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질학, 자원공학, 해저탐사, 국가전략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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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18- 17: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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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땅과 자원을 지키는 파수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1918년 지질조사소로 그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풍파 속에서도 한반도의 지질도를 완성하고 지하자원을 탐사하며 국가 산업화의 든든한 기초를 닦았습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통합과 분리를 거치며 외연을 확장해온 연구원은 이제 해저 탐사선 '탐해호'를 통해 오대양으로, 그리고 달 탐사 탑재체를 통해 우주로 그 영토를 넓히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과 핵심 광물 안보라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지구의 역사를 읽고 내일의 에너지를 설계하는 글로벌 연구기관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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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지질조사소 발족]

한반도 지질 조사를 전담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산하에 지질조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근대적인 지질 조사 체계를 갖추고 국토의 지질학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지질학 연구의 역사적 효시로 기록됩니다.

지질조사소는 식산국 산하 조직으로 출발하여 한반도 전역의 지질도 작성과 광물 자원 조사를 주도했습니다.
당시 작성된 지질도는 비록 수탈의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한반도 지질 구조를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변천사를 거쳐 현재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45

[지질조사소 개칭]

광복과 함께 미군정 산하에서 기존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지질조사소라는 명칭을 유지하며 업무를 이어갔습니다. 식민지 체제의 연구 기관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연구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과도기를 맞이했습니다.

광복 직후 혼란기 속에서도 지질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모여 국토 자원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했습니다.
미군정청 상공부 산하로 편제되어 한반도의 에너지원인 석탄과 광물 자원 조사에 집중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자적인 국립 연구소로 발전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48

[중앙지질광물연구소]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발맞춰 상공부 산하 국립 연구기관인 중앙지질광물연구소가 정식 발족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지질 연구와 광업 발전을 총괄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정부 수립 직후 설립된 이 연구소는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한 지하자원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광산의 탐사와 매장량 조사, 지질 계통의 확립 등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국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연구 기록과 표본을 보존하며 국가 과학의 맥을 이어갔습니다.

1961

[국립지질조사소 개칭]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기관 명칭을 국립지질조사소로 변경하고 국가 지질 정보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국가 산업화에 필요한 철광석, 석탄 등 기간 산업 자원의 탐사를 전담하며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전국 지질도 폭폭을 제작하여 국토 이용과 건설의 기본 지침을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를 수행했습니다.
해외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국내 지질 학자들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의 역할도 병행했습니다.

1967

[과학기술처 소속 변경]

과학기술처 신설과 함께 소속을 상공부에서 과학기술처로 변경하며 본격적인 전문 연구기관의 위상을 갖췄습니다. 단순한 행정 업무 보조에서 벗어나 고도의 과학 기술 연구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 운영 방침에 따라 연구 예산과 인력이 확충되는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지질학 연구의 수월성을 높이기 위한 첨단 분석 장비 도입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국가 장기 과학기술 발전 계획 내에서 지질 및 자원 분야의 로드맵을 수립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70

[국립광업연구소 분리]

광산 현장의 기술 지도와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국립지질조사소에서 국립광업연구소를 분리 신설했습니다. 지질 조사와 광업 기술 연구의 전문화를 꾀한 조치였습니다.

국립광업연구소는 광산 안전, 채광 기술 고도화, 광물 선광 기술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이는 현장 중심의 광업 발전과 학술 중심의 지질 조사를 병행하여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3년 뒤 두 기관이 다시 통합될 때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973

[국립지질광물연구소 통합]

효율적인 연구 수행을 위해 국립지질조사소와 국립광업연구소를 다시 통합하여 국립지질광물연구소를 출범시켰습니다. 자원 탐사와 활용 기술을 하나로 묶은 통합 지휘 체계가 완성되었습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체제로 전환되기 전의 마지막 국립 연구소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석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자원 확보 전략을 수립하며 국가적 중책을 수행했습니다.
이 통합 조직은 훗날 한국지질자원연구소(KIGAM)라는 법인 체제로 진화하는 직접적인 모태가 됩니다.

1976

[한국지질자원연구소 설립]

재단법인 한국지질자원연구소(KIGAM)가 설립되며 정부 출연연구기관으로 공식 전환되었습니다. 연구 운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여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로 도약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국가 과학기술 진흥 정책에 따라 효율적인 연구 관리가 가능한 공공 법인 형태로 거듭났습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본부 청사를 두고 전국적인 조사 네트워크를 가동했습니다.
현재 연구원의 공식적인 법인 설립일로 기념되며, 독자적인 예산 집행과 연구 기획이 가능해졌습니다.

[초대 이정휘 소장 취임]

한국지질자원연구소의 기틀을 잡기 위해 초대 소장으로 이정휘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출연연 전환 초기 조직의 기강을 확립하고 대형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이정휘 소장은 연구소 운영 규정을 정비하고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는 국가 자원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석탄 및 전략 광물 확보를 위한 조사를 독려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소는 단순 행정 지원 부서에서 고도의 기술 집단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1978

[동력자원부 소관 변경]

석유 파동 이후 에너지 정책 강화를 위해 신설된 동력자원부 산하로 소관이 변경되었습니다. 에너지 자원 확보와 기술 개발이 연구소의 최우선 국가적 임무가 된 시기입니다.

정부의 자원 외교와 연계하여 해외 자원 개발을 위한 기술적 타당성 조사를 전담했습니다.
국내 대륙붕 석유 탐사와 같은 대형 국책 과제에 연구원의 역량이 집중되었습니다.
정책 부서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가 에너지 안보 체계의 핵심적인 일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9

[2대 원대희 소장 취임]

원대희 박사가 2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연구소의 실용화 역량을 높이는 데 매진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의 자원 부족 위기 속에서 대안 에너지 자원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원 소장은 연구 성과의 산업 현장 보급을 위해 기업들과의 공동 연구를 장려했습니다.
특히 국내 광산의 심부화에 따른 채광 기술 고도화 연구를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소는 현장 중심의 기술 지원 체계를 확고히 구축했습니다.

1980

[과학기술처 소관 환원]

출연연구기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소관 부처가 다시 과학기술처로 환원되었습니다. 기초 원천 연구와 장기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정부의 출연연 통폐합 조치 직전, 과학기술 중심의 연구 체계로 복귀한 조치였습니다.
에너지 자원 정책과 분리되어 순수 지질학 및 자원공학 기술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대덕연구단지로의 본원 이전 계획이 구체화되며 거대 연구 인프라 확보를 준비했습니다.

1981

[한국동력자원연구소 통합]

지질자원연구소와 에너지연구소가 통합되어 한국동력자원연구소(KIER)가 출범했습니다. 자원 탐사와 에너지 이용 기술을 하나로 묶은 거대 통합 연구 기관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단행된 출연연 통폐합의 결과로 10년간 통합 법인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통합 조직 내에서 지질 및 자원 분야는 탐사 부문으로서 고유의 전문성을 유지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대덕연구단지에 대규모 연구 시설이 들어서며 연구 기반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3대 현병구 소장 취임]

통합 한국동력자원연구소의 수장으로 현병구 박사가 취임하여 거대 조직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연구소의 문화를 융합하고 통합의 시너지를 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현 소장은 대덕연구단지 조기 안착과 통합 연구소의 비전 수립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자원 탐사와 에너지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융합 과제들을 다수 발굴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소는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동력 자원 확보의 전초 기지가 되었습니다.

1983

[4대 박긍식 소장 취임]

박긍식 박사가 4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통합 연구소의 안정과 연구 성과 극대화에 주력했습니다. 대덕연구단지 시대를 맞아 연구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창의적인 연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박 소장은 연구 관리 시스템의 현대화를 도입하여 대형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그는 국제 공동 연구를 활성화하여 연구소의 기술 수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고자 했습니다.
1986년까지 이어진 재임 기간 동안 수많은 국책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1986

[5대 박긍식 소장 연임]

박긍식 소장이 연구 성과와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5대 소장으로 연임되었습니다. 장기적인 연구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추진 중이던 핵심 사업들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연임 기간 동안 연구원의 연구 인프라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자원 전문 연구 기관으로서 대외적인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의 안정적인 리더십 하에 연구소는 조직의 수월성을 확보하며 고도 성장기에 진입했습니다.

1987

[6대 김지동 소장 취임]

김지동 박사가 6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통합 연구소의 전문 부서별 경쟁력을 강화했습니다. 급변하는 글로벌 에너지 지형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김 소장은 특히 대체 에너지 기술의 원천 확보와 지질 자원 분야의 전문화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의 전문 지식이 정책 수립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연구소는 대덕연구단지의 중추적 일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0

[7대 오정무 소장 취임]

오정무 박사가 7대 소장으로 취임하며 조직의 독립과 전문화를 준비했습니다. 통합 조직 내에서 지질 및 자원 부문의 독자적 연구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오 소장은 에너지와 자원 분야의 분리 필요성을 절감하고 조직 개편을 주도했습니다.
이는 1년 뒤 연구소가 지질자원 전문 기관으로 재탄생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연구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1991

[지질자원연구소 재독립]

통합 10년 만에 한국동력자원연구소에서 지질 및 자원 분야가 분리되어 한국지질자원연구소로 재발족했습니다. 국토 지질 연구의 전문성을 되찾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에너지 기술 연구와 분리되어 대한민국 유일의 지질 및 자원공학 전문 기관으로 거듭났습니다.
독자 법인으로서 예산과 인사권의 자율성을 회복하며 연구 활성화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기관의 정체성이 명확해짐에 따라 연구원들의 소속감과 자긍심이 크게 고취되었습니다.

[8대 박희순 소장 취임]

재독립된 한국지질자원연구소의 초대 소장(기관 전체 8대)으로 박희순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신설 기관의 기틀을 잡고 전문 지질 자원 연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박 소장은 재독립 초기 조직을 안정시키고 대덕 본원의 연구 인프라를 재배치했습니다.
그는 지질도 발간 사업과 국가 지하수 조사 사업 등 공공 임무를 최우선으로 설정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소는 전문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빠르게 정립했습니다.

1994

[9대 박승원 소장 취임]

박승원 박사가 9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연구소의 연구 지평을 넓혔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기술 경쟁 가속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박 소장은 특히 환경 지질과 지하수 보전 연구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관련 부서를 확대했습니다.
그는 국제 지질 기구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한국 지질학의 세계화를 꾀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소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 지도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대덕 본관동 준공]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에 연구소의 상징인 본관동 건물을 성공적으로 완공했습니다. 쾌적한 연구 환경과 현대적인 실험 시설을 갖춘 연구소의 심장이 마련되었습니다.

본관동 준공은 재독립 이후 연구 인프라 현대화 사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지질 조사 데이터베이스와 정밀 분석 장비들이 집결되었습니다.
연구원들이 한자리에서 융합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적 기반이 완성되었습니다.

[10대 박승원 소장 연임]

박승원 소장이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10대 소장으로 연임되었습니다. 연구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추진 중이던 해저 탐사선 건조 사업 등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연임 기간 동안 연구소는 국제적인 지질 연구 네트워크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대덕 본원의 연구 시설 고도화가 이 시기에 상당 부분 진행되었습니다.
그의 리더십 하에 연구소는 조직의 안정성과 연구의 수월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1996

[탐해 2호 진수 성공]

국내 유일의 물리탐사선인 탐해 2호를 건조하여 진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한민국 해저 자원 탐사 기술이 오대양으로 뻗어나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탐해 2호는 2,000톤급 최첨단 해저 지형 및 지층 탐사 장비를 갖춘 연구선입니다.
이 선박을 통해 대륙붕 석유 가스 탐사와 가스하이드레이트 발견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대한민국 해양 영토에 대한 과학적 권리를 주장하는 데 핵심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97

[11대 김상엽 소장 취임]

김상엽 박사가 11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난관을 돌파해 나갔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구의 핵심 역량을 보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김 소장은 예산 감축 등 고통을 분담하면서도 핵심 연구 인력의 이탈을 막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연구소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원은 효율적인 조직으로 거듭나며 포스트 위기 시대를 준비했습니다.

1999

[기초기술연구회 이관]

정부 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 개편에 따라 소관 부처가 국무총리실 산하 기초기술연구회로 이관되었습니다. 연구 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이 한층 강화된 새로운 체제에 들어섰습니다.

부처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연구회 체제 하의 객관적인 평가와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출연연들과의 협업이 용이해지며 융합 연구의 가능성이 크게 열렸습니다.
이 이관은 연구원이 국가 과학기술 생태계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

[지질박물관 공식 개관]

연구소 부지 내에 국내 유일의 지질 전문 박물관인 지질박물관을 건립하여 개관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지구의 역사와 자원의 소중함을 알리는 과학 문화 거점이 마련되었습니다.

대형 공룡 화석과 희귀 광물, 암석 표본 등 수만 점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지질 탐구 프로그램과 전문가 강연을 통해 과학교육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연구원의 얼굴로서 매년 수많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12대 김영화 원장 취임]

김영화 박사가 12대 원장으로 취임하며 새로운 밀레니엄의 안보를 책임졌습니다. 21세기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 맞춰 연구원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김 원장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으로의 명칭 변경과 기관 격상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그는 정보통신 기술과 지질학의 융합인 '디지털 지질도' 제작 사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원은 국제적인 에너지 관련 학술 교류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1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개칭]

기관 명칭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으로 변경하고 위상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단순히 조사하고 탐사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도약했습니다.

국가 지질 자원 정책의 씽크탱크이자 기술 허브로서의 역할을 대외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영문 약칭인 KIGAM을 브랜드화하여 글로벌 무대에서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명칭 변경 이후 연구원은 수소 에너지, 가스하이드레이트 등 신산업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KIGAM 엠블럼 선포]

연구원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담은 CI와 엠블럼을 제정하여 공식 선포했습니다. 지구와 자원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통해 기관의 철학을 대내외에 공유했습니다.

청색과 녹색을 조화시켜 깨끗한 지구와 지속 가능한 자원 개발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조직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대중에게 친숙한 연구원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이 엠블럼은 현재까지 연구원의 모든 대외 활동과 발간물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2002

[연구단지 도로명 제정]

연구원 내 주요 도로와 건물에 지질학적 의미를 담은 명칭을 공모하여 제정했습니다. 연구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연구단지의 공간적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과학로, 지질로 등 상징성 있는 명칭들을 실제 주소와 지도에 반영했습니다.
방문객들이 연구 단지 내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안내판을 설치했습니다.
사소한 변화이지만 연구원 내의 문화를 개선하고 소속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

[13대 이태섭 원장 취임]

이태섭 박사가 13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연구원의 질적 성장과 조직의 화합을 이끌었습니다. 전기 및 자원 융합 기술 등 미래 신산업 확보를 위한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이 원장은 연구 성과의 실용화와 기술 이전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특히 '지질 자원 인재 개발 센터' 건립을 추진하여 국가적 교육 인프라를 마련했습니다.
재임 동안 연구원은 국제적인 학술 대회 유치와 교류의 장으로 활약했습니다.

2004

[독도 주변 지질조사]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와 주변 해역의 지질 및 해저 지형에 대한 정밀 조사를 수행했습니다.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독도에 대한 주권을 공고히 하는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독도 주변 해저의 화산 구조와 암석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자료는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어 독도의 지질학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국가적 영토 수호 의지를 과학적 연구 성과로 뒷받침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06

[14대 이태섭 원장 연임]

이태섭 원장이 뛰어난 경영 능력과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14대 원장으로 연임되었습니다. 연구원의 중장기 발전 전략인 'KIGAM 2020'을 구체화하며 실행에 옮겼습니다.

연임 기간 동안 연구원의 연구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핵심 인재를 유치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 연구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원은 경영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조직의 안정을 꾀했습니다.

2007

[핵심 연구분야 선정]

연구원의 역량을 집중할 6대 핵심 연구 분야를 선정하고 자원을 배분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계 1등 기술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결단이었습니다.

자원 확보, 기후 변화 대응, 지질 재해 감시 등이 주요 전략 분야로 포함되었습니다.
각 분야별로 전담 연구 본부를 신설하고 책임 경영제를 도입했습니다.
연구원들이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2008

[지식경제부 소관 변경]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소관 부처가 지식경제부로 변경되었습니다. 산업화와 연계된 자원 기술 개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시기입니다.

해외 자원 개발 전략과 연계하여 연구원의 실무적 지원 역할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광물 자원의 선광 및 제련 기술 국산화가 국가적 과제로 급부상했습니다.
연구원은 산업 현장의 기술 수요를 반영한 실용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15대 장호완 원장 취임]

장호완 박사가 15대 원장으로 취임하며 '글로벌 지질 자원 연구'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연구원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혁신적인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장 원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 창출을 독려하며 연구원 1인당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그는 개방형 혁신을 통해 외부 연구기관 및 대학과의 협력을 극대화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연구원은 기후 변화 대응 원천 기술 분야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2009

[포항 실증연구센터 준공]

해저 자원 실증과 CO2 저장 연구를 위한 포항지질자원실증연구센터를 준공했습니다. 지역 특화 연구 거점을 마련하여 현장 실증 중심의 연구를 강화했습니다.

포항 해역의 지질 구조를 활용한 이산화탄소 지중 저장 실험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탐해 2호의 전용 부두 시설과 연계하여 해상 탐사 데이터 분석의 효율을 높였습니다.
동해안 에너지 벨트의 핵심 연구 시설로서 지역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2010

[G20 정상회의 기술지원]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 시 자원 안보 및 에너지 정책 분야의 기술적 자문을 지원했습니다. 국가적인 대형 행사의 성공을 위해 연구원의 전문 지식을 공유했습니다.

에너지 및 원자재 시장의 불안정성 해소를 위한 기술적 시나리오를 제공했습니다.
각국 정상들에게 한국의 앞선 지질 자원 기술력을 알리는 홍보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연구원이 단순히 연구실에 머물지 않고 국가 정책의 든든한 조력자임을 입증했습니다.

2011

[16대 이효숙 원장 취임]

연구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원장으로 이효숙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따뜻한 과학기술'과 '소통하는 연구원'을 모토로 조직 문화를 유연하게 혁신했습니다.

여성 과학자로서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연구원들의 복지와 연구 환경을 세심하게 챙겼습니다.
그는 특히 광물 자원 재활용 기술(도시 광산) 연구를 국가적 아젠다로 부상시켰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국민 체감형 연구 성과를 다수 발표하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2013

[미래부 소관 변경]

창조 경제를 표방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소관 부처가 재편되었습니다. 혁신적인 지질 자원 아이디어가 경제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ICT 기술과 지질 데이터가 결합된 '스마트 자원 탐사' 기술 개발에 박차가 가해졌습니다.
연구원은 국가 과학기술 생태계 내에서 원천 기술의 상업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미래부 소속으로서 타 분야 출연연과의 경계 없는 융합 연구가 대폭 장려되었습니다.

[17대 김규한 원장 취임]

김규한 박사가 17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실용적인 에너지 기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연구원의 성과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김 원장은 지진 재해 대응 시스템 구축과 지하수 오염 방지 기술 연구를 강화했습니다.
그는 '국가 지질 자원 데이터 센터'의 기능을 대폭 확대하여 정보 공유를 활성화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북한 자원 조사 및 남북 협력 방안 연구에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2014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관]

정부 출연연구기관 통합 거버넌스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로 이관되었습니다. 개별 연구소 중심에서 국가 전략 중심의 연구 체계로 변모한 시점입니다.

25개 출연연이 하나의 연구회 소속이 되면서 공동 연구 테마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연구원의 행정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을 한층 높였습니다.
이 통합 체제 하에서 연구원은 범국가적 대형 프로젝트의 주관 기관으로 다수 선정되었습니다.

2015

[북극 지질조사 수행]

대한민국 연구진이 최초로 북극권 동해 역의 해저 지질 조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지구 온난화 연구와 미래 자원 탐사를 위한 전 지구적 보폭을 넓혔습니다.

아라온호를 이용해 북극 해저의 영구 동토층과 가스하이드레이트 부존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국제 공동 북극 탐사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 성과는 연구원의 탐사 영역이 극지로 확장되었음을 상징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2016

[18대 신중호 원장 취임]

신중호 박사가 18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질 기술을 강조했습니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지능형 자원 탐사 시스템 연구에 투자를 확대했습니다.

신 원장은 연구원 창립 100주년을 준비하며 미래 100년의 비전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지진 재해 대응 기술을 고도화하여 국민 안전을 지키는 연구원의 역할을 강화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연구원은 고에너지 밀도 핵심 광물 확보 등 미래형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냈습니다.

2017

[과기정통부 소관 변경]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소관 부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재편되었습니다. 지질 기술과 디지털 혁신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국가 지질 자원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를 통한 혁신 생태계 조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저탄소 기술 개발이 연구원의 핵심 미션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과기정통부 산하에서 기초 원천 기술과 실용화 기술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했습니다.

2018

[창립 100주년 기념식]

1918년 지질조사소 발족 이후 10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기념식과 학술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대한민국 지질 연구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 100년의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지질자원 100년사를 발간하여 대한민국 근대 과학의 발자취를 집대성했습니다.
'지구의 역사를 넘어 미래를 향한 자원 안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발표했습니다.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원로 과학자들과 후배 연구원들이 하나 되는 화합의 장이 되었습니다.

[19대 김복철 원장 취임]

김복철 박사가 19대 원장으로 부임하며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기술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습니다. 기후 위기 극복의 해결사로서 연구원의 역할을 강화했습니다.

김 원장은 이산화탄소 지중 저장과 수소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디지털 전환을 연구 전반에 도입하여 데이터 기반의 연구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연구원은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매진했습니다.

2021

[20대 이평구 원장 취임]

이평구 박사가 20대 원장으로 취임하며 핵심 광물 안보와 우주 자원 탐사의 시대를 선포했습니다. 국가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원장은 리튬, 니켈 등 4차 산업 핵심 광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달 탐사 탑재체 개발 등 우주 자원 탐사 분야에 연구원의 역량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연구원은 더욱 민첩하고 혁신적인 조직으로 변모하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2

[달 지질조사 탐재체 발사]

대한민국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에 연구원이 독자 개발한 '감마선 분광기'를 탑재하여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달 표면의 지질 정보와 자원 부존량을 조사하는 역사적인 임무입니다.

연구원의 탐사 영역이 지표와 해저를 넘어 우주 공간으로 확장된 상징적인 성과입니다.
달 표면의 철, 티타늄, 헬륨-3 등 유용한 자원의 분포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분광 기술을 통해 대한민국 우주 과학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2024

[탐해 3호 공식 취항]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갖춘 최첨단 물리탐사선 탐해 3호가 공식 취항했습니다. 오대양의 해저 자원을 3D 및 4D로 탐사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해상 연구 플랫폼입니다.

6,000톤급 대형 선박으로 건립되어 전 세계 극지를 포함한 모든 해역에서 조사가 가능합니다.
기존 탐해 2호보다 수십 배 뛰어난 해상도와 탐사 깊이를 자랑하는 첨단 장비를 탑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원 영토를 오대양 심해저로 확장하는 강력한 무기를 확보한 쾌거입니다.

2025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

새해를 맞이하여 국가 전략 광물인 리튬과 니켈의 독자적인 정제 및 추출 기술 상용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자원 전쟁 시대에 기술 자립으로 공급망을 수호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국내외 미이용 자원과 폐배터리에서 고순도 핵심 광물을 뽑아내는 기술 고도화에 성공했습니다.
관련 기업들에 기술을 신속히 이전하여 국내 배터리 산업의 안정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핵심 광물 확보 전략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원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2026

[글로벌 지질자원 리더]

오늘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구의 신비를 풀고 미래의 자원을 설계하는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섰습니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인류 공통의 난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의 신뢰를 받는 연구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우주와 오대양, 그리고 땅속 깊은 곳까지 연구원의 눈과 귀는 인류의 내일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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