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헌법재판기관, 국가기관, 사법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7- 09:57:25
헌법재판소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실인 제9차 개헌을 통해 탄생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입니다. 위헌법률심사,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 헌법 수호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며, 대통령 탄핵과 정당 해산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통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또한 간통죄 폐지, 낙태죄 위헌 결정 등 국민의 기본권 확대를 위한 수많은 판결을 통해 사회의 인권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헌법의 살아있는 정신을 구현하며, 국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국가기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87
[헌법재판소 설치 근거 마련]
6월 항쟁의 성과로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제111조에 헌법재판소의 설치 근거가 최초로 명시되었습니다. 기존의 유명무실했던 헌법위원회를 대신하여 독립적인 헌법재판 전문기관을 두기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제도적 변화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제5공화국 시절의 헌법위원회를 폐지하고 독일식 헌법재판소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도입했습니다.
국민이 직접 헌법 위반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 제도가 처음으로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개헌안은 압도적인 국민투표 지지를 통해 확정되었으며 민주화 이행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88
[헌법재판소법 제정 및 공포]
헌법재판소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헌법재판소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되었습니다. 재판관의 자격, 임기, 재판 절차 등 실무적인 운영 지침이 이 법을 통해 확립되었습니다. 비로소 새로운 사법기관이 출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토대가 완성되었습니다.
재판관 9인의 선출 방식(대통령 3인, 국회 3인, 대법원장 3인 추천)이 확정되었습니다.
심판의 종류와 청구 요건, 결정의 효력 등 전문적인 재판 절차가 명문화되었습니다.
국가 권력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위한 헌법적 장치가 실무적으로 구동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대 조규광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첫 수장으로 조규광 소장이 임명되어 공식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설립 초기 조직의 기틀을 다지고 헌법재판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초대 소장의 취임은 헌법재판소가 실질적인 국가기관으로서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조규광 소장은 법원과 검찰을 거친 원로 법조인으로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재판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행정부 및 입법부와의 관계 설정에 주력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권리 구제 기관으로서 빠르게 신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초대 재판관 구성 완료]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추천한 9명의 초대 재판관이 모두 임명되어 재판부가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상설 헌법재판부를 형성하여 본격적인 심리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법조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모여 헌법 해석의 다각화를 꾀했습니다.
변호사, 법관, 검사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이 재판관으로 합류했습니다.
이들은 합의제 기관으로서 헌법적 쟁점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재판관 구성의 완료는 헌법재판소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인적 요건을 모두 갖추었음을 의미합니다.
[헌법재판소 공식 개소식]
서울 정동의 임시 청사에서 헌법재판소의 공식 개소식이 열리며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헌법 수호라는 단일 목적으로 설립된 최초의 기관이 문을 연 순간이었습니다.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선포되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대법원 건물 일부를 빌려 쓰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개소 직후부터 수많은 헌법소원 사건이 접수되며 국민적 기대를 증명했습니다.
이 개소식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법치주의 국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역사적 행사였습니다.
1989
[헌법재판소 역사상 첫 결정]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접수된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리며 헌법재판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비록 본안 심리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으나 재판소의 운영 원칙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첫 결정 이후 헌법재판소는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의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쟁점을 다뤘습니다.
초기 결정들은 헌법재판소의 관할 범위를 확정 짓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의 원칙을 바탕으로 수천 건의 판결을 이어가게 됩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합헌]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 조항에 대해 처음으로 헌법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재판소는 공공의 질서 유지를 위해 일정 부분 제한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공공복리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 초창기의 중요한 판결입니다.
옥외 집회 사전 신고제의 위헌 여부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당시 민주화 열기 속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이 판결은 향후 집시법 개정과 관련 판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과외 금지 조치 위헌 결정]
국가가 개인의 학습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기념비적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금지되었던 사교육(과외)을 전면 허용하는 길을 열어주며 교육 제도의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규정한 사례입니다.
부모의 자녀 교육권과 학생의 인격 발현권이 국가 공권력보다 우선한다는 논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교육열과 관련된 다양한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실질적으로 국민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린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90
[국가보안법 한정위헌 결정]
국가보안법의 일부 조항이 남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엄격한 해석을 요구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 조항 자체를 폐지하지는 않았으나 법 집행 기관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국가 안보와 인권 보장 사이의 타협점을 제시한 판결로 평가받습니다.
법률 조항의 '찬양·고무' 등 모호한 개념에 대해 구체적인 적용 범위를 확정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법 집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집니다.
이 판결 이후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1
[지방의원 선거 연기 위헌 확인]
정부가 법률이 정한 지방자치선거를 실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방자치의 헌법적 가치를 확인하고 정부에 법 집행의 의무를 촉구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 제도가 행정부의 편의에 의해 유예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참정권의 보장과 민주주의의 풀뿌리 정신을 수호한 판결로 기록됩니다.
결정 이후 정부는 지방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으며 1995년 전면 실시로 이어졌습니다.
1992
[토지초과이득세법 위헌 결정]
미실현 이득에 대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정부의 토지 공개념 정책에 법적 제동을 건 사건으로 조세 정의와 재산권 보호의 경계를 설정했습니다. 이는 부동산 정책 수립 시 헌법적 원칙을 준수해야 함을 일깨웠습니다.
조세 법률주의와 실질 과세의 원칙이 이 판결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되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으나 법치주의를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정부는 위헌 소지를 없앤 새로운 형태의 토지 관련 세제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1993
[현재의 재동 청사 입주]
서울 종로구 재동에 지어진 전용 청사로 이전하며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이곳은 조선 시대의 역사가 살아있는 장소로,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상징적 기관으로서 위상을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전용 청사의 마련은 재판소의 권위와 독립성을 시각적으로도 확립했습니다.
재동 부지는 조선 후기 개화파 인사들의 활동지였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현대적인 건축미와 전통적인 배경이 어우러진 청사는 헌법재판소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독립된 청사 확보를 통해 행정 업무와 재판 업무의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국제그룹 해체 위헌 확인]
정권이 인위적으로 기업을 해체하는 행위는 헌법상 보장된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자행된 공권력 남용에 대해 사법적으로 유죄를 선고한 상징적인 판결입니다. 이 결정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특정 기업을 핍박하는 행위가 민주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음을 천명했습니다.
피해 기업주들의 명예 회복과 배상의 법적 근거가 되는 역사적 이정표였습니다.
국가 권력이 경제 영역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사례입니다.
1994
[제2대 김용준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제2대 수장으로 김용준 소장이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재판소의 판결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도록 노력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헌법재판소는 질적, 양적으로 큰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대법관을 거쳐 소장에 오른 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엄격한 법 해석과 따뜻한 인권 의식을 결합하여 헌재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시기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실질적인 사법 권력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1995
[5·18 특별법 합헌 결정]
5·18 민주화운동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헌법적으로 정당함을 확인해 준 판결입니다. 이 결정을 통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핵심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졌습니다.
헌법적 정의와 국민의 법 감정을 조화시킨 고도의 사법적 판단이었습니다.
과거 청산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사례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판결로 꼽힙니다.
1996
[영화 검열 제도 위헌 결정]
국가가 영화 상영 전에 내용을 검열하고 삭제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 제도가 폐지되고 현재의 등급 분류 제도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영화와 문화 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자유의 토양을 마련했습니다.
헌법상 보장된 예술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순간이었습니다.
검열이라는 일제강점기 및 권위주의 시절의 유물이 사법적으로 완전히 퇴출되었습니다.
이후 한국 영화는 다양한 소재와 과감한 표현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군대 내 얼차려 사건 판단]
군대 내에서 자행되는 가혹 행위와 부당한 얼차려가 병사들의 인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심리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군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기본권 침해의 한계를 준수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병영 문화 개선과 군 인권 의식 고취에 기여한 판결입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병사들도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주체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군사 행정의 투명성과 인권 친화적 훈련 환경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환기했습니다.
이후 군 법무 시스템의 변화와 병사 인권 보호 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7
[동성동본 금혼제 헌법불합치]
같은 성씨와 본관을 가진 남녀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 조항이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유교적 관습보다 개인의 혼인 자유를 우선시한 판결로, 대한민국 가족법 역사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결정으로 수많은 커플이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관습법에 사법적 사망 선고를 내렸습니다.
전통 문화의 보존과 개인의 기본권 사이에서 현대적인 합치점을 도출해냈습니다.
이후 2005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성동본 금혼 조항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1998
[군 가산점 제도 위헌 결정]
제대 군인에게 공무원 시험 등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가 여성과 장애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큰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명확히 세운 판결로 평가받습니다. 보상 방식이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사례입니다.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은 차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여성과 군 미필 남성들이 겪는 고용 시장에서의 불이익을 사법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성 평등과 사회적 공정성 담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9
[지료 미지급 토지 사용 판단]
타인의 토지를 무단으로 점유하여 사용하는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 범위를 심리했습니다. 재산권의 배타적 권리와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공정한 보상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토지 소유자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민사적 분쟁에 있어서도 헌법적 가치가 판단의 기준이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부동산 거래와 토지 이용에 관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개인의 사유 재산권이 공권력이나 타인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경종을 울렸습니다.
2000
[의약분배 정책 합헌 결정]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분담하는 의약분업 정책이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공공보건의 증진이라는 목적이 개인의 직업적 이익보다 크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당시 의료계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정책의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한 판결입니다.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국가가 의료 체계를 개편할 권한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정책 집행에 대해 사법부가 안정적인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법적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제3대 윤영철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제3대 수장으로 윤영철 소장이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재판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헌법재판의 대중적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삶과 밀접한 판결을 대거 쏟아냈습니다.
정통 법관 출신으로서 법적 논리의 정교함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장 취임 이후 헌재는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했습니다.
사법부의 한 축으로서 대법원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2001
[교육공무원 임용 연령 제한 위헌]
교사 임용 시험에서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실력보다 나이를 우선시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 중장년층의 재취업 기회를 보장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연령 차별 풍조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능력 중심의 선발이 공직 사회의 원칙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나이가 교육 활동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명시했습니다.
판결 이후 다양한 공직 분야에서 연령 제한이 철폐되는 나비효과를 일으켰습니다.
2002
[인터넷 게시물 심의 위헌]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불온 통신물에 대해 삭제를 명령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에서도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온라인 민주주의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수호한 판결입니다.
행정 기관이 주관적인 기준으로 정보를 통제하는 것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기본권 영역을 개척했다는 학술적 평가를 받습니다.
이후 한국 인터넷 문화가 개방적이고 자율적으로 발전하는 법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2003
[야간 옥외 집회 금지 판단]
일몰 이후부터 일출 전까지 옥외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규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이는 집회의 자유를 시간적으로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에 대한 최초의 심도 있는 고찰이었습니다. 이후 단계적인 위헌 판결로 이어지는 중요한 중간 과정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생활 패턴을 고려할 때 야간 집회 금지가 실질적인 집회 금지와 다름없음을 논의했습니다.
공공의 안녕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비례의 원칙을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집회의 자유 확대를 요구하던 목소리에 사법적으로 응답했습니다.
2004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접수]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헌재에 접수되었습니다. 국가 전체가 거대한 혼란과 긴장 상태에 빠진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헌재는 신속하고 공정한 심리를 약속하며 비상 근무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대통령의 직무 집행 정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대통령 탄핵 심판권이 실제로 발동된 첫 사례입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사회적 압박 속에서도 법적 독립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노무현 대통령의 법 위반 정도가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며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하였으며 헌법재판소는 국가적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탄핵 사유에 대한 엄격한 법적 기준을 확립한 판결입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등 일부 위법성은 인정했으나 파면 요건에는 미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중대한 헌법 침해가 있어야 함을 명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전 세계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신행정수도 건설 위헌 결정]
수도를 이전하는 행위는 관습헌법에 어긋나므로 국민투표 없이 추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국가의 근간이 되는 사항은 헌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핵심 공약 사업에 제동을 건 사법부의 강력한 견제 사례입니다.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조선 시대 이후 수백 년간 이어온 관습적 헌법 사항임을 확인했습니다.
국가 중요 정책 결정 시 헌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후 정부는 신행정수도 대신 세종특별자치시라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2005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남성 중심으로 가계를 잇는 호주 제도가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 가족 문화의 근간을 바꾸는 혁명적인 결정으로 평가받으며 여성 권익 신장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이 결정으로 2008년부터 새로운 가족관계등록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가족 내에서의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우선시하는 현대 헌법의 정신을 구현했습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습이 법적 영역에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법적으로 수용하고 선도하는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2007
[제4대 이강국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제4대 수장으로 이강국 소장이 임명되어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계 헌법재판 기관들과의 교류를 강화하고 헌법재판의 국제적 표준을 수립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헌법재판소는 국제 사회에서 높은 위상을 인정받았습니다.
재판관들 사이의 민주적인 토론 문화를 더욱 장려하고 합리적인 결론 도출에 힘썼습니다.
인권 보호의 보루로서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헌법재판 행정을 실천했습니다.
글로벌 헌법재판 네트워크인 AACC 영구사무국 유치 등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종합부동산세 세대별 합산 위헌]
부동산 세금을 개인이 아닌 세대 단위로 합산하여 부과하는 것이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호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징벌적 과세 방식에 대해 사법적 경종을 울리며 조세 정의를 바로잡았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집행 시 헌법적 비례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결혼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부당한 차별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조세 부담의 평등과 재산권의 실질적 보호를 강조한 판례로 남았습니다.
이 판결 이후 종부세는 개인별 합산 방식으로 변경되어 시행되게 되었습니다.
2008
[고교 평준화 지역 학교 선택권 판단]
강제로 고등학교를 배정하는 평준화 정책이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심리했습니다. 재판소는 공교육의 평등성 확보를 위해 일정 부분 제한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교육 정책의 공공성과 자율성 사이의 조화를 꾀한 판결입니다.
교육 기회의 균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정책의 근간임을 재확인했습니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되 과도한 서열화를 막으려는 국가의 노력을 존중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대안 학교나 특성화 학교 운영을 통해 선택권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했습니다.
2009
[미디어법 처리 절차 위헌 확인]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절차적 하자가 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법률 자체의 효력은 유지시키는 복잡한 결론을 내려 사회적으로 큰 논쟁이 되었습니다. 입법 과정에서의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적 판단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판결입니다.
국회 내에서의 다수당의 횡포에 대해 절차적 위법성을 경고했습니다.
이미 시행 중인 법률의 혼란을 막기 위해 효력을 부정하지는 않는 고육지책을 선택했습니다.
향후 국회의 입법 활동에 있어 적법 절차 준수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
[야간 시위 전면 금지 위헌]
야간에 이루어지는 시위를 법으로 전면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24시간 집회와 시위가 가능한 시대가 열렸으며 표현의 자유의 영토가 획기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권리를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일몰 후 집회 금지가 현대 도시 생활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평화적인 집회라면 시간과 관계없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발언들이 광장을 채우는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2011
[위안부 문제 외교적 부작위 위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를 구체화한 판결입니다. 이 결정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 협상이 중대한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외교 행위라는 고도의 통치 행위도 헌법적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했습니다.
정부가 외교적 분쟁 해결 절차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법적으로 강제한 사례입니다.
2012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 본인 확인을 강제하는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판단했습니다. 익명 표현의 자유 역시 헌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치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로막던 장벽을 제거한 판결입니다.
실명제가 악성 댓글 감소 등 공익적 효과보다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불이익이 더 크다고 보았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과 국내외 사업자 간의 역차별 문제도 심도 있게 다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인터넷상의 자유를 수호한 선구적인 판결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2013
[제5대 박한철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제5대 수장으로 박한철 소장이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검사 출신 최초의 재판소장으로서 법 집행의 엄정함과 헌법적 가치를 조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과 간통죄 위헌 등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습니다.
재판소 내부의 시스템을 과학화하고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는 등 행정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헌법학교를 활성화하는 등 교육 사업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헌재가 중심을 잡고 국가의 법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2014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정당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적용하여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헌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판결로 해당 정당은 즉시 해산되었고 소속 의원들의 직위도 상실되었습니다.
정당 활동의 자유와 국가 안보 사이의 극단적인 갈등을 사법적으로 종결지었습니다.
정당해산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 세기적 판결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2015
[간통죄 위헌 결정 및 폐지]
국가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영역에 개입하여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62년 동안 유지되어온 간통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도덕의 영역과 법의 영역이 명확히 분리되었습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민사적 해결로 방향을 전환한 역사적 결정입니다.
사회가 개인의 사생활에 과도하게 간섭하던 관행을 사법적으로 종결시켰습니다.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는 추세와 인권 의식의 성장을 반영한 판결입니다.
이후 부부 관계의 문제는 형사 처벌이 아닌 이혼 및 위자료 등 민사 소송의 영역으로 옮겨갔습니다.
2016
[부정청탁금지법 합헌 결정]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헌법에 합치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적 필요성이 일부 권리의 제한보다 크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접대 문화와 공직 기강을 바꾸는 강력한 법적 기반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법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이 포함된 것이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공익적 목적의 정당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한 판결입니다.
이후 한국 사회의 투명성이 한 단계 높아지는 실효적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접수]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어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었습니다. 국정 농단 의혹으로 전 국민적인 촛불 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헌재는 다시 한번 역사의 심판대에 섰습니다. 재판소는 국가의 안정을 위해 신속하고 철저한 심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매주 수만 명의 시민이 헌재 인근에서 집회를 열며 판결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방대한 증거와 증인 신문을 거치며 헌재 역사상 가장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재판관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리에만 집중했습니다.
2017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
재판관 8인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했습니다. 헌법 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한 대한민국 최초의 사례입니다. 헌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사건으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파면 요건인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인정되었습니다.
국민 주권의 원칙과 법치주의가 국가 권력보다 위에 있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제6대 이진성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제6대 수장으로 이진성 소장이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재판관들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합리적인 판결을 도출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짧은 임기 동안이었지만 헌법재판소의 안정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재판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헌법적 가치를 설명하려 노력한 소통하는 소장이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헌재는 다양한 인권 보호 판결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 나갔습니다.
2018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인정]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국방의 의무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조화시키는 길을 제시한 판결입니다. 이 결정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의 역사가 종결되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신념을 보호하면서도 병역의 형평성을 지킬 대안을 마련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소수자의 신념이 다수의 원칙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대체역 복무법이 제정되어 실제 시행되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제7대 유남석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제7대 수장으로 유남석 소장이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인권과 기본권 보호에 대해 전향적인 시각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으며 헌재의 진보적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낙태죄 위헌과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 역사적 판결들이 쏟아졌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에 귀를 기울이는 판결 문화 정착에 힘썼습니다.
기후 변화와 인공지능 등 미래의 헌법적 과제들에 대해 선제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안정적인 재판부 운영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한층 더 높였다는 평을 받습니다.
2019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임신 초기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66년 만에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던 법적 굴레가 벗겨지며 여성의 권익 보호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했습니다.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 이전의 낙태는 허용되어야 함을 명시했습니다.
여성의 삶에 대한 책임과 국가의 간섭 범위를 전향적으로 재정의한 판결입니다.
이 결정 이후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상실하였으며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2020
[세월호 참사 부작위 위헌 확인]
국가가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의 생명을 구호하기 위한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심리했습니다. 헌재는 국가의 구조 의무 위반 여부를 면밀히 분석하며 안전한 사회를 향한 국가의 책무를 다시 한번 일깨웠습니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사법적으로 보듬고 국가의 반성을 촉구하는 성격이 컸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의 역할과 실질적 구조 활동의 책무를 논의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권 보호가 국가의 가장 원초적이고 지엄한 의무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판결은 향후 국가적 재난 대응 시스템의 법적 근거와 책임 소재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2021
[공수처 설치법 합헌 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치가 헌법상 권력 분립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새로운 사정 기관의 등장이 검찰 권력의 견제와 공직 비리 척결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았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컸던 권력 기관 개혁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한 판결입니다.
행정부 내의 독립적인 수사 기관 설치가 위헌적 요소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국가 권력 구조의 변화에 대해 사법부가 헌법적 허용 범위를 확정 지은 사례입니다.
이후 공수처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감시와 수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23
[이상민 장관 탄핵 심판 기각]
이태원 참사와 관련하여 국회에서 청구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을 기각했습니다.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는 별개로 파면할 정도의 법 위반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고위 공직자의 법적 책임 범위를 확정한 판결입니다.
재난 대응 과정에서의 미흡함이 헌법적 파면 사유가 되는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정치적 비판의 영역과 사법적 처벌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후 공직자 탄핵 제도의 오남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8대 이종석 재판소장 취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제8대 수장으로 이종석 소장이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시각과 원칙 중심의 법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헌재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헌법 질서 수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법리적 엄격함을 강조하며 재판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장기 미제 사건들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이후 헌재는 탄핵 심판 등 민감한 정치적 사건들을 다시 한번 다루게 되었습니다.
2024
[유류분 제도 일부 위헌 결정]
고인의 뜻과 관계없이 형제자매에게 일정 지분의 상속을 보장하는 유류분 제도가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변화된 가족 가치관과 개인의 선택권을 반영한 판결로, 상속법 체계에 큰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특히 패륜적 자녀나 연을 끊은 가족에 대한 상속권 제한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과거 대가족 중심의 상속 관념이 현대 개인주의 사회와 충돌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상속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 제도를 정교화해야 한다는 사법적 조언을 담았습니다.
이 판결 이후 '구하라법' 등 상속법 개정안의 통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기후위기 대응법 위헌 결정]
탄소 감축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국가의 대응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 판결로, 환경 문제가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닌 헌법적 권리임을 선포했습니다. 국가가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했습니다.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환경적 부담이 현세대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기후 정의와 세대 간 형평성을 헌법적 가치로 끌어올린 역사적 판결입니다.
이후 정부는 더욱 강화된 2030 탄소 중립 목표와 법적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종석 소장 퇴임 및 재판관 공석]
이종석 소장과 안창호, 이영진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어 퇴임했으나 후임 인선이 늦어지며 재판부 공석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9인 체제가 무너진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업무 공백과 기능 마비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사법 기관 구성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을 반영합니다.
사건 처리 지연 등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한 인적 구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이후 국회와 대통령의 신속한 재판관 선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2025
[디지털 권리 장전 논의 주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에 발맞추어 디지털 기본권에 대한 새로운 헌법적 해석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잊힐 권리, 데이터 주권 등 과거에 없던 새로운 권리 영역에 대해 사법적 기준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시기입니다.
기술 발전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법적 장치를 구상 중입니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 문제에 대한 헌법적 제어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디지털 법치주의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하는 데 헌재가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