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검프 실제 역사 비교

영화, 실화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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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23- 20: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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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을 20세기 미국사의 주요 사건들을 관통하며 살았던 실존 인물로 가정하고, 그의 행적을 연대기 순으로 재구성한다.


작가가 적은 포레스트 검프의 대본상의 연도를 중심으로 하면 수많은 모순이 발생한다.

작가는 검프가 1945년생으로 1954년 초등학교를 첫 등교를 했다고 썼는데 그렇게 되면, 케네디 대통령을 도저히 만날 수가 없으며, 베트남전의 버바 사망일(묘비에 적힌) 등과도 전부 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모순 없이 진행될 수 있는 연도로 작성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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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의 조상]

포레스트 검프의 집은 어머니의 조부의 조부의 조부가 물려준 집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천 년 전쯤 바다를 건너왔다고 표현한다.

천 년은 그만큼 오래됐다는 비유적인 표현일 뿐 실제 시기가 맞지는 않으며, 영국계 이주민의 후손으로 17세기 쯤에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극 중 포레스트 검프가 실존 인물인 네이선 배드포드 포레스트와 혈연관계라고 했으므로, 그의 가문을 살펴보면, 포레스트 검프의 조상을 알 수 있다.

"When I was a baby, Momma named me after the great Civil War hero, General Nathan Bedford Forrest. She said we was related to him in some way."  


과거 버지니아는 영국이 북미 대륙에 세운 최초의 식민지였다.

네이선 배드포드 포레스트의 증조할아버지 샤드락 포레스트는 1746년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태어나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주해 거기서 네이선 포레스트(네이선 배드포드 포레스트의 할아버지, 풀네임 Nathan Forrest Sr.)를 낳았고, 네이선 포레스트는 윌리엄 포레스트를 낳았으며, 윌리엄 포레스트가 테네시주에서 네이선 배드포드 포레스트를 낳았다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샤드락 포레스트의 부모인 윌리엄 포레스트(William Forrest Sr.)도 1727년 버지니아 출생이다.

윌리엄 포레스트의 부모 제임스 포레스터(James Forrester Sr.)의 기록은 명확하지 않으나, 일부 기록에 1688년 스코틀랜드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유럽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가문의 동선을 종합하면 제임스 포레스터(스코틀랜드로 추정, 유럽에서 미국 이주) -> 윌리엄 포레스트(1727년 버지니아 출생) -> 샤드락 포레스트(1746년 버지니아 출생) -> 네이션 포레스트(1776년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 윌리엄 포레스트(1801년 노스캐롤라이나 출생) -> 네이선 배드포드 포레스트(1821년 테네시주 출생) -> (중간 여러 명 생략) -> 포레스트 검프 어머니(앨라배마 저택을 하숙집으로 운영) -> 포레스트 검프(주인공, 앨라배마)


이 집안은 버지니아에서 아래로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쪽으로 향한 것을 볼 수 있다.

1940

[앨라배마 그린보우 출생]

지능 지수 75로 태어났으나 어머니의 헌신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는 다리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는 신체적 어려움이 있었다.

포레스트 검프가 태어난 앨라배마주. 하지만 그린보우는 가상의 동네다.


포레스트의 이름은 남북전쟁에서 활약했던 네이선 포레스트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네이선 베드퍼드 포러스트는 실제 1860년대 발발한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기병대장으로 맹활약했던 인물이다. 전쟁 이전에는 노예 무역을 통해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부호로 떠올랐으며, 멤피스의 시의원을 지냈다. 전쟁 이후에는 초대 KKK(쿠 클럭스 클랜 : 백인 우월주의 단체)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포레스트 검프가 네이선 포레스트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유는 그가 가문의 조상이기 때문이었지만, 포레스트의 어머니가 '사람들은 포레스트(장군)처럼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고 말한 걸 보면, 포레스트 장군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추측된다.

1944

[검프의 집이 하숙집 역할]

포레스트 검프의 어머니가 모빌이나 몽고메리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하숙을 시켜줬다는 내용이 나온다. 모빌은 앨라배마의 항구도시이며, 몽고메리는 주도(주의 행정 중심 도시)이다.

따라서 상인, 사업가 등이 많이 오고 가는 곳이었으며, 변변한 호텔이 없던 시절 이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프 집의 모든 방이 여행객들로 가득 찰 때도 있다는 표현도 나온다.


훗날 검프의 새우잡이 사업이 앨라배마 해안 근처인 바이유 라 바트리(Bayou La Batre)에서 이루어지는데, 바이유 라 바트리도 모빌 근처에 위치한 실제 마을이다.

1946

[교장 선생님 상담]

당시 미국에서 대부분의 아동은 만 6세경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미국 초등학교 등교 시기는 주로 8월 말 또는 9월 초다.

왜냐하면 미국은 전통적으로 농번기가 끝난 후인 가을에 새 학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장 선생님에게 입학 거부를 당했던 시기는 1950년 초로 추정된다.


[첫 등교, 제니와의 만남]

검프가 첫 등교를 하면서 스쿨버스에 타는 내용이 나온다.

(버스 운전기사 도로시와의 통성명 에피소드)

그리고 버스 옆자리에서 평생의 사랑 제니를 처음 만난다.


1953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영감 제공]

검프는 어머니의 하숙집에 묵던 청년(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춤을 보여주었다.

이 독특한 골반 움직임은 엘비스의 상징적인 무대 안무가 되었다.

엘비스는 미국 남부 출신으로 13세 때부터 청소년기를 테네시주에서 보냈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앨라배마 하숙집에 묵었다는 설정은 개연성을 가진다.

검프의 춤은 1956년 7월에 발매된 엘비스의 히트곡 'Hound Dog'에서 쓰인다.


하숙집에서 엘비스는 기타를 치면서 Hound Dog을 부르고 검프가 이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이 Hound Dog은  블루스 가수인 빅 마마 쏜튼이 1953년 2월에 발표한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따라서 엘비스가 검프의 하숙집에 묵었던 시기는 1953년 2월에서 1956년 7월 사이로 추정된다.


참고로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달리기 능력 발견 및 해방]

검프가 아이들에게 얼굴에 돌을 맞을 때 BIG CHIEF TABLET라는 빨간 책을 들고 있다.

이 공책은 초등학교 저학년(만 6세~8세)가 글자 쓰는 법을 배우는 데 널리 썼던 공책으로 글자 쓰는 칸이 큰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제니는 같은 공책이 아닌 다른 두꺼운 책들을 들고 있고, 결정적으로 검프가 달리면서 보조기를 부수는 시점은 엘비스를 만난 이후다.

따라서 제니가 "Run, Forrest, Run!"를 외치던 시기, 검프는 발달 속도가 달랐기 때문에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용 공책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프는 제니의 격려로 필사적으로 달아나며 보조기를 부쉈고, 이때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능력을 자각하게 되었다.

1956

[고등학교 미식축구팀 스카웃]

검프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돌을 던지는 학생들을 피하다가, GREENBOW BRAVES라는 고등학교 미식축구 팀에게 스카웃 된다.

그리고 이는 대학교 진학으로 이어진다.

1958

[대학교 미식축구 선수]

앨라배마 대학교 미식축구 선수로 스카웃 된다.

1960년대 당시 NCAA(미국 대학 체육 협회) 규정상 1학년 신입생은 대학 대표팀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이 규정은 1972년에야 풀린다.)

대학교 미식축구 정규 시즌은 9월 초~11월 말이며, 챔피언십 등은 12월~1월 사이에 있다.

1961

[여대 방문]

검프는 비오는 날 제니가 다니던 여대에 방문했다가, 제니와 남자친구가 차 안에 있는 모습을 오해해서, 남자친구를 폭행한다.

이 때 검프가 있던 장소가 Margaret Mitchell Hall이라는 이름의 건물 앞인데, 이 건물 자체는 가상의 설정이지만, 실제 '마거릿 미첼'은 유명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이며, 앨라배마 근처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출신이므로, 제작진이 포레스트의 고향인 미국 남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상징적인 인물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이 날 검프가 제니에게 초콜릿을 거넨 것으로 보아 발렌타인데이로 가정할 수 있으므로, 시기를 2월로 정했다.

고지식한 검프라면 특정한 날이 되었을 때만 초콜릿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검프는 로맨틱한 캐릭터가 아니다)


이후 같이 기숙사로 들어간 뒤, 제니는 '조앤 바에즈' 같은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1960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조앤 바에즈는 1963년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1963년 8월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에 참여하여 노래하며, 음악적 재능뿐 아니라 사회 운동가로서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이후 제니가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복선이라 볼 수 있다.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

전미 미식축구 대표팀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다.

포레스트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며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대사를 날린다.


이 원본 영상이 1961년 12월의 실제 기록에 배우 얼굴을 합성해서 만든 영상이다.


케네디를 만나기 직전 넷플릭스 한글 자막에는 '축구를 많이 하다 보니 대학 생활도 끝났죠'라고 나오지만, 영어 원문은 'College ran by real fast 'cause I played so much football.' 이다. 대학 생활이 끝나려면 시간이 조금 남은 시기다.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검프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장면에서 마릴린 먼로의 사인한 액자가 걸려있다. 이 장면에 대해서 케네디와 먼로의 스캔들을 연상시킨다는 해석이 있지만 틀렸다.

두 사람이 실제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경호국 요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62년 3월 24일 ~ 25일 캘리포니아 별장에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장면에 나온 액자는 앞으로 두 사람이 만나게 될 것을 암시한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1962년 8월에 먼로는 사망했기 때문에, 사망한 사람의 액자를 12월에 올려뒀을 리는 없다. 따라서 1961년 12월 아직 만나기 전이라고 봐야한다.)

1963

[앨라배마 대학교 통합 목격]

검프는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리스가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막으려는 현장을 우연히 지나갔다.

이 '앨라배마 대학교 흑인 등록 거부 사건은 케네디 대통령의 연방군 동원 명령으로 이어졌다.

검프는 이 장소에서 흑인 학생의 떨어진 물건을 주워주면서, TV에 출연한다.

[실제 사건]이후 1972년 월리스 주지사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던 중 아서 브레머라는 인물이 쏜 총에 맞았지만,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 총격으로 인해 월리스는 평생 하반신 마비를 겪게 되었으며, 이후 휠체어에 의지하여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학사 학위 취득]

검프가 5년 간의 대학교 미식축구 생활을 끝내고 학사 학위를 받는다.



졸업식에서 검프는 미 육군 모병 센터 팜플렛을 받는다.

이 때는 아직 베트남 전쟁이 미국 대중에게 '지옥 같은 전면전'으로 인식되기 전이다.

그래서 이때 미군은 대학 졸업자들에게 "군대는 좋은 기회"라고 홍보했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군 입대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후 1965년부터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결정하면서 징집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졸업과 동시에 영장(징집 통지서)이 날아오기 때문에 자원입대 팜플렛은 필요 없는 시기로 바뀌고 대학 캠퍼스에서는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검프는 1963년이라 평화로운 권유를 받은 것이다.

[검프 입대]

검프가 군에 입대한다.

1967

[베트남 파병]

1964년 일어난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1965년 3월부터 미군의 본격적인 지상군 전투부대 파병이 시작된다.

검프는 1967년 초 베트남으로 파병을 가게 된다.

당시 미 육군의 베트남전 파병 복무 기간(Tour of Duty)은 정확히 12개월(365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걸 DEROS (Date Eligible for Return from Overseas)라고 불렀다.

[베트남 전쟁에서 제니에게 편지]

포레스트 검프가 비를 맞으면서 제니에게 편지를 쓰던 당시에 'California Dreamin'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1965년 12월 8일에 발매되어 1966년 빌보드 4위까지 오르는 히트곡이 되며, 베트남 라디오까지 흘러나오는데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때 제니는 폭스바겐 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히피 친구들과 어울린다.

이 시기 미국에서 히피 문화가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베트남 총격전]

총격전이 일어나 친구 버바를 잃는다.

이 사망 시점은 이후 버바의 묘비에서 적힌 날짜로 특정할 수 있는데, 나중에 검프가 버바의 묘지를 찾아갔을 때 사망일이 '1967년 6월 7일'로 적혀있다.

고증이 조금 어긋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우기는 5월부터 11월까지이기 때문이다.

4개월간의 우기가 끝나고 총격전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살짝 시기가 맞지 않다.

[병원에 입원]

검프는 베트남 전쟁에서 엉덩이에 총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이 때 주소 불명으로 제니에게 보낸 편지들이 전부 반송된 것을 발견한다.

이 장면에서 편지에 1967년 도장이 찍혀있다.

1968

[구정 대공세]

영화에는 없는 역사적 사실.

1968년 1월 30일 베트남 최대 명절인 '테트(Tet)', 즉 구정/설날에 북베트남군(월맹군)과 베트콩이 휴전 관행을 깨고, 남베트남의 주요 도시 100여 곳을 동시에 기습 공격한다.

이로 인해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까지 뚫릴 뻔했고,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반격해서 전술적으로는 미군의 대승이었지만, 미국 내 여론은 대참사가 났다.

TV 뉴스에서 미 대사관이 공격받고 시가전이 벌어지는 걸 본 미국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이 전쟁은 가망이 없다", "철수해라"라는 반전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이후에 검프가 귀국해서 워싱턴 D.C.에 갔을 때, 링컨 기념관 앞에 수만 명의 히피와 반전 시위대를 만나는 장면과 연결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훈장을 받는 검프]

검프가 백악관에서 린든 B.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는다.

그리고 근처에서 반전 시위에 참여 중이던 제니를 만난다.

실제 영상에다가 배우 얼굴을 합성해 넣은 것으로 실제 원본 영상의 주인공은 새미 L. 데이비스(Sammy L. Davis) 병장이다.

이 실제 영상이 1968년 11월 19일에 있었다.


영상 원본 비교

[제니의 남자친구를 폭행]

검프가 제니를 따라서 들어간 반전 단체의 장소에서 자신을 '블랙팬서' 조직이라고 소개하는 인물을 만난다.

블랙팬서는 1966년 창설되어 후반에 활동하던 단체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과 폭력으로부터 흑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경단 성격의 무장 단체였다.

그들은 특히 "흑인들이 미국에서 억압받는데 왜 베트남 가서 싸워야 하느냐"는 논리로 베트남 전쟁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특히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암살 이후 흑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1969

[탁구 묘기]

TV에서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이 시기 검프는 전국을 돌면서 재향군인들을 모아놓고 양 손으로 번갈아 탁구를 치는 묘기를 보여준다.

1971

[핑퐁 외교]

당시 적대 관계였던 미국과 중국(중공)이 탁구를 매개로 교류를 튼다.

미국 탁구 대표팀이 베이징을 방문해서 친선 경기를 가진 것이다.

검프가 미국 탁구 대표님에 들어가 중국과 함께 경기에 임한다.

[존 레논과의 만남]

검프는 중국에서 탁구를 친 후,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존 레논을 만난다.

이 방송은 실제 영상에 합성한 장면으로, ABC의 심야 토크쇼 <딕 카벳 쇼> 1971년 9월 11일 방송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스튜디오 밖에서 검프는 베트남 전쟁에서 함께 했던 댄 중위를 다시 만나게 된다.

원래 원본에는 존 레논과 그의 아내 오노 요코가 함께 출연하지만 제작진은 원본 영상에서 오노 요코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검프를 합성해 넣었다.

[존 레논 'Imagine' 싱글 발매]

Imagine 노래가 실제 1971년 11월 10일에 발매된다.

영화에서는 검프와 존 레논의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표현된다.

검프 : "중국 사람들은 재산이 거의 없더라고요." (In China, they hardly got nothing at all.)

레논 : "소유물이 없다고?" (No possessions?)

검프 : "네, 그리고 교회도 안 가요." (And in China, they never go to church.)

레논 : "종교도 없고?" (No religion too?)

사회자(딕 카벳): "상상하기 어렵군요." (Hard to imagine.)

레논 : "해보면 쉬워요." (It's easy if you try.)

[새해 전야]

검프와 댄 중위는 호텔에서 새해 전야를 함께 보낸다.

1972

[워터게이트 사건]

검프는 닉슨 대통령을 만나게 되고, 닉슨은 검프에게 "워싱턴의 호텔들은 낡았으니, 좀 더 현대적이고 좋은 곳을 추천해주겠다"며 워터게이트 호텔을 잡아준다.

그 곳에서 1972년 6월 17일 새벽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이 실제 발생한다.

1974

[검프의 제대]

TV에서 닉슨 대통령이 사임 연설을 하게 되는 날 검프는 제대 명령서를 받고, 제대를 한다.

그리고 닉슨은 다음 날인 1974년 8월 9일에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

[검프의 새우잡이 시작]

검프가 배를 사서 새우잡이를 시작한다.

이 시기에 제니는 마약을 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 Free Bird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레너드 스키너드가 1973년 8월에 발표한 노래다.

레너드 스키너드가 1974년 4월에 발표한 히트곡이 있다. 바로 'Sweet Home Alabama'다.

(검프와 제니의 고향이 앨라배마)

[허리케인]

검프의 새우잡이가 좀처럼 성과를 못 내던 중에 허리케인을 만나게 된다.

앨라배마주 기록과 비교하면, 1974년 9월 허리케인 카르멘이 항구를 초토화시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로 검프의 새우 사업은 대박이 난다.

앨라배마 새우는 6월~12월이 제철이고, 검프가 대박 난 9월은 그중에서도 황금기에 해당한다.

허리케인 이후 다른 배가 침몰하고 혼자 살아남았기에 대박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포춘 표지 모델 선정]

검프가 과거를 회상한 후, 벤치에 앉은 옆 사람에게 포춘 잡지를 보여준다.

그 때 잡지에 1974년 11월 호라고 적혀있다.

1975

[검프 엄마의 건강 악화]

검프와 댄 중위가 배에 있을 때 17일 만에 또 다시 포드 대통령 저격 시도가 있었다는 뉴스가 TV로 나온다.

실제 포드 대통령은 두 번의 암살 시도를 겪는다.


그리고 이 날 검프는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다에 뛰어들어 집으로 향한다.

[포드 대통령 암살 시도]

- 첫 번째 저격 시도 : 1975년 9월 5일

- 두 번째 저격 시도 (영화에 나온 뉴스) : 1975년 9월 22일

첫 번째 사건이 있고 나서 정확히 17일 후다.

[애플 주식 구입]

검프는 그 후 다시 배로 돌아가지 않고 잔디깎이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댄 중위로부터 애플에 투자한다는 편지를 받는다.

이 편지가 1975년 9월 23일로 적혀있는데 시기상 아픈 어머니를 만난 바로 다음날이므로, 고증 오류로 보인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애플은 1975년에 없었다는 것이다.

애플 창업일 : 1976년 4월 1일

법인 설립일 : 1977년 1월 3일

상장(IPO) : 1980년 12월

심지어 영화에 나온 무지개색 애플 로고는 1977년에 만들어졌다.

1976

[제니가 검프의 집으로 오다]

제니가 앨라배마로 돌아와 검프와 재회한다.

재회한 시기는 청혼 시점을 고려했을 때 1975년 말 ~ 1976년 초인 것으로 추정된다.

[검프가 제니에게 청혼하다]

검프가 제니에게 청혼한다.

그 직전에 TV에서 불꽃놀이와 함께 자유의 여신상 화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식(1976년 7월 4일) 행사 중계의 실제 화면이다.

이 날 검프와 제니는 함께 잠자리를 갖게 되고, 다음날 제니는 떠난다.

이를 통해 이후 태어날 아이의 나이도 추정할 수 있다.

TV 속 아나운서 대사는 다음과 같다.  "And this Fourth is witnessing one of the largest fireworks displays in the nation's two-hundred year history... here in New York Harbor."

[검프의 마라톤 시작]

다음 날 아침 제니는 택시를 타고 떠나고, 검프는 텅 빈 집에서 홀로 남겨진 뒤, 제니가 선물로 준 신발을 신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1978

[제니가 스크랩한 잡지]

훗날 제니랑 다시 재회했을 때 제니는 자신이 스크랩한 검프의 기사들을 보여준다.

1978년 9월자 잡지 표지에는 빨간 옷을 입고 수염을 많이 기른 검프의 모습이 나온다.

따라서 1979년 지미 카터 뉴스는 고증 오류이다.

(그 때는 수염을 기르기 전의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1979

[지미 카터 뉴스]

검프가 뛰는 도중에 뉴스에서 '카터 대통령이 열 피로에 시달리는...'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단축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는데, 경기 도중 열 피로로 인해 쓰러질 뻔했다.

당시 언론은 대통령이 심장 마비에 걸린 것 아니냐며 대서특필했고, 허약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 뉴스가 나온 때는 검프가 수염을 기르기 전 막 달리기 시작한 시점이고, 이 이후에 나오는 사건들과 비교하면 고증 오류로 보인다.

[검프가 범퍼 스티커 영감을 주다]

검프가 달리던 와중에 어떤 사람이 범퍼 스티커 표어 아이디어를 묻는다.

그리고 검프는 'Shit Happens'라는 아이디어 영감을 준다.

이 범퍼 스티커는 1980년대 초반에 미국 전역에 유행했다.

[스마일 로고 고증 오류]

티셔츠 사업하는 사람이 검프를 통해서 스마일 로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하지만 검프가 티셔츠에 얼굴을 닦아서 만들어준 '스마일리 페이스'는 고증 오류다.

그 노란 웃는 얼굴은 실제로는 1963년에 하비 볼이라는 디자이너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970년대 초반에 이미 유행하고 있었다.

[달리기 종료]

검프가 3년 2개월 14일 16시간을 달린 후 종료했다고 나온다.

시작일로부터 날짜를 더하면 이 날 종료한 것으로 보인다.

1981

[제니의 편지]

제니가 검프에게 사반나로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를 보낼 당시 TV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총 소리와 함께 피하는 모습이 나온다.

1981년에 있었던 레이건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이다.

범인인 존 힝클리 주니어는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통령을 쐈다고 진술했다. 힝클리는 결국 정신이상 판정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제니에게 가는 길 벤치]

검프가 제니에게 가기 위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벤치에서 영화가 처음 시작된다.

그 때 지나가는 버스 광고판에 1981이라는 숫자가 쓰여있다.

1982

[제니 잠들다]

제니가 세상을 떠난다.

묘비에 있는 연도로 시기를 특정할 수 있다.

이 묘비에는 제니가 1945년생이라고 나오는데 이건 매우 심각한 고증오류다.

제니가 1945년생이면 검프도 최소 1945년생(검프가 초등학교 스쿨버스에서 만났으므로)이어야 하는데 그럼 검프는 만 18세가 되는 1963년에 대학을 입학하게 되고 1963년 11월에 죽은 케네디 대통령을 도저히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미 대표팀은 12월에 선발하기 때문에)

그리고 검프는 1967년에는 반드시 베트남에 있어야 하는데(제니 편지가 1967년, 버바가 죽은 날짜도 1967년) 1963년에 입학한 검프가 5년의 대학생활을 하고 군에 들어가는 기간과는 큰 모순이 발생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모순점이 발생한다. 제작진의 고증 오류인 것이다.

[검프의 아들 첫 등교]

검프의 아들이 스쿨버스로 처음 등교한다.

이 때 검프와의 차이는 검프는 만 6세에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고, 검프의 아들은 만 5세에 유치원 의무 공교육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립 유치원 시스템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 앨라배마주에서 공립 유치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부 사립 유치원이나 교회 부설 유치원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만 6세에 초등학교 1학년으로 공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조기 교육 열풍이 불면서,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공립 유치원이 초등학교 정규 과정의 일부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만 5세인 리틀 포레스트가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곳은 초등학교에 병설된 공립 유치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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