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호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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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8- 1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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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호니츠(Charlotte Hornets)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을 연고지로 하는 NBA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의 프로 농구팀입니다. 1988년 확장 프랜차이즈로 창단된 이후, '머그시 보그스', '래리 존슨', '알론조 모닝' 등 개성 넘치는 스타들을 배출하며 90년대 NBA 최고의 인기 구단 중 하나로 군림했습니다. 2002년 구단주 조지 신과 도시 간의 갈등으로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아픔을 겪었으나, 2004년 '샬럿 밥캐츠'라는 이름으로 신생팀이 창단되며 샬럿의 농구 역사는 재개되었습니다. 특히 2010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구단을 인수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2014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부터 '호니츠'라는 유서 깊은 이름과 과거의 기록을 모두 돌려받아 명실상부한 샬럿 농구의 적통을 이었습니다. 현재는 젊은 재능인 라멜로 볼과 브랜든 밀러를 중심으로 새로운 황금기를 준비하고 있으며, 2023년 새로운 소유주 그룹으로의 전환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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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샬럿 NBA 확장 프랜차이즈 승인]

NBA 사무국은 조지 신(George Shinn)이 이끄는 투자 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여 샬럿 시를 새로운 확장 프랜차이즈 연고지로 승인했습니다.

샬럿은 당시 다른 대도시 후보지들을 제치고 NBA 입성에 성공하며 노스캐롤라이나주 최초의 메이저 프로 스포츠 팀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구단주 조지 신은 샬럿 콜리세움(Charlotte Coliseum) 건설을 약속하며 리그의 신뢰를 얻었고, 이는 지역 사회의 엄청난 농구 열기로 이어졌습니다. 이 승인은 1988-89 시즌부터 시작될 4개 확장 팀(샬럿, 마이애미, 미네소타, 올랜도) 계획의 핵심적인 부분이었습니다.

1988

[구단 명칭 '호니츠(Hornets)' 확정]

신규 구단의 이름을 결정하기 위한 공모 끝에 샬럿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호니츠'가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호니츠'라는 이름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영국 장군 찰스 콘월리스가 샬럿의 강력한 저항을 보고 '말벌의 집(Hornets' Nest)'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초기에는 '샬럿 스피릿'이라는 이름이 유력했으나,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호니츠가 선택되었습니다. 팀 컬러로 채택된 '틸(Teal)'과 '퍼플(Purple)'은 당시 스포츠 업계에서 매우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확장 드래프트 및 창단 멤버 구성]

샬럿 호니츠는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기존 팀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선수들을 지명하며 첫 로스터를 구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델 커리(Dell Curry), 머그시 보그스(Muggsy Bogues), 켈리 트리푸카(Kelly Tripucka) 등 훗날 팀의 상징이 될 선수들이 합류했습니다. 특히 최단신 포인트 가드인 머그시 보그스의 영입은 구단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이 선수들은 초기 샬럿의 성적은 부진했을지언정, 끈끈한 팀워크와 허슬 플레이로 샬럿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샬럿 호니츠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

샬럿 콜리세움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상대로 구단 역사상 첫 정규 시즌 경기를 치렀습니다.

비록 경기 결과는 133-93의 대패였으나, 샬럿 시 전체가 NBA 팀의 탄생을 축하하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이날 경기장에는 23,000명이 넘는 만원 관중이 운집하여 샬럿의 폭발적인 농구 열기를 리그 전체에 과시했습니다. 켈리 트리푸카는 팀의 첫 득점을 기록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이 경기는 훗날 이어질 364경기 연속 매진 기록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델 커리의 활약과 식스맨 전설의 시작]

확장 드래프트로 합류한 델 커리가 정교한 외곽 슛을 앞세워 팀의 핵심 득점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델 커리는 벤치에서 출전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탁월한 슛 감각을 선보이며 '샬럿의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샬럿에서만 10시즌을 뛰며 구단 역사상 최다 경기 출장과 최다 득점 기록(당시 기준)을 세웠습니다. 델 커리의 존재는 현재 NBA 스타인 스테픈 커리의 아버지로도 유명하지만, 샬럿 호니츠 팬들에게는 그 자체로 위대한 전설로 기억됩니다.

1989

[364경기 연속 매진 기록 수립]

샬럿 호니츠는 창단 초기부터 샬럿 콜리세움에서 치러진 정규 시즌 경기를 수년간 매진시키며 NBA 최고 흥행팀이 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1988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364경기 동안 지속되었으며, 당시 NBA에서 가장 열정적인 홈 코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작은 도시 샬럿이 대도시들을 제치고 이룬 이 흥행 기록은 리그 사무국을 놀라게 했습니다. 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은 90년대 샬럿 호니츠 선수들이 매 경기 투혼을 발휘하게 만든 가장 큰 원천이었습니다.

1990

[켄달 길 지명과 전력 보강]

1990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켄달 길(Kendall Gill)을 지명하며 팀의 운동 능력을 보강했습니다.

켄달 길은 데뷔 첫해부터 올-루키 퍼스트 팀에 선정될 만큼 뛰어난 공수 겸장 가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합류로 호니츠는 기존의 노련한 선수들과 젊은 유망주들 사이의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샬럿은 단순한 하위권 확장 팀이 아닌, 플레이오프를 노릴 수 있는 다크호스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1991

[래리 존슨 전체 1순위 지명]

1991년 NBA 드래프트에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UNLV의 스타 래리 존슨(Larry Johnson)을 선택했습니다.

강력한 파워와 탄력을 겸비한 래리 존슨은 입단하자마자 리그에 충격을 주며 1992년 올해의 신인상(Rookie of the Year)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그랜드마마(Grandmama)'라는 캐릭터로 유명한 광고에 출연하며 팀의 전국적인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였습니다. 래리 존슨의 지명은 샬럿 호니츠가 본격적인 승리 구단으로 변모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휴고(Hugo) 마스코트의 인기와 상업적 성공]

팀의 마스코트인 '휴고 더 호니츠'가 독창적인 곡예와 팬 서비스로 NBA 최고의 마스코트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휴고는 경기 중 덩크 슛 쇼와 기발한 퍼포먼스를 통해 샬럿 시민들에게 가족 단위의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팀의 로고와 마스코트가 새겨진 관련 상품 매출은 당시 시카고 불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폭발적이었습니다. 휴고는 샬럿 호니츠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데 핵심적인 마케팅 아이콘 역할을 했습니다.

1992

[래리 존슨 '그랜드마마' 광고 열풍]

래리 존슨이 할머니 분장을 하고 강력한 덩크를 꽂는 컨버스 신발 광고가 미국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광고는 래리 존슨의 유머러스함과 강력한 실력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를 NBA 대표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소속 팀인 샬럿 호니츠의 틸 컬러 유니폼과 로고가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사건은 샬럿이 작은 연고지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알론조 모닝 지명과 공포의 원투펀치 형성]

1992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조지타운 대학교의 센터 알론조 모닝(Alonzo Mourning)을 지명했습니다.

알론조 모닝은 강력한 블록슛과 골밑 장악력을 선보이며 래리 존슨과 함께 'LJ-Zo'라는 공포의 포워드-센터 듀오를 결성했습니다. 이 두 젊은 스타의 결합은 샬럿 호니츠를 리그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무서운 팀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호니츠는 신생 팀들 중 가장 빠르게 리그 정상권 전력을 구축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1993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

창단 5년 만인 1992-93 시즌에 44승 38패를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샬럿 시 전체는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 진출 소식에 열광했고, 경기장은 매 경기 압도적인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래리 존슨, 알론조 모닝, 머그시 보그스 삼각 편대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절정에 달했던 시즌이었습니다. 이 성과는 샬럿 호니츠가 NBA의 단순한 일원이 아닌, 경쟁력 있는 강팀으로 올라섰음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플레이오프 첫 시리즈 승리 (vs 보스턴)]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전통의 명가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3승 1패를 거두며 시리즈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알론조 모닝은 4차전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끝내기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며 팀의 역사적인 시리즈 승리를 확정 지었습니다. 보스턴의 전설 케빈 맥헤일의 은퇴 경기이기도 했던 이 승리는 구세대 전설이 물러나고 샬럿이라는 신세대가 부상함을 상징했습니다. 비록 2라운드에서 뉴욕 닉스에게 패했으나, 샬럿 농구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1994

[알론조 모닝의 블록슛 신기록 행진]

알론조 모닝은 경기당 3개가 넘는 블록슛을 기록하며 샬럿의 골밑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강력한 수비력 덕분에 호니츠는 수비 효율성 부문에서 리그 상위권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모닝은 샬럿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500개 이상의 블록슛을 성공시킨 투지 넘치는 센터였습니다. 그의 골밑 장악력은 샬럿 팬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1995

[알론조 모닝 트레이드와 글렌 라이스 영입]

계약 연장에 난항을 겪던 알론조 모닝을 마이애미 히트로 보내고 최고의 슈터 글렌 라이스(Glen Rice)를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팬들은 핵심 센터의 이탈에 충격을 받았으나, 글렌 라이스는 합류 직후 압도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팬들의 우려를 잠재웠습니다. 글렌 라이스는 샬럿 유니폼을 입고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는 등 리그 최고의 스몰 포워드 중 한 명으로 활약했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팀의 컬러가 골밑 중심에서 외곽 공격 중심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6

[앤서니 메이슨 영입과 허슬 농구 확립]

뉴욕 닉스로부터 투지 넘치는 포워드 앤서니 메이슨(Anthony Mason)을 영입하여 팀의 수비력을 강화했습니다.

앤서니 메이슨은 강력한 피지컬과 뛰어난 패스 실력을 겸비하여 샬럿의 다재다능한 엔진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경기 도중 머리카락에 호니츠 문양을 새기는 등 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 샬럿은 끈질긴 수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가장 이기기 힘든 팀'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코비 브라이언트 지명 및 블라데 디박 트레이드]

1996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3순위로 코비 브라이언트를 지명했으나, 즉시 LA 레이커스의 센터 블라데 디박과 맞트레이드했습니다.

당시 샬럿은 당장 골밑을 지켜줄 베테랑 센터가 절실했기에 고등학생 유망주였던 코비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했습니다. 이 결정은 훗날 코비 브라이언트가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면서 NBA 역사상 가장 아쉬운 트레이드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블라데 디박은 합류 후 샬럿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크게 기여하며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7

[글렌 라이스 NBA 올스타전 MVP 수상]

샬럿 호니츠 소속의 글렌 라이스가 올스타전에서 폭발적인 3점슛 릴레이를 선보이며 MVP를 차지했습니다.

라이스는 올스타전 한 쿼터 및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당시 기준)을 경신하며 샬럿의 이름을 전 세계에 빛냈습니다. 그의 활약은 샬럿 호니츠가 여전히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한 인기 팀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수상은 샬럿 구단 역사상 개인이 거둔 가장 화려한 영예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머그시 보그스 골든스테이트 트레이드]

구단 창단 멤버이자 상징이었던 머그시 보그스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되며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160cm의 단신으로 코트를 누볐던 보그스는 실력과 인품 모두에서 샬럿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이탈로 샬럿 호니츠의 창단 초기 정체성을 유지하던 마지막 조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팬들은 그가 떠나는 날 경기장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1999

[배런 데이비스 지명과 새로운 리더의 탄생]

1999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배런 데이비스(Baron Davis)를 지명하며 팀 재건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폭발적인 운동 능력과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을 가진 배런 데이비스는 빠르게 팀의 새로운 사령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샬럿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며 팀을 매년 플레이오프로 인도하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데이비스의 등장은 연고지 이전이라는 위태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샬럿 팬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2000

[바비 필스 교통사고 비극]

팀의 핵심 가드이자 리더였던 바비 필스(Bobby Phills)가 훈련 후 귀가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소식에 동료 선수들과 샬럿 커뮤니티 전체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바비 필스는 코트 위에서의 열정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모범적인 선수였습니다. 호니츠 구단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 13번을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에디 존스 영입과 공수 밸런스 완성]

올라운드 플레이어 에디 존스(Eddie Jones)를 영입하며 리그 최고의 공수 밸런스를 갖춘 가드 라인업을 완성했습니다.

에디 존스는 뛰어난 가로채기 능력과 정확한 외곽 슛으로 샬럿을 다시 한번 동부 컨퍼런스 상위권에 올려두었습니다. 그는 샬럿 유니폼을 입고 올-NBA 서드 팀과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되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존스의 영입은 샬럿이 단순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넘어 우승권 팀으로 도약하려 했던 야심찬 행보였습니다.

2001

[샬럿에서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명승부]

2000-01 시즌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밀워키 벅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습니다.

비록 시리즈 스코어 4-3으로 아쉽게 탈락했으나, 샬럿 선수들은 연고지 이전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배런 데이비스와 자말 매글로어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팬들에게 마지막 불꽃 같은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오리지널 샬럿 호니츠가 지역 팬들에게 선사한 마지막 명승부로 기억됩니다.

2002

[샬럿 호니츠 뉴올리언스 이전 확정]

구단주 조지 신과 샬럿 시당국 간의 신규 경기장 건설 협상 결렬로 구단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습니다.

NBA 이사회는 이 이전을 승인했고, 14년 동안 샬럿을 지켰던 호니츠라는 이름은 잠시 샬럿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샬럿 팬들은 팀을 지키기 위한 대대적인 서명 운동을 벌였으나 자본과 정치의 논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는 샬럿 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아픈 순간이었으며, 이후 2년 동안 샬럿에는 NBA 팀이 존재하지 않는 공백기가 생겼습니다.

2003

[샬럿 신생팀 '밥캐츠' 창단 승인]

NBA는 샬럿의 높은 농구 열기를 고려하여 30번째 구단을 샬럿에 다시 배치하기로 결정하고 로버트 L. 존슨에게 구단 운영권을 부여했습니다.

로버트 L. 존슨은 미국 메이저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주주 구단주가 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팀 명칭 공모를 통해 노스캐롤라이나 야생 동물을 상징하는 '샬럿 밥캐츠(Charlotte Bobcats)'가 확정되었습니다. 샬럿 시민들은 비록 이름은 바뀌었지만 다시 한번 NBA를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기대를 품었습니다.

2004

[에메카 오카포 지명과 밥캐츠의 시작]

200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에메카 오카포(Emeka Okafor)를 지명하며 신생팀의 기둥으로 삼았습니다.

에메카 오카포는 뛰어난 수비력과 리바운드 능력을 바탕으로 2005년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신생팀 밥캐츠는 오카포와 제럴드 월리스를 중심으로 젊고 역동적인 팀을 구성했습니다. 비록 초기 성적은 부진했으나, 샬럿 농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샬럿 밥캐츠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

샬럿 콜리세움에서 워싱턴 위저즈를 상대로 밥캐츠 구단 역사상 첫 경기를 개최했습니다.

경기 결과는 패배였으나, 샬럿 팬들은 2년 만에 돌아온 NBA 무대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팀의 리더 제럴드 월리스는 강력한 에너지로 코트를 휘저으며 밥캐츠 야구의 색깔을 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경기는 샬럿이 NBA 지형도에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공식적인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2005

[샬럿 밥캐츠 아레나(현 스펙트럼 센터) 개장]

샬럿 다운타운에 최신식 설비를 갖춘 신축 경기장인 '샬럿 밥캐츠 아레나'가 완공되어 정식 개장했습니다.

과거 호니츠가 떠나게 된 원인이었던 낙후된 경기장 문제를 해결하며 구단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당시 NBA에서 가장 화려한 비디오 디스플레이와 편의 시설을 갖추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새 경기장의 탄생은 샬럿이 NBA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인프라적 기틀을 다진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2006

[마이클 조던의 구단 지분 인수 및 운영 참여]

샬럿 출신의 전설적인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밥캐츠의 지분을 인수하며 공동 구단주 겸 농구 운영 부문 사장으로 합류했습니다.

농구 황제의 고향 복귀는 샬럿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구 팬들의 시선을 샬럿으로 집중시켰습니다. 조던의 합류 이후 구단의 마케팅 파워와 선수 영입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투자자에 머물지 않고 선수 선발과 트레이드 등 구단의 핵심 의사 결정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

[제럴드 월리스 '올-디펜시브 팀' 선정]

밥캐츠의 상징 제럴드 월리스가 끊임없는 허슬 플레이와 수비 공헌도를 인정받아 수비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매 경기 몸을 사리지 않는 다이빙과 블록슛을 선보여 'Crash'라는 별명을 얻은 구단의 영웅이었습니다. 신생팀 밥캐츠 선수로서 최초로 얻어낸 주요 개인 기록은 팀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습니다. 팬들은 밥캐츠라는 이름 아래 뭉친 유일한 에이스인 제럴드 월리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2008

[경기장 명칭 변경 '타임 워너 케이블 아레나']

명명권 계약에 따라 팀의 홈 경기장 이름이 샬럿 밥캐츠 아레나에서 타임 워너 케이블 아레나로 변경되었습니다.

거대 미디어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구단은 안정적인 재정 수입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경기장 명칭 변경과 함께 내부 시설 업그레이드와 중계권 계약 등이 더욱 유리하게 조정되었습니다. 팬들에게는 다소 긴 이름이었으나, 밥캐츠가 비즈니스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2010

[마이클 조던 밥캐츠 대주주 승격 및 단독 운영]

마이클 조던은 로버트 L. 존슨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여 NBA 역사상 최초의 선수 출신 대주주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조던의 대주주 승격은 NBA 역사에 남을 상징적 사건으로, 선수들의 은퇴 후 진로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샬럿 농구의 재건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대대적인 구단 개혁과 승리 문화 이식을 선언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샬럿 밥캐츠는 '조던의 팀'으로 불리며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되었습니다.

[밥캐츠 시대 최초 플레이오프 진출]

2009-10 시즌, 명장 래리 브라운 감독의 지휘 하에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제럴드 월리스와 스티븐 잭슨의 베테랑 리더십을 바탕으로 44승 38패의 호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비록 1라운드에서 올랜도 매직에게 완패했으나, 샬럿 신생팀이 주류 팀으로 성장했음을 증명한 시즌이었습니다. 특히 제럴드 월리스는 이 시즌에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올스타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2011

[켐바 워커 지명과 신시대 개막]

2011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코네티컷 대학교의 영웅 켐바 워커(Kemba Walker)를 지명했습니다.

켐바 워커는 화려한 드리블과 클러치 능력을 선보이며 팀의 절대적인 에이스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샬럿에서 8시즌 동안 활약하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운 가장 사랑받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워커의 영입은 밥캐츠가 암흑기를 뚫고 다시 일어서는 데 가장 큰 추진력이 된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2012

[NBA 역대 최저 승률의 불명예]

2011-12 단축 시즌에서 7승 59패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NBA 역사상 가장 낮은 승률(10.6%)을 기록했습니다.

팀의 극심한 부진에 구단주 마이클 조던의 자질 논란이 불거지는 등 구단 창단 후 최악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 처절한 실패는 훗날 고순위 드래프트 지명권 확보와 대대적인 리빌딩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팬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으나, 동시에 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쳐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3

[호니츠 이름 반환 및 복귀 계획 발표]

뉴올리언스 호니츠가 '펠리컨스'로 팀명을 변경함에 따라 마이클 조던은 '호니츠'라는 이름을 다시 샬럿으로 가져오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샬럿 팬들은 10여 년 전 떠나보낸 사랑스러운 이름을 되찾을 수 있다는 소식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이 발표 이후 구단은 로고, 유니폼, 경기장 인테리어 등을 과거 호니츠의 영광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기획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샬럿 농구 팬들의 끊어진 자부심을 잇는 역사적인 치유 과정이었습니다.

2014

[샬럿 호니츠 이름 공식 복귀 및 기록 통합]

구단 명칭이 공식적으로 샬럿 호니츠로 복귀했으며, 과거 1988년부터 2002년까지의 기록을 모두 승계받았습니다.

NBA 사무국은 샬럿이 1988년 창단 후 뉴올리언스로 이전하기 전까지의 구단 기록을 모두 소유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샬럿 호니츠는 중단되었던 팀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복원하고 하나의 선형적인 역사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새롭게 공개된 'Buzz City' 테마의 로고와 틸 컬러 유니폼은 판매량 급증을 기록하며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16

[호니츠 이름 복귀 후 첫 플레이오프 선전]

2015-16 시즌에 48승 34패를 기록하며 켐바 워커 시대를 상징하는 강력한 정규 시즌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드웨인 웨이드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비록 7차전에서 패해 탈락했으나, 샬럿 호니츠가 다시 한번 동부의 강호로 복귀했음을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켐바 워커는 이 시즌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 가드로 완전히 발돋움하며 올스타 단골 손님이 되었습니다.

[경기장 명칭 변경 '스펙트럼 센터(Spectrum Center)']

차터 커뮤니케이션스의 타임 워너 케이블 인수에 따라 경기장 공식 명칭이 스펙트럼 센터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름은 바뀌었으나 여전히 샬럿 도심의 중심으로서 지역 경제와 문화의 핵심 기지 역할을 유지했습니다. 구단은 이 시기에 경기장 내부 전광판을 교체하고 좌석을 개선하는 등 팬 관람 환경 개선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스펙트럼 센터라는 이름은 샬럿 농구의 현대적인 보금자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2017

[NBA 올스타전 개최지 변경의 아쉬움]

본래 2017년 올스타전을 샬럿에서 개최하기로 했으나,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성소수자 차별법 논란으로 개최권이 박탈되었습니다.

NBA 사무국은 사회적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이유로 개최지를 뉴올리언스로 전격 변경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샬럿 시와 구단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이미지 타격이었으나, 이후 법 개정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이클 조던 구단주는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리그의 가치와 함께하겠다는 성숙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2018

[미치 컵책 사장 부임과 행정 개편]

LA 레이커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미치 컵책(Mitch Kupchak)이 샬럿의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여 행정 시스템을 개편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오랜 친구이자 검증된 단장인 컵책을 영입하여 구단의 전력 분석과 신인 발굴 체계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그의 지휘 하에 샬럿은 라멜로 볼, P.J. 워싱턴 등 핵심 유망주들을 드래프트에서 선발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컵책은 샬럿이 지속 가능한 강팀으로 가기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했습니다.

2019

[드디어 개최된 샬럿 NBA 올스타전]

2년 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침내 스펙트럼 센터에서 2019년 NBA 올스타전이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60세 생일 즈음에 열린 이 올스타전은 샬럿 시를 전 세계 농구 팬들의 성지로 만들었습니다. 켐바 워커는 홈 팀의 스타로서 올스타전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샬럿 팬들의 자부심을 드높였습니다. 이 대회는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 샬럿이 대규모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치를 능력이 충분함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켐바 워커 이적과 프랜차이즈의 전환점]

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켐바 워커가 자유계약(FA) 신분을 얻어 보스턴 셀틱스로 떠났습니다.

구단은 샐러리 캡 문제와 장기적인 플랜을 위해 워커를 붙잡지 않았고, 팬들은 큰 슬픔 속에 영웅을 떠나보냈습니다. 워커는 떠나면서 샬럿 팬들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표했고, 훗날 그의 등번호는 영구결번 후보 1순위가 되었습니다. 이 이별은 샬럿 호니츠가 테리 로지어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리빌딩 체제로 들어가는 신호탄이었습니다.

2020

[라멜로 볼 전체 3순위 지명]

2020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 지명권을 행사하여 화려한 재능의 가드 라멜로 볼(LaMelo Ball)을 선택했습니다.

라멜로 볼은 합류 직후부터 상상할 수 없는 패스 센스와 득점력으로 샬럿 호니츠의 경기를 가장 재미있는 쇼로 바꿨습니다. 그는 샬럿의 전국적인 미디어 노출도를 급격히 높였으며, MZ 세대 팬들을 샬럿으로 끌어들이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조던 구단주는 라멜로 볼이 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습니다.

2021

[라멜로 볼 올해의 신인상 수상]

라멜로 볼이 구단 역사상 밥캐츠 시절 오카포 이후 처음으로 NBA 올해의 신인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시즌 중반 부상으로 인한 결장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코트 지배력은 리그 전체에서 압도적이었습니다. 이 수상으로 샬럿 호니츠는 마침내 팀을 이끌어갈 진정한 차세대 슈퍼스타를 확보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팬들은 래리 존슨 시대 이후 다시 찾아온 흥분 속에 팀의 밝은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2022

[스티브 클리포드 감독의 복귀]

과거 밥캐츠와 호니츠 시절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스티브 클리포드(Steve Clifford) 감독이 다시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제임스 보레고 감독 경질 이후, 구단은 팀의 수비 기강 확립과 조직력 강화를 위해 검증된 베테랑인 클리포드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복귀는 팀의 기본기를 다지고 젊은 선수들에게 체계적인 수비 전술을 입히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팬들은 과거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던 그의 지도력이 다시 한번 발휘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2023

[브랜든 밀러 전체 2순위 지명]

202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알라바마 대학교의 포워드 브랜든 밀러(Brandon Miller)를 지명했습니다.

스쿠트 헨더슨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조던 구단주가 직접 선택한 밀러는 뛰어난 슛 감각과 사이즈를 갖춘 유망주였습니다. 그는 라멜로 볼과 함께 샬럿의 외곽을 책임질 확실한 조각으로 평가받으며 팬들의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데뷔 시즌부터 신인왕 경쟁을 펼칠 만큼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조던의 마지막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구단 매각 및 소유권 이전]

마이클 조던이 게이브 플롯킨(Gabe Plotkin)과 릭 슈날(Rick Schnall)이 이끄는 투자 그룹에 구단 지배 지분을 매각하며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13년간 샬럿의 수장이었던 조던은 약 30억 달러의 가치로 구단을 매각하며 투자 대비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떠났습니다. 비록 성적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으나, 호니츠 이름을 되찾고 구단의 경제적 가치를 높인 것은 그의 공로로 인정받습니다. 조던은 소수 지분을 유지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이어가기로 했고, 샬럿은 새로운 자본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2024

[제프 피터슨 농구 운영 부문 사장 부임]

브루클린 네츠 출신의 유능한 프런트인 제프 피터슨(Jeff Peterson)이 샬럿의 새로운 농구 운영 전권을 맡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구단주 그룹은 구단의 체질 개선을 위해 리그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젊은 인재 중 한 명인 피터슨을 영입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데이터 중심의 의사 결정과 현대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 도입을 선포했습니다. 이 인사는 샬럿 호니츠가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구단 운영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습니다.

[찰스 리 신임 감독 선임]

보스턴 셀틱스와 밀워키 벅스에서 코치로서 우승 경험이 풍부한 찰스 리(Charles Lee)를 제12대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찰스 리는 리그 내에서 차기 감독 1순위로 거론되던 촉망받는 지략가로, 샬럿의 젊은 코어들에게 우승 DNA를 심어줄 적임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는 부임 인터뷰에서 수비 에너지와 팀의 결속력을 강조하며 샬럿 농구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을 약속했습니다. 선수들과의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알려진 그의 부임에 라멜로 볼을 비롯한 핵심 선수들이 큰 환영의 뜻을 전했습니다.

[타이드잔 살룬 지명과 리빌딩 가속화]

202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프랑스 출신의 대형 유망주 타이드잔 살룬(Tidjane Salaun)을 지명했습니다.

살룬은 원석에 가깝지만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윙 자원으로, 샬럿의 장기적인 전력 보강 계획의 일환입니다. 이 지명은 찰스 리 감독 체제 하에서 팀의 사이즈와 활동량을 극대화하려는 프런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살룬의 합류로 샬럿은 라멜로-밀러-살룬으로 이어지는 탄탄하고 젊은 코어 라인업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스펙트럼 센터 대규모 리노베이션 착수]

새로운 구단주 그룹과 샬럿 시는 2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여 홈 경기장의 전면적인 현대화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좌석 교체, 프리미엄 라운지 확충, 디지털 인프라 강화 등을 통해 팬들에게 최상의 관람 경험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 리노베이션은 호니츠 구단이 샬럿 시와 2045년까지 장기 계약을 맺는 안정적인 연고지 정착을 의미합니다. 공사가 완료되면 스펙트럼 센터는 동남부 지역 최고의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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