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버딘 대학교

대학교, 교육기관, 연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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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딘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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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딘 대학교는 1495년 킹즈 칼리지 설립을 시작으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스코틀랜드의 명문 대학입니다. 킹즈 칼리지와 마샬 칼리지의 합병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췄으며, 영어권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유서 깊은 교육기관입니다. 특히 의학, 종교학, 신학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인정받으며, 다섯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학문적 성과 또한 뛰어납니다. 고풍스러운 캠퍼스와 최신 시설이 어우러진 환경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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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

[킹스 칼리지 설립 교서 발표]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윌리엄 엘핀스톤 주교의 청원을 받아들여 애버딘에 대학 설립을 허가하는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교서는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의 낙후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우수한 성직자와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임스 4세 국왕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설립되었으며, 파리 대학교와 볼로냐 대학교의 선진적인 교과 과정을 모델로 채택했습니다.
이로써 애버딘 대학교는 영어권 국가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대학교로서의 장엄한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497

[영어권 최초 의학 교수직 신설]

애버딘 대학교는 영어권 국가 최초로 의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Mediciner' 교수직을 신설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 내에서도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았으며, 대학 교육에서 의학의 학문적 지위를 공식화한 선구적인 사례였습니다.
초대 의학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부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질병 치료의 기초 이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 애버딘 대학교가 세계적인 보건 의료 연구 거점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역사적인 뿌리가 되었습니다.

1500

[헥터 보이스 초대 교장 취임]

유명한 인문주의 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헥터 보이스(Hector Boece)가 킹스 칼리지의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보이스는 파리 대학교에서 에라스무스와 교류하며 명성을 쌓았던 인물로, 애버딘에 유럽의 수준 높은 학풍을 이식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대학은 고전 문학과 철학 연구의 중심지로 급부상했으며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스코틀랜드 역사에 관한 저술 활동을 병행하며 대학의 학문적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1505

[킹스 칼리지 예배당 완공]

대학의 종교적 중심이자 건축적 랜드마크인 킹스 칼리지 예배당이 완공되어 봉헌되었습니다.

예배당 상단의 정교한 왕관 모양 첨탑은 애버딘 대학교를 상징하는 시각적 아이콘으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내부의 목조 장식은 스코틀랜드 중세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며, 설립자 윌리엄 엘핀스톤의 묘소가 안치되어 그 의미를 더합니다.
현재까지도 이곳은 대학의 주요 학위 수여식과 의례가 진행되는 공동체의 신성한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1593

[마셜 칼리지 설립]

제5대 마셜 백작 조지 키스가 애버딘 신시가지에 두 번째 대학인 마셜 칼리지를 설립했습니다.

마셜 칼리지는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설립되었으며, 기존 킹스 칼리지와 선의의 경쟁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인구 1만 명의 작은 도시였던 애버딘은 이로써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처럼 '두 개의 대학'을 보유한 독특한 지적 도시가 되었습니다.
마셜 칼리지는 설립 당시부터 현대적인 과학적 탐구와 실용 학문을 강조하는 혁신적인 학풍을 지향했습니다.

1641

[캐롤라인 대학교 통합 시도]

찰스 1세 국왕의 명으로 킹스 칼리지와 마셜 칼리지를 '캐롤라인 대학교'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두 대학의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스코틀랜드 대학 체계를 통합하려는 행정적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각 대학의 독립성 유지 열망이 워낙 강해 실제 운영에서는 큰 혼선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 시도는 약 20년간 형식적으로 유지되었으나, 1860년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장 큰 규모의 통합 실험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661

[캐롤라인 대학교 해체 및 분리]

찰스 2세의 왕정 복고 이후 통합령이 취소되면서 두 대학은 다시 독립된 기관으로 복귀했습니다.

통합 과정의 비효율성과 각 대학 소속 인원들의 강력한 복구 요청에 따라 원래의 분리 체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두 대학은 다시 독자적인 학위 수여권과 교원 임명권을 행사하며 약 200년 동안 개별적인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이 사건은 애버딘 지역 내 '두 대학 체제'를 장기화했으며, 훗날 19세기 중반까지 치열한 경쟁 관계를 지속시켰습니다.

1694

[국왕 윌리엄 3세의 재정 지원]

국왕 윌리엄 3세가 애버딘 대학들의 학문적 성과를 기려 매년 일정 금액의 국가 보조금을 약속했습니다.

지원금은 주로 교수진의 급여 보조와 도서관 시설 개선 등 대학의 기초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데 투입되었습니다.
이는 영국 왕실이 애버딘 대학교를 국가적으로 중요한 고등 교육 기관으로 공식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였습니다.
재정적 안정을 얻은 대학은 이를 바탕으로 실험 기구를 도입하고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등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727

[교과 과정의 근대화 개혁]

기존의 중세식 철학 교육에서 탈피하여 뉴턴 물리학과 근대 철학을 포함한 새로운 커리큘럼을 도입했습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흐름에 발맞춰 이성적 탐구와 과학적 실험을 교육의 핵심으로 배치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수학자와 자연 철학자들이 교수진으로 대거 보강되었으며, 이는 대학이 현대적 연구 기관으로 변모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지적 무기를 갖추게 되었고, 대학의 학문적 지평은 획기적으로 넓어졌습니다.

1754

[애버딘 철학회 창설]

대학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지식 공유와 토론을 위한 '애버딘 철학회'를 창립하고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토마스 리드를 포함한 저명한 철학자들이 참여하여 상식 철학(Common Sense Philosophy)을 발전시키는 장이 되었습니다.
이 학회는 유럽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운동의 핵심 거점 중 하나로 기능했습니다.
대학 내 학문적 담론이 지역 사회를 넘어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네트워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1780

[현대 외국어 교육 도입]

라틴어와 그리스어 같은 고전어 중심 교육을 넘어 프랑스어 등 현대 외국어 교육을 정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국제적인 학문 교류가 활발해지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학생들의 실무적 역량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대학들 중에서도 선구적으로 도입된 조치로, 대학의 개방성과 미래 지향적인 교육관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유럽 대륙의 최신 학문 성과를 직접 원서로 연구하며 지적 외연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24

[농학 강좌 최초 개설]

지역 산업인 농업의 과학화를 지원하기 위해 대학 내에 농학 분야의 정식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농업 혁명 시기에 맞춰 최신 경작법과 가축 개량 기술을 교육하여 지역 경제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대학이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지역 사회의 요구에 응답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단과 주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후 애버딘 대학교는 생물 과학과 농업 연구 분야에서 영국 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836

[마셜 칼리지 화강암 건물 재건축]

노후된 마셜 칼리지를 철거하고 건축가 아치볼드 심슨의 설계로 웅장한 화강암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애버딘의 상징인 은빛 화강암을 주재료로 사용한 이 건물은 대학의 현대적인 위상을 시각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이 공사는 대학이 최신 과학 실험실과 대형 강의실을 갖추는 물리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화강암 건물인 마셜 칼리지 본관의 초기 골격이 이때 완성되었습니다.

1856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교수 부임]

물리학의 거장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마셜 칼리지의 자연 철학 교수로 부임하여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맥스웰은 애버딘 재임 기간 동안 토성의 고리 구조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등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남겼습니다.
그는 전자기학 연구의 초기 기틀을 이곳에서 다졌으며 학생들에게 현대 물리학의 정수를 열정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의 재임은 애버딘 대학교가 기초 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명성을 얻는 결정적인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858

[스코틀랜드 대학교법 통과]

영국 의회가 스코틀랜드 대학교들의 구조 개편과 두 대학의 완전한 통합을 명시한 법안을 최종 승인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킹스 칼리지와 마셜 칼리지의 분리 체제를 종결시키기 위한 법적 강제 장치였습니다.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총장과 평의원회의 권한을 법적으로 규정하여 현대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단일한 '애버딘 대학교'의 탄생을 위한 행정적, 법률적 준비가 이 법안을 통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1860

[애버딘 대학교 공식 통합 출범]

킹스 칼리지와 마셜 칼리지가 공식적으로 합병하여 하나의 '애버딘 대학교'로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통합을 통해 두 대학은 단일한 교직원 및 학생 체계를 갖추었으며 자원을 집중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술과 신학은 킹스 칼리지 캠퍼스에, 의학과 과학은 마셜 칼리지 캠퍼스에 배치하여 전공별 전문성을 특화했습니다.
이 합병은 대학이 스코틀랜드를 넘어 영국 전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명문 연구 대학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870

[법학부 전문 인재 양성 강화]

법학 교육 과정을 전면 개편하고 실무 중심의 전문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독립 학부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법 시스템에 최적화된 커리큘럼을 구축하여 지역 사회 내 법학 교육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명한 법학자들이 교수로 초빙되면서 학부의 명성이 높아졌고 전국에서 법학도들이 애버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는 애버딘 법학부가 현재까지 영국 내 최상위권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역사적 기틀이 되었습니다.

1892

[여성 학생 정식 입학 허용]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학생들의 정식 등록과 수업 참여를 허용하며 교육 평등을 실현했습니다.

스코틀랜드 대학 중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선구적 사례로, 성별에 관계없이 지적 수월성을 추구하는 가치를 실천했습니다.
첫 해 입학한 여성 학생들은 예술과 과학 전공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여성 고등 교육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이 조치는 캠퍼스 문화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여성 인재들이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895

[미첼 타워 완공]

마셜 칼리지 확장의 일환으로 웅장한 고딕 양식의 미첼 타워(Mitchell Tower)가 건설되었습니다.

자선가 찰스 미첼의 기부로 세워진 이 타워는 애버딘 시내의 풍경을 바꾸는 웅장한 높이와 건축미를 자랑했습니다.
타워의 완공은 대학의 번영과 지적 권위를 상징하는 시각적 증거로서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마셜 칼리지 건물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으로 남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1906

[신축 마셜 칼리지 개관식]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참석한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의 화강암 건축물인 신축 마셜 칼리지가 개관했습니다.

은빛으로 빛나는 화강암 외관은 애버딘의 정체성을 담아냈으며 최신 과학 연구 시설을 완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반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애버딘 대학교가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는 물리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시의회 청사로도 일부 활용될 만큼 건축적 완성도와 규모 면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1921

[프레더릭 소디 노벨 화학상 수상]

애버딘 대학교 교수였던 프레더릭 소디(Frederick Soddy)가 동위원소 연구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소디는 애버딘 재임 시절 원자론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으며 현대 핵물리학의 기초 이론을 확립했습니다.
대학 실험실에서 수행된 그의 정밀한 연구 결과는 세계 화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대한 성과였습니다.
대학 소속 교수가 받은 첫 번째 노벨상으로서 애버딘 대학교의 세계적인 연구 수준을 공식적으로 증명한 사건입니다.

1923

[존 맥클라우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애버딘 대학교 졸업생인 존 맥클라우드(John Macleod)가 인슐린 발견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당뇨병 치료의 혁명을 가져온 인슐린 추출 연구를 주도하여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대학 시절 애버딘에서 익힌 기초 의학 지식과 탐구 방식이 그의 위대한 성취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동문으로서의 이 수상은 대학 의과대학의 교육적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강력한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37

[조지 패젯 톰슨 노벨 물리학상 수상]

애버딘 대학교 자연 철학 교수였던 조지 패젯 톰슨이 전자의 회절 현상을 발견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톰슨 교수는 애버딘 캠퍼스 실험실에서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졌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발견은 양자 역학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현대 물리학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그는 대학의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 창의적인 실험을 수행하는 데 최적이었다고 회고하며 학교의 명예를 높였습니다.

1938

[엘핀스톤 홀 준공]

대학 설립자 윌리엄 엘핀스톤을 기리기 위해 설계된 대형 강당 엘핀스톤 홀이 공식 개관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전통 양식과 현대적 건축 미학이 조화된 이 건물은 대규모 학술 행사와 연회의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대학의 역사를 상징하는 문장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대학의 자부심을 선사합니다.
현재까지도 졸업식 등 대학의 가장 중요한 공식 행사가 열리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1949

[존 보이드 오어 노벨 평화상 수상]

애버딘 대학교 교수이자 세계 식량 문제 전문가인 존 보이드 오어(John Boyd Orr)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영양학 연구를 통해 전 세계 기아 퇴치 운동을 주도했으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습니다.
대학 소속 연구소에서의 활동을 통해 식량 안보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 인도주의적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대학이 학문적 성취를 넘어 인류 공영의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공동체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1952

[리처드 싱 노벨 화학상 수상]

애버딘 대학교의 연구자였던 리처드 싱(Richard Synge)이 크로마토그래피 기술 개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분배 크로마토그래피 기술의 발명은 생명 과학 연구에서 혼합물을 분리하는 기술적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연구는 단백질 구조 분석의 기초가 되었으며 훗날 DNA 서열 분석 연구 등 현대 바이오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로써 대학은 과학 분야에서 연달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세계적인 연구 허브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1963

[로빈스 보고서에 따른 캠퍼스 대규모 확장]

영국 고등 교육 확장에 관한 로빈스 보고서의 권고에 맞춰 캠퍼스 부지를 대폭 확대하고 건물 증축을 단행했습니다.

급증하는 대학생 인구에 대응하기 위해 올드 애버딘 지역에 현대적인 도서관과 학생 복지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전통적인 중세 건물들 사이에 감각적인 현대 건축물들이 들어서며 대학의 시각적인 분위기가 역동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이 확장은 대학이 소수 정예 교육에서 대중 교육 시대로 전환하는 물리적이고 체계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1970

[실용적 MRI 기술 연구 착수]

존 멀라드(John Mallard) 교수의 지도 아래 세계 최초의 실용적 자기공명영상(MRI)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핵자기공명 현상을 인체 영상화에 접목하려는 연구에 대학이 전폭적인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물리학자와 의학자들이 협력하여 새로운 진단 도구를 개발하는 융합 연구의 세계적인 모범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이 연구는 훗날 인류의 질병 진단 수준을 완전히 혁신하는 MRI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1980

[세계 최초 전신 MRI 스캔 성공]

대학 연구팀이 자체 제작한 'Mark-I' 스캐너를 사용하여 세계 최초로 환자의 전신 MRI 촬영 및 종양 진단에 성공했습니다.

암 환자의 간 부위를 촬영하여 질병을 정확히 찾아냄으로써 MRI의 임상적 실용성을 전 세계 과학계에 증명했습니다.
현대 영상 의학의 역사가 새로 쓰여진 순간으로, 애버딘 대학교를 전 세계 의학 기술의 메카로 각인시킨 쾌거였습니다.
연구팀은 이후에도 기술 고도화를 지속하여 현재 전 세계 표준으로 쓰이는 MRI 기술의 기초를 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91

[노던 사범 대학 합병]

지역 내 유서 깊은 교사 교육 기관인 노던 사범 대학(Northern College)과 합병하여 교육학부의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합병을 통해 애버딘 대학교는 교사 양성 분야에서 스코틀랜드 내 압도적인 위치와 전문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교육학 전공 학생들은 대학의 풍부한 인문학적 자산을 활용하여 더욱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학이 지역 사회의 기초 교육 강화에 기여하고 공적 책임을 다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5

[대학 설립 500주년 대규모 기념 사업]

킹스 칼리지 설립 500주년을 맞아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지적 전통을 기리는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영국 왕실 인사들이 다수 참석하여 대학의 오랜 역사와 인류 문명에 대한 공헌에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기념 사업을 통해 확보된 대규모 기금은 미래 5세기를 준비하는 연구 인프라 확충과 장학금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이 500주년은 대학이 빛나는 과거를 계승하고 새로운 글로벌 비전을 선포하는 역사적인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2008

[로웻 연구소 공식 통합]

세계 최고의 영양학 연구 기관인 로웻 연구소(Rowett Institute)가 대학에 공식적으로 병합되었습니다.

두 거대 기관의 자원을 통합함으로써 영양학 및 보건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의 명성은 대학의 연구 역량과 시너지를 내어 비만 및 만성 질환 퇴치 연구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통합 이후 대학은 영양학 전용 연구 센터를 신축하여 학문적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다졌습니다.

2011

[혁신적 디자인의 신규 대학 도서관 개관]

기존 시설의 한계를 뛰어넘어 21세기형 학문 연구 환경을 갖춘 혁신적인 신규 도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유리 외벽의 현대적 건축미를 자랑하는 이 도서관은 올드 애버딘의 역사적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수백만 권의 장서와 첨단 디지털 학습 시스템을 갖추어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지식 탐구 공간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개관 직후 수많은 건축상을 수상하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2012

[서 던컨 라이스 도서관 명명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신축 도서관을 '서 던컨 라이스 도서관'으로 공식 명명했습니다.

전임 총장인 서 던컨 라이스의 공로를 기려 명명된 이 도서관은 대학의 현대적 성취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왕의 방문은 대학의 역사적 위상과 학문적 기여를 국가 차원에서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이곳은 전 세계 연구자들이 방문하는 학술적 랜드마크이자 학생들의 가장 사랑받는 학습 공간이 되었습니다.

2013

[카밀라 왕비 명예 총장 부임]

당시 콘월 공작부인이었던 카밀라 파커 볼스가 애버딘 대학교의 명예 총장(Chancellor)으로 부임했습니다.

왕실 인사의 총장 부임은 대학의 대외적 위상과 왕실과의 깊은 역사적 유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카밀라 왕비는 부임 이후 대학의 학술 및 지역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특히 난독증 지원 사업과 여성 교육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대학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7

[카타르 글로벌 캠퍼스 공식 개교]

중동 카타르 도하에 애버딘 대학교의 첫 번째 해외 글로벌 캠퍼스를 열고 교육 수출을 본격화했습니다.

영국 명문 대학으로서 중동 지역에 선진적인 유럽식 고등 교육을 전파하고 연구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경영학, 경제학, 에너지 정책 등 대학이 강점을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현지 우수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이 캠퍼스는 대학이 지향하는 글로벌 영향력 확대와 국제적인 인재 양성 전략의 핵심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2019

['Aberdeen 2040' 미래 전략 선포]

설립 525주년을 앞두고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대학의 원대한 비전인 'Aberdeen 2040'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포용성, 학제 간 연구, 지속 가능성, 글로벌 영향력이라는 네 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했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 연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인류 공동의 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전 교직원과 학생의 참여로 만들어진 이 비전은 대학이 나아갈 명확한 지침서가 되어 현재 활발히 추진 중입니다.

2024

[에너지 전환 연구 센터 신설]

화석 연료에서 재생 에너지로의 글로벌 전환을 주도하기 위해 전문 연구 기구인 에너지 전환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애버딘 대학교의 오랜 석유 및 가스 연구 역량을 풍력, 수소, 탄소 포집 기술 등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지입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과 대규모 산학 협력을 수행하며 실질적인 기술 혁신과 정책 제안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센터 설립은 대학이 21세기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 중립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합니다.

2025

[미래 비전의 실천과 학문적 도약]

애버딘 대학교는 'Aberdeen 2040' 전략에 따라 교육 혁신과 연구 수월성을 매일 새롭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530년의 장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과거의 지혜와 미래의 기술을 결합하여 인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학생과 연구자들이 이 학문의 전당에서 창의적인 영감을 얻으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애버딘 대학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스코틀랜드의 자존심이자 세계적인 지식의 등대로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6

[현재 진행형인 거장의 연대기]

2026년 1월 현재까지도 애버딘 대학교는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의 핵심으로서 지식의 진보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윤리, 희귀 질환 치료, 심해 에너지 개발 등 최첨단 분야에서 매일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과거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전통을 이어받아 차세대 거장들을 육성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애버딘 대학교가 써 내려갈 다음 페이지가 무엇일지 전 세계 교육계와 과학계가 설레는 마음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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