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순
협객, 정치활동가, 목회자, 군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56:47
이성순은 '시라소니'라는 별명으로 불린 대한민국의 협객입니다. 젊은 시절 밀수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해방 후 서북청년단 감찰부장과 독립운동가 신익희의 경호실장을 지냈습니다. 한국 전쟁에는 북파공작원으로 참전했습니다. 유명한 '동대문파 이정재 린치' 사건을 겪었으며, 이후 개신교에 귀의해 목회자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행적 중 일부는 기록원에서도 확인되지 않아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습니다. 이성순의 삶은 여러 대중문화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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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이성순은 1916년 2월 29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전주 이씨 가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33
가계가 기울자, 17세부터 신의주와 만주 사이를 오가는 기차에서 밀수로 생계를 유지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1946
[서북청년단 감찰부장 및 신익희 경호실장 활동]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서북청년단 감찰부장과 독립운동가 신익희의 경호실장을 맡으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해방 정국에서 서북청년단 감찰부장직을 맡았고, 독립운동가 신익희의 경호실장을 지냈습니다.
1950
[한국 전쟁 북파공작원 활동]
한국 전쟁 기간 동안 북파공작원으로 참전하여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또한 전후 선거 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한국에 창설했던 켈로부대 요원으로 참전하여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전후 선거 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1953
[동대문파 이정재에게 린치당함]
동대문파 이정재에게 동대문 점포 양도를 요구하다가 동대문상인연합회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이정재의 부하에게 한 번 더 폭행당했습니다.
1953년, 동대문파 이정재에게 동대문 점포 양도를 요구하다가 동대문상인연합회에 린치당하여 중상해를 입었습니다. 이정재의 재종제이자 부하인 이석재에게 한 번 더 폭행당했습니다.
1961
[개신교 귀의 및 5.16 군사 정변 연행]
개신교에 귀의한 후, 5.16 군사 정변 당시 중부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 교인들의 탄원 덕분에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이정재에게 린치당한 사건 이후 개신교로 귀의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5·16 군사 정변 때 중부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 교인들의 탄원으로 석방되었습니다.
1983
1983년 1월 25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군자동 자택에서 사망하였으며, 27일 오전 11시 발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