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제
화학공학자, 대학 교수, 저술가, 기업인, 평론가, 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6:50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화학공학자이자 저술가입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화학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여러 기업에서 경영진으로 활동하며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과학 및 교육 평론가로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쳤으며, 한양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또한 다양한 학회와 단체의 주요 직책을 맡아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말년에는 정치 활동에도 참여하며 다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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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1922년 3월 15일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대구입니다.
1946
1946년 조선종합공업의 사장으로 취임하여 1948년까지 재직했습니다.
1948
1948년 조선종합공업 사장직에서 퇴임했습니다.
1950
1950년 8월 1일 여성 영어영문학자 나영균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으며, 나혜석의 처조카사위이자 나문희의 처외종숙부입니다.
1951
[일본 동경대 객원연구원 및 첫 저서 출간]
일본 동경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첫 저서인 『암모니아 합성 공업』을 출간하며 본격적인 화학공학자 및 저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1951년부터 일본 동경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첫 저서인 『암모니아 합성 공업』을 저술하여 출간하며 화학공학자이자 저술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54
1954년 조선석유의 총무실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59
1959년 한국석유의 상무이사로 취임했습니다.
1962
1962년 대한석유공사의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국내 석유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965
1965년 과학평론가로 등단하며 과학 지식의 대중화에 기여했습니다.
1968
1968년 대한석유공사 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한석유공사의 경영을 이끌었습니다.
1969
1969년 교육평론가로 등단하며 과학뿐 아니라 교육 분야에 대한 평론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1970
197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임용되어 화학공학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육 및 연구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1971
[한양대 강사 및 주요 학회, 기업 직책 겸임]
한양대학교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한국화학회 부회장, 전엔지니어링 사장, 한국부식학회 회장 등 여러 학술 및 기업의 주요 직책을 동시에 맡으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1971년 한양대학교 강사로 임용되었고, 동시에 한국화학회 부회장(1979년 퇴임), 전엔지니어링 사장(1983년 퇴임), 한국부식학회 회장(1983년 퇴임) 등의 직책을 역임하며 학계와 산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72
1972년 이수화학의 사장(1983년 퇴임)으로 취임했습니다.
1973
1973년 신한기공의 사장(1983년 퇴임)으로 취임했습니다.
1974
[여러 경제 및 과학 단체 직책 수행]
한국엔지니어클럽 화공분과 회원, 대한민국-사우디아라비아 경제협력위원회 부회장, 석유화학협회 부회장, 한국경제과학심의회 대표위원 등 다양한 경제 및 과학 관련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1974년 한국엔지니어클럽 화공분과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동시에 대한민국-사우디아라비아 경제협력위원회 부회장(1982년 퇴임), 석유화학협회 부회장(1979년 퇴임), 한국경제과학심의회 대표위원(1979년 퇴임) 등의 직책을 수행하며 국가 경제 및 과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76
1976년 대한해외건설협회의 이사장(1982년 퇴임)으로 취임하여 해외 건설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977
1977년 대한기술용역협회의 회장(1984년 퇴임)으로 취임했습니다.
1979
1979년 대한과학단체총연합회의 부회장(1984년 퇴임)으로 취임했습니다.
1983
[전엔지니어링 회장 및 국제 공학 단체 부총재 역임]
전엔지니어링 회장으로 승진했으며, 동남아태평양지역공학단체연합(FEISEAP)의 부총재직을 맡아 국제적인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1983년 전엔지니어링 회장(1985년 퇴임)으로 승진했으며, 같은 해 동남아태평양지역공학단체연합(FEISEAP)의 부총재(1985년 퇴임)로 선임되어 국제적인 공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84
1984년 한국기술용역협회 고문(1992년 퇴임)과 대한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고문(1992년 퇴임)으로 위촉되어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문 활동을 펼쳤습니다.
1985
1985년 전인터내셔널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1986
1986년 대한화학회의 회장(1987년 퇴임)으로 취임하며 국내 화학 학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8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신민주공화당의 공과학교육행정특보위원으로 임명되어 정치 분야에서도 활동을 펼쳤습니다.
1989
1989년 한국화학회관 이사장(1994년 퇴임)으로 취임했습니다.
1991
1991년 한국재료학회의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94
1994년 한국재료학회 명예회장과 한국화학회관 명예이사장으로 추대되며 학계에서의 오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996
1996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자유민주연합의 고문으로 위촉되며 정치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2006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한국공학한림원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화학분야)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공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0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한국공학한림원이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중 화학분야에 선정되며,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한 핵심 엔지니어로서 그 업적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2020
2020년 3월 7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