인수]

지역 사업가 마이클 샤나한이 이끄는 투자 그룹이 해리 오네스트로부터 구단을 인수했습니다. 샤나한 구단주는 적극적인 투자와 선수 영입을 통해 팀을 대권 도전자로 격상시키고자 했습니다. 그의 주도하에 블루스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전력 보강을 단행했습니다.

샤나한은 팬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경기장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 큰 공을 들였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블루스는 브렛 헐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보유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구단의 가치를 높이고 현대적인 프로 구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한 시기였습니다.

1988

[브렛 헐 트레이드 영입]

론 캐론 단장은 캘거리 플레임즈로부터 젊은 득점원 브렛 헐을 영입하는 역사적인 트레이드를 성사시켰습니다. 헐은 세인트루이스로 오자마자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리그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거래는 블루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트레이드로 평가받습니다.

헐은 블루스에서 뛰는 동안 수많은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강력한 원타이머 슛은 상대 골텐더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영입을 통해 블루스는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브라이언 서터 영구 결번]

블루스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던 브라이언 서터의 등번호 11번이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서터는 커리어 전체를 블루스에서만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로 특유의 헌신적인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곧바로 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서터 형제들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결번식은 그의 헌신을 기리는 수많은 전 동료들과 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등번호 11번은 블루스가 추구하는 '노력과 투지'의 가치를 상징하는 번호가 되었습니다.

1989

[아담 오츠 영입]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로부터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 아담 오츠를 영입하여 브렛 헐의 파트너를 완성했습니다. 오츠는 헐에게 정확한 패스를 배달하며 리그 최강의 콤비인 '헐 앤 오츠'를 형성했습니다. 이들의 결합은 블루스의 공격력을 리그 최정상급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두 선수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찰떡궁합을 선보이며 경기마다 다득점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담 오츠는 블루스 소속으로 수많은 어시스트 기록을 세우며 팀의 상승세를 주도했습니다. 비록 함께한 기간은 짧았지만 블루스 팬들에게 가장 화려했던 공격 하키를 선사했습니다.

1990

[브렛 헐의 72골 시즌 기록]

브렛 헐은 1989-90 시즌 동안 72골을 터뜨리며 리그 득점 왕에 올랐습니다. 이는 NHL 역사상 한 시즌 70골 이상을 기록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는 대단한 업적이었습니다. 헐의 득점 행진은 세인트루이스 전역을 열광에 빠뜨렸습니다.

그의 득점력에 힘입어 블루스는 플레이오프 상위 시드를 확보하며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이 시즌의 활약으로 브렛 헐은 리그 MVP인 레이디 빙 트로피 등을 휩쓸었습니다. 그는 경기마다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쇼맨십을 선보이며 인기를 독차지했습니다.

[스콧 스티븐스 자유 계약 영입]

블루스는 워싱턴 캐피털스로부터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스콧 스티븐스를 전격 영입했습니다. 이는 당시 NHL 규정에 따른 파격적인 보상 선수 지급을 감수한 과감한 투자였습니다. 스티븐스의 가세로 블루스의 수비진은 단숨에 리그 최강 수준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스티븐스는 합류 즉시 팀의 주장을 맡아 강력한 카리스마로 수비진을 지휘했습니다. 그의 압도적인 피지컬 플레이는 상대 공격수들을 위축시키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 뒤 중재 위원회의 판결로 팀을 떠나게 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1991

[브렛 헐의 86골 신기록 달성]

브렛 헐은 1990-91 시즌 86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NHL 역사상 한 시즌 최다 득점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는 웨인 그레츠키의 기록에 근접한 수치로, 순수 슈터로서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취였습니다. 헐은 이 시즌 활약으로 리그 MVP인 하트 트로피를 수상했습니다.

헐의 86골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깨지지 않는 블루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기록입니다. 그는 전매특허인 강력한 슬랩샷과 공간 침투로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이 시즌 블루스는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2

[밥 베리 감독 취임]

브라이언 서터의 뒤를 이어 밥 베리가 블루스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안정적인 수비 밸런스를 중시하며 팀의 연승 행진을 이끌었습니다. 베리 감독 체제 하에서도 블루스는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했습니다.

베리는 선수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팀 분위기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비록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정규 시즌 동안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경쟁력을 보였습니다. 이후 구단이 더 공격적인 성향의 감독을 영입하기 전까지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보냈습니다.

1994

[마이크 키넌 단장 및 감독 임명]

뉴욕 레인저스를 우승으로 이끈 마이크 키넌이 블루스의 전권을 쥔 단장 겸 감독으로 화려하게 입성했습니다. 그는 우승을 위해 대대적인 선수 개편을 예고하며 팀에 긴장감을 불어넣었습니다. 키넌의 부임은 블루스가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건 대승부였습니다.

그는 부임 직후부터 기존 선수단과의 마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선수들 사이에서 '철권통치'로 불릴 만큼 엄격한 규율과 훈련을 요구했습니다. 키넌 체제는 화려한 스타 영입과 내부 갈등이라는 양면성을 띠며 운영되었습니다.

[알 매키니스 영입]

블루스는 캘거리 플레임즈의 전설적인 수비수 알 매키니스를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슬랩샷을 보유한 매키니스는 블루스의 파워플레이와 수비를 강화하는 핵심 전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블루스 유니폼을 입고도 수많은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매키니스의 슛은 수비수들의 스틱을 부러뜨릴 만큼 강력하여 '빅 알'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경기장 전체를 조망하는 탁월한 하키 지능으로 팀의 수비 중심을 잡았습니다. 훗날 그의 등번호 2번은 영구 결번되며 블루스의 전설로 남게 됩니다.

[킬 센터(현 엔터프라이즈 센터) 개장]

블루스는 60년 넘게 사용하던 낡은 세인트루이스 아레나를 떠나 최첨단 시설을 갖춘 킬 센터로 홈구장을 이전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수익 구조를 현대화하고 팬들에게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개장 경기는 하키 열기로 가득 찬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축제였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새 경기장은 접근성이 뛰어나 더 많은 관중을 유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이 경기장은 스콧트레이드 센터를 거쳐 현재의 엔터프라이즈 센터로 명칭이 바뀌며 팀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첨단 오디오 시스템과 대형 전광판은 홈 팬들에게 새로운 하키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1995

[크리스 프롱거 트레이드 영입]

마이크 키넌 단장은 팀의 핵심 공격수였던 브렌든 샤나한을 하트포드 웨일러스로 보내고 어린 유망주 수비수 크리스 프롱거를 데려오는 파격적인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초기에는 팬들의 비난을 샀으나 프롱거는 곧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하며 블루스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이 거래는 블루스 역사상 최고의 가성비 트레이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프롱거는 압도적인 체격과 지능적인 플레이로 상대 공격진을 완벽히 봉쇄했습니다. 그는 블루스 소속으로 수비수로서 드물게 리그 MVP인 하트 트로피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의 성장은 블루스가 90년대 후반 리그 최강의 수비력을 갖추는 데 핵심이었습니다.

1996

[웨인 그레츠키의 짧은 블루스 합류]

하키의 황제 웨인 그레츠키가 LA 킹스로부터 블루스로 트레이드되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습니다. 브렛 헐과 그레츠키가 같은 팀에서 뛴다는 소식에 하키 팬들은 흥분했으나, 마이크 키넌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해 그의 세인트루이스 생활은 단 31경기에 그쳤습니다. 짧았지만 블루스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영입 순간이었습니다.

그레츠키는 블루스 유니폼을 입고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팀의 파이널 진출을 이끌지는 못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신분이 된 그는 구단과의 재계약 대신 뉴욕 레인저스행을 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마이크 키넌 감독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1999

[로리 가문의 구단 인수]

월마트 상속녀 낸시 월튼 로리와 그녀의 남편 빌 로리가 블루스와 킬 센터를 인수했습니다. 새로운 자본력의 유입으로 블루스는 우승을 위한 더욱 과감한 행보를 약속했습니다. 로리 구단주는 농구 팀 영입에도 관심을 보이며 세인트루이스 스포츠 시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로리 체제 초기 블루스는 리그 최정상급 전력을 유지하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농구 팀 영입 실패와 구단 운영 소홀로 인해 점차 팬들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이들의 소유 기간 동안 블루스는 역사적인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2000

[프레지던트 트로피 수상]

블루스는 1999-2000 시즌 정규 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유일무이한 프레지던트 트로피를 수상했습니다. 크리스 프롱거와 알 매키니스가 버티는 수비진과 파볼 데미트라의 공격력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이 우승으로 블루스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우뚝 섰습니다.

정규 시즌 동안 보여준 압도적인 경기력은 블루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산호세 샤크스에 충격적인 업셋을 당하며 탈락하는 비운을 맛봤습니다. 이 사건은 '정규 시즌 1위가 우승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징크스의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크리스 프롱거 하트 트로피 수상]

수비수 크리스 프롱거가 리그 MVP인 하트 트로피와 최우수 수비수상인 노리스 트로피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수비수가 리그 MVP를 수상한 것은 보비 오어 이후 처음 있는 일로, 프롱거의 영향력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는 블루스 구단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개인 수상 기록입니다.

프롱거는 경기당 30분에 육박하는 출전 시간을 소화하며 공수 양면에서 팀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은 블루스가 리그 최강의 수비 팀으로 불리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수상으로 프롱거는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수비수로 공인받았습니다.

2006

[데이브 체켓의 구단 인수]

빌 로리 구단주는 성적 하락과 경영 악화로 인해 구단을 데이브 체켓이 이끄는 SCP 월드와이드에 매각했습니다. 체켓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 사장 출신의 스포츠 경영 전문가로 팀의 재건을 약속했습니다. 이는 블루스가 오랜 플레이오프 연속 진출 기록이 중단된 직후의 변화였습니다.

체켓 구단주는 구단의 행정 시스템을 정비하고 유소년 육성에 집중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하지만 재임 기간 동안 팀은 성적 부진과 재정난 사이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구단은 다시 한번 안정적인 지역 구단주를 찾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알 매키니스 영구 결번]

블루스 수비의 상징이었던 알 매키니스의 등번호 2번이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매키니스는 강력한 슈팅과 노련한 수비로 블루스의 90년대 후반을 책임진 전설이었습니다. 그의 결번식은 팀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의 축복 속에 열렸습니다.

매키니스는 은퇴 후에도 구단 프런트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팀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슬랩샷 속도를 측정하는 기구는 경기장의 인기 명물이 되었을 정도로 그의 상징성은 컸습니다. 결번된 2번 유니폼은 경기장 천장에 걸려 블루스 후배 수비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브렛 헐 영구 결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스타인 브렛 헐의 등번호 16번이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헐은 블루스에서 뛰는 동안 세인트루이스를 하키 도시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의 결번식은 블루스 팬들에게는 한 시대의 마무리를 알리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헐은 소감 발표에서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사랑이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뛰어난 득점력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팬들 사이에서 회자됩니다. 등번호 16번은 블루스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공격 하키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0

[더그 암스트롱 단장 취임]

유능한 하키 행정가 더그 암스트롱이 블루스의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하여 팀의 현대적 리빌딩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체계적인 드래프트와 효율적인 계약 관리를 통해 팀의 전력을 점진적으로 강화했습니다. 암스트롱의 부임은 훗날 2019년 우승을 일궈낸 '암스트롱 사단'의 시작이었습니다.

암스트롱은 무리한 스타 영입보다는 팀의 깊이를 더하는 실리적인 운영에 주력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안목으로 블라디미르 타라센코와 같은 핵심 유망주들을 지명했습니다. 단장으로서 보여준 그의 일관된 철학은 블루스가 다시 플레이오프 강팀으로 복귀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11

[켄 히치콕 감독 취임]

수비 전술의 대가 켄 히치콕이 시즌 도중 소방수로 투입되어 블루스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팀의 수비 조직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며 연승 행진을 이끌었습니다. 히치콕 체제 아래 블루스는 정규 시즌 리그 최강의 수비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철저한 위치 선정과 협력 수비를 요구하며 실점을 최소화하는 하키를 구현했습니다. 부임 첫해에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잭 아담스 상(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히치콕의 지도력은 블루스가 수년간 중앙 디비전의 선두권을 유지하게 한 핵심이었습니다.

2012

[톰 스틸먼의 구단 인수]

세인트루이스 기반의 사업가 톰 스틸먼이 이끄는 지역 투자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며 마침내 구단주 잔혹사를 끝냈습니다. 스틸먼은 구단의 지역 연고성을 강조하며 팬 친화적인 경영을 약속했습니다. 지역 자본의 구단 인수는 블루스가 심리적 안정을 찾고 우승을 향해 매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틸먼 구단주는 경기장 시설 개선과 마케팅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팬들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그는 더그 암스트롱 단장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안정적인 운영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 구단주 체제 하에서 블루스는 창단 후 가장 찬란한 영광인 스탠리 컵 우승을 일궈내게 됩니다.

2017

[밥 플레이거 영구 결번]

블루스의 영원한 홍보대사이자 전설적인 수비수 밥 플레이거의 등번호 5번이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밥 플레이거는 선수, 코치, 감독을 거치며 블루스 구단과 평생을 함께한 진정한 레전드였습니다. 그의 결번은 블루스 역사의 뿌리를 기리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유머러스한 성격과 열정적인 태도로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하키인이었습니다. 결번식 당일 그는 감동적인 소감을 남기며 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훗날 2019년 팀의 우승 퍼레이드에 참석하여 인생의 한을 푸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2018

[라이언 오라일리 트레이드 영입]

더그 암스트롱 단장은 버팔로 세이버스로부터 전천후 센터 라이언 오라일리를 데려오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오라일리는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기량을 갖춘 선수로 팀의 척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영입은 블루스가 우승을 위해 채워야 했던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오라일리는 합류 직후부터 팀의 리더 그룹에 속해 어린 선수들을 독려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수비와 정교한 페이스오프 능력은 팀의 전술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이후 그는 우승 시즌에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하며 자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크레이그 베루베 임시 감독 부임]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진 마이크 여 감독을 경질하고, 코치였던 크레이그 베루베를 임시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베루베는 선수들에게 강력한 신체 하키와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전술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리그 최하위에 머물던 블루스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인사였습니다.

베루베는 특유의 거친 리더십으로 느슨해진 팀 분위기를 다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을 찾아내며 팀의 연승 행진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그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는 드라마를 썼습니다.

2019

[리그 최하위 기록의 굴욕]

2019년 새해 벽두에 블루스는 NHL 전체 31개 팀 중 승률 최하위를 기록하며 시즌 포기 위기에 몰렸습니다. 팬들은 리빌딩을 요구했으나 선수단은 포기하지 않고 반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 시점은 훗날 '기적의 우승' 서사의 시작점이 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팀 내부적으로는 전술 변화와 골텐더 교체라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최하위 기록은 선수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언론들은 이 시기를 블루스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순간 중 하나로 묘사했습니다.

[조던 빈닝턴의 혜성 같은 등장]

마이너 리그에서 올라온 신예 골텐더 조던 빈닝턴이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를 상대로 첫 선발 출전하여 셧아웃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의 등장은 블루스의 수비를 안정시켰고 팀 전체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빈닝턴은 침착한 방어로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습니다.

빈닝턴의 합류 이후 블루스는 믿기 힘든 연승 행진을 시작하며 순위를 급격히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냉정한 성격과 흔들리지 않는 멘탈은 플레이오프의 압박감을 견디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신인 골텐더의 활약은 2019년 우승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열쇠였습니다.

[11경기 연속 승리 기록]

블루스는 2월 한 달간 11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며 리그 전체를 놀라게 했습니다. 최하위였던 팀이 단 한 달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권으로 도약하는 전무후무한 반등을 일궈냈습니다. 이 시기 팀의 상징곡이 된 '글로리아(Gloria)'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승리할 때마다 라커룸에서 울려 퍼진 '글로리아'는 팬들 사이에서 우승의 염원을 담은 찬가가 되었습니다. 공수 밸런스가 완벽해진 블루스는 그 어떤 팀도 두렵지 않은 강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연승 행진은 선수들에게 우승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을 심어준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상 첫 스탠리 컵 우승]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파이널 7차전 원정 경기에서 4-1로 승리하며 창단 52년 만에 마침내 스탠리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리그 최하위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NHL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 시나리오였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시 전체는 감격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라이언 오라일리가 플레이오프 MVP인 콘 스마이스 트로피를 수상하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50년 넘게 우승을 기다려온 올드 팬들은 거리로 나와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이 우승은 블루스 구단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위대한 순간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2022

[크리스 프롱거 영구 결번]

블루스 수비의 정점이었던 크리스 프롱거의 등번호 44번이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프롱거는 블루스 소속으로 하트 트로피를 수상하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팬데믹으로 연기되었던 결번식은 수많은 팬들의 환호 속에 거행되었습니다.

프롱거는 소감에서 블루스가 자신을 진정한 하키 선수로 성장시켜 준 고향 같은 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결번으로 블루스는 수비수 전설들의 유니폼을 모두 경기장 천장에 거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행사는 블루스의 명문 구단으로서의 전통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4

[짐 몽고메리 감독 취임]

블루스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드류 배니스터의 뒤를 이어 보스턴 브루인스 출신의 짐 몽고메리를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몽고메리는 전술적 유연성과 공격적인 하키 스타일로 정평이 난 인물입니다. 구단은 그가 블루스에 새로운 전술적 돌파구를 마련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임 직후 몽고메리는 팀의 공격 전개 방식을 현대적으로 개편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의 영입은 블루스가 다시 한번 대권 도전을 위해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중요한 행보입니다. 팬들은 몽고메리 감독이 '글로리아'의 영광을 재현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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