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예술, 조각, 회화, 기독교 미술, 서양 미술사, 종교화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13:52:08
피에타는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다루는 기독교 예술의 독보적인 주제입니다. 14세기 초 독일에서 '베스퍼빌트(Vesperbild)'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이 도상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을 직접적으로 명상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초기 북유럽의 조악하고 고통스러운 표현에서 시작된 피에타는 이탈리아로 건너와 미켈란젤로를 통해 조화와 숭고미를 갖춘 인류의 보편적인 걸작으로 거듭났습니다. 이후 반종교개혁 시기의 비극적 서사성을 거쳐 현대의 실존적 고뇌를 담은 작품들까지, 피에타는 시대마다 인간이 느끼는 상실과 연민의 정서를 투영하며 7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양 예술의 중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1300
[독일 베스퍼빌트의 탄생]
독일 라인란트 지역을 중심으로 성모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도상인 '베스퍼빌트'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저녁 기도(Vespers) 중에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묵상하는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초기의 피에타는 목조 조각으로 제작되었으며 예수의 상처와 고통을 매우 과장하여 표현했습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감정적으로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명상용 도구로서 활용되었습니다.
[출처: 이탈리아 위키백과](https://it.wikipedia.org/wiki/Piet%C3%A0_(arte))
1305
[로에트겐 피에타 제작]
북유럽 피에타의 전형을 보여주는 로에트겐 피에타(Roettgen Pietà)가 목조로 제작되어 신앙의 중심에 놓입니다. 죽은 예수의 뻣뻣한 몸과 성모의 절망적인 표정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예수의 몸에는 수많은 못 자국과 창자국이 선명하며 피가 흐르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당시 흑사병과 기근으로 고통받던 북유럽 사람들에게 예수의 수난은 자신들의 고통과 일치되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북유럽 고딕 피에타 양식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340
[중부 유럽 피에타 확산]
독일에서 시작된 피에타 도상이 보헤미아와 폴란드 등 중부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전파됩니다. 각 지역의 문화와 결합하며 석조와 목조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조각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보헤미아 지방에서는 부드러운 선을 강조하는 '아름다운 양식'의 피에타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북유럽의 비극적인 감성은 유지하면서도 조형적으로는 더 정교해진 것이 특징입니다.
종교적 신심을 강화하기 위해 성당의 측면 제단에 주로 배치되었습니다.
1400
[이탈리아 피에타 도입]
알프스를 넘어온 독일인 장인들에 의해 피에타 조각이 이탈리아 페라라와 베네치아 지역에 처음으로 소개됩니다. 초기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이 생경하고 고통스러운 도상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연민'이나 '자비'를 뜻하는 '피에타'라는 명칭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초기 이탈리아 피에타는 여전히 북유럽 목조 조각의 딱딱한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이를 자신들만의 화풍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420
[페라라의 초기 피에타]
페라라 지역의 성당에서 이탈리아 현지 석재로 제작된 초기 피에타 조각들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독일 양식을 따르면서도 이탈리아 특유의 우아함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과도기적 작품입니다.
성모의 무릎 위에 가로로 놓인 예수의 시신이라는 수평적 구도가 이 시기에 확립되었습니다.
조각가들은 예수의 근육과 골격을 묘사하는 데 있어 해부학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북유럽의 정신과 이탈리아의 형식이 만나는 중요한 고고학적 지점입니다.
1455
[코스메 투라의 피에타 회화]
페라라 화파의 거장 코스메 투라가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피에타 회화를 제작합니다. 날카로운 선과 금속적인 질감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을 비현실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투라의 피에타는 배경의 기하학적 문양과 성모의 메마른 손길이 비장미를 더합니다.
조각에 국한되었던 피에타 주제가 캔버스 위의 회화로 본격적으로 전이된 사례입니다.
그의 작품은 이후 북이탈리아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1460
[조반니 벨리니의 초기 피에타]
베네치아의 거장 조반니 벨리니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 소장된 유명한 피에타 회화를 완성합니다. 무덤 위에 예수를 세우고 성모와 성 요한이 부축하는 새로운 구도를 선보였습니다.
벨리니는 차가운 색조와 인물들의 고요한 슬픔을 통해 명상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습니다.
인물들의 배경에는 베네치아 특유의 서정적인 풍경 대신 엄격한 어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피에타가 지닌 '인간적 고뇌'를 가장 세련되게 표현한 초기 르네상스의 걸작입니다.
1467
[벨리니의 리미니 피에타]
조반니 벨리니가 리미니 시립 미술관을 위해 천사들에 의해 부축받는 죽은 예수 도상을 제작합니다. 성모 마리아 대신 천사들이 등장하여 신적인 자비와 천상적인 슬픔을 강조했습니다.
벨리니는 이 작품에서 부드러운 빛의 처리와 정교한 명암법을 사용하여 예수의 시신을 입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어린 천사들의 눈물겨운 표정은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연극적인 요소를 더합니다.
피에타의 변주로서 '천사들에 의한 애도' 양식을 정립한 중요한 작품입니다.
1472
[페사로 제단화의 피에타]
조반니 벨리니가 페사로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을 위해 제작한 대형 제단화 상단에 피에타를 배치합니다. 왕관을 쓴 예수와 니고데모, 마리아 막달레나가 등장하는 화려한 구성입니다.
죽음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기존의 비극적 표현에서 벗어나 장엄함을 강조했습니다.
제단화의 일부로서 다른 성인들과 조화를 이루며 신학적인 깊이를 더했습니다.
벨리니의 전성기 화풍이 잘 드러나는 조형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입니다.
1475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피에타]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던 시칠리아 출신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북유럽 유화 기법을 도입한 피에타를 제작합니다. 세밀한 묘사와 투명한 색채로 예수의 상처를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배경의 머나먼 풍경과 전경의 죽은 예수를 대비시켜 공간의 깊이감을 형성했습니다.
벨리니의 서정성에 안토넬로의 기술적 정교함이 더해져 피에타의 리얼리즘이 강화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 베네치아 화파의 피에타 표현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480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의 피에타]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가 리버풀 워커 아트 갤러리에 소장된 극적인 피에타 회화를 완성합니다. 인물들의 뒤틀린 자세와 강조된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소형 명상화입니다.
작은 화면 속에 압축된 고통의 밀도가 매우 높아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배경에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들을 배치하여 사건의 맥락을 명확히 했습니다.
페라라 화파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엄숙한 미학이 절정에 달한 작품입니다.
1483
[페루지노의 산 주스토 피에타]
움브리아 화파의 거장 페루지노가 피렌체의 산 주스토 알레 무라 성당을 위해 정갈한 피에타를 제작합니다. 라파엘로의 스승다운 균형 잡힌 구도와 맑은 풍경이 특징입니다.
슬픔마저 우아하게 승화시킨 페루지노 특유의 고요한 화풍이 잘 드러납니다.
성모와 예수 주변에 대칭적으로 배치된 성인들이 화면의 안정감을 줍니다.
피에타 주제가 지닌 공포를 제거하고 종교적 평온함을 부여한 사례입니다.
1490
[보티첼리의 뮌헨 피에타]
산드로 보티첼리가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영향을 받아 이전의 화려함을 버리고 엄격한 종교색을 담은 피에타를 제작합니다. 인물들이 밀집되어 서로의 슬픔을 나누는 독특한 구도입니다.
보티첼리 말기의 불안정한 심리와 종교적 열정이 뒤섞여 인물들의 표정이 매우 격정적입니다.
예수의 몸은 성모의 무릎에서 흘러내릴 듯 위태롭게 묘사되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조화보다는 신비주의적인 신앙심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1492
[빌뇌브레자비뇽의 피에타]
프랑스 화가 앙게랑 콰르통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빌뇌브레자비뇽의 피에타'가 완성됩니다. 황금색 배경과 비대칭적인 구도로 프랑스 중세 미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성모의 무릎에 놓인 예수의 몸이 아치형으로 굽어 있어 시각적인 긴장감을 줍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의뢰인의 모습이 화면 한쪽에 세밀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보물 중 하나로 꼽히며 프랑스 고딕 회화의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1495
[보티첼리의 폴디 페졸리 피에타]
보티첼리가 밀라노 폴디 페졸리 미술관에 소장된 또 다른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가시관을 든 성인들과 성모의 품에 안긴 예수의 구도가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인물들의 옷자락 끝부분까지 슬픔을 표현하듯 섬세하게 묘사된 것이 특징입니다.
예수의 창백한 피부톤과 성모의 푸른 망토가 강한 시각적 대비를 이룹니다.
보티첼리가 추구했던 정신적 고뇌의 예술적 결실로 평가받습니다.
1497
[미켈란젤로의 첫 피에타 계약]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가 20대 청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게 성 베드로 대성당의 무덤을 장식할 대리석 피에타 조각을 의뢰합니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린 시작이었습니다.
추기경은 1년 안에 완성할 것을 조건으로 450 두카트의 계약금을 지불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카라라 산지에서 가장 완벽한 백색 대리석 원석을 직접 골라 작업에 임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 작품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계약입니다.
1499
[성 베드로 대성당 피에타 완성]
미켈란젤로가 역사상 가장 완벽하다고 칭송받는 '산 피에트로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성모의 젊고 고귀한 얼굴과 예수의 평온한 죽음이 대리석 위에서 기적처럼 구현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이름을 작품에 유일하게 서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대리석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부드러운 인체의 피부와 옷주름의 묘사가 압권입니다.
고통을 넘어선 초월적인 미학을 제시하며 르네상스 조각의 정점에 올라섰습니다.
1500
[벨리니의 우피치 피에타]
조반니 벨리니가 우피치 미술관 소장의 피에타를 단색화(Monochrome) 기법으로 제작합니다. 조각의 입체감을 회화에서 구현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회색조의 색채만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시신을 석상처럼 고귀하게 묘사했습니다.
색을 배제함으로써 형태의 본질과 종교적 엄숙함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벨리니의 노년기 예술적 탐구와 기술적 완련미를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1505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피에타]
조반니 벨리니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위해 또 다른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배경의 광활한 풍경과 성모의 무릎 위에 누운 예수의 조화가 완벽한 서정성을 띠고 있습니다.
이 시기 벨리니의 화풍은 매우 부드러워져 인물들이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성모의 표정은 슬픔보다는 거대한 운명을 수용하는 성찰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베네치아 르네상스 회화가 지닌 황금빛 색채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1512
[프라 바르톨로메오의 피에타]
피렌체의 수도사 화가 프라 바르톨로메오가 피티 궁전 소장의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은 웅장한 기념비적 구도가 특징입니다.
피라미드형 구도를 사용하여 화면의 균형감과 성스러움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예수의 발치에서 슬퍼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표현이 매우 서정적입니다.
피렌체 하이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피에타 주제에 성공적으로 이식했습니다.
1515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의 비테르보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소묘를 바탕으로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가 비테르보 박물관 소장의 피에타를 그립니다. 성모가 죽은 아들 곁에서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는 야경화입니다.
밤의 어둠과 인물의 육중한 존재감이 대비되어 극적인 효과를 냅니다.
미켈란젤로의 해부학적 소묘가 바탕이 되어 예수의 근육 묘사가 매우 정교합니다.
회화와 조각의 시너지를 보여주는 매너리즘 초기 단계의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1517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빈 피에타]
완벽한 화가로 불리던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의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고전적인 우아함과 매너리즘의 화려한 색채가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인물들의 피부 표현이 마치 숨 쉬는 듯 생생하여 찬사를 받았습니다.
천사들이 예수의 시신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애틋한 정서가 느껴집니다.
르네상스의 조화로움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적인 호소력을 더한 수작입니다.
1520
[로소 피오렌티노의 볼테라 피에타]
매너리즘의 기수 로소 피오렌티노가 볼테라 성당을 위해 파격적인 피에타를 제작합니다. 차가운 색조와 날카로운 인물 표현으로 전통적인 피에타 도상을 파괴했습니다.
예수의 몸은 푸른빛이 도는 창백한 색으로 묘사되어 죽음의 공포를 강조합니다.
인물들의 비정상적으로 긴 사지와 기괴한 표정은 당시의 불안한 정세를 투영합니다.
매너리즘 예술가들이 피에타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실존적 불안의 정수입니다.
1524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루코 피에타]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피렌체 외곽 루코의 수도원을 위해 장엄한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수평적으로 길게 배치된 인물들이 무덤 앞에서 비탄에 잠긴 장면입니다.
화려한 의복의 색채와 정교한 명암법이 돋보이는 대형 작품입니다.
인물들의 배치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게 구성되었습니다.
델 사르토의 전성기 기량이 집약된 피렌체 회화의 정점 중 하나입니다.
1526
[코레조의 델 보노 피에타]
파르마의 거장 코레조가 델 보노 가문의 경당을 위해 감성적인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성모가 실신할 듯 슬퍼하며 예수의 몸에 머리를 기대는 극단적인 슬픔의 표현입니다.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의 조화(치아로스쿠로)를 통해 인물들의 정서를 섬세하게 잡아냈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화면 밖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바로크적 감수성의 선구적 사례입니다.
예수의 상처보다는 인간적인 상실감과 슬픔의 정서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1528
[로소 피오렌티노의 보르고 산 세폴크로 피에타]
로소 피오렌티노가 피렌체 근교 성당을 위해 또 다른 파격적인 피에타를 제작합니다. 인물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며 죽은 예수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압권입니다.
전통적인 구도를 무시하고 인물들을 수직적으로 쌓아 올리는 과감한 시도를 했습니다.
차가운 청색과 불타는 오렌지색의 대비가 시각적인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로소 피오렌티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입니다.
1530
[로소 피오렌티노의 루브르 소장 피에타]
로소 피오렌티노가 프랑스 퐁텐블로 궁전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한 피에타입니다. 성모의 길게 뻗은 팔이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며 압도적인 비극성을 자아냅니다.
프랑스 왕실의 취향에 맞게 세련되면서도 인위적인 우아함이 가미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놓인 그리스도의 긴 신체 묘사는 매너리즘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후 프랑스 종교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작품입니다.
1537
[폰토르모의 피에타(십자가 하강)]
피렌체의 매너리즘 거장 폰토르모가 산타 펠리치타 성당의 카포니 경당을 위해 피에타와 십자가 하강의 의미를 결합한 불멸의 걸작을 완성합니다.
전통적인 십자가나 무덤 배경을 삭제하고 허공에 떠 있는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그렸습니다.
파스텔톤의 비현실적인 색채와 인물들의 놀란 눈동자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를 완전히 탈피한 매너리즘 회화의 절정으로 평가받습니다.
1540
[루이스 데 모랄레스의 피에타]
스페인의 화가 루이스 데 모랄레스가 매우 섬세하고 감상적인 피에타를 다수 제작합니다. 성모와 예수가 얼굴을 맞댄 초밀착 구도로 '신성한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북유럽의 세밀한 묘사력과 이탈리아의 감성적 표현이 스페인 특유의 종교적 열정과 결합했습니다.
인물들의 창백한 피부와 눈물의 묘사가 신자들의 감성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스페인 바로크 미술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 작가입니다.
1545
[미켈란젤로의 비토리오 콜론나 소묘]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정신적 반려자인 비토리오 콜론나를 위해 피에타 소묘를 그려 선물합니다. 양팔을 벌린 성모가 무릎 사이의 예수를 받치고 있는 수직적 구도입니다.
이 소묘는 이후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에 의해 복제되고 변용되었습니다.
성모의 뒤에 세워진 십자가 기둥에는 '누구도 그곳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모른다'는 단테의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노년의 깊어진 신앙심과 예술적 고뇌가 담긴 정교한 작품입니다.
1547
[반디니 피에타 작업 시작]
노년의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무덤에 놓을 목적으로 '반디니 피에타(피렌체 피에타)' 조각을 시작합니다. 니고데모의 얼굴에 자신의 초상을 새겨넣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수의 몸을 지탱하는 니고데모, 성모, 막달레나 마리아의 4인 구성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청년 시절의 완벽한 마무리를 지향했던 산 피에트로 피에타와 달리, 거친 질감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구원 문제에 천착했던 거장의 내면적 갈등이 조형적으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1550
[브론치노의 산 로렌초 피에타]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제자 브론치노가 피렌체 산 로렌초 성당을 위해 화려한 제단화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차가운 도자기 같은 피부 질감과 정교한 인물 배치가 돋보입니다.
매너리즘 특유의 지적인 세련미와 인위적인 우아함이 절정에 달한 작품입니다.
예수의 몸은 완벽한 비율로 묘사되어 고통보다는 성스러운 조각상을 연상시킵니다.
메디치 가문의 궁정 화가로서 브론치노가 지녔던 예술적 위상을 증명하는 수작입니다.
1552
[론다니니 피에타 작업 착수]
미켈란젤로가 죽기 전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론다니니 피에타'의 초기 작업을 시작합니다. 형태를 파괴하고 본질만을 남기려는 거장의 파격적인 변신이 시작된 지점입니다.
성모가 뒤에서 예수를 끌어안은 형태의 수직적이고 긴 구도를 채택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팔을 잘라내고 다시 깎는 과정을 반복하며 형태의 한계에 도전했습니다.
현대 조각의 추상성마저 예견한 미켈란젤로의 최종적인 예술적 유언입니다.
1555
[반디니 피에타 파괴 시도]
미켈란젤로가 작업 중이던 반디니 피에타의 완성도에 만족하지 못해 망치로 작품의 일부를 파괴하려 합니다. 대리석의 결점과 자신의 기술적 한계에 절망한 결과였습니다.
예수의 팔과 다리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제자인 티베리오 칼카니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술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과 완벽주의를 상징하는 유명한 일화로 남았습니다.
결국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방치하게 됩니다.
1560
[티치아노의 펜실베이니아 피에타]
베네치아 화파의 태두 티치아노가 노년기에 자유롭고 거친 붓터치를 활용한 피에타를 제작합니다. 빛과 색채만으로 형상을 구축하는 그의 말기 화풍이 잘 드러납니다.
인물의 형태는 뭉개져 있으나 공간의 분위기와 슬픔의 정서는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형태의 구속에서 벗어나 예술적 영적 자유를 추구했던 티치아노의 노년기 특징입니다.
이러한 화풍은 훗날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1564
[미켈란젤로의 임종과 최종 피에타]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나기 6일 전까지 '론다니니 피에타'를 수정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예술적 구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완성으로 남은 이 조각은 성모와 예수가 한 몸처럼 녹아든 처절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넘어선 고난과 수용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미켈란젤로 생애의 마지막 헌신이자 피에타 주제의 위대한 마침표입니다.
1570
[트리엔트 공의회와 성상 규제]
가톨릭 교회가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성상 제작에 대한 엄격한 지침을 내립니다. 피에타와 같은 종교화는 신학적으로 정확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화되었습니다.
매너리즘 예술가들의 기괴하거나 선정적인 표현이 자제되고 다시 사실주의적인 경건함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는 바로크 피에타의 서사적이고 감정적인 연극성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술이 다시 교회의 강력한 포교 도구로서 기능하게 된 시기입니다.
1575
[티치아노의 최후의 피에타 착수]
티치아노가 자신의 무덤이 놓일 베네치아 프라리 성당을 위해 장대한 규모의 피에타 작업을 시작합니다. 무너져가는 고대 건축물 배경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 비장한 구성입니다.
황금빛 어둠과 거친 붓질이 만들어내는 비극적 에너지가 화면을 압도합니다.
티치아노 스스로도 화면 한쪽에 니고데모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90년 예술 인생을 결산하는 최후의 신앙 고백과 같은 작품입니다.
1576
[티치아노의 사망과 작품의 완성]
티치아노가 페스트로 사망한 후, 그의 미완성 피에타를 제자 팔마 일 조바네가 마무리합니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유언에 따라 베네치아의 자부심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팔마 일 조바네는 스승의 화풍을 존중하여 붓자국을 살리면서도 세부적인 마무리를 도왔습니다.
현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소장품 중 하나입니다.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종언을 알리는 장엄한 장송곡과 같은 작품입니다.
1580
[안니발레 카라치의 나폴리 피에타]
볼로냐 화파의 창시자 안니발레 카라치가 나폴리 카포디몬테 미술관 소장의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고전적인 완벽함과 바로크적 감수성이 공존하는 우아한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산 피에트로 피에타를 회화로 옮겨놓은 듯한 완벽한 비례를 보여줍니다.
예수의 손을 잡고 슬퍼하는 천사의 모습에서 서정적인 정취가 묻어납니다.
인물들의 감정 표현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수작입니다.
1590
[안니발레 카라치의 루브르 피에타]
안니발레 카라치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또 다른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무덤 앞에 누운 예수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사선 구도로 배치된 역동적인 구성입니다.
빛을 사용하여 예수의 시신을 강조하고 주변 인물들은 어둠 속에 배치했습니다.
바로크 회화의 명암 대비와 공간적 역동성이 잘 드러나는 예시입니다.
이후 유럽 전역의 화가들에게 피에타의 새로운 구성 모델로 활용되었습니다.
1600
[루도비코 카라치의 볼로냐 피에타]
안니발레의 사촌인 루도비코 카라치가 볼로냐 국립 회화관 소장의 피에타를 제작합니다.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격정적으로 표현하여 반종교개혁의 열기를 반영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고통이 극대화되어 표현되었으며 예수의 몸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신심을 자극하기 위해 연극적인 몸짓과 시선을 유도했습니다.
볼로냐 화파가 추구했던 정서적 리얼리즘의 피에타 버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650
[그레고리오 페르난데스의 스페인 피에타]
스페인의 조각가 그레고리오 페르난데스가 바야돌리드 조각 박물관 소장의 다색 목조 피에타를 완성합니다. 스페인 특유의 사실주의와 비극성이 극에 달한 조각입니다.
예수의 몸에는 실제와 같은 가시와 상처, 유리를 이용한 눈물 등을 사용했습니다.
성제 주간 행렬에 사용되어 신자들에게 극단적인 종교적 정화를 선사했습니다.
스페인 바로크 조각이 지닌 강렬한 표현주의적 성향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1889
[빈센트 반 고흐의 피에타]
생 레미 요양원에 있던 빈센트 반 고흐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피에타를 모작하여 자신의 색채로 재탄생시킵니다. 붉은 수염을 가진 예수는 고흐 자신의 투영으로 해석됩니다.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치는 붓터치와 노랑과 파랑의 보색 대비가 슬픔을 극대화합니다.
종교적 주제를 통해 자신의 고독과 정신적 고통을 승화시키려 한 시도입니다.
현대 미술에서 피에타가 예술가의 자아 성찰적 도구로 변모한 중요한 사례입니다.
1920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독일의 판화가이자 조각가 케테 콜비츠가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담아 현대적 피에타 조각을 제작합니다. 거칠고 투박한 형태 속에 인류 공통의 비극을 담았습니다.
전통적인 성모와 예수 대신,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보편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조각의 확대 복사본은 현재 베를린의 전쟁 희생자 추모관(신초소)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의 메시지로서 피에타가 재해석된 사례입니다.
1950
[살바도르 달리의 우주적 피에타]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가 핵물리학과 종교를 결합한 '우주적 피에타' 시기의 작품들을 제작합니다. 공중에 떠 있는 예수와 기하학적 구조가 특징입니다.
전통적인 피에타의 비극성을 넘어 우주적인 질서와 부활의 희망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달리 특유의 세밀한 묘사력과 기발한 상상력이 종교적 주제와 만난 독특한 결과물입니다.
현대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신앙과 존재에 대한 초현실주의적 문답입니다.
1972
[성 베드로 대성당 피에타 피습 사건]
헝가리 출신의 지질학자 라슬로 토트가 망치를 들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공격하여 심각한 훼손을 입힙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예술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성모의 코와 팔 등 15군데가 파손되었으며, 파편을 수거하여 정교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복원 이후 작품은 방탄 유리벽 뒤에 보호되어 전시되게 되었습니다.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예술 작품이 지닌 상징적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1990
[현대 예술가들의 피에타 재해석]
빌 비올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현대 미술가들이 영상과 퍼포먼스를 통해 피에타를 재해석합니다. 죽음과 삶, 슬픔의 본질에 대한 현대적 탐구가 이어집니다.
영상 예술을 통해 피에타의 정지된 화면에 시간과 움직임을 부여했습니다.
실제 인간의 몸을 사용한 퍼포먼스로 관객에게 실존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종교적 도상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루는 매체로서 피에타의 생명력을 증명합니다.
2012
[영화 '피에타'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합니다. 피에타 도상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과 용서의 서사로 풀어냈습니다.
영화의 포스터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구도를 그대로 차용하여 주제의식을 강조했습니다.
돈과 폭력으로 얼룩진 인간관계 속에서 피어난 기괴한 모성애와 연민을 다뤘습니다.
대중 매체를 통해 피에타라는 예술적 코드가 동양적 맥락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함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2024
[피에타 유산의 영속성 확인]
전 세계 주요 박물관에서 피에타를 주제로 한 대규모 특별전과 학술 연구가 지속되며 그 예술적 가치를 재확인합니다. 700년을 이어온 슬픔의 연대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디지털 복원 기술과 고고학적 연구가 결합하여 잊혔던 초기 피에타의 원형들이 복원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상실의 슬픔을 위로하는 심리적 치유의 도구로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피에타'의 정신은 예술의 영원한 화두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