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영하
금속공학자, 기계공학자, 교수, 저술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5:12
염영하는 한국의 저명한 금속공학자이자 기계공학자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평생을 한국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에 헌신했으며, 특히 한국 범종의 과학적, 예술적 우수성을 규명하고 보신각 새 종을 비롯한 8구의 범종 제작을 지휘하며 전통 기술 복원 및 구현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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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염영하가 1919년 6월 1일 함경남도 차호에서 태어났다. 그는 훗날 금속공학과 기계공학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하게 된다.
1933
염영하는 1933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40
1940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
1942
1942년 9월, 염영하는 일본 동북제국대학 공학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1945
[동북제국대학 졸업 및 귀국]
일본 동북제국대학 기계공학과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경성공업전문학교 조교로 부임하며 국내 교육계에 발을 들였다.
1945년 일본 동북제국대학 기계공학과를 학사 졸업한 염영하는 광복을 맞아 귀국했으며, 10월부터 경성공업전문학교 기계공학과 조교수 및 경성대학교 이공학부 전임강사로 1947년 2월까지 근무했다.
1947
1947년 3월부터 1949년 2월까지 삼화공정(주) 기술 부장과 기술소 양성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1949
1949년 3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1952
[영국 유학 및 선진 공학 도입]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에서 기계공구가 열처리 연구를 수행하고 유럽 선진 공학을 시찰하며 서울대 교육과정에 선진 공학을 도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2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에서 1년간 기계공구가의 열처리에 관한 연구를 했다. 유럽 각국 대학 연구소 및 선진 산업 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와 서울대 기계공학 교육과정에 선진 공학을 도입하는 데 이바지했다.
1952년 9월부터 1984년 8월까지 서울대학교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역임하며 한국 공학 발전에 기여했다.
1967
염영하는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7년부터 대한기계학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기계공학 발전에 힘썼다. (출처 원문 '1967 ~ 1956' 표기 오류를 수정하여 1967년 시작으로 해석함)
1974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및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대한민국 과학기술상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며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74년 12월 대한민국 과학기술상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1978
[한국범종연구회 회장 역임]
한국범종연구회 회장을 맡아 한국 종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고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78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범종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범종 연구에 매진했다.
1984
[저서 「한국종 연구」 출간]
저서 「한국종 연구」를 통해 성덕대왕신종 등 한국 범종의 예술적, 과학적 우수성을 규명하고 그 독보적인 가치를 널리 알렸다.
1984년 저서 「한국종 연구」를 출간하여 한국 범종 연구에 대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을 통해 신라시대 종부터 조선시대 종까지 한국 종의 특성을 파악하고 서양, 중국, 일본 종에 비해 예술적, 과학적으로 뛰어남을 입증하였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추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추대되어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평생 교육과 연구에 헌신한 그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1984년 9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추대되어 1995년 6월까지 명예교수직을 유지했다.
1986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재료강도학술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5
1995년 6월 14일 한국 범종 답사 출장 중 별세했다. 만 50년간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연구와 인재 양성, 산업체 기술 자문 및 지도에 힘썼으며, 독창적 예술성이 담긴 한국 범종의 신비를 규명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