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우 (1926년)

공학자, 기업가, 과학기술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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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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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한인 2세 출신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에도 금속학도의 길을 택해 도쿄공업대학과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한 공학자이자 기업가입니다.-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후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포스코 건설본부장을 맡아 포철 1고로 건설을 주도, 한국 철강산업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포스코 기술고문,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용융환원제철법, 스트립캐스팅 등 선진 철강기술 개발을 이끌었고, 포항공대 및 RIST 설립에 기여하여 산학연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중소기업 기술 교류 및 산업 인재 육성에 헌신하며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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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출생]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재일한인 2세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금속학도의 길을 택하며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1926년 3월 9일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재일한인 2세로 태어났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도 꿈을 잃지 않고 금속학도의 길을 택하며 이후 학문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950

[도쿄공업대학 학사 학위 취득]

도쿄공업대학 금속공학과에서 공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금속학 연구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도쿄 공업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여 공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3

[도쿄 대학 대학원 석사 학위 취득]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금속제련 분야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전문성을 심화했습니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금속제련 분야의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6

[도쿄 대학 생산기술연구소 취직 및 박사 학위 취득]

도쿄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에 취직하고, '고로에서의 규소환원의 속도론적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실력 있는 연구자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1956년 도쿄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에 문부기관 연구직 1급 겸 연구교수로 취직했다. 이후 1963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고로에서의 규소환원의 속도론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금속학 분야의 뛰어난 연구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1957

[일본 아사히학술상 수상]

자연과학 부문에서 일본 아사히학술상을 수상하며 학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957년 자연과학 부문에서 일본 아사히학술상을 수상했다.

1961

[일본철강협회 최우수논문상 수상]

일본철강협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며 금속학 연구 분야에서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61년 일본철강협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1965

[일본금속학회 연구논문상 수상]

일본금속학회 연구논문상을 수상하며 학술적 업적을 꾸준히 인정받았습니다.

1965년 일본금속학회 연구논문상을 수상했다.

1968

[포스코 건설본부장 임명 및 공정 참여]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포스코 건설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포스코의 모든 공정 구성과 기술 도입에 참여하며 한국 철강기술의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1968년부터 포스코의 모든 공정 구성과 기술 도입에 참여했다. 한국 정부는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여 포스코 건설본부장으로 임명했고, 그는 한국 철강기술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971

[포스코 1고로 건설 주도]

포스코 상무이사(건설본부장)로 재직하며 연간 103만 톤 규모의 포철 1고로 설계와 공장 건설을 주도, 한국 철강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며 '경제국보 1호'로 불리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71년부터 1980년까지 포스코 상무이사(건설본부장)를 역임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연간 103만 톤 규모의 포철 1고로 설계와 공장 건설을 주도하여 한국 철강기술의 토대와 철강산업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이 포철 1고로는 '경제국보 1호'로 불리며 한국 철강산업의 근간으로 평가받았다.

1980

[고국 귀국 및 포스코 부사장 역임]

고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포스코 부사장으로 승진, 한국 철강기술의 세계적 발전을 이끌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했습니다.

1980년 고국으로 영구 귀국한 후, 1980년부터 1989년까지 포스코 부사장을 역임했다. 1982년부터는 기술고문 및 기술담당 부사장을 맡아 한국 철강산업의 세계적 기술발전을 이끈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1987

[RIST 설립 및 산학연 체제 구축]

포스코 기술연구소장 겸 부사장 재임 중 박태준 회장과 포항공과대학교 건립을 추진하며 RIST(산업과학기술연구소)를 설립, 포스코-포항공대-RIST로 이어지는 국내 최고 수준의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포스코 기술연구소장(겸임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박태준 회장과 포항공과대학교 건립과 함께 '산학연 체제 구축'을 구상하여 RIST(산업과학기술연구소, 현 포항산업과학연구원)를 설립했다. RIST는 1987년 포스코가 전액 출연하여 발족한 실용화 전문연구기관으로, 그는 2년간 RIST 초대 소장을 역임하면서 포스코-포항공과대학교-RIST로 이어진 산학연 연구개발체제의 기반을 구축하여 현재 RIST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연구소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금속학회 상훈 수상]

대한금속학회로부터 금속기술상, 금속공로상, 최고금속학회상을 수상하며 금속학 분야의 지속적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987년 금속기술상, 1989년 금속공로상, 1999년 최고금속학회상을 포함한 대한금속학회 상훈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89

[탄소소재기술 연구개발 추진]

탄소소재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조흑연 제조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사업을 추진, 코크스, 탄소섬유 등 신성장 사업화를 확장하여 2차전지 음극제 소재 개발의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1989년부터 탄소소재기술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인조흑연 제조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코크스, 탄소섬유,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 복합재료 등을 포항제철의 신성장 사업화 대상으로 확장시켜, 현재 2차전지 음극제 소재 개발에 기초를 제공하는 등 미래 산업 분야의 초석을 다졌다.

1995

[초빙교수 활동]

퇴임 후에도 영남대학교 및 충남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영남대학교 산업기술대학원과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에도 헌신했다.

2013

[사망]

한국 철강산업 발전과 과학기술 혁신에 크게 기여한 공학자이자 기업가로서 87세의 나이로 영면했습니다.

2013년 12월 7일, 한국 철강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세계적인 기술 발전을 이끌었던 위대한 공학자이자 기업가 김철우 박사가 87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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