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희
지질학자, 대학교수, 학술원 회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7:48
한국 지질학계의 선구자로, 후기 고생대 퇴적층 기준 제시와 층서학을 정립했습니다. 평안 누층군의 지층 분류를 재설정하여 현재까지 활용되는 기준을 마련했으며, 삼척탄전과 영월탄전에서 부정합과 준정합의 존재를 최초로 밝혀내는 등 독창적인 연구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지질학자를 양성했고,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및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학술 발전과 자연문화재 보존에도 기여했습니다. 그의 공로는 운암지질학상, 대한민국학술원상, 5·16민족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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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1920년 10월 11일 평안북도 철산군 여하면에서 태어나, 훗날 한국 지질학계를 이끄는 선구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1939
1939년 3월 신의주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달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하며 전문 학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39년 4월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채광야금학과에 입학하여 광산 관련 기술과 지식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1941
1941년 12월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해 일본 북해도제국대학으로 진학하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1942
1942년 4월 일본 북해도제국대학 이학부 지질광물학과에 입학하여 지질학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1944
[북해도제국대학 졸업 및 지질조사소 입사]
북해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의 유일한 한국인 지질학자로 입사하여 포항 부근의 도폭 조사를 수행했습니다.
1944년 10월 북해도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소에 입사하여 유일한 한국인 지질학자로서 포항 부근의 지질 도폭 조사를 담당했습니다.
1945
광복 이후 1945년 11월 지질광산연구소가 세워졌고, 이곳에서 지질과 과장을 맡아 대한민국 지질학 연구의 기반을 다지는 데 참여했습니다.
1947
[대한지질학회 간사 선출]
창립된 대한지질학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이사와 회장까지 역임하며 한국 지질학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47년 4월 10일 창립된 대한지질학회에서 간사로 선출되며 학회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이사, 그리고 회장까지 역임하며 한국 지질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52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부교수 임용]
지질광산연구소를 떠나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부교수로 임용되었고, 교수 재직 중 다수의 박사 및 석사 학위자를 배출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1952년 12월 지질광산연구소를 떠나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부교수로 임용되며 본격적인 교육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수많은 박사 및 석사 학위자를 배출하며 한국 지질학계의 미래를 밝히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1960
1960년 4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위촉되어, 2022년 별세할 때까지 대한민국 학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61
[태백산지구 지하자원 조사 주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앞두고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태백산지구 지하자원 조사, 특히 삼척, 영월, 단양 탄전의 석탄 및 석회암 자원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1961년, 한국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에 앞서 국가 경제의 초석이 될 석탄과 석회암 자원 파악을 위해 태백산지구 지하자원 조사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강원도 삼척탄전, 영월탄전 및 충청북도 단양탄전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이끌어 국가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68
1968년 일본 북해도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그의 지질학적 지식과 연구 역량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1969
[평안 누층군 층서 재설정]
기존 홍점층, 사동층 등으로 구분되던 평안 누층군을 만항층, 금천층, 장성층, 함백산층, 도사곡층, 고한층, 동고층으로 새롭게 분류하고 재설정하여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1969년, 한국 지질학계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평안 누층군의 층서를 재설정했습니다. 기존의 홍점층, 사동층, 고방산층, 녹암층 구분을 넘어 만항층, 금천층, 장성층, 함백산층, 도사곡층, 고한층, 동고층으로 새롭게 분류했으며, 이는 오늘날 삼척탄전에서 그대로 사용되는 층서 기준이 되었습니다.
1974
[표준화석 연구 및 부정합/준정합 발견]
후기 고생대 표준화석인 방추충 화석 생물층서 조사를 통해 삼척탄전과 영월탄전 사이에 부정합이 존재함을 발표하고, 영월탄전에서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는 약 1천만 년의 지질 시간 기록이 없는 준정합의 존재를 최초로 밝혀냈습니다.
1974년, 후기 고생대 표준화석인 방추충 화석의 생물층서를 정밀하게 조사하여 삼척탄전과 영월탄전 사이에 지층이 쌓이지 않은 지질학적 단절인 부정합이 존재한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영월탄전에서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렵지만 약 1천만 년에 해당하는 지질 시간 기록이 없는 준정합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내는 등 한국 지질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974년 4월부터 1976년 4월까지 대한지질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지질학계의 학술 교류와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975
1975년, 그의 뛰어난 지질학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한국 지질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상 중 하나인 '운암지질학상'을 수상하며 학자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1978
1978년, 대한민국학술원으로부터 저작상을 수상하여 그의 학술 저술 활동과 지질학 연구에 대한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79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문화부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단순한 학술 연구를 넘어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연문화재를 보존하고 가치를 알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기여했습니다.
1984
[새로운 방추충 속 발견]
국제 지질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새로운 속으로 격상된 방추충 'Xenostaffella'와 'Hanostafellaff'을 최초로 찾아 보고했습니다.
1984년, 국제 지질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새로운 속(genus)으로 격상된 방추충인 'Xenostaffella'와 'Hanostafellaff'을 최초로 찾아 보고하는 등 세계적인 학술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는 국제 지질학 연구에 중요한 기여로 평가받습니다.
1985
1985년 5월, 그의 학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5·16민족상 학술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1995
[국제지질대비프로젝트 한국위원장 역임]
유네스코 국제지질연맹의 국제지질대비프로젝트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국제적인 지질학 연구와 협력에도 힘썼습니다.
1995년 경, 유네스코-국제지질연맹(IUGS)의 국제지질대비프로젝트(IGCO)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지질학 연구 협력과 발전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14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하며 그의 평생에 걸친 지질학계와 국가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14년 5월, 그의 평생에 걸친 지질학 연구, 교육, 그리고 국가 발전에 대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습니다.
2022
2022년 5월 15일, 한국 지질학계의 선구자이자 큰 스승이었던 정창희 교수가 노환으로 별세하며 101년간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한국 지질학의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