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사회 운동가, 교육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7- 09:51:26
육영수는 대한민국의 제5~9대 대통령 박정희의 두 번째 배우자이자, 국민에게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청와대 내 '제1야당'이라 불릴 만큼 남편의 국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했습니다. 또한 육영재단 설립, 정수직업훈련원 개교, 한센병 환자 지원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헌신적인 사회 활동으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비극적으로 암살당하며 국민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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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육영수는 1925년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대지주였던 육종관과 이경령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본처 외 3명의 첩을 거느렸고, 육영수는 본처의 차녀로 여러 친남매 및 이복 남매를 포함해 총 22명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성장했다.
1938
[학창시절 및 교사 부임]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배화고등여학교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서 가사 과목 교사로 재직했다.
1938년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배화고등여학교에 입학하였다. 배화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21세 때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 부임하여 가사 과목 교사로 1년 3개월간 재직했다.
1950
[박정희와의 결혼]
6·25전쟁 중 당시 육군 소령이던 박정희를 소개로 만나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1950년 소개로 당시 육군 소령이던 박정희를 만났으며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박정희와 결혼했다. 당시 박정희는 첫 부인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재혼하였다. 아버지 육종관은 이 결혼을 반대하였으나, 육영수는 가출하여 박정희의 임지였던 대구에서 하숙하였다. 남편 박정희와의 사이에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등 1남 2녀를 두었다.
1963
[대한민국 제1야당, 퍼스트레이디 청와대 입성]
부군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청와대로 이주하여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부군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2월 17일 대통령 배우자로 청와대로 이주하였다. 청와대 안의 제1야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남편의 직무 수행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민원 처리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69
1969년 4월 14일 어린이 복지사업을 목적으로 한 육영재단을 설립하였다. 또한 1970년 7월 25일 서울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건립하고,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대공원, 어린이회관의 건립을 주도하는 등 어린이 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1970
[서울 어린이회관 건립]
서울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건립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및 문화 공간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 7월 25일 서울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건립하였다. 육영재단 설립과 함께 어린이 복지 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하며,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대공원, 어린이회관의 건립을 주도하는 등 미래 세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실천했다.
1973
[정수직업훈련원 개교]
불우 청소년과 빈자들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정수직업훈련원을 서울 용산구에 개교하여 자립을 돕는 데 기여했다.
1973년 불우 청소년과 빈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 기관인 정수직업훈련원을 서울 용산구에 설치하였다. 이는 직업훈련 위주의 사회복지가 빈곤퇴치의 길임을 알고 있었던 육영수의 자립 중심 사회봉사 철학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74
[한센병 환자촌 지원 및 양지회 회관 설립]
전국 한센병 환자촌을 직접 방문하며 자활사업을 지원했고, 소록도 국립 나병원에 양지회 회관을 설립하는 등 소외된 이웃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육영수는 전국 한센병 환자(나환자)촌을 직접 방문하여 자활사업을 지원하였으며, 1974년 7월 15일 소록도 국립 나병원에 양지회 회관을 설립하는 등 소외된 이웃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다.
[광복절 기념식, 육영수 여사 서거]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 중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향년 49세로 비극적으로 암살당했다.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는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으로 인해 재일 한국인 문세광에게 암살당했다. 범인이 쏜 총탄에 맞아 당일 오후 7시에 사망하였으며, 당시 나이는 불과 49세였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조총련의 조종에 의한 범죄로 규정되어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74년 8월 19일 국민장 영결식이 거행된 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