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마사요시
기업인, 소프트뱅크 창업자, 투자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2:03:03
손 마사요시는 일본의 한국계 기업인이자 소프트뱅크 그룹의 창업자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을 통해 사업가적 역량을 키웠습니다.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고 야후! 재팬 투자 및 설립, 브로드밴드 및 무선 통신 사업 진출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일본 최고의 부자로 등극했습니다. 세계적인 벤처투자자로 명성을 얻었지만, 최근 위워크 투자 실패로 대규모 손실을 겪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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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일본에서 출생]
일본 사가현 도스시에서 손삼헌과 이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모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손 마사요시는 1957년 8월 11일 일본 사가현 도스시에서 손삼헌과 이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 손종경은 조선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1930년대 일본 제국 육군항공대에 농지를 수용당하자 가족과 일본으로 향했다. 광복 후 귀국했으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광산노동자로 일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일하느라 바빠 조모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그의 부친은 밀주 제조, 생선 장사, 양돈업 등을 거쳐 파친코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중학생 무렵에는 수십 개의 파친코 점포를 운영할 정도로 부를 쌓았다.
1973
손 마사요시는 1973년 구루메 대학 부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일본 맥도날드 경영자 후지타 덴의 조언을 듣고 이듬해 학교를 중퇴한 후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1974
일본 맥도날드 경영자 후지타 덴의 조언을 받아 16세의 나이에 일본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 살레몬테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불과 2주일 만에 졸업하는 비범함을 보였다. 이후 2년제 홀리네임즈 대학을 거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경제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다.
1977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경제학과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던 중, 마이크로칩을 이용한 번역기를 개발하며 기술과 사업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보여주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사업 아이템 구상과도 연결되었다.
1980
UC 버클리 재학시절인 1980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유니손 월드라는 사업체를 설립하여 사업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회사를 통해 그는 본격적인 비즈니스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1981
[소프트뱅크 설립]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귀국한 후 1년 6개월간 사업 구상을 거쳐 종합 소프트웨어 유통업체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일본에 귀국하여 1년 6개월간의 치밀한 사업 구상 끝에 1981년 9월, 종합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소프트뱅크는 컴덱스에 전시된 소프트웨어를 일본 회사들과 거래하면서 기반을 다졌고, 일본 업체들의 견제로 잡지에 광고를 싣지 못하자 컴퓨터 잡지를 직접 발행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1990
1990년, 손 마사요시는 일본 내 사업 환경에서 외국 국적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기에 사업 확장을 위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국적을 변경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1995
[야후!에 과감한 투자]
미국에서 야후! 창업자 제리 양 등을 만나 갓 시작한 야후!에 2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보여주었다.
1995년 미국에 머물던 중, 그는 당시 막 야후!를 창업한 사업가 제리 양 등을 만나 콜라와 피자를 먹으며 대화한 후, 초기 단계의 야후!에 2백만 달러(당시 한화 약 16억 원)를 투자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그의 탁월한 투자 안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1996
1996년, 성공적인 야후! 투자를 기반으로 야후! 재팬을 설립하며 일본 인터넷 검색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2015년까지 야후! 재팬 이사회 회장을 역임하며 일본 인터넷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1
2001년, 손 마사요시는 브로드밴드 사업에 진출하며 소프트뱅크의 사업 영역을 통신 분야로 확장했다. 이는 당시 급성장하던 인터넷 인프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2004
2004년에 일본텔레콤을 인수하며 통신 사업 기반을 강화했으며, 같은 해 프로야구단 후쿠오카 다이에호크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인수하며 스포츠 산업으로도 발을 넓혔다. 이는 소프트뱅크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2006
2006년, 소프트뱅크는 보다폰 일본법인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며 일본 무선 통신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 인수는 소프트뱅크가 일본의 주요 이동통신사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경쟁이 치열한 통신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2008
2008년, 소프트뱅크는 일본에서 애플의 혁신적인 스마트폰 아이폰3G를 독점적으로 발매하며 일본 스마트폰 시장의 개척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일본 휴대폰 시장의 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2017
[은퇴 계획 번복 및 추가 경영 선언]
당초 60대에 은퇴하겠다는 뜻을 번복하고, 후계자를 물러나게 한 뒤 10년 더 기업 활동을 하며 후계자를 찾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손 마사요시는 당초 밝혔던 60대 은퇴 계획을 번복하고, 후계자를 물러나게 한 후 앞으로 10년간 기업 활동을 더 하며 새로운 후계자를 찾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그의 강력한 경영 의지와 미래 사업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드러낸 사건이었다.
2018
2018년 9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손 마사요시의 재산을 24조 5천억원으로 평가하며 그를 일본 최고 부자로 선정했다. 이는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를 통한 그의 성공적인 투자와 사업 확장의 결과였다.
2019
[위워크 투자 실패로 대규모 손실]
미국의 사무실 공유 스타트업 위워크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큰 실패로 돌아가 소프트뱅크에 약 5천억엔의 손실을 안겼다.
2019년, 손 마사요시가 단행한 미국의 사무실 공유 스타트업 위워크에 대한 거액의 투자는 예상과 달리 큰 실패로 이어져 소프트뱅크에 약 5천억엔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안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의 투자 전략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그는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경영 감독에 대한 추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