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달
과학자, 공학자, 교육자, 공무원, 위성 개발 선구자, 통신 기술 전문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5:32
대한민국의 과학자이자 교육자, 공무원입니다. KAIST 명예교수이자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우리나라 통신 기술의 기반을 다진 TDX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최초의 국적 위성인 우리별 1호 발사에 성공하며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위성 보유국으로 이끌었으며, 인공위성 벤처기업 쎄트렉아이를 창업하여 국내 우주 산업의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본 문서는 위키백과 최순달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1931
최순달 박사는 1931년 6월 20일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훗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1954
1954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심화된 학문의 길을 걷게 된다.
1955
1955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국제적인 학업 여정을 시작했다.
1956
1956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여 전기공학 분야의 전문 지식을 더욱 심화했다.
1969
1969년, 최순달 박사는 세계적인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했고, 이는 훗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1969년 7월부터 최순달 박사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부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우주선 통신장치 개발책임자로 일하며 최첨단 우주 통신 기술을 습득했다. 이 경험은 귀국 후 한국 우주 개발의 초석을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6
[유치과학자로 귀국, 금성사 중앙연구소 초대 소장 취임]
유치과학자로 고국에 돌아와 금성사 중앙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국내 전자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1976년, 최순달 박사는 해외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유치과학자'로서 대한민국에 귀국했다. 그는 금성사 중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국내 전자 산업의 초석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79
1979년, 최순달 박사는 동양나이론 전자사업부 상무로 재직하며 국내 전자 산업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다양한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나갔다.
1981
[ETRI 전신 전기통신연구소 초대 소장 및 TDX 개발 성공]
정부로부터 전기통신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발령받아 TDX(시분할 전자교환기) 개발에 성공,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며 한국을 ICT 강국으로 이끄는 초석을 다졌다.
1981년, 최순달 박사는 정부의 발령으로 ETRI의 전신인 전기통신연구소 초대 소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 최초이자 세계 10번째로 TDX(시분할 전자교환기) 개발에 성공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가능하게 했고, 이는 한국이 ICT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982
1982년 5월 21일, 최순달 박사는 제32대 체신부 장관으로 취임하며 국가 통신 인프라와 정책을 이끄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국내 정보통신 기술 발전에 기여하며 한국의 통신 강국 기반을 닦았다.
1983
1983년 10월 14일, 최순달 박사는 1년 5개월간의 체신부 장관직을 마무리했다.
1983년 11월 25일, 최순달 박사는 일해재단의 첫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새로운 역할을 시작했다.
1985
1985년, 최순달 박사는 영재교육을 목표로 설립된 한국과학기술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서울에 있던 석박사 과정생들을 모아 현재의 KAIST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국내 과학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87
1987년, 최순달 박사는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으로서 국내 과학 연구와 개발을 지원하는 데 힘썼으며, 다양한 과학기술 관련 기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89
1989년, 최순달 박사는 KAIST로 돌아와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인공위성 기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그는 해외 유학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며 독자적인 위성 개발의 꿈을 키웠다.
1990
1990년, 최순달 박사는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소장으로 취임하며, 국내 인공위성 기술 발전을 위한 연구와 인재 양성에 전념했다.
1992
[대한민국 최초 국적 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성공]
영국 서리대학교에 유학 보낸 연구진이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 센터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국적 위성인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 이로써 위성 개발 불모지였던 한국은 독자적인 위성 기술의 기반을 마련했다.
1992년 8월 11일, 최순달 박사의 주도로 영국 서리대학교에 파견되었던 한국 연구진이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 센터에서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보유하게 된 세계적인 쾌거이자, 우리별 2, 3호 발사와 더 나아가 세계 위성 수출국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로써 세계에서 22번째 위성보유국이 되었다.
1993
1993년, 우리별 1호의 성공에 이어 대한민국은 우리별 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며 인공위성 개발 기술의 연속성과 발전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는 최순달 박사가 이끈 위성 개발 프로젝트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이다.
1999
1999년, 최순달 박사의 지도 아래 대한민국은 우리별 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며 위성 자체 개발 능력을 고도화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위성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2001
[대한민국 최초 인공위성 벤처기업 '쎄트렉아이' 창업 및 회장 취임]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벤처기업인 쎄트렉아이를 창업하고 회장에 취임하여 인공위성 기술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2001년 1월, 최순달 박사는 우리별 시리즈를 통해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벤처기업인 '쎄트렉아이'를 창업하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쎄트렉아이는 말레이시아와 200억 원 규모의 라자크새트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며 국내 우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005
[저서 '48년 후 이 아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립니다' 출간]
자신의 경험과 비전을 담은 저서 '48년 후 이 아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립니다'를 출간했다.
2005년, 최순달 박사는 자신의 삶과 대한민국 우주 개발에 대한 비전을 담은 저서 '48년 후 이 아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립니다'를 출간하여 대중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렸다.
2007
2007년 9월, 최순달 박사는 제11대 대덕대학장에 취임하여 교육자로서의 마지막 봉사를 수행하며 미래 인재 양성에 헌신했다.
2014
2014년 10월 18일, 대한민국 우주 및 통신 기술의 선구자 최순달 박사가 서울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그의 업적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