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
신라 귀족, 상대등, 반란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2:02:18
신라 선덕여왕 말기의 진골 귀족이자 상대등. 647년 선덕여왕의 정치를 문제삼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고 일족과 함께 처형되었다. 왕위 찬탈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며, 후대 여러 드라마에서 재조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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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
선덕여왕 재위 말기인 645년, 비담은 화백회의의 수장이자 신라의 최고 관직인 상대등에 취임했다. 이는 그가 강력한 권력을 가진 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646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 재위 말기인 646년 음력 11월(양력 12월경), 비담이 화백회의의 수장인 상대등에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대목이다.
647
647년 정월,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선덕여왕의 정치를 문제 삼아 반란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선덕여왕의 병세가 깊어지자 왕위 찬탈을 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비담은 명활산성에, 김유신이 이끄는 관군은 월성에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선덕여왕 승하 및 진덕여왕 즉위]
비담의 난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선덕여왕이 승하하고 진덕여왕이 즉위하여 신라의 새로운 국왕이 되었다.
비담의 난이 한창이던 중, 신라의 제27대 선덕여왕이 승하했다. 이어서 진덕여왕이 신라의 제28대 국왕으로 즉위하며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왕위를 이었다.
김유신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비담의 반란은 10여 일 만에 진압되었다. 이어서 비담과 염종, 그리고 그의 일족 30명은 처형되며 신라의 큰 혼란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