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학문, 사상, 인문학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2:03:36
철학은 세계와 인간 삶의 근본 원리, 존재, 지식, 가치 등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하여, 시대에 따라 자연, 인간, 신, 인식, 언어 등으로 그 탐구 대상을 넓혀왔습니다. 이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근원적인 탐구 방식이자 모든 학문의 기반이 되는 사유 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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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6C
[밀레토스 학파, 철학적 사유의 시작]
고대 그리스의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신화가 아닌 이성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며 서양 철학의 시초를 열었다. 그들은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고 자연의 자율적인 움직임을 설명하려 시도하며, 신화적 사고에서 벗어나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독립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로 대표되는 밀레토스 학파는 고대 그리스에서 신화적 설명 대신 자연의 이성적인 원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만물의 근원(아르케)을 물, 무한자, 공기 등으로 상정하고, 자연 현상을 독립된 존재로서 스스로 움직이는 대상으로 파악하며 체계적인 사유를 시작했다. 이는 신화로부터 학문이 독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서양 철학사의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피타고라스, '필로소피아' 용어 창안]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필로소피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는 스스로 지혜를 소유한 자가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정의하며 이 용어를 창안했고, 이것이 훗날 서양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y'의 어원이 되었다.
피타고라스는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고 자처하는 소피스트들과 달리, 자신을 지혜의 소유자가 아닌 무지자로서 오직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er')이라고 칭하며 '필로소피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는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인간 자신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뜻하며, 단순한 실용적 지식을 넘어선 근본적인 탐구를 지향하는 철학의 본질을 담고 있다.
BC 5C
[소크라테스, 철학의 대상을 인간으로 전환]
기원전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는 이전 철학자들이 자연을 탐구했던 것과 달리 인간의 혼과 윤리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며 철학의 대상을 인간 중심으로 전환했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처럼 자기 성찰을 통해 올바른 삶의 방식을 탐구하고, 대화를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이 자연의 본질과 원리에 집중했던 반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내면, 즉 혼(영혼)과 윤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선과 악은 무엇인지 등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며, 지식이 곧 덕이라는 '지덕합일' 사상을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접근은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BC 4C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서양 철학 체계 정립]
소크라테스 이후 그의 제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인간 중심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이전 자연 철학의 관심사를 통합하여 서양 철학의 거대한 체계를 세웠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등 철학의 주요 분야를 광범위하게 정립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해 현실 너머의 이상적인 세계를 제시하며 형이상학적 사유의 기초를 놓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이들은 정치, 윤리, 논리, 자연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기며 서양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으며, 그들의 사상은 이후 서양 문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800
[중세 철학, 신과 신학 중심으로 발전]
기독교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중세 시대에는 철학이 신의 존재와 본질, 신앙과 이성의 관계 등을 탐구하며 신학의 시녀 역할을 했다.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철학은 신을 향한 고찰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독교 신학에 접목하며 중세 사유의 정점을 이루었다.
중세 철학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신학적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발전했다. 초기 교부철학은 기독교 교리를 이성적으로 해명하고 이단 사상에 대항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후 스콜라 철학은 대학을 중심으로 논리적 방법을 사용하여 신앙의 진리를 체계화하려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주저 『신학 대전』을 통해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며 중세 신학-철학의 통합을 시도했다.
1700
[근대 철학, 인간 인식의 근원 탐구]
근대 철학은 신 중심의 중세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 이성의 능력을 바탕으로 지식의 근원을 탐구하는 인식론에 주력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이 이성의 선천적 능력을 강조하고, 로크의 경험론이 감각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칸트는 이 둘을 종합하여 인간 인식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철학을 완성했다.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의 영향으로 근대 철학은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와 경험을 통한 지식 획득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선언은 이성 중심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고, 로크는 인간의 마음을 백지(tabula rasa)로 보고 경험을 통해 지식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을 넘어서 인간 이성의 선험적 형식과 경험적 내용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식이 성립된다는 독자적인 비판 철학을 제시하며 근대 철학의 흐름을 집대성했다.
1890
[니시 아마네, 'Philosophy'를 '희철학'으로 번역]
19세기 말, 일본의 니시 아마네가 서양의 'Philosophy'를 '희철학(希哲學)'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는 후에 줄여져 '철학'으로 불리게 되었고, 동양에서 서양 철학을 지칭하는 주요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서양의 학문적 개념이 동양으로 유입되던 19세기 말, 일본의 계몽사상가 니시 아마네(西周)는 'Philosophy'라는 개념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희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는 이후 중국과 한국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현재 동양에서 널리 사용되는 '철학'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되었다.
1912
[이인재, 한국에서 '철학' 용어 최초 사용]
한국에서는 이인재가 1912년 《철학고변(哲學攷辨)》을 발간하면서 '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는 한국에서 서양 철학 개념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논의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한국의 학자 이인재(李寅梓, 1870년∼1929년)는 1912년에 저술한 《철학고변》을 통해 서양의 'Philosophy' 개념을 '철학'이라는 한자어로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했다. 이 책은 한국 철학사에서 서양 철학의 본격적인 도입과 정착에 기여한 초기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인재의 번역은 한국 지성계에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다.
1950
[현대 철학, 언어와 구조 중심으로 전환]
20세기 이후 현대 철학은 언어의 본질과 의미, 사회적 구조의 영향력에 주목하며 언어 철학,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 소쉬르의 언어 철학 이후 비트겐슈타인 등이 이를 발전시켰으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모더니즘적 사유를 비판하며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열었다.
현대 철학은 과학적 방법론의 발달과 세계대전 등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언어와 문화, 권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언어 철학은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철학적 문제의 해결에 언어 분석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구조주의는 사회와 문화 현상의 심층적 구조를 분석하며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려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 이성 중심주의와 보편적 진리 개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다원성과 상대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유 방식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