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배우, 사회운동가, 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55:28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 '갓혜자'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최다 대상 수상 기록 보유. 영화 '마더'로 해외 유수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석권하며 세계적 배우로 자리매김. 월드비전 친선대사로서 30년 가까이 꾸준한 나눔을 실천, '마더 혜레사'로 존경받는 사회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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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배우 김혜자 출생]
대한민국 대표 배우 김혜자가 일제 강점기 경성부 회현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재정경제부 장관과 사회부 차관을 역임한 정치인 김용택입니다.
김혜자는 1941년 10월 25일 일제 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회현정(현 서울 중구 회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재정경제부 장관 및 사회부 차관을 역임한 정치인 김용택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후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1960
[연극배우 데뷔]
김혜자가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연기 활동의 시작점으로, 이후 그녀의 긴 연기 경력의 기초가 됩니다.
김혜자는 1960년에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며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전, 연기력을 다지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61
[KBS 탤런트 데뷔 및 활동 중단]
KBS 서울중앙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지만, 11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하며 방송국 연수를 마치지 못하고 연기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김혜자는 1961년 KBS 서울중앙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으나, 방송국 연수를 끝내기도 전에 11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하며 연기 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는 “열망만 컸지 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도망친 것”이라고 회고했습니다.
1969
[MBC 영입, 본격적인 연기 활동 재개]
가정생활 중 연기에 대한 갈망을 다시 느끼고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MBC 개국과 함께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영입되어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한 가정의 어머니로 살던 김혜자는 27세의 나이에 다시 연기에 대한 갈망을 느꼈고, 이후 3년간 연극 무대에서 '연극계 신데렐라'로 활동했습니다. 1969년 문화방송(MBC)이 개국하면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인 김혜자를 영입하였고, 그녀는 MBC를 기반으로 '개구리 남편', '수사반장', '신부일기'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74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 수상]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 시상식에서 배우 최불암과 나란히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74년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 시상식에서 김혜자는 최불암과 함께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신부일기', '당신' 등 다수의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75
[CJ제일제당 '다시다' 모델 활동 시작]
CJ제일제당의 '다시다' 전속 모델로 발탁되어 27년간 활동하며 '그래, 이 맛이야'라는 유행어와 함께 '국민 엄마'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했습니다.
김혜자는 1975년부터 2002년까지 CJ제일제당의 전속 모델로 27년 동안 활동하며 ‘국민 엄마’라는 이미지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제일제당의 대표 제품인 다시다 광고 속에서 외쳤던 “그래, 이 맛이야”는 당시 큰 유행어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광고 활동은 그녀의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1979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
드라마 '행복을 팝니다'로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혜자는 드라마 '행복을 팝니다'에 출연한 후 1979년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정상의 배우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이미 다수의 작품에서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980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 첫 방송]
국내 최장기간 방영된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의 첫 방송과 함께 양촌리 김회장 부인 이은심 역을 맡아 오랜 기간 출연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혜자는 1980년 10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한국 대표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 부인 이은심 역을 맡아 2002년 12월 29일 종영할 때까지 오랜 기간 출연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녀의 '국민 엄마'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83
[영화 '만추'로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만추'로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서도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82년 개봉한 영화 '만추'는 김혜자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그녀는 이 영화에서의 열연으로 1983년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로써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분야에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입증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1988
[동아연극상 및 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
연극 '19 그리고 80'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하며 무대에서의 연기력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같은 해 드라마 '모래성'으로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김혜자는 1988년 연극 '19 그리고 80'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극 무대에서의 깊이 있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드라마 '모래성'으로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브라운관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1989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추가 수상]
드라마 '겨울 안개'와 '모래성'으로 제2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여 역대 최다 백상 대상 수상자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김혜자는 드라마 '겨울 안개'와 '모래성'에서의 열연으로 제2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두 번째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으로, 이후 총 네 번의 대상을 수상하며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우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991
[월드비전 친선대사 임명, 자선 활동 시작]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3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하며 아프리카 난민 지원 등 활발한 자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1년 김혜자는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의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이후 3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으로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앞장서는 등 활발한 자선 활동을 펼치며 '마더 혜레사'라는 존칭을 얻게 됩니다.
1992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로 MBC 방송대상 대상 수상]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여순자 역으로 열연하며 MBC 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김혜자는 1992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엄마 여순자 역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으로 MBC 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의 주역으로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1999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로 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에서 이필녀 역으로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총 세 번의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99년 김혜자는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에서 이필녀 역을 맡아 열연하며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1988년 '모래성', 1992년 '사랑이 뭐길래'에 이어 세 번째 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으로, 그녀의 꾸준한 연기력과 인기를 입증하는 기록이었습니다.
2002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 종영]
22년간 방영되며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았던 '전원일기'가 종영했습니다. 김혜자는 이 드라마를 통해 '국민 엄마' 이미지를 굳건히 했습니다.
김혜자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22년간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았던 '전원일기'가 2002년 12월 29일에 종영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1980년 첫 방송부터 꾸준히 사랑받으며 김혜자를 '국민 엄마'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2004
[베스트셀러 에세이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출간]
아프리카 봉사활동 경험을 담은 에세이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인세 전액을 기부했습니다.
김혜자는 2004년 아프리카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저술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책의 인세 전액은 북한 용천 긴급구호와 어린이 공부방(꽃때말공부방) 설립에 기부되는 등 나눔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2008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로 KBS 연기대상 대상 수상]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파격적인 어머니상을 연기하며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2008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김혜자는 새로운 자유를 꿈꾸는 다소 특이한 어머니상을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파격적인 인상을 주며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2008년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연기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2009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 (엄마가 뿔났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로 제4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세 번째 백상 TV부문 대상 수상 기록입니다.
2009년 김혜자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열연으로 제4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MBC '행복을 팝니다', '모래성'에 이어 세 번째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으로, 그녀가 가진 이 부문 최다 수상 기록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영화 '마더' 개봉 및 칸 국제영화제 초청]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동물적 모성을 연기하며 국내외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2009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는 아들의 살인사건 누명을 벗기기 위해 범인을 찾아 나서는 동물적인 모성을 탁월하게 연기했습니다.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라는 대사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는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김혜자가 생애 처음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
['김혜자 도시락' 런칭]
GS25 편의점과 협력하여 자신의 이름을 건 '김혜자 도시락'을 런칭했습니다. '혜자스럽다'는 유행어를 낳으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김혜자는 2010년 10월 GS25 편의점과의 협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식품 브랜드 '김혜자 도시락'을 런칭했습니다. 이 도시락은 품질과 가성비로 큰 인기를 얻어 '혜자스럽다'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그녀의 대중적 영향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배우 최초 LA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마더'로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세계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김혜자는 2010년 12월 13일, 영화 '마더'에서의 뛰어난 연기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한국 배우로서는 최초의 기록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극찬을 받으며 김혜자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대표적인 성과이자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9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 (눈이 부시게)]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노년의 김혜자 역을 맡아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백상 TV부문 최다 대상 수상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습니다.
2019년 김혜자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노년 김혜자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총 네 번의 백상 TV부문 대상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은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연기 인생과 사회 공헌 활동에 대한 국가적 예우입니다.
2019년 김혜자는 제10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오랜 시간 배우로서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월드비전 친선대사로서 사회 공헌 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공로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