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진
축구 선수, 방송인, 축구 감독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6- 11:27:23
조재진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타겟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압도적인 공중볼 장악력과 정교한 연계 플레이를 통해 '미남 스트라이커'의 정석을 보여주었습니다. 수원 삼성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광주 상무에서 기량을 만개시킨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럽과 일본 무대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특히 일본 시미즈 에스펄스 시절에는 리그 최정상급 공격수로 군림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선천적인 고관절 부상으로 30세라는 이른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지만, 현재는 지도자와 방송인으로서 축구의 즐거움을 전파하며 제2의 인생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습니다.
1981
[파주에서의 탄생]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타고난 신체 조건과 남다른 운동 신경으로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 공격수로 성장할 운명적 여정이 시작된 날입니다.
조재진은 파주의 맑은 자연환경 속에서 기초 체력을 튼튼히 다지며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접한 축구공을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그의 재능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며 훌륭한 축구 선수로 자랄 수 있도록 헌신했습니다.
1988
[파주초등학교 입학]
파주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학생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딥니다. 학교 축구부에서 체계적인 기본기 훈련을 받으며 실력을 쌓아나갑니다.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피지컬로 이미 지역 내에서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공격수로서 갖춰야 할 위치 선정과 골 결정력을 집중적으로 훈련받았습니다.
각종 지역 대회에 출전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고, 팀의 승리를 책임지는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이 시기에 형성된 탄탄한 기본기는 훗날 그가 고난도 헤더 기술을 구사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4
[파주중학교 진학]
축구 명문 중 하나인 파주중학교에 진학하여 기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합니다. 본격적인 전술 훈련을 받으며 현대 축구의 흐름을 익히기 시작합니다. 중등부 무대에서 독보적인 공중볼 장악 능력을 선보이며 전국구 유망주로 떠오릅니다.
중학교 시절 급격한 신체적 성장을 바탕으로 강력한 포스트 플레이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전국 단위 중등부 대회에서 득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지도자들은 조재진의 영리한 움직임과 이타적인 플레이 스타일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1997
[대신고등학교 진학]
서울의 축구 명문 대신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고교 무대 정벌에 나섭니다.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과 전술 이해도를 높여 완성형 공격수로 거듭납니다. 고교 랭킹 1위 스트라이커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예고합니다.
대신고의 엄격한 훈련 시스템 속에서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전국대회 결승전 등 큰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며 팀의 우승을 여러 차례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의 활약으로 대학 팀은 물론 프로 구단들의 파격적인 영입 제의가 쏟아졌습니다.
1999
[고교 득점왕 타이틀 획득]
전국 고교 축구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유망주임을 증명합니다. 단순한 득점 기계를 넘어 팀 전체의 화력을 끌어올리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을 누립니다.
헤더뿐만 아니라 발밑 기술도 정교해져 상대 수비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국제 대회에 참가하며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경험하고 시야를 넓혔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안정적인 대학 진학 대신 프로 무대 직행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2000
[수원 삼성 전격 입단]
K리그 최강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며 화려하게 프로 생활을 시작합니다. 김호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낙점되었습니다. 쟁쟁한 선배들과의 경쟁을 통해 프로의 세계를 몸소 체험합니다.
당시 수원은 '레알 수원'이라 불릴 만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팀이었습니다.
신인 조재진은 훈련장에서부터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습니다.
입단 초기에는 교체 출전으로 감각을 익히며 점진적으로 출전 시간을 늘려나갔습니다.
[프로 데뷔전의 기록]
부천 SK와의 대한화재 컵대회 경기를 통해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전을 치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력한 피지컬로 상대 수비진을 압박하며 잠재력을 뽐냈습니다. 수원 팬들에게 조재진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역사적인 날입니다.
교체 투입 직후 적극적인 경합을 시도하며 신인다운 패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데뷔전 득점에는 실패했으나 타겟맨으로서의 역할 수행 능력은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이후 정기적인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프로 무대 적응에 속도를 냈습니다.
2002
[광주 상무 불사조 입대]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광주 상무 축구단에 입대합니다. 주전 경쟁이 치열했던 수원을 잠시 떠나 실전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군인 정신으로 무장하며 기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강조 감독의 지도 아래 팀의 주축 공격수로 매 경기 선발 출전했습니다.
규율 잡힌 생활과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신체 밸런스를 완벽하게 구축했습니다.
상무 시절의 활약은 그가 무명 유망주에서 국가대표 에이스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003
[K리그 무대 득점 행진]
상무 소속으로 K리그에서 꾸준히 골을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거듭납니다. 수비수 여러 명을 달고 뛰는 포스트 플레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성실한 플레이와 수려한 외모로 수많은 여성 팬의 지지를 받기 시작합니다.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 기여도가 매우 높아 팀 전술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동료들의 장점을 살려주는 연계 능력까지 갖추며 전천후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활약은 자연스럽게 국가대표 발탁에 대한 여론으로 이어졌습니다.
[국가대표 A매치 데뷔]
우루과이와의 친선 경기를 통해 대망의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릅니다. 코엘류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국 축구의 새로운 공격 옵션으로 등장했습니다. 세계적인 수비수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서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남미의 거친 축구 스타일에 밀리지 않는 강력한 몸싸움을 선보였습니다.
비록 팀은 패했으나 조재진 개인에게는 '슈퍼 이글스'의 일원으로 공인받은 날이었습니다.
이후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스트라이커 경쟁 체제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상무 전역 및 수원 복귀]
군 복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원소속팀 수원 삼성으로 복귀합니다. 더욱 강력해진 기량과 성숙해진 멘탈을 장착하고 친정팀에 돌아왔습니다. 차범근 감독 체제 하에서 수원의 명가 재건을 이끌 핵심 인물로 기대를 모읍니다.
전역 직후 팀의 동계 훈련에 합류하여 빠른 전술 적응력을 보였습니다.
수원 팬들은 '작은 황새'의 귀환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응원했습니다.
프로 선수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신체적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습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 진출]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출전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끕니다. 말리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극적인 무승부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사상 원정 첫 올림픽 8강이라는 위업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자책골 유도부터 환상적인 헤더 득점까지 공격수가 보여줄 수 있는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조재진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올림픽에서의 맹활약은 곧이어 찾아올 해외 진출의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시미즈 에스펄스 전격 이적]
올림픽 종료 직후 일본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며 해외 진출에 성공합니다. 수원의 간판이었던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감히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등번호 18번을 달고 팀의 새로운 해결사로 등극합니다.
시미즈 구단은 조재진의 영입을 위해 파격적인 조건과 대우를 약속했습니다.
일본 특유의 기술적이고 세밀한 축구에 적응하기 위해 밤낮없이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이적 직후부터 팀 동료들과의 완벽한 호흡을 보이며 빠르게 주전 자리를 확보했습니다.
[J리그 데뷔 골 작렬]
일본 진출 후 얼마 되지 않아 데뷔 골을 기록하며 연착륙에 성공합니다. 머리와 발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득점력으로 일본 축구계를 긴장시킵니다. 시미즈 팬들 사이에서 '조(CHO)'라는 이름이 승리의 주문처럼 울려 퍼집니다.
상대 수비수를 압도하는 점프력으로 만들어낸 헤더 골은 일본 언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득점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연계 플레이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팀의 성적 반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에이스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2005
[J리그 15골 폭발]
시미즈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아 리그에서만 15골을 터뜨리는 기염을 토합니다. J리그 전체 득점 순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리그 최고 공격수로 공인받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타겟맨의 정석'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립니다.
매 경기 꾸준한 득점 감각을 유지하며 팀의 확실한 승리 카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의 거친 수비 전술도 조재진의 압도적인 힘과 기술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이 시즌의 활약으로 유럽 명문 구단들이 조재진을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비스코컵 준우승 견인]
일본 리그컵 대회인 나비스코컵에서 팀을 결승전까지 이끄는 맹활약을 펼칩니다. 비록 우승컵은 놓쳤지만 조재진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시미즈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팀의 자존심을 세워준 위대한 투혼으로 기억됩니다.
토너먼트 매 경기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터뜨리며 해결사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패배 후에도 동료들을 격려하며 진정한 팀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 조재진은 시미즈 에스펄스 구단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외국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6
[J리그 시즌 16골 달성]
월드컵 복귀 후 소속팀 시미즈에서 시즌 16골을 터뜨리며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합니다. 명실상부한 J리그 최고의 외국인 스트라이커로 추앙받습니다. 그의 골 결정력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정점의 상태였습니다.
시미즈의 전술은 사실상 '조재진에게 전달'로 요약될 만큼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일본 팬들은 그를 시미즈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언급할 정도로 신뢰했습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상위권 수상을 휩쓸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9번 공격수로 인정받았습니다.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 승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2006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이동국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메울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생애 첫 성인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 공격의 창끝을 맡게 됩니다.
평가전에서의 꾸준한 활약과 압도적인 제공권이 발탁의 핵심 이유였습니다.
박주영, 안정환 등 쟁쟁한 공격수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습니다.
전 국민의 응원 속에 월드컵 본선이 열리는 독일로 향하는 대장정에 합류했습니다.
[월드컵 토고전 선발 출장]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토고전에 선발 스트라이커로 출격합니다. 상대의 거친 수비를 몸으로 막아내며 동료들에게 슈팅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원정 첫 월드컵 승리의 기쁨을 현장에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조재진은 직접 득점하지는 못했으나 상대 수비진을 쉴 새 없이 괴롭히며 공간을 창출했습니다.
안정환의 역전골 상황에서도 조재진의 위협적인 움직임이 수비의 시선을 분산시켰습니다.
이 경기 승리로 한국은 16강 진출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전 결정적 헤더 도움]
강호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을 돕는 결정적인 헤더 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설기현의 크로스를 정확하게 머리로 떨어뜨려 주어 대어 프랑스를 낚는 데 기여했습니다. 전 세계가 한국의 투혼에 놀랐던 전설적인 무승부의 숨은 주역입니다.
앙리, 비에이라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버티던 프랑스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의 헤더 기술은 유럽의 내로라하는 수비수들 사이에서도 완벽하게 통했습니다.
이 장면은 조재진의 국가대표 커리어 중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스위스전 분투와 탈락]
조별리그 최종전인 스위스전에도 선발로 나서 골문을 두드려봅니다. 상대의 견고한 수비벽에 막혀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였습니다. 비록 16강 진출은 좌절되었으나 월드컵 전 경기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대회 내내 한국의 포스트 플레이를 홀로 책임지며 지친 기색 없이 전장을 누볐습니다.
외신들은 조재진을 '한국 공격의 핵심이자 유럽에서도 통할 타겟맨'으로 평가했습니다.
월드컵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그의 향후 커리어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2007
[아시안컵 주전 스트라이커 활약]
2007 아시안컵 본선 무대를 밟으며 다시 한번 국가대표팀의 창 끝이 됩니다. 부상자가 많았던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전방을 사수하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비록 팀 득점력이 저조했으나 조재진의 연계 플레이는 여전히 날카로웠습니다.
핌 베어벡 감독 체제에서 전술의 핵심적인 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한국이 최종 3위를 차지하며 자존심을 지키는 데 소중한 보탬이 되었습니다.
아시안컵 이후 그는 다시 한번 유럽 무대 진출에 대한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합니다.
[시미즈와의 아름다운 이별]
4년간의 화려했던 시미즈 에스펄스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유계약 신분을 얻습니다. 구단은 재계약을 원했으나 더 큰 무대를 향한 조재진의 열망을 존중해주었습니다. 일본 팬들은 그동안 보여준 감동적인 플레이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시미즈에서 통산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수많은 득점과 승리를 선사했습니다.
그는 시미즈 구단 역사상 가장 훌륭한 아시아 쿼터 성공 사례로 남았습니다.
자신의 커리어 2막을 준비하며 영국과 유럽 구단들의 제안을 신중히 검토했습니다.
2008
[전북에서의 8골 헌신]
전북 소속으로 리그에서 8골을 기록하며 팀이 상위권 경쟁을 지속하는 데 기여합니다. 중요한 고비마다 터뜨린 순도 높은 득점은 전북의 힘이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북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다시 해외로 향합니다.
최강희 감독의 전술 하에서 포스트 플레이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적 당시의 부진했던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다시 한번 일본 명문 구단들의 영입 제안이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입단 테스트]
꿈에 그리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부름을 받고 현지 테스트를 받습니다. 뉴캐슬 훈련장에서 자신의 기량을 직접 선보이며 계약 체결 직전까지 갔습니다. 대한민국 스트라이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 소식에 온 국민이 열광했습니다.
당시 샘 알다이스 감독은 조재진의 신체적 능력에 매료되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감독 경질과 구단 매각 소동이 겹치며 계약이 무산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비록 입단은 좌절되었으나 그의 실력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인정받았음을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전북 현대 모터스 전격 입단]
유럽 진출이 좌절된 후 K리그 복귀를 결정하고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합니다. 전북의 우승 프로젝트를 위해 최강희 감독이 직접 영입을 주도했습니다. '라이언 킹' 이동국의 뒤를 잇는 수호신으로 전북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습니다.
이적 직후부터 전북의 공격진에 무게감을 더하며 팀의 성적을 끌어올렸습니다.
K리그 무대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타겟맨의 위용을 과시하며 활약했습니다.
국내 복귀 후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 뜻깊은 시기였습니다.
2009
[감바 오사카 전격 이적]
일본 J리그의 최고 명문인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며 다시 일본 무대에 진출합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는 감바의 핵심 공격수로 낙점되었습니다. 일본 축구에 정통한 조재진에게 감바는 최고의 선택지였습니다.
엔도 야스히토 등 일본 최고의 미드필더진과 호흡을 맞추며 기대를 모았습니다.
시미즈 시절 보여준 명성 덕분에 감바 팬들은 조재진의 입단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아시아 쿼터제의 가장 성공적인 영입 사례로 꼽히며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일왕배 우승 트로피 획득]
감바 오사카 소속으로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적하자마자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생애 첫 일본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누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습니다.
결승전에서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팀의 승리를 지원하며 공을 세웠습니다.
감바의 공격 전술에 빠르게 녹아들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이 우승으로 조재진은 감바 팬들에게 확고한 신뢰를 얻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맹활약]
아시아 최고의 무대인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여 아시아 전역에 자신의 위상을 알립니다. 조별리그와 토너먼트에서 귀중한 골을 기록하며 팀의 순항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고질적인 통증이 발생하며 시련을 겪습니다.
K리그 팀들과의 대결에서도 프로다운 자세로 경기에 임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제공권은 아시아 무대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무기임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천적인 고관절 부상이 악화되면서 매 경기 통증과 싸워야 했습니다.
2010
[고관절 부상과의 힘겨운 사투]
선천적인 고관절 이형성증 증세가 심해지며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매 경기 진통제를 맞고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정상적인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그라운드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마주한 시기입니다.
의료진은 더 이상 무리하게 뛸 경우 평생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조재진은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재활에 매진했으나 끝내 통증을 잡지 못했습니다.
선수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올 결심을 굳히기 시작합니다.
2011
[30세 이른 나이의 공식 은퇴]
현역 은퇴를 전격 선언하며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30세라는 너무나 아쉬운 나이에 부상으로 인해 축구화를 벗게 된 소식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공격수의 눈물 섞인 작별이었습니다.
은퇴 인터뷰에서 그는 '완벽하지 못한 상태로 팬 앞에 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수많은 동료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그의 이른 은퇴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습니다.
축구 인생 1막을 마감하고 한 인간으로서 새로운 길을 찾는 무거운 발걸음을 뗐습니다.
[첼리스트 김수희와의 결혼]
은퇴 후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미모의 첼리스트 김수희 씨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생활에서 큰 위로와 안정을 찾으며 인생의 새로운 동반자를 맞이했습니다. 축구계 수많은 인사들의 축복 속에 제2의 인생을 화려하게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적 감성과 성실함에 반해 평생의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당일 조재진은 선수 시절보다 더욱 밝은 미소로 하객들을 맞이했습니다.
가정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은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인으로서의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2012
[축구 아카데미 및 사업 전개]
축구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합니다. 개인 비즈니스를 시작하며 사회인으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갔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축구에 대한 열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실한 선수 시절의 습관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성실함을 인정받았습니다.
때로는 실패도 겪었으나 그때마다 축구로 단련된 인내심으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후배 양성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조용히 축구계 주변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5
[아마추어 골프 대회에서의 두각]
취미로 시작한 골프에서 프로 못지않은 재능을 선보이며 화제가 됩니다. 각종 스포츠인 골프 대회에 참가하여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운동선수 특유의 집중력과 밸런스로 제2의 스포츠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장타 능력에서 현역 시절의 강력한 파워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골프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대인 관계를 형성하며 삶의 활력을 찾았습니다.
대중은 그라운드가 아닌 필드 위의 그의 모습에 다시 한번 매료되었습니다.
2017
[자선 축구 경기 참여 및 봉사]
홍명보 장학재단 등 자선 축구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선행을 베풉니다. 어려운 환경의 축구 꿈나무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변함없는 축구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귀감이 되었습니다.
현역 시절 동료들과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며 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멘토로서 활동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조재진의 진심 어린 봉사 활동은 많은 축구 팬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2021
[골 때리는 그녀들 전격 출연]
SBS 인기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 감독으로 합류하며 대중 앞에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잊혔던 '작은 황새'의 모습을 예능 무대에서 다시금 뽐내게 되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자상한 리더십으로 다시 한번 전국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합니다.
축구를 처음 접하는 여성 출연자들에게 진심 어린 지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냉철한 전술 분석과 부드러운 화법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방송 복귀와 동시에 그는 다시 한번 축구계의 가장 뜨거운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FC 탑걸의 사령탑 취임]
신생 팀인 'FC 탑걸'의 초대 감독을 맡아 팀 빌딩에 나섭니다. 최약체로 평가받던 가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마법 같은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선수 한 명 한 명을 자식처럼 아끼는 따뜻한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기초 체력 훈련부터 세밀한 전술 이행까지 조재진만의 스타일로 팀을 조련했습니다.
선수들은 그의 지도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과정은 방송을 통해 생생히 전달되어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22
[슈퍼리그 우승 감독의 영예]
FC 탑걸을 이끌고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자로서 최고의 성과를 냅니다. 자신의 철학인 '빌드업 축구'를 예능 무대에서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우승 확정 후 선수들과 함께 흘린 눈물은 조재진의 진심을 보여준 명장면이었습니다.
예능 감독을 넘어 실전에서도 통하는 지도 능력을 입증한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조재진은 '우승 청부사'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방송과 강연을 통해 자신의 지도 철학을 공유하며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2023
[대한축구협회 대외 협력 활동]
대한축구협회의 주요 공식 행사에 참여하며 축구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냅니다. 유소년 시스템 개선과 인프라 확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활발히 개진했습니다. 행정가로서의 가능성도 엿보이며 한국 축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축구 꿈나무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공인으로서의 영향력을 축구 저변 확대라는 공익적인 목적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후배 선수들에게 은퇴 후 삶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2024
[현재까지 이어지는 열정적인 삶]
여전히 방송과 축구 현장을 오가며 가장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중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축구 전문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조재진의 위대한 연혁은 멈추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배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 운영에 더욱 집중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행복한 일상도 틈틈이 공유하며 소탈한 인간 조재진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영원한 9번 스트라이커로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 속에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