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원
과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8- 22:30:59
한국인 최초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세계적인 반도체 물리학자이자 발명가입니다. MOSFET과 플로팅 게이트 비휘발성 반도체 기억장치를 최초로 개발하여 현대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서울대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벨 연구소와 NEC 연구소에서 중요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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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서울에서 태어난 강대원은 훗날 MOSFET 및 플로팅 게이트 비휘발성 반도체 기억장치를 최초로 개발하여 현대 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마련한 세계적인 반도체 물리학자이자 발명가가 됩니다.
1955
한국전쟁 동안 해병대에서 통역장교로 복무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 복학, 1955년에 물리학과를 졸업하며 학문적 기틀을 다졌습니다.
1956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반도체 연구에 대한 기초를 다졌습니다.
1959
[오하이오 주립대 박사 학위 취득 및 벨 연구소 입사]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물리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벨 연구소에 입사하여 반도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성장중인 산화층을 통과하여 실리콘에 불순물을 확산시키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1959년부터 미국의 명문 연구기관인 벨 연구소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반도체 연구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1960
[세계 최초 MOSFET 개발]
마틴 아탈라와 공동으로 금속-산화층-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획기적인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기존 트랜지스터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력 소모가 적고 소자를 작게 만들 수 있는 MOSFET을 마틴 아탈라와 공동으로 세계 최초 개발했습니다. 이 원천 기술은 이후 반도체가 대량 생산이 가능한 거대 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현재 컴퓨터, 휴대폰 등의 핵심 부품인 CPU, D램 등의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1963
1960년 마틴 아탈라와 공동으로 개발한 MOSFET 기술에 대한 특허를 1963년에 획득하며 혁신적인 발명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이 특허는 현재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1964
[연구팀 리더로서 다양한 반도체 연구]
벨 연구소에서 고주파 쇼트키 다이오드, 강유전성 반도체, 전하와 결합된 발광물질 등을 연구하는 팀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부터 벨 연구소 내에서 자신의 연구팀을 직접 이끌며 고주파 쇼트키 다이오드, 강유전성 반도체, 전하와 결합된 발광물질 등 다양한 분야의 반도체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67
[세계 최초 플로팅 게이트 비휘발성 반도체 기억장치 개발]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부상 갑문형 비휘발성 반도체 기억장치(Floating Gate non-volatile semiconductor memory)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기존 반도체의 전원 차단 시 데이터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OSFET 위에 산화물 박막과 게이트를 쌓은 형태의 플로팅 게이트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은 향후 플래시메모리, EP롬, EEP롬 등 대용량 기억저장매체 개발의 기술적 토대가 되어 전자통신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관련 논문은 현재까지도 주요 업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1975
[플랭클린연구소 밸런타인 메달 수상]
탁월한 과학기술자에게 수여되는 플랭클린연구소의 밸런타인(Stuart Ballantine) 메달을 수상하며 과학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975년, 과학기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에게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인 플랭클린연구소의 스튜어트 밸런타인 메달을 수상하여 그의 연구 성과와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86
[오하이오 주립대 자랑스런 동문상 수상]
모교인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공과대학으로부터 '자랑스런 졸업생상(Distinguished Alumni Awards)'을 수상했습니다.
1986년, 자신이 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자랑스런 졸업생상(Distinguished Alumni Awards)'을 수상하며 모교의 명예를 드높였습니다.
1988
[벨 연구소 은퇴 및 NEC 연구소 초대 소장 부임]
1959년부터 근무했던 미국 벨 연구소를 은퇴하고, 미국 뉴저지주에 설립된 NEC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국제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펠로우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88년, 약 30년간 재직하며 수많은 업적을 남긴 벨 연구소를 은퇴하고, 같은 해 미국 뉴저지주에 새로 설립된 NEC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새로운 연구기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제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펠로우로 선정되며 그의 학술적 권위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92
[강대원 박사 별세]
학술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뉴저지 인근 공항에서 대동맥 동맥류 파열로 쓰러져 응급 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1992년 5월 13일, 학술대회를 마친 후 뉴저지 인근 공항에서 대동맥 동맥류 파열로 쓰러져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합병증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별세했습니다.
2009
[한국인 최초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 헌액]
트랜지스터 발명 6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특허청이 운영하는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009년, 그가 기여한 트랜지스터 발명 6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상무부 산하 특허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습니다. 그는 562명의 세계 유수 발명가들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기록되며 기념비적인 인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2017
2017년, 대한민국 반도체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 '강대원상'이 제정되어 후학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