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석
작곡가, 작사가, 피아노 연주자, 음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54:53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이끈 '히트곡 제조기' 박춘석은 '황혼의 엘레지', '비 내리는 호남선', '섬마을 선생님' 등 2,700여 곡을 작곡하며 한국 가요사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이미자 등 당대 최고 가수들과 협업했으며, 일본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에게도 곡을 주는 등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정받았습니다. 옥관 및 은관 문화훈장을 수훈하며 음악적 업적을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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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박춘석, 경성부에서 출생]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발자취를 남길 작곡가 박춘석이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박의병입니다.
박춘석은 1930년 5월 8일 경성부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 후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52
1952년 미8군 무대에서 피아니스트로 첫 데뷔하여 음악인으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55
[작곡가 데뷔 및 히트곡의 시작]
백일희가 부른 《황혼의 엘레지》를 작사, 작곡하며 작곡가로 정식 데뷔, 이후 2,700여 개가 넘는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키는 서막을 열었습니다.
1955년 백일희가 부른 《황혼의 엘레지》를 작사, 작곡하며 작곡가로 데뷔한 이후 《비 내리는 호남선》, 《마포종점》, 《초우》, 《섬마을 선생님》 등 2,700여 개가 넘는 작품을 작곡하며 한국 가요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가수 이미자의 많은 곡을 작곡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0
1990년에 박춘석이 세계 법보사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1992
1992년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과 통일국민당 문화예술행정특임고문 직위로 잠시 활동했습니다.
1994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작곡 활동을 잠정 중단했으며, 동생 박금석의 보살핌을 받으며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1995
1995년에 한국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4등급)을 받았습니다.
1996
1996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고문 직위로 잠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2010
2010년 박춘석 선생 사후에 은관문화훈장(2등급)이 추서되어 그의 음악적 업적을 다시 한번 기렸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박춘석은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작곡 활동을 잠정 중단했고, 동생 박금석의 보살핌을 받다가 2010년 3월 14일 자택에서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2010년 3월 18일에 박춘석 선생의 시신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에 묻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