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중국 요리

중국 요리, 한국 요리, 외식업, 화교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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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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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중국 요리는 중국 요리에 뿌리를 두지만, 한국의 식재료와 입맛에 맞게 토착화된 음식입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이 대표적이며, 초기 화교들에 의해 국내에 유입되어 발전했습니다. 특히 중국 산둥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현재는 한국 음식의 한 부분으로 여겨질 만큼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식 문화의 변화와 함께 대중화의 길을 걸어온 한국식 중국 요리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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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

[조선 개항과 외식업의 등장]

조선 개항 이후 중국 요리집이 외식업의 선두주자로 등장하여 특수 권력층만 찾는 전통적인 식당으로 시작했습니다.

여행자나 보부상이 이용하던 주막 외에는 특별한 외식 문화가 없었던 조선에서 1876년 개항 이후 본격적으로 외식업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두에 섰던 것이 중국 요리집이었으며, 초창기에는 요즘의 대중적인 중국집과는 달리 특수한 권력층만이 찾던 전통적인 중국식 고급 식당이었습니다.

1884

[인천구화상지계장정 체결과 차이나타운 형성]

조선과 청 사이에 인천구화상지계장정이 체결되며 현 인천 차이나타운 자리에 청나라 조계지가 형성되었습니다.

1884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인천구화상지계장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 자리에 청나라 조계지가 생겨났으며, 이는 한국 화교들의 정착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898

[의화단 운동과 산둥인의 인천 이주]

산둥반도에서 의화단 운동이 발생하여 많은 산둥 사람들이 정기 항로를 통해 인천으로 이주, 정착하며 한국식 중국 요리 문화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898년 산둥반도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자, 많은 산둥 사람들이 당시 산둥과 인천 사이에 개설되어 있던 정기 항로를 이용하여 인천으로 대거 이주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이주는 한국에 중국 요리 문화가 확산되고 한국식으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 미쳤습니다.

1922

[화교의 청요리집 운영 확대]

일제강점기 조선에 거주하던 화교들이 청요리집을 활발히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1922년에는 전국 화교 가구의 30%가 중국 음식점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조선에 살던 한국화교들은 청요리집을 운영하며 외식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조선총독부 자료에 따르면 1922년 전국 주요 도시의 화교 2224가구 중 30%에 달하는 가구가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1926

[청요리집의 성장과 고급화]

1926년에는 중국 음식점 수가 1200여 호, 종사자가 3,800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어나며 청요리가 고급 식당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26년에는 중국 음식점 수가 1200여 호, 종사자가 3,800명 정도로 더욱 늘어났습니다. 당시 중국식당은 한국에서는 극히 드물던 2층 건물로 운영되었으며, 술 접대 기녀가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경성부의 아서원, 금곡원, 대관원 같은 곳은 부유한 일본인과 조선인만이 드나들 수 있던 최고급 청요리집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1960

[박정희 정부 정책으로 인한 화교 경제력 약화]

박정희 정부의 화폐개혁과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 정책으로 화교의 경제력이 약화되었고, 많은 화교가 한국을 떠나거나 주업을 외식업으로 한정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화폐개혁과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 정책 등을 통해 화교의 과다한 경제 창출력을 약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화교들이 한국을 떠나거나, 경제 활동이 외식업으로 국한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짜장면의 대중화와 외식 문화의 변화]

1960~70년대 정부의 분식 장려 정책과 빠른 조리 시간 덕분에 짜장면 등 중국 요리가 산업화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며 대중적인 외식 요리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정부가 분식을 장려하고, 짜장면과 같은 중국 요리의 비교적 짧은 조리 시간이 산업화 시대의 빠르고 간편한 외식에 대한 요구와 맞아떨어지면서, 중국 요리는 대중적인 외식 요리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로 인해 대중적인 중국 음식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2019

[마라탕의 등장과 전국적인 마라 열풍]

신화교 소유 음식점의 증가와 함께 마라탕이 급상승한 매출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에 마라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에 신화교 소유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그중 마라탕이 대표적인 신화교 음식으로 떠올랐습니다. 2019년에 특히 많은 인기를 끌며 마라탕 매출이 급상승했고, 이는 전국적인 '마라 열풍'으로 이어져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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