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구 (기업가)

기업인, 자동차공학자, 과학기술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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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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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자동차공학자이자 기업가이다. 현대자동차 초기 핵심 멤버로, 한국 최초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 개발을 주도했다. 알파, 베타 엔진 등 핵심 기술 자립에 공헌하며 현대자동차 수출 증진을 이끌었다. 산업포장,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고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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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현대자동차 입사 및 한국 자동차 기술개발 시작]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태어난 이충구는 1969년 학군사관 공채 1기로 현대자동차 기술개발부에 입사하며 한국 자동차 기술개발의 초기 핵심 멤버로서 40년간 수많은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 기여했다.

1945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공대에서 자동차공학을 배웠다. 졸업 후 군에서는 수송병과 정비담당 장교로 근무했고, 1969년 학군사관(ROTC) 공채 1기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하며 한국에서 자동차 기술개발을 시작할 때 초기 핵심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40년 동안 자동차 기술개발에 정진하며 수많은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67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교육과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196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교육과(자동차공학 전공)를 졸업했다.

1974

[현대 포니 개발 프로젝트 참여]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인 현대 포니 개발 프로젝트 기술팀의 일원으로 이탈리아로 파견되어 선진 기술을 학습하고, 국내 복귀 후 생산 기술 확보에 참여했다. 이때 작성한 '이대리 노트'는 중요한 기술 지침서로 활용되었다.

1974년 한국 최초 고유모델 승용차 현대 포니 개발 프로젝트 기술팀의 일원으로, 설계와 스타일링, 프로토타입 제작을 맡은 이탈디자인이 있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10개월 동안 선진 기술에 대한 학습을 받았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외국 전문가들의 도움 속에 실제 생산기술 확보에 참여했고 이탈리아에서 기록한 일명 ‘이대리 노트’는 기술 지침서로 아주 유용하게 참조되었다.

1976

[현대 포니 출시 및 한국의 고유모델 생산국 등극]

이충구가 개발에 참여한 현대 포니가 인기리에 생산되며 국민차로 등극, 한국은 세계 9번째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1976년 현대 포니가 인기리에 생산되는 가운데 국민차로 등극했고, 한국은 세계 9번째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1978

[승용차 기술 국산화 사업 주도]

현대자동차에서 승용차 기술을 증진하고 국산화를 확대하는 추격형 기술개발사업의 설계 책임자로 활약하며 마북리 연구소 설립(1981)을 이끌었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 주도로 개발된 전륜구동 방식의 소형차 '포니엑셀'과 중형차 '스텔라'가 동시에 출시되었다.

1978년부터 현대자동차에서는 승용차 기술을 증진하고 그 국산화를 확대해 나가는 추격형 기술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그 중심에 설계 책임자 이충구가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마북리 연구소 설립(1981)을 필두로 자동차의 핵심 기술에 대한 자립이 본격적으로 모색되었고, 그에 동반하여 부품업체들의 설립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한국에서 주도해서 개발한 전륜구동 방식의 소형차 '포니엑셀'과 중형차 '스텔라'가 동시에 출시되었고 이중 스텔라는 88올림픽 공식 행사차로 지정되었다.

[산업포장 수상]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대한 공적으로 1978년 산업포장을 받았다.

1991

[한국 최초 현대 알파엔진 개발]

연구소 소장으로서 한국 최초의 소형용 현대 알파엔진 개발을 주도했다. 이는 선진국이 기술 이전을 기피하던 최신형 전자제어 분사식 엔진이었다.

연구소 소장인 그의 관할하에 한국 최초로 1991년에 소형용 현대 알파엔진이 개발되었다. 선진국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는 최신형 전자제어분사식 엔진 개발에 나섰다.

1993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 부사장 취임]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 및 부사장으로 승진하여 1999년까지 현대자동차의 연구개발을 총괄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1994

[3.1문화상(기술부문) 수상]

미국에 본격적으로 수출된 엑센트 개발의 성과를 인정받아 3.1문화상(기술부문)을 수상했다.

1994년 미국에 본격적으로 수출된 엑센트 개발의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3.1문화상(기술부문)을 수상했다.

1995

[한국 최초 현대 베타엔진 개발]

소형 엔진에 이어 세계 경쟁이 치열한 중형용 현대 베타엔진 개발을 이끌어 현대 아반떼 등 고유모델에 탑재하며 자동차 기술 독립을 실질적으로 이뤘다.

연구소 소장으로서 1995년에는 중형용 현대 베타엔진이 개발되었다. 이를 발전시켜 세계 자동차업체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중형용 엔진도 새롭게 개발했으며, 고유모델에 현대 알파엔진을 탑재한 현대 엑센트, 독자 새시 플랫폼 기술과 현대 베타엔진을 장착한 현대 아반떼가 출시하면서 자동차 기술독립을 실질적으로 이루었다.

1999

[현대자동차 사장 취임]

현대자동차 통합연구개발본부장 및 사장으로 취임하여 2002년까지 재직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현대자동차 통합연구개발본부장, 사장으로 재직했다.

2000

[금탑산업훈장 수상]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의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0년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2001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위촉]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6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엔지니어 6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6년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되었다.

2010

[대한민국 100대 기술주역 선정]

한국공학한림원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기술주역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 한국공학한림원에서 대한민국 100대 기술주역으로 선정했다.

2012

[서울대 지능형자동차플랫폼센터장 취임]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원 지능형자동차플랫폼센터장으로 활동하며 지능형 자동차 기술 연구를 이끌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원 지능형자동차플랫폼센터장으로 활동했다.

2014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 취임]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으로 선출되어 2023년까지 학술 활동을 주도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을 역임했다.

2019

[과학기술유공자 엔지니어링 분야 지정]

한국 자동차 기술개발의 궤적을 창출하고 그 수준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업적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유공자 엔지니어링 분야에 지정되었다.

한국 자동차 기술개발의 궤적을 창출해 그 수준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한국 자동차 기술개발의 경로를 효과적으로 디자인해 나간 업적을 인정받아 2019년 과학기술유공자 엔지니어링 분야에 지정되었다.

2023

[(주)연합시스템 경영고문 합류]

베어링 생산 기업 연합시스템에 경영고문으로 합류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 (주)연합시스템 경영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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