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순
과학자, 생물학자, 균학자, 교수, 기업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7:15
한국 최초의 여성 과학자이자 균학의 대모인 김삼순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한국 균학의 제도적, 학문적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인 여성 최초로 제국대학 이학부에 입학하고,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느타리버섯 인공재배 성공, 한국균학회 창립 및 초대회장 역임 등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연구하며 20세기 한국 여성 과학자의 길을 개척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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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
[한국 균학의 대모, 김삼순 출생]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한국 균학의 대모이자 첫 여성 과학자로 성장하게 될 김삼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1909년 2월 3일, 전라남도 담양에서 김삼순이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훗날 한국 균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기며, 한국의 첫 여성 과학자로서 길을 개척하게 됩니다.
1933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졸업 및 교사 생활 시작]
일본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선과를 졸업한 뒤 교직에 몸담으며 교육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렝ㅆ습니다.
1933년, 김삼순은 일본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선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1938년까지 진명여고와 경기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 활동을 펼쳤습니다.
1940
[일본 규슈대학 이학부 조수 역임]
일본 규슈대학 이학부 조수로 임용되어 과학 연구 경력을 쌓기 시작하며 학문적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1940년 4월부터 1941년 3월까지 김삼순은 일본 규슈대학 이학부 조수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과학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1941
[한국인 여성 최초 제국대학 이학부 입학]
한국인 여성 최초로 제국대학인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에 입학하여 식물학과에서 식물생리학과 균학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에게는 매우 드문 도전이자 선구적인 발자취였습니다.
1941년, 김삼순은 한국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제국대학의 이학부에 입학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홋카이도제국대학 식물학과에 진학하여 곰팡이의 일종인 사상균을 주제로 식물생리 연구를 수행하며 학문적 역량을 키워나갔습니다.
1943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 졸업 및 대학원 진학]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균학 연구를 심화하기 위해 동 대학 농학부 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격화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1943년 9월, 김삼순은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 식물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균학을 배우기 위해 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부 대학원으로 진학했으나,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면서 귀국하게 되었고 해방 이후 한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1946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과 교수 역임]
해방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과 교수로 부임하며 국내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김삼순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과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과학 교육 및 연구에 기여했습니다.
1948
1948년, 김삼순은 박사 학위 취득에 대한 미련이 커 교수직을 사임하고 일본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유학 계획은 아쉽게도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1961
[일본 재유학 및 규슈대학 연구생 활동]
15년 만에 유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홋카이도대학을 거쳐 규슈대학에서 연구생으로 활동하며 과학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1961년, 김삼순은 15년 만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홋카이도대학을 거쳐 규슈대학 농학부의 생물물리연구실에서 연구생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는 과학을 향한 그녀의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965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 발표]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에 다카아밀라제 A의 열불활성화 및 광불활성화 저해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국제적인 학술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한국 과학계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1965년, 김삼순은 도미타 교수와 함께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Substrate Effect on Heat Inactivation of Taka-amylase A"와 "Inhibition of Photo-Inactivation of Taka-amylase A by Halogen Ions"라는 제목의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국제 학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1966
[한국인 여성 최초 농학박사 학위 취득]
누룩곰팡이가 분비하는 효소에 대한 연구로 "다카아밀라제 A의 광불활성화"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한국인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는 한국 여성 과학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66년, 김삼순은 누룩곰팡이가 분비하는 탄수화물 분해효소인 다카아밀라제 A와 빛의 상호관계를 주제로 연구한 결과를 종합한 "Photoinactivation of Taka-amylase A(다카아밀라제 A의 광불활성화)"라는 학위논문을 제출했습니다. 이 논문으로 그녀는 한국인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68
[서울여자대학 식품영양학과 초대 교수 부임 및 연구소 설립]
서울여자대학 식품영양학과 초대 교수로 부임하여 본격적으로 응용균학 연구에 착수하고, 서울여대 부설 미생물연구소를 설립하며 한국 균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68년, 김삼순은 건국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서울여자대학 식품영양학과 초대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버섯을 대상으로 하는 응용균학 연구에 착수했으며, 과학 연구를 위한 서울여대 부설 미생물연구소를 설립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연구비 수주에도 힘썼습니다.
1970
1970년부터 김삼순은 삼성농장 대표를 맡아 학술 연구 외에 실용적인 농업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1972
[한국균학회 창립 및 느타리버섯 인공재배 성공]
한국균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며 학회지 발간, 국제균학협회 가입 등을 추진하여 한국 균학의 제도적 발전에 앞장섰습니다. 또한 느타리버섯 인공재배를 세계 최초로 성공시키며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72년, 김삼순은 한국균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균학의 제도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학회지 발간, 국제균학협회 가입, 공동채집회 개최 등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 느타리버섯의 첫 인공재배에 성공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야생버섯 시험재배 주도, 『한국산 버섯도감』 출간 등으로 이어지는 선구적인 업적의 시작이었습니다.
1976
[한국균학회 명예회장 및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추대]
한국균학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고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어 한국 과학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976년부터 김삼순은 한국균학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과 학회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어 그녀의 학문적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977
[문교부 과학기술교육행정특보위원 역임]
대한민국 문교부 과학기술교육행정특보위원으로 임명되어 국가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1977년 1월 6일부터 12월 6일까지 김삼순은 대한민국 문교부 과학기술교육행정특보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과학기술 교육 행정에 자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89
1989년, 김삼순은 자비로 성지학술상을 제정하여 우수한 균학자들에게 상을 수여하며 한국 균학계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2001
[한국 여성 과학계의 거목, 김삼순 별세]
한국 여성 과학사의 큰 획을 그었던 김삼순이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삶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평생을 바친 한 여성 과학자의 험난한 여정이자 발자취였습니다.
2001년 12월 11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김삼순이 9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남다른 열정으로 균학을 개척하고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20세기 한국의 한 여성이 과학자로 성장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증표이자 발자취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