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대한민국 프로 축구 리그, 스포츠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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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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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프로 축구 리그, 스포츠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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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는 1983년 '수퍼리그'로 시작하여 대한민국 프로 축구의 역사를 써내려왔습니다. 초기에는 실업팀과 프로팀이 혼재하는 과도기를 겪었으나, 점차 프로 시스템을 확립하고 독립적인 연맹을 출범하며 기반을 다졌습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과 '완전 지역 연고제'를 통해 지역 기반을 강화했으며, 2000년대 이후 시민구단 창단과 승강제 도입으로 리그 규모와 경쟁력을 꾸준히 확장해 왔습니다. 현재는 K리그1과 K리그2로 나뉘어 운영되며, 국내 프로 스포츠를 대표하는 리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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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대한민국 최초 프로축구단 '할렐루야' 창단]

1979년 최순영 대한축구협회장이 프로축구 리그 창설을 공약하며, 스스로 구단주가 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축구단인 '할렐루야'를 창단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프로 축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79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된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은 공약 중 하나로 프로축구 리그 창설을 내걸었습니다. 1980년 최순영 회장이 직접 구단주가 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축구단인 '할렐루야'를 창단함으로써, 당시 실업축구와 대학리그 중심이던 한국 축구계에 프로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1983

[대한민국 프로 축구 '수퍼리그' 공식 출범]

대한축구협회의 주도 아래 2개의 프로축구단과 3개의 실업축구단 등 총 5개 구단으로 '수퍼리그'가 동대문운동장에서 화려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엄청난 경품과 함께 개막전을 시작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평균 2만 명이 넘는 관중을 기록하며 국내 프로 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983년 2월 대한축구협회가 수퍼리그 창설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같은 해 3월 3일 '수퍼리그 위원회'가 발족되었습니다. 이 위원회의 노력 끝에 5월 8일, 할렐루야, 유공, 포항제철, 대우, 국민은행 등 5개 구단을 원년 멤버로 하는 수퍼리그가 동대문운동장에서 개막전을 시작으로 공식 출범했습니다. 리그는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진행했고, 특히 자동차 등의 엄청난 경품 덕분에 평균 20,924명의 폭발적인 관중을 동원하며 초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1987

[진정한 프로 리그 시대 개막 및 지역 연고제 도입]

수퍼리그 출범 후 관중 감소 등 위기를 겪던 K리그는 실업축구단이 리그에서 빠지고 5개의 프로축구단만으로 운영되는 '한국프로축구대회'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와 함께 광역지역연고제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 도입되어 리그 운영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1985년부터 관중이 급감하고 할렐루야가 아마추어 전환을 선언하는 등 위기를 겪던 K리그는 1987 시즌부터 실업축구단이 빠지고 5개 프로축구단만으로 운영되며 '한국프로축구대회'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또한 프로축구위원회를 발족하여 독립적인 리그 운영을 시작했으며, 1983년부터 금지되었던 지역 연고제가 광역지역연고제 형태로 도입되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경기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프로 스포츠의 기본 구조를 갖추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1994

[한국프로축구연맹 출범 및 국내 최초 타이틀 스폰서 도입]

대한축구협회 산하의 프로리그위원회가 독립하여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 새롭게 출범하며 리그 운영의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K리그는 국내 프로 스포츠 리그 중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 제도를 도입, '하이트배 코리안리그'라는 이름으로 리그를 운영하며 새로운 수익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1994년, 당시 대한축구협회 산하의 프로리그위원회가 독립적인 법인인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초대 회장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이 겸직했습니다. 같은 해 K리그는 국내 프로 스포츠 리그 중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 제도를 도입하여 조선맥주(현 하이트맥주)와 스폰서십을 체결하고 '하이트배 코리안리그'라는 명칭으로 리그를 진행했습니다. 이는 리그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6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및 '완전 지역 연고제' 도입]

2002년 월드컵 유치와 전국적인 축구 열기 확산을 목표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을 연고로 하던 3개 구단이 강제로 지방으로 이전했으며, 구단 이름에 지역명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미디어에서도 연고지명을 우선시하는 '완전 지역 연고제'가 전격 도입되어 K리그의 지역 기반을 확립했습니다.

1996년,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는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서울의 축구전용구장 건설과 전국적인 프로축구 열기 확산을 목표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 정책으로 당시 서울 연고지 구단인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습니다. 동시에 구단 이름에 지역명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미디어에서도 기업 이름 대신 연고지명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가 전격 시행되며 K리그는 각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1998

[K리그, 최초로 200만 관중 돌파]

고종수, 이동국, 안정환 등 걸출한 신예 스타들의 등장에 힘입어 1998년 K리그는 총 2,117,448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리그 역사상 최초로 200만 관중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중흥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K리그의 대중적 인기와 성장 가능성을 증명하는 기록이었습니다.

1998년은 고종수, 이동국, 안정환과 같은 신예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K리그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이들의 활약과 함께 총 2,117,448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K리그는 출범 이래 처음으로 200만 관중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기록은 프로축구의 뜨거운 인기와 잠재력을 보여주며 K리그의 중흥기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평가됩니다.

2009

[K리그, 국내 프로 스포츠 최초 전국화 달성]

강원도를 광역연고로 삼는 강원 FC가 리그에 참가하면서 K리그는 수도권, 경상권, 전라권, 충청권, 강원권, 제주권에 최소 1개 이상의 구단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전국화를 달성한 중요한 기록으로, K리그의 저변 확대를 보여주었습니다.

2008년 말 강원 FC가 출범하고 2009년부터 리그에 참가하게 되면서 K리그는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전국화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내 주요 권역인 수도권, 경상권, 전라권, 충청권, 강원권, 제주권에 최소 1개 이상의 프로축구단을 보유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전국화는 K리그가 단순히 특정 지역의 스포츠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프로 스포츠 리그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0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 수립 (60,747명)]

서울과 성남의 경기에 무려 60,747명의 관중이 찾아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기록은 K리그의 뜨거운 인기와 잠재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국내 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2010년 5월 5일, K리그의 서울과 성남 경기는 60,747명의 압도적인 관중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시 K리그는 '5MM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경기 재미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이 기록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자 K리그가 가진 폭발적인 흥행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2011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발생]

K리그 현역 선수 2명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되면서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3달간의 수사 끝에 혐의가 밝혀진 선수 50명이 영구제명되는 등 리그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대한민국 축구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2011년 5월 25일, K리그 현역 선수 2명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며 승부조작 사건의 어두운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3달간 광범위한 수사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혐의가 밝혀진 50명의 선수들이 영구제명되는 등 전례 없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습니다. 이는 K리그에 대한 팬들의 신뢰를 크게 흔들었으며, 리그의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를 위한 자정 노력이 절실함을 일깨웠습니다.

2013

[승강제 본격 실시 및 K리그 명칭 개편]

오랜 논의 끝에 K리그 최상위 1부 리그는 'K리그 클래식'으로, 2부 리그는 'K리그 챌린지'로 명칭이 확정되며 온전한 의미의 승강제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리그의 경쟁력을 높이고 역동적인 구단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변화였습니다.

2012년 승강제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스플릿 시스템을 통한 강등팀 결정이 진행된 후, 2013년 3월 마침내 1부 리그는 'K리그 클래식', 2부 리그는 'K리그 챌린지'로 명칭이 확정되며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최초의 온전한 승강제가 실시되었습니다. 2013년 시즌에는 K리그 클래식의 하위 팀들이 강등되고, 챌린지 우승팀과 플레이오프 승자가 승격하는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리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2018

[K리그 클래식, K리그1로 / K리그 챌린지, K리그2로 명칭 변경]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의 명칭이 각각 'K리그1'과 'K리그2'로 변경되며 리그 시스템이 보다 직관적이고 현대적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이는 K리그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팬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2018 시즌부터 기존의 'K리그 클래식'은 'K리그1'으로, 'K리그 챌린지'는 'K리그2'로 각각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리그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팬들이 리그 구조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새로운 명칭은 K리그의 통일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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