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 썬더스
스포츠 구단, 농구팀, KBL 농구단
최근 수정 시각 : 2026-01-09- 11:22:38
서울 삼성 썬더스는 1978년 창단된 삼성전자 농구단을 모태로 하는 대한민국 프로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실업 농구 시절부터 현대전자와 함께 '삼성-현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1997년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수원에서 시작해 2001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잠실 시대'를 열었습니다. 통산 2회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2000-01, 2005-06)을 기록하며 명문 구단으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김현준, 문경은, 주희정, 서장훈, 이상민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거쳐 간 화려한 계보를 자랑합니다. 특히 '천재 슈터' 김현준의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여 구단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으며, 제일기획 산하로 운영 주체가 변경된 이후에도 체계적인 스포츠 비즈니스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비록 최근 성적 면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두터운 팬덤과 역사적 자산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정상을 향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명문 구단입니다.
1978
[삼성 남자 농구단 창단]
대한민국 농구 역사에 획을 그은 삼성 남자 농구단이 공식 창단되었습니다. 이인표 초대 감독을 중심으로 우수한 선수단을 구성하며 실업 농구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삼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시 현대건설 농구단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창단 초기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선수 수급과 훈련 방식에서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여 한국 농구의 질적 향상을 도모했습니다. 이 시기에 뿌리 내린 삼성 농구의 관리 철학은 훗날 프로 무대에서도 팀의 핵심 자산이 되었습니다.
1979
[코리안리그 첫 우승]
창단 이듬해인 1979년, 실업 농구 대회인 코리안리그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신생팀의 패기로 기성 강호들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최강팀이었던 산업은행 등을 제압하며 단숨에 실업 농구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승을 통해 선수단은 강한 자신감을 얻었으며 지역 사회와 팬들에게 삼성 농구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이 성공은 삼성전자가 농구단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
[용인 삼성 트레이닝 센터(STC) 완공]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훈련 시설인 용인 STC가 완공되어 농구단이 입주했습니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진국형 웨이트 시설과 물리치료 장비를 갖추어 부상 방지와 전력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STC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 중 하나로 꼽히며 삼성 구단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타 구단 선수들도 부러워할 만큼 완벽한 식단과 숙소 시설은 삼성 농구단의 소속감을 높여주었습니다.
1982
[삼성전자 농구단으로 명칭 변경]
김인건 감독이 부임하면서 구단 명칭을 '삼성전자 농구단'으로 변경하고 전력을 재정비했습니다. 기업의 이름을 앞세운 본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의 시작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농구단의 열정을 결합하여 세련된 구단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썼습니다. 김인건 감독은 과학적인 트레이닝 기법을 도입하여 선수들의 기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이 재창단을 기점으로 삼성전자는 농구대잔치 시절의 화려한 전성기를 준비하게 됩니다.
1983
[전자슈터 김현준 입단]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전자슈터' 김현준이 삼성전자에 전격 입단하며 전설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슈터로 불릴 인물의 등장이었습니다.
김현준은 입단 직후부터 압도적인 득점력을 과시하며 삼성전자의 공격진을 이끄는 핵심 기둥이 되었습니다. 현대전자의 이충희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농구대잔치의 흥행을 주도하는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삼성 한 팀에서만 뛰며 훗날 구단 유일의 영구결번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984
[농구대잔치 84-85 시즌 우승]
대한민국 농구 최고의 축제인 농구대잔치에서 역사적인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김현준, 김진 등 호화 라인업을 앞세워 리그를 평정했습니다.
결승에서 라이벌 현대전자를 꺾고 거둔 우승으로 삼성 농구가 실업 최강임을 만천하에 증명했습니다. 당시 전 국민적인 농구 열기 속에서 거둔 성과라 구단의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이 우승은 삼성전자 농구단이 80년대 황금기를 구가하는 강력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5
[농구대잔치 2연패 달성]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농구대잔치 정상에 오르며 2년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빈틈없는 조직력과 폭발적인 화력이 조화를 이뤘습니다.
연속 우승을 통해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왕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주전 선수들의 고른 활약과 벤치 멤버들의 탄탄한 지원이 만들어낸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팬들은 삼성 농구 특유의 세련되고 정교한 플레이에 열광하며 경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1987
[농구대잔치 87-88 시즌 우승]
치열한 순위 다툼 끝에 다시 한번 농구대잔치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김현준의 절정의 슛 감각이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80년대 후반 기아자동차의 부상 속에서도 삼성전자의 저력을 보여준 값진 우승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삼성만의 근성 있는 농구가 빛을 발했습니다. 이 우승은 실업 농구 시절 삼성이 거둔 마지막 농구대잔치 우승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88
[서울 올림픽 농구 경기 개최 지원]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현재 삼성의 홈구장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농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삼성 농구단은 연습 파트너 및 운영 지원에 힘을 보탰습니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누비던 코트를 훗날 홈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구단에 매우 뜻깊은 역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올림픽 대회를 치른 권위 있는 공간으로서 잠실체육관의 역사적 가치가 부각되었습니다. 이 시기 쌓은 대규모 국제 대회 운영 노하우는 훗날 구단의 홈 경기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91
[농구대잔치 득점왕 김현준 등극]
삼성의 에이스 김현준 선수가 농구대잔치에서 압도적인 득점력을 뽐내며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그의 정교한 슛은 신의 경지에 달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매 경기 수비수 서너 명을 달고서도 고감도 슛을 성공시키는 그의 활약은 삼성 팬들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는 득점뿐만 아니라 성실한 경기 매너로 타 팀 선수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김현준의 득점 기록들은 현재까지도 한국 농구사의 중요한 통계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1994
[람보슈터 문경은 입단]
연세대학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람보슈터' 문경은 선수가 삼성전자에 합류했습니다.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동시에 새로운 공격 옵션을 확보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최고의 스타였던 문경은의 입단으로 삼성전자는 다시 한번 강력한 외곽포를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선배 김현준과 함께 공포의 슈터 듀오를 형성하여 상대 수비진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은 젊은 팬층을 대거 유입시키는 큰 마케팅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1996
[수원 삼성 썬더스 프로 구단 창단]
실업 농구 시대를 마감하고 경기도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농구단 '수원 삼성 썬더스'가 정식 창단되었습니다. KBL 출범의 핵심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수원 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여 경기도 지역의 농구 붐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썬더스(Thunders)'라는 팀명은 번개처럼 빠르고 강력한 농구를 지향한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프로 전환과 함께 대대적인 구단 체질 개선과 전문적인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1997
[KBL 원년 시즌 개막전 참여]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농구 리그인 KBL의 개막전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프로 시대를 열었습니다. 역사적인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최경희 초대 감독 체제 아래 프로 무대의 높은 벽에 도전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제도 적응 실패와 부상 악재 등으로 인해 원년 시즌 8위에 머무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프로 농구의 즐거움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김동광 감독 취임]
부진을 면치 못하던 팀의 구원투수로 김동광 감독이 제2대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 기강을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김동광 감독은 부임 직후 혹독한 훈련과 전술 재편을 통해 팀의 수비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선수들에게 이기는 법을 가르치며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팀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훗날 삼성 썬더스가 프로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8
[야전사령관 주희정 영입]
원주 나래 블루버드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신인왕 출신 가드 주희정을 영입했습니다. 고질적인 가드진 불안을 단숨에 해결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주희정은 부임 직후부터 팀의 리딩을 완벽하게 책임지며 삼성의 스피드 농구를 완성시켰습니다.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과 성실함은 팀 동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으며 승리 확률을 높였습니다. 주희정의 합류는 삼성이 하위권에서 우승 후보로 발돋움하는 가장 핵심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9
[김현준 코치 불의의 사고]
구단의 상징이었던 김현준 코치가 출근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농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설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전 국민이 슬퍼했습니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던 시기에 일어난 비극이라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삼성 썬더스는 그의 장례를 구단장으로 정성껏 치르며 레전드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다했습니다. 이후 구단은 매년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수여하며 고인의 숭고한 농구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2000
[강혁-이규섭 황금 라인업 구축]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강혁과 이규섭을 선발하며 향후 10년을 책임질 핵심 전력을 확보했습니다. 구단의 육성 시스템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이규섭은 데뷔 첫해 신인상을 차지하며 삼성의 프로 전환 후 첫 신인왕 배출 기록을 세웠습니다. '2대 가드' 강혁은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주희정과 함께 공포의 가드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두 선수는 훗날 삼성 썬더스의 상징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로 성장하게 됩니다.
2001
[프로농구 첫 통합 우승 달성 (V1)]
2000-01 시즌 정규리그 1위에 이어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하며 창단 후 첫 정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무결점의 전력으로 리그를 압도했습니다.
아티머스 맥클래리와 무스타파 호프 등 외국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의 조화가 역대급이었습니다. 김동광 감독은 명장 반열에 올랐으며 삼성은 수원 연고지 시절 최고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 우승으로 삼성은 실업 시절의 명성을 프로에서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0번 김현준 영구결번 지정]
구단 역사상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영구결번으로 고(故) 김현준 선수의 10번을 지정했습니다.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챔피언 결정전 우승 확정 직후 거행된 영구결번식은 수많은 팬들의 눈물과 박수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삼성 썬더스의 선수들은 그의 번호가 새겨진 코트 위에서 뛰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구결번 10번은 현재까지도 잠실실내체육관 천장에 걸려 구단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
수원을 떠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서울 시대'를 개막했습니다. 더 넓은 시장과 팬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KBL의 연고지 공동 배정 정책에 따라 서울 SK 나이츠와 함께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연고지 이전과 함께 구단 명칭을 공식적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로 변경하고 새로운 로고를 발표했습니다. 서울 팬들의 뜨거운 농구 열기를 흡수하며 삼성은 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잠실실내체육관 홈 경기장 사용]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잠실실내체육관을 전용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88 서울 올림픽의 영광이 깃든 장소입니다.
지하철 2, 9호선과 인접한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매 시즌 최다 관중 동원 상위권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경기장 내부에 대형 전광판과 특화된 좌석 시설을 확충하며 팬 친화적인 관람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후 25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잠실실내체육관은 썬더스 팬들에게 '농구의 메카'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2002
[국보급 센터 서장훈 영입]
자유계약(FA) 시장에서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 서장훈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리그 최고의 높이를 보유하게 된 역사적 계약이었습니다.
서울 SK 나이츠에서 뛰던 서장훈의 영입은 당시 KBL 판도를 뒤흔든 초대형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합류로 삼성은 매 경기 압도적인 골밑 우위를 점하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군림했습니다. 서장훈은 입단 후 구단의 상징적인 스타로 활약하며 삼성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었습니다.
2003
[주희정 선수 가로채기 1위 달성]
삼성의 가드 주희정이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과시하며 시즌 가로채기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빠른 손과 넓은 시야는 삼성 수비의 핵심이었습니다.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그의 가로채기는 곧바로 삼성의 장기인 속공으로 이어져 득점을 생산했습니다. 그는 공수 양면에서 쉴 새 없이 코트를 누비며 팀의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렸습니다. 이 수상을 통해 주희정은 KBL 최고의 포인트 가드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004
[안준호 감독 취임]
김동광 감독의 뒤를 이어 전략가로 유명한 안준호 감독이 제3대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팀의 전술적 세밀함을 한 단계 높이려는 인선이었습니다.
안준호 감독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자율 농구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기존의 강력한 골밑에 빠른 공수 전환을 접목하여 팀을 더욱 위협적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감독직을 수행하며 삼성의 한 시대를 안정적으로 이끌었습니다.
2005
[한중 농구대항전 우승]
중국 프로농구 팀들과의 교류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의 위상을 아시아 전역에 알렸습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한 순간이었습니다.
단순한 친선 경기를 넘어 양국 농구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에서 거둔 값진 성과였습니다. 삼성 썬더스는 세련된 매너와 뛰어난 실력으로 현지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구단은 아시아 지역 글로벌 팬덤 확장을 위한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전개했습니다.
[올루미데 오예데지 입단]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출신의 거물 센터 오예데지를 영입하며 골밑의 견고함을 더했습니다. 그의 압도적인 리바운드 능력은 팀 승리의 보증수표였습니다.
오예데지는 서장훈과 함께 트윈 타워를 형성하여 KBL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골밑 진용을 구축했습니다. 그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화려한 덩크는 잠실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오예데지는 삼성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끈 핵심 공신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규섭 상무 제대 및 복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규섭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하여 공격력을 대폭 보강했습니다. 장신 슈터의 가세로 전술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복귀 직후부터 정교한 외곽포를 가동하며 서장훈에게 집중되던 수비를 분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삼성의 성골 선수로서 팀의 중심을 잡고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의 복귀는 훗날 2005-06 시즌 챔피언 결정전 전승 우승의 핵심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06
[통산 두 번째 챔피언 우승 (V2)]
2005-06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 모비스를 상대로 4전 전승 스윕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KBL 역사상 최초의 기록적인 완승이었습니다.
서장훈, 강혁, 이규섭과 외국인 선수 오예데지, 네이트 존슨의 조화가 무결점에 가까웠습니다. 가드 강혁은 시리즈 내내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플레이오프 MVP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삼성은 2000년대 중반 KBL을 지배하는 명문 구단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2007
[산소 같은 남자 이상민 영입]
서장훈의 KCC 이적에 따른 보상 선수로 한국 농구 최고의 스타 이상민을 지명하여 영입했습니다. 농구계를 뒤흔든 역대 최고의 파격적 영입이었습니다.
당시 전주 KCC의 상징이었던 이상민의 삼성행은 수많은 농구 팬들을 충격과 환호에 빠뜨렸습니다. 그의 입단과 함께 거대한 팬덤이 유입되며 삼성 썬더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상민은 노련한 리딩으로 팀을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시키는 마법 같은 성과를 냈습니다.
2008
[챔피언 결정전 진출 및 준우승]
이상민, 테렌스 레더 등을 앞세워 다시 한번 정상을 노렸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매 경기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최고의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원주 동부와의 결승 시리즈에서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외국인 선수 테렌스 레더는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리그를 평정하며 삼성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비록 트로피는 놓쳤으나 '지는 법을 잊은 팀'이라 불릴 만큼 끈질긴 승부욕을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2009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 진출]
플레이오프에서 연이은 업셋을 일으키며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 무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단기전의 제왕다운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전주 KCC와의 결승전에서 7차전까지 가는 처절한 혈투를 벌인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상민 가드의 노련미와 선수단의 단결력이 빛난 시즌으로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명승부를 남겼습니다. 이 시기 삼성은 성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KBL의 최고 흥행 카드로 군림했습니다.
2010
[이상민 선수 전격 은퇴]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가드 이상민 선수가 정든 코트를 떠나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은퇴식은 잠실벌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구단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예우하기 위해 성대한 은퇴 행사를 마련하고 명예 대사로 위촉했습니다. 이상민은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 연수를 떠나며 미래의 삼성 사령탑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번호 11번은 사실상의 영구결번 급 예우를 받으며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2011
[스포테인먼트 마케팅 대상 수상]
KBL에서 주관하는 마케팅 부문 최고의 상인 스포테인먼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팬들과의 혁신적인 소통 방식을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경기 중 화려한 공연과 이벤트, 사회 소외 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이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삼성 썬더스는 단순한 농구팀을 넘어 서울의 스포츠 문화 콘텐츠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관중들의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구단 운영 철학이 대외적으로 공인받은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매직핸드 김승현 트레이드 영입]
오랜 분쟁 끝에 고양 오리온스를 떠난 '매직핸드' 김승현을 영입하며 가드진을 다시 한번 화려하게 꾸렸습니다. 천재적인 패싱 능력을 기대한 승부수였습니다.
김승현의 합류로 삼성 특유의 화려하고 재미있는 농구가 재현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비록 전성기 시절의 기량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그의 패스 한 번에 잠실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김승현은 삼성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팬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들을 선사했습니다.
[안준호 감독 사임 및 김상준 감독 선임]
오랜 기간 팀을 이끌었던 안준호 감독이 물러나고 대학 농구의 신성 김상준 감독이 부임했습니다. 팀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했습니다.
대학 농구의 빠른 템포와 압박 농구를 프로에 이식하려 했던 파격적인 실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전술 적응 실패로 인해 팀은 창단 후 최악의 부진에 빠졌습니다. 이 시기 겪은 시행착오는 역설적으로 팀이 리빌딩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2
[이규섭 개인 통산 1,000번째 3점슛]
구단의 레전드 이규섭 선수가 KBL 역사에 남을 통산 1,000번째 3점슛 대기록을 작성했습니다. 꾸준함과 정교함의 상징인 그의 성취에 모두가 찬사를 보냈습니다.
잠실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홈 팬들의 기립 박수 속에서 기념비적인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삼성 썬더스 유니폼만 입고 달성한 기록이라 더욱 구단 역사에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규섭은 이 기록을 통해 KBL 역대 최고의 장신 슈터 중 한 명임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공인받았습니다.
[김동광 감독의 친정 복귀]
첫 우승의 주역이었던 김동광 감독이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하기 위해 8년 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명가의 자존심 회복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부임 직후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의 기강을 잡고 실종되었던 수비력을 되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위권이었던 팀을 한 시즌 만에 다시 플레이오프권으로 끌어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올드 팬들은 김동광 감독의 복귀를 열렬히 환영하며 다시 한번 우승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2013
[김현준 장학금 수여 10주년]
고(故) 김현준 선수를 기리기 위해 시작된 농구 장학금 사업이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수많은 농구 유망주들이 이 혜택을 입어 스타로 성장했습니다.
구단은 매년 성실하고 재능 있는 중고교 농구 선수들을 선발하여 장학금과 훈련 용품을 지원해오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고인의 숭고한 농구 철학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교육적 의미가 큽니다. 수혜자들 중 상당수가 현재 KBL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삼성의 선한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강혁 선수 은퇴 및 코치 선임]
삼성 가드 왕국의 핵심이었던 강혁 선수가 은퇴를 선언하고 팀의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레전드에 대한 예우와 지도자 육성 차원의 결정이었습니다.
강혁은 삼성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수많은 승리의 순간을 함께했던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였습니다. 은퇴 후에도 구단에 남아 후배 가드들에게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매진했습니다. 그의 은퇴는 삼성 썬더스의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로 넘어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2014
[이상민 제7대 감독 부임]
영원한 오빠 이상민 코치가 드디어 삼성 썬더스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기대 속에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이상민 감독은 '역동적이고 즐거운 농구'를 표방하며 선수단 개편과 시스템 현대화에 착수했습니다. 그의 부임 소식만으로도 시즌권 판매가 급증할 만큼 여전한 티켓 파워와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이후 그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령탑을 지키며 삼성의 암흑기와 중흥기를 모두 함께하게 됩니다.
[제일기획 구단 운영 이관]
구단의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삼성그룹의 마케팅 전문 기업인 제일기획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스포츠 비즈니스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제일기획은 보다 세련된 팬 서비스와 공격적인 마케팅 기법을 농구단에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수 지원 시스템을 데이터 기반으로 고도화하고 구단 브랜드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했습니다. 이 변화를 통해 삼성 썬더스는 성적뿐만 아니라 수익성 면에서도 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발전했습니다.
2015
[리카르도 라틀리프 영입]
KBL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를 전격 영입했습니다. 압도적인 높이와 성실함을 갖춘 최강의 무기를 얻었습니다.
라틀리프는 합류 직후부터 골밑을 완벽하게 지배하며 삼성의 전력을 단숨에 우승 후보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는 매 경기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경이로운 활약으로 잠실 홈 팬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라틀리프 시대의 삼성은 다시 한번 '가을 농구'의 단골 손님이자 우승을 위협하는 강호로 복귀했습니다.
2016
[리카르도 라틀리프 36경기 연속 더블더블]
삼성의 용병 라틀리프가 KBL 역대 최다인 36경기 연속 더블더블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꾸준함은 리그 전체의 경이로운 대상이었습니다.
매 경기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10개 이상을 기록하는 그의 괴물 같은 활약은 삼성의 필승 공식이었습니다. 라틀리프의 대기록 달성 날 잠실벌은 마치 축제와 같은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이 기록은 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성실함과 지배력의 끝을 보여준 역사적 지표입니다.
2017
[챔피언 결정전 진출 및 준우승]
이상민 감독 체제 하에서 9년 만에 챔피언 결정전 무대에 오르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화려한 공격 농구의 정수를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정규리그에서 꾸준한 성적을 유지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저력을 발휘하며 결승까지 질주했습니다. 안양 KGC 인삼공사와 7차전까지 가는 처절한 혈투를 벌인 끝에 아쉽게 트로피를 내주었습니다. 비록 준우승이었으나 삼성 농구가 다시 한번 부활했음을 전 국민에게 알린 성공적인 해였습니다.
[주희정 선수 은퇴식 거행]
KBL의 철인 주희정 선수가 정든 코트를 떠나며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삼성의 첫 우승을 이끌었던 영웅의 퇴장에 수많은 팬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KBL 통산 최다 출전, 최다 어시스트 등 수많은 기록을 보유한 채 명예롭게 물러났습니다. 구단은 그에게 감사패와 기념 유니폼을 증정하며 그간의 헌신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갖췄습니다. 주희정은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한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 계속 힘쓰기로 약속했습니다.
2018
[라건아 선수 현대모비스 이적]
팀의 핵심이었던 라건아(라틀리프) 선수가 트레이드 규정에 따라 울산 현대모비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골밑의 큰 공백이 생긴 아쉬운 이별이었습니다.
특별 귀화 선수 영입 규정 변화에 따라 발생한 이탈로 구단과 팬들은 큰 상실감을 겪어야 했습니다. 라건아는 삼성 소속으로 뛴 기간 동안 팀을 위해 헌신하며 수많은 기록을 남긴 최고의 용병이었습니다. 그의 부재 이후 삼성은 다시 한번 외국인 선수 선발과 골밑 강화라는 난제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2019
[리그 최하위 기록의 수모]
2018-19 시즌, 전력 보강 실패와 부상 악재가 겹치며 구단 역사상 최하위권인 10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명문 구단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시기였습니다.
팬들의 실망 섞인 비판이 이어졌으며 구단 내부적으로도 대대적인 쇄신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이상민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해 사과하며 다음 시즌의 반등을 약속했으나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삼성 썬더스는 길고 고통스러운 암흑기의 터널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관희 선수 '삼성의 심장' 부상]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관희 선수가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팀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팬들은 그를 '삼성의 자존심'이라 부르며 지지했습니다.
승부에 대한 집념과 화려한 언변으로 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로 활약하며 팀의 인기를 견인했습니다. 비록 팀 성적은 부진했으나 이관희의 허슬 플레이만큼은 팬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는 삼성 썬더스가 암흑기를 지나는 동안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2021
[이관희-김시래 트레이드 발생]
팀의 상징이었던 이관희를 창원 LG로 보내고 김시래를 데려오는 블록버스터 트레이드가 단행되었습니다. 팬들에게 큰 충격과 기대를 동시에 준 사건이었습니다.
가드진 강화를 위한 이상민 감독의 결단으로 평가받으며 리그 전체의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은 김시래라는 리그 정상급 포인트 가드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이관희와 새로 온 김시래 모두 각자의 팀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정든 연고지를 옮겼습니다.
[창단 43주년 기념 클래식 유니폼 발표]
창단 43주년을 맞이하여 실업 시절 삼성전자 농구단의 정체성을 담은 클래식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올드 팬들에게 깊은 향수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구단의 찬란한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통의 파란색과 노란색 조화는 삼성 농구의 정통성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기념 유니폼은 판매 개시 직후 완판될 정도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구단 가치를 높였습니다.
[김시래 선수 트레이드 영입]
창원 LG로부터 리그 최고의 가드 김시래를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습니다. 침체된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강력한 승부수였습니다.
김시래의 화려한 리딩과 공격력은 잠실 홈 팬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합류 직후부터 팀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록 팀 성적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삼성 가드 농구의 명맥을 잇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2022
[이상민 감독 자진 사퇴]
선수단의 불미스러운 사고와 지속적인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이상민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8년 만의 가슴 아픈 이별이었습니다.
구단의 상징과도 같던 지도자의 퇴진 소식에 농구계와 팬들은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이규섭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혼란스러운 팀을 수습하고 남은 시즌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이상민 시대의 종언은 삼성 썬더스가 새로운 리더십과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겼습니다.
[은희석 제8대 감독 선임]
연세대학교를 대학 농구 정상으로 이끌었던 은희석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영입했습니다. 기본기와 투지를 강조하는 강력한 리빌딩을 예고했습니다.
은희석 감독은 부임 인터뷰에서 '삼성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겠다'며 강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규율과 헌신을 요구하며 팀의 문화 자체를 바꾸기 위한 대수술에 착수했습니다. 팬들은 명문 구단의 재건을 위해 투입된 젊은 명장의 합류에 큰 기대와 응원을 보냈습니다.
[이정현 FA 영입으로 전력 보강]
KBL 최고의 해결사 '금강불괴' 이정현을 FA 시장에서 영입하며 전력 보강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확실한 리더를 확보했습니다.
이정현은 입단 직후부터 고비 때마다 결정적인 득점을 올리며 삼성의 공격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며 팀의 체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앞장섰습니다. 그의 영입은 삼성이 더 이상 하위권에 머물지 않겠다는 그룹 차원의 강력한 투자의지를 상징했습니다.
2023
[은희석 감독 자진 사퇴]
거듭되는 성적 부진과 연패의 책임을 지고 은희석 감독이 시즌 도중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리빌딩의 성과를 보지 못한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구단은 다시 한번 위기 상황에 직면했으며 김효범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추스르기 시작했습니다. 은희석 감독은 팀의 기강을 잡으려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승리로 연결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후 삼성은 다시 한번 사령탑 공백 사태를 겪으며 차기 리더십 선정에 신중을 기하게 됩니다.
[성탄절 S-더비 관중 기록 경신]
매년 크리스마스에 열리는 서울 SK와의 라이벌전에서 다시 한번 역대급 관중 동원 기록을 세웠습니다. 겨울 스포츠 최고의 축제임을 다시금 입증했습니다.
치열한 승부와 풍성한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어우러져 잠실실내체육관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득 찼습니다.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KBL 리그 전체의 흥행을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팬들은 패배의 아픔과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삼성 썬더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했습니다.
2024
[김효범 제9대 감독 정식 취임]
감독대행 기간 중 보여준 지도력과 소통 능력을 인정받아 김효범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연소 사령탑의 탄생이었습니다.
김효범 감독은 선수들과의 유연한 소통과 파이팅 넘치는 벤치 리더십으로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는 정식 감독 취임사에서 '포기하지 않는 삼성 농구'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구단은 김효범 감독에게 전권을 부여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팀 재건 프로젝트를 전폭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최성원 FA 영입으로 가드진 보강]
스피드와 수비력을 겸비한 최성원 선수를 FA 시장에서 전격 영입했습니다. 김효범 감독의 빠른 농구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퍼즐이었습니다.
최성원은 합류와 동시에 팀의 수비 에너지 레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젊은 가드진의 성장을 돕고 코트 위에서 사령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 영입은 삼성이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조치였습니다.
[2024-25 시즌 개막 및 새로운 도전]
김효범 정식 감독 체제 하에서 야심 차게 새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암흑기를 끝내고 가을 농구로 복귀하기 위한 대장정의 서막이었습니다.
외국인 선수 코피 코번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한 선 굵은 농구를 선보이며 리그의 다크호스로 부상했습니다. 이정현, 이동엽 등 베테랑들의 헌신과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조화를 이루며 경기력이 점차 안정화되었습니다. 잠실실내체육관을 찾는 팬들은 다시 한번 '썬더스'의 승전보에 환호하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26
[현재 진행형인 명가 재건의 역사]
2026년 현재까지도 서울 삼성 썬더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끝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김효범 감독의 리더십 아래 선수단은 원 팀으로 뭉쳐 매 경기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잠실실내체육관은 여전히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구단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농구의 중심, 삼성 썬더스는 다시 한번 우승의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