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축구 클럽, 스포츠 팀, 스페인 라리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9- 15:17:42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비토리아-가스테이스를 연고로 하는 유서 깊은 축구 클럽입니다. 1921년 창단 이래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들은, 특히 2001년 UEFA컵 결승전에서 보여준 리버풀과의 혈투를 통해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불굴의 의지'를 각인시켰습니다. 하부 리그로의 강등과 재정 위기 속에서도 지역 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체계적인 구단 운영을 바탕으로 라리가의 중견 강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알라베스는 단순한 축구팀을 넘어 바스크인들의 자부심과 끈기를 상징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1921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명칭 변경]
클럽 창단 직후,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구단 명칭을 '데포르티보 알라베스(Deportivo Alavés)'로 공식 변경했습니다. 알라바(Álava) 주를 대표하는 스포츠 클럽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역 연고 의식을 강화했습니다. 이 명칭은 지금까지 100년 넘게 이어져 오며 클럽의 고유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 명칭 변경은 클럽이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 공식적인 경쟁 체계를 갖춘 스포츠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알라베스라는 명칭은 지역 주민들에게 큰 소속감을 주었으며, 팬층이 급격히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클럽 로고와 유니폼 색상도 이 시기에 지역 상징색을 반영하여 정립되기 시작했습니다.
[클럽의 전신 창단]
비토리아 지역의 청년들이 모여 '스포르트 프렌즈 클럽(Sport Friend's Club)'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창단했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뭉친 초기 멤버들은 지역 사회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으로 클럽을 조직했습니다. 이 모임은 훗날 스페인 축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길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의 시초가 됩니다.
초기 창단 멤버들은 주로 지역의 직장인과 학생들로 구성되었으며, 자발적인 회비로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창단 직후부터 지역 내 다른 소규모 팀들과 친선 경기를 가지며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당시 바스크 지방의 축구 열기가 고조되던 시기여서 창단 소식은 지역 신문에도 비중 있게 다뤄졌습니다.
1923
[힐라리오 도라오 초대 회장 취임]
구단의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힐라리오 도라오(Hilario Dorao)가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구단의 초기 행정 기틀을 마련하고 지역 사회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알라베스는 프로 구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도라오 회장은 지역 정치권 및 기업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구단의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선수들의 훈련 환경이 대폭 개선되었으며 본격적인 리그 참가를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초대 회장의 헌신적인 활동은 후임 회장들이 구단을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24
[멘디소로차 경기장 개장]
클럽의 전용 구장인 멘디소로차(Mendizorrotza) 경기장이 공식 개장하여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축구장인 이 경기장은 알라베스의 모든 역사와 함께해 온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개장식과 함께 치러진 경기는 지역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초기 멘디소로차는 소박한 규모였으나 당시로서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경기장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개장 경기에는 수많은 비토리아 시민들이 모여 새로운 홈구장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이후 수차례의 증축과 개보수를 거쳐 현재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928
[비스카야 지역 선수권 참가]
당시 스페인 축구의 중심지였던 비스카야 지역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경쟁력을 시험했습니다. 바스크 지방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알라베스의 실력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선수들은 높은 수준의 경기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강팀들과의 경기를 통해 전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우수한 지역 유망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지역 선수권에서의 선전은 팬들에게 팀이 더 높은 무대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시기의 활약은 향후 스페인 전국 리그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때 알라베스가 상위 리그에 배정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1929
[세군다 디비시온 참가 확정]
스페인 전국 리그 시스템이 정비됨에 따라 세군다 디비시온(2부 리그)에 배정되어 본격적인 전국구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이는 지역 대회를 넘어 스페인 전역의 팀들과 승부를 겨루게 된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구단은 상위 리그 승격을 목표로 전력을 보강했습니다.
2부 리그 참가는 구단 규모가 전국 수준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하는 공식적인 지표였습니다.
전국 각지를 이동하며 경기를 치르는 일정이 시작됨에 따라 선수들의 체력 관리와 물류 시스템이 중요해졌습니다.
첫 시즌부터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리그 내 복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30
[사상 첫 프리메라리가 승격]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1부 리그인 프리메라리가 승격을 확정 지었습니다. 창단 9년 만에 스페인 최상위 리그에 입성하며 비토리아 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이는 당시 스페인 축구계에서 신흥 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시즌 내내 공수 조화가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결정적인 경기에서 승리하며 자력 승격을 이뤄냈습니다.
승격 소식에 비토리아 시내 광장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선수들을 환영하는 퍼레이드를 가졌습니다.
1부 리그 진입은 구단의 상업적 가치와 중계권료 수익을 대폭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프리메라리가 데뷔전 치러]
레알 소시에다드를 상대로 프리메라리가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비록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으나 최상위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전국구 스타들이 즐비한 1부 리그 무대에서 알라베스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1부 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도 선수들은 바스크 특유의 끈질긴 축구로 대응했습니다.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하위권에 머물지 않고 중위권 경쟁에 뛰어드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홈구장 멘디소로차는 1부 리그 경기를 보려는 팬들로 매 경기 매진 사례를 기록했습니다.
1932
[3위 기록 및 코파 델 레이 선전]
리그에서 최종 3위를 기록하며 창단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강팀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스페인 축구의 새로운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광의 시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으로 위기를 맞게 됩니다.
당시 알라베스는 세밀한 패스 축구와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엘 글로리오소(El Glorioso)'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주요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 차출되는 등 선수 개개인의 명성도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구단의 공격적인 투자가 재정에 무리를 주어 이후 하락세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1933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강등]
성적 부진과 핵심 선수들의 이탈로 인해 결국 1부 리그 입성 3년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습니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다시 하부 리그에서 시작해야 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이는 구단 운영의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강등 결정 이후 구단은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단행하고 유소년 육성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스타 선수들을 이적시켜야 했으며 팬들의 실망감도 컸습니다.
다시 1부 리그로 돌아가기 위한 장기적인 플랜을 수립하며 내실을 다지는 시기를 가졌습니다.
1934
[테르세라 디비시온으로 추가 강등]
2부 리그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3부 리그 격인 테르세라 디비시온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어두운 암흑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팀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선수들의 급여 지급이 지연될 정도로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으나 지역 팬들의 모금 운동으로 팀을 유지했습니다.
아마추어 수준의 운영으로 전락했지만 지역 출신 선수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꼈습니다.
이 시기의 고난은 훗날 알라베스 팬들이 가지는 강한 결속력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1939
[내전 종료 후 전력 재정비]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축구 리그가 재개됨에 따라 알라베스도 전열을 가다듬고 리그에 복귀했습니다. 파괴된 경기장을 보수하고 흩어졌던 선수들을 다시 모아 팀을 재건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다시 뛰기 시작한 선수들의 모습은 시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전 기간 동안 중단되었던 행정 업무를 복구하고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했습니다.
전쟁으로 유실된 구단 기록물들을 정리하고 역사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병행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축구를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충만했던 시기였습니다.
1941
[세군다 디비시온 복귀 성공]
3부 리그에서 끈질기게 버틴 끝에 다시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암흑기를 끝내고 다시 전국 무대로 복귀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습니다. 선수들의 투혼과 팬들의 응원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였습니다.
승격 결정전에서 극적인 골로 승리하며 다시금 비토리아 시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 승격을 기점으로 구단에 대한 지역 기업들의 후원이 다시 재개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 구단으로서의 체계를 회복하고 1부 리그 재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43
[다시 찾아온 강등의 시련]
전력 약화로 인해 다시 테르세라 디비시온으로 강등되며 안타까운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요요 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단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리그 시스템의 변화와 경쟁 팀들의 성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해진 결과였습니다.
강등에도 불구하고 유소년 시스템에서 배출된 신인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다음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팬들은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 번 알라베스면 영원한 알라베스'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1950
[세군다 디비시온 재승격]
오랜 하부 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2부 리그로 올라오며 중흥기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1950년대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노련한 베테랑들과 패기 넘치는 신예들의 조화가 돋보였습니다.
공격적인 전술로 리그에서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여유 있게 승격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멘디소로차 경기장의 관중석을 확장하여 더 많은 팬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구단은 본격적으로 데이터 기반의 선수 영입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954
[세군다 우승 및 1부 복귀]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1년 만에 꿈에 그리던 프리메라리가 복귀를 확정했습니다. 구단의 황금기 중 하나로 꼽히는 시기로, 바스크 축구의 위상을 전국에 떨쳤습니다. 도시 전체가 승격의 기쁨으로 하나가 된 역사적인 해였습니다.
리그 마지막 라운드까지 이어진 치열한 순위 다툼 끝에 자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전설적인 공격수들이 대거 활약하며 매 경기 화끈한 골 잔치를 벌였습니다.
우승 트로피는 비토리아 시청 광장에 전시되어 시민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마누엘 에체사레타 감독 부임]
지략가로 알려진 마누엘 에체사레타(Manuel Echezarreta) 감독이 부임하여 팀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체계적인 훈련법과 전술 시스템을 도입하여 알라베스를 1부 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팀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의 지도력 아래 선수들의 기량은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에체사레타 감독은 수비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전술로 강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용병술이 뛰어났습니다.
감독의 엄격한 규율과 소통 능력은 팀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56
[아쉬운 프리메라리가 강등]
2시즌 동안 1부 리그에서 고군분투했으나 끝내 전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강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알라베스가 보여준 투혼은 스페인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시 하부 리그로 내려가 전력을 재정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아쉬운 점수 차로 패배하는 경우가 많아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리그 마지막까지 잔류를 위해 싸웠으나 최종전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강등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에체사레타 감독 체제를 신뢰하며 미래를 도모했습니다.
1960
[테르세라 디비시온으로 추락]
구단의 재정 위기와 선수단 노쇠화로 인해 다시 3부 리그까지 떨어지며 험난한 시기를 겪었습니다. 1950년대의 영광이 무색하게 다시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구단 수뇌부는 대대적인 개혁 없이는 부활이 불가능함을 깨달았습니다.
핵심 선수들이 높은 이적료를 제안받고 떠나면서 팀의 중심축이 무너진 결과였습니다.
관중 수가 급감하고 후원이 줄어들면서 운영비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시기 구단은 유소년 시스템에 전폭적인 투자를 결정하며 먼 미래를 내다봤습니다.
1961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 성공]
추락한 지 단 1년 만에 다시 2부 리그로 복귀하며 반등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지옥 같은 3부 리그 생활을 짧게 끝내며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시즌이었습니다.
지역 출신 신인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활기를 불어넣으며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승격 확정 경기 후 팬들은 경기장으로 쏟아져 나와 선수들과 함께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구단은 이 승격을 계기로 다시금 재정 정상화를 위한 스폰서십 유치에 나섰습니다.
1964
[3부 리그로 재강등]
2부 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3년 만에 다시 테르세라 디비시온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구단 운영의 불안정성이 성적으로 그대로 직결된 사례였습니다. 1960년대 중반은 알라베스에게 있어 정체성과 생존의 시험대와 같았습니다.
경기력의 기복이 심해 안정적인 승점 확보에 실패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습니다.
구단은 외부 영입보다는 지역 인재를 적극 기용하는 '순혈주의'를 일시적으로 강화했습니다.
팬들은 어려운 시기임에도 꾸준히 경기장을 찾아 팀에 변치 않는 지지를 보냈습니다.
1968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
4년간의 인고 끝에 다시 2부 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체력 훈련을 대폭 강화한 전술이 주효하여 시즌 막판 무서운 뒷심을 발휘했습니다. 부활을 꿈꾸는 알라베스의 행보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습니다.
선수들의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압박 축구가 리그 전반을 흔들었습니다.
중요한 승부처마다 터진 주전 공격수의 골은 승격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사단은 승격을 발판 삼아 구단 전용 훈련장 부지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1969
[1년 만의 아쉬운 강등]
승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1년 만에 다시 3부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전력 보강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 상위 리그에서의 경쟁력을 떨어뜨렸습니다. 잦은 리그 이동은 구단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 악재가 겹치면서 정상적인 전력 가동이 불가능했습니다.
리그 후반기 연패 늪에 빠지며 잔류권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구단은 이를 계기로 장기적 관점의 스쿼드 뎁스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1971
[리그 개편에 따른 승격]
스페인 축구 연맹의 리그 구조 개편에 힘입어 상위 리그로 배정되는 행운과 실력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새로운 리그 시스템 하에서 알라베스는 다시금 도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행정적 변화에 발맞춰 구단 운영 시스템도 현대화되었습니다.
리그 개편에 대비해 구단 행정력을 집중하여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습니다.
선수들은 새로운 리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초반 기세를 올렸습니다.
이 시기부터 구단은 본격적으로 프로 계약 체계를 정립하여 선수 권익 보호에 나섰습니다.
1974
[세군다 디비시온 안정적 진입]
수년간의 부진을 털어내고 마침내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 안착하며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팀은 더 이상 강등을 걱정하는 약체가 아니었으며 상위권 도약을 노리는 팀으로 성장했습니다. 안정적인 성적은 관중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공격 지향적인 전술로 변경하여 팬들에게 재미있는 축구를 선보였습니다.
홈 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멘디소로차를 상대 팀의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구단은 유소년 아카데미를 확장하여 지역 유망주들을 직접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975
[호르헤 발다노 영입]
훗날 세계적인 스타가 될 아르헨티나의 젊은 재능 호르헤 발다노(Jorge Valdano)를 영입했습니다. 그가 알라베스에서 보여준 뛰어난 기술과 득점력은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스타 플레이어의 존재는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발다노는 알라베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훗날 레알 마드리드 등 빅클럽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기 위해 타 지역 팬들까지 경기장을 찾을 정도였습니다.
발다노 영입은 알라베스가 남미 시장의 유망주를 발굴하는 혜안을 가졌음을 증명했습니다.
1983
[세군다 디비시온 B 강등]
10년 가까이 유지해 온 2부 리그 자리를 잃고 3부 격인 세군다 디비시온 B로 강등되었습니다. 구단의 재정적 어려움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전력 보강에 한계를 보였습니다. 다시금 인고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리그 하위권에서 탈출하기 위해 감독 교체 등 강수를 뒀으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재정난으로 인해 주축 선수들을 헐값에 매각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팬들은 강등의 아픔 속에서도 '알라베스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1986
[행정상 강등 처분]
누적된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행정상 강등 처분을 받고 테르세라 디비시온으로 추락했습니다. 성적이 아닌 돈 문제로 강등되는 치욕을 겪으며 구단 해체 위기까지 거론되었습니다. 알라베스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선수들과 직원들의 임금이 체불되어 법적 분쟁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지역 사회는 구단을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주식 공모와 기부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구단 경영의 투명성과 재정 건전성이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1988
[후안 아레기 회장 취임]
구단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후안 아레기(Juan Arregui)가 회장직을 맡아 재정 정상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는 사재를 털어 구단의 시급한 부채를 상환하고 운영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경영 아래 알라베스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아레기 회장은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구단 마케팅 수익 구조를 다변화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흩어졌던 팬심이 다시 결집하였으며 지역 기업들의 후원도 재개되었습니다.
현대적 알라베스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으며 구단 역사에 깊이 기록되었습니다.
1990
[세군다 디비시온 B 승격]
행정 강등의 아픔을 딛고 다시 3부 리그로 복귀하며 본격적인 상위 리그 진출을 준비했습니다. 재정 안정을 바탕으로 전력을 강화한 것이 승격의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부활의 서막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무패에 가까운 성적으로 리그를 평정하며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여주었습니다.
유망주들과 경험 많은 베테랑들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시즌이었습니다.
승격 소식에 비토리아 시내는 다시금 알라베스의 파란색과 하얀색 깃발로 가득 찼습니다.
1995
[세군다 디비시온 복귀]
지루했던 3부 리그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 복귀했습니다. 12년 만에 되찾은 2부 리그 자리였기에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습니다. 이제 구단의 목표는 명확히 프리메라리가 승격으로 향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승격 티켓을 확보하는 드라마를 썼습니다.
경기 종료 부저와 함께 멘디소로차의 관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습니다.
이 승격은 알라베스가 전국구 강호로 돌아왔음을 선포하는 공식적인 신호였습니다.
1998
[하비 모레노 영입]
팀의 득점력을 책임질 공격수 하비 모레노(Javi Moreno)를 영입하여 공격진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알라베스의 황금기를 이끄는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골 감각은 1부 리그 무대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했습니다.
하비 모레노는 문전에서의 탁월한 위치 선정과 결정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는 알라베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팀의 핵심 스트라이커로서 전술의 중심이 되었으며 수많은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
[42년 만의 프리메라리가 승격]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무려 42년 만에 1부 리그인 프리메라리가 복귀를 확정했습니다. 전설적인 성과를 거둔 선수단은 비토리아 시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현대 축구 체제 하에서 알라베스가 이룬 가장 눈부신 업적 중 하나였습니다.
시즌 내내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는 견고한 경기력으로 리그를 압도했습니다.
승격이 확정된 날 밤, 비토리아 전역에서는 동틀 때까지 축제가 이어졌습니다.
구단은 1부 리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대대적인 시설 보수와 선수 영입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2000
[리그 6위 및 UEFA컵 진출]
프리메라리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최종 6위를 기록,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인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강팀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자이언트 킬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알라베스의 이름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탄탄한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으로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은 거함들을 위협했습니다.
작은 도시의 클럽이 유럽 무대에 진출한 것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UEFA컵 진출은 구단 수익 증대와 글로벌 인지도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UEFA컵 첫 경기 승리]
터키의 가지안테프스포르를 상대로 UEFA컵 첫 경기를 치러 역사적인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 유럽 무대에서도 알라베스의 축구가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경기였습니다. 선수들은 낯선 환경에서도 당당하게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유럽 대항전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조직력을 보였습니다.
원정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이 터키까지 찾아와 열띤 응원을 보냈습니다.
이 승리를 시작으로 알라베스는 유럽 무대에서의 위대한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2001
[인터 밀란 제압 및 8강 진출]
이탈리아의 거함 인터 밀란을 산 시로 원정에서 2-0으로 제압하며 유럽 축구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즐비한 팀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8강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알라베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단일 경기 승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조르디 크루이프 등의 활약으로 인터 밀란의 수비진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경기 종료 후 산 시로의 홈 팬들조차 알라베스 선수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승리는 알라베스가 유럽에서도 경쟁력 있는 강팀임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UEFA컵 결승전 혈투]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UEFA컵 결승전에서 4-5로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정규 시간 4-4라는 믿기지 않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결승전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라베스는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연장전에서 통한의 골든골 실점으로 패배했으나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알라베스는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비토리아 시민들은 준우승 트로피를 들고 돌아온 선수들을 우승팀 이상의 예우로 환영했습니다.
2003
[세군다 디비시온 강등]
유럽에서의 영광도 잠시, 리그에서의 부진이 겹치며 결국 2부 리그로 강등되었습니다. 황금기를 함께했던 주역들이 하나둘 떠나며 전력이 급격히 약화된 결과였습니다. 구단은 다시 한번 재정비와 승격을 위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유럽 대항전 병행에 따른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리그 성적 부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재정난으로 인해 하비 모레노 등 핵심 선수들을 매각해야 했던 점이 뼈아팠습니다.
팬들은 강등의 슬픔 속에서도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2004
[드미트리 피터만 구단주 취임]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사업가 드미트리 피터만(Dmitry Piterman)이 구단을 인수하며 새로운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그의 파격적인 행보와 경영 방식은 구단 안팎으로 큰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구단은 자본력 확보와 함께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피터만은 감독의 영역에 관여하거나 직접 지휘하려는 행보로 연맹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의 독단적인 운영 방식에 반발하는 팬들과 서포터즈의 시위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2005
[프리메라리가 재승격]
2부 리그에서 끈질긴 경쟁 끝에 다시 1부 리그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피터만 체제 하에서의 첫 번째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받았습니다. 선수들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오직 승격만을 목표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치열한 순위 싸움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승격권을 따냈습니다.
홈 팬들은 다시 열리는 1부 리그 무대를 기대하며 경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구단은 승격 보너스를 지급하고 전력 보강을 위한 대규모 이적 시장 플랜을 수립했습니다.
2006
[1년 만의 아쉬운 재강등]
1부 리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한 시즌 만에 다시 2부 리그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구단주와 감독 간의 불화, 불안정한 운영이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팬들은 구단의 정상적인 운영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승점 1점 차이로 아쉽게 잔류에 실패하며 선수들의 허탈감은 매우 컸습니다.
피터만의 독선적인 경영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재정 상황도 다시 악화하기 시작하면서 구단의 미래가 불투명해졌습니다.
2007
[피터만 퇴진 및 경영진 교체]
수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드미트리 피터만이 구단을 매각하며 물러났습니다. 페르난도 오르티스 데 사라테(Fernando Ortiz de Zárate)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영진이 구성되었습니다. 팬들은 '암흑기의 종료'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새로운 경영진은 피터만이 남긴 막대한 부채를 청산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구단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감사를 도입하고 팬들과의 소통을 강화했습니다.
지역 기업들과 다시 손을 잡고 구단 재건을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2009
[세군다 디비시온 B 강등]
재정 위기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3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 B로 강등되었습니다. 구단 역사상 또 다른 암흑기의 시작을 알리는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1부 리그를 호령하던 자부심은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강등 결정 후 구단은 대대적인 비용 절감과 함께 선수단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3부 리그라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서포터즈들은 변함없이 멘디소로차를 지켰습니다.
구단은 생존을 위해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더욱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2011
[호세안 케레헤타 구단주 부임]
농구 구단 사스키 바스코니아의 회장인 호세안 케레헤타(Josean Querejeta)가 구단을 인수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농구와 축구를 결합한 선진적인 스포츠 경영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알라베스의 현대적 부활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케레헤타 회장은 효율적인 재정 관리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구단의 적자 폭을 줄였습니다.
그는 스포츠 과학을 도입하여 선수들의 훈련과 회복 시스템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였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알라베스는 다시금 상위 리그로 올라갈 동력을 얻었습니다.
2013
[세군다 디비시온 복귀 성공]
4년 만에 3부 리그를 탈출하여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했습니다. 케레헤타 체제의 첫 번째 성공적인 결과물이었으며 부활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선수단과 팬들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낸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승리하며 다시금 전국구 리그로 돌아왔음을 선포했습니다.
승격 확정 후 선수들은 멘디소로차의 잔디 위에서 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구단은 이 승격을 발판 삼아 프리메라리가 진입을 위한 다음 단계를 설계했습니다.
2016
[마우리시오 펠레그리노 감독 부임]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우리시오 펠레그리노(Mauricio Pellegrino) 감독을 선임하여 1부 리그 생존을 노렸습니다. 그는 지능적인 전술로 팀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으며 알라베스의 돌풍을 준비했습니다. 그의 지도력 아래 팀은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펠레그리노 감독은 수비 시의 간격 유지와 효율적인 역습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젊은 유망주들을 과감히 기용하여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선수들은 감독의 철저한 전술 분석에 따라 경기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세군다 우승 및 1부 복귀]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0년 만에 프리메라리가 복귀를 확정 지었습니다. 호세 보르달라스 감독의 지도 하에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리그를 평정했습니다. 마침내 알라베스가 스페인 축구의 최상위 무대로 귀환했습니다.
시즌 내내 선두권을 유지하며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승격 확정 후 비토리아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퍼레이드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케레헤타 구단주의 경영 능력이 다시 한번 입증된 해였습니다.
2017
[이바이 고메스 영입]
바스크 출신의 테크니션 이바이 고메스(Ibai Gómez)를 영입하여 미드필더진을 강화했습니다. 그의 정교한 킥과 창의적인 패스는 알라베스 공격의 핵심 루트가 되었습니다. 지역 출신 선수의 활약은 팬들에게 큰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이바이는 중요한 세트피스 상황마다 날카로운 킥으로 수많은 득점을 도왔습니다.
그는 알라베스에서의 활약을 통해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재평가받았습니다.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알라베스의 새로운 에이스로 인정했습니다.
[코파 델 레이 결승 진출]
셀타 비고를 꺾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코파 델 레이(국왕컵)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1부 리그 복귀 첫 시즌에 이룬 놀라운 성과로 전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작은 도시 알라베스의 이름이 다시금 스페인 전역에 울려 퍼졌습니다.
준결승 2차전에서 터진 극적인 골로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팬들은 경기장으로 쏟아져 나와 결승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알라베스는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와 맞붙게 되며 역사적인 경기를 준비하게 됩니다.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분전했으나 1-3으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비록 우승컵은 들지 못했으나 강팀을 상대로 당당히 싸운 알라베스의 투혼은 박수받아 마땅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즌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테오 에르난데스의 환상적인 프리킥 골은 결승전 최고의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결승전이 열린 마드리드 비센테 칼데론 경기장에는 수만 명의 알라베스 팬이 집결했습니다.
준우승 이후 선수들은 고향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2018
[아벨라르도 감독의 기적]
강등 위기에 처했던 팀을 구하기 위해 부임한 아벨라르도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서운 속도로 승점을 쌓아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전술로 선수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켰습니다. '아벨라르도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부임 직후 연승 가도를 달리며 순위를 중위권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선수들은 감독의 전술적 선택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경기장에서 헌신했습니다.
아벨라르도 감독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계약 연장에 성공했습니다.
2021
[클럽 창단 100주년 기념]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창단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기념행사와 경기를 가졌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기리는 특별 유니폼을 제작하고 레전드들을 초청하여 축하했습니다. 비토리아 시 전체가 알라베스의 100년을 축하하는 파란색 물결로 덮였습니다.
100주년 기념 엠블럼과 굿즈들은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전 세계 팬들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구단은 100년을 넘어 새로운 세기를 향한 비전을 선포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약속했습니다.
2022
[세군다 디비시온 강등]
6시즌 동안 1부 리그에서 버텼으나 아쉽게 성적 부진으로 인해 2부 리그로 강등되었습니다. 전력 보강 실패와 잦은 감독 교체가 성적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하지만 구단은 슬퍼하기보다 즉각적인 복귀를 위한 플랜을 가동했습니다.
리그 마지막 라운드까지 사투를 벌였으나 다른 팀의 결과에 따라 강등이 확정되었습니다.
팬들은 강등된 선수들에게 야유 대신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응원가를 불렀습니다.
구단은 강등 직후 핵심 전력을 최대한 유지하며 다음 시즌을 대비했습니다.
2023
[극적인 프리메라리가 재승격]
레반테와의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 2차전에서 연장 종료 직전 터진 아시에르 비얄리브레의 페널티킥 골로 1부 리그 복귀를 확정 지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승리에 모든 팬과 선수가 오열하며 기뻐했습니다. 단 1년 만에 다시 스페인 최상위 무대로 돌아온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에 얻어낸 페널티킥은 알라베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비얄리브레는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킨 후 트럼펫을 부는 세리머니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비토리아 시청 광장은 승격의 기쁨을 나누려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2024
[라리가 내 안정적 정착]
승격 첫 시즌에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리그 중위권에 안착하며 다시금 라리가의 강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루이스 가르시아 플라사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이 팀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이제 알라베스는 단순한 잔류를 넘어 유럽 대항전 진출을 다시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임대 선수들의 맹활약과 베테랑들의 리더십이 조화를 이뤘습니다.
멘디소로차는 다시금 높은 점유율과 열정적인 응원으로 상대 팀에 위압감을 줬습니다.
구단은 재정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선수단 가치를 높이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