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기독교 인물, 사도, 초대 교황, 성인,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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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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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수제자로, 초대 로마 교황이자 기독교의 핵심 인물입니다. 반석이라는 이름처럼 교회의 초석이 되었으며, 예수 승천 후 교회를 이끌다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그의 삶은 신앙심과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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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드로의 탄생]

갈릴래아 베싸이다 마을에서 요나 또는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태어났습니다.

갈릴래아 지방 베싸이다 마을 태생으로, 본래 이름은 시므온이었고, 아버지는 요나 또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사도 안드레아와 형제입니다.

30

[예수의 첫 번째 제자가 되다]

동생 안드레아를 통해 예수를 만나 첫 번째 제자가 되었으며, 예수로부터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를 통해 예수를 알게 되었고, 예수의 부름을 받고 따랐던 첫 번째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예수는 그에게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뜻의 '케파' (그리스어 '페트로스')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예수가 시몬과 안드레아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불렀고, 루가 복음서에서는 기적적인 물고기 잡이 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고 기록됩니다.

32

[예수로부터 교회의 반석으로 지명되다]

예수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듣고 "너는 베드로이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하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부여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는 이 고백을 칭찬하며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부여하고,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며,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이후 교황 수위권 주장의 토대가 됩니다.

[예수와 함께 물 위를 걷다]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 때, 베드로도 예수의 말을 믿고 물 위를 걸었으나 믿음이 약해져 빠졌다가 예수의 도움으로 구출되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였을 때, 베드로 역시 예수의 지시를 믿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믿음이 약해져 물속에 가라앉았고, 결국 예수로부터 구조되었습니다.

33

[예수 체포 당시 칼로 경비병 귀를 베다]

예수가 겟세마니에서 체포될 때, 베드로는 칼을 뽑아 경비병 말코스의 귀를 잘랐으나, 예수는 그를 나무라며 귀를 고쳐주었습니다.

예수가 겟세마니에서 체포당할 때, 베드로는 예수를 지키기 위해 칼을 뽑아 경비병(수석사제의 종 말코스)의 오른쪽 귀를 잘랐습니다. 예수는 베드로를 말리며 칼을 도로 꽂으라고 하고, 말코스의 귀를 고쳐주었습니다.

[예수의 빈 무덤을 확인하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알리자, 베드로는 다른 제자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무덤 안으로 먼저 들어가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고, 예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따로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순절 야외 강론으로 초대 교회 이끌다]

오순절에 중요한 야외 강론을 하여 초기 기독교 공동체 형성 및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베드로는 오순절에 무척 중요한 야외 강론을 하였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이스카리옷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사도 마티아를 뽑는 일을 주도했으며, 요한과 함께 예수가 메시아임을 선포했습니다.

[최후의 만찬 전 발 씻김 예식 거부]

최후의 만찬 전,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려 하자 베드로는 처음 이를 사양했으나, 예수의 말을 듣고는 온몸을 씻어달라 청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들기 전,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차례가 되자 극구 사양했으나, 예수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고 말하자, 베드로는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의식은 가톨릭교회에서 성목요일 '세족례'로 재현됩니다.

[예수의 예언대로 세 번 부인하다]

예수가 잡혀 심문받을 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닭이 울자 예수의 예언을 기억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자신을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가 체포되어 심문받는 동안, 베드로는 최고의회 안뜰에서 불을 쬐다가 여러 사람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닭이 울자 그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습니다.

[부활한 예수로부터 양떼를 돌볼 사명을 받다]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에게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베드로가 긍정하자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요한 복음서 마지막 장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는 베드로 앞에 나타나 함께 아침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식사 후 예수는 베드로에게 세 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고, 베드로가 세 번 모두 긍정하자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당부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베드로가 예수로부터 교회의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바울로의 편지에서도 베드로가 부활한 예수를 처음 본 사람 중 한 명으로 언급됩니다.

[초대 로마 교황으로 즉위]

예수의 승천 후, 초대 로마의 주교이자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제1대 교황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에 나와 있는 두 구절을 통해, 천주교회는 베드로가 예수로부터 지상 교회의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에 따라 베드로는 로마의 첫 번째 주교이자 교회의 최고 목자,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며 33년 5월 24일(오순절)부터 제1대 교황 직무를 시작했습니다.

37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직무 시작]

37년부터 53년까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로서 사목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교황 연대표'에는 베드로가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7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하다가 로마로 떠났다고 적고 있습니다. 37년에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직무를 시작하여 53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안티오키아 등지에서 복음 전파 및 치유 기적]

소아시아와 안티오키아를 비롯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유다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도들 가운데 최초로 치유 기적을 행했습니다.

헤로데 임금에게 붙잡혔다가 도망한 후, 리따, 야파, 카이사리아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유다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사도들 가운데 최초로 치유의 기적을 행하며 초기 기독교의 확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9세기 '교황 연대표'에 따르면 안티오키아 주교로 7년 동안 사목 활동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43

[헤로데 임금의 박해 중 기적적으로 탈옥]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으나,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탈출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따르면, 43년 베드로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9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 개종자 포용 결정]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여하여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유다교 율법에 따른 할례를 요구하지 않고 교회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49년에 개최된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사도 바울로와 함께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과 만나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교회 안에 받아들이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공의회는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유다교 율법에 따라 할례를 요구하지 않고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50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개종자 차별로 바울로에게 질책받다]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개종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위선적인 모습 때문에 사도 바울로에게 공개적으로 질책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처음에는 이방인 개종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으나, 나중에 할례 받은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이 오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 개종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로는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라며 그를 공개적으로 힐책했습니다.

60

[로마에서 사목 활동 및 편지 작성]

로마로 가서 바울로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사목 활동을 했고, '베드로의 첫째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서방교회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로마로 가서 교회를 세우고 그곳의 주교가 되어 바울로와 같이 로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목 활동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 5장 13절에 언급된 '바빌론'은 로마를 은유하며, 이 편지가 로마에서 쓰여졌음을 시사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베드로의 첫째 편지'와 '둘째 편지'를 베드로 사도가 직접 쓴 것으로 간주합니다.

66

[로마에서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

로마에서 사목 활동 중 네로 황제의 박해로 체포되어 예수와 똑같이 죽을 수 없다며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교회를 지도하던 중 네로 황제의 박해에 휘말려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와 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청하여 머리를 아래로 둔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예언(요한 21,18-19)은 베드로의 십자가형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의 시신이 묻힌 장소에는 훗날 성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서방교회 전승에서는 바울로와 함께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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